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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정당’ 자민련의 끝없는 추락

  • 이중근·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묻지마 정당’ 자민련의 끝없는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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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각이 끝난 뒤에도 입각 대상에 거명된 의원들에 대한 당내 견해는 상당히 신랄하다. 한 당직자는 이들을 ‘미운 오리새끼’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 당에서는 젊은 재선의원들이 너무 설친다. 김명예총재를 제외하곤 어려워하는 사람이 없다. 당이 어려움에 처할 땐 오히려 단결해서 당 재건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서로 싸우며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 중진 의원은 “초·재선들이 각 당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우리 당의 경우는 그 도가 지나치다. 다른 당 의원들은 그래도 과거 정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개혁을 부르짖기라도 하는데 우리 당 재선들은 그러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낸다”고 꼬집었다.

소장 의원들간 알력이 자민련 의원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안이지만 알력을 보이고 있는 게 비단 이들만은 아니다. 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김종호 대행과 조부영 부총재 사이도 좋지 않다. 16대 국회 상임위 배정 과정에 국회 부의장인 김대행이 다선의 중진의원들이 선호하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배정된 것이 발단이 돼 이후 두 사람은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

비교적 한직인데다 경력이나 전문성과 무관한 교육위에 배정된 조부총재는 “앞으로 반드시 이것을 문제삼겠다”고 김대행 면전에서 쏘아붙였다. 조부총재는 “국회 부의장인 김대행이 오장섭 총무가 올린 상임위 배정안을 직접 바꾸고 자신이 통외통위를 맡은 것은 총재 대행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앙금을 풀지 않고 있다.

의원들의 분열도 그렇지만 자민련으로 하여금 공당다운 외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하는 기본적인 원인은 정책과 역할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민의와 동떨어진 행태다. 한 고위 당직자는 “솔직히 지금 우리는 공당의 꼴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다른 의원도 “어려울 때일수록 당직자들이 당을 차고 앉아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고 있다”고 자탄했다.



우선 총선 이후 자민련은 모든 정책 논의에서 빠져 있다. 숱한 현안이 발생했는데도 자민련이 나서서 내놓은 대안은 하나도 없다. 안보정당을 자임하면서도 6·15 공동 선언 이후 환경이 변한 남북 관계에 대해 제대로 논의해본 적도, 그럴 듯한 견해를 밝혀본 적도 없다. 김명예총재가 “북한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흥분해서는 안되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가야 한다”고 말한 게 전부다.

당 관계자들은 ‘정책 실종당’이 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원내 교섭단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여야 총무협상에 끼지 못하니 각종 현안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을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 자민련이 주장하는, 제3당으로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과정이 정밀하지 못한 것도 이유다. 캐스팅 보트 행사는 그야말로 말은 쉽지만 어려운 과정이다.

캐스팅 보트는 민의를 정확히 반영할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자민련의 경우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 당리당략만을 위한 행동으로 치부되고 있다. 김명예총재의 말처럼 ‘몽니’로 비치는 것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별다른 정책은 하나 내놓지도 못하면서 의석 수에 비해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여기에 기인한다.

자민련이 전체적으로 민의와는 동떨어지게 행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은 지난 총선 때부터다. 당시 자민련은 총선시민연대의 존재와 활동을 정면으로 부인하면서 퇴행적 정치집단이라는 인상을 줬다.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총선 시민연대의 활동을 ‘불법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나치게 매도했던 것이다. 선거 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적 미스였다는 게 지금의 평가다.

청구동 JP 자택의 당무보고, 골프정치

여기에 자민련을 점점 왜소하고 이상하게 만들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은 김명예총재의 불투명하고 구태의연한 행보다. 김명예총재의 총선 이후 행보는 신당동 자택 칩거와 골프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외적인 공식 활동은 국회에 몇 번 나와 표결에 참석한 것 뿐이다.

신당동(과거에는 청구동이었으나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당동) 자택에 칩거하다보니 온갖 얘기가 도는 것은 당연하다. 공당의 당직자들이 당무 보고를 위해 사저를 자주 찾을 수밖에 없고, 자택에 있다보니 오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도 없어 원내·외 인사들이 집안에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포커를 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특히 총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골프행각은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논총을 받고 있다. 김명예총재가 지난 61년 5·16으로 정계에 등장한 이래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적은 없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골프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예전 같으면 넘어갔음직한 문제도 골프치는 모습과 오버랩 되면 어김없이 증폭돼 부정적으로 비치곤 한다. 김명예총재의 골프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자 측근들은 건강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지난 7월말 김명예총재와 함께 일본으로 가려고 김포공항에 나왔던 부인 박영옥씨는 기자들에게 “왜 유독 우리 양반이 골프치는 것만 그렇게 비난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여사는 “골프는 이제 국제적인 대중 운동 아니냐. 박세리나 박지은이 골프 치는 것은 국위선양이라고 하면서…”라고 따졌다. 김종호 총재직무대행도 “보통 사람들이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이나 JP가 골프를 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항변한다.

김명예총재의 골프 정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골프치는 횟수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 때를 가리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건강삼아 칠 수도 있지만, 경기 지역에서 수해가 발생했는데 그곳에 가서 친다든지, 6·25 기념일에도 필드에 나가는 것은 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생을 살피거나 현안에 천착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처사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점과 관련해 김명예총재의 정치 스타일을 들며 ‘JP 한계론’을 거론한다. 김명예총재는 기본적으로 ‘로맨티스트’여서 난관을 돌파하는 힘이 약하다는 것이다. 같은 3김 중에서도 김영삼 전대통령처럼 저돌적이지도 않고, 김대중 대통령처럼 치밀하지도, 노력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오랫동안 쌓아온 관록으로 시간을 벌면서 틈새가 나타났을 때 절묘한 운신으로 활동 무대를 열어나가는 게 전부라는 분석이다. 권부의 핵심에 오래 있다 보니 일반 국민들의 생각을 잘 읽어내지 못하고, 국정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들어서는 그 유명한 ‘JP식 간접화법’까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선문답이나 주고 받느냐는 것이다. 한 정치학자는 “지도자는 원래 명쾌해야 하는데 JP는 모호하다”면서 “이것이 젊은 층에서 인기가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JP의 모호한 행보에 당 내부도 당황

김명예총재에 대한 젊은 층의 선호도가 극도로 부정적으로 고착화되고, 급기야 여야 소장의원들이 그의 한·일의원연맹회장직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 이런 배경에서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당 운영에 대해서도 그는 늘 두루뭉실하고, 알듯 모를 듯한 태도를 취해 당 관계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늘 “당이 결정해 주면 그 뜻에 따르겠다”고 해놓고 정작 당론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틀어버리는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함께 일했던 당직자들은 얘기한다.

‘재선 4인방’이 집중비난을 받았지만 사실 지난 개각 때 자민련과 김명예총재가 보여준 행태도 모호한 행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자민련은 ‘개각 불참’을 선언했지만 정말 자민련 몫의 장관을 입각시키지 않으려는 것인지 진의를 애초부터 의심받았다.

결과적으로 의심은 적중했다. 자민련 소속 신국환 산자부장관과 김명예총재와 가까운 한갑수 농림부장관이 자민련 대표로 입각했다. 이 때문에 개각 발표 뒤 자민련은 ‘말 바꾸기’로 또 한번 여론의 질타를 받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백보 양보해 신장관의 입각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장관까지 자민련 몫으로 기용됐다는 점에 당 내부에서조차 경악했다. 한동안 자민련 관계자들은 “한 장관은 비록 김명예총재와 친하고 골프도 가끔 치는 사이지만 우리와는 무관하다. 한장관은 우리 당사에 발을 들여놔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결국은 김명예총재가 승인한 인선이었다는 게 확인됐다.

개인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한장관을 천거 또는 승인한 김명예총재의 행동에 당 소속 인사들이 섭섭함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때문인지 한장관은 지난 9일 오후 5시 사전 예고도 없이 자민련 당사를 방문, ‘인사’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일부에선 김명예총재가 오늘의 위기에 처한 원인을 용인술을 들어 분석하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대통령의 ‘가신그룹’과 같이 그에게 직언하며 헌신적으로 보좌하는 인물이 주변에 없다는 얘기다.

가신그룹이 없어서 그로 인한 폐해는 피할 수 있지만 주변에 정치적으로 보좌할 인물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어떤 사람은 “JP 주변을 보면 그가 과연 앞으로 정치를 계속할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이수영 명예총재 비서실장과 김상윤 특보, 강의출 보좌관 정도가 곁을 지키고 있다. 예비역 중령으로 치안감을 지낸 이수영 실장이나 경찰 출신인 김특보의 역할은 거의 일정을 잡는 정도에 머물러 있고, 강보좌관은 수행 전담이다. 정치적인 결정은 김명예총재 혼자서 하고 있다.

김종호대행이나 함석재 사무총장, 오장섭 총무, 정우택 정책위 의장 등 당직자들이 있다지만 마음 편하게 건의할 수 있을 만큼 그와 오래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 입당파다.

사실 김명예총재에게 측근이 없지 않았다. 신민주공화당 창당 때는 김용환 현 한국신당 의장이 있었고, 최각규전부총리도 있었다. 자민련 창당 때는 조부영 부총재 등 창당 공신들이 있었다. 김용환 의장은 한 때 그의 ‘복심’으로까지 불리며 당 일을 야무지게 꾸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조부총재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곁을 떠났다. 그 역시 2인자를 키우지 않고 혼자 끌고 가려는 스타일 때문에 지금 와서는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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