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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세계|희귀 비디오 수집

‘나홀로 영화관’에서 즐기는 五感만족

  • 장인석

‘나홀로 영화관’에서 즐기는 五感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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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구입시에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가짜’인지 ‘볶은 것’인지를 잘 구분해야 하며, 정품이라도 화질이 불량한지를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위조 비디오 중에는 하도 교묘해서 일반인이 보기엔 진짜와 똑같은 것이 많다. 정품을 복사한 테이프를 유통시키는 것을 ‘볶았다’고 말하는데, 케이스 종이와 테이프 뒷면 옆면에 붙어 있는 상표를 유심히 살펴보면 조악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테이프 케이스가 출시회사 것이 아닐 때도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하며, 지나치게 값이 싸거나 비싸도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비디오 화질을 검사한 후 불량하면 반품할 수 있도록 사전에 약속을 받아두는 것도 중요하다.

중고 비디오의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다. 보통 도매업자들이 폐업가게에서 인수한 것은 장당 200원에서 1000원까지지만 소매가는 1000원부터 10만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다. 대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프로는 3000∼4000원이면 비싼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문제는 희귀비디오의 값이다. 이것은 부르는 게 값일 때도 있고, 같은 비디오라도 파는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사려는 사람의 가치기준인데, 본인이 꼭 구하고 싶은 명작이라면 눈에 띌 때 가격에 구애받지 말고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비디오를 다음에 다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희귀 비디오의 가격은 일반적인 명작이 대략 1만원에서 1만5000원, 좀 구하기 어려운 명작이 3만원 내외, 아주 구하기 어려운 것들은 5만원부터 50만원까지 다양하다.

희귀 비디오들은 대개 출시된 지 오래된 것이 많다. 아무래도 오래된 비디오들은 유통과정에 소실되기 마련이고 비디오에 대한 관심이 적던 시절이라 출시됐을 때부터 소량만 시장에 나왔기 때문. 80년대에 출시된 비디오들은 일단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 좋다. 영화제목이 낯설어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원제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상야릇한 제목으로 나온 경우도 많으므로 배우나 감독 이름을 꼼꼼히 살피는 게 좋다. 배우나 감독 이름도 철자가 엉망인 경우도 많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정확한 이름을 유추할 수는 있다.

지금은 폐업한 금성, 지구, 오아시스, 우진, 대우 등에서 나온 비디오 중에 희귀 비디오가 많다. 일단 이런 회사의 비디오라면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대우에서 나온 ‘종이비디오’(재킷이 플라스틱이 아니라 두꺼운 종이라고 해서 이렇게 불림)들은 거의 희귀 비디오 대열에 들어가니 주의를 요한다.



최근 1, 2년 전부터 직배사들이 명작 출시란 이름으로 오래된 고전들을 출시하거나 재출시하는 경우가 있다. ‘수색자’나 ‘말타의 매’ ‘필라델피아 스토리’와 같은 영화들은 말로만 전해지다 처음으로 영화팬들에게 선보여 마니아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욕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파리의 아메리카인’ ‘분노의 주먹’ ‘비열한 거리’ 등 주옥 같은 명작들은 이미 출시됐지만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이번에 재출시됐다. 하지만 재출시됐다고 해서 값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출시되면 오히려 과거에 나왔던 오리지널의 값은 더욱 뛰게 된다. 똑같은 영화지만 더 오래 된 비디오를 수집가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희귀 비디오 마니아들

비디오가게라고 해서 주인이 전부 영화에 문외한이거나 좋은 비디오를 소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희대학교 부근의 미래영상은 영화마니아, 비디오 수집가에게는 보물창고다. 주인 손태영씨는 “지금까지 8년간 장사하면서 10억원을 벌었다면 그중 7억원은 비디오 구입비에 들어갔다”고 말할 정도로 비디오 구입에 열심이다. 그의 15평 남짓한 가게는 사람 둘이 지나다니기도 힘들다. 3만5000장을 진열하느라 이중장을 설치해 통로가 좁아진 것이다.

그 좁은 곳에 진열돼 있는 비디오 테이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던 명작들이 무려 석 장씩 꽂혀 있다. 폴란드의 거장 크지스토프 키에로프스키 감독의 10장짜리 ‘십계’도 석 질이나 있다. 손씨는 출시되는 비디오 중 좋은 영화라는 판단이 서면 대여가 안 되더라도 반드시 석 장을 구입하고, 틈날 때마다 희귀 비디오를 구하러 다닌다. 그가 말하는 희귀비디오 구입 방법은 단순하다. 눈에 띄면 얼마를 주더라도 산다는 것이다. 그때를 놓치면 다시는 못 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철칙 때문에 그의 집에는 희귀비디오 중에서도 희귀하다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공포의 휴가길(Hills have eyes)’도 석 장, 베르너 헤어조그의 ‘위대한 휘츠카랄도’도 석 장씩 진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직까지 한번도 못 본 비디오가 있다는데, 바로 프란시스 F. 코폴라 감독의 ‘럼블 피시’다.

집에도 2만여장을 소장하고 있다는 그는 “테이프를 베고 잘 때의 기분을 아느냐”고 묻는 전형적인 희귀비디오 수집가다. 훗날 비디오 가게를 그만둔다면 그 동안 모은 희귀비디오를 영화관련 공공기관에 기증하겠다고 하는데, 경희대 영화동아리들이 ‘비디오 영화제’를 열면서 못 구한 비디오들을 자기 가게에서 빌려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천리안 영화동호회인 ‘우리영화사랑’ 회원인 안규찬씨는 한국 영화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 희귀한 한국 영화 비디오는 거의 모두 소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제목만 대면 주인공과 감독 이름부터 어느 극장에서 몇 월 며칠에 개봉했다는 것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다.

천리안을 비롯해 유니텔, 나우누리, 하이텔 영화동호회에는 영화퀴즈 소모임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소모임의 회원들은 ‘영화퀴즈방’을 통해 영화이름 맞히기 게임도 하고 영화에 대한 정보도 교류한다. 안씨는 이 4대 통신을 통틀어 ‘한국영화의 달인’으로 통하는 퀴즈게임의 절정고수. 그와 영화퀴즈방에서 맞붙은 영화마니아들은 그의 해박한 한국영화 실력과 기억력에 혀를 내두른다.

그는 지난 7월 그가 속한 천리안 영화동호회인 ‘우리영화사랑’ 후원으로 한국영화 비디오 전시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일반인은 물론 국내영화 관계자들조차 이런 영화가 비디오로 나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한국영화 비디오의 열악한 실정에 같이 가슴 아파했다.

“진짜 희귀한 비디오는 사실 한국영화라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외국영화 비디오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고, 소장하고 있는 분도 많지만 한국영화 비디오는 출시되자마자 푸대접받다 보니 현재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없어요. 제가 10년 전부터 보이는 족족 구하고는 있지만 외국 영화에 비해 너무 보관이 안 돼 있어 영화사적 자료의 보관이라는 측면에서도 각성을 요합니다.”

그가 지난 7월 전시회 개최를 계기로 쁘랭땅백화점 지하에 문을 연 ‘청춘극장’에는 진귀한 한국영화 비디오가 진열돼 있다. 비디오 마니아들의 수집을 도와주고 한국영화의 저변 확대를 위한다는 ‘청춘극장’에는 황해 윤정희 주연의 ‘독짓는 늙은이’, 하길종 감독의 ‘화분’ 같은 잘 알려진 걸작도 있지만 숨겨진 명작도 많아 영화마니아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안씨는 희귀 비디오의 정의에 대해 색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아트나 명작, 걸작 이라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몇십 명이라면 희귀비디오의 대열에서 탈락한다는 것. 희귀비디오 중에서도 가격이 30만원을 호가한다는 ‘협녀’나 ‘위대한 휘츠카랄도’ 등은 소장가가 꽤 있다는 점에서 안씨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보다는 출시는 됐는데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영화, 5∼6년 만에 한 번 본 비디오가 진짜 희귀 비디오라는 것. 물론 좋은 영화, 보관가치가 높은 영화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신동아 200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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