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대통령님! 노벨상 탄 인권침해자가 되시렵니까?”

  • 박래군

    입력2005-04-29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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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 정부 3년이 지났다. ‘인권대통령’을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대통령 집권이후 한국의 인권상황은 오히려 열악해졌다는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다. 개혁입법은 표류하고 있고 인권 사각지대는 늘어나고 있다. 과연 김대중 정권은 인권을 포기할 것인가.
    지난해 12월28일부터 올 1월9일까지 인권활동가들은 명동성당에서 노상단식농성을 벌였다. 단식농성 기간 중에 15년만의 강추위와 20년만의 폭설이 몰아쳤다. 매일 아침 얼어붙은 침구를 털며 시작하는 농성은 하루 종일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진행됐으며, 오후 2시와 8시 하루 두차례 집회를 마치고 농성자들은, 초기에는 그 자리에 비닐을 뒤집어쓰고, 나중에는 천막에서 추운 겨울밤을 이겨내야 했다.

    12박13일간의 농성 기간 동안 허기와 추위에 쓰러져 4명의 인권활동가가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링거 주사를 맞으며 농성장을 지킨 활동가도 부지기수였다. 처음 14명으로 출발한 농성은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져 수십명으로 늘어났으며 하루 두 차례의 집회에는 수백명의 시민과 학생,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함께 했다.

    농성단은 매일 밤 촛불집회를 열었고, 마지막에는 촛불음악회도 가졌다. 매일 밤 집회 때는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혹한기 단식농성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시민들은 물론, 해외 동포와 국제인권단체의 지지와 공감도 획득했다. 한때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던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부정부패방지법 제정’ 등 3대 개혁입법 추진을 위한 결의가 모아졌고, 농성 마지막 날에는 3대 개혁입법 추진 공동대책위가, 인권활동가들의 단식농성을 이어받아 2월 총력투쟁을 결의하는 기자회견을 갖기에 이르렀다.

    인권활동가들은 아마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을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매일 부딪히는 인권현장의 문제들을 싸안고 밤늦도록 뛰어 다니는 사람들이다. 인권운동의 역량은 미약하고, 인권사안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요즘같은 상황에서 인권활동가들은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들이 1999년 4월의 연합 단식농성에 이어 두 번째로 단식농성을 벌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라! 보안법, 오라! 인권위원회”



    “이제 어떤 약속도 믿지 않는다. 지난 3년 간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정부가 외쳐왔던 그 많은 약속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공공연히 인권의 보편성과 국제인권원칙을 부정하는 정치세력들의 어떤 행동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으며, 인권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결연히 맞설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권활동가들이 김 대통령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이다.”

    인권활동가들이 성명서에서 밝혔듯 지난 3년 동안 김대통령은, 인권에 대한 약속을 대부분 지키지 않았다. 2000년의 정기국회에도 여당인 민주당은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채 국가보안법 개정안도, 국가인권위원회법안도 제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 사회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 법안에 대한 논의의 실종, 그것은 바로 김대중 정부의 지난 3년 간의 인권성적과 직접 연결된 문제였다.

    “하루의 농성을 접으며 칠흑 같은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내일 모두들 일어설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농성에 참여했던 어느 인권활동가의 일기처럼 인권활동가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인권현장이 아닌 명동성당에서 혹한기 단식농성을 결행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 다시 들려오는 소식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이 시기상조라면서 한참 뒤로 논의 순서를 미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법무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여, 인권단체들과의 합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채 껍데기만 국가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법안을 당론으로 정한다고 한다. 다시 한번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인권에 대한 허약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인권단체들이 대정부 퇴진투쟁 채비를 하는 동안에도 문제의 핵심을 모른 채 안이하게 대응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 여기에 오늘의 인권 위기가 있다.

    인권운동사랑방(대표 서준식)이 발간하는 팩스 일간지 ‘인권하루소식’에서는 매년 말 인권 10대 뉴스를 독자들의 설문을 통해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이 10대 뉴스들을 보면 그 해에 어떤 일들이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박스기사 참조)

    언론들에서 뽑는 10대 뉴스들이 늘 정확하게 그 해의 주요 사안을 선별할 수는 없다. 원체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터져나오는, 희한하게 재미있는 세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잊기 잘하는 국민인 데다 공통적인 인권기준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설문으로 파악한 10대 뉴스가 갖는 공정성과 신뢰도는 의심을 살 수 있다. 그럼에도 3년 간 이 인권신문에서 뽑아놓은 뉴스거리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인권사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유용하다.

    바뀌는 ‘인권 지형’

    인권사안들은 크게 다음의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들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정리해고와 실업, 빈곤, 노숙, 결식아동의 문제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롯데호텔) 문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이르기까지 매년 심각해지는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인권지형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지금까지는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의 문제가 중심을 이뤘다면 앞으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의 영역이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면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이 등장하면서 인권목록이 폭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억압적 거대담론에 눌려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결단이나 의지에 의해서, 아니면 조직적인 운동을 통해서, 혹은 주변 상황에 이끌려 사회의 전면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의 냉담과 무관심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셋째, 과거문제의 진실규명과 청산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의문사, 베트남전 진실, 한국전쟁시기 양민학살, 제주 4·3항쟁, 삼청교육대 등의 문제가 어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과거사 문제는 국가와 사회가 해결을 위한 총체적 노력을 회피하는 한 두고두고 제기될 것이라는 점을 지난 3년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넷째,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게 폭발적으로 나타났던 문제는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세력과의 갈등이었다. 매향리 폭격장 문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문제,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모두가 국가의 주권과 관계된 문제일 것이다. 불평등한 대외관계의 청산을 통한 주권 국가 국민들의 인권 확보라는 과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다섯째, 언제나 우리 사회의 인권을 말할 때 앞자리에 세워지는 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였다.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의 인권침해적 요소가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인권침해에 대한 항의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내용은 국가보안법의 개폐 문제이다. 또, 국가의 인권침해에 대한 반성적 장치인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6월29일 새벽, 경찰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적정인력 확보를 요구하는 호텔롯데 노조원들의 파업농성을 진압했다. 이어 7월1일 사회보험노조의 농성을 같은 방식으로 진압했다. 대(對)테러부대인 솔개부대까지 앞세운 전광석화 같은 ‘작전’이었다. 경찰은 장애인, 여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1997년말부터 진행된 IMF식 구조조정은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을 낳고 있다. 한때 실업자는 200만명에 육박하기도 하였으며, 다시 취업을 했다는 노동자들도 예전의 직장이나, 혹은 비슷한 대우를 받는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미 53%를 넘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예사로운 문제일 수 없는 심각성을 던져주고 있다.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낳은 폐해는 그동안 확보해왔던 노동 기본권마저 포기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제 정부에서는 전경련과 같은 재벌 기업 집단들의 이익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하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부응하여 노동법의 전면적인 개악을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겪은 노동조건과 임금의 하락 및 비정규직의 양산은 ‘빈곤층 1000만 시대’로 이어졌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빈부지도를 20대 80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노동기본권의 포기만이 아니라 빈곤층으로 전락한 이들이 겪는 사회권의 후퇴현상은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어어지고 있다. 즉 건강과 교육의 일정한 유보와 포기, 가정의 해체, 노숙자의 상존, 자살자와 보험범죄의 급증 등 심각한 문제들이 노동기본권 포기에 뒤를 이어 빈곤층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 조사결과는 여성 노동자들의 63%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5%만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있는 여성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는 호텔 롯데만이 아니나 이랜드 노조,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를 통과한 노동법 개정안이 복수노조 금지를 다시 5년간 연장하기로 함에 따라 이들의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길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각종 사회보험들이 제도화되었다고 하지만, 노동을 기본전제로 하는 그 제도들은 오히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뒤 그 혜택을 받는 이들이 줄어든 것에서 보듯이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노동으로부터도 배제되고, 인간의 기본권으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나아가 앞으로 추진될 구조조정에 의해 더욱 확대된다면 생존권을 비롯한 사회권의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폭력진압과 밀어붙이기식 구조조정일 뿐이다. 정부의 인권정책에서 이들의 인간적 기본권은 늘 관심밖에 있다.

    군산 매매춘업소 화재사건이 남긴 것

    “밤 11시 오늘 첫 손님을 받았다. 술취해 추근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매너들이 좋았다. 오늘은 매상을 많이 올릴 것 같았다. 8명의 손님을 받는 사이 새벽 5시가 됐다. 손님은 더 없을 것 같다. 포주와 오늘 하루 정산을 하니 내 장부에 들어간 돈은 16만원, 그 돈도 실은 포주가 저축해준다며 가로채 내 호주머니엔 단 한푼 없다. 영업수입 절반은 애초부터 주인아줌마 몫이다.”

    위 글은 지난해 9월19일 군산의 매매춘 업소들이 몰려 있는 일명 ‘쉬파리 골목’에서 매춘에 종사하다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임아무개 씨 일기 중의 한 대목이다. 임씨는 채 1평도 안되는 3중 감금장치가 된 방에서 손님을 받다가 화재에도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녀는 개그우먼이 되는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하지만, 빚에 팔려온 자신의 신세는 ‘철창에 갇힌 한 마리 작은 새’일 뿐이었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은 여론에 밀려 업주 8명을 구속하고, 5명을 지명수배했다. 이후 경찰은 전국에서 ‘감금 매춘’ 특별단속을 벌여 매매춘 업주와 인신매매사범 289명을 붙잡아 163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매매춘 업주들의 정기적 상납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진 경찰과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으며, 1심 재판의 결과도 3∼4년의 실형에 그쳐서 여성단체들의 비난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의 처지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군산화재사건의 그 여성들과 같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했던 영등포 쪽방의 화재사건, 1998년의 충남 연기군 소재의 부랑인시설인 양지마을과 1996년말부터 지금껏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에바다농아원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 노동권은 고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아 드림의 꿈을 분노로 바꿀 수밖에 없는 20만명의 외국인 노동자, 수백만명의 장애인들, 성정체성을 당당히 밝힐 수 없는 동성애자들,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부모의 화풀이 대상인 아동들의 문제까지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인권은 아직껏 제대로 된 사회적 공론의 장조차 갖지 못한 채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흡한 과거청산 작업

    1999년 12월28일 과거문제 해결을 위한 3개의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 3개의 법률은 ‘제주 4·3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중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70년대 이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의문사로 사망한 사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된다. 의문사는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의해서 발생한 것으로 공권력이 직접 살해행위에 가담하였거나, 아니면 은폐·조작에 관여한 사건을 말한다.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으로는 장준하 선생, 최종길 교수, 조선대 이철규 사망사건 등이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말까지 총 80건의 진정이 접수됐고, 이중 75건의 사건을 위원회가 조사하기로 하였다. 특히 위원회는 70년대 전향공작 중에 사망한 비전향 장기수들을 직권조사하기로 하여 파문을 던졌고, 삼청교육대 사건도 직권 조사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 위원회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시작은 순조로왔지만, 국정원 경찰 군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들을 실질적으로 조사하기에는 위원회의 권한이 지나치게 미약하다. 민관 합동 수사관 50여명으로는 최대 9개월 안에 사건 조사를 마치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제한적인 것이긴 하지만,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죽음과 불명예를 당한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50여년이 흐른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였다는 점은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시기의 수많은 양민학살, 베트남전 학살 사건의 진실규명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또, 민주화운동과는 별개의 사건들, 예를 들면 김훈 중위 사건과 같은 군부대내 폭력 희생자의 문제는 현재의 구조로서는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매향리 미군 폭격장 문제를 비롯, 파주미군기지 폭발물 설치 사건, 군산 미공군 비행장의 오·폐수 무단 방류사건, 7월13일 녹색연합에 의해 폭로된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한국전쟁 중 노근리 학살사건 등으로 주한미군은 이제 국민들을 개별적으로 위협하는 범죄에서 사회환경마저 파괴하는 인권침해 주범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행정협정(SOFA)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투쟁이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하고 사과와 피해보상을 거부했으며, 한미행정협정 개정도 미국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기소 시점에서 신병인도를 받는 등 일부 형사재판 관할권 분야의 진전이 있었을 뿐(어떤 부분은 도리어 악화됨), 환경 문제 등에 대한 미국측의 양보는 얻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국민들의 투쟁을 외면하고야 말았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일본군 위안부(성노예로 국제사회에서는 규정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이처럼 민족자결주의에 어긋나는 사대적 태도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외문제에 대한 저자세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인권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국가보안법 문제다. 물론 현 정부 들어와 장기수들이 1999년 12월까지 모두 석방되어 이제 감옥에 있는 정치범 장기수는 없으며, 지난해 9월에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송되는 등 일면 진전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98년 2월25일부터 지난해 8월까지의 국보법 위반 구속자는 모두 870명(2000년 국회 법제사법위 국정감사 자료)으로, 해마다 약 300명이 국보법에 의해 구속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는 현 정권 들어서도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사상·양심·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자유권을 억누르는 주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간 300명 구속은 공교롭게도 198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의 연평균 구속자 규모와 거의 일치한다. 즉, 198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구속자가 6010명으로 평균 한해에 300명이 구속되었던 것으로 이는 현 정권 들어서도 국보법 위반자 구속 추세에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첫해부터 국가보안법 개정을 약속해왔고, 지난 1월에도 “북한의 노동당 규약과는 상관없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3년 동안 논의만 무성한 채 최근 민주당은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추후로 미루기로 하였다.

    이는 1999년의 자유권조약 2차 심의 결과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의 우선 삭제’와 ‘국가보안법의 단계적 폐지’를 권고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더욱이 반국가단체로 몰렸던 영남위원회 사건, 1,2차 민혁당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현 정권 들어와서도 여전히 조작의 의심이 가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법의 7조다. 현정권에서도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줄지 않는 것은 7조 3항(이적단체 구성, 가입)에 의해 이적단체로 몰린 한총련 간부의 경우 총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는 즉시 수배자의 처지에 몰려 검거되는 수난을 겪기 때문이다. 사실 전체 국가보안법 구속자의 90% 이상이 7조 위반이며, 그중 75% 이상이 3항을 적용받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7조가 문제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 공포의 원천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실정법화하여 초헌법적인 위력을 휘둘러 왔기 때문에 적나라하게 국가의 폭압성을 드러내주는 악법이다. 더욱이 북한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는 상황에서 대부분 조항들이 이미 사문화의 길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이의 개정이 지연되는 까닭은 폭압적 국가권력을 지속시키겠다는 일부 공안집단의 반인권적 속성이 우리 정치권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의 개폐가 과거로부터 이어진 국가폭력을 제거하고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과제라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는 이와 반대로 현재와 미래에서 국가적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정되었다. 대통령의 대표적인 인권공약 사항이기도 했던 이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떻게 하면 국가기구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함으로써 억울하게 인권침해를 당한 국민들의 호소를 풀 것인지가 그 존재 이유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민간단체들의 주장이었고, 이에 반해 법무부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자신들의 관할권 아래 두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민주당이 국가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로 설립하고, 실효성을 부여하는 안을 만들어 민간단체들과 전격적 합의를 이루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시 법무부의 입김에 의해 인권위의 실효성을 대폭 삭감하는 안으로 후퇴하는 바람에 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국가권력의 폭압성을 해체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로서는 별 진전이 없다. 1998년 사상전향제 대신 도입된 준법서약제, 법원의 처분 취소 선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용되는 보안관찰법, 계속 불거져 나오는 도·감청과 사찰 문제는 거리에서 전경들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는 외형과는 달리 실제로는 국가권력의 일상적인 인권침해 구조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 외에도 사이버 상의 표현의 자유, 개인 비밀 보호, 유전자 정보의 보호, 후진적인 감옥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권침해, 개발로 몸살을 앓는 환경권, 교육권과 건강권의 침해, 학생과 청소년·어린이 인권의 사각지대 등등 각종 인권현안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인권정책의 전면적 재고 필요

    1998년 2월25일, 현 정부는 우리 사회의 낙후된 인권실태를 상당히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역사에 인권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 기대감은 더욱 컸다. 그러나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인권과 이를 위한 민주주의가 희생될 수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용납지 않는 권위주의체제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것”이라던 김대통령은 경제를 이유로 인권을 희생시켜 왔다.

    그 자신의 기준대로라도 자유권만이 아닌 사회권의 동등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했음에도,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개선이 없었다.

    그것은 이른바 국민의 정부에게 주어졌던 인권 과제인 ‘과거 인권침해 피해의 제거, 반민주악법과 제도의 개선, 새로운 인권제도의 확립(대표적인 예로 국가인권기구)’ 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집권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인권철학의 부재와 법무부를 비롯한 관료조직의 저항이 문제일 것이지만, 먼저 정치적 수사를 넘는 대통령의 실천의지 결여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대로라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통령도 이전 대통령들처럼 인권침해자로 낙인찍힐 날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 우리의 인권상황은 인권활동가들로 하여금 대정부투쟁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는 위기상황이다.

    ‘그 어떠한 명분과 구실로도 제약받거나 유보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로서 인권문제를 자각하는 국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현 정부의 인권정책의 전면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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