2000년 1월호

“김대통령, 당총재 내놓으시죠”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7-01-11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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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서 방대한 행정력을 갖고 국가를 차원 높게 경영하는 일에 전념하셔야 합니다. 정당과 국회는 대통령과 수평적 협력관계에 있는 지도자들이 자유와 자율을 갖고 주도해 나가는 시스템으로 바뀔 때가 됐습니다.”》
    꽉 다문 어금니, 도전적인 눈빛, 그리고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쏙 빼닮은 머리와 콧잔등, 그리고 이마.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97년 대선에서 ‘지역구도 타파와 세대교체’를 내걸고 여야 거대정당 사이에서 ‘급조된’ 미니정당으로 도전, 500만표(19.2%)를 획득했던 이인제. 그 자신이 타파 대상으로 지목했던 3김체제의 한 축인 ‘DJ당’에 들어와 백의종군하고 있는 그는 시쳇말로 ‘실세’도 ‘고위관계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비록 무관(無冠)이지만 차기대통령의 가능성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수위를 지켜오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언행은 향후 대권구도와 관련, 정치권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고 때로는 그의 과도한 질주를 가로막는 안팎의 견제도 거센 게 현실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2월1일 국민회의 간부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자기처신만 잘하고 당을 외면하거나 등한시하는 것은 올바른 당인의 태도가 아니다”면서 차기지도자의 덕목으로 ‘애당심’을 강조한 것도 이 당무위원을 비롯한 차기 주자들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옷로비의혹 파문, 언론문건 파동 등 세기말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 사건들은 물론 자민련과 합당문제, 신당의 진로문제 등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는 가운데에도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3김청산과 세대교체를 외쳤던 그는 대립과 비능률, 그리고 정치적 냉소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밀레니엄 전환기를 어떤 생각으로 맞고 있을까.

    ‘호랑이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3김 체제 한가운데로 투신한 그가 진흙탕 속의 현실정치에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나몰라라 ‘당을 등한시하거나 자기처신만 잘하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갖고 이위원을 만나 그의 눈에 비친 1999년 말의 한국정치, 그리고 그가 말하는 2000년대의 새로운 정치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2월10일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 근처에 있는 정우빌딩 8층 이위원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이고문은 인터뷰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난맥상에 대해 집권세력의 책임을 인정한 뒤 21세기 국가생존 전략 차원의 ‘정치 대혁신’을 주장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당과 국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 이를 위한 대통령의 2선후퇴, 새로운 비전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정치, 당원들의 민주적 경선에 의한 당지도부 구성과 공직후보 선출 등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이와 같은 발언은, 그가 이론적 당위를 역설하는 학자가 아니라, 정치적 행동의 한가운데 서 있는 당사자라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위원은 특히 인터뷰 말미에 DJP간 합의사항인 총선후 내각제 추진과 관련, “국민 뜻에 반하는 내각제 추진은 불가하며 만일 ‘장기집권 음모 차원의 개헌 추진’이 시도된다면 국민과 함께 강력히 싸워나갈 것”이라는 말로 ‘각오’를 분명히 했다.

    옷사건, 대통령 보좌진 책임 규명돼야

    ‘여(與) - 이럴 줄이야/ 야(野) - 그럴 줄 알았다’

    ‘국민회의 연합공천 실패… 수도권 총선전략 비상’

    이위원의 사무실 입구에 쌓여 있는 이날 조간신문에는 바로 전날(12월9일) 치른 안성-화성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는 관련기사가 비중있게 실려 있었다. 인터뷰에 들어가면서 먼저 재보선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 걱정이 크시겠습니다. 11월에 실시된 서울 8개 지역 구의원 보선에서도 여권이 사실상 완패했는데, 이번에 실시된 안성시장, 화성군수 보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두 지역은 지난 대선에서 여권이 압승했던 지역인데 이렇게 패배한 걸 보면 민심이 단단히 틀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선거 3일 전 안성 정당연설회에 참여해서 찬조연설을 했는데 민심동향이 우리 당에 너무 차가웠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국민의 기대가 높았는데 개혁의 진행이나 성과에 대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또 기대에 비해서 실망이 컸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읽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번 선거결과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와 같은 실망감이 초래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최근 옷로비 사건, 언론대책문건 파동을 비롯해서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국정현안을 다루는 여권의 능력이랄까 도덕성에 관해 우려를 갖게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일종의 난맥상이랄까….

    “여야관계가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극한적인 대결과 투쟁으로 일관하다 보니까 개혁의 추진력, 탄력이 줄어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여러 문제가 시원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자꾸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렇다 보니 모든 책임을 정부여당이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 여당이 좀더 체계적으로, 개혁의 우선순위를 잘 살펴서 올바른 정책과 뛰어난 전략을 동원해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고 봐요.”

    ─ 여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대통령의 눈과 귀 구실을 하는 라인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문제 같습니다. 지난 옷사건에서도 대통령의 눈과 귀 구실을 해야 할 정보·사정 라인이 오히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발견됐습니다. 그런 인사들을 가까이 쓰는 대통령의 인사정책이나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옷로비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말로 진실이 왜곡되고 그들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번에 분명하게 진실을 밝히고 엄정하게 처리해서 큰 교훈으로 삼아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첫째 적재적소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연 학연 혈연 등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역량을 갖춘 인재가 등용하는 것이죠. 그 다음이 신상필벌입니다. 그 사람에게 일할 수 있는 재량 권한 여건을 최대한 확보해주고 일한 결과에 대해서는 냉엄하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 청사진과 일관된 리더십 필요

    ─ 그런 추상 같은 기강이 확립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일관성과 원칙을 잃었기 때문 아닙니까? 지금 국민들은 과연 뭔가 개혁다운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방만한 공기업 구조개혁 문제, 막대한 국가 채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재정개혁 문제, 세부담 형평성 확보를 위한 세제개혁, 의보·국민연금 통합 문제, 최근에는 교사정년 단축문제까지도 왔다갔다 흔들흔들 합니다. 물론 야당이나 공동여당의 다른 파트너가 협조해주지 않거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지만 근본적으로 집권세력의 원칙과 의지가 불분명한 데서 혼선이 일어나고 국민이 실망하게 된 것은 아닌지….

    “지금 개혁의 미래를 국민들이 믿지 못하고, 개혁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개혁을 추진하는 집권세력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총체적으로 분야별로 개혁의 청사진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일관되게 그 목표를 향해서 국민들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한 정책들이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돼야 합니다. 또 그 과정에는 많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합니다.”

    ─ 지금 국민들은 개혁해야 할 부문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정치를 꼽곤 합니다. 정치문화가 가장 잘못돼 있고 문제가 많다, 우리 정치의 낙후성을 바꾸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하는데요, 정치낙후에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민들의 그런 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30여 년 동안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해왔습니다. 국가에서도 주로 관료들이 경제성장을 계획하고 관리하고 주도해왔습니다. 이 시대에 정치집단은 들러리 이상의 큰 역을 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의 위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가가 민간분야를 직접 지도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죠. 민간의 자유와 자율, 창의를 최대한 존중해주고 국가는 전략적인 분야에 투자하고 공정한 질서,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서 그쳐야 합니다. 과거처럼 간섭하려는 관료집단의 욕망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과거 들러리에 불과했던 정치집단은 새로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정치분야의 개혁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국가에 아주 불행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두 김, 새로운 세대에게 길 열어줘야

    ─ 정치개혁은 비단 늦어지고 있다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얽매여 본질적인 개혁과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게 국민들의 인식인 것 같은데….

    “공감합니다. 저는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보다 좀더 근본적인 시각에서 정치개혁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틀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 우리 정치의 틀은 3개의 지역정당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정계개편을 통해 양대정당제로 틀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양대정당은 단순한 지역감정이나 정파적 이해를 위해 투쟁에만 매달리는 수준을 넘어서 정책과 인물을 갖고 경쟁하면서 정권을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제가 굳이 양당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될 때 정책과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경쟁이 가능해지고, 그런 경쟁이 계속되다 보면 지역정당 지역갈등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해결해나가는 정치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정치가 정당과 국회 중심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거기에서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 대화 타협 조정을 해나간다면 해결책이 하나씩 둘씩 나올 수 있는 겁니다.”

    ─ 흔히 우리 정치를 20세기적인 낡은 틀 속에 묶고 있는 것이 3김 정치라고 합니다. 이위원께서는 21세기에도 계속되는 3김정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업화와 민주화가 역동적으로 함께 추구되던 시대의 산물이 3김정치라고 생각합니다. 3김 중에 두 분은 민주화 투쟁의 지도자였고 한 분은 산업화의 지도자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산업화다 민주화다 하는 함성은 귀에서 거의 멀어져가고 있어요. 어느 정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국민들이 새로운 미래, 우리가 가야 할 목표와 비전을 우리 정치에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시대적 요구가 달라졌다지만 그 분들을 대체할 만한 리더십이 국민앞에 등장하지 못하는 데서 혼란과 구태의연한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도 그러한 소명의식 때문에 지난 대선에 출마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는 과정에 우리 역사에 기여했던 3김 시대가 빨리 끝나고 젊은 세대가 새로운 비전과 철학, 세계관을 가지고 한국의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은 5년간 3김 시대의 연장을 선택하셨죠. 이분들이 5년간 국가경영을 마치면 3김 시대는 물리적으로도 더 이상 연장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치인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시대의 정치를 설계하고 준비하고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총선 이후에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국가경영을 책임진 대통령과 총리께서도, 자신들의 철학과 비전 세계관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면서 그 이후에 다음 세대들이 순조롭게 미래를 향해서 국가를 경영해 나갈 수 있는 큰 틀과 길을 열어주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거듭해서 양당제로 개편하자고 강조하시는데 현재까지 지역정당 구조를 규정해온 근본요소는 3김을 정치적 대변인으로 하는 지역감정이었습니다. 그게 온존하는 상태라면 여권이 신당을 창당하거나 합당을 한다고 근본원인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양당제가 되고 정당들이 연구기능을 확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물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수준은 매우 높지 않습니까. 두 당이 감정만 가지고 밤낮 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 사회 복지 교육 문화 환경 이런 정책을 놓고 계속해서 서로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 현재의 여야정당구조에서 양당제라면 결국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합당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자민련 지도부의 태도가 왔다갔다 해, 국민들은 도대체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자민련과의 통합이 진통을 겪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허허 웃으며)글쎄요, 바둑 5급이 놓는 수는 의도가 보이는데 9단이 놓는 수는 왜 거기에 놓았는지 쉽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민련의 진정한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없죠. 국민들도 그래서 좀 답답할 테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 목표가 양당제라 해도 현실이 따라주느냐는 별개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자민련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분들대로 거쳐야 할 절차, 또 풀어야 할 문제가 있을 테니까 여건이 성숙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죠. 궁극적으로는 자민련의 지도자들이 대통합에 동의해주실 것으로 믿고 있어요.”

    이위원이 말하는 ‘절차’와 ‘풀어야 할 문제’는 물론 자민련 내부의 만만찮은 반대의견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문제, 그리고 이와 연관된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자민련총재의 통합신당에서의 위상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민련을 합당 쪽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특히 JP(김총리)를 통합신당의 총재로 ‘모실’ 수 있느냐와 JP에 총선공천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합당에 관해서는 대체로 뜻이 일치하는 국민회의 내부에서도 이 대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이고문에게 이에 관한 의견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이위원은 단계론을 전제하긴 했지만 의외로 선선히 ‘JP 총재’를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현단계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자민련과의 통합이며 이를 위해서는 ‘JP 총재’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역시 차세대 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명되는 김근태 부총재가 ‘16대 총선에서 여권이 안정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JP총재론’에 ‘총대’를 멘 직후여서 이위원의 발언은 특히 관심을 끌었다.

    ‘JP 총재’ 안 될 것 없다

    ─ 합당을 위해서라면 JP를 총재로 ‘모실’ 각오도 돼 있습니까? 당내에서는 “JP를 총재로 받드는 것만은 못 하겠다” “JP를 총재로 내세워 과연 총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의견도 제법 있는 것 같은데요.

    “새로 만들어지는 당은 지금까지의 정당과는 많이 달라야 합니다. 우선 대중적인 정당이 돼야 합니다. 말하자면 정당이 표방하는 큰 이념·정책·노선에 호응하는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고, 그 대중당원들로부터 생명력이 나오는, 상향식 민주적 대중정당의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당원들의 의지에 따라 지도부도 구성되고 노선도 설정돼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당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또 대통합의 정치적 결단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총재를 누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특히 누구는 될 수 있고 누구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전제에 저는 반대합니다. 당을 이끄는 데 최선의 인물이라면 누구든지 지도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양당제의 틀을 만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중적인 상향식 민주정당은 시간을 두고 차츰 발전시켜 나가면 되는 것이죠. 우선 양당제의 큰 틀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11월25일 신당창당준비위원회에서는 ‘국민적 개혁정당’을 표방했습니다. 그런데도 신당이 과연 그런 정당이냐에 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호남정당’ ‘DJ당’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사실인데요, 한마디로 신당이 형성과정에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랄 수 있겠죠. 그런 인식이 왜 생겨날까요?

    신당창당의 과정과 방식에 문제점은 없다고 보십니까?

    “현재는 국민회의와 재야가 모여서 신당을 만들어나가는 도중입니다. 이제 겨우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됐을 뿐 기초가 되는 법정지구당 창당 절차도 아직 밟지 못하고 있죠. 그것이 다 되고 나서 중앙당이 창당되는 먼 과정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자민련이 대통합의 결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고요. 그렇다 보니까 국민들은 이것이 과연 전국정당이냐는 생각을 갖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앞으로 자민련도 참여하는 대통합으로 나아가고, 또 본격적인 지구당 창당, 중앙당 창당, 지도부 건설, 정당운영 등이 진행되면, 이런 과정에 대중이 참여하고 당원들의 의지가 기초가 되어 지도부가 결성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기대가 모이고 신뢰도 생겨날 겁니다.”

    ─ 이위원은 지난 9월 ‘1인 정당’을 비판했습니다. 내각제론자들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1인정치의 폐단을 지적하는데, 이위원이 말하는 1인정당 체제의 대표적 폐해는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합니까?

    “대통령제의 모델국가는 미국인데요, 미국은 정당이 대통령을 만들어서 백악관으로 보냅니다. 또 상원·하원 의원을 만들어서 의회로 보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할 일과 의회가 할 일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통해서 국가경영에 참여합니다. 의회는 예산, 법률, 그 밖에 의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권한을 그야말로 행정부와는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수행해냅니다. 정당이 대통령도 만들고 의원을 만들어서 국회를 구성해서 그런지 대통령이 정당을 지배하고 정당을 통해서 의회를 지배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빨리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서 방대한 행정력을 가지고 국가를 차원 높게 경영하면 됩니다. 정당과 국회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인 욕구, 또 다양한 목소리가 마치 용광로에서 쇳물이 녹는 것처럼 복잡한 토론, 대화, 협상, 투쟁 등을 거쳐 해결되는 질그릇입니다. 그런 과정에 대통령이 직접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정당과 국회는 복잡하고 뜨거운 정치과정을 수행해내는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크고 작은 지도자들이 성장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우리 국정운영 시스템은, 대통령이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합니다. 왜 조그마한 정치적 갈등 때문에 대통령이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발이 묶여야 합니까. 대통령의 불행은 곧 국가의 불행으로 직결되기 십상인데 말입니다.”

    당정분리, 대통령은 국정전념해야

    이고문은 ‘1인정당’ 시스템의 대안으로 “대통령은 행정부를 통한 국정에 전념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의 갈등·조정 문제는 당과 국회가 자율적·독립적으로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는 신당창당 논의과정에 물밑에서 맴돌아온 김대통령의 당적이탈 또는 명예총재로의 ‘2선후퇴론’을 한층 분명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릴 소지가 있는 언급이다. 그러니 김대통령의 2선후퇴론에 관해 직접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위원은 이에 대해 “대통령의 탈당은 옳지 않다”고 반대하면서도 (대통령이) 총재직 또는 당권을 쥐고 정당과 국회를 컨트롤하는 현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의회를 이끄는 리더, 즉 원내총무가 정치적 대화와 타협을 이끄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결국 지금 여당과 여당의원들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대통령의 여당총재 위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위원의 언급은 대통령이 여당에서 탈당하거나 제2선으로 후퇴, 국정에 전념하고 국회나 당은 이쪽에 맡겨야 한다는 이른바 ‘당정분리론’과 맥이 닿는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당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동교동계 인사들은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없는 여당이 있을 수 있느냐, 또 DJ 자체가 개혁의 상징이고, 득표에 가장 큰 무기인 현실에 DJ가 정치과정의 2선으로 후퇴하면 당과 개혁을 누가 이끄느냐, 선거에서 고정표마저 흔들릴 것이다”라는 걱정을 합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탈당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그 당의 지도자임에 틀림 없고 동시에 국가의 지도자 아닙니까. 내가 하고픈 말은, 사회의 복잡한 대립과 갈등 양상을 띠고 있는 여러 정치적인 욕구를 조정하고 타협해내는 것은 정당과 국회가 할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법률과 예산을 만들어내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일들을 의원들과 정당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그 과정이 멈추게 됩니다. 우리 국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제때 정치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사회의 갈등은 더 깊어지고 사회의 병리현상은 더 심각해지고 그 결과 정치를 불신하게 되는 거죠. 정치과정이 생동감 있게 돌아가려면 여기에 자유와 자율을 줘야 합니다. 대통령과 의회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협력관계라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지금은 그러한 정치문화를 필요로 하는 수준에 와 있다고 나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 김대통령의 탈당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정당의 가부장으로 존재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죠?

    “당의 총재가 당을 권위주의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지금 야당도 마찬가지예요. 야당이고 여당이고 총재가 되는 것이 마치 당권을 잡는 것이고, 당권을 잡으면 자기가 독단적으로 당론을 결정하면서 당 소속의원들을 정치적 병사로 지휘 명령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하는, 이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언제까지 가지고 갈 겁니까. 당 총재가 됐든 최고위원이 됐든 당의 지도자가 당을 권위주의적으로 이끄는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의회에서 수많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 서로 부딪치고 논쟁합니다. 또 어떤 법률안이 됐건 어떤 예산안이 됐건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잖습니까. 그러한 문제를 놓고 최선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이 복잡한 정치과정을, 함부로 당론이라는 걸 정해놓고 소속의원들을 마치 전투에 동원하는 병사처럼 휘몰아 가지고 자기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목표에 동원한다면 어디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나올 수 있겠느냐 이거죠.

    이위원은 잠시 야당의 1인 지배적 구조에도 화살을 겨누었지만 답변의 긴장감은 역시 여당의 대통령 1인 지배구조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 그래서 좀더 직설적으로 김대통령의 총재직 포기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 제 질문은, 지금 대통령이 행정부에서 막강한 권한도 쥐고 당의 창업주로서 총재라는 전권을 쥐고 있으니까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는데, 김대통령이 총재직을 내놓고 새로운 총재 또는 어떤 이름이 됐건 정당운영과 의회활동을 이끄는 누군가를 탄생시켜야 하느냐는 겁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지도자이고 당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간접적으로 유연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유기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총재직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당과 유기적으로 협조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에서는 국회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야당총재가 대통령을 만나서 담판을 하겠다고 합니다. 또 대통령도 당연히 야당총재를 만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닙니까? 국회 안에서 여야 간에 해결을 하는 것이 삼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하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 상대당 지도자와 만나서 문제를 풀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당과 국회로 정치의 중심이 옮겨오면 의회에 있는 양당 지도자들, 원내총무가 사령관으로서 정치적 대화·타협의 최고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이면 당과 김대통령의 관계에 관한 이위원의 주장은 명확해진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새로운 여당의 리더 또는 지도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점이다. 새정치국민회의를 포함하여 종래의 정당들은 3김씨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고 ‘깨지기’를 밥 먹듯 해왔기에 3김이 곧 정당이고, 리더는 당연히 3김이고, 지도부도 당연히 3김에 의해 꾸려졌다.

    그러나 여권이 추진중인 신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국민회의를 주축으로 하고, 김종필 총리가 만든 자민련의 합당을 잠재적인 또 하나의 축으로 하면서도 관계자들은 ‘非(NO) 3김당’ ‘非 DJ 당’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적어도 ‘탈 3김’ ‘탈 DJ’를 확고히 하겠다는 신당추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리더 또는 지도부를 어떻게 탄생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명확히 정리된 의견이 없다. 당내에서는 동교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과도기적으로 당연히 DJ가 총재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적 경선’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위원은 어떤 생각일까.

    신당지도부, 예외없이 경선해야

    ─ 이위원은 정당의 민주적 운영과 경선을 강조해오셨는데요, 그렇다면 새로 구성되는 당 지도부도 민주적으로 경선을 거친 후 구성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거기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편법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선절차를 마련해 예외없이 관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 앞에서 JP총재도 가능하다는 식의 얘기를 하신 것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겁니까. 역시 경선을 거쳐야 총재가 된다는 겁니까?

    “신당 총재가 누구여야 하느냐, 이런 것 이전에 신당의 지도부 자체를 예외없이 민주적 경선에 의해서 뽑는다는 과정이 준수된다면 총재가 누가 되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당이란 물론 크게 보면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동지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도 다양한 세력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꼭 자기와 같은 과거의 경험, 자기와 같은 사고의 틀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경선결과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다고 해서 자기가 소외되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상황이 변화하면 새로운 선택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현대 정당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 신당 지도부를 경선으로 뽑을 경우 이위원은 경선에 나설 용의가 있으십니까?

    “그것은 별개 문제죠. 현재 저는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저의 모든 역량을 바쳐 당에 기여하겠다는 것밖에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당의 지도부 경선에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는 지금 제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대통합의 물꼬가 아직 트이지도 않은 상황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위원은 신당 지도부 구성방식에 관해 한마디로 ‘민주적 경선’이라는 분명한 견해를 밝혔다. 이를 ‘JP총재 수용론’과 연관지어 본다면, “민주적 경선 과정을 거친다면 긴요한 ‘대통합’의 성사 차원에서 JP총재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 총선후보 결정과 관련해서도, 지금은 총재가 거의 임명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민주적’ 원칙에 비춰본다면 여기도 역시 경선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실여건을 들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그것도 앞으로 중론을 모아서 현실에 맞는 절차와 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원칙은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민들의 지지, 지방 기초당원들의 의지, 여기에 부합되는 인물이 후보가 될 수 있는 경선규정이 마련돼야 합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규정이 나와야 해요. 다만 지금 우리에게는 밑에서 시작되는 민주정당을 가져본 전통이나 경험이 없잖아요. 새로운 세기에, 3김시대 이후에 국가경영에 튼튼한 주체가 되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러한 시대적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 과정이 어렵고 부작용이 우려된다 하더라도 이건 반드시 관철해 나가야 합니다. 다만 부작용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완책을 펼치면 돼요.”

    총선 후 헌법논의, 대통령 중임제 필요

    ─ 지금 야당에는 이회창씨라는 비교적 뚜렷한 차기 주도 인물이 있습니다. 반면 여권신당은 앞으로 차기를 이끌어갈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새로운 리더십 또는 리더군이라고 할까 그러한 것이 성장하고 경쟁해서 일정한 모습을 드러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치에 안정적인 틀이 형성되고 정치 중심이 정당과 의회로 옮겨오면 정치적인 인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대 정치에서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정치지도력은 고착돼 있는 게 아니고 시대적 요청과 국민의 여망에 의해 무서운 속도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야당에는 누가 있다, 여당에는 없다는 말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오래 전부터 군림하고 있으면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부상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시골에서 주지사를 하던 사람, 퇴역한 배우가 국민들의 여망을 받들고 한 시대의 소명을 따를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지도자로 일어선 것이죠. 우리나라 정치에 3김 이후에 뚜렷한 인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인물이 클 수 없는 척박한 정치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정치과정이 활성화하고 능력에 따라 크고 작은 지도자들이 성장하게 되면 우리라고 왜 뛰어난 지도자들이 숲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신당이 대중적이고 상향식 민주정당으로 성장할 틀을 잡고 정치과정이 활성화하면,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인물이 성장하는 데 2~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 내각제 개헌 문제와 관련해서 현재 DJP간의 합의는 내각제를 포기한 게 아니라 유보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하겠지만, 어쨌든 총선 후 다시 추진하겠다는 걸로 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총선 후에 내각제 개헌 추진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우리나라에는 내각제가 맞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제를 더 순수하게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생각일 따름이고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국민의 주권적인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니까요. 저는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국민들이 직접 정부를 선택하는 대통령제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내각제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이론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계실 것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이 선택할 문제기 때문에 내각제 추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 이위원은 11월22일 ‘21세기 국가경쟁력연구회’ 조찬세미나에서 개헌문제와 관련, “16대 총선 이후 여야를 포함한 헌법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21세기에 걸맞은 헌법체계를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헌법심의위 구성을 제안한 정확한 의미와 의도는 무엇입니까?

    “헌법도 한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수정 발전해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기본적으로 냉전시대의 헌법입니다. 이제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이념과 가치에 의해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전환되는 시대, 그래서 우리도 하루 빨리 한반도에서 냉전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헌법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우리 헌법은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경제 헌법입니다. 이제는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습니까. 또 산업문명에서 지식문명으로 전환되고, 경제에 있어서 국경이 점점 엷어지고 무너지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그러한 시대에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경제헌법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헌법을 개정한 것이 6·29선언 직후인데, 그때는 각 정파간에 어떻게 하든지 정권획득 기회를 갖기 위해서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해놓았어요. 국회는 임기가 4년이구요. 그래서 권력운영 주기가 맞지를 않습니다. 국민이 정권을 선택하고 나면 의회의 세력균형을 바꿀 기회가 동시에 주어져야 합니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의회의석의 반을 바꾸고 하원의 경우에는 중간에 반을 바꾸잖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고 나면 억지로 의석균형을 뒤바꾸느라 큰 홍역을 치르고 그것 때문에 정치과정이 마비되어버립니다. 이 문제도 시급하게 수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로 넘어가고 있는데 이 과제를 자꾸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각제 추진되면 투쟁하겠다

    ─ 역시 법률가 출신다운 설명이신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것 같은데요.

    “예, 그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16대 총선 후에 국회에 초정파적이고 범국민적인 헌법위원회를 구성하여 헌법의 수정 발전을 논의하자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내에 정말로 21세기에 이 국가를 효율적으로 경영해 나갈 수 있고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헌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각제 문제는 그걸 주장하는 분들이 있고 그것 때문에 큰 갈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 위원회에서 필요하다면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국민투표를 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최종적인 헌법개정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DJP 간에 ‘총선후 내각제 개헌’ 합의가 이뤄진 것은 장기집권을 위한 음모”라면서 이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총재가 우려한 것처럼 DJP 간에 총선 후에 진짜로 내각제 개헌이 추진되고, 국민의 뜻과 다소 안 맞더라도 내각제 개헌을 통해 권력을 더 연장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분(이총재)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제나 내각제에 대해서 저는 오래 전부터 시종일관 분명한 주장을 말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러지 못했죠. 단언하건대 국민의 뜻에 반해서 내각제가 추진되지는 못할 겁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이총재보다 내가 먼저, 더 강력하게 국민과 함께 싸울 겁니다. 그건 그분이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에 관해서는 메아리 없는 일방적인 시혜 베풀기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2000년에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대북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우리의 대북통일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 통일로 접근해가야 한다는 점에서 대북 포용정책은 근본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정책이 제시돼야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에도 여러 가지 군사도발이 있었는데 우리는 북한에 대해 군사문제에 관한 한 명확한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북한의 인권문제입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현실적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잖습니까. 이젠 우리가 북한에 대해 인류사회가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인권의 수준, 절차, 원칙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대응해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식량원조를 한다든지, 경제교류협력을 통해서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정당성도 확보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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