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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문화 속의 우리말 탐험

이란 인도 태국에서 찾아낸 한국어의 흔적

  • 김병관·문화탐험가·농학박사

이란 인도 태국에서 찾아낸 한국어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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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라는 인칭대명사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하였을 것이다. 즉 우리 조상들이 처음 말이라는 것을 사용했을 때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본 낱말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낱말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도 사용하는 ‘나’와 ‘너’라는 낱말은 과연 이 세상 어느 민족의것과 유사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 ‘나’와 ‘너’는 첫째 드라비다어 및 라후어와 귀신이 곡할 정도로 일치하고 다음 미얀마어와도 아주 유사하다.

참고로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미얀마어를 시노-티베트어로 분류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인도-아리안어로 분류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왜냐하면 미얀마 어법은 시노-티베트어와 기본적으로 유사하지 않고, 오히려 고대 인도의 팔리어를 기층으로 하고 거기다가 일부 힌디어를 차용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어의 ‘니’와 우리말 ‘너(니)’도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말 ‘나’ 및 ‘너(니)’와 모두 일치하는 것은 라후어, 드라비다어, 미얀마어, 아카어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드라비다어와 라후어에는 시노-티베트어, 인도-아리안 계통의 언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사의 활용마저 우리말과 똑같은데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드라비다어 ‘누’는 우리말의 주제격 보조사 ‘는’과 일치하고, 라후어의 주제격 보조사 ‘래’는 지금도 북한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다. 또 라후어의 목적격 조사 ‘타’는 우리의 여격조사 ‘한(테)’, 그리고 아이누어의 목적격 조사 ‘타’와 일치한다.



알타이어에도 조사가 있지만 우리말과 유사한 것은 오직 향진격 조사 ‘-로’와 여격 조사 ‘-에’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구상의 많은 언어들은 조사가 없기 때문에 대명사, 목적어 또는 보어 앞 뒤에 붙는 동사가 이 역할을 하든지 따로 전치사를 써서 말이 통하는 문장 형식을 취한다. 특히 터키어나 태국어의 소유격은 수식하는 명사의 순서를 뒤바꿔 놓아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한편 라후어의 인칭 복수형 나흐(우리들), 너흐(너희들)는 우리말 복수형과도 맥이 통한다. 라후족은 고구려 유민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니 언어의 일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칭대명사에 관한 더욱 놀라운 발견은 지정학적으로 인도와 우리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위치에 있는 미얀마의 말에 있다.

우리나라 말과 미얀마어, 라후어, 드라비다어와의 유사점은 인칭대명사 뿐만이 아니다. 서울대 언어학과 이현복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말의 음성학적인 특징인 음운의 삼중 대립현상(音韻 三中對立 現象)이 미얀마어, 라후어, 아카어, 태국어 등에서 발견된다고 하였는데, 이 점도 그들의 말이 우리말과 한 갈래였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될 것이다

예) 달(月) 탈(假面) 딸(女息)

일본의 몇몇 언어학자들은 우리말과 인도 드라비다어의 유사점을 들어 두 민족 사이에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 주장은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면도 없지 않다.

드라비다족은 시베리아 중남부에서 남하해서 인도대륙에 흩어져 살던 종족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는 아리안어족이 인도대륙으로 침입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오히려 최초의 우리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집단이 인도 대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통과할 때 이미 그곳으로 내려와 정착해서 살고 있던 드라비다족과 오랫동안 가깝게 접촉할 수 있었으며, 이때 부르기 쉬운 단음절의 ‘너’와 ‘나’라는 낱말을 그들로부터 차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왜냐하면 우리말의 기본 어휘 중 상당수가 드라비다어보다는 오히려 소아시아 지방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가설은 우리 조상들이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던 인도대륙에 도달하기 전에 만났으리라 생각되는 아리안어계의 다리어(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에서 우리의 것과 닮은 문장 형태가 발견된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될 수 있다.

필자가 조사한 다리어, 드라비다어, 미얀마어, 라후어 등의 문장 순서는 우리 것과 아주 유사한 것이 확실한데, 과연 우리 주변 다른 민족들의 말도 그럴까? 그러나 시노-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나 태국어는 우리와 문장구조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주어-술어-목적어(또는 보어)의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어와 유사한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나’와 ‘너’라는 낱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흑해나 카스피해 부근에서 출발하여 인도 대륙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와 ‘너’를 어떻게 불렀겠느냐는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만 가능성이 있는 추측은 ‘나’를 영어에서는 ‘아이’, 아랍어에서는 ‘아나’라 부르고, ‘너’를 고대영어에서는 ‘디’, 아랍어에서는 ‘안따’라고 호칭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발음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금도 남도 사투리로는 ‘너’를 호칭할 때 ‘지’라고 부른다. 고대영어의 ‘너’라는 말 ‘디’와 우리말 ‘지’는 발음과 음절이 아주 흡사하다.

(2)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본족의 말 중 이인칭 ‘너’에 해당되는 ‘안따’와 ‘너’를 가리키는 아랍어 ‘안따’는 서로 언어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즉 한반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드라비다어족으로부터 차용한 말(차용어)을 고정시켜버린 반면 일본열도로 들어간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나뉘어갈 때까지도 함께 사용하던 ‘너’와 ‘안따’중 ‘안따’가 일반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너’ 이외에 서남쪽에서 온 또 다른 원시어휘는 없을까?

우리말 수사(數詞)의 고향을 찾아서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서 젖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우는 말 ‘하나’ ‘둘’ ‘셋’을 추적해보자.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사냥한 동물이나 물고기를 헤아릴 필요가 있었고, 또 들이나 산에서 채취한 열매를 부족원들에게 공평히 나누어주기 위해서도 수사(數詞)인 하나, 둘, 셋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 둘, 셋은 옛날 그 옛날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원시어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여기서 우리 말 ‘둘’과 ‘셋’은 아리안어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고, ‘하나’도 그리스어 ‘에나’, 다리어 ‘액’, 산스크리트어 ‘엑카’ 등과 어원이 같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의 전(前)단계라고 할 수 있는 ‘애’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첫, 처음, 어린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예; 애기, 애당초, 논애벌매기, 애벌빨래 등)

우연의 일치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을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보았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면, 어느 때인가 우리 조상들은 흑해 또는 카스피해 근처에서 살던 코카시안족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처음 코카서스 지방에서 살았을 때, 우리 조상들은 그리스어와 같이 ‘에나’‘디오’하고 하나, 둘을 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동쪽으로 옮겨 지금의 다리어 지역인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중앙 아시아지역을 거치면서 그곳에 먼저 와 살던 또 다른 아리안 계통의 사람들에게서 둘과 셋을 차용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가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셈법(數詞)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 천년 전 우리 조상의 시초를 짐작케 하는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둘(2)이란 숫자에 있다. 이 둘이란 숫자를 가지고 우리의 조상들이 지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길을 먼 곳에서부터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

―→ 이탈리아어 [두에] ―→ 영어[투]

―→ 그리스어 [디오]

―→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다리어 [두] → 파키스탄의 우루두어 [두]

한국어 [둘,두] ← 인도네시아어[두아] ←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드바] ←

거기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둘(2)에서 파생되어 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낱말의 뜻도 한국어와 아리안어가 똑같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 선조들과는 혈연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민족들의 둘(2)에 관한 호칭을 적어본다. 중국과 몽골 민족들은 우리와 이웃해 살고 있지만, 그들의 셈법은 우리와 너무나 다르다.

핀란드어[깍씨] ← 터키·우즈베크어[이키] ← 몽고어[하여르] … 우랄-알타이어

태국어[송] ← 중국어[알] … 시노-티베트어

그러나 셈법에 있어 우리말의 넷부터는 그 근원이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들이 먼 소아시아 지방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수만km를 이동했을 당시, 기층민에게 넷 이상의 숫자 개념이 생활화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아리안 어족끼리도 하나부터 셋까지는 대개 유사한데 넷부터는 상당히 다른 점으로 보아도 이와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또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선 오늘날 파푸아-뉴기니, 수마트라, 태국 북부에 사는 어떤 부족들은 셋 이상의 숫자를 셈할 줄 모른다니 지금으로부터 수 천년 전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음 넷부터 열까지의 숫자를 언어별로 조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위 표에서 보듯이, ‘넷’부터 ‘열’까지는 우리말과 비슷한 언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넷은 핀란드어의 ‘넬리아’나 타미르어(인도 남부 드라비다어의 일종)의 ‘나러’와 비슷하고, 여섯은 그리스어 ‘엑시’에, 열을 가리키는 고구려어 ‘더’가 다리어 ‘다’나 일본어 ‘도’에 근원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되지만 확실치 않다. 다만 이 가운데서 고구려어 ‘더’는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다리어, 영어, 일본어 등과 근원이 같다고 본다.

수사의 어원에 대하여

다음은 가설 단계지만, ‘하나’에서 ‘넷’까지의 어원(語源)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처음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이 생성되고 그로 인해 시작된다는 의미거나 혹은 초기적인 단계나 상태를 나타낸다.

‘둘’은 하나에 또 ‘하나’를 더한다는 뜻이다. 즉 영어의 더블(double)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셋’은 ‘하나’에 또 하나의 ‘하나’를 더하면 ‘새로워’진다거나 또는 ‘새로운’ 것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넷’은 ‘셋’에서 나왔다는 생각, 즉 ‘셋’으로부터 ‘내렸다’는 발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부터는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독자적으로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크므로 처음 ‘하나’에서 ‘넷’까지의 어원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어린아이들은 종종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수를 헤아린다. 아마도 지능이 덜 발달되었을 우리 조상들도 손가락을 가지고 셈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다섯’부터는 수를 헤아리는 낱말이 손가락의 동작과 형태 등에 관련돼 있다는 가정 하에서 출발하여야 된다.

‘다섯’은 ‘하나’를 헤아릴 때부터 오므리기 시작한 손가락이 다섯을 셀 때는 마지막 새끼손가락까지 다 오므려져서 이젠 더 이상 오므릴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서 온 낱말일 것이다. 즉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썼다’는 뜻에서 ‘다섯’이 되지 않았을까?

‘여섯’은 ‘다섯’을 셀 때까지 다 오므린 손가락을 다시 펴는 데(여는 데)서 나온 말인데 즉 손가락이 ‘열’려서 곧바로 ‘서’ 있는 모양이 되었다는 뜻에서 생겨난 낱말이라고 생각된다. 즉 ‘열려서 서 있다’가 ‘여섯’이 된 것이다.

다음 ‘일곱’은 먼저 ‘여섯’을 셀 때 손가락 한 개를 열고 곧바로 세웠는데 그 다음 ‘일곱’을 셀 때는 또 다른 손가락 한 개를 더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즉 손가락이 먼저 ‘여섯’을 셀 때 세워졌던 손가락과 더불어 곱으로(두 개로) 일으켜 세워진 모양을 보고 만들어진 낱말이다. 즉 ‘일’어서서 ‘곱’으로 세워졌다.

‘여덟’부터는 그 당시에 연이어 일어선 세 개나 네 개의 손가락 모양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말이 없었으므로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수를 구별하려고 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할 당시에는 ‘열’이라는 숫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장 큰 숫자로 세상 모든 것을 다 가리키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사용하여 수를 세어보아도 ‘열’ 이상은 더 펼 수 있는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아 ‘열’은 우리의 먼 조상들이 셈할 수 있는 마지막 숫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부터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셈을 세어가다가 ‘여덟’쯤 셀 때는 이제 마지막 숫자인 ‘열’이 거의 다 되어간다. 즉 ‘여물어간다(여덟)’는 생각에 근원을 하고 있는 낱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아홉’은? 역시 지혜로운 발상에서 나온 단어다. 즉 인도-아리안 언어에서 ‘아’는 부정을 나타내는 의미로 ‘아니다’ ‘부족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아홉’은 마지막 숫자인 ‘열이 아니다’나 혹은 ‘열’이 되기에는 ‘아’직도 ‘흡’족한 상태가 아니다(아홉)에서 나온 낱말일 것이다.

그런데 ‘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열’은 다섯 손가락이 다 ‘열’린 모양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낱말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 ‘열’이란 낱말은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다음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고 그 이전, 즉 한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아마도 ‘열’이란 낱말 대신 이 세상 모든 것, 전부를 뜻하는 의미로 ‘다’와 비슷한 낱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우리 조상들이 지나온 중앙아시아의 다리어지역인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도 ‘열’을 ‘다’라고 부르며 우리 조상의 일부가 건너가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일본에서도 현재 ‘열’을 ‘도’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서 전부를 의미하는 뜻의 ‘다’, 즉 ‘다 함께’ ‘모두 다’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면 그 옛날 10이 가장 큰 숫자였던 우리 조상들이 초기에 ‘열’을 ‘다’라고 불렀음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 地理志)에 나오는 옛 지명들을 해석해보면, 고구려 시대까지만 해도 열(10)을 ‘다’와 비슷한 ‘더’나 ‘덕(德)’으로 불렀음이 확실해 보인다.

“십곡현(신라)은 덕돈홀(고구려)이라고 불렀다(十谷縣一云德頓忽).”

한편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하고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 모든 것, 전부를 의미한 말로 ‘온’ 이란 낱말을 사용하게 된다. 오늘날도 이와 관련해서 ‘온누리’ ‘온갖 것’ 등의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 ‘온’은 100을 나타내던 우리의 옛 말인데, 아마도 10을 나타내는 알타이어(터키어)의 ‘온’에서 차용했거나 혹은 1을 나타내는 영어의 ‘원’또는 타미르어의 ‘온루’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온’이란 낱말을 터키어, 영어 혹은 드라비다어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차용경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즉 한반도 및 만주대륙에서 살고 있던 지배계층에서는 한반도로 들어올 당시 벌써 100 이상의 숫자개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겨우 손가락으로 열(10)정도밖에 셈할 줄 몰랐을 것이며 그후 100까지 셈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소아시아지방에서 가지고 온 낱말 ‘온’을 ‘백’이란 숫자를 나타내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또 1000을 가리키는 옛말 ‘즈믄’은 인도-아리안 계통의 다리어에서 같은 숫자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즈르’에서 온 말일 것이다.

이상의 설명이 다소 무리한 가설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으며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 ‘둘’ ‘셋’의 기본적인 낱말들은 알타이어계통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옛날 인도-아리안계통의 종족들이 사용했던 것과 독자적으로 만든 말이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런데 우랄-알타이어 학자들은 노심초사 끝에 판이한 우랄-알타이어 셈법과 우리 고유의 셈법을 접목시켜 더욱 무리한 가설을 내놓았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조금도 닮은 점이 없는데도 우리말 ‘다섯’의 근원(祖語)이 알타이어 ‘퇴르트’(tort, dorben, dugin)에 대응한다고 이해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로이 앤드루 밀러의 일본어 기원 참조)

알타이어 학자들은(람스테트, 포페 등 핀우그르학회)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라 하여 서구식 음운대응(音韻對應) 방법을 사용했지만, 알타이어와 우리말에서는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유사점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이 찾았다는 유사 어휘들마저 상당수가 부정확한 것이었고, 그나마 거의 전부가 고려말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 차용했으리라고 짐작되는 어휘들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의 비교언어학적 탐색은 기본부터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동양의 언어는 인도-아리안어의 경우처럼 라틴어나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모어(母語)가 없어 음운대응 방식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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