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호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꿔야

  • 이철기 동국대 교수·국제관계학

    입력2007-01-11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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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평화문제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 간의 군사적 문제의 해결이며, 그것은 주한미군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에 달려 있다. 주한미군과 한반도 군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의 해결 없이 군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한미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
    주한미군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주한미군 기지는 금단의 땅이고 주한미군 문제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평화의 사도’ ‘민주주의의 수호자’ ‘대북 억지력’ 등으로 불려온 주한미군은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존재해 왔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이적행위이고 국가보안법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우리 사회는 깊은 도그마에 빠져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거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려 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금기사항이다. 주한미군이 없으면 북한이 곧 쳐들어올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또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늘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과 관성적 생각들은 지난 50여 년간 줄곧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감히 이 금기를 깬 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다. 작년 4월 육 공군 장성들의 진급 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북한이 최근 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자 냉전시대에 고착화된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여론과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금기의 영역이었던 주한미군의 장래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기의 영역을 깬 김대통령 발언

    6·25 한국전쟁 당시 최대 32만7000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몇 차례에 걸친 감축 끝에 현재는 3만7000명 가량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주력은 미보병 2사단이 주축인 미8군과 제8·제51전투비행단으로 구성된 제7공군이다. 4성장군인 주한미군사령관은 모두 6개의 직위를 겸직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해서 한미연합사 사령관, 유엔군 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 미8군 사령관, 유엔지상군 구성군 사령관이 그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직에 속한다.



    게다가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戰時) 작전통제권마저 가지고 있다. 1994년 12월1일부터 평시(平時) 작전통제권은 한국군에게 넘어오긴 했지만, 이 또한 형식적인 이양에 불과하다. 한미연합사령관으로서 주한미군사령관은 전쟁수행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평시에도 전시작전계획의 수립,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주관, 조기경보와 전략 및 전투정보 제공을 위한 연합군사정보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한미연합군의 경계태세 수준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미8군은 140여대의 신형 M1전차와 170여대의 브래들리 장갑차를 비롯해 30여문의 155mm 자주곡사포, 30여문의 다연장 로켓, 패트리어트를 비롯한 각종 지대공 및 지대지 미사일과 우수한 전투능력을 갖춘 70여대의 AH-64헬기로 무장하고 있다.

    주한 미공군은 70여대의 F-16 등 최신예 전투기와 20여대의 A-10 대전차 공격기, U-2기를 비롯한 각종 정보수집기 및 정찰기, 수송기 등 10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같은 F-16 전투기라도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F-16은 무기체제와 질적인 면에서 한국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KF-16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방부는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의 79% 수준이며, 그 나머지를 주한미군이 보충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주한미군의 전력이 한미연합군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존재 의미는 자체의 막강한 전력보다도, 태평양함대와 본토의 증원군을 투입하고 미국이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군사개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도 언제든지 자국 군대를 사용하여 외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헌법에 군대의 해외 파병권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점을 남용해온 것이다. 의회는 1973년에야 비로소 의회의 승인 없이는 60일 이내에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쟁권법(War Powers Act)을 통과시킨 바 있다.

    우리는 이 주한미군을 위해 직접 방위분담금으로 매년 4억달러 가량을 미국에 지불하고 있다. 기지 임대료 등 직간접 비용을 모두 포함할 경우 그 비용은 연간 3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국방비의 20%에 가까운 금액이다.

    ‘뜨거운 감자’ 주한미군

    ‘뜨거운 감자’인 주한미군 문제는 이제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주한미군의 장래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종전의 입장을 더 이상 고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설득력도 명분도 없다. 주한미군의 장래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남북한과 미국 3자간에 어떤 식으로든 일정한 협상과 합의를 통해 재정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탈냉전 후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들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특히 남북한의 군축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선결과제이다. 현실적으로 주한미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남북간의 균형 군축이 불가능하다. 이제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과 성격 변화 그리고 감축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첫째, 주한미군 문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경우, 정전체제에 근거한 유엔사령부는 해체될 것이고 주한미군의 기능과 성격도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정전협정 제60항은 후속 정치회담에서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문제’를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리고 있는 4자회담에서 어차피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한과 미국은 이미 4자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기로 묵시적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요의제로 채택하자는 북한의 요구가 거부되기는 했지만,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데는 3자간에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4자회담의 두 개 분과 가운데 ‘한반도 긴장완화문제분과’에서 다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둘째, 예상되는 북미관계 개선과 북미수교는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과 성격 변화를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 개선이 양자간의 적대관계 해소를 의미한다면, 북한을 겨냥하고 있는 군사적 실체인 주한미군의 변화와 조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미국은 이미 1994년 10월에 체결된 ‘북미기본합의문’에서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간다”고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장래는 북미간의 현안문제가 다루어질 북미고위급회담에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남북한간에 군축협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한미군문제의 해결이 선결과제다. 군사력이 한국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 더하여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미군이 남쪽에 버티고 있고 유사시 수십만의 증원군이 언제라도 동원될 수 있는 군사력의 심한 불균형 상태에서는 북한이 군축협상에 응할 리가 없다. 남북한의 상호 균형군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군이 적어도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북한이 한국과 상호 군축협상에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위협을 해소시켜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미국의 핵 위협이며,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으로부터의 위협이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의 핵위협은 한국 내에 배치되었던 미국 전술핵무기의 철수와 1994년 10월 채택한 북미기본합의문을 통해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및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는 ‘소극적 안보보장(NSA: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받아냄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남은 문제는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으로 제기되는 북한의 안보딜레마를 해결해 주지 않고는 한반도의 군축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북한의 달라진 시각

    그런데 우리는, 북한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시각과 입장이 달라졌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의 단골메뉴였다. 북한의 대남제안과 남북협상에서 언제나 빠지는 법이 없었다. 반면 한국으로서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던 북한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7년 7월23일에 정부성명 형태로 발표한 ‘단계적 다국적 군축협상’ 제의에서다. 이전의 제안들이 주한미군의 무조건적 철수를 주장하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데 비해,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남북한 군사력의 ‘단계적 감축’을 제안하고 있다.

    북한은 이어 1988년 11월7일에 제안한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포괄적 평화방안’에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핵무기는 1990년 말까지 2단계에 걸쳐 철수하되, 1단계(1989년 말까지)에는 북위 35도 30분 이북지역 배치 핵무기를 철수하며, 2단계(1990년 말까지)에는 그 이남지역의 핵무기를 철수시킴 ▲주한미군병력은 1991년 말까지 3단계로 나누어 철수하되, 1단계(1989년 말까지)에 미군사령부와 지상군을 북위 35도 30분 이남으로 일단 철수하며, 2단계(1990년 말까지)에는 지상군 전체를 철수시키며, 3단계(1991년 말까지)에는 해·공군을 완전 철수시킴 ▲주한미군 철수와 더불어 새로운 무력을 투입하거나 군사장비를 반입하지 않음 ▲주한미군 철수시 미군 소유의 일체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한국에 양도치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1990년 5월31일, 중앙인민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정무원 연합회의에서 채택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에서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제안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를 더 이상 남북한 군축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철수방법도 ‘상호 노력’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미군의 남한 내 주둔을 상당기간 용인할 의사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90년부터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 과정에, 북한은 “남북한 군비 감축의 진전에 따라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와 같은 달라진 태도는 냉전체제가 종식된 90년대 이후부터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해 북한의 고위관리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4월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이 무력을 10만으로 축소한 후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리삼노 군축평화연구소 고문도 1992년 6월 하와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주한미군은 주둔하되 남북의 통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입장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혀, 적어도 통일 때까지는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한다는 발언을 했다.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1996년 4월 조지아대 학술회의에서 “북·미 양측이 평화조약을 모색하는 동안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해 5월 리찬복 북한군 판문점대표는 “주한미군의 역할은 대북억제에서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 이것은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 달라졌음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간의 군비경쟁과 체제경쟁에서 이미 뒤처지기 시작한 북한으로서는 주한미군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제네바 북·미 핵협상의 북한측 수석대표였던 강석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화체제 아래에서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을 방지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남한의 북침도 방지하는 한반도 전체의 안보 보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입장 변화에는 이 밖에도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의 대외정책 및 군사전략상 상당한 변화가 수반돼야 비로소 가능하므로 북한 입장에서는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군의 자주적인 군 개편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비자주성과 대미 종속성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는 데 근거가 된다. 또한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군사 대국화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북한의 이러한 주한미군에 대한 달라진 시각은 4자회담 과정에 주한미군 ‘철수’라는 용어 대신 ‘지위’와 ‘처리’라고 표현한 데서도 엿보인다.

    결국 북한은 주한미군을 ‘북한에 위협적이지 않은 미군’으로 변화시키는 선에서 존재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두 가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유엔사령부의 해체를 통해 주한미군의 성격과 지위를 중립적으로 전환시키려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이 자신을 군사적으로 크게 위협하지 않는 수준, 다시 말해서 지상병력의 일부 철수와 후방으로의 재배치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주한미군의 장래에 대한 한국의 입장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변하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것조차 거부하는 경직되고 비현실적인 자세로 일관해 온 과거 정권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우선 작년 4월 파문을 일으켰던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는 김대통령의 발언은 달라진 우리 정부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 뒤에야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종래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입장은 그 후 보다 더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작년 4월 대통령 발언 파문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잘 나타나 있다.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때, 한반도 모든 군대의 구조나 배치문제에 대해 논의가 가능하다. 이때에 남북한의 군사력과 주한미군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4자회담에 임하는 한국과 미국의 공동 입장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이라도 한반도 전체 군대의 감축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지위 변경, 재배치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평화체제 논의과정에서 한반도에 존재하는 전체 군사력인 인민군과 국군, 주한미군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무튼 우리 정부의 이러한 유연하고 열린 시각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군축문제 진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남북한 당국의 입장을 종합해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남북한의 군축문제와 함께 주한미군 문제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 3자간에 주한미군의 장래에 대해 어떤 합의점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협상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와 신경전이 예상된다. 북한은 협상테이블에 나와서는 계속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북한이 쓸 수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어떤 형태로든 타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과 감축 그리고 재배치 선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를 양해할 가능성이 있다. 북·미관계 개선이 최우선적 목표인 현실에서,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미국과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고, 북한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상징적으로 일부 지상전력만 유지해야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장래와 관련해 어떤 대안이 있고, 어떠한 타협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몇 가지 대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완전 철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미국의 세계전략 및 동북아정책이 변화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98년에 발표된 미국의 새로운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R)는 주한미군을 비롯해 동아시아 미군의 유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을 한국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는 안전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현실에서, 남북한과 미국 3자 가운데 누구도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원치 않고 있다.

    둘째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통해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꾀하면서, 지상전력의 일부만을 철수하는 선에서 현 수준의 전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이며,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군축을 진행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는 상징적 의미의 일부 지상전력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존의 한미 군사동맹조약 유지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용인하는 것이 포함된다. 미국의 상당한 정책 변경을 필요로 하지만 3자간에 타협 가능성이 있는 방안이다.

    주한미군의 장래와 개편은 군축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해 한국의 군사주권을 회복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북한의 수용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긴장완화에 이바지하도록 하면서도 중립적인 지위와 성격으로 개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을 상징적인 의미의 일부 지상전력만을 유지하는 선에서 평화유지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90년대부터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변화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평화유지군이 단순히 주한미군의 중립적인 성격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유엔평화유지군 형태를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 정부에서도 비무장지대(DMZ) 내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는 방안에 대해 내부적인 검토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튼 현재 중무장지대화되어 있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하고 여기에 주한미군이 일부 참여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주한미군의 다국적 평화유지군 개편을 주도적으로 제기해야

    평화유지군은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유엔과는 별도로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구성하는 것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유엔의 결의에 따라 탄생하며, ‘안보리결의 341’에 의해 유엔 사무총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형태이다. 반면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남북한과 미국 그리고 관련국가들간의 합의에 의해 탄생한 독립적인 다국적 군대이다. 한반도에서는 후자의 형태가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유지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며, 그 법적 근거는 앞으로 체결될 ‘평화협정’에 마련하면 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군대로 구성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비무장지대에 주둔하면서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 역할과 평화체제의 유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게 될 비무장지대는 평화지대화한다. 구체적으로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중무기들의 철수와 진지들의 폐쇄를 통한 완전한 비무장지대화 ▲대인지뢰의 전면 폐기를 규정한 ‘오타와협약’에의 남북한 동시 가입을 통한 비무장지대 내 지뢰의 완전 제거 ▲비무장지대를 ‘생태보존지역’으로 설정하여 국제적인 관광지역화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공동자유이용지역’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감군이 이루어졌다. 한때 32만7000명이던 것이 지금은 약 3만7000명 수준으로 감축된 상태다. 주한미군의 감축이 이루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문제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간의 군사적 문제의 해결이며, 그것은 주한미군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에 달려 있다. 주한미군과 한반도 군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의 해결 없이 군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한미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과 미국간의 비밀협상에 의해 주한미군의 장래와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주한미군의 다국적 평화유지군으로의 개편을 주도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새천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성역’이자 ‘아킬레스건’인 주한미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달려 있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꾸자.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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