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남성이 여성에게 애원하는 시대 온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페미니즘

  •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5-05-06 14: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46)는 동물과 인간의 세계를 비교하는 글과 강연, 방송출연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다. 1월11일 오전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 자연과학관을 찾았다. 인터뷰 주제는 ‘생물학과 문화인류학으로 본 페미니즘’.

    ―21세기를 여성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타당성이 있는 얘기인가요?

    “진화생물학자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생물학이 기존 사회 질서를 옹호하는 학문이라고 보거든요. 사회생물학이 남성 우월주의를 뒷받침한다고.

    포유류의 경우 수컷은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여럿을 상대할수록 새끼가 많이 생기니까요. 그러므로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수컷은 바람을 피울 만한 이유가 있죠. 바람을 많이 피울수록 자신의 유전자가 더 많이 후세에 남겨지니까. 그런데 암컷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여러 수컷을 상대해도 별 도움이 안 되죠. 어차피 뱃속에 가졌다가 출산하는 새끼의 수는 한정돼 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남자들은 유전적으로 워낙 바람을 피게끔 생겨먹은 동물이므로 바람 피우는 것을 탓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가능하죠.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반발하는 겁니다. 사회생물학은 못됐다, 진화생물학은 틀렸다고. 그런데 요즘 미국의 일부 여류 진화생물학자들은 페미니즘이 진화생물학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다윈의 이론에 비춰보면 사실 남성은 거의 필요 없죠. 다윈이 분석한 자연 질서에서는 모든 생명현상의 결과인 자식이 가장 중요해요. 그 다음 그 자식을 낳는 암컷이 중요하고. 수컷은 암컷이 자식을 낳을 수 있게끔 유전 물질의 반을 제공하는 구실을 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 이론을 페미니즘 쪽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끌어안으면 훨씬 유리하지 않으냐는 것이지요. 동물 세계에서 암컷이 갖는 지위를 생각하면 페미니즘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입니다.”



    수컷의 바람기

    ―다윈은 자연선택설과 더불어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는 성선택설을 주장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산 건 자연선택설이겠죠?

    “처음엔 성선택설까지 다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성선택설은 페미니즘 쪽에서 오히려 반겨야 할 이론이죠.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는데,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자연선택설을 주장했습니다. 자연선택설이란 더 적응을 잘한 형질이 후세에 남는다는 거죠. 그런데 자연선택설을 주장하다 보니 한 가지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있었어요. 왜 수컷들은 전부 아름다운 색깔을 띠고 춤도 추는 등 위험한 짓을 하느냐는 의문이었죠. 숲에 가서 꿩을 봐도 장끼는 눈에 확 띄고 까투리는 눈에 안 띄잖아요. 까투리는 숨을 수 있는데 장끼는 숨을 수 없어 여우한테 잡아먹히기 쉽죠. 도대체 수놈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자연선택설로는 설명을 못 하는 거죠.

    “결혼제도는 남성의 작품”

    그로부터 12년 후 다윈은 또 한 권의 책을 쓰면서 성선택설로 수컷의 행동을 설명했습니다. 수컷들이 그런 짓을 하는 건 비록 생존에 위협을 받더라도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암컷이 가장 밝은 색을 띠는 수컷을 좋아하니까 암컷 눈에 띄어 교미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많이 남긴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밝게 만들어주는 유전자가 계속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수컷의 행태를 설명하는 과정에 다윈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다윈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컷이 선택권을 가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후세 동물학자들이 그 반대 성향을 띤 동물을 몇 종 찾기는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해 다윈의 이론을 깨지는 못했죠.

    성선택설에 대한 연구는 다윈이 발표한 후 100년이 지나서야 시작됐어요. 남자 학자들이 잠자리에서 여자들이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죠. 연구가 본격 시작된 1960년대는 여성운동이 싹트던 때였어요. 여권이 신장되면서 성선택설 연구도 활발해진 것으로 봅니다. 제가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데 요즘 이 분야에서 발표되는 연구논문의 70∼80%가 성선택설에 관한 연구예요.”

    ―동물의 세계야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는 대체로 남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습니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지요. 다윈의 얘기에 따르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잠자리의 주도권이죠. 물론 남자가 여자를 겁탈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로 치고 대개 마지막 결정은 여자에게 달려 있죠. 부부간도 마찬가지죠. 남편이 추근거려도 아내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별 재주 없는 게 남자니까.

    만일 결혼 제도가 없어 남자들이 매일 저녁 여자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면 당연히 결정권이 여자들에게 있죠. 미혼 남자들을 보면 알잖아요. 생물학적 관점에서 왜 그 결정권이 중요하냐 하면 바로 내 유전자가 후세에 남느냐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앞으로 연구를 더 해봐야겠지만, 저는, 결혼제도는 남자가 원해서 만든 제도라고 믿어요. 일단 확실하게 한 여자라도 내 품에 잡아두고 싶은 욕망 때문에 시작한 제도라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그런 사회가 지구상에 한두 군데는 있다고 그러는데, 여성이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남자를 받아들여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면, 남자의 권한이 엄청나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여자에게 잠자리를 같이 해달라고 빌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넘겨줘야 한다고요. 그것이 싫으니 결혼이라는 제도로 여자를 붙들어 맬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거죠.”

    최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동물들의 예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사촌이라 할 만한 침팬지나 고릴라 등은 번식기가 되면 암컷이 번식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알려준다. 외부생식기가 벌겋게 부풀고 냄새가 난다. ‘지금 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면 내가 너의 새끼를 낳아줄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컷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서로 경쟁하는데 결정권은 암컷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영장류 중 인간은 유일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은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죠. 자기 부인이 언제 배란하는지 아는 남편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 남자로선 계속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떤 여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한 여자와 잠자리를 할수록 그 여자가 낳을 자식이 내 자식일 확률이 커지는 거죠. 만약 그 여자가 나말고 다른 남자들과도 관계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남자들보다 그 여자와 더 자주 성교를 하는 거죠. 그게 뭐냐. 결국 한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겁니다.”

    ―말씀대로라면 여자들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어쩌다 가부장제가 자리잡게 됐을까요?

    “인간에게는 문화라는 게 있잖아요. 침팬지를 비롯한 젖먹이 동물의 사회가 그렇듯이 우리도 여성이 중심인 사회가 됐어야 맞죠. 그런데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에 남성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 시기에 대해선 앞으로 더 연구해야겠지만 많은 학자들은 농경사회의 시작을 꼽아요. 농경사회가 되자 부의 축적이 가능해졌는데, 그 부가 남성의 손에 넘어가면서 남성들이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죠.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남성이 경제력을 확보하면서 문화도 남성 중심으로 굳어진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죠.”

    ―누가 생산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생산력이나 부를 더 가지게 될 경우 가부장제와 반대되는 가모장제 사회가 출현할 수도 있겠네요?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종족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지금도 그 사회에선 여성의 입김이 아주 강해요. 남성 여성의 차이가, 특히 경제력 면에서 차이가 별로 없다는 얘기죠. 매일 먹는 것, 이를테면 곡류나 과일 같은 것은 대개 여성이 충당해요. 남성의 몫은 수렵이죠. 그런데 수렵은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허구한 날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고, 어쩌다 짐승을 잡아온 날은 으쓱거리지만 나머지 날들은 부인이 장만한 걸 쭈그리고 앉아서 먹어야 하는 처지거든요. 그런 사회에서는 남성이 큰소리를 칠 수 없죠.”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된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신작 ‘제1의 성’에 따르면 미래 사회는 경제력 면에서 여성에게 유리한 사회다. 그 동안엔 근육의 힘이 필요한 산업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머리를 쓰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산업이 주종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피셔는 또 미래산업의 중심이 네트워킹, 곧 사람 간 관계를 중요시하는 산업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 점에서 여성들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헬렌 피셔에 따르면 경제권이 여성에게 넘어가고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될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제1의 성’은 ‘뉴욕타임스’로부터 두들겨 맞았어요. 근거 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니냐고 해서. 제 생각에도 헬렌 피셔의 얘기가 다 맞을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여성의 경제력이 남성에 버금갈 정도로 커지리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제 생각엔 여성의 경제력이 굳이 남성을 능가하지 않더라도 여성이 스스로 충분히 먹고 살 때가 되면 지금의 남녀관계가 크게 바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신호들이 보입니다. 경제력이 풍부한 여자들은 결혼은 하지 않고 정자만 달라,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더욱이, 예전엔 정자를 누군가에게 받아야 했지만, 요즘은 정자와 난자를 인터넷에서 사고 파는 시대입니다. 제가 여자라고 칩시다. 좋은 직장 있고, 직장 탁아소에서 아이들을 맡아주고, 그러면 미쳤다고 남편을 모시고 사느냐는 거죠. 인터넷에서 정자 사 가지고 아이 낳아서 혼자 키우고, 내 배짱대로 살고, 내가 즐기고 싶으면 오늘 저녁에 어느 남자에게 전화해 ‘우리 집에 올래’ 해서 불러들여 즐기고…, 그런 시대가 오면 남자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나를 선택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런데 예전과 달리 남자가 여자에게 별로 줄 게 없으니 굉장히 어렵죠.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정상적인 성비를 가진 우리나라는 아주 위험해요. 어머니들이 병원에서 여자 아이들을 너무 지운 탓에 지금 여자가 귀하잖아요. 2020년엔 남녀 비율이 1.25 대 1이 된다는 통계가 있어요. 이건 굉장한 비율입니다. 남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자를 못 찾는다는 얘기죠.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죠. 엄청난 변화가 올 겁니다. 내기하라면 할 수도 있어요.”

    무릎꿇는 남자들

    ―남아선호 사상이 오히려 남성 지배 사회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되는군요?

    “붕괴시키게 되겠죠.”

    ―여자들이 자업자득이라고 하겠는데요?

    “그런데 그걸 누가 주도했느냐, 여자들이 했어요.”

    ―참 역설적인 얘기네요.

    “여성이 남자 아이를 원해서 그런 일을 한 거예요. 결국 딸을 낙태시키고 아들만 낳은 어머니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겁니다. 아들 중에 결혼 못하는 아들이 생길 테니까요. 또 여자가 귀하니 결혼하려면 딸 가진 집에 완전히 굽혀야 하지요. 그럼 결혼해서 기도 못 펴고 살 테고.”

    ―동물의 세계에서도 가부장제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습니까.

    “포유류 동물세계에는 처첩제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리죠.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난 것과 속사정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조랑말을 연구하고 있는데, 수말 하나가 여러 암말을 거느려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나이 많은 암말이 지배권을 갖고 있습니다. 암말 여럿이서 집단을 이루고 그 암말 중 제일 우두머리가 수말을 하나 선택해요. 너 들어와, 하고. 그 수말로 하여금 여러 암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죠. 수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쫓아낼 권위를 가진 것이 바로 나이든 암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하면 음식을 먹을 때 보면 알 수 있어요. 만약 그 수말이 왕초면 제일 먼저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나이든 암말이 먼저 먹어야 다른 말들도 먹기 시작해요. 사자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수사자가 암사자를 거느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암사자들이 만든 사회에 수사자가 들어와 얹혀 사는 겁니다.

    침팬지 사회를 들여다보면 날뛰는 것은 다 수컷이에요. 겉보기엔 수놈이 권력을 쥐고 있죠. 그런데 누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가 가장 좋은 음식을 먹느냐고 물으면 답은 암놈이에요. 이런 걸 보면 포유동물의 세계는 암컷이 지배하는 세계로 볼 수 있죠.”

    최교수 분석에 따르면 고대의 인간 사회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즉 마을의 족장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데, 대개 그 조언자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였다는 것. 조선시대에 ‘대비마마’가 상당한 권력을 가진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본다.

    ―가부장제는 생물학적 근거가 없는 제도이군요?

    “인간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산물이지, 생물학적·진화적 산물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타파하려고 하는 건 지극히 정당한 행위로 봐야겠군요?

    “동물들이 그러니까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고….”

    ―자연의 원리에 비춰 말입니다.

    “자연의 원리로 보면 분명 가부장제는 근거가 없는 제도입니다. 가부장제의 기본사상은 남성이 중심이 돼 대물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 대물림은 여성을 통해 이뤄집니다. 정자는 난자에 유전자의 반을 제공할 뿐입니다. 생식에 필요한 온갖 요소는 난자에 있어요. 난자는 유전자의 나머지 반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를 반씩 합해 생명체를 만들어냅니다. 난자에 비하면 정자의 기능이나 역할은 아주 미미한 것이죠.”

    대물림은 여성 통해

    ―그렇지만 정자가 없다면 수정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생물 중엔 처녀생식하는 것들도 많아요. 또 알을 한 번 찔러만 주면 생식이 이뤄지는 것들도 있고요. 정자는 혼자서 자식을 못 만들어도 난자는 혼자서 자식을 만드는 예가 비일비재하죠. 그런데 인간의 경우는 그게 안 돼요.”

    ―인간의 경우는 절대 불가능한가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런 쪽으로 진화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그렇게 태어났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현대 생물학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앞으로 체세포로 사람을 복제하는 세상이 온다면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것 없이 다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겠지요.”

    ―자기 체세포에서 복제해가지고요?

    “자기 체세포에서 복제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난자를 살 수도 있죠. 난자를 사 시험관에서 자기 정자와 결합시켜 아이를 만드는 거죠. 그런 세상이 오면 결혼 풍토도 많이 바뀌겠죠.”

    ―동물들은 생식욕 때문에 섹스를 할지 몰라도 인간은 성욕이나 성충동이 생식욕구보다 강하지 않습니까.

    “동물도 짝짓기를 할 때 자식을 낳아야지 하고 짝짓기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도 섹스를 하다 보면 저절로 자식이 생기게끔 자연선택이 이뤄진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섹스를 무지무지 좋아하게끔 진화했어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늘 성에 사로잡혀 삽니다. 다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가 있는 거죠.”

    동물의 세계에서 유추하면 남성의 성충동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듯싶다. 최교수의 견해로는 성범죄의 범위가 넓어지고 처벌규정이 강화된 지금 남자들은 무조건 몸조심할 수밖에 없다. 때로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동물 세계에서도 수컷은 치근거리는 동물이고 암컷은 빼는 동물입니다. 원천적으로 (성충동을) 없앨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 이성적인 수준에서 여성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규범을 만들어 지키는 수밖에 없는데, 최소한 직장이나 사회에서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죠. 어쨌든 한동안 시계추가 저쪽(여자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제까지 남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니까. 남자들이 완벽하게 조심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죠. 한동안 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세월이 좀 지나면 서서히 중심으로 돌아올 겁니다.”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성욕이나 성충동이 강하지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암컷도 성욕이 셉니다. 그런데 암컷은 수컷보다 신중하죠. 왜냐하면 수컷은 여러 암컷에게 마구 정자를 뿌려도 손해날 게 없지만 암컷은 아차 잘못해 시원찮은 수컷의 정자를 받아들이면 질이 좋지 않은 자식을 낳게 되니 암컷은 (수컷을) 고를 수밖에 없지요. 겉으로만 보면 수컷이 성욕이 세죠.

    그런데 암컷도 여러 수컷을 상대합니다. 그게 암컷에게도 유리할 수 있어요. 자식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여러 수컷을 상대해서 여러 정자를 모아 경쟁을 시키면 그중 가장 건강한 정자가 난자와 만날 겁니다. 그놈이 가장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동물의 몸 속에서는 이른바 정자 전쟁이라는 게 있어요. 한 수컷과 교미하는 암컷보다는 여러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더 좋은 유전자를 받을 가능성이 크죠.”

    ―여권 신장 차원에서 일부 여성들이 주장하는 프리섹스와 관련시켜볼 수도 있겠는데요?

    “섹스와 번식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면 여성이 꼭 한 남자만 상대해야 할 이유가 없죠. 여성도 욕망은 느끼되 그 욕망을 그대로 노출시켰을 때 유리한 점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에 자제한다고 봐야죠. 그렇게 보면 남성은 성욕이 강하다기보다는 자제력이 약하다고 봐야겠죠.”

    ―예로부터 남자들은 여자의 성을 억눌러 왔습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자는 음탕한 여자라고 비난하고.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보면 비난할 근거가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없어요. 다만 여성은 남성보다는 번식을 자제하기 힘들기 때문에 피임을 철저히 하지 않는 한 (남자들에게) 당하기 쉽죠. 남성은 어느 날 밤 어느 여자를 상대했는지, 그 여자가 임신해 어디서 내 자식을 키우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성은 늘 부담을 안게 돼 있죠.”

    이런 얘기를 하면 으레 궁금해지는 것 중 하나가 일부일처제의 기원과 타당성이다. 최교수에 따르면 포유류의 대부분은 일부다처제를 취하고 있다.

    “인간도 어떻게 보면 일부다처제가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한 인류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족수로 계산하면 일부다처제 종족이 일부일처제 종족보다 많아요. 절대 다수의 종족이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람 수로 보면 일부일처제가 많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명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인간이 오랫동안 일부다처제를 유지해온 동물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일부일처제로 바뀐 것은 사회적인 진화로 봐야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사회 질서 유지와 관련된 것 같아요. 옛날엔 힘있는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렸어요. 그 탓에 여자가 없어 결혼 못하는 남자가 굉장히 많았어요. 민주주의가 점차 발전하면서 평등과 균배의 개념이 적용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교수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남녀평등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꿀지 모른다.

    “시험관에서 아기 키우는 시대를 지나 머잖아 자기 장기를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닥쳐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지금 이걸 연구하는 팀이 많은데, 일단 여자가 자신의 자궁을 복제해 병원에 놓아두죠. 그런 다음 남편의 정자와 자신의 난자를 복제한 자궁에 담아두면 배부를 이유가 없죠. 각자 자기 일 하다가 병원에 들러 가끔 들여다보기만 하면 돼요. ‘우리 애 잘 크고 있네’ 하면서. 9개월쯤 지나 병원에서 ‘이제 애 데리고 가십시오’ 하고 연락이 오면 가서 데리고 오면 되죠. 젖은 우유로 대체하면 되고.

    그러면 당연히 아이를 같이 키우자는 얘기가 나오겠죠. 그 상황에선 남편도 ‘왜 내가 해’라고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죠. 그야말로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 되는 거죠.”

    포유류는 일부다처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과거에 그런 주장을 폈지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남녀간 성적 차이가 사라지므로 진정한 남녀평등이 온다는 주장이죠.

    “그런다고 여성성이 없어지지는 않겠죠.”

    ―그게 또 논란거리예요. 여성성과 남성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과연 모든 여자가 여성성을 없애기를 원하느냐. 그렇지 않을 겁니다. 또 없애는 것이 능사냐. 그것도 아닐 거라고요. 여성성에 좋은 점도 많기 때문이죠. 여자들이 원하는 건 분명 남녀 평등입니다. 그렇지만 평등하다고 해서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 특히 모성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순결 이데올로기처럼 남자들이 여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허상이라는 거지요.

    “모성 개념은 생물학적인 근거가 있어요. 왜냐하면 아홉 달씩이나 몸 안에 넣고 교감을 하기 때문이죠. 남자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잖아요. 만약 복제된 자궁에서 애를 낳아 기른다면 좀 다르겠죠. 그 경우엔 과연 모성이라는 게 여성에게 있는가 하는 걸 한번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죠.”

    ―파이어스톤이라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 기능을 여성 종속의 근원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아까 여성 종속의 원인을 경제력 면에서 말씀하셨지요?

    “어떻게 보면 둘 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한 건 문화적인 측면에서고. 여성 문제의 근원은 아무래도 생물학 차원에서 설명해야겠죠. 포유류 암컷의 조상이 잘못한 거죠. 새끼를 몸 밖에 내놓는 게 싫으니까 몸 안에 오랫동안 품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그러다 보니 수컷한테 자유를 줄 수밖에 없었죠. 그건 어떻게 부인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생물학자들에 의해 그 구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어요.”

    ―물리적 힘, 즉 폭력이 남녀 관계를 결정한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몸집이 큰 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죠. 그건 일부다처제 동물들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해요. 그래서 남성 폭력이 문제가 되죠. 일처다부제를 하는 새들이 있는데, 암컷이 훨씬 크고 싸움도 잘해요.”

    ―호르몬의 문제인가요?

    “그렇죠. 여자는 성장호르몬이 빨리 나와요. 그래서 여자 아이들의 성장속도가 빠른 겁니다. 그런데 생물학적 원리에 따르면 일찍 크면 많이 못 커요.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나중에 여자 아이들보다 더 커지죠. 호르몬을 조절하면 여자가 더 커질 수도 있죠.”

    ―동물도 그렇습니까?

    “대부분 그래요.”

    ―여자들이 임신 출산 양육 등 주로 정적인 일을 하다 보니 근육이 퇴화했다는 설도 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은 근육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여자들은 아무리 운동을 해도 남자만큼 되기가 쉽지 않아요. 남성호르몬과 관련된 것이죠. 그래서 힘 싸움으로는 여성이 불리할 수밖에 없죠.”

    ―인간 남성과 동물 수컷의 폭력성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 인간 남성은 어느 동물보다도 폭력적입니다. 조직적인 폭력까지 휘두르는 걸 보면 굉장하죠. 여자에 대해서도 그렇고. 전쟁이 폭력의 극치잖아요. 그런데 남성들은 전쟁터에서 또 여성들을 유린합니다. 그런 점에서 남성은 폭력의 기원이라 볼 수 있죠.”

    ―그 얘기를 들으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남성과 여성의 기질이 생래적인 거냐, 아니면 사회적으로 길든 거냐는 의문입니다. 이 문제는 페미니즘의 근본 과제이기도 하죠.

    “둘 다 해당되죠.”

    가부장제 붕괴는 순리

    최교수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엄연히 다른 기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흔히 얘기하는 남성성, 여성성 개념엔 오류가 많다고 한다. 학습과정과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를 근원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부장제 붕괴는 어찌 보면 자연의 질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동물의 세계에선 암컷이 중심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얘기하면 큰일나죠. 그렇게 말하면 안 되고…. 저는 여성의 세기는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성의 문제로 봅니다. 여성의 세기가 올 수밖에 없는 여건이 갖춰진 겁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타당성이 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걸 남성들이 반겨야 합니다. 지금의 불평등한 남녀구도를 진정 즐기는 남성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어요. 자기 부모 집에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남편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처가에는 편안하게 가지만 본가에 한번 가려면 부인 눈치 봐야죠, 뭐 해야죠, 신경 쓰이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어쩌면 우리 사회에선 이미 여성들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지 몰라요.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호주제를 등에 짊어지고 남성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커요. 실업사태 나면 왜 아빠들이 서울역 지하도에 가야 됩니까. ‘내 책임이다’하고 다 뒤집어쓰고 가잖아요. 그게 왜 남자만의 책임입니까. 호주라는 강박관념 탓이지요.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남자가 무지무지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여성들은 ‘에이 그런 망발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통계가 말해줘요.

    지난해 WHO(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40∼50대 남자들의 사망률이 두드러지게 높습니다. 연령대에 따라 사망률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 나라가 없어요. 왜? 대한민국 남성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직업전선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제고 뭐고 다 떨쳐버리면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고생을 왜 사서 합니까. 호주제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남자들 세상은 이미 다 갔어요. 껍데기만 남은 제도를 왜 빨리 안 버리는지….”

    ―가부장제의 붕괴가 여성 해방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남성도 해방된다는 말씀인가요?

    “제 생각에는 남성이 지금보다 훨씬 편해지죠.”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

    “여성이 해방된다는 건 그만큼 남성이 짐을 벗는다는 걸 뜻합니다. 무책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짐을 진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호주제 폐지는 남성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고 봐요.”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