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주먹계에도 호남 역차별 있다”

  •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5-04-29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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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조직폭력과의 전면전’을 선언, 주먹계가 요동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주요 폭력조직 수괴급에 대해 수사를 벌인 서울지검 강력부(이준보 부장검사)는 최근 이른바 3대 패밀리를 비롯한 9개 파의 주요 간부 20명을 구속기소했다.

    서울지검의 수사는 대검의 ‘수괴급 조직폭력배 특별단속’ 지침과 연계된 것이다. 대검 강력부(류창종 검사장)는 지난해 12월 전국 일선 검찰의 조직폭력배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부산의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 이아무개씨(58)를 비롯, 전국 주요 조직의 두목급 폭력배 19명이 구속됐다.

    빅뱅의 세 가지 징후

    조직폭력에 대한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대검 강력부는 국내 조직폭력의 활동양상이 위험수위에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류창종 대검 강력부장은 “빅뱅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 단계에서 이를 차단하지 못하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빅뱅의 첫째 징후는 ‘기업형’의 정착이다. 예전엔 주로 유흥업소나 건설업계 주변에서 폭력을 행사하며 이권을 챙기는 갈취형이 많았으나 요즘은 대부분 사업형으로 바뀌고 있다. 합법적 사업가로 변신, 외형적 폭력 대신 지능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업형 폭력조직은 마피아의 전 단계로 보인다.



    둘째는 지역토착화 양상이다. 각 지역의 대표적 주먹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해 모은 상당한 재산을 기반으로 지역유지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거나 특정후보 지원 또는 사회활동 등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꾀하고 있다. 향후 조직폭력배 수사의 최대 걸림돌은 이들을 비호하는 정·관계 세력이다.

    셋째 조짐은 국제화다. 국내에서 설 땅이 좁아진 폭력배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외국 폭력조직과 연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남아가 주요 활동무대인데, 최근엔 중남미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현지 교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이권을 챙긴다.

    해외 조직과의 연대도 점차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야쿠자와의 유대 관계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홍콩 삼합회나 미국 마피아와 접촉해 국제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류부장이 설명하는 세 가지 위험 징후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폭력조직의 기업화 양상이다. 검찰이 파악하는 폭력배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대형 유흥업소, 건설회사, 오락실, 부동산, 사채, 벤처 등이다.

    유흥업소는 폭력조직의 전통적인 서식지인데 최근 그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서울지검 강력부 김희준 검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대형 유흥업소의 상당수가 폭력조직의 자금줄이다. 특히 유명 호텔의 나이트클럽은 건달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벤처를 두드려라

    유흥업소 이권을 챙기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예전엔 기생형이 많았다. 나이트클럽에 찾아가 보호비 명목으로 일정한 지분을 요구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분 비율이 20%로 고정돼 있다는 점. 주먹사회에서 그것은 일종의 불문율과 같다. 건설업이든 경매든 오락실이든 주먹들이 지분으로 요구하는 몫은 수익의 20%다. 요즘은 풍토가 바뀌었다. 대부분 독립형으로 유흥업소를 직접 운영하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워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노상균 대검 강력과장은 유흥업소에 폭력배들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적은 자본을 들여 큰 수입을 올리기에 가장 적절한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손님 접대 목적 또는 과시용으로 유흥업소를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오락실 진출도 활발하다. 검찰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오락실의 상당수가 폭력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직접 운영할 뿐만 아니라 오락기 제조·판매·심의·허가에까지 관여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대형 오락실은 100대 이상의 기계를 갖추고 있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폭력조직은 이런 오락실을 몇 개씩 갖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종로와 명동의 오락실은 영광파가 장악하고 있다.

    상가개발, 벤처경영, 주식투자는 새로운 영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동아파 실세로 통하는 김아무개씨. 그는 서울 강북지역에 위치한 대형상가의 고위간부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때 구속돼 실형을 살았는데 출소한 지 4년 만에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가 됐다. 그는 상가분양 과정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내사대상에 올라 있다.

    상가 개발이 이처럼 돈이 되는 것은 보증금에 따라붙는 이른바 ‘피값’ 때문이다. 상가 하나를 지으면 분양하는 점포 수가 보통 몇백 개에 이른다. 점포 분양에 따르는 보증금은 대략 500만∼3000만 원대. 그런데 점포를 얻으려는 상인들이 많다보니 보증금 외 웃돈이 오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점포 값은 1억 원 이상으로 치솟게 된다.

    의류 관련 단체 고위직을 맡고 있는 S씨도 검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 동아파와 관계가 깊은 B파 출신인 그는 상가분양과 건설업 쪽에서 1000억 원대의 돈을 벌었다. 몇 년 전 발생한 법정증인 살해사건에 관련된 B파는 건물 경매, 주류사업으로 돈을 모았다. 최근엔 영등포 지역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거래에도 건달들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강남에 있는 S부동산신탁회사는 얼마 전 개발이 예정된 땅을 대량 구입해 되파는 수법으로 1년 만에 수십억 원대를 벌었다. 평당 2∼3만 원에 사서 10만 원에 되판 것이다. 검찰은 이 회사의 배후에 목포파 두목 K씨가 있다는 첩보에 따라 내사를 벌이고 있다.

    주먹 출신 사업가 C씨에 따르면 벤처업계는 최근 주먹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망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벤처기업 설립신고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몇 가지 서류를 조작하고 위조하면 된다. 정부에서 100억 원을 지원하면 80억 원을 뒤로 빼돌린다. C씨는 “(검찰이) 벤처기업을 제대로 두드리면 걸리는 게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외국인과 합작, 벤처기업을 설립한 40대 중반의 K씨. 일부 언론에 ‘떠오르는 벤처기업가’로 소개되기도 한 그는 1980년대에 꽤 이름을 날렸던 주먹이었다. 몇 년 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사업가로 변신해 귀국했다.

    광주 출신 사업가 M씨도 벤처업계에 진출한 대표적인 주먹. 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잘 나가던’ 주먹이었던 그는 1990년대 초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현지에서 도박자금을 빌려준 후 국내에서 수금하는 과정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였다. 그 후 사설금융, 아파트·백화점 점포 분양 등으로 큰돈을 벌어 강남에 큰 식당을 차리더니 최근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주먹으로 꼽힌다. 검찰은 그를 동아파의 두목급으로 파악하고 있다.

    골프장·경마장도 요즘 주먹들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영역이다. 골프장은 특히 해외로 진출한 주먹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로 나간 건달에도 등급이 있다. 1군 주먹들은 홍콩·마카오, 한 수 아래인 2군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지에 자리잡고 있다. 교민사회에서 각종 단체의 간부 직함을 갖고 있는 이들은 유흥업소를 장악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골프장에서 버는 돈은 이른바 ‘꽁지’ 수입이다. 골프장을 찾는 한국 기업체 임원이나 일반 관광객을 상대로 내기골프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국내에서 수금하는데, 선이자로 1할을 떼는 게 관례다. 꽁지란 바로 선이자를 뜻하는 은어. 건달들은 카지노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불로소득을 올린다.

    해외로 진출했던 주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과거 범서방파 간부였던 이아무개씨. 일찍이 동남아에 진출, 카지노 사업으로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현재 서울에서 대규모 위락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경마장 진출도 눈에 띈다. 여기에서도 1군과 2군의 차이가 있다. 1군은 경마 승부조작에 관여한다. 기수를 포섭해 ‘크게 한탕’한 뒤 발을 뺀다. 반면 2군은 골프장에서처럼 경마꾼들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꽁지 수입을 올린다.

    이처럼 요즘 건달들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은퇴한 주먹인 A씨는 “예전엔 주먹 하나로 통제했지만 요즘은 경제력이 있어야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희준 검사에 따르면 최근 주먹계 풍토는 크게 바뀌었다. 전엔 철저하게 계파별로 움직였으나 지금은 계파를 뛰어넘어 이권에 따라 이합집산한다는 것. 공동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그 결과물을 공평하게 나눈 뒤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계파의 이합집산 현상은 조직폭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폭의 행동양식이 바뀌어 예전과 달리 ‘범단(범죄단체조직)’ 혐의로 묶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점에서 요즘 서울에서 가장 세력이 크다는 동아파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동아파라는 이름은 1960년대 대호파와 더불어 광주 주먹계를 양분했던, 같은 이름의 폭력조직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양은·김태촌씨도 광주에 있을 때 동아파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진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동아파는 광주 동아파에서 파생된 조직이다. 형성시기는 1980년대 중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동아파는 요란스런 소문에 비하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조직”이라며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몇몇 계파가 연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남경찰서 고병천 형사계장은 “조무래기 주먹들이 동아파라는 이름을 팔고 다녀서 그렇지 동아파는 실존하지 않는 조직”이라며 그 실체를 부정했다.

    동아파 실체에 대한 논란은 명분보다 실속을 중요시하는 요즘 주먹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허영범 경찰청 폭력계장은 “조직폭력배 검거사례를 분석해보면 요즘은 큰 조직이 거의 사라지고 소규모 조직이 판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먹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3대 패밀리는 옛날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김희준 검사는 “예전과 달리 독주하는 조폭이 없다”고 말한다.

    골프장에서 만나는 보스들

    조직간 다툼이 사라진 것도 큰 특징이다. 노상균 대검 강력과장은 이를 “수입원이 다양해지고 활동영역이 넓어진 결과”로 해석한다. 좁은 영역에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시절이 지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97년 대선 당시 전국 주먹들은 각자 지역 연고에 따라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평소 어떤 관계였든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먹들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했다. 그들은 서울 시내 N, L 호텔 등에서 매주 한 번씩 비밀스러운 모임을 갖고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우리끼리는 치고 받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주먹 출신 사업가 C씨는 “이권이 다양해진 요즘은 웬만하면 싸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광주지검 박충근 부부장검사는 “요즘 조직들은 이권을 협의·조정하므로 과거와 같은 칼부림이나 집단보복극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도 중요한 변화다. 요즘 각 계파의 실세는 3대 패밀리의 전성기에 행동대장급으로 활동했던 주먹들이다. 40대가 주축이다. 앞서 소개한 동아파의 김아무개씨, OB파 칼잡이로 이름을 날렸던 조아무개씨, 양은이파 계열의 강아무개씨, 장안파의 이아무개씨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은 과거 계보를 존중하긴 하지만 그에 속박되는 것을 싫어한다. 대부분 독자적인 계보를 꾸려 나가고 있다. 그런 만큼 ‘조양은’이나 ‘김태촌’이라는 이름 석 자는 이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김희준 검사의 분석에 따르면 요즘 폭력조직은 철저하게 자금논리로 움직이고 돈 많은 사람이 보스를 맡는다.

    이 40대 두목급 주먹들은 그야말로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이들은 80∼90평에 이르는 고급 아파트에 살며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품위 유지(?) 를 위해 운전기사를 따로 둔다. 이들 중엔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한 수족관에 상어를 넣고 기르는 사람도 있다.

    이들 ‘무서운 40대’들은 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장소로 애용하는 곳은 골프장이다. 이곳에서 주요 조직의 보스들은 친목을 다지며 ‘사업’에 대해 얘기한다. 부킹 예약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것도 황금시간대인 오전 10시경에.

    주먹계의 최근 동향을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호남주먹 득세설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호남주먹들이 권력층과의 친분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10월 발생한 정현준 사건은 이런 소문에 불을 지른 셈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신양팩토링 사장 오기준씨가 과거 호남주먹의 대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경자씨와 고위층을 연결해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오씨는 사건이 터진 직후 괌으로 출국,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태촌씨의 직계 선배인 오씨는 김씨에 앞서 서방파의 두목으로 활동하다 1977년 구속된 적이 있다. 또한 1989년엔 김씨가 조직한 신우회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오씨는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만 호남주먹들로부터 예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먹계 사정에 밝은 B씨는 “오씨는 정치권에 발이 넓다”며 “고위층과의 친분관계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유흥업소는 호남주먹, 그 중에서도 목포 출신 주먹들이 장악하고 있다. 대개 중간급 보스들로서 각자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정치권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일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예식장에서 목포 출신 사업가 P씨가 결혼식을 했다. 그는 과거 김태촌씨가 이끌던 서방파 계열 조직원이었으나 지금은 한 조직의 보스다. 주먹계 주변에서는 그와 정보기관 고위직을 지낸 J씨의 친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날 결혼식에서 주례를 선 사람은 정부 고위직을 지낸 여권 실력자 P씨. 식장에선 수십 여 개의 정치인 화환이 눈에 띄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호남주먹 실력자 K씨의 결혼식에는 모 정당의 대표를 역임한 K씨가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은이파 계열 조직원이었던 K씨는 1980년대 후반 라이벌 조직의 보스를 난자해 주먹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처럼 겉보기에 호남주먹이 득세한다는 소문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먹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싶다.

    호남주먹 득세설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은 먼저 호남주먹이 예나 지금이나 주먹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호남주먹의 강세는 현 정권과 상관없다는 것이다.

    반면 호남주먹과 현 정권 실세들의 친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권과 청탁의 관계가 아니라 의리 또는 애향심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호남주먹들은 현 정권 인사들이 과거 고통과 투쟁의 세월을 보낼 때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받았다. ‘빵 동지’라는 특수한 인연도 무시할 수 없다. 현 정권의 실력자 가운데 옥살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도소에선 뭐니뭐니해도 주먹이 최고 실세다. 조양은씨의 경험담은 호남주먹과 호남정치인과의 친분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된 조양은씨는 대전교도소에서 현 정권의 핵심인사들과 친분을 맺었다. 당시 내란음모죄 등으로 구속된 김홍일 한화갑 김옥두 의원 등이다. 특히 김홍일 의원의 방은 조씨의 방 바로 옆에 있었다. 조씨는 김의원과 함께 샤우팅(요구하는 바를 외치는 싸움 방법)을 하거나 뚫린 천장 사이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4년 후 공주교도소에서는 허인회 장기표씨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허씨와 친했다. 허씨는 조씨에게 운동권 노래를 가르쳐줬고, 조씨는 허씨에게 담배 술 따위의 금지물품을 구해 주는가 하면 요구르트로 술 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호남주먹 득세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노상균 대검 강력과장은 “호남주먹이 득세한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희준 검사는 “호남주먹들이 자기 과시용으로 정치권과의 친분을 내세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권부의 경고 메시지

    득세설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역차별설이다. 호남이 인사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즉 정권과 가까운 탓에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의 유명한 건달인 M씨(별명). 목포 출신인 그는 고위층과의 친분이 부담이 돼 사업에서 손을 떼고 외국으로 나가야 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주먹계 실세들의 모임에서는 목포 출신 주먹들이 최근 권부로부터 받은 경고 메시지가 화제가 됐다. 말이 경고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메시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교도소 갈래?’.

    서울에 몇 개의 유흥업소를 갖고 있는 목포 출신 주먹 A씨는 고민 끝에 권부의 경고 메시지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주변사람들에게 “정권이 바뀐 다음에 올라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을 떠났다. 서울에서 시가 500평 규모의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목포 출신 주먹 B씨. 시가 50억 원을 웃도는 황금매장이다. 그 또한 최근 업소를 넘기고 서울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호남주먹들의 동태는 현 정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세인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주먹 출신으로 서울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O씨는 “전라도 건달들은 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한다. 교회도 보통 교회가 아니고 꼭 강남 지역의 유명한 대형교회를 찾는다고 한다. 주먹들은 교회에서 정계, 군, 검찰 인사들을 만나 교분을 쌓는다. 물론 이들은 겉보기엔 주먹이 아니라 엄연한 사업가다.

    김희준 검사는 “드러나지 않은 건달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김진용 폭력계장은 “겉보기에 뚜렷한 활동이 없는데 무조건 수사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조직폭력 수사의 어려움을 내비쳤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검찰은 수사방향을 바꾸었다. ‘사람’ 중심에서 ‘자금’ 중심으로 전환한 것. 그에 따라 수사 초점을 자금원 차단에 맞추고 있다. 돈줄(자금원)은 죄고 가진 돈(불법수익)은 철저히 박탈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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