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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물 파기’와 ‘무차입 경영’으로 떴다

‘최우수 상장기업’ 남양유업

  • 최희정 자유기고가

‘한우물 파기’와 ‘무차입 경영’으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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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근성은 비단 원유를 납품받는 과정에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든 한 번 일을 벌이면 끝장을 보려 든다. 특히 회사의 이미지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95년 10월에 고름우유 파동이 터진 적이 있다. 한 우유회사가 ‘대한민국 우유는 고름우유다’라고 광고를 내면서 유제품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우유를 짤 때 젖소의 유선 안에 있는 체세포가 떨어져 나와 우유에 섞이는데, 이것을 고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남양유업은 물론 다른 우유회사들도 매출액이 절반 이상 뚝 떨어졌고 기업 이미지에도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에 들어갔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고 체세포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면서 1년 이상 법정투쟁을 계속했다. 결국 법정은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줬고, 광고를 낸 우유회사는 남양유업에 5억7000만 원을 물어줘야 했다.

남양유업은 광고 마케팅에서도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꾀한다. 기본적인 광고전략은 회사 이름보다 제품 브랜드가 부각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소비자들은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인지는 잘 몰라도 ‘아인슈타인’ ‘아기사랑’ ‘이오’ 같은 상품명에 무척 친숙하다.

광고량도 많은 편으로 1년에 600억 원 가량의 광고비를 쓴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식품은 잘 알려지지 않으면 판매량이 뚝 떨어진다. 그래서 남양은 일단 제품이 생산되면 각종 매체를 통해 부단히 광고를 쏟아낸다. 남양유업 제품 중에 광고를 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제품 홍보에 신경을 많이 쓴다. 또한 제품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할인판매나 이것저것 함께 묶어 싸게 파는 덤핑판매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남양유업은 서울우유와 우유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우유시장 규모는 연 3조 원대로 유제품 회사 쪽에서 보면 대단히 매력적인 시장. 이 가운데 서울우유가 30% 이상의 시장점유율로 선두에 서 있다.

몇 해 전 남양유업은 터줏대감 서울우유의 터를 빼앗기 위해 이 회사보다 불과 일주일 앞서 1등급 우유를 내놓았다. 1등급 우유는 서울우유가 창업 60주년을 맞아 야심만만하게 기획한 상품이었는데, 남양유업이 간발의 차이로 선수를 치며 시장 공략에 나선 것. 겨우 며칠 차이였지만 소비자들에게 ‘남양유업=1등급 우유’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다른 회사보다 먼저 신상품을 내놓는다는 남양유업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경우다.

사옥도 없는 짠돌이 경영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유와 이유식의 시장점유율은 남양유업이 앞섰지만 병원에 공급되는 분유의 점유율은 M사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자 남양유업은 ‘병원에서 먹던 분유를 타사 제품으로 바꿔 먹여도 된다’는 광고를 내며 치고 나갔다.

그때까지는 신생아들이 병원에서 처음 먹은 분유를 병원에서 나간 뒤에도 먹여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게 산모들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영아들은 장이 민감하고 약해서 성분요소가 다른 분유를 먹이면 안 된다는 것. 산부인과 간호사들도 산모들에게 그렇게 조언하곤 했다. 그러나 남양은 산부인과 주변의 이런 관례를 깨고 분유를 바꿔 먹여도 된다고 공언하고 나섰는데, 그 파급효과는 상당히 컸다.

남양유업은 번듯한 사옥 하나 갖고 있지 않다. 3곳의 공장, 사원 연수원, 물류창고, 각 지점의 사원 사택이 소유 부동산의 전부다. ‘부동산 투기는 죄악’이라는 창업주의 철칙 때문이다. 사옥은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대일빌딩 4개 층을 30년째 빌려 쓰고 있다. 주변에선 보기가 딱했던지 “200억∼300억 원만 주면 좋은 사옥을 하나 살 수 있다”거나 “그 돈 벌어서 다 뭐하나. 사옥 꼴이 이게 뭐냐”고 혀를 찬다. 하지만 남양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세들어 살 것이고, 제품 생산과 상관없는 부동산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

남양유업 직원들은 지난해 사무실 집기를 바꿔주기 전까지는 30년도 더 된 낡은 책상에 앉아 일했다. 홍보실에서는 과거에 회장실에서 쓰던 케케묵은 소파를 가져다 천만 갈아 접대용으로 쓰고 있다.

98년에 진로종합식품이 부도를 맞으면서 남양유업이 이 회사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인수비용은 400억 원 정도. 공장설비와 부지 등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양은 인수하지 않았다. 덩치를 늘리는 대신 공장 설비를 최신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꾸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350억 원을 투자해 유아식 생산설비와 포장에서 출고까지의 공정을 모두 자동화했다.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으로 그 해 7억7000만 원, 99년에는 9억 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자동화 설비 덕분에 유아식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돼 미생물 수를 법적 기준인 0.14% 수준으로 낮췄고, 색상의 밝기도 2%나 개선됐다.

남양은 연구·개발비로 한 해 5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 회사는 창업 이래 해마다 10∼15종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중에는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해외에서 특허를 받은 제품도 있고, 기존 제품의 품질이나 맛을 보강해 신제품으로 내놓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신제품 종류가 많다 보니 업계에서는 “겉모양만 바꿔놓고 값 올리려는 속셈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분유나 이유식의 경우 신제품의 가격이 기존 제품보다 1000∼2000원 가량 비싸기 때문이다.

요즘 남양유업은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옆에 제4공장을 짓고 있다. 5만여 평 부지에 10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200억 원만 들여도 지을 수 있었지만, 최신 자동화 설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투자액을 크게 늘려 잡았다. 홍사장은 “우리 연구·개발팀이 1년 반 동안 전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공장들을 다 둘러보고 나서 착공했다”고 자부한다.

“일본 유수의 메이지 유업이 다마현에 세운 완전 자동화 공장은 하루 50만kg의 우유를 처리하는 데 8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공장은 50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설비 자동화로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들이 100원짜리 원유를 살 때 우리는 120원짜리 1등급 원유를 사들이고, 남들이 10억 원짜리 기계를 들여올 때 우리는 15억 원짜리 고성능 기계를 들여온다.”

86년 남양유업이 도투락을 인수했을 때는 이 회사가 인사 관리에 있어서도 얼마나 깐깐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남양유업 영업사원들은 1인당 50개의 대리점을 관리하고 있었는 데 비해 도투락의 경우는 영업사원 1명이 3개씩 관리하고 있었던 것. 남양유업 직원들이 그만큼 자기 분야에서 전문적인 노하우를 쌓아왔다는 얘기다.

“승진 늦어도 OK!”

남양유업 직원 2480명중 임원은 고작 7명뿐이다. 부사장이나 전무는 아예 없다. 직원들의 부서 이동도 드물어 진급이 늦기로 소문나 있다. 지사장의 경우에도 다른 회사는 부장급이나 이사급이 대부분인데, 남양유업은 대리급과 과장급밖에 없다. 때문에 업계에서 열리는 회의에도 다른 회사는 부장급이 참석하는데, 남양유업은 대리급이 참석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과거엔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워 한다. 다른 회사들이 구조조정이네 뭐네 하면서 직원들을 감원했을 때도 남양유업은 감원은커녕 오히려 신입사원을 늘려 뽑았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진급이 빠르면 그만큼 퇴직도 빠르다. 또한 여러 직급을 거치다 보면 일처리도 그만큼 더뎌지게 마련이다. 우리 회사는 진급이 느린 만큼 정년이 보장된다”고 했다. 실제로 남양유업엔 장기 근속자가 많다. 입사한 지 15년이 넘은 직원은 숱하고, 20년 이상 된 직원도 꽤 많다.

임원수가 적고 부서간 이동을 자주 시키지 않는 것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국내 기업들은 ‘직업 인플레’가 심해 50대만 되면 퇴직을 강요당하는 게 보통인데, 그래서는 20∼30년 간 현장에서 쌓아올린 노하우를 살릴 수 없다는 것. 특히 우유를 기반으로 한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대부분 10년 이상씩 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높은 수준의 품질관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남양은 독특한 경력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를 접하게 하면서 보직을 순환하게 하는데, 적절한 시기에 이르면 직원의 특성과 능력을 충분히 고려해 업무를 배정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직 때까지 이 업무를 맡긴다.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때까지 한 자리에서 역량을 키우게 하기 위함이다.

남양유업 임직원 중에는 오너의 친인척은 물론 친구조차 한 명 없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외부 인사 청탁으로 취업한 직원도 전혀 없다. 가끔 거래처 같은 데서 취업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다. 공정하게 직원을 뽑고 관리해야 잡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가니 ‘남양에는 인사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란 말이 돌았고, 그래서 요즘은 아예 청탁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남양유업에는 직원들 사이에 파벌이 없다. 이런 원칙들이 철저하게 지켜지자 직원들도 다른 회사보다 늦은 승진을 감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양유업 직원 최경천씨는 “회사가 학벌이나 지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따지지 않아 직원간에 유대감이 높다”고 한다.

홍보의 귀재

남양유업은 의도했든 안 했든 기업을 알리는 이벤트를 많이 하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10여 년 전, 천안 시민들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지하수가 바닥 나 농업용수는 고사하고 마실 물도 부족했다. 이때 남양유업은 우유를 실어 나르는 탱크롤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식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한 양동이씩 받아든 식수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다. 몇 해 전 경주시 안강읍 지역에 수해가 났을 때도 수해민들에게 연일 물과 김치를 실어 날랐다.

이런 행동을 보고 주변에서는 “어려운 이들과 고통을 분담한다”고 칭찬하기도 했고, 더러는 “남들의 고통을 기회로 이용해 기업 홍보를 한다”고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일을 계기로 남양유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만은 사실이다.

남양유업은 일찌감치 홍보의 효용성에 눈을 떴다. ‘남양분유’가 첫 선을 보인 1967년 무렵에는 분유라는 제품 자체가 소비자에게 친숙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아기에게 모유 먹이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터라 분유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 분유는 그저 부잣집 귀한 아이들에게나 먹이는 사치품쯤으로 여겨졌다.

이때 남양유업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분유를 널리 홍보하기 위해 TV 방송국과 손 잡고 매년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었다. TV 화면에 비친 토실토실한 아기들은 엄마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 아기들이 분유를 먹고 건강하게 자랐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후 아기 엄마들은 튼튼한 아이로 키우려고 다투어 분유를 찾았고 분유 판매량은 나날이 늘어갔다.

남양유업은 지금도 전국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남양유업 임신·육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쇼핑센터나 문화센터 등을 빌려 순회 강연을 여는데, 여기에 쏟아붓는 돈만 해도 한 해 60억 원이다. ‘임신·육아교실’은 전문의를 초빙해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궁금한 점을 쉽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주부들의 호응이 높다. 이 행사 또한 ‘미래의 고객’을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남양유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7000억 원. 내로라하는 재벌기업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하지만 어느 대기업 부럽지 않게 탄탄하게 기업을 꾸리고 있는 남양유업이 그 동안 확고하게 다진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수요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만고만한 차별성과 순발력만 가지고는 ‘동네싸움’에나 만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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