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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칼럼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의 모든 날”

31세 말기암환자 김현경씨의 절망속 희망찾기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의 모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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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암으로 진단받은 것은 정확히 98년 12월 19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두 달 전에 이미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가고 있었답니다.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 때문이었지요.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책으로, 글로 사람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도, 경험도 못해본 저에게 그 책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워낙 베스트셀러이니 잘 아시겠지만 이책은 모리라는 늙은 미국의 사회학 교수가 몸 아래부터 천천히 굳어 결국 죽는 루게릭 병에 걸리자 이것을 알게 된 세상과 생활에 찌들어 있던 옛 제자가 그를 찾아가고 우연히 그 만남이 화요일마다 이어지면서 죽음, 결혼, 삶 등에 대한 교수의 생각을 제자가 정리해 적은 책입니다.,p> 저는 그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서 괴로워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인생에 적응도 안 되고 능력 있다고 칭송받던 제가 바닥인생으로 떨어진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죠. 그때 그 책은 모든 고민에 대답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책 10권을 사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사람들은 고마워하면서도 의아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죠. 나중에 한 친구는 마치 제가 제 병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고맙게도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암진단을 받고 나서 통증의 고통으로 울기 전에 딱 세 번 울었는데 진단받던 날과 재발선고를 받던 날, 그리고 종교를 갖던 날입니다. 이렇게 제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죽음과 병에 초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에서 얻은 교훈 때문일 겁니다.



그는 어떤 불교도가 매일 어깨 위에 새를 올려놓고는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물을 것을 제안합니다.

‘오늘이 내가 죽을 그날인가.’

솔직히 어깨 위의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지금처럼 야망에 넘쳐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보게 된다는 얘기죠.

다행히 저는 병을 알기 전에 책을 알아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진단받고 나서 남편에게 제일 먼저 이 책을 읽게 했죠.

오늘은 얘기가 길어졌네요. 읽어보세요. 분명히 얻는 게 많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모리의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모두 “우리가 1등! 우리가 1등!” 하면서 응원했대요. 그랬더니 모리가 그 곁에서 뭐라고 소리쳤는데 아세요?

“2등이면 어때!”

나는 현재다! 2000년 8월 6일

금요일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줄이려고 노력하던 진통제를 더 먹어버렸습니다.

통증이 강해질수록 외로움도 커집니다. 통증을 느낄 때만큼 지독히 혼자임을 느끼는 때는 없으니까요.

체면도, 가족들 생각에 틀어막은 수건도 다 버리고는 나도 모르게 머리로는 이러면 안 되지 이게 무슨 소용이야 하는 일들을 합니다. 넋두리, 하소연, 원망….

그리고는 1분도 안 되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내가 왜 이러지 하지요.

주위의 반응은… 아직은 이해해 줍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간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괴롭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서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 이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친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어떻게 하루를 평생같이 살 수 있을까?

저는요, 아침에 일어나면 일어나서 고마워요. 전날 잘 잤건 못 잤건 그날의 시작에 감사하죠. 그리고 다른 생각 안 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한 달 뒤도 두 달 뒤도. 그래서 사실 세금 고지서를 연체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밤에는 잘 지낸 오늘에 대해 감사를 합니다. 이렇게 제 평생의 하루가 가지요. 과거도 미래도 생각지 않습니다. 우선 오늘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충실합니다.

저도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수와 후회로 얼룩진 과거에 매여 산다면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인생이 더 힘들고 괴로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닥칠 일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면 더 힘들고 괴로워지리라는 것도 깨달았죠.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저도 과거와 미래의 괴로움에 빠져들죠.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을 현재에 충실하며 삽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겠지요.

지금은 새벽입니다. 잠을 못 잤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루 못 잔다고 어떻게 되냐, 언젠가는 잠이 오겠지, 이러면서 이 글을 씁니다.

여러분의 오늘도 오늘만으로 꽉 채워지길 바랄게요. 건강하세요.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왜 그리 안달했을까 2000년 8월 2일

오늘 한겨레신문에서 귀한 글을 읽었습니다.

천주교 어떤 단체에서 하는 교육의 일종인데요, 그 중에 죽음묵상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촛불과 함께 자신의 영정을 앞에 두고 글을 들으면서 묵상하는 모양입니다. 그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도 없고 빈부와 귀천의 차별도 없다지만 설마 나도 그러랴 하고 있던 차 이 설마에 속고 말았네.”

“온갖 맵시 다 차려입고 모든 사랑을 제 한몸에 받으려 허덕이더니 굶주린 가난뱅이는 티끌같이 눈 아래 내려보더니 잘났다는 네 몸은 얼마나 잘나 먼지 되고 흙되어 흩어지는가.”

어떤 사람이 이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안할까요. 그리고 또 다짐하겠지요. 다르게 살겠다고.

저도 얼마 전 거동에 큰 불편이 없을 때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몸이 조금 좋아지면 꼭 봉사하러 다녀야지, 소년소녀가장도 도와야지 이렇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젠 진짜 거동할 수 없게 되니 후회가 됩니다. 그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남을 위한 일을 해야 했는데….

어쩌면 숨을 거둘 때는 지금의 저를 생각하며 후회할지도 모르지요. 어떤 방법이라도 있을 때 실천할걸.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처럼 뒤늦게 후회 마시고 조그만 일이라도 실천해주세요. 제 대신이라도요.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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