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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궁전’의 고단한 일꾼 웨이터·웨이트리스

성희롱 시비·파업으로 얼룩진 특급호텔의 겉과 속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화려한 궁전’의 고단한 일꾼 웨이터·웨이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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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출근일까지 옛 몸매를 회복하지 못해 담당 매니저에게 ‘한 달만 봐달라, 그 때까지 다 빼겠다’고 사정하는 언니도 봤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런만큼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호텔 업장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호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마스크(얼굴)’다. 로비 라운지에는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 나이트클럽은 화려하고 서구적인 얼굴, 중식당은 동양적 미모 등 업장 성격에 따라 선호하는 ‘마스크’도 다 다르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간 엄수다. 지각 세 번이면 ‘경고’에 처해질 정도다. 호텔에 따라서는 수당 지급에 반영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고 시간관념이 투철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직장이다.

그렇다고 호텔 종업원들이 ‘몸’만 쓰는 것은 아니다. 영어, 일어 회화는 필수. 1년에 한 번씩은 토익 또는 회사 자체에서 출제한 문제로 영어 시험을 쳐야 한다. 새로운 음료, 요리에 대한 지식도 그때그때 익혀야 한다. 특히 바(BAR) 근무자는 수백 가지 주류·음료의 이름과 성분, 아울러 그를 조합한 수십 가지 칵테일을 자유자재로 제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나 업무 습득의 어려움은 정신적 부담에 비하면 오히려 견딜 만한 것이라 한다.

B호텔 프랑스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이정민(가명·25) 씨는 “손님 대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생떼를 쓰거나 여직원이라고 성희롱에 가까운 추파를 던질 땐 정말 이 직업에 회의가 들죠.”



B호텔 직원들은 중견 방송인 K씨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직원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호칭은 대개 “야!” 또는 “아가야”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여직원들의 외모를 일일이 품평하는가 하면 밖에서 특정 웨이트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라, 오늘 나랑 저녁 먹자”는 말도 한다. 때론 너무 심하다 싶어 정중히 항의하고 싶지만 K씨와 호텔 경영진의 오랜 친분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다. K씨의 해코지가 두려운 까닭이다.

검사장 출신 국회의원 L씨는 폭탄주 제조용 잔을 빨리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비스 중인 중식당 직원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멍청한 것!”

C호텔 지하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김미숙(가명·47) 씨는 “장관 국회의원 검사, 그런 사람들이 존대말 쓰는 걸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의원 배지를 버젓이 달고도 대뜸 반말이에요. 제 나이가 벌써 얼만데…. 다른 직원들도 그래요. 소위 ‘사회지도층’ 치고 매너 좋은 사람 드물다구요.”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부터 퍼붓는 사람도 있다. 너 나 몰라, 옆에 앉아 술 따라라, 세 번째 오는 건데 왜 내 식성을 기억 못하냐, 내가 이렇고 저런 사람인데 그렇게밖에 못 모시냐….

요즘은 음료나 요리에 대해 ‘아는 척’하는 손님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젊은 이들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거드름 피우는 모습들을 보면 솔직히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민 씨의 말이다.

“너 얼마짜리야?”

B호텔 도어맨 정성호(가명·31)씨도 간혹 눈물날 만큼 억울하고 속상한 경우를 당한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반말하고 그러는 것쯤은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 겨우 제 또래나 될까 싶은 손님들이 더 심하거든요. 늦은 시간, 술 잔뜩 취해 와 절 상대로 주정을 할 때도 있어요. 야, 일루 와봐, 어디서 눈을 똑바로 떠, 뭐 그런 식인데 그렇다고 화 낼 수 있나요. 무조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멸감을 곱씹는 거죠.”

어렵기는 외국인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독일인은 까다롭고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일본인 단체관광객은 매너 없기로 유명하다. D호텔 중식당에서 일하는 박명진(가명 ·23)씨는 아침식사 시간, 벌써 얼큰히 취한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너 얼마짜리냐”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

여직원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건 외국인이 더하다. 우리나라에서 수려한 외모, 영어회화 실력, 서양식 매너를 고루 갖춘 여성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타국에서는 들뜬 마음까지 더해져 애정공세를 펼치거나 집요하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호텔 밖에서 고객을 만나거나 필요 이상의 접촉을 갖는 것은 금지된 일. 꼭 규칙이 아니어도 낯모르는 손님들의 무분별한 접근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놓고 거절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 불만을 품은 손님이 엉뚱한 트집을 잡아 자신을 곤란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호텔 여직원들에겐 유혹이 많아요. 일단 호텔에서 일한다 하면 남자분들이 ‘찔러나 보자’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아요. 전문직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옛날식 여급을 떠올리는 거죠.”

D호텔 객실관리부에 근무하는 최미향(가명·32) 씨는, 그래서 자신의 평범한 외모가 도리어 부담스럽다고 한다.

“전 딱히 출중한 외모가 필요한 부서에 근무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 눈엔 그게 도리어 이상한가봐요. 호텔엔 으레 예쁜 여자만 다닐 것이라는 식의 이상한 선입견 탓이겠죠.”

남자 직원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 손님도 간혹 있다. 오픈 바 쪽에 가면, 늘 특정 바텐더만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는 여성 고객 한두 명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간혹 고객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대개 남성 쪽이 외국인이다. 우리나라 사람과의 결합은 드문 일이다. 호텔의 성격상 주로 기혼자가 드나드는 데다, 미혼자라 해도 호텔 근무자에 대해 묘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많은 것이 직원들끼리의 결혼이다. 힐튼호텔의 경우 사내 부부가 40여 쌍에 이른다. 전체 직원의 10%에 육박하는 숫자다. 롯데호텔은 더 많다. 가장 큰 이유는 근무 시간. 업장의 경우 보통 오전 7시 출근조와 오후 3시 출근조로 나뉘는데, 상황이 이러니 타 직장 사람, 또는 같은 호텔이라도 부서가 다른 사람과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휴일도 마찬가지여서 달력의 ‘빨간 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이 비번일 때가 곧 휴일인 셈이다. 자연히 같은 부서 직원들끼리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고 생활 사이클도 비슷하니 사랑에 빠지는 건 시간 문제. 직원 상당수가 미혼인 것도 한 이유다.

적은 월급, 높아지는 눈

최미향씨는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때 두 가지 점 때문에 내심 놀랐다고 한다. 첫째는 직원들의 취향이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것, 또 하나는 남녀문제에 대한 생각이 비교적 개방적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고급 상표에 대해 잘 알더라구요. 구찌 프라다 겐조 카르티에…, 뭐 그런 흔한 것들 말고도 속옷은 뭐, 신발은 뭐, 향수는 어떤 어떤 거 하는 식으로. 그냥 이름만 아는 게 아니라 누가 입은 걸 척 보기만 해도 ‘저건 진짜 샤넬, 조건 짜가 버버리’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호텔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도 그렇게 훈련이 되더라구요. 손님들 꾸미고 다니는 거, 대화 내용 같은 걸 보고 듣다 보면 절로 ‘안목’이 생기는 거죠.”

특급호텔을 드나들려면 아무래도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물며 커피 한 잔, 식사 한 끼라도 호텔에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임에야. 특히 점심 나절 카페테리아나 뷔페에서 모임을 갖는 여성들이 직원들의 ‘벤치 마킹’ 대상이다. 연예인도 많이 드나든다. 주변이 다 고급, 오리지널뿐이니 직원들의 눈도 절로 높아진다.

“유니폼 차림일 때는 모르지만 사복 입고 퇴근하는 모습 보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잘 차려입은 사람이 적지 않아요. 우스개 삼아 하는 말이지만, 호텔에선 룸메이드(객실 청소) 아줌마도 1년만 지나면 강남 사모님 뺨치게 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만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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