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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참회의 이론적 배경이 된 국제신학위원회 보고서

가톨릭 2000년 史 초유의 大사건 교황의 참회

교황 참회의 이론적 배경이 된 국제신학위원회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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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구약성서

죄 를 고백하고 그 죄를 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은 성서 전반에 걸쳐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많고 많은 고백의 더미들 속에서 어떻게 중요한 성구들을 추려내고 분류하는 가이다.(중략)

우리들은 이렇게 모아진 증거들로부터 ‘조상의 죄’가 언급되는 모든 경우에도 고백은 오직 하느님에 대해서만 할 수 있고,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고백하는 죄들이 다른 인간들에게가 아니라 하느님에게 직접 밝히는 것임을 결론지을 수 있다(민수기 21장 7절에서 유일하게 백성들이 원망했던 모세에 대한 언급이 있다). 성서를 쓴 사람들이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선과 악에 있어서 강력한 일치가 있었음에도 왜 그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들에 대해 현재의 대화자들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가에 관해 의문이 제기된다.

이 문제의 답변에 있어서 우리는 다양한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성서에는 개인적이든 국가적이든 하느님에 대해 저지르는 죄를 우선시하는 신중심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 창세기 2∼11장과 신명기 7장 2절, 그리고 사무엘서 15장과 신명기 25장 19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게 저지른, 이들 민족들나 후손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할 폭력행위가, 오히려 신의 명령을 따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의 명령은 어떠한 식으로도 용서를 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민족으로부터 받은 학대의 경험과 그로 인한 원한 역시 그들에게 행해진 악에 대해 용서를 청하겠다는 생각을 가로막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죄(와 은총)에 있어서 세대간 연대감은 성경에 남아 있으며,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했듯이 ‘조상들의 죄’를 하느님 앞에 고백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주여, 우리 조상의 하느님. 당신을 저버린 죄를 범하고 모든 악을 행하였나니 당신의 명에 주의하고 복종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유대인들이 유배 후 그들의 조상이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한 기도이다. 교회는 그 예를 모방하여 교회의 자녀들이 저지른 역사적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2.2 신약성서

죄의 사상과 관련된 기본 주제이자 신약성서에 널리 나타나 있는 것이 하느님의 절대적 신성함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며, ‘거룩한 아버지’로 떠오르며 ‘거룩한 신’으로 불린다.(중략)

예수의 가르침에서 절대적 중심을 차지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요한복음에서 ‘새로운 계명’이 되었다. 즉, 사도들은 예수가 ‘마지막까지’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기독교도는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상호관계를 반영하듯이 인간 사이에도 상호관계를 부여하는 사랑과 용서를 행하도록 소명받았다.

이런 시각에서 화해와 죄의 용서가 강조된다. 예수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죄를 범하는 자를 사하듯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며 항상 용서하는 것처럼, 그의 사도들에게 과오를 범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도록 항상 준비하라고 요구한다. 이웃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의 사도는 비록 용서를 빌지 않더라도 그에게 죄를 범한 사람을 ‘일흔입곱번’ 용서할 자세가 되어 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에 대해서도 예수는 상처받은 사람이 그 자신도 진정으로 간청한다면 절대 용서를 거부하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로써 죄를 지워버리는 행동을 먼저 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예수는 죄인에게 제단에 제물을 바치기 전에 “원망 들을 만한 일을 한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도록 요구한다. 이웃에게 준 상처를 치료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하는 예배 행위는 하느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기 마음을 바꾸고 적절한 방법으로 진정 화해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항상 자비롭고 우리의 죄를 사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죄가 하느님과 그리고 그의 이웃과의 관계에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죄인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만 용서를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죄를 순화시켜 준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다. 따라서 죄를 범한 사람이나 그로부터 상처받은 사람은 자비로서 모든 이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하느님에 의해 화해를 하게 된다. (중략)

2.3. 희년

화해와 과거 극복을 위한 중요한 성서적 관례는 희년식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레위기에서 규정되었다. 종족, 씨족, 가족들로 이루어진 사회구조에서 개인이나 가족이 그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자들에게 땅, 집, 하인, 또는 자식을 양도함으로써 어려움에 처하면 그로부터 벗어나려기 위해 다투고 불가피하게 무질서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영토나 씨족이 소수의 부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나머지 씨족들은 빚을 지고 노예상태에서 소수의 부유한 자들에 의존하여 살아가도록 강요당하게 된다.

레위기 25장의 규정은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서 하느님의 백성들이 사회적 구성을 보존하고 소수의 가족일지라도 자립을 회복하기 위하여 매 50년마다 희년식을 거행하였다.

레위기 25장에서 결정적인 것은 출애굽으로 그의 백성들을 해방한 신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고백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느님 여호와이니라.” 희년식은 묵시적으로 죄를 용인하는 것이자 올바른 질서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시도였다.

희생과 고통속에서 자유를 얻는 것은 예언서의 내용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이사야는 이러한 암시들을 속죄와 자유, 귀향과 구원이라는 주제로 희년 예배식 속에 전개시켜 나간다. 이사야 58장은 사회 정의와 관련이 없는 의식에 대한 공격이며, 특히 혈족의 의무에 중심을 둔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에 대한 부름이다. 좀 더 분명하게, 이사야 61장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주님의 영광의 해를 알리기 위해 보내진 하느님의 사자로서 신권왕을 묘사하기 위해 희년의 형태를 이용한다. 예수가 일생의 과업과 사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문구는 이사야 58장 6절에서의 암시와 더불어 누가복음 4장 17∼21절에 나타나 있다.

2.4. 결론

이상에서 보아, 요한 바오로 2세가 희년을 맞이하여 과거 그리스도의 자손들에 의해 저질러진 죄를 인정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호소가 성서와 정확히 괘를 같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이것들은 하느님의 거룩함과 하느님 백성의 세대를 초월하는 결속, 그리고 백성들의 죄 많음에 관해 말하고 있는 성서에 기초한다. 교황의 호소는 하느님이 창조물에 대해 애초에 계획했던 질서를 재확립하기 위해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성스러운 희년의 정신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이것은 애초에 예수가 시작했던 ‘오늘’의 희년 선언이 그의 교회의 희년 의식 속에서 계속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특이한 은총을 경험함으로써 하느님 백성들은 모두 주님으로부터의 위임을 더 크게 인식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한 죄를 용서할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자극받는다.

“기독교 신앙이 두번째 천년에 가까워짐에 따라 교회도 그리스도 정신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멀어졌던 때, 그리고 신앙의 참뜻으로 고취된 삶을 세상에 증언하는 대신 반대 증언과 추문에 빠졌던 역사상의 모든 시간들을 돌이키면서 교회의 자녀들이 지은 죄를 보다 완전하게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 앞에서 교회는 항상 교회의 아들 딸들이 지은 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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