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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4|경주 최부잣집

경주 최부잣집9대 진사 12대 만석꾼 배출한 재력가

  • 조용헌

경주 최부잣집9대 진사 12대 만석꾼 배출한 재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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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내고 떠나는 나그네는 빈 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과매기 한 손(2마리)과 하루분 양식, 그리고 노자를 몇 푼 쥐어 보냈다. 어떤 과객에게는 옷까지 새로 입혀서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최부잣집이 과객대접에 후하다는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입 소문을 타고 조선팔도로 퍼졌다. 강원도 전라도는 물론 이북 지역에까지 최부잣집의 명성이 퍼졌다고 한다.

이는 결국 최부잣집의 덕망으로 연결되었다. 중국에 3천식객을 거느렸다고 하는 맹상군이 있었다면, 조선에는 1년에 1천석의 쌀을 과객에게 대접하는 최부자가 있었던 셈이다.

최부잣집의 덕망은 여섯째 원칙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데서도 나타난다. 경주 교동에서 사방 100리라고 하면 동으로는 경주 동해안 일대에서 서로는 영천까지고, 남쪽으로는 울산까지, 북으로는 포항까지의 영역이다.

주변이 굶어 죽고 있는 상황인데 나 혼자 만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부자양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작수입 가운데 1천석을 주변 빈민구제에 사용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불교의 ‘유마경’에 유마거사가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중생이 모두 아픈데 내가 어찌 안 아플 수 있겠느냐!”



다섯째 원칙은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 옷을 입어라’다. 조선시대 창고의 열쇠는 남자가 아니라 안방마님이 가지고 있었다. 재산 관리의 상당 권한을 여자가 지니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런만큼 실제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의 절약 정신이 중요하다.

보릿고개 때는 집안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숟가락도 은수저는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백동 숟가락의 태극무늬 부분에만 은을 박아 썼다. 과객 대접에는 후했지만 집안 살림에는 후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씨 집안의 어느 며느리는 삼베 치마를 하도 오래 입어 이곳저곳이 누덕누덕 기워져 있었는데, 서 말의 물이 들어가는 ‘서말치솥’에 빨래를 하기 위해 이 치마 하나만 집어넣으면 솥이 꽉 찰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너무 많이 기워 입는 바람에 물에 옷을 집어넣으면 옷이 불어나서 솥단지가 꽉 찼다는 말이다. 최부잣집 여자들의 절약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다.

이상 여섯 가지 원칙이 최부잣집의 제가(齊家)하는 철학이라면, 육연(六然)이라고 하는 수신(修身)의 가훈도 있었다. 육연은 다음과 같다.

▲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대인애연(對人靄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며 ▲유사감연(有事敢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고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며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 여기서 ‘연’의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 ‘그렇다고 여기다’인만큼 전체적으로 관용, 긍정, 초연의 뜻이 담겨 있다.

최부잣집의 장손인 최염씨(崔炎, 68)는 어렸을 때부터 매일 아침 조부 방에 문안을 가면 조부님이 보는 데서 붓글씨로 육연을 반드시 써야만 했다고 술회한다. 어려서부터 군자다운 행동을 하도록 철저히 교육받았던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최부잣집의 가훈을 음미하면서 나는 로마 천년의 철학이 생각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로마가 천년을 지탱하도록 받쳐준 철학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였다는 것이다. 이를 번역하면 ‘혜택받은 자들의 책임’ 또는 ‘특권계층의 솔선수범’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들이 솔선수범하여 최전선에 나가 피를 흘리는가 하면 공중을 위해 금쪽 같은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곤 하였다. 귀족은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이다. 여기서 로마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나왔다.

시오노가 ‘로마인 이야기’ 전체를 통하여 몇 번이고 강조한 대목은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이것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질을 더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게 시오노의 주장이다.

여기서 도덕적 의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최부잣집의 원칙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도덕적 실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와 보람을 증가시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삶의 질은 의미와 보람에 달려 있는 것 아니던가.

한국사람들은 이를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이라 하였다. 이는 요즘의 민법이나 형법보다 훨씬 강력한 윤리적 기제였으며 동시에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이끄는 철학이었다. 최부잣집의 원칙들은 바로 한국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최부잣집의 고향인 경주와 로마는 유사하다. 사실 세계 역사에서 1000년 수명을 유지한 나라는 신라와 로마제국을 빼면 없다. 물론 그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신라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로마가 월등하지만, 그 유지된 시간만 놓고 볼 때는 신라와 로마는 천년제국이라는 점에서 대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철학과 경륜은 그 세계의 체험 내지 경험의 두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륜은 책상 위에서 습득한 건조한 지식에서 나오기보다는 치열한 실전 체험에서 나온다. 체험이 빈약하면 철학도 빈약하다. 그래서 두터운 역사와 전통은 큰 나무의 깊은 뿌리가 된다.

그래서 천년 고도 경주에서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낸 명가(名家)가 지켜온 가훈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고, 천년 제국 로마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나온 것도 필연인 것 같다.

육연(六然)만 해도 그렇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다 돌아온 홍세화씨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톨레랑스(tolerance)’다. ‘관용’ 또는 ‘용인’으로 번역되는 톨레랑스는 프랑스 정신이라고 할 만큼 프랑스인들에게 체질화되어 있다고 한다. 톨레랑스는 남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19세기까지 프랑스 파리가 세계의 수도 노릇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온갖 다양성을 넉넉하게 수용할 줄 아는 톨레랑스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가 언뜻 볼 때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난잡으로 흐르지 않고 세련된 문화를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톨레랑스라는 것이다.

나는 톨레랑스를 홍세화씨의 책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서 배웠는데, 최부잣집의 액자에 걸려 있는 육연을 보면서 조선 선비의 톨레랑스를 느꼈다.

이를 종합하면 최부잣집의 수신(修身)은 프랑스의 톨레랑스요, 제가(齊家)는 로마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재물과 벼슬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인간일진대, 보통 인간이 이 욕망을 제어하고 절제하면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삶에 대한 통찰력에서 지혜가 나오고 이 지혜를 후손에게 전승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종교의 계율로 나타나는데, 그 계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최부잣집 정신인 것이다.

해동성자 설총을 낳은 터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최부잣집의 집터를 살펴보기로 하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집터는 요석공주가 살던 곳이었다. 최부잣집이 이곳에 자리잡은 시기는 대략 200년 전. 그러니까 현재 장손인 최염씨의 7대조가 되는 최언경(崔彦璥, 1743~ 1804)대의 일이다.

그 전에는 경주시 내남면의 ‘게무덤’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형산강 상류 쪽인데 양쪽에서 물이 흘러와서 합수(合水)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풍수가에서 볼 때 양쪽에서 물이 흘러와 만나는 곳은 돈이 많이 모이는 터다. 짐작건대 ‘게무덤’도 그러한 터였을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최부잣집의 파시조(派始祖)이자 13대조인 최진립(崔震立, 1568~ 1636)이 살았고, 아들 손자대로 내려가면서 점차 재산이 쌓였다. 재산이 늘어감에 따라 방문하는 손님도 늘어나자 좁은 집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최언경대에 이르러 여기 저기 터를 물색하던 중 현재의 요석궁터를 택지(擇地)했던 것이다.

요석궁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로맨스가 어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 로맨스로 인해 요석궁에서 신라의 대문장가 설총이 태어났다.

그러니까 최부잣집은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의 임신지(姙娠地)이자 출생지(出生地)라고 보아야 한다. 설총이 누구인가. 신라의 대학자로서 이두문자의 창시자 아니던가. 이 집터에서 일차로 설총이 배출되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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