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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권희로의 ‘영웅 스트레스’

  • 표창원 cwpyo@cwpyo.com

조세형·권희로의 ‘영웅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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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조세형과 권희로는 각기 다른 범죄적 삶의 궤적을 그린다. 조세형은 거리생활에 익숙했고 뛰어난 몸놀림과 리더십을 발휘, 따르는 무리가 많아 폭력조직 보스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폭력에 대해서는 매력을 못 느꼈다. 그가 빠진 것은 절도였다. 절도는 부잣집을 들락거리며 보석과 현금을 훔쳐 손쉽게 억제된 욕구를 충족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공’이라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러한 조세형의 절도심리에 대해서는 범죄학자 머튼(Merton)의 아노미 이론이 어느 정도 설명을 제공한다. 머튼에 따르면, 세상은 사람들에게 ‘돈’ ‘명예’ ‘권력’ 같은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추구하게 만든다. 반면 이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머튼은 사람들의 반응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이러한 목표를 향해 합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순응형(conformity)’이다. 둘째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희망이나 욕심은 없으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법이나 규칙을 준수하는 ‘의례형(ritualism)’, 셋째는 목표를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정신병자, 부랑자,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자 같은 ‘도피형(retreatism)’, 넷째는 목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좇는 히피, 사회운동가, 혁명가 같은 ‘반항형(rebellion)’, 마지막은 목표는 달성하고 싶으나 합법적인 수단 방법이 없어 불법적인 절도, 강도 같은 행동을 하는 범죄자인 ‘혁신형(innovation)’이다. 조세형이 이에 해당한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배경과 이유는 다양하다. 조세형의 경우는 불우한 환경으로 인한 애정 결핍과 배고픔이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또 고아원과 거리에서 겪는 경쟁과 야생적 삶이 성공욕구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강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손쉬운 불법 수단이 눈앞에 다가오자, 자기를 통제해서 도덕과 윤리, 법을 지키기보다는 사회 규범을 팽개치고 ‘악마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나 할까.

또한 조세형의 침착하고 계획적인 수법은 그의 절도 행각이 순간적 ‘충동’이나 ‘격정’이 아닌 철저한 ‘합리적 계산’에 따른 것임을 말해 준다. 조세형은 절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쾌락과 이익 및 검거될 가능성과 그럴 경우 당할 고통과 불이익을 신중하게 저울질했다. 아울러 조세형은 검거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과 수법을 개발해왔다. 몇몇 범죄심리학자들은 상습절도범들이 절도행위를 통해 성적 자극과 흥분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의 사적인 물건들을 뒤지며 야릇한 쾌감을 얻는다는 말이다. 조세형이 실제 그러한 자극과 흥분, 쾌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테러로 울분을 푼 권희로

권희로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조세형과 달리 성공욕구가 강하지 않아 절도 기술이 발전하지도 않았다. 교도소를 드나들며 익힌 것도 노력과 학습이 필요한 절도보다는 공갈, 협박 같은 폭력에 의존하는 범죄였다. 그는 1952년에 총기불법소지와 강도죄로 복역했다. 권희로는 일본이라는 적대적 환경에 거듭되는 차별과 학대 속에 피해의식을 키웠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형성된 과격하고 격정적이며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성정 때문에 끊임없이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일탈과 반항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조센징’이라는 딱지와 내키지 않는 양아버지와의 삶,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따돌림당하고 공격당하는 일상은 권희로의 마음 속에 강한 욕구불만과 사회와 주위환경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키웠다. 그래서 목표를 설정하고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아무렇게나’ 살며 기분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 같다.

학교 선생님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대하던 경찰관, 소년보호원·교도소 교도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대응도 권희로가 사회에 깊은 반감을 가지는 데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싫어하는 양아버지 성을 따라 ‘김희로’로 불려야 했다는 점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아울러 강한 거부감과 반발감을 만들었다고 판단된다.

급기야 41세 때인 1968년 권희로는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며 그에게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퍼붓는 야쿠자 행동대원 2명을 총을 쏘아 살해하고 현장에서 45㎞ 떨어진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달아난다. 그는 결국 여관주인과 가족,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인질극 도중에 권희로는 한국인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한 경찰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등 재일동포 차별문제를 부각하려고 했다. 자신의 범행이 개인적 이유에서 저지른 이기적 범죄가 아니라 부정의에 항거하고 공공 이익을 위한 ‘항거’임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심리다. 이런 심리는 여관 주인에게 여관비 대신이라며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주는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체포 직전 혀를 깨물어 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에서 당시 권희로의 심리는 ‘자포자기’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적대적 사회 속에서 그간의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어머니와 자기 핏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일본 사무라이식 죽음을 준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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