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오지의 도곤족50도 살인더위에 이열치열로 살아남는 비법

  • 조주청

    입력2006-09-19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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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을 내려와 펄펄 끓는 모래벌판을 지나 텔리(Teli) 마을 주막집에 짐을 풀었다. 말이 주막집이지,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도곤(Dogon)을 지나는 나그네가 이 집 마당이나 평평한 흙지붕 위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자고 가는 곳일 뿐이다. 나그네에게 방을 주는 것도 아니요, 음식을 파는 것도 아니다.

    피부는 섭씨 50도까지 치솟은 열기 속에서 익어버렸는지 감각이 없다. 마당 구석 그늘에 축 늘어져 누워 있는데 거구의 집주인이 웃옷을 벗어젖힌 채 남산만한 배를 흔들며 뒤뚱뒤뚱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한다. 일어날 기운도 없어 누워서 팔을 뻗치자 그가 내 팔을 잡아당겨 단번에 일으켜 세우더니 “이리 와. 더위 이기는 방법이 있으니” 하고 말한다.

    눈이 번쩍 뜨인다. 절벽 아래 어디 냉기가 솟는 동굴이라도 있다는 건가? 이 집 주인이 나를 데려간 곳은 서너 발짝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대문짝 그늘.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주와 뜨거운 닭찜이다.

    그렇지 않아도 온몸이 훨훨 타는데 독주를 붓고 금방 끓여낸 찜요리를 먹는다? 숨이 콱 막히는데, 이 집 주인 말씀이 “뜨거운 것으로 뜨거운 걸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열치열(우리 말로)”을 외치며 무릎을 쳤다.

    피부색깔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도 인간의 생각은 같다. 마당에서 조를 빻는 절구질도 그렇다.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절구질이라는 문화가 머나먼 검은 대륙 사하라사막 언저리의 이곳 도곤까지 전파돼갔을까? 아니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바다 건너 산 넘어 지구 반대편의 우리나라까지 왔단 말인가?



    곡식을 빻는 도구를 고안해내는 것은 목숨과 직결된 필요조건이라, 그들의 머리에도 우리 조상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과 똑같은 창조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열치열! 배불뚝이 집주인과 마주앉아 속이 훨훨 타는, 포도찌꺼기로 만든 싸구려 독주 파스티스를 퍼 마시고 안주로 뜨거운 도곤식 닭찜을 손으로 집어 먹으니,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날 정도로 온몸이 열기에 휩싸였다.

    그런데 아! 이것이 어쩐 일인가. 더위가 가시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말대로, 주막집 검은 주인의 말대로 열로써 열을 제압한 것이다.

    40대로 보이는, 이름이 아마티라는 이 집 주인은 나이가 예순이라고 했다. 도저히 못 믿겠다는 나에게 그는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명서까지 보여준다. 그는 첫부인과 사별하고 지금 하와(35)와 아이시타(25), 두 젊은 부인을 데리고 산다. 한 살도 채 안된 갓난아기부터 사별한 부인에게서 난 28세 맏아들까지 자식도 여럿 두고 있다.

    “그럼 식구들이 전부 몇이냐?”

    나의 물음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문다. 식구가 몇인지 가축이 몇 마리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나면 액운이 찾아와 식구들이 죽거나 병들고 가축이 화를 입는다는 것이다.

    도곤족은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 부족전쟁에서 밀리고 이슬람 세력에 밀려 물과 풀이 풍성한 평야에서 무덥고 메마르고 척박한, 인간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가혹한 사하라사막 언저리의 이곳 사헬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7월과 8월 사이 200mm도 채 안 되는 비가 도곤에 내리면 모래밭에 뿌려놓은 조가 쑥쑥 자라 올라 10월이면 추수를 한다. 조그만 흙창고에 잘라낸 조 이삭을 쌓아두고 한 단씩 꺼내 절구질을 해서 빵을 굽고 죽을 끓여 먹는다.

    아마티네 집 흙지붕 위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다. 우우우~ 욱욱, 이 집 당나귀가 울자 저 집 당나귀가 울고 이어서 염소와 양이 울고 닭이 운다.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손에 잡힐 듯 하고 온 동네 동물들은 대합창을 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동물들의 합창 사이사이로 가느다란 코란의 독경 소리가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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