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코스닥 황제’ 권성문 KTB 사장의 위험한 도전

“한국의 워렌 버핏이 되고 싶다”

  •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9-19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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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닥과 벤처업체의 ‘큰 손’ 권성문 KTB 사장. 30대의 나이, 재계 데뷔 6년만에 자산규모 2조2000억원의 오너경영인이 되기까지 그가 던졌던 세 번의 승부수, 그리고 새로 직면한 과제들. 과연 그는 ‘한국적 기업 풍토’와 도덕성에 대한 끈질긴 의혹의 시선들을 떨쳐버리고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워렌 버핏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인가. 》
    7월10일 한낮, 강남대로는 늘어선 차들과 고층빌딩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강남역 사거리 양재동 방향 초입에 있는 쌍동이 빌딩으로 향했다. 왼편 건물엔 김석기 사장이 이끄는 중앙종합금융이, 오른편엔 최근 여의도에서 옮겨 온 KTB네트워크 본사가 입주해 있었다. 오른쪽 건물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후 3시. KTB 권성문(39) 사장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어렵게 이루어진 약속이었다. 권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사실상 끊은 상태였다. 홍보실을 통해 거듭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권사장과 직접 통화를 해 30분간만 만나기로 합의했다.

    시간 맞춰 찾은 KTB 사장실은 세련되고 규모 있어 보였다. 직원들의 몸가짐에도 대기업다운 진중함이 엿보였다. 자산규모 2조 2002억원(99년 말 현재). 과연 국내 최대 벤처투자회사다운 면모였다. 대기실을 거쳐 접견실에 앉아 기다리니 곧 권사장이 나타났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노숙해 보였다. 홍보상무와 비서실 직원이 배석한 가운데 권사장은 시종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벤처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비전, 경영관을 피력했다.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80분 가량 계속됐다.

    권사장은 지금 두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는 듯했다. 하나는 자신을 따라 다니는 세간의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명실상부한 ‘오너경영인’으로 거듭나는 것, 또 한가지는 미래를 걸고 뛰어든 벤처 비즈니스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종의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림의 중심에는 물론 KTB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KTB는 코스닥 등록 기업 중 57%에 자기 지분을 갖고 있는 벤처업계 최대 ‘큰손’이다. 오늘의 권사장을 있게 한 ‘미래와사람’ ‘한국M·A’ 등의 산하 기업들에도 일정한 몫이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KTB가 투자중인 350여 개 벤처기업과 미래와사람 및 권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옥션’ ‘인티즌’ 등 인터넷 핵심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다. 결국 권사장이 어떤 그림을 완성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벤처 비즈니스와 인터넷 산업, 코스닥 시장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다.



    권사장은 “가능하다면 한국의 워렌 버핏이 되고 싶다”고 했다. 워렌 버핏은 세계적 투자전문사 ‘버크셔헤더웨이’의 회장이자 엄청난 규모의 M·A(기업인수합병) 펀드를 운용하는 월가의 전설적 투자가다. 포브스지 선정 세계 3위의 거부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첨단 산업 분야의 향방과 증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경제 구조는 이제 우리나라에도 자본과 네트워크를 무기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거대 투자회사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권사장은 그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일까.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권사장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6년 전만 해도 대기업 샐러리맨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자산규모 2조원의 KTB를 비롯, 총 21개 기업을 거느린 사업가로 급부상할 수 있었을까.

    기업인으로서 권성문 사장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몇 번의 큰 승부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5년 1월 한국M·A 창립, 96년 11월 군자산업(미래와사람 전신) 인수, 99년 3월 KTB 인수. 일견 ‘돈줄’만 찾아 쉼없이 달려온 듯한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실상 쉽게 폄할 수 없는 일관성과 치밀함이 내재한다.

    탁월한 추진력과 치밀함

    1962년 대구 출생인 권사장은 심인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 끝에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동기들은 권사장을 “성실하며 놀 때와 공부할 때를 잘 구분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유니크한 대구 사투리에 달변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학창 시절 권사장은 만화와 무협지를 상당히 즐기는 편이었다. 독립문 근처 하숙집에 가면 비슷한 책들이 몇 권씩 놓여있곤 했다. 바둑도 잘 두었는데, 그때 룸메이트가 KTB 관계사인 엠에스테크 소병우 사장이다. 권사장과 소사장은 고교, 재수, 대학 생활을 함께 한 절친한 사이다.

    85년 대학 졸업과 함께 삼성물산에 입사한 권사장은 87년 중순, 돌연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고향에 내려가 만화가게를 시작했다. 권사장은 뛰어난 사업 능력을 발휘, 단시간 내에 점포 가치를 높인 후 매도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권사장은 인터뷰 중 “그 때 그 일을 계속했다면 지금 우리 만화 산업의 규모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경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만화 마니아였던 것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간접 체험의 좋은 재료가 된 정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정의된 2차적 지식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어떤 현상이나 상황,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각 사안에 대해 스스로 정의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 만화 마니아로서의 즐거움은 만끽하지 못하고 있지만 비디오는 여전히 많이 본다고 했다.

    권사장은 89년 미주리대학교 롤라교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90년 다시 오하이오주립대학교대학원에서 재무관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 럭키투자자문에 잠깐 몸담았다가 곧 동부그룹 종합조정실로 자리를 옮겨 92년 3월까지 M·A 담당자로 일했다. 이후 한국종합금융에 입사, 역시 기업인수합병을 담당하다 95년 1월, 한국M·A를 창업했다.

    권사장의 이름이 언론에 처음 오른 것은 96년 7월29일의 일이다. 신축 중이던 목동백화점 인수 과정에 사기와 폭력배 동원 사실이 밝혀져 8명이 구속되고 2명이 수배됐는데, 바로 이 사건의 중개업무를 한국M·A가 담당한 것이었다. 인수 자금은 22억원에 불과했으나 한국M·A가 받기로 한 수수료는 31억원에 이르러 눈길을 끌었다. 당시 검찰은 관련 자료에 ‘위 중개회사의 대표이사는 자신이 위와 같은 거액을 중개료로 받은 점에 대해서 수사관으로부터 상식에 기초한 도의적 추궁을 받게 되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위 중개료 채권 담보를 위하여 자신이 보관중인 위 회사 주식 44만주를 반환하겠다고 하였다’는 내용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신문들도 ‘인수합병 전문회사가 조직폭력배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식의 기사를 싣는 데 그쳤다.

    한국 최초의 ‘기업사냥꾼’

    96년 10월 초, 권사장은 또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기사에는 ‘한국 최초의 레이더스(기업사냥꾼) 등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같은 해 3월 주식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했던 영우통상 주식 15만여 주 중 9만주를 10월 4일 한솔제지 조동길 부사장에게 매각, 경영권을 양도하면서 6개월만에 9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때문이었다. 이처럼 M·A 알선 업체가 단순한 기업인수합병 주선에 그치지 않고 직접 기업을 인수해 시세차익을 남기고 처분하는 것을 턴어라운드 방식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비교적 일반화된 방식이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됐던 일이라 화제를 모았다. 이후 권사장은 국내의 대표적 M·A 전문가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됐다. 한국M·A는 이전에도 한솔전자, 한솔텔레콤, 한솔종합금융 등의 인수합병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달 16일에는 증권관리위원회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KDK’라는 회사의 경영권 인수 거래를 주선하면서 같은 회사 주식 1000주를 주당 1만5800원에 취득한 뒤 그 일부를 주당 2만2100원에 팔아 350만원의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였다. 다시말해 권사장이 주식을 사들인 것은 이 회사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 증관위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한국M·A측은 “실무 추진 과정에 발생한 착오”라고 해명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천재 기업레이더스의 단순한 실수”라는 평가에서 “예견됐던 부도덕 행위”라는 극단적 의견까지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왔다.

    기업과 개인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로 주변이 어수선하던 그 즈음, 권사장은 큰 결단을 내린다. 96년 11월 상장 봉제의류업체인 군자산업을 인수한 것이다. 권사장은 “직접 경영하기 위해 이 회사를 인수했다”며 “섬유수출기업으로 지위를 강화하고 정보통신·자동차부품 등 첨단 성장업종에 진출, 사업다각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영우실업처럼 차액을 남기고 되팔아버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들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1997년 2월, 권사장은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군자산업의 상호를 ‘미래와사람’으로 바꾸고 정관의 ‘사업 목적’에 환경·정보통신·자동차부품·무역·부동산개발·토목건축·주택건설·전기전자·전자파관련사업 등 첨단 또는 유망 사업을 모조리 포함시키는 파격을 단행했다. 또 발행예정주식총액 규모를 300억원(600만주)에서 3000억원(6000만주)으로 10배나 늘리고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한도도 각각 1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30배나 늘렸다. 업계에선 여전히 권사장이 정관개정을 통해 군자산업의 주가를 올린 뒤 제3자에게 비싼 값에 되팔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권사장은 스스로 밝힌 대로 미래와사람을 통해 단순한 M·A전문가가 아닌 오너경영인으로에게 첫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권사장은 군자산업 인수 당시부터 워렌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헤더웨이’를 염두에 뒀음을 인정했다. 버크셔헤더웨이 역시 봉제업과 투자업을 같이 하는 회사다. 한마디로 말해 군자산업 인수는 뚜렷한 모델과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추진한 합목적적 행위였던 셈이다. 권사장은 KTB 인수 결정 뒤 가진 인터뷰에서도 “미래와사람은 봉제수출업, KTB 인수와 같은 투자전문업, 신기술 개발 아이템을 사업화하는 부문 등 3분야를 축으로 하는 회사로 키워나갈 계획”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장기적으로는 지주회사와 같은 개념의 회사가 될 것으로 본다”는 뜻도 밝혔다. 미래와사람은 현재, 당시 권사장이 제시한 구도와 매우 유사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1999년 2월, 권사장은 공기업이었던 한국종합기술금융(KTB) 인수를 결정함으로써 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81년 설립된 KTB는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벤처캐피탈이었다. 인수 추진 당시 KTB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설립 근거로 삼는 일반 창업투자회사들이 중소기업청 관할 하에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법(KTB법)에 근거한 과학기술부 산하 출자기관이었다(인수 직전인 1999년 1월 KTB법이 폐지되면서 여신전문금융업법상의 신기술사업금융회사로 전환됨, 관할기관도 재정경제부로 변경). 97년 투융자금액 1조3700억원, 97년말 현재 총 투융자잔액이 2조6328억에 이르는 거대 공기업. 투자기업 중 총 29개사가 상장됐고 62개 기업이 코스닥에 등록돼 있으며 나스닥 상장 미국기업도 5개에 이를 만큼 투자 포트폴리오도 훌륭했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가 적극 추진되던 98년 7월 당시에는 1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과 외환위기를 거치며 누적된 투자손실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코스닥 활황도 아직은 꿈같은 얘기일 뿐이었다.

    KTB는 미래와사람에 인수되기까지 모두 3차례나 유찰되는 시련을 겪었다. KTB가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감지하지 못한 응찰업체들이 계속 예정가를 밑도는 가격을 제시했던 것. 99년 1월, 3차 재입찰에 참가한 미래와사람은 정부소유 지분 10.2%를 액면 그대로인 93억에 인수, 마침내 KTB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매출 1345억원(98년 현재)의 봉제수출업체가 단 10%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만으로 거대공기업의 ‘오너‘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서 권사장은 금융업 진출의 꿈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신기술사업 육성·기업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퇴출까지를 총괄하는 종합투자회사 경영자로 발돋움할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알 수 있듯 권사장은 경제 흐름을 읽어내는 데 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력을 갖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권사장의 투자 스타일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찍이 M·A 사업에 뛰어들어 ‘한국 최초의 레이더스’란 닉네임을 얻었고, 봉제업체를 인수하며 투자전문회사로의 앞날을 계획했다. 코스닥 붐이 일기 직전 국내 최대 벤처캐피탈을 인수함으로써 일거에 유력 기업인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과거 미래와사람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97년 11월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미래와사람은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권사장이 이미 8월 경부터 현금유동성 확보 등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두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권사장의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1999년 2월 (주)인터넷경매에 대한 투자 결정이다. (주)인터넷경매는 최근 코스닥 등록에 성공한 전자상거래업체 ‘옥션’의 전신. 지금은 코스닥의 ‘예비 황제주’로 각광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이름 없는 인터넷 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던 때 권사장과 미래와사람이 각각 36%의 지분을 가져가는 대신 8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 (주)인터넷경매의 오혁 사장(현 ‘옥션’ 공동 사장)은 경영권을 내줘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고민했으나 곧 제안을 받아들였고 옥션이 코스닥에 등록한 지금, 권사장과 미래와사람은 각각 1000억 원대의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권사장과 미래와사람은 옥션에 이어 컴퓨터전문쇼핑몰인 와우북, 사이버교육센터인 미래넷, 영화관련 사이트인 맥스무비 등에도 차례로 투자, 이들 회사가 코스닥 시장에 등록될 경우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사장은 이러한 자신의 능력을 두고 ‘돈에 대한 동물적 직감’ 운운하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뭔가 잘 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노력에 의한 결과일 뿐 ‘직감’에 의지해 우연히 얻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권사장은 “외환위기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등 다양한 외국 경제매체들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부의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측’한 결과라는 뜻이다.

    ‘냉각캔 사건’의 파장

    권사장은 1999년 3월 미래와사람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KTB 사장에 취임했다. “원래는 5월쯤 취임할 생각이었으나 그만둘 생각을 하는 직원이 적지 않은 등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2달을 앞당기게 된 것”이었다고 한다. 권사장 취임 후 KTB는 모두 2차례의 유상증자를 실시, 912억원이던 자본금을 3016억원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매출도 크게 늘어 지난해는 110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올해 목표는 4000억원. 투자 금액도 지난해 1630억원에서 올해는 7000억원 규모까지 늘릴 예정이다. 주가가 몹시 출렁거렸던 올해 1/4분기에도 법인세 차감 전 1552억원의 이익을 내는 기염을 토했다. 미래와사람 역시 출자사인 KTB의 지분법평가이익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인 11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렇듯 빼어난 경영 성과에도 권사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도리어 부정적인 쪽에 더 가깝다고 할까. 권사장은 이에 대해 “우선 M·A 회사를 만들어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M·A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 고생해서 돈 버는 것은 나쁘게 보지 않는데 금융업으로 돈 버는 것은 좋지 않게 평가한다. 아울러 젊은 사람이 급성장한 것에 대한 감정도 섞여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적’ 요소가 권사장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1999년 11월10일 금융감독원은 권사장을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성공가능성이 희박한 냉각캔을 세계 최초의 상용화제품으로 개발했다고 발표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유상증자를 실시, 허위 표시에 의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이유였다. 이른바 ‘냉각캔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 터진 것. 금감원은 미래와사람이 첫째, 냉각캔개발 과장 발표, 둘째, 외국기업과의 계약 날짜 허위 공시, 셋째,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시세차익 획득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미래와사람 측은 “냉각캔 개발사업은 여전히 유효하며, 외국 기업과 맺은 기술수출계약은 적법한 것으로 허위공시한 사실이 없고, 권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브릭이 미래와사람 주식을 취득한 것은 대주주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올 2월16일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검 특수1부가 권사장에 대해 “98년 2월 신제품 설명회에서 냉각캔을 곧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처럼 과장한 부분은 인정되지만 범죄 의도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소유예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됐다. 대신 회사법인과 이사 한모 씨, 냉각캔 개발 실무자 송모 씨 등 2명을 벌금 500만~2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1998년 당시 냉각캔 개발 발표는 미래와사람의 이름을 알리고 주가를 상승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중앙일보의 경우 같은 해 8월 11일자 1면과 경제면에 각기 ‘캔 따면 음료 시원해져 신기술 1억불 받고 수출’ ‘커버스토리-냉각캔 하나로 지구촌 누른 미래와사람’ 등 다소 흥분된 톤의 기사를 게재할 정도였다. 다른 언론사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제품 개발 발표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냉각캔은 여전히 상용화되지 않고 있으며, 권사장은 이에 대해 “여러가지 투자활동 중 결과가 훨씬 덜 만족스럽게 나온 사업”(한겨레21, 4월13일자)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과거 발생했던 사건들에 대해 할 말은 없는가’고 묻자 권사장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어떤 일도 꾸미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많은 조사를 받았는데 내가 정말 잘못했다면 이 정도로 끝났겠는가. 실패한 경우는 있지만 악의를 가지고 한 일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그와 같은 평판은 “기업가를 증권시장 참여자의 눈으로만 보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권사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시각은 “조직 관리에 약하다”는 평판이다. 단시일내에 성공신화를 일군 덕분일까, 권사장 주변에는 ‘적’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는 한국M·A, 미래와사람, KTB 등지에서 권사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도 제법 있다.

    취재 중 만난 몇몇 사람들은 “권사장의 경영 스타일이 지나치게 독선적”이라거나 “지분을 나눠주겠다는 처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등의 비난을 했다. KTB의 투자 방식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한 벤처기업가의 경우 “KTB에 지분 51%를 넘기는 대신 일정 금액을 투자받기로 했다. 그런데 KTB 쪽에서 다시, 지분부터 넘기면 투자를 하겠다는 제안을 해 와 ‘당신들이라면 그렇게 하겠냐’며 거절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조직 관리에 약하다”는 평판

    실제로 권사장의 조직관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건이 불거진 적도 있었다. 지난 5월, 권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인터넷 허브사이트 ‘인티즌’의 박태웅 사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3월 권사장이 공동대표로 영입한 공병호 사장(전 자유기업원 원장)과 경영 주도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후였다. 공사장은 제휴 등 주로 대외업무를 맡기로 했던 처음 계획과는 달리 인사와 자금운영권까지 요구하고 박사장의 동의없이 임완택 부사장을 비롯, 박사장의 신임을 받던 사원들의 사표를 받았다. 이에 반발한 박사장이 공사장의 조직개편안 실행을 추진했던 이경운 이사 등 2명을 물러나게 했으나, 권사장이 공사장의 부탁을 받아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에 박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권사장은 내부 분란으로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우려해 박사장의 사퇴를 적극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사는 이처럼 내부인사가 퇴진하며 불만을 갖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 “권사장이 조직 운용 경험이 일천한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권사장은 직장 생활 경험이 많지 않다. 또 KTB 인수 전 한국M·A나 미래와사람은 사기업인데다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 사실상 권사장의 방향제시와 결정에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KTB만 해도 종업원 250명 규모의 대형 투자회사이며 그 외에도 직접 다 챙길 수 없을 만큼 관계사들이 많아졌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조직 운영을 고수했다간 일정 수준의 리스크나 시행착오를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권사장이 KTB의 경영인이면서, 개인적으로 KTB의 영역과 겹치는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권사장과 미래와사람이 대주주로 있는 ‘옥션’ ‘와우북’ ‘인티즌’ 등에는 KTB도 함께 투자를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권사장이 KTB 경영자라는 지위를 이용,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KTB 투자를 끌어들였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

    권사장은 이에 대해 “KTB사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적인 욕심을 접어야 했던 일도 있었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 ‘다음’의 예를 들었다. “KTB 인수 전 나는 ‘다음’에 대한 투자를 적극 고려하고 있었다. 그 때 이미 ‘옥션’에는 투자를 한 다음이었고 ‘인티즌’도 창업을 앞두고 있었다. ‘다음’의 경우 KTB가 들어온(왔)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포기했다. KTB 담당자가 ‘옥션’의 2차 펀딩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을 때도 괜한 오해를 사게 될까봐 무척 주저했다. 결국 KTB는 우리기술투자와 함께 2차 펀딩에 참여, 6.5%의 지분을 갖게 됐고 옥션이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등록하면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미래넷, 인티즌, 와우북, 맥스무비도 비슷한 경우다. 한마디로 말해 내가 먼저 투자해 놓은 장래성 좋은 회사에 KTB가 투자한 적은 있지만, KTB가 먼저 투자를 결정한 회사에 내가 들어간 케이스는 한 건도 없다.” 미래와사람, 한국M·A 등도 여전히 각종 투자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KTB와는 철저히 분리돼 있다는 것이 권사장의 주장이다.

    한편 지난 3월, 권사장이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M·A는 ‘아이원벤처캐피탈(주)’를 설립했다. 아이원창투의 지분은 한국M·A 60%, 미래와사람 35%, KTB 4.5%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권사장이 절대주주인 셈이다. KTB의 오너경영인이 따로 창업투자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의혹를 불러오기 쉬운 구조다. 이에 대해 권사장은 “KTB는 여신전문금융회사법에 묶여 있어 창투사에 부여되는 지원금 제도 등을 활용할 수 없다. 아이원창투는 그와 같은 혜택을 향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KTB와 아이원창투는 전혀 별개의 회사이며 각자의 능력에 따라 움직이고 공생하며 협력을 주고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나는 KTB에 신경 쓰는 것의 0.5%밖에 아이원창투에 신경쓰지 않는다. 설립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지만 그쪽 사장을 단 2번밖에 만나지 않은 것이 그 단적인 증거”라는 말도 했다.

    항간에는 권사장 취임 후 KTB가 거둔 괄목할 만한 성과에 대해 “민영화 전 뿌려놓은 씨앗의 과실을 이제 거두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1999년 거래소에 상장된 5개 업체와 코스닥에 등록된 20개 업체, 올 상반기 코스닥 등록에 성공한 12개 업체 중 민영화 후 투자를 결정한 업체는 옥션, 인투스테크놀러지 등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권사장은 “물론 과거 투자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민영화 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도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제 KTB 직원들은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으며, 입사를 원하는 인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지난해 초기, 짧은 안목에 의존해 보유 주식들을 마구 내다 팔았다면 지금과 같은 수익률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통프리텔 주식만 해도 주당 6000원 수준이던 것이 지난해 4월 2만원까지 오르자 매각하자는 의견이 없지 않았으나 하반기까지 기다린 끝에 30만원이라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이는 내가 오너 경영인으로서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긴 안목으로 회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영화 후 KTB의 투자에는 몇 가지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욕심나는 벤처일 경우 높은 프리미엄을 제공하더라도 되도록 많은 지분을 획득한다, 둘째, 투자 기업의 현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셋째,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한다.

    작은 곳에 큰 덩치로 들어간다

    이에 대해 권사장은 “비교적 정확한 지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번째의 경우, 작은 곳에 큰 덩치로 들어가야 좀 더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지 않나 생각했다. 예를 들어 5억 씩 20군데에 투자하는 것 보다 20억씩 5개 벤처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으냐는 계산이다. 이렇게 하면 자금 투자도 넉넉할 뿐 아니라 비자금적 케어에까지 두루 신경쓸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두 번째 원칙의 경우, 중요한 건 투자업체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벤처캐피탈의 목적은 투자 수익을 얻는 데 있기 때문에 굳이 경영에 관여할 필요도 없다. 다만 상당히 유용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데도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손해 아닌가. 그래서 투자 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셋째,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벤처기업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권사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네트워크 서비스야말로 일급 벤처 캐피탈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임을 재삼 강조했다. 최근 회사 이름을 한국종합기술금융(KTB)에서 KTB네트워크로 바꾼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제까지 KTB의 투자는 자금 지원에 방점이 찍힌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그 중심축을 네트워크 제공 쪽으로 바꿔나가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벤처업계 일각에서는 KTB의 네트워크 형성 노력에 대해 “옥상옥을 만들자는 건가. 벤처란 의사결정구조가 짧고 몸놀림이 빠르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데, 투자사의 눈치를 지나치게 볼 경우 결국 발전에 장애 요소가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권사장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적 기업 풍토’에 대한 고민

    “네트워크 강화는 연방제나 그룹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은 좀 생각해줘야겠다. 네트워크 투자에는 자금보다 훨씬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여된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투자 수익이 목적인 우리에게야 다른 서비스 제공 없이 자금 지원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다. 단지 지원한 자금이 엉뚱한 데 쓰이거나 잘못 쓰이는 경우가 생긴다면 우리도 주주인 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것조차 간섭으로 여긴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되도록 열린 마음을 가진 경영진에 투자하려 노력한다.”

    권사장이 이처럼 경영진의 ‘열린 마음’과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하는 것은 벤처 비즈니스의 발전 방향에 대한 평소 생각과 관련이 깊다.

    “벤처기업이 성공하려면 우수한 최고경영자와 인프라 형성이 중요하다. 여기서 인프라란 벤처캐피탈, 각종 법적·제도적 지원장치 등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이 땅에 벤처 비즈니스가 뿌리내릴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 유망한 회사가 상당히 많다. 다만 계속 발전하려면 몇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기업가나 투자자 모두 너무 빨리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된다. 정부도 코스닥 폭락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물량 규제를 시도한다든지 하는 인위적인 간섭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예측 가능성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가치를 깎아먹을 우려가 있다. 둘째, 벤처기업의 성장 속도를 최고경영자의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오너십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 때 그 때 회사의 성장 단계에 맞는 경영자를 수혈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벤처기업, 특히 온라인벤처기업이 적정 수준의 이익을 내려면 ‘1등’이 돼야 한다. 출혈 경쟁으로는 충분한 이윤을 얻을 수 없음이 명백하므로 긍정적 M·A가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업이 이익을 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유지 가능한 수준의 시장지배력을 가지느냐이다.”

    흔히 실리콘밸리식 벤처캐피탈과 국내 업체들을 비교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지적이 ‘우리나라에는 벤처기업을 발굴·투자하고 키울 뿐 아니라, 심지어 성장의 각 단계에 맞춰 최고경영자를 교체하면서까지 기업 생명력을 높여 마침내 거대기업으로 키워내는 장기적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사장의 견해는 원론적으로 옳다. 오히려 문제는 오너십의 양보, M·A 수용 등과 같은 ‘미국식’ 경영이 과연 우리 기업 정서에 무리없이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화두는 M·A다

    재미동포 출신 전문투자가인 리타워그룹 최유신 회장의 경우 뛰어난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최근 6개월만에 8개 국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었다. 그러나 권사장은 이러한 ‘성과’에 대해 “최회장이 재미동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 경쟁의식이 없다. 최유신 회장뿐 아니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투자 스타일에 대해서도 별 비난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토종’ 투자가가 그런 작업을 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아마 언론부터 난리가 나지 않을까. 아울러, 아마도 유교적 기업문화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오너십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M·A에 쉽사리 응할 리가 없다. 벤처업체간 M·A설이 자꾸 화제에 오르지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거의 없는 현실이 그러한 정서를 대변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권사장이 재계에 ‘데뷔’한 이래 줄곧 천착해온 가장 뿌리깊은 고민인지도 모른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권사장이 ‘한국의 워렌 버핏’이 되고, 아울러 인터넷 사업을 포함한 벤처 비즈니스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우리 경제의 풍토 또한 일정부분 ‘미국식’으로 재편돼야 한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아직 권사장의 ‘이상’을 흡수하기엔 지나치게 견고하고 비탄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권사장이 소망하는 바 ‘훌륭한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다른 무엇도 아닌 권사장 바로 그 자신인지도 모른다.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뜻이다.

    권사장이 지향하는 벤처비즈니스 환경에서 가장 중용한 평가 기준은 기업운영의 투명성과 최고경영자의 도덕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사장의 이미지는 충분히 도덕적이며 경영 방식은 충분히 투명했는가. 두 가지 점 모두 아직은 완전히 검증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권사장 역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회 있을 때마다 ‘원칙에 근거한 사업’을 강조하고 작은 일에서도 ‘오해’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 KTB에 대한 동원증권의 적대적 M·A설이 불거져나왔을 때 KTB 소액주주들이 보인 반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증권정보사이트 ‘팍스넷’의 KTB페이지에도 수많은 글이 올라왔는데, 그 상당수가 권사장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해 주식 가치를 크게 높인 최고경영자에 대해 이들은 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 권사장으로서는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 권사장이 그렇듯 ‘개미’들 또한 KTB의 엄연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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