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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서울 강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하루

  • 곽희자 자유기고가

서울 강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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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과목으로 영어·수학은 당연하고 국어·과학은 겨울방학부터 시작한다. 영어는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문법 위주로 중학교 과정을 배운다. 교과서 대신 1학년 교과과정에 나오는 문법이나 어휘, 독해 등을 배우기 때문에 정확히 몇 학년 과정이라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수학의 경우는 교과 단계별 수업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단계를 알 수 있었는데 빠른 아이들은 5학년 때 이미 중학교 과정에 들어간다.

“수학은 사고력 확장에 목적을 두는 학문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기본과정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과정의 이해 없이 답을 찾아내는 방법만 가르치다 보니 문제를 조금만 바꿔놓아도 풀지를 못해요. 그런데 부모는 중학교 2·3학년 교과서로 배우면 수학을 잘 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어요.”

학원강사들도 지나친 선행학습에 우려를 표시한다. C학원의 임모 강사는 정상적인 과정보다 앞선 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은 몇 %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너도나도 1~2년씩 과정을 앞당겨 배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꼭 필요하다면 6개월 정도 미리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다.

원촌 중학교의 권혜경 교사는 “미리 배워온 아이들을 보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들어봤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직접 문제 풀이를 시켜보면 정확히 푸는 아이들이 거의 없고 오히려 가정환경이 어려워 미리 공부를 하지 못하고 온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듣고 노트 정리도 꼼꼼히 해 수행평가에서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것 같다”고 했다.

S중학의 김모 교사 역시 한 단원 정도 예습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선행학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안 하고 중학교에 가면 안 돼요. 나도 우리 아이 입학시켜 놓고 옆에 좀 보고 살걸, 왜 더 빨리 시작할 생각을 못 했는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라고 했다. 겨울방학 때부터 중학교 준비를 시켰다는 이 어머니는 학교에서는 이미 다 배운 걸로 치고 수업시간에 대충 훑고 그냥 넘어가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지 않은 아이들은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했다.

“1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우열반을 나누었는데 우리 아이는 열반으로 떨어졌어요. 학원을 다니며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5학년 때부터 시작한 아이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거예요. 수학은 얼마나 문제를 많이 풀어 봤느냐로 결정되죠. 일찍 시작한 애들이 확실히 잘 하더라고요. 영어도 중학교 첫 시험에서 곧바로 문장을 쓰게 하는 걸 보고 안 해가면 안 되겠다는 걸 느꼈어요.”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전교권(전교 10등 이내)이라고 하는 어느 어머니는 영어·수학은 누구나 준비해 오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고, 암기 과목과 예체능 과목까지 얼마나 철저히 준비를 했느냐로 등수가 결정된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전교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6학년 여름방학부터 쉬지 않고 학원 종합반에 다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잘 하는 아이대로, 못 하는 아이는 못 하는 아이대로 학원에 다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에 들어가면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끊임없이 다음 과정으로의 선행학습이 이어진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의 수학 Ⅰ Ⅱ 정석을 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주요과목은 한번 이상 배운 상태기 때문에 반복과 심화학습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대입 준비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끝없는 선행학습의 고리

결국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선행학습은 1차적으로는 중·고등학교에서 좋은 내신으로 유명대학 입학 티켓을 확보한 후, 높은 수능 점수를 얻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연결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방학을 학원 종합반에서 보내는 것도 최종 목적은 일류대학 입학에 있는 것이다.

2002년이면 교육제도가 전면적으로 바뀌고 대학입시는 무시험으로 바뀐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이 교육정책을 믿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문민정부 때 대대적으로 열린교육을 한다며 한동안 초등학교마다 교실 벽을 트고 체험학습을 한답시고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게 유행했다. 교과평가시험도 모두 없애고 1년에 두 번씩 수학경시만 치렀더니 문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배웠는지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대신 숙제가 많아졌다. 대부분 견학하고 보고서를 써가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증거물로 사진이나 팸플릿을 붙여오라고 하는데 결국 어른들 숙제가 돼버리고 말았다. 한 마디로 열린교육을 한다며 시늉만 하는 통에 아이들은 책에서 멀어지고 학부모들만 바빠졌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3년간 6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는 C교사는 “갈수록 아이들의 학습태도가 나빠지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앉으면 가수나 탤런트 얘기나 하고, 수업 시간에도 어떻게 공부 안 하고 그 시간을 때울까 이 궁리밖에 안 해요”라고 하소연했다.

학원 강사가 보기에도 열린교육 세대는 문제가 많다. 부모 손에 이끌려 학원에 온 아이들은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힘들어도 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열린교육 1세대라고 할 중학교 1학년을 맡고 있는 권모 강사는 “열린교육 세대들은 예전보다 표정이 밝고 자기 주장도 강하며 매우 적극적이에요. 반면 끈기가 부족하고, 매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책임의식도 약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열린교육 세대라도 어떤 교육 시스템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 정기적으로 교과시험을 치러온 아이들은 학습태도나 성적에서 앞서간다는 것이다. 열린교육이라는 국가 교육시책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상급학교와의 연계성을 생각해 시험을 보고 공부를 시킨 학교의 아이들이 경쟁에서 앞선다는 것이다.

결국 무시험전형이고 뭐고 상관 없이 공부 잘 하는 게 나중에 대학 가는 데 최고라는 학원 관계자의 말이 별로 틀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학원의 철저한 학생 관리

이처럼 초등학교에서 열린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중학교라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는 곳이 바로 학원이다. H학원의 홍원장은 선행학습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초등학교 과정과 달리 중학교에 진학하면 교과목이 크게 늘어나고, 교과내용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준비 없이 바로 입학하게 되면 아이들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러한 충격을 줄여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학습법을 알려주고, 앞선 진도로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선행학습의 목적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학원의 학생관리는 철저했다. 학원에서는 수업시간마다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완전히 익혔는지 테스트하고 점수가 좋지 않으면 재시험을 치르게 했다. 수시로 평가를 해서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성적표를 우송해 준다. 학부모가 찾아와 성적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항상 비치해 놓기도 한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을 위해 보충수업도 있어서 결국 전체적으로 진도를 맞춰 준다. 학교에서 아이가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못 했는지 알 길이 없던 부모들은 이와 같은 학원의 철저한 관리에 탄복한다.

레벨 테스트를 할 때는 상품을 걸어 아이들로 하여금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학과목 선생님들은 수시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의 수업태도나 심리변화 등을 일일이 알려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방학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친목도 다지게 했다. H학원에서는 여름방학 동안 고아원을 방문해 봉사활동 점수도 얻게 해주고, 한 반 아이들끼리 단합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겨울방학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눈썰매장에 간다고 한다.

학원은 소규모 편성이어서 강사가 학생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면 학교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학원으로 전화를 걸어 상담을 청한다. 하지만 성적이 계속 떨어지면 아무리 그 학원과 신뢰가 쌓였다 해도 부모들은 오래 참아 주지 않는다. 바로 학원을 바꿔버리는 냉정함을 갖고 있다. 이것이 학원 강사들을 부단히 노력하게 만드는 이유이며, 학원교육이 학교교육보다 앞서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학교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으리라.

교사 자녀도 학원 다녀

나는 서너 군데 학원의 설명회장을 찾아다니고 상담도 해본 끝에 최종결정은 아들이 들어갈 중학교 교사를 만나 본 후 하기로 했다.

나의 고민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있다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며 “저희도 정말 답답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고 문제를 해결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 사회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데서 비롯된 거라고 봅니다. 아이의 특성은 무시하고 최고의 대학에 보내 일류 인간으로 성공시키겠다는 부모들의 욕심, 그리고 변화에 대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교사들의 안일한 태도, 우왕좌왕하는 교육제도, 이 모두가 오늘날 우리 교육을 여기까지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교장은 우리가 교육받는 이유는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인데 요즘 아이들은 일이라는 걸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창가에 분필가루가 묻어 있어 한 아이에게 닦으라고 했더니 ‘어떻게 닦아요?’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걸레로 닦아야지’ 했더니 ‘걸레는 어디에 있는데요?’라고 하는 겁니다. 스스로 찾아서 하려 하지 않고 끝없이 남에게 묻고 의지만 해요. 수행평가가 바로 이런 과정을 중시하자는 것인데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시행부터 하다 보니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요.”

교장에게서도 시원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 나는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소위 주요과목 담당 교사들을 만나 선행학습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교사들 역시 자신의 자녀는 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을 시키는 현실을 누가 탓하랴.

드디어 11월30일,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예비중학생을 위한 종합반이 설치돼 있는 동네 H학원을 찾아갔다. 학원에서는 수강을 하려면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엘리트반과 일반반 두 종류의 시험지가 있다며 선택을 하라고 했다. 테스트 단계부터 엘리트와 일반으로 나뉘는 게 불편했다. 일반반 시험지를 쥐는 순간, 우리 아들은 영영 엘리트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들은 일반반 시험지를 택했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수학문제가 모두 중학교 문제라며 잔뜩 겁을 먹은 채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테스트를 받는 동안 다른 어머니들이 자녀를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섰다. 잠시 후 그 아이들도 시험을 치렀다. 긴장된 표정으로 아이들은 시험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어려운 문제가 있는지 문제를 풀다 말고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다.

테스트가 끝난 아들은 수학문제는 몇 개밖에 못 풀었다면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 아들에게 “괜찮아, 넌 아직 배운 적이 없으니까 못 푸는 게 당연해.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돼” 하고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러나 마음 약한 아들은 주눅 든 얼굴을 쉽게 펴지 못했고 “중학교에 가는 게 겁이 난다”고 말했다.

아들을 일반반에 등록시키고 학원 문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학원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마치 내 아이의 장래를 학원이 책임져 주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그 동안의 갈등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뒤져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숨까지 내쉬며 “이제부터 열심히 할게요”라며 스스로 다짐을 했다. 아들의 시간표를 보니 수업은 일주일에 3일(화·목·토), 하루에 국어·영어·수학·과학 4과목을 모두 배운다. 오후 4시에 시작해 8시에 끝난다. 그것을 보는 순간 홀가분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짓을 언제까지 해야 되나.

‘입학 전까지만 아니, 입학하고 두어 달 후면 중간 고사를 볼 텐데 첫 시험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때까진 보내야겠지, 그럼 기말고사는 어떻게 하고…. 그럼 3년 내내, 아니지 고등학교는 더욱더 안 하면 안 되잖아, 그럼 앞으로 6년을….’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평범한 어머니로 내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에겐 이를 뿌리칠 용기가 없었다.

나의 아들은 지금도 주눅 든 어깨를 펴지 못하고 학원으로 간다. 아들아,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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