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한우물 파기’와 ‘무차입 경영’으로 떴다

‘최우수 상장기업’ 남양유업

  • 최희정 자유기고가

    입력2006-09-19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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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20일은 알짜배기 기업으로 소문난 남양유업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날이었다. 이날 대신경제연구소는 국내 전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남양유업을 최우수 상장기업으로 선정했다. 남양유업은 종합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 수익성 부문과 자본금 150억 원 이하의 소형사 부문에서도 최우수 기업상을 거머쥐면서 3관왕에 올랐다. 해마다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분유와 음료시장에서 탄탄히 자리매김한 점, 은행빚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이 주요 수상이유가 됐다.

    남양유업은 30여 년 전부터 분유를 비롯한 각종 유제품과 음료를 생산하면서 줄곧 국민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기업이지만, 특별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97년 말 온 나라에 경제위기가 닥쳐온 이후였다.

    굵직굵직한 대기업들마저 자금난에 휘청거리고, 우유 소비가 격감하면서 동종 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직면한 와중에도 남양유업만은 사정이 달랐다. 오히려 매출규모가 늘어났다.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은행돈을 좀 빌려 쓸 수 없을까, 대출기한을 연장할 수 없을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남양유업은 오히려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며 있던 빚마저 몽땅 갚아 버렸다. 회사에 여유자금이 생겼는데 굳이 이자 줘가면서 남의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극히 상식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이렇듯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남양유업은 해마다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98년 순이익보다 3배나 껑충 뛴 680억 원의 순이익(매출액은 5980억 원)을 기록했다.

    너나없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아직까지도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기업들이 허다한 가운데 남양유업이 승승장구한 비결은 무엇일까. 직원들은 그 답이 너무나 당연하고 명쾌한 남양유업의 경영원칙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계열사 없는 기업

    ‘한 우물을 파고 최고가 되자.’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 이후 오직 유제품에만 매달려 신제품 개발과 생산에 전념했다. 다른 기업들이 재벌 흉내를 내며 문어발 확장을 시도할 때도 실속경영을 통해 작지만 탄탄한 기업으로 내실을 다졌다. 해마다 수백억 원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그 흔한 계열사 하나 만든 적이 없다. 속 빈 강정꼴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창업 이래 단 한 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몸집이 좀 커졌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건설과 금융 등 생소한 사업 분야에 유행처럼 진출해 계열사를 주렁주렁 만들어내는 게 한국 기업의 일반적인 경영풍토. 하지만 남양유업은 ‘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되, ‘사업의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 동안 분유캔을 만드는 회사나 사료공장, 광고회사를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이런 사업은 남양유업의 자체 수요만 흡수해도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할 수 있는 업종. 그러나 전공을 벗어나는 사업에는 절대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라 이런 제안들은 번번이 묵살됐다. 다만 세계 최고의 식품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최근 인터넷 ‘아이엄마(www.iomma.com)’란 포털 사이트에 지분 참여를 한 것이 유일한 ‘외도’다.

    ‘한 우물 경영철학’의 주인공은 홍원식(洪源植·50) 사장이다. 홍사장은 창업주 홍두영(洪斗榮·89) 회장의 뒤를 이어 대학(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중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유제품 분야 세계 최고’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다. 그의 관심사는 네슬레 같은 세계 유수의 식품업체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경우 어떤 전략으로 얼마나 발 빠르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식품회사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한우물 경영은 98년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남양유업은 매출액이 계속 늘어나자 주거래 은행에서 가져다 쓴 180억 원의 차입금을 몽땅 갚아버렸다. 지금은 빚은커녕 오히려 2500억 원의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해놓고 있다. 장사를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연 250억 원의 이자소득을 올린다는 얘기다.

    1등급 원유만 쓴다

    대신경제연구소 노주홍 대리는 “남양유업은 매년 20%의 매출증가율과 94%의 영업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차입금이 전혀 없다 보니 자기자본 대비 경상이익률이 45.9%에 달한다. 경우에 따라선 은행빚이 전혀 없다는 게 기업을 경영해나가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금융상황에서는 빚이 없는 게 여러모로 기업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금융비용이 들 까닭이 없으니 경쟁업체보다 생산원가가 낮을 수밖에 없고, 같은 값에 제품을 팔더라도 비싼 원료를 사용할 수 있으니 품질 고급화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신제품 개발에 들이는 공력도 대단하다. 10년째 장수하며 효자상품으로 자리잡은 발효유 ‘불가리스’가 시판되기 전 남양유업 전 직원은 6개월 동안 매일 ‘불가리스’를 먹어대며 ‘마루타’ 노릇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맛이 텁텁하다”거나 “너무 단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 원인을 분석해 공정을 다시 손질했다.

    현재 남양유업이 시판하고 있는 제품은 분유 ‘아기사랑 수’, 이유식 ‘스텝 엄선’, 발효유 ‘불가리스’, 치즈 ‘로젠하임’, 우유 ‘아인슈타인’, 미과즙음료 ‘니어워터’ ‘오투’, 건강음료 ‘위풍당당’ 등 40여 종에 이른다. 이중 ‘아인슈타인’ 우유나 ‘불가리스’ ‘아기사랑 수’ ‘임페리얼 드림’ 등 7∼8개 제품은 첫 생산 이래 지금까지 시장점유율이 6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이런 제품들이 오랫동안 히트상품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원유 등의 주원료를 철저하게 1등급만 골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97년 6월 “모든 유제품에 1등급 원유만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농림부가 정한 1등급 원유의 조건은 ‘세균수(혹은 체세포수)가 1ml당 10만 마리 미만’으로 기준을 맞추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남양유업은 이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유를 납품하는 목장들에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DHA 함유 우유인 ‘아인슈타인’의 경우 지정 목장까지 두고 따로 엄격하게 관리할 정도다.

    충남 천안에서 선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하 사장은 30년 간 남양유업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남양유업은 지독할 정도로 깐깐한 회사”라고 혀를 내두른다. 1등급 원유가 아니면 받아가질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1등급 원유 기준에 맞게 세균수를 맞춰야 하고 위생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소젖을 짜는 것도 다 사람 손으로 하는 일인데 어떻게 실수가 없겠어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착유하는 과정에 공기가 들어갈 수 있고, 더러 소가 발길질이라도 하면 불순물이 좀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남양유업 사람들은 야박스럽게 퇴짜를 놓거든요. 정부가 정한 기준보다 더 까다롭다니까…. 목장 하는 사람은 피가 마를 지경이죠.”

    젖소가 DHA 사료만 1개월 이상 먹어야 원유 속에 DHA 성분이 함유되는데, 아인슈타인 우유용 원유는 DHA를 0.04% 이상 함유해야 통과된다. DHA 기준과 1등급 원유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면 가차없이 DHA 지정 목장에서 제외된다. 남양유업 직원들은 한 달에 서너 차례씩 목장을 방문해 위생시설을 점검하고, DHA 성분과 세균수 등의 기준에 맞추라고 독려한다. 이토록 귀찮게 하는데도 목장주들이 남양유업과 거래를 계속하는 것은 결제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원유값을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하는데다 결제 기일도 정확하게 지킨다.

    깐깐한 근성은 비단 원유를 납품받는 과정에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든 한 번 일을 벌이면 끝장을 보려 든다. 특히 회사의 이미지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95년 10월에 고름우유 파동이 터진 적이 있다. 한 우유회사가 ‘대한민국 우유는 고름우유다’라고 광고를 내면서 유제품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우유를 짤 때 젖소의 유선 안에 있는 체세포가 떨어져 나와 우유에 섞이는데, 이것을 고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남양유업은 물론 다른 우유회사들도 매출액이 절반 이상 뚝 떨어졌고 기업 이미지에도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남양유업은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에 들어갔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고 체세포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면서 1년 이상 법정투쟁을 계속했다. 결국 법정은 남양유업의 손을 들어줬고, 광고를 낸 우유회사는 남양유업에 5억7000만 원을 물어줘야 했다.

    남양유업은 광고 마케팅에서도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꾀한다. 기본적인 광고전략은 회사 이름보다 제품 브랜드가 부각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소비자들은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인지는 잘 몰라도 ‘아인슈타인’ ‘아기사랑’ ‘이오’ 같은 상품명에 무척 친숙하다.

    광고량도 많은 편으로 1년에 600억 원 가량의 광고비를 쓴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식품은 잘 알려지지 않으면 판매량이 뚝 떨어진다. 그래서 남양은 일단 제품이 생산되면 각종 매체를 통해 부단히 광고를 쏟아낸다. 남양유업 제품 중에 광고를 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제품 홍보에 신경을 많이 쓴다. 또한 제품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할인판매나 이것저것 함께 묶어 싸게 파는 덤핑판매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남양유업은 서울우유와 우유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우유시장 규모는 연 3조 원대로 유제품 회사 쪽에서 보면 대단히 매력적인 시장. 이 가운데 서울우유가 30% 이상의 시장점유율로 선두에 서 있다.

    몇 해 전 남양유업은 터줏대감 서울우유의 터를 빼앗기 위해 이 회사보다 불과 일주일 앞서 1등급 우유를 내놓았다. 1등급 우유는 서울우유가 창업 60주년을 맞아 야심만만하게 기획한 상품이었는데, 남양유업이 간발의 차이로 선수를 치며 시장 공략에 나선 것. 겨우 며칠 차이였지만 소비자들에게 ‘남양유업=1등급 우유’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다른 회사보다 먼저 신상품을 내놓는다는 남양유업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경우다.

    사옥도 없는 짠돌이 경영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유와 이유식의 시장점유율은 남양유업이 앞섰지만 병원에 공급되는 분유의 점유율은 M사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자 남양유업은 ‘병원에서 먹던 분유를 타사 제품으로 바꿔 먹여도 된다’는 광고를 내며 치고 나갔다.

    그때까지는 신생아들이 병원에서 처음 먹은 분유를 병원에서 나간 뒤에도 먹여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게 산모들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영아들은 장이 민감하고 약해서 성분요소가 다른 분유를 먹이면 안 된다는 것. 산부인과 간호사들도 산모들에게 그렇게 조언하곤 했다. 그러나 남양은 산부인과 주변의 이런 관례를 깨고 분유를 바꿔 먹여도 된다고 공언하고 나섰는데, 그 파급효과는 상당히 컸다.

    남양유업은 번듯한 사옥 하나 갖고 있지 않다. 3곳의 공장, 사원 연수원, 물류창고, 각 지점의 사원 사택이 소유 부동산의 전부다. ‘부동산 투기는 죄악’이라는 창업주의 철칙 때문이다. 사옥은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대일빌딩 4개 층을 30년째 빌려 쓰고 있다. 주변에선 보기가 딱했던지 “200억∼300억 원만 주면 좋은 사옥을 하나 살 수 있다”거나 “그 돈 벌어서 다 뭐하나. 사옥 꼴이 이게 뭐냐”고 혀를 찬다. 하지만 남양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세들어 살 것이고, 제품 생산과 상관없는 부동산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

    남양유업 직원들은 지난해 사무실 집기를 바꿔주기 전까지는 30년도 더 된 낡은 책상에 앉아 일했다. 홍보실에서는 과거에 회장실에서 쓰던 케케묵은 소파를 가져다 천만 갈아 접대용으로 쓰고 있다.

    98년에 진로종합식품이 부도를 맞으면서 남양유업이 이 회사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인수비용은 400억 원 정도. 공장설비와 부지 등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양은 인수하지 않았다. 덩치를 늘리는 대신 공장 설비를 최신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꾸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350억 원을 투자해 유아식 생산설비와 포장에서 출고까지의 공정을 모두 자동화했다.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으로 그 해 7억7000만 원, 99년에는 9억 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자동화 설비 덕분에 유아식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돼 미생물 수를 법적 기준인 0.14% 수준으로 낮췄고, 색상의 밝기도 2%나 개선됐다.

    남양은 연구·개발비로 한 해 5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 회사는 창업 이래 해마다 10∼15종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중에는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해외에서 특허를 받은 제품도 있고, 기존 제품의 품질이나 맛을 보강해 신제품으로 내놓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신제품 종류가 많다 보니 업계에서는 “겉모양만 바꿔놓고 값 올리려는 속셈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분유나 이유식의 경우 신제품의 가격이 기존 제품보다 1000∼2000원 가량 비싸기 때문이다.

    요즘 남양유업은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옆에 제4공장을 짓고 있다. 5만여 평 부지에 10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200억 원만 들여도 지을 수 있었지만, 최신 자동화 설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투자액을 크게 늘려 잡았다. 홍사장은 “우리 연구·개발팀이 1년 반 동안 전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공장들을 다 둘러보고 나서 착공했다”고 자부한다.

    “일본 유수의 메이지 유업이 다마현에 세운 완전 자동화 공장은 하루 50만kg의 우유를 처리하는 데 8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공장은 50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설비 자동화로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들이 100원짜리 원유를 살 때 우리는 120원짜리 1등급 원유를 사들이고, 남들이 10억 원짜리 기계를 들여올 때 우리는 15억 원짜리 고성능 기계를 들여온다.”

    86년 남양유업이 도투락을 인수했을 때는 이 회사가 인사 관리에 있어서도 얼마나 깐깐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남양유업 영업사원들은 1인당 50개의 대리점을 관리하고 있었는 데 비해 도투락의 경우는 영업사원 1명이 3개씩 관리하고 있었던 것. 남양유업 직원들이 그만큼 자기 분야에서 전문적인 노하우를 쌓아왔다는 얘기다.

    “승진 늦어도 OK!”

    남양유업 직원 2480명중 임원은 고작 7명뿐이다. 부사장이나 전무는 아예 없다. 직원들의 부서 이동도 드물어 진급이 늦기로 소문나 있다. 지사장의 경우에도 다른 회사는 부장급이나 이사급이 대부분인데, 남양유업은 대리급과 과장급밖에 없다. 때문에 업계에서 열리는 회의에도 다른 회사는 부장급이 참석하는데, 남양유업은 대리급이 참석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과거엔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워 한다. 다른 회사들이 구조조정이네 뭐네 하면서 직원들을 감원했을 때도 남양유업은 감원은커녕 오히려 신입사원을 늘려 뽑았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진급이 빠르면 그만큼 퇴직도 빠르다. 또한 여러 직급을 거치다 보면 일처리도 그만큼 더뎌지게 마련이다. 우리 회사는 진급이 느린 만큼 정년이 보장된다”고 했다. 실제로 남양유업엔 장기 근속자가 많다. 입사한 지 15년이 넘은 직원은 숱하고, 20년 이상 된 직원도 꽤 많다.

    임원수가 적고 부서간 이동을 자주 시키지 않는 것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국내 기업들은 ‘직업 인플레’가 심해 50대만 되면 퇴직을 강요당하는 게 보통인데, 그래서는 20∼30년 간 현장에서 쌓아올린 노하우를 살릴 수 없다는 것. 특히 우유를 기반으로 한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대부분 10년 이상씩 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높은 수준의 품질관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남양은 독특한 경력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를 접하게 하면서 보직을 순환하게 하는데, 적절한 시기에 이르면 직원의 특성과 능력을 충분히 고려해 업무를 배정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직 때까지 이 업무를 맡긴다.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때까지 한 자리에서 역량을 키우게 하기 위함이다.

    남양유업 임직원 중에는 오너의 친인척은 물론 친구조차 한 명 없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외부 인사 청탁으로 취업한 직원도 전혀 없다. 가끔 거래처 같은 데서 취업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다. 공정하게 직원을 뽑고 관리해야 잡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가니 ‘남양에는 인사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란 말이 돌았고, 그래서 요즘은 아예 청탁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남양유업에는 직원들 사이에 파벌이 없다. 이런 원칙들이 철저하게 지켜지자 직원들도 다른 회사보다 늦은 승진을 감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양유업 직원 최경천씨는 “회사가 학벌이나 지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따지지 않아 직원간에 유대감이 높다”고 한다.

    홍보의 귀재

    남양유업은 의도했든 안 했든 기업을 알리는 이벤트를 많이 하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10여 년 전, 천안 시민들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지하수가 바닥 나 농업용수는 고사하고 마실 물도 부족했다. 이때 남양유업은 우유를 실어 나르는 탱크롤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식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한 양동이씩 받아든 식수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다. 몇 해 전 경주시 안강읍 지역에 수해가 났을 때도 수해민들에게 연일 물과 김치를 실어 날랐다.

    이런 행동을 보고 주변에서는 “어려운 이들과 고통을 분담한다”고 칭찬하기도 했고, 더러는 “남들의 고통을 기회로 이용해 기업 홍보를 한다”고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일을 계기로 남양유업이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만은 사실이다.

    남양유업은 일찌감치 홍보의 효용성에 눈을 떴다. ‘남양분유’가 첫 선을 보인 1967년 무렵에는 분유라는 제품 자체가 소비자에게 친숙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아기에게 모유 먹이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터라 분유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 분유는 그저 부잣집 귀한 아이들에게나 먹이는 사치품쯤으로 여겨졌다.

    이때 남양유업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분유를 널리 홍보하기 위해 TV 방송국과 손 잡고 매년 ‘우량아 선발대회’를 열었다. TV 화면에 비친 토실토실한 아기들은 엄마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 아기들이 분유를 먹고 건강하게 자랐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후 아기 엄마들은 튼튼한 아이로 키우려고 다투어 분유를 찾았고 분유 판매량은 나날이 늘어갔다.

    남양유업은 지금도 전국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남양유업 임신·육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쇼핑센터나 문화센터 등을 빌려 순회 강연을 여는데, 여기에 쏟아붓는 돈만 해도 한 해 60억 원이다. ‘임신·육아교실’은 전문의를 초빙해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궁금한 점을 쉽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주부들의 호응이 높다. 이 행사 또한 ‘미래의 고객’을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남양유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7000억 원. 내로라하는 재벌기업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하지만 어느 대기업 부럽지 않게 탄탄하게 기업을 꾸리고 있는 남양유업이 그 동안 확고하게 다진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수요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만고만한 차별성과 순발력만 가지고는 ‘동네싸움’에나 만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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