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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원, 또 불거진 집안싸움

일부 교수들 한상진 원장 임기 연장 추진에 반발…“급진적 개혁으로 갈등 폭발” 관측도

  • 입력2005-05-30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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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문화연구원, 또 불거진 집안싸움
    DJ정권 핵심 브레인 중 하나’로 꼽혀온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 한상진 원장(55)이 뉴스의 추적 대상이 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대표로서의 그에 대한 논란도 뜨겁지만 정문연 원장으로서의 ‘임기연장’ 표명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찮다.

    김정숙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11월7일 국회 교육위의 교육부 국감에서 일제히 “교육부로부터 승인받은 임기가 2년임에도 1년을 더 채우겠다는 발상은 과욕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원장은 “정문연 정관상 원장의 임기는 3년이므로 임기를 다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임기연장 문제는 일단의 정문연 소속 교수들이 집단으로 ‘한상진 원장 임기연장에 관한 우리의 견해’란 소청서를 11월6일 국회를 비롯, 국무총리 교육부장관 등에 보냄으로써 표면화됐다.

    한원장은 지난 98년 12월26일 정문연 제10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재직(사회학과)중이던 서울대로부터 2년간 휴직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휴직만료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지난 9월23일 정문연 상급기관인 교육부에 휴직연장 신청을 낸 것. 이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곧 남은 1년의 임기를 계속 보장받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부 정문연 교수들은 ‘컴백 서울대’를 외치며 한원장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정문연 선에서 그칠 수도 있었던 이 문제가 외부로까지 불거진 속사정은 뭘까.

    자질 미달 사례 뽑아 정면 공격

    교수들의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정문연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가능한 임기연장 절차를 무시하고 한원장이 독단으로 ‘정문연이 1년간 더 원장으로 재임하기를 바란다’는 공문을 교육부에 보냈다는 것.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이번 논란의 이면엔 의외로 한원장과 교수들간의 뿌리깊은 갈등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교수들의 입장은 한마디로 한원장이 정문연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원장에 대해 쌓이고 쌓인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 보면 된다” “한원장은 취임 후 불과 1년6개월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조직개편을 단행해 조직의 일관성을 해치고 교수들간 갈등을 조장했다.” 정문연 H교수는 “외부 이목을 고려해 2년간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상당수 교수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정문연 교수들은 그 근거로 지난 10월20∼24일 전체 교수 51명 중 현 재직교수 49명에 배포, 32명이 응답한 설문지 조사를 든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교수 중 27명이 한원장의 직무수행능력에 ‘부정적’이라 답했으며 29명이 원장으로서 ‘부적합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정문연 전체 교수 중 절반이 넘는 수치.

    그러나 한원장의 말은 다르다. “문항이나 조사방법 면에서 설문조사의 객관성이 떨어진다. 이번 논란은 연구소와 대학원을 분리하는 등 한국학전문연구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일련의 조직개편 추진과정에서 효율적인 인력 재배치에 불만을 느낀 일부 (기득권) 교수들이 임기연장 문제를 걸고 넘어져 촉발한 것일 뿐이다.” 그는 임기연장과 관련해서도 “정문연 법률고문에게 자문한 결과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도 정관이 3년 임기를 못박은 이상 법적 하자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수들은 당초 소청서에 첨부한 ‘추가자료’를 통해 한원장의 ‘자질’을 몇가지 사례로 문제삼고 있다. 11월9일 ‘주간동아’가 입수한 이 자료에는 교수들이 ‘한원장의 과오’라 주장하는 사항들이 열거돼 있다.

    우선 교수들은 징계문제를 거론한다. 10월 초 정문연 대학원장인 L교수가 사퇴하자 그 자리를 겸직한 한원장이 관례상 원장의 차하급자(대학원장)가 맡게 돼 있는 인사(징계)위원장까지 맡아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

    교수들은 일례로 10월 말 Y교수(55)와 H교수(41)가 설문조사와 관련한 언쟁을 벌이다 빚어진 폭행사건을 심각한 ‘폭력사태’로 간주해 인사(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결정이 지나친 처사라고 지적한다. 정문연의 한 교수는 “과거에도 정문연 내에서 이같은 ‘사소한 주먹다툼’이 때때로 벌어졌지만 한번도 정식으로 문제삼은 적은 없다. 유독 이번만 그냥 넘기지 않은 이유는 가해자인 Y교수와 한원장간의 해묵은 반목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수들은 또 한원장이 공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한원장이 각종 외부강연과 TV토론 참여, 여당 주최 행사 참여 등 ‘개인적’인 일로 이석이 잦다는 것. 또 정문연 원장 명의로 따낸 연구프로젝트를 한원장이 개인 연구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원장의 해명은 이런 주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는 “인사위원장은 국책 연구기관인 정문연의 특수한 조직 특성상 겸하게 된 것이며 프로젝트 운운은 사실무근이다. 그리고 원장은 관리자이지만 정문연 발전을 위해선 얼마든지 활발한 대외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간 무료였던 정문연 교수-직원의 사택 임대를 경영혁신 차원에서 유료화한 결과 복지문제로 인한 내부 불만이 원장 퇴진으로까지 확대된 것 같다”며 “원장으로서 모든 업무수행에 있어 절차의 투명성을 기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한원장이 유신정권 시절인 1978년 개원해 5, 6공을 거치며 정권의 이데올로기 교육기관으로 전락해온 정문연의 ‘구태’를 일소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은 정문연내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실제 ‘주간동아’가 ‘1990년 3월부터 2000년 9월까지 정해진 기한이 지난 뒤 제출된 정문연의 연구과제 현황’ 자료를 파악한 결과 한원장 취임 이후엔 기한을 넘겨 제출한 과제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이는 연구기관 기능을 활성화하고 정문연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이른바 근무태만과 저조한 연구실적에 메스를 가한 ‘혁신’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정문연의 ‘제2탄생’을 위한 이런 ‘내부개혁’이 ‘급진적’으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개혁의 이름으로’ 일부 무리가 있었으며 이것이 최근의 논란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한원장의 적극적인 개혁추진이 개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측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문연의 위상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란 한계로 학문공동체로서의 자율성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이젠 역량있는 학생들의 지원마저 저조해 존폐 위기감이 상당하다. 이런 판국에 개혁이 얼마나 먹혀들겠는가.” 한 정문연 교수의 자조 섞인 이 말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정문연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혼자 하는 개혁이나 일시적 변화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줄곧 전체 교수 의견을 수렴해왔다”는 한원장의 자부심이 현실에서 적잖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한원장이 오는 12월25일 예정된 임기만료 전까지 교육부의 승인을 얻어 원장직을 이어갈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아직 서울대측의 공식적 답변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내홍이 ‘현명한 결론’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을 경우 지난 22년간 ‘태생적 한계’를 원죄처럼 지녀온 정문연에 또다른 큰 상처를 남길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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