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한반도 평화정착, 아직 안개 속

  • 정낙근

    입력2005-05-10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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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양측이 통일방안을 놓고서 서로 상대방이 자기 방안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왜냐하면 연방제에 대한 양측의 인식은 ‘1국가’라는 외형에서는 일치하지만 ‘체제’라는 본질의 면에서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2년10개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6개월이 지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사이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북 포용정책을 굽힘없이 실천함으로써 대결에서 대화의 장으로 한반도 정세의 물길을 바꾸는 데에 일단 성공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화해와 협력,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기여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지난 10월 초에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 북·미 양국이 50년간의 적대관계를 종식할 기회도 마련했다. 북·미 관계개선에 대해 한국은 적극 지지한다는 의견을 이미 표명했고, 주변 열강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보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이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평가가 정파적·사상적, 심지어 지역적 기반에 따라서 극심한 편차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결코 건강하지 못한 모습일 뿐이다. 논리와 증거의 뒷받침이 없는 비판과 주장은 무모하고 공허하다.

    김대통령이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에도 분명 장·단점이 있다. 이중 어느 한 쪽만 보면서 찬양 혹은 비판을 하기보다는, 장점은 더욱 부각시키고 단점은 보완해가면서 좀더 현실적이고 완전한 정책으로 발전하는데 협조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김대통령을 비롯한 정책담당자들도 국민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수정해가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측이 얻은 것들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목적은 당면한 경제난 해결에 돌파구를 찾는 한편 남한 내부에 그들의 통일전선전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얻은 성과를 평가하려면 우선 가시적으로 나타난 경제적 실리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주한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국가보안법 폐지와 안기부(국정원) 해체 및 친북인사의 자유 활동보장 등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이 남한 내에 얼마나 조성됐는지가 그들의 ‘실적 평가’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우선 남쪽으로부터 차관 형식으로 식량 50만t과 투자보장, 경의선 철도 및 도로연결에 따른 지원, 현대의 개성공단 투자 합의 등 경제적 실리를 이미 확보했거나 앞으로 확보할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으로부터는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정권 및 체제에 대한 보장과 함께 상당량의 유·무상 지원을 약속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도 60만t의 식량지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북한을 옥죄어온 경제봉쇄를 상당 부분 완화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며, 테러지원국 해제 가능성도 한결 높였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직접 지원이 없었지만, 양국간에 10·12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하면서 당면 문제인 미사일에 관한 정치적 해결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것은 조명록 특사가 북한 선군정치(先軍政治)의 엔터키(enterkey)이자 김정일 다음 가는 권력 실세이며 동시에 미사일 전문가라는 점, 그리고 방미시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외교관례상 ‘선물’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 제시한 선물이란 아마도 조건만 맞으면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 그리고 중·단거리 미사일의 수출 등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이 과연 어떤 대가를 어떻게 지불해서 그 ‘선물’을 거둬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미사일 협상의 대가로는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협상의 기본은 ‘주고 받기’여서 한 쪽의 일방적인 굴복으로 결말이 날 사안이 아니다.

    힘 얻은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론

    북한은 사상전(思想戰)에 강한 나라다. 그러므로 경제난 해결에 도움을 얻은 것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남조선 해방’을 위해서 남한 내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근본문제’의 해결을 위한 환경이 어떻게 남한에서 조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현재 남한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 김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서울공항에서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한 것과 “김정일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양해했다”는 전언은 우리 사회에 주한미군에 대한 논쟁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더욱 힘을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으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과거 보수정권이 집권했을 당시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됐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미진(微震)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김대중정권 하에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는 강진(强震)이 됐다. 김대통령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지만, 문제는 주한미군의 성격이 한반도 평화유지군이든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위한 것이든 그 어떤 것으로 바뀌어도 종국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론과 맥락이 닿는다는 사실이다.

    북·미간 공동코뮈니케에도 나와 있듯이 만약 한반도에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공고한 ‘평화보장체계’가 만들어진다면, 주한미군의 철수 및 지위변경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남·북·미의 상황과 동북아 정세 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먼저 주한미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평화유지군 성격으로 주둔하고, 남·북은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군사력을 모두 후방으로 뺀다는 것이다.

    평화유지군으로 바뀐다면 주한미군은 남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그런데 국제법에 의하면 분쟁당사자인 남·북 양측 중 어느 일방이 평화유지군 철수를 요구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경우 북한이 요구하면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북한이 주장해온 이른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론이 실현된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 미국측에서 보면, 북한의 철수 요구가 없는 한 남북 양측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면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다음으로, 김대통령이 자주 언급했듯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의 균형자·안정자로 존재한다는 주장 역시 북한의 단계적 철수론과 연결될 수 있다. 이는 동북아에서 중·일간 힘의 대결을 억제하기 위해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게 주된 논리다. 물론 동북아에서 미군이 빠져나가면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일간에 쟁투가 있을 수 있고, 그럴 경우 한반도는 그 틈바구니에서 곤경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일간 균형자 역할을 위한 미군 병력이 왜 하필이면 통일 이후의 한반도에 주둔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우리가 주둔비용을 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 이후에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더 큰 노림수가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통일 이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안하고는 통일한국의 정부와 국민이 선택할 문제지 김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물론 김대통령으로선 남한 내부의 보수세력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에서 한 발언일 수도 있고,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정일로서는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선전함으로써 남한 내에 반미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를 노릴 수가 있다. 바로 여기에 한·미관계의 이간과 남북 대단결을 통한 반미자주화라는 고도의 통일전선전술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군 철수를 정말 포기했나

    둘째,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이 주장해온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리와 연결된다. 지금까지 북한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므로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 주체도 당연히 북·미 양국이 돼야 한다고 고집했다. 반면 남한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북·미 평화협정에 반대했고, 미국 역시 북한의 주장을 일축해왔다. 그 대신 남한은 미국과 함께 1996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제의해서 관철시켰다.

    이번 북·미 공동코뮈니케의 골자는 북·미 양국간 적대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며, 그 조치로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꾼다는 데 양국이 동의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공동코뮈니케에 평화보장체계의 예로 4자회담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미국이 남한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문맥상으로 보면 북·미 평화협정, 남·북·미 3자회담,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 그리고 남북+4강의 6자회담 등 여러 방식이 모두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과의 군사대화에 관한 한 북한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일례로 9월25∼26일 제주도에서 열렸던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공동보도문을 보면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제2항에서 남측 문안은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긴요한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북측 보도문은 같은 대목을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북측이 굳이 ‘완전히’와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한반도에 관한 군사적 대화는 미국과 하겠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 한반도에서 전쟁요인이 사라질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전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증거로 본다는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어쨌든 북한으로서는 미국을 상대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셋째, 국가보안법 철폐와 안기부(국정원) 해체 주장의 성과를 보자. 국가보안법 개폐는 이미 국회를 포함해서 우리 사회에서 개정을 전제로 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대통령과 집권 민주당, 그리고 보수 정당을 자처하는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은 거의 기정사실이 돼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의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민주화됐고, 또 국보법을 만들 때와 비교해서 정치·안보적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저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거에 바꿔버렸다. 그런 점에서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얻은 큰 성과 중 하나가 국가보안법 폐지의 정당성을 남한 내부에, 심지어 국회에서도 확보하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남 통일전선전술에 유리한 환경 조성

    다음으로 안기부(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던 북한은, 임동원 국가정보원 원장이 정상회담시 특보 자격으로 김대통령을 수행하고 김용순의 남한 방문시 파트너로서 그를 안내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자기들이 비난해온 국정원의 ‘독소적 기능’이 사실상 제거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임동원 원장은 김대통령의 야당총재 시절에 포용정책의 이론화 작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정보분야의 수장이 되어 포용정책의 전도사이자 실천가 노릇을 충실히 함으로써 국가안보의 보루라 할 국정원의 고유 기능이 약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정원장과 국정원의 저간의 행보를 볼 때 북한은 굳이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대북 경각심을 스스로 불러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국정원의 존폐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이미 그들이 원하는 효과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넷째, 친북 인사 및 조직의 활동 보장에 관한 대목 역시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무력해져 친북인사의 활동 공간이 확연히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송환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에 혼란을 초래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점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정상회담으로 남쪽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데 북한은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아직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단 한 차례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적 이익과 남한의 대북 경계심 이완이라는 실익을 얻은 데에는 무엇보다도 김정일의 이미지 연출 덕이 크다. 김대통령은 그를 ‘식견있는 지도자’ ‘대화 가능한 합리적 지도자’로 평가함으로써 김정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꾸는데 기여했다. 이런 평가는 김대통령이 김정일 연구를 통해 갖게 된 개인적 차원의 평가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회담이라는 초유의 이벤트를 성사시켜 북한을 국제무대로 나오게 하려는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김정일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 있는 사이 김정일은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를 세계가 믿도록 끊임없이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지는 본래 모습이 ‘스며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미지는 관전자의 몫이다. 김정일의 연출된 모습을 우리는 본모습으로 믿거나 아니면 믿고 싶은 것이다.

    또 김정일은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 초청을 통해서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와 위상을 한껏 과시하고, 통일을 위해서 화합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남한 언론의 북한 비판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는 효과도 거뒀다. 그런 점에서 향후 상당 기간 우리 언론은 북한에 관해서, 그리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해서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을 ‘반민족적’ ‘반통일적’ ‘냉전적’ 행위와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일정 부분 조성됨으로써 북한은 과거 50년간 성공하지 못했던 대남 통일전선전술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한편, 남측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얻은 성과 역시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에 따라서 평가돼야 한다. 이 점에서 2000년 1월5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향후 대북정책기조로 확정했던 ① 조건없는 남북 당국자 대화 ② 남북교류의 다변화 ③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추진 ④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등을 평가기준으로 일단 제시할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김대중 정부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정부의 업적을 양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에 투자해온 물질적·정신적 비용과 현재의 성과를 ‘투자 대 효용’으로 평가해보면 여전히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이다. 또, 김대통령은 자신을 통일전문가로 차별화했고, 이념 문제로 정치적 고초를 경험했기 때문에 질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김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성과는 그가 2000년 신년사에서 제시했던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에 평가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중요한 잣대라고 할 ▲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제거 ▲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 남북한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 군축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조치 등에서 아직 가시적인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게 별로 없다.

    구체적으로 남북한간 군사문제의 해결을 위한 군사 당국간 대화 개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의 구성 운영,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남북불가침’과 부속합의서 실천방안 및 남북한 군비통제방안 등의 합의 실천 등에서도 역시 성과가 없다.

    비록 회담 목적이 경의선 복원과 관련된 것이긴 했지만, 남북 국방장관회담 및 실무회담이 처음으로 열렸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또 북한의 박재경 대장이 송이버섯 전달을 위해서 서울을 잠시 방문한 것도 실질적인 성과는 아니라도 화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자신이 구상한 ‘3단계 통일론’의 제1단계인 남북연합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하는 것을 지원하고, 남북한 군사적 신뢰관계를 형성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바 있으므로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다행히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고, 그 결과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1항),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2항),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등 인도주의 문제의 접근(3항),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과 다방면의 남북 교류·협력(4항) 및 남북 당국간 대화(5항) 등을 담은 6·15 공동선언이 탄생했다. 김정일의 남한 방문에 대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이후 적십자회담과 장관급 회담 등 후속 회담을 통해서 공동선언문의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을 제외하곤 남측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더군다나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라는 큰 틀의 변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처럼 남한의 성과는 장기적이고 추상적이며, 그것이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나온 6·15 공동선언문과 후속회담 합의문, 북·미 공동코뮈니케 등을 분석해보면 남·북한간에 몇 가지 쟁점들이 예상된다. 그중 정치적·사상적 쟁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들의 강점인 사상전을 다방면에 걸쳐 전개할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과 이와 관련된 주한미군 문제, 그리고 통일방안 등이 앞으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특히 2002년의 국내 정치일정은 잠복한 이념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를 마련해줄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국가안보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는 시기이므로 사전에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 3자회담인가 4자회담인가

    앞서도 말했듯이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에 관한 한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미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미 공동코뮈니케에서도 양국은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여기서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는 방안이 3자회담과 4자회담 방식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6자회담을 선호하겠지만 미국과 중국은 이를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회담 주체가 많다는 것은 성공과 분배를 위해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남·북·미 3자가 참여하는 3자회담 방식 혹은 중국까지 포함한 4자회담 방식의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보장체계는 최소한 남·북한과 미국이 합의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반면에 북한이 주장해온 북·미 평화협정 체결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이라는 북한측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을 배제한 구도이므로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에 3자회담은 북한도 요구하고 있고, 미국 역시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방식이 채택된다면 북한으로서는 1(북한) 대 2(한·미)의 구도에서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한다는 선전효과를 누리면서 동시에 남한을 미국의 들러리로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3자회담이 북·미 평화협정 체제의 변형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것은 평화체제의 주체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한국으로서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중국 역시 이 방식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하고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미간에 당면 현안은 북한 미사일 문제다. 미국으로서는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한반도 평화보장체계에서 미국이 배제되지 않고 중심에 있게 된다면, 어떤 방식이든 거부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남북정상회담 과정에 자신이 소외됐다고 생각한다.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6·15 공동선언을 지지한다는 그 흔한 말 한 마디 없었던 게 그런 배경 때문일 수 있다. 오히려 “조명록 특사가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 상황을 미국측에 통보했다”는, 코뮈니케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은연중 한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 했을 수 있다.

    북·미가 쥔 ‘꽃놀이패’?

    이러한 상황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측 주장에 합의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북한이든 미국이든 자신들의 국익 실현을 위해서 ‘회담 방식’을 남한에 대한 ‘꽃놀이패’로 활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더욱이 남한이 4자회담을 물러설 수 없는 카드로 고집하는 이상 북·미 양측의 대남 협상력은 오히려 커질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미국이 국익 우선의 대외정책에 충실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97년 한국의 경제위기에서도 실증됐듯이 미국은 대한반도 문제를 상당 부분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남북문제에서도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안을 채택할 것이고, 여기서 남·북·미 3자회담의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3자회담 방식이 떠오를 경우, 한국은 이에 대해 과거처럼 마냥 거부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김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북·미관계 개선을 적극 지지한 바 있고,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임을 볼 때 더욱 그렇다.

    1996년 4자회담이 처음 제안됐을 때, 그 배경은 2(한·미) 대 2(북·중)의 대립관계를 기본으로 상정하고 그 속에서 균형을 찾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선언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남북이 적대관계 청산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에 당사자만 동의하면 굳이 회담 주체를 늘릴 이유가 없다. 이는 4자회담을 파기하지 않으면서 이와 별도로 3자회담 구도를 새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최근 김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 사이에는 과거의 4-2 형식의 4자회담을 변형한 2+2 형식의 4자회담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곧 남북이 먼저 평화체제에 합의하고, 이를 미·중이 보장한다는 형식이다. 지난 11월 말 김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ASEAN+3 회의에서 4자회담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북한만 설득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임기 내에 한반도에서 4개국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완성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선호하는 4자회담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리고 구속력을 가지고 가동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결론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3자회담을, 남한과 중국은 4자회담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3자회담과 4자회담이 독립적으로 가동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원칙인 ‘자주‘ 반미(反美)인가 용미(用美)인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실천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물론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그것도 전세계 앞에서 공개적으로 서명함으로써 실천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이 존재하는 이상, 국가안보 차원에서 만에 하나 나타날지 모를 문제에 대한 대비는 꼭 필요하다. 비록 북한이 장관급회담이나 국방장관 회담 등 일련의 회담에서 공동선언의 이행과 준수를 촉구한다고 해도, 저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언제든 휴지조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견지에서 6·15 공동선언문의 내용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조항은 통일원칙에 관한 것으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자주’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등장한다.

    김대통령은 외세 배격이 주가 아니고 남북 당사자 원칙의 확인에 초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시대에 자주가 외세 배척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또 “소련 붕괴 후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존속해서 유럽의 안정을 이루었듯 한반도 긴장완화와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해서 미군 주둔은 필요하다”는 요지로 김정일을 설득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휴전선의 비상사태시 주한미군이 조정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도 김정일 위원장은 주한미군 주둔문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언을 분석해보면 북한이 ‘자주’의 의미를 반외세·반미와 주한미군 철수 등에 초점을 맞춘 ‘배타적 자주’로부터 통일을 위해서 외세를 활용한다는 ‘협력적 자주’로 전환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생전의 김일성은 남한의 적화통일을 위해서는 미군 철수가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언급했으며, 아직까지 북측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했다는 공식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정상회담 이후 평양방송을 통해서 “미국은 더 이상 자주적 평화통일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며 미군의 남조선 강점을 끝낼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 주장한 적이 있을 뿐이다. 또 9월27일, 평양방송은 더 나아가 통일 이후에도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비난하면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했다.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한의 주장을 북한 대내용 또는 대미 협상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방송은 북한 주민이 듣는 ‘내부용’이 아니라 주민이 듣지 못하는 ‘대남방송’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이런 언급은 그들의 ‘근본문제’인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김대통령의 월권적 언급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기존 방침을 변경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속단이다.

    양 정상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핵심 문제는 주한미군의 위상 변경에 관한 부분이다. 요컨대 1항은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포기했거나 반미·반외세 자주 개념의 변경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 목표인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위해서 일차적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중립적(분쟁조정자)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자주’의 문제를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 공동선언문의 합의정신을 지키는 것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남측의 능력에 달려 있다. 특히 경제력의 뒷받침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도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실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치와 외교, 구체적으로는 국내경제 상황과 대북 포용정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지금까지 ‘자주’의 원칙은 정치적 명분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와 안보는 상호 연계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도 결국은 대북 경협을 위한 김대통령의 국제자본 유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남한이 혼자 힘으로 북한 경제를 재건하기는 불가능하다. 국제자본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세계화를 적극 수용하려는 한국의 경우 경제부문의 대외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 심화는 남북관계의 대외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바로 경제부문의 자주성 훼손이 정치·안보분야의 자주성 훼손으로 직결된다는 말이다.

    통일방안 ‘연합제‘ 인가 ‘연방제‘ 인가

    6·15 공동선언의 둘째 조항은 통일방안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선, 이 조항에 숨겨진 함의는, 양 정상 스스로가 통일방안에 합의하지 못했음을 시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적으로는 일찌감치 통일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시작됐다. 김대통령과 정부는 북한이 사실상 연방제를 포기하고 연합제를 수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야당의 이회창 총재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가기 위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연방제라고 반박한다.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무엇인지 에 대해 지난 10월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조평통 서기국장 안경호가 공식적으로 밝혔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해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게 하고, 그 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정해나가는 것을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분명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에 기초한 설명이다.

    또, 10월9일 ‘노동신문’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연방제로 가기 위한 잠정적 조치”라고 했으며, 12월5일 평양방송은 “북남 공동선언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과 남측의 ‘연합제’ 안의 공통성을 살리고 장차 연방제 통일에로 나가는 길을 명시했다”고 주장, “우리측 통일방안을 북측이 수용했으니 성공적”이라는 우리 정부 당국의 해석이 자의적인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정부 스스로도 “중앙정부의 국방·외교권을 지방정부가 갖는 이 안(낮은 단계의 연방제)은 우리의 남북연합과 공통점이 있어 연구하기로 한 것일 뿐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하기로 합의한 적은 없다”고 구차한 해명을 하고 있다. 이는 정부 스스로가 2항의 통일방안에 대해 자신없음을 인정한 것으로, 남북 양측의 연방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통일방안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해야 한다.

    먼저, 남측의 연합제 안은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 기초한 ‘남북공화국연합’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민족적 합의와 남북 당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남북연합으로의 진입은 언제든 가능한 것으로 본다”(‘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 1995년. 36쪽)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통일의 단계를 남북연합 → 연방 → 완전통일의 세 단계로 나누면서 제1단계 남북연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곧 1민족 2국가 2체제 2독립정부 1연합의 남북연합이며, 김대통령은 임기 내에 남북연합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김대통령의 남북연합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현 상태를 그대로 둔 1민족 2국가 2체제 2독립정부 때문이 아니라 1연합 때문이다. 남북연합의 핵심은 1연합기구의 구성에 있다. 김대통령의 남북연합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남북연합정상회의, 대의기구로서 남북연합회의와 남북연합회의 사무국, 그리고 집행기구인 남북연합각료회의 및 분야별 남북연합위원회를 두어서 분단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2단계인 연방으로의 효율적인 진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기본법인 남북연합헌장을 채택하여 남북 의회에서 인준을 받아 발효시킨다(위의 책. 39쪽).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완성하는 작업이 연합 단계의 핵심이다.

    또, 남북연합으로의 진입조건에서 “남북연합으로 들어갈 것이냐, 들어간다면 언제 들어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남북 전적으로 주민과 당국의 결단에 달려 있다”(위의 책. 39쪽)고 한 점으로 미루어, 지난 번 이회창총재와의 영수회담에서 흘린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투표 제안은 자신의 3단계 통일방안을 채택하여 임기 내에 남북연합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 아닌가 주목된다.

    둘째,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1국 2지방정부에 있고, 차이점은 북측이 2체제의 고려민주연방제 틀에서 보는 반면 남측의 관점은 1체제의 연방제 틀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이 논란거리가 되는 이유는 ‘연방제’라는 용어가 그동안 북한에 의해 독점되어 저들의 ‘고려민주연방제’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려는 저간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영연방과 비슷한 ‘공화국연방제’를 공식 제기했지만, ‘연방’이라는 단어 때문에 당시 정부·여당의 집중 공격을 받자 이 명칭을 잠정 폐기했다. 그 후 1991년 4월 발표한 공화국연합제 통일방안에서 김대통령은 “공화국 연방제보다 연합제가 더 정확하게 1단계의 통일내용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연합제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그는 공화국연합에 대해서 “북한의 인민공화국과 남한의 대한민국 두 공화국이 모여서 하나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고, “남북은 통일해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서로 영원히 갈라서서 살게 되는 독립국가로 취급될 수 있는 국가연합 명칭은 피하고자 하기 때문”(‘나의 길 나의 사상’ 1994년. 170쪽)이며, “상대방을 독립정부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독립국가로는 인정할 수 없다”(위의 책. 66쪽)는 등 1국론을 바탕으로 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제1단계 공화국연합제 아래에서 “남북 쌍방이 가입한 유엔에는 새로 형성된 연합의 이름으로 단독 가입”(위의 책. 66쪽)하게 하고, “외교·국방·내정은 현재의 남북 두 정부가 완전히 장악하되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한다”(위의 책. 73쪽)고 설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단일 주권국가로서 기능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나아가 김대통령은 남북연합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북한의 현 정권과 남한의 현 정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두 공화국이 연합하자는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위의 책. 66쪽) 거부한다고 했다.

    반면에 그가 95년에 체계화하여 내놓은 저서 ‘3단계 통일론’에서는 “남북연합은 국가 대 국가의 공존을 전제로 하며, 화해·협력을 촉진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의미가 강하다”(25쪽)며 2국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결국은 연합단계의 완성이 1연합기구의 구성이며, 이것이 대외적 국가주권을 대표하기 때문에 실상은 1국가로 봐야 타당하다. 이처럼 1단계 연합제에서 1국론과 2국론을 넘나드는 까닭은 이론적으로도 국가와 (독립)정부를 구분하기 어렵지만, 특히 북한체제의 특성상 정권(정부)과 체제, 국가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 기인한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남북연합에 관한 93년의 주장과 95년의 주장에 드러난 차이를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95년의 주장을 따를 경우 김대통령은 북한의 수령독재정권의 유지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남북연합단계에서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민주주의적 체제로의 전환을 상당 정도 이루어야”(‘김대중의 3단계를 통일론’ 64쪽)하고, 또 그렇게 되어서 1연합기구가 구성될 경우에도 여전히 2국가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야당 시절의 김대통령은 자신의 공화국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북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아마 북한이 공화국연합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형식논리상 고려민주연방제와 ‘1민족 1국가 2정부’라는 면에서 일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1체제인가, 2체제인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두 방안의 공통점은 겉으로 보면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유지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1민족 1국가 2지방정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이번 합의는 독립정부의 권한에 초점을 맞추어 공통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정권 뿐만 아니라 외교권과 군통수권도 지금처럼 남북 양쪽의 지방정부가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인정한 것이다. 체제문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인지라 아예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을 남한이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그 까닭은 남북한의 경우 연방제의 본질을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해석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방제의 본질을 1국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분단상황의 체제대결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1체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를 엄밀하게 분석할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듯이 보인다. 곧 김대통령의 남북연합은 1연합이 구축되기 이전 단계와 1연합이 구축된 이후 단계 등 2단계로 구분지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1연합 구축 이전 단계에는 지금처럼 2체제 2독립정부가 유지된다. 그러나 1연합이 구축된 이후 단계로 넘어가면 북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전제로 1체제 2지방정부가 되어 연방단계로 넘어간다.

    반면에 북한은 2체제 2지방정부의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난 12월5일 평양방송 보도에서 6·15 공동선언의 통일방안 대목을 ‘연방제 통일로 나가는 길’이라고 한 것은 1국 2체제 2지역자치정부를 상정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방식의 통일방안을 의미한 것이다. 이는 1체제를 상정한 김대통령의 연방제와는 다르다.

    따라서 남북 양측이 서로 상대방이 자기 방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왜냐하면 연방제에 대한 양측의 인식은 ‘1국가’라는 외형의 면에서는 일치하지만 ‘체제’라는 본질의 면에서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왜 북한은 연방 단계에서 1체제가 아니라 2체제를 고집하느냐 하는 점에 맞추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에서 논하듯이 북한의 2체제를 전제한 연방제를 우리가 합의해줄 때 발생한다.

    따라서 셋째, 현 시점에서 통일방안에 대한 논란은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의 건설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를 오히려 은폐할 우려가 있다. 연방제든 연합제든 통일방안을 김정일 위원장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양 체제의 공존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김대통령은 통일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신의 ‘3단계 통일론’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상황논리에 따른 정략적 해결책은 피해야 한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갖고 있다. 반면 북한은 수령 독재체제다. 북한의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은 상이한 2체제의 공존을 전제로 한다. 과연 서로 다른 2체제가 공존하는 연방제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서 공존을 택하는 것이 통일을 위한 올바른 길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통일은 인간답고 평화롭게, 그리고 번영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가 통일방안의 형식논리를 갖고 논쟁에 빠져 있을 때 수령절대주의 체제하의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찾아줄 것인가. 만약 연방제든 연합제든 김정일과 통일방안을 합의한다면, 이는 김정일 수령독재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문제가 있다면 제3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이 수령독재체제를 포기하고 최소한 주민의 자유의사가 반영된 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필요한 일은 쉽게 합의하지도 못할 통일방안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민주화를 위해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정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쨌든 한반도 정세의 큰 물길은 평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김정일시대의 북한도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대외 개방을 통해 자본주의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북·미간 특사교환을 통해서 관계개선의 계기를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교류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계속 검증해야 하겠지만, 앞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를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정파적 이해를 떠나서 대북 포용정책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북 포용정책이 김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상당부분 의존한 측면이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행정부의 각 부서는 대통령의 지시를 그때그때 집행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대북정책이 김대통령 개인의, 그리고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용돼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또 있다. 미래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여기서 전략적 사고에 입각한 ‘엔지니어링 어프로치(engeering approach)’가 나온다. 일례로 남남갈등을 심화시킨 결정적인 문제는 “김정일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하는 논란이었다. 정답은 물론 “좀 더 지나봐야 알겠다”는 것이지만, 그러면 그때까지 논란만 하면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이제 논란의 핵심은 “김정일과 북한의 변화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로 바꿔야 한다.

    정상회담으로 형성된 김정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현상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목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정일을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경험과 사상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의 행태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이를 계속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김정일이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는 이른바 ‘남남갈등’으로 이념적 혼란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국론분열 위기가 조장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갈등은 크게 다음 세 가지 문제에 기인한다. 첫째, 김정일과 북한의 변화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혹시 우리가 김정일의 대남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든 것은 아닌가. 둘째, 대북 포용정책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셋째, 김대통령은 대북정책을 국내정치나 자신의 개인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이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끊임없는 토론과 계몽을 통해서 정책 판단의 제도화된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도 여론몰이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국가안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북한의 노동당 규약과 형법의 변경, 군사적 신뢰구축, 북·미, 북·일수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구체적 달성과정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현재로선 이중 어느 하나도 제도화된 것이 없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붕괴를 주장하면서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세력을 지금까지처럼 극우보수니 냉전의 잔재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만 할 일은 아니다. 토론을 통해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주고 컨센서스를 갖춘 판단 기준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도 반석 위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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