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마음 비우기 훈련 일주일만에 ‘나’를 찾다”

  • 김정희·월간 우먼 골프 발행인

    입력2006-09-07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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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시절에 읽은 ‘파랑새’라는 동화가 새삼 떠오른다. 치르치르와 미치르 오누이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내용인데, 긴 여행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하여 지쳐서 집에 돌아오니 바로 자기 집에 그 파랑새가 있더라는 얘기다. 이 동화는 전세계에 널리 퍼져서 파랑새는 행복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행복이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어디 그런가? 대부분 밖에서 행복의 조건을 구하고 있다. 나 또한 학창시절에는 ‘그래, 행복은 내 마음에 있는 거야!’ 했건만, 사회로 나오자마자 치열한 경쟁에 쫓기고 외형적인 것을 차지하고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끔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내 마음을 진지하게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월간지를 발간하는 일은 매달 아기를 출산하는 것 같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어서 가뜩이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믿었던 사람들한테 배신까지 당하자 도저히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모든 희망과 의욕이 사라지고, 아픔과 고통만 남았다. 좌절·분노·증오·저주의 심정이 내 마음을 덮었고,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절망의 절벽 끝에서 조용히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였다.

    이런 나를 지켜본 한 지인(知人)이 “당신이 살고 싶으면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하라”고 단호히 말하더니,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울 양재동에 있는 마음수련원으로 끌고 갔다. 며칠 전에 답답한 심정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았으나 시원한 소리를 듣지 못한 나로서는 달리 대안도 없었기에 하자는 대로 따랐다.

    사실 그 동안 참선이니 기공이니 하면서 마음 공부에 대한 여러 정보는 들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던 터였다. 그래서 ‘기왕 왔으니 마음이라도 편해지면 좋겠지’라는 생각에, 그곳 강사의 안내에 따라 공부를 시작하였다. 강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마음이 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니,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쩐지 불교적인 표현 같아서 좀 거부감을 느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 처지니, 마음이라도 안정되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강사의 “이제껏 오직 살려고만 발버둥치며 가지려는 생각만 쌓아왔으니, 그 생각들을 풀려면 우선 마음으로 자기를 죽이고 쌓인 생각들을 던져버려라”는 말에는 반발심이 솟았다.

    그러나 나는 반발심을 억제하고 일단 강사의 안내대로 독방에 가서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려고 하였다. 가만히 있으려니 피곤이 누적된 몸에 잠이 쏟아져서 다리 뻗고 잠만 자고 나왔다. 방석만 깔고 잠시 잤는데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수련 방에만 들어가면 졸음이 쏟아져 아예 방석을 여러 개 가져다가 깔고 덮고 코까지 골면서 잠을 잤다.

    ‘생각으로 나를 죽여라’

    얼마 후 가만히 생각하니 한 달 수련비가 아까웠다. 기왕 돈을 냈으니 잠만 자지 말고 수련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나를 죽여보았다. 예전에 목격한 교통사고를 떠올리며 ‘내가 사고로 죽었다’고 연상하였다. 쉽지 않았다. 역시 죽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으로 죽는 것이지 진짜 죽는 게 아니니, 밑져봐야 본전’이라며 반복해서 나를 죽여 보았다.

    그 후에는 눈을 뜨고 지구로 상징되는 ‘검은 점’(마음수련원에서는 방 벽에 조그마하게 검은 점을 그려 놓고 그것이 지구라고 상상하면서 수련함)에다 어렸을 적부터 기억되는 생각들을 던져버리는 훈련을 했다. 젖먹이 때부터 10살까지, 10살부터 20살까지 10년 단위로 기억된 생각들을 ‘점’으로 던져버렸다. 지구에 살면서 쌓은 생각들이니 지구로 되돌려 보내는 방법이라고 강사는 설명하였다.

    마치 여름철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육체 잃은 혼처럼, 죽은 몸에서 영혼이 점점 하늘로 떠올라 별들이 찬란한 위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기억된 생각들’을 되돌려보내는 기분이었다. 40대까지의 내 인생의 기억들을 모두 버린 후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는 게 수련 방법이었다. 해보니 어려운 수련은 아니었다. 요약하면 마음을 ‘죽이고 버리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련에 재미가 붙었다. 죽이고 버리는 수련을 한 바퀴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졌기 때문이다. ‘야, 이것 봐라!’ 하며 수련의 효과에 점점 몰두하게 되었다. 마치 샤워를 하면 몸이 가뿐해지듯, 한 바퀴 돌릴수록 마음이 시원해졌다. 밥맛이 좋아지고 잠도 오지 않았다. 아니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집에도 안가고 수련원에서 밤새워 수련하던 어느 날, 어릴 적부터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그때부터 난 불쌍한 아이였다. 남한테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남달리 고생하며 살아온 게 억울하고 슬펐다. 한참을 흐느껴 울다가 겨우 진정하고 ‘슬프고 가엾어 하는 생각’도 ‘점(지구)’에 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내가 얼마나 남에게 못되게 굴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고집 세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 때문에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에게 계속 상처를 주어 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미안한지 참회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며칠 전의 흐느낌은 비할 바 아니었다. 한참을 통곡하고 나니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그래, 모두 내 탓이야! 나를 내세우는 버릇과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남도 불행하게 했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는 ‘개체의식’을 벗어나 ‘전체의식’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수련원에서 말했다. 마음은 한없이 평안하고 고요해지고,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는 알 수 없는 희열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신이 났다. 본격적으로 철야를 해가며 수련을 하였다.

    수련 1개월 째인 작년 11월 중순,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나의 참모습이 ‘우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체험이었다. 삼라만상 모두가 바로 ‘나’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를 배신한 그 사람 또한 ‘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순간 이후 내 삶은 예전과 180도 달라졌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하늘도 ‘나’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하나’이기에.

    사회생활 자세도 달라졌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저절로 되었다. 나를 내세우고 살 때는 슬슬 피하던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버린 다음에는 가까이 다가왔다. 뾰족한 이기심의 가시가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덩달아 일도 잘 풀렸다. 드디어 나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은 것이다.

    스님, 목사, 신부가 함께 수련해

    이 마음수련원 공부는 나처럼 인생의 위기에서 하게 된 사람이 많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많은데, 흥미 있는 사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소개받는다는 점이다.

    대다수가 부부간, 부자간, 친구 및 직장 동료의 권유로 이 수련을 하게 된다. 즉 아내가 이 공부를 하면 남편을 하게 하고, 남편은 자식을 공부 시키고, 이렇게 그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줄줄이 안내한다. 그리하여 일가친척이 모두 공부한 집안에서는 서로 도반(道伴)이 되어 도(道)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아직 공부 안한 식구는 왕따(?)가 되는 일도 있다.

    현재 마음수련원은 서울·경기 지역의 10군데를 포함하여 전국에 26곳의 수련 장소가 있다. 회원은 500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 모임은 마음수련에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구성한 친목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수련원의 또 한 가지 특색은 종교를 초월하여 마음수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인의 경우 스님은 물론이고 목사와 신부도 있으며, 기공 수련자와 명상 수행자도 꽤 많다. 심지어 무신론자도 끼어 있다. 서로 종교가 다른 성직자들이 마음수련을 통하여 ‘진리는 하나’라는 말들을 하며 ‘하나의 마음’으로 어울리는 광경은 자못 신기하기까지 하다.

    모든 회원들은 마음의 고향으로 경남 합천의 ‘가야산 수련원’을 꼽는데, 그곳에서는 집중적으로 마음수련을 하고 있다. 이 수련법을 제시한 ‘스승님’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존경을 받고 ‘스승님’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이분은 전혀 도인(道人)같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풍모여서 ‘시골 농부’ ‘소장수’처럼 생겼다고들 말하고, 심지어 ‘소도둑놈’ ‘조폭 두목’ 등 불경스런(?) 애칭으로도 불린다.

    모습이야 어떻든 이분의 인적사항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질 법도 한데, 대다수 회원들이 이름이 무엇인지, 몇 살인지 등 신상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그분이 제시한 ‘죽이고 버리는’ 방법이 위대한 것이지, 개인의 인적사항은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수련을 제시한 스승님은 1952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름은 우승철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던 중, 우연히 한 도인(道人)을 만났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갖고 있던 그 도인은 일반인이 상상하던 도인의 모습과는 전혀 달리 도복도 입지 않고 수염도 기르지 않은, 양복을 입은 말끔한 신사였다고 한다. 도인을 만난 때가 92년인데, 그 도인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96년 1월 깨달음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그가 새로운 마음 수련법을 제창하게 된 배경은 기존 수련법이 지닌 한계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 종교나 사상 및 수련법의 경우 ‘천국에 거듭난다’ ‘깨닫는다’ ‘자아완성’ 등의 목표는 제시하고 있지만, 막상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미흡해 수행자들이 무진 고생을 하면서도 진리를 체득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

    그래서 스승님은 누구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간단한 수련 방법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가야산 수련원에서 이 방법론을 시행하자 즉각적인 실증이 나타났고, 지금도 그 결과를 입증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배출되고 있다.

    가야산 수련원은 여느 지역 수련원과 달리 ‘나는 누구인가?’를 깨닫는 지성(知性)과정을 1주일 안에 체험케 한다. 여타 수련원은 시간날 때 들러서 공부하기에 지성과정이 대개 1개월인데 비해, 가야산에서는 1주일간 집중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주일이면 깨달을 수 있다’ 고 자신감을 표방한다.

    세상에는 나와 달리 평소부터 진리를 추구해온 사람도 많다. 그분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정녕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분들이다. 어떤 분은 아예 세속을 떠나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분들에게 1주일이면 깨달을 수 있다는 소리는 얼핏 해괴하게 들릴 법도 하다.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수행과 수많은 세월이 필요한데, 1주일 동안 독방에 가만히 앉아서 수련하면 깨달을 수 있다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혹시 사기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단 수련을 해보고는 ‘수련을 위한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고들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서울 관악수련원의 최현순 원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영적인 가르침이 이구동성으로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그러나 목표만 제시했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비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다. 그저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겠다고 해서 버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준다. 이것이 가장 큰 매력이고 여타 수행과 다른 특징이다.”

    즉 마음을 비우는 ‘구체적인 방법 제시’가 마음수련회의 남다른 특징이며, 실제로 그 방법론의 효과가 증명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덧붙여 성주암 주지인 송석창 스님은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정의가 분명한 게 이 공부의 뛰어난 점”이라고 말한다.

    “오랜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엇인지,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안개 속을 헤매듯 답답했는데, 여기서는 마음을 ‘기억된 생각들’이라고 명쾌하게 규정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진단이 정확하면 처방은 저절로 뒤따르듯, 마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특히 마음 공부를 중요시하는 불교도 회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음수련법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지난 삶의 기록’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에 보고 겪고 체험한 일을 자기 몸에 기억으로 담아두기 때문에 모두가 거기에 매여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모든 일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과거의 기준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근본을 ‘마음’보다는 ‘몸’에 두고 산다면,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 밤에 잘 때까지 육체가 행하고 사는 모든 것이 힘들고 고달픈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고도 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는 사람이 마음을 닦고 비우고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의 지혜지만, 이것을 실천하며 살기가 힘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마음수련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런 충고를 듣곤 한다.

    “요즘 같이 험하고 힘든 경쟁시대에는 마음을 너무 비워도 못사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마라.”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몸이 죽어도 자신의 때묻은 마음은 죽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는 진리를 모르고 있다.

    놀라운 질병치유 체험

    마음수련원에서는 마음을 비우면 몸과 마음의 건강도 되찾게 될 뿐 아니라, 지혜의 눈도 밝아져서 참된 삶의 길이 보이게 된다고 가르친다.

    마음수련원에 가면 몸이 아픈 사람들도 꽤 있다. 어찌 보면 나와 같이 삶의 역경에서 이 공부를 만나거나, 평소에 진리를 추구하다 이 수련을 찾은 구도자와는 또 다른 부류라 하겠다.

    대개의 환자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여나!’ 하고 온다. 그런데 마음 수련은 질병 치료에도 효험이 있다.

    권길순씨(65)는 작년 10월 중순 수련을 시작한 지 한달 남짓만에 수련생들 사이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사연은 이렇다. 왼쪽발의 살점이 너덜너덜 내장처럼 나오고 밤알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살이 파여 복숭아뼈와 힘줄이 보일 지경이었다. 고통이 시작된 지 30년, 중국의 유명하다는 한의사와 국내 대학병원 등 온갖 곳을 다녀도 모두 절단수술을 권할 뿐이었다. 그러나 차마 다리를 절단할 수 없어서 발을 꽁꽁 싸맨 채 문구점을 운영하며 살았다. 자기 자신도 목욕할 때 참담해서 보지 않을 정도로 환부가 참혹했다. 그녀에게 마음 공부가 소개되었다.

    “마음 공부라니, 시험치는 건가 싶어 안 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이다 싶어 수련을 시작했는데 2∼3일 지나니까 다리가 덜 아팠다. 그 뒤 조금씩 살이 오르더니 얼굴이며 손등의 검버섯까지 없어지더라. 다리도 다리지만 평생 처음으로 후련하고 편한 마음이 된 게 더 좋다.”

    그녀는 이제 완쾌되어 보란 듯이 맨발로 다니며 수련원 식사 일을 도와주고 있다. 이에 대해 수련원 측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생각은 곧 에너지다. 따라서 마음에 어떤 집을 짓느냐에 따라 형상화가 결정된다. 질병도 자신이 꼭 붙잡고 있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나를 놓아버리면, 질병이 앉을 자리가 근본적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막상 수련원 관계자들은 이 공부가 치병요법으로 소문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근본되는 본성(本性), 근본 생명을 깨달아 행복한 자유인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종의 속박을 동반하는 종교화도 추진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진리 그 자체가 되면 족하다는 얘기다.

    마음수련법은 수련생의 진도에 따라 몇단계 과정이 있다. 첫 단계는 사람 마음의 근본(본성)을 아는 ‘지성인(知性人) 과정’이다. 수련생은 1인 1실의 작은 방을 배정받은 뒤 벽을 보고 단정히 앉는다. 벽에는 지구를 상징하는 검은 점이 붙어 있는데, 점을 바라보며 자신이 이미 죽어서 지구 밖을 빠져나와 영혼이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이런 전제를 하는 것에 대해 가야산 수련원 윤성식 강사는 “영혼이 원점에서 출발해 원인무효·원인소멸의 단계를 거치고, 머릿속에서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점(지구)을 바라보며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나이 순서대로 차근히 생각하여, 기억되는 장면들을 모두 지구에 버리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마음수련법 4단계

    앞에서 ‘마음’을 ‘기억된 생각들’이라 규정한다 했는데, 이 기억들이 문제라고 한다. 사람들은 하루에 꼬박 세끼를 챙겨 먹는데, 몇 년 전의 반찬을 기억하고 살진 않는다. 먹고 사는 건 자연(自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미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의 쌓임이 사람을 스스로 속박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마치 녹음된 테이프를 거꾸로 돌려 빈 테이프로 환원시키듯, 기억들을 버려 순수한 본성을 확인케 한다는 것이 마음 수련의 과정이다.

    떠오른 장면이 마치 블랙홀에 빠지듯, 점에 빨려 들어간다고 상상하며 떠오르는 모든 기억을 버린다. 이처럼 떠오르는 장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윤성식 강사는 “사람의 상념에 맺힌 기억은 97% 이상 눈(시각)을 통해 저장된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 한다.

    시각화된 과거를 차례로 버리다 보면, 그 당시 맺힌 슬픔이나 고통이나 한도 버리게 된다. 이 과정에 대부분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창조한 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많이들 참회한다. 어떤 부부는 이혼 직전에 이 공부를 해보기로 하였다. 선배되는 분이 마음 공부나 해보고 이혼을 결정하라 했다는 것이다. 올 때는 각기 다른 차를 타고 오고 찬바람이 쌩쌩 돌았는데, 불과 3일 만에 서로 참회하며 화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죽이고 버리는 과정과 ‘이 모든 것을 버리고도 남는 나는 누구인가’를 응시하다 보면, 개체 마음 아닌 전체 마음을 깨닫게 된다. 남녀노소나 연령·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깨닫는 것을 보았다. 단 스스로 공부 안 하는 사람은 예외였다.

    이렇게 자기가 삼라만상과 하나라는 이치를 깨닫게 되면, 자기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전체의식으로 보게 되는 안목이 생기며, 어떤 감정을 품는다 해도 그 감정 속에 머물지 않는,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자유자재한 행복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대개 수련생은 진리를 체험했어도 진리 그 자체가 되기는 어렵기에, 철저히 진리와 하나 되게끔 다음 과정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사람 마음에서 벗어나 본성에 드는 ‘입성인(入性人) 과정’이 있고, 세 번째는 ‘몸과 마음이 하나이고,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알아 본성에 일치’ 하는 ‘전인(全人) 과정’이 있다. 나의 경우는 지성인 과정을 마친 후 한 달 만에 입성과 전인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끝 단계인 전인완성과정 수련을 하고 있다. 입성인 과정부터는 굳이 독방에 있거나 점을 응시할 필요가 없기에 일상생활 속에서 ‘죽이고 버리는’ 수행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마음 수련원 강사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지성인 과정에서는 수시로 수련생을 방문하여 ‘잘 죽어지는지, 잘 버리는지’를 점검하는데,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질문이 각양각색이다.

    어떤 경우엔 소설보다 기구한 인생의 하소연을 들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강사들은 마음수련 공부를 마친 사람 중에서 소정의 ‘강사 수습’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인데, 남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역할을 하므로 스스로의 마음을 철저히 벗어난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강사수습을 마친 사람 중에서도 엄선하여 각 수련원에 배치하는데, 이분들은 ‘나를 이미 버렸기에’ 상대방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척 보면 상대방을 파악하여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수련생 교육을 위한 특별한 교재도 없다. 지성인 과정에서는 귀찮을 정도로 찾아와 공부를 지도하지만, 다음 과정부터는 수련생 스스로가 강사를 찾아가 공부를 점검 받는다. 필자의 경우는 요즘 1주일에 한번 정도 강사를 방문하거나 가야산 수련원에 내려간다.

    마음수련원에는 다양한 연령층과 분야의 사람들이 거쳐가는데, 그들은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달라졌는가?

    우선 ‘일주일이면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야산 수련원을 찾은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련원은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의 고시원 건물(서경고시원)을 임시로 빌려 사용하는데, 사람들의 복장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여성들도 헐렁한 옷에 화장도 안하고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그 표정은 심각하기 짝이 없다.

    더러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 보이지만, 그들은 전인과정 이상인 사람들이고, 지성인 과정에서는 철저히 ‘묵언’을 요구한다.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대화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남은 어떻게 공부하나 하는 궁금증 또한 버릴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답답함을 풀지 못한 수련생의 얼굴은 심각 그 자체다. 그러나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 차고 빛이 난다.

    작년 가을 가야산 수련원을 찾은 정신과의사인 국군광주병원 김재환 정신과장은 사춘기 때부터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으로 진학을 하였으며, 정신과 수련을 받으면서 결국 성인(聖人)이 되지 않으면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동료 정신과 의사로부터 “10년 동안 노력했으나 얻지 못했던 도(道)를 단 1주일 만에 얻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즉시 가야산을 찾을 작정을 하였다. 첫날 강의에서 마음에 대한 정의와 마음 비우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고 한다. 정신치료의 내용과 다름없었고,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결국 하나임을 확인하였다.

    배정된 방에 가서 ‘마음 비우기’공부를 시작하였으나 무의식에 쌓인 갈등이 쉽게 떨쳐지지 않아 무진 고생을 한 후, 본격적으로 기억들이 버려지기 시작하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급기야 마음이 순수의식, 우주의식 그 자체가 되는 체험을 맛보았다 한다.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며, 이 방법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보다 수십만배 값진 위대한 발견이고 인류의 큰 자산이라고 술회한다.

    “그 이유는 마음의 이치를 쉽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마음을 닦고 비워야 한다는 말은 수없이 있었지만,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어디까지 비워야 하는지의 방법이 없었다. 있었다 해도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또 너무 어려웠다. 수많은 종교인과 수도자들이 평생을 바쳐서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았다 하나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거리가 멀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하늘의 복을 받았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장세원씨(김·장법률사무소 고문)는 일찍이 도(道)에 관심이 많아 책도 보고 강의도 열심히 들었지만 마음에 확실히 와닿지 않아서 아쉬움을 느끼다가, 이 공부를 통해 진리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항상 편안하고 거리낌이나 두려움이 없어졌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열렸고 순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하고자 하는 일은 곧 성취가 되더라.”

    그는 체질도 변했는지 오랜 위장병도 치유되었다고 한다.

    나 중심이 아닌 상대방 중심

    또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권기현 교수는 원래 진리에 대한 갈망이 커서 진리에 대한 서적이나 수행이 있으면 만사를 제치고 찾아다니곤 했는데, 미국 하버드대학 유학 시절 만난 선배의 소개로 마음수련원을 찾아 마침내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었냐고 묻자 “지혜와 복락(福樂)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느냐고 묻자 그는 예를 들었다.

    “얼마전 국회의원 2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지식인으로서 ‘정보화사회’에 대한 지식을 공급하는 공급자 입장에 머물렀을 것이다. 강단에 서니 수강 태도가 불량하였다. ‘지까짓 게 하버드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들 젊은 놈이 뭘 알겠어?’라는 생각으로 중진의원들은 아예 잠이나 자려는 듯 다리를 길게 뻗고 누울 태세였다. 예전 같았으면 오기가 치솟아 ‘뭔가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강단에 선 특권을 빌미로 비판도 해가면서 신랄한 내용의 강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수련 이후 ‘전체의 입장’을 지니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강단에 서서 2∼3분간 침묵 속에 명상하며 ‘저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국회의원들도 연단에 오른 강사가 아무 말도 안하고 침묵을 지키자 좀 이상했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 떠오른 생각은 ‘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유권자들의 표다. 21세기 정보화시대를 안내하는 강의가 아니다’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국회의원 여러분!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마련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에 표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아십니까?’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의장의 분위기는 아연 돌변하였고, 길게 누웠던 중진의원들도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하고 필기 준비를 하였다. 그날 강의는 조는 사람 하나 없이 심도 깊게 진행되었으며, 강의 후에도 열화와 같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즉 내가 공급자 입장에서 수요자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나 중심에서 상대방 중심으로 사고방식이 변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개체의‘나’가 아니라 상대방과‘하나’인 삶을 살게 된 것이 구체적인 변화이다.”

    권기현교수의 변화를 부인 이주영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남편은 원래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긴 하지만 학자 특유의 이기심이 있었지요. 가족보다는 연구가 우선이었어요. 그런데 마음 공부 후에는 연구에만 치우치지 않고 가족도 중요하게 배려하는 균형잡힌 모습을 보입니다. 가끔 설거지도 도와주는데,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노원구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교사 오화자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고생하던 동료 교사가 마음 수련 후 평안을 찾은 모습을 보고 수련원을 찾았다고 한다. 가까운 미아리 수련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 “예전엔 사람들의 단점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이 귀하게 보이고, 그 사람이 인정 못받는 게 불쌍해 보이고, 장점이 눈에 띈다”면서 가정에서의 변모된 모습도 이렇게 전한다.

    “전에는 자식들이 남보다 잘하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란다. 남편의 잔소리도 역겹고 거슬리는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저것도 사랑의 표현이다’고 이해해 준다. 어떤 표현 방법을 문제삼지 않고, 나에게 관심 갖는 그 마음을 귀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직장 동료들과도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것도 나의 모습이다’ 라고 여긴다. 나서기 좋아하는 동료를 보면 비웃고 깔보고 교사답지 못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저것도 내 모습이다. 나 또한 잘났다고 설쳐댈 때 남들은 얼마나 꼴불견으로 여겼을까?’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또 학생들에 대한 자세도 바뀌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실은 말썽꾸러기도 많고 시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소리치고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녹초가 되기 마련입니다.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해집니다. 이제 마음 공부를 했다고 해서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그 내용이 달라요. 지금도 여전히 교실에서 야단을 치지만, 거기에 ‘내’가 없어요. 그러니 맺히는 것도 없고 피곤함도 못 느끼게 되더라구요.”

    입에서 입으로 소문나

    공인회계사인 정탁씨(안전회계법인 전무이사)는 마음수련을 한 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산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진리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만족감,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날카롭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요즘은 부드러워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건강도 아주 좋아졌구요.”

    한민족운동단체연합 이재룡 상임의장은 “마음 공부 후 일체의 시비분별과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감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혹시 소외된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게 되고요. 38년 생이니 60대인데도 불구하고 가야산 수련원을 다녀온 후 50대로 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얼굴이 한층 동안이 되었다고들 하는데, 건강이 더욱 좋아진 걸 느낍니다”하고 말한다.

    아마도 마음 수련을 한 5000여명의 사연은 구구각색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눈여겨 본 부류는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던 사람들이다.

    요즘은 국제화 시대여서인지 도를 구하러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결국은 ‘나’를 짊어지고 다니고 ‘마음’을 품고 다니기에 고생만 한다. 밖에서 찾아서는 도를 구할 수가 없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도인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고 쫓아가 보았다는 어느 회원은 그 동안 헛고생했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래도 이제 도를 찾았으니 천만다행이다. 역시 진리는 어느 인물이나 장소보다는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며 다행스러워 했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다단해지고 새로운 문명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사람은 결국 마음으로 살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파랑새는 결국 마음을 깨쳐야 찾을 수 있다.

    서울·경기지역 마음수련친목회 강희돈(교육학 박사) 회장은 마음수련원의 앞날을 이렇게 전망한다.

    “마음수련 친목회는 출발한 지 이제 3년밖에 안 되며 홍보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소문으로 이미 5000명이 넘게 수련을 하고 있으며, 이 추세는 점차 가속될 것이다. 특히 이 수련 방법은 기성 종교인에게 자기네 종교를 한층 잘 이해하게 하는 열린 분위기를 지니고 있으므로, 종교인구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폭넓게 수용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

    어쨌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사는 한, 마음 수련원을 찾는 발길은 그치지 않을 것 같다.(문의:055-931-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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