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기로의 北美관계 김정일 서울답방에 달렸다

  • 송문홍·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입력2006-08-11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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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미 합동세미나 ‘동북아시아 포럼 2000’이 열렸다. 한국측에서 서울 국제포럼과 세계경제연구원, 미국측에서 브루킹스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행사였다. ‘아시아 경제회복:국제무역과 금융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 주변국: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대통령선거와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역할’ 등 몇 개 세션으로 나뉘어 하루 종일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하고,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가 오찬 특별연설을 하는 등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행사였다. 당연히 세미나장에는 한·미 양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에서 온 ‘낯익은’ 얼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세미나 며칠 뒤 기자는 서울 국제포럼의 회원인 한 원로 정치학자와 대화를 나눴다. 기자가 “미국정부 안팎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이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뭔가 한국측에 전달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그런 형식의 자리를 빌려 내비치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소감을 말했더니 그 인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그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지금 겉으로는 남북관계 진전을 바란다고 말하지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11월 대통령 선거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미국 국내 사정에서 볼 때 그 인사의 말은 타당할 수 있다. 미국의 대선 캠페인에서 외교정책, 그중에서도 한반도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소한 미국 대선이 끝나는 11월 이전에 북미관계에서도 어떤 획기적인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그러나 설령 “미국이 지금 한반도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기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위의 말을 한 인사도 7일 세미나에서는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아무리 애써도 결국 마지막 카드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만, 그런 북한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의 머리에 씌워 둔 ‘테러국가’라는 고깔을 벗겨주고 경제제재를 풀어주는 등 미국의 긍정적 움직임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목소리

    그러나 지금 국내에서 ‘미국통’으로 꼽히는 전문가들은 앞의 인사처럼 그렇게 ‘태평스러운’ 마음상태가 아닌 게 사실이다. 북미관계는 대선 캠페인 때문에 당분간 제자리 걸음을 한다고 치더라도, 걱정스러운 것은 정작 한미관계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미국쪽에 나름의 정보 소스를 갖고 있는 그들로서는 미국측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심상치 않게 들릴 법도 하다. 우선 그들이 전하는 ‘미국의 목소리’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가장 중요한 시그널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는 김정일 서울답방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내년부터는 한국에도 차기 대권경쟁이 본격화되고 김대통령도 서서히 레임덕에 접어들게 된다고 볼 때, 내년 봄까지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오지 않는다면 김대통령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상당한 곤경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김정일 서울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지만, 과연 한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 미국측 인사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K대 H교수)

    “내가 사적으로 접한 미국측 인사들은 ‘한·미·일 공조체제는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고들 얘기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는 한·미·일이 한자리에 앉아 ‘협의(consult)’하는 게 아니라 한국정부가 ‘우리는 이렇게 하겠다’고 통보(inform)하는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미국은 지금 자기들이 구름 속에 떠 있는 비행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느낌이고, 그래서 무척 당황해하고 있다.”(S대 K교수)

    “한 미국측 지인이 ‘남북관계는 잘돼 간다면서 한국의 주가는 왜 그렇게 떨어지느냐’고 묻더라. 이건 결국 최근 남북관계가 거품이 아니냐는 건데, 미국측 인사들은 기본적으로 김대통령이 남북관계를 너무 이벤트성으로 몰고가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정부산하 연구소의 Y박사)

    “사실 미국은 그동안 주한미군의 장기적 주둔 방안에 대해서 본격적인 한미 공동연구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이후로는 그런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미국측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안보 면에서는 변한 게 전혀 없는데, 김대통령이 너무 서두른다고 보는 것 같다.”(또 다른 정부산하 연구소의 K박사)

    정리하면, 미국은 한국정부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한국이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걱정, ‘한국이 대북정책 주도권을 확실하게 가져갔다’는 소외감 등등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두고 보자(wait and see)”

    그러나 9월7일 세미나에 미국측 발제자로 참석했던 베이츠 길(Bates Gill)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한반도 상황과 한국정부의 독주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북한이 진정으로 변화의 길로 접어들었는지에 의심하고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지 좀 더 지켜본다(wait and see)는 정도”라는 것이다.

    결국 최근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둘러싸고 빚어진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한국측에선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전략적 방향전환을 했다는 평가가 (최소한 정부 사이드에서는) 지배적이지만, 미국으로서는 아직까지 ‘북한의 변화’를 입증해줄 구체적인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급진전된 남북관계를 둘러싼 남북한과 미국의 속사정을 대충 그려볼 수 있다.

    한국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지난 2년 남짓 일관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찬란한 성과로 인식한다. 한국은 한·미·일 3각공조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하지만, 한반도의 향후 운명을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낸 게 사실이다.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 주도로 일관돼온 물꼬를 남북정상회담이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한 원로 정치학자의 말처럼 한미 양측에서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는 것이다.

    한편,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고수하던 북한이 갑자기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 차기 대선 경쟁에 돌입해 있는 미국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북미관계에 돌파구를 열어줄 가능성이 낮고 ▲ 남쪽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영향력이 건재할 때 모종의 성과를 추구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남북관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를 이끌어내기 위한 우회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8월12일 방북언론사 대표단과 함께 한 오찬간담회에서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벗겨준다면 내일이라도 북미수교를 하겠다”고 언명한 것이 북한의 입장을 요약해준다는 것.

    미국의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막후에서 중국이 일종의 ‘중개자’로 부상하고 상대적으로 미국은 소외됐다는 데에 기분이 좀 상했을 수 있다. 미국은 남북간에 화해 물꼬가 열리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지만, 이산가족 상봉문제처럼 원천적으로 제3자의 개입 여지가 거의 없는 사안도 있었다.

    미국이 북한문제에서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여서 한국과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을 보면 남북간에 안보문제에 대한 협의는 거의 없다. 오히려 6·15 공동선언 1항에 주한미군의 장래와 직결될 수 있는 ‘자주(自主)’ 문제가 갑자기 등장했다. 물론 그 후 김대통령이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대해 북한도 납득했다”고 말했고, 또 조만간 남북 국방장관급 회담이 열린다고 하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미국의 주된 관심사인 핵·미사일 등 안보문제에 대한 남북간 논의구조는 형성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남북 화해무드에도 미국이 얻은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최근의 북미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해보면, 대선 레이스에 골몰해 있는 미국보다는 오히려 북한쪽에서 북미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인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동안 정보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 민주당 고어 후보의 방북설(그러나 이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처음부터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올 가을 전격 방미설 등이 흘러나오기도 했는데, 이런 루머들은 북미관계에서 돌파구를 열려는 북한의 조급증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됐었다.

    아무튼 미국으로선 아직까지 남북 화해 무드로 인해 이득을 취한 게 없다. 오히려 남북간의 급속한 ‘밀월관계’ 형성으로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전략, 나아가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전략을 일정 부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주한미군 문제만 해도 그동안 한미 양측에서 “통일 이후에도 계속 주둔할 것”이라는 얘기가 줄기차게 나왔지만, 이 문제가 그런 단순한 말 한 마디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느낄 수 있다. 이와 관련,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얼마 뒤인 6월21일 ‘워싱턴 포스트’가 게재한 기사가 미국측의 복잡한 심사를 일부분 대변해줬다. 남북정상회담이 ‘2개 주요지역의 우발사태 대비(two major regional contingency)’ 등 미국의 군사전략 골격에 가져올 여파에 대한 미 국방관계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전하고 있는 이 기사에서 미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거품”이며 “북한 군부가 지난 겨울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대규모의 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이다.

    이 기사는 또 안보전문가들 사이에 지배적인 견해는 ‘한반도의 화해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을 유발하리라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주한미군 철수 압력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논외로 치더라도, 주한미군 문제를 바라보는 동북아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도 얽히고 설켜 있다. 다음은 국제정보 분석기관인 ‘스트랫포(Stratfor)’의 보고서(7월28일자) 중 한 대목.

    “(남북정상회담에서) 한 달 가량이 지난 후, 러시아와 중국은 미군의 계속 주둔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미군의 계속 주둔, 특히 통일 이후 미국의 역할에 의구심을 보였다. 중국의 ‘해방군보’(7월10일자)도 ‘한반도의 미군 주둔이 점점 더 부적절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중략)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몇 년간 ‘전략적 동맹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두 나라는 여전히 지역의 경쟁자다. (중략) 더욱이 주한미군의 철수는 경쟁관계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완충지대가 제거됨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방위력 확대를 자극하게 되고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평양, 서울, 도쿄, 워싱턴, 심지어 베이징까지도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듯하지만 각자는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향후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한 일치점을 찾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주한미군 문제는 동북아 전체 안보의 틀을 바꿀 핵심 사안이고, 주변국들은 그 변화가 자국에 끼칠 영향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해프닝’의 진실은?

    당장 남북간에 현안이 돼 있는 경의선 복원과 관련, 지뢰제거 문제도 결코 간단치 않다. 지뢰는 현재 한국에 약 120만 개, 북한에 약 100만 개가 매설돼 있다. 지뢰는 이른바 미국의 대한국 군사전략에서 결정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북한의 침략을 제어하는 핵심 무기라는 게 미 군사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 미국이 대인지뢰의 사용·비축·생산 및 이동을 금지하는 1997년 오타와협약에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해가면서 끝내 서명하지 않은 이유 중 한 가지도 오타와협약이 한국을 예외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국제지뢰제거운동(ICBL, 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은 개전 초기에 새 지뢰 약 100만 개를 매설하게 돼 있다.

    그런데 남북간에 경의선 복원이 전격적으로 합의되면서 이런 기존 방어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경의선 복원을 위해서는 지뢰 제거가 필수적인데, 미 국방당국과 이를 위한 사전 협의를 안했다는 것. 국내 한 미국통은 “미국, 특히 보수성향의 안보관계자들로서는 한국이 최근 보여주는 독자적인 행보에 불쾌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불쾌감의 원인은 한국의 행보에도 있지만 그 근원은 역시 뿌리깊은 대북 불신감에서 비롯된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말이다. 특히 공화당과 전통적으로 공화계열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온 군사·안보분야 인사들은 그런 감정을 숨김없이 토로해왔고, 최근 남북해빙 무드에 대해서도 냉담한 편이라는 것.

    9월6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일행이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미 항공사 직원들에게 몸수색을 당하고 미국행을 취소해버린 ‘해프닝’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한 정보전문가는 “미국 정보기관이 김영남 위원장 일행의 여정을 몰랐다는 것은 난센스이며, 미국내 보수강경 세력이 의도적으로 이런 사건을 일으켜 최근 한반도 기류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 것으로 본다”고 단정했다.

    미국내 대북 보수파의 시각은 미 하원 정책위원회(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가 지난 7월27일 제출한 정책건의서에도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공화당 콕스 의원은 이 보고서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지원정책을 ‘진짜 미친 정책(truly mad policy)’라는 격한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다음은 그중 한 대목.

    “북한은 단순한 독재국가가 아니다. 극악무도한 폭정이 독특한 이 나라는, 반세기에 걸쳐 주민을 괴롭혔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전체주의와 군사 국가를 조성했다. 오늘날 국가 경제가 붕괴 위험에 처해 비틀거리는데도 북한은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국익에 지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략)

    클린턴 행정부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비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김정일은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서서 웃었지만, 그 순간에도 김정일은 핵폭탄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오늘 이 순간에도 계속하고 있다. 클린턴-고어가 제공하는 해외 원조를 받아가며 지금까지도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 대선과 남북한

    그러면 미 대선은 향후 한반도 기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리고 민주·공화 양당의 한반도정책은 어떻게 다른가. 이에 대해 9월7일 세미나에 미국측 발제자로 나온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은 “현재 진행중인 대선 레이스의 핵심 쟁점에 외교정책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양당이 발표한 정강에서 외교정책 분야를 보면 세계관의 차이가 드러난다. 그러나 누가 당선되건 간에 실제 집권한 뒤의 정책은 정강과 다를 수 있다. 외교정책은 초당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후보들은 원래 사려깊지 못한 약속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나는 11월까지는 물론 새 행정부가 집권한 뒤인 내년 봄까지도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는 또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지역은 전통적으로 공화당과 연관이 깊던 지역인데, 이런 추세가 최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와는 달리 민주당 행정부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의 한 미국통은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 대북정책에서 민주당 정부보다 한결 원칙적이고 냉담한 자세로 나올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예컨대 북한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결과는 이것이다(Take it or leave it)’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 반면에 현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경우 최근의 화해무드를 이끌어낸 김대통령에 대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 대선 경쟁에서 공화당이 민주당 정부를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아무튼 현재로서는 누가 당선될지 오리무중이지만, 미 대선 결과가 향후 한반도 기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북한의 중장기적 경제회생 전략이 이 결과에 달려 있고,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또한 여기에 크게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원로학자는 “미국의 정책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우리의 의지와 행동”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일관된 태도와 논리로 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볼 때 미국을 좀더 확실한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에 진정한 화해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일이 현실화되기까지 한국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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