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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두뇌자원 활용한 벤처형 ‘제3의 길’

북한의 국가발전전략

  •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두뇌자원 활용한 벤처형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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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종래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해 성과를 축하하고, 짧은 체류일정에도 짬을 내 컴퓨터 생산공장을 시찰한 사실 등을 놓고 북한도 중국과 비슷한 경로를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당장 중국식 모델을 적용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익히 알려진대로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의 요체는 정경분리다. 즉 정치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경제는 자본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인데, 북한이 자본주의를 도입해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함께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통해서 국제사회에 북한도 유망한 투자지역이라는 신뢰를 심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결국 여기서도 개혁·개방의 폭과 심도가 하나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정희식 개발전략이 됐든,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이 됐든 대전제는 북한이 전면적인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인데, 북한으로서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전면적인 개혁·개방이 전면적인 체제위협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외부 수혈로 근근이 연명하는 현 상태를 마냥 유지해갈 수도 없다. 외부 원조가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엄청난 수의 아사자를 속출해가면서 ‘고난의 행군’을 거쳐온 북한 지도부도 이제는 나름의 미래 청사진을 주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

한 전문가의 말이다.



“북한은 2000년 상반기를 본격적인 경제재건에 시동을 거는 시기로 보고 있는 듯하다. 예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적극 외교, 외국인투자 관련법규 개정과 과학기술 개발 등 제도 정비와 전 부문에 걸친 실용주의 노선 강조 등 대내외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들의 대전제는 ‘통제 가능한 범위 내’라는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활기를 띨 경제교류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6·15 공동선언으로 인해 한국에는 본격적인 대북진출 물꼬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그들이 원하는 분야와 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로 대남 접촉면을 제한하리라는 것이다. 예컨대 당장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될 남한의 유휴석탄 1천만t은 환영하겠지만, 무슨무슨 대규모 SOC 건설공사를 위해서 남한측 인력이 대거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사양하는 식이다.

아무튼 지금으로서 분명한 것은 북한의 향후 행보가 박정희식 개발모델이나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개혁·개방과 체제안정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양 극단 사이의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방식, 정치적 부담이 덜한 분야에서는 최대한 실리주의를 추구하되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경제 사안, 이른바 ‘독이 든 사과’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 내부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고 있는 경제개발 방식은 일종의 자력갱생형이 될 것이다. 물론 대외 원조를 받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북한 내부에 잠재하는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 그럼으로써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북한은 ‘조선식(혹은 ‘우리식’) 사회주의 시장경제’같은 모델을 창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수레바퀴는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다시 멈추기도 어렵고, 종국에는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지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속성을 갖는다. 아무튼 북한은 이제 변화의 시동키를 돌렸다.

개방지역 선정

그러면 북한은 지난 몇 년간 경제회생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왔으며, 97년부터 2010년을 목표 연도로 삼아 구상해왔다는 ‘계획’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북한이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판 국가발전계획의 한 가지 예로 거론될 수 있는 게 일종의 국토개발 전략, 그중에서도 경제특구 입지선정 문제다. 전통적으로 도농(都農) 균형개발을 국토개발 기본 정책으로 삼아온 북한은 90년대 이후 잠재적 전략지역 육성에 신경을 쏟아왔다. 19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정한 나진·선봉지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일반론으로 보면 북한의 전략지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신의주 만포 두만강 혜산 회령 등 북중 국경지대와, 원산 남포 청진 해주 흥남 등 동·서해 연안지역이 그것이다. 북중 국경지대는 대륙으로 향하는 전진기지로서, 동·서해안 지역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연결고리로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의 전략지역 선정에서 고려할 수 있는 요인으로는 ① 체제 유지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여타 지역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지역 ② 대외협력 및 투자유치의 잠재력이 높은 지역 ③ 기존 개방지역 및 향후 개방이 가능한 지역 ④ 해양과 대륙의 연결이 용이한 물류 거점 ⑤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중국·러시아 국경지역 등이다. 북한이 이미 개방 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 나진·선봉 지역과 신의주 남포 해주 원산 등이 그런 예들이다.

여기서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에도 도로망과 통신망 정비·건설공사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내륙을 가로질러 동·서해안 연안도시를 연결하는 남포-원산 고속도로 건설이나 평양-원산 도로정비, 전국적인 광케이블 공사 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들이다. 광케이블 공사는 97년까지 전국 66개 시·군에 완성됐으며 평양-신의주를 잇는 광케이블망도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사회간접시설 확충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동시에 전략적 개발지역의 잠재적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한 재미동포의 말이다.

“나진·선봉지역이 1997년에 들어와 투자 부진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북한은 그 대안으로 원산과 신의주, 남포를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의주는 중국과 연계되는 지역으로, 원산은 일본과 연계되는 지역으로, 남포는 한국 기업들을 수용하는 단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바다를 낀 3개 지역이 개방되면서 평양은 이들 지역에 대한 통제센터로 남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구상은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서 7∼8년 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정책이면서도 그동안 외부세계로부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인재 양성정책도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공화국 천재양성소’를 만들고, 이들을 당 지도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분야에서 과거의 전형적인 최고 엘리트들은 김일성종합대나 김책공대 출신 당 일꾼으로 인민경제대학에서 재교육을 받고 해외에서 활동한 이른바 ‘붉은 자본가’들이었다. 그런데 5년 전쯤부터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 대폭 확대·강화됨과 동시에 세분됐고, 교육대상 연령층도 한결 내려갔다. 이들이 각 전공분야의 산업에 투입되거나,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새 분야가 개발되고 있다”

엘리트 육성정책과 소프트웨어산업의 예

이렇게 해서 현재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적 예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다. 북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분야의 대표기관으로 알려진 조선컴퓨터센터(KCC)에 근무하고 있는 4000여 직원 중 20∼30대의 젊은 프로그래머는 900∼1200명에 달하는데, 이중 상당수가 영재관리 프로그램으로 양성된 인력이라는 것. 관계자들은 북한의 소프트웨어 중 몇몇 분야는 우리 기술수준에 전혀 손색이 없으며 일부 분야는 한국을 능가한다고 말한다. 중국 베이징을 근거로 대북관련 사업을 하면서 작년에는 북한 컴퓨터 기술진 10여명을 베이징에 불러다 합숙교육을 했던 한 재미동포는 “북한 젊은이들의 열정이 대단하더라”고 감탄했다.

“몇년 전 평양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프트웨어를 공부한다는 한 북한 대학생에게 도스(DOS) 언어책을 한권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는데, 일주일쯤 뒤에 보니까 그 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괜찮은 컴퓨터 한 대 접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초를 워낙 탄탄하게 다져놓으니까 나중에 고차원의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가도 이해가 무척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환경에서 배운 한국의 젊은이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소프트웨어산업의 경우 제조업 분야와는 달리 도로, 항만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시설 여부와 무관하게 우수한 두뇌만으로 발전이 가능한 분야라는 점에서 북한 지도부에서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동안 국내 일각에서는 북한의 향후 전략산업 육성과 관련, 60∼70년대의 한국처럼 중화학공업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당장 시급한 생필품을 공급할 경공업 위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그러나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예에서도 보이듯 북한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분야는 경공업도 중공업도 아닌 ‘북한에 필요하고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개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핵과 미사일은 안보 차원에서 먼저 논의돼야 하겠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핵은 북한에 대규모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 즉 에너지문제로 귀결됐고, 미사일 문제도 그런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북한은 항상 그 시점에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식의 합리적인 결정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주도형 벤처’ 모색중

근년에 들어와서는 북한 지도부가 ‘벤처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다소 ‘엉뚱한’ 소식도 들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2년 사이 한국에서 일어났던 벤처붐을 면밀하게 관찰해왔고, 북한에도 이런 사업 모델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개인이 아직 본격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없는 북한이 벤처 분야에 진출한다면, 이를테면 ‘국가주도형 벤처’ 형태가 된다.

이에 화답하듯, 얼마 전 평양교예단의 서울 공연을 주최했던 KTB(대표 권성문)는 최근 남북합작 벤처사 설립계획을 언론에 밝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즉 중국 베이징에 남북합작 혹은 한중합작 형식으로 벤처 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KTB 네트워크가 투자한 기업들의 모임인 KTBN클럽 회원사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 권성문 사장은 “남측이 IMF 위기상황을 벤처붐으로 극복했듯이 북한에 활용 가능한 벤처 비즈니스 모델로 북쪽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 다른 소식통은 “북한은 지금 베이징 등 제3국에 수십개의 벤처기업을 세운다는 계획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60년대의 우리나라 수준밖에 안되는 북한에 무슨 벤처사업 아이템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북한체제의 특성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찾아보면 북한만이 가진 노하우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꽤 된다. 예컨대 고(故) 김일성 주석을 상대로 완벽한 임상실험을 해온 건강, 장수(長壽) 관련분야에서만 독창적인 벤처기업이 여러 개 나올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애용했던 비법이라면 누군들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벤처분야는 북한이 처한 현실에서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사안이다. 사회간접자본도 취약하고 자본도 없는 북한 쪽에서 보면, 자신이 강점을 가진 분야의 우수 두뇌를 최대한 활용해서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벤처가 매력적일 수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으로 방북했던 한 인사도 “북한의 음식이나 공연예술 분야 등은 확실히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간의 벤처합작은 앞서 KTB가 밝힌 사업구상처럼 북한 체제의 특성상 주로 제3국을 끼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과 제3국의 세 지역에 각각 거점을 두고서, 자금은 한국이 대고 생산은 북한과 제3국에서 분담하는 식으로 운영하면 북한 안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보다 사업의 안정성과 세계시장 진출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는 또 평양에 외부 인력이 대거 유입되는 사태에 부담을 느끼는 북한으로서도 바람직한 사업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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