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캐나다 드림 꿈꾸는 ‘30·40대 고학력 중산층’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4-21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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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아메리칸 드림’이 꾸준히 이어졌고, 1980년대 ‘남미 드림’이 붐을 이루었다면, 90년대 말부터는 ‘캐나다 드림’이 불고 있다. 이민붐은 IMF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고 있다. 이유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 더 나은 삶, 자녀교육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 2월10일 토요일 오후 2시. 지하철 1호선 종각 역은 일찍 퇴근한 직장인들로 몹시 붐볐다. 서류가방을 든 30~40대 남자 한 무리가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 나와 근처 빌딩 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세미나 장소. 캐나다 이민 관련 설명회가 한창인 실내는 70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정면에는 대형 지도와 스크린이 걸려 있고, 50개 남짓 놓인 책상이 모자라 20여 명은 따로 마련된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2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남녀 참석자 중 대부분이 30~40대인 듯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두 명의 중년남자가 세미나 장소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황급히 이들을 붙잡아 팸플릿 봉투를 건네주었다. 1시 반부터 시작된 이날 설명회는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났고, 사람들은 설명회가 진행되는 중에도 계속 불어났다. 세미나 장소 밖에 마련된 상담테이블 주변에는 이민상담신청서를 손에 든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보통신회사에서 2년째 부장으로 재직중이라는 40대 중반 남성은 독립이민에 관심을 보였지만 상담직원은 기업투자이민을 권했다. 4억이 넘는 재산이면 얼마든지 투자이민을 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자녀가 둘이라는 40대 초반 주부는 “남편이 의사인데 캐나다에 가서 의사로 일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한편, 증권사에서 투자전문가로 근무한다는 30대 중반 남자는 이미 캐나다 이민을 결심한 듯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지금 수속을 밟아 4학년 정도에 이민 가고 싶다. 독립이민이 가능한가? 수속비용은 얼마나 드는가?”라며 궁금증을 내비쳤다.

    캐나다·미국·뉴질랜드·호주를 포함해 이와 유사한 이민 설명회가 서울에서만 매달 수십 군데서 열리고 있다. 약 30개 업체가 회원으로 있는 이주공사협회 이종오 이사에 따르면 보통 한 업체에서 매월 5~10회 설명회를 여는데 한 번에 참석하는 인원은 평균 100~150명이라고 한다. 현재 외교통상부에 등록된 이주공사업체는 총 45개. 이중 ‘영업정지’와 ‘휴업’ 처리된 3개 업체를 제외하고 실제 영업중인 업체가 42개임을 감안하면 매월 수만 명이 이민 설명회를 찾는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개설된 캐나다 이민 관련 사이트를 드나드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검색엔진 야후코리아에서 캐나다 이민과 관련한 단어를 치자 2월9일 현재 106개에 달하는 사이트가 올라 있고, 무려 2761개에 이르는 웹페이지가 소개됐다. 이 가운데, 캐나다 이민과 함께 현지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는 홈페이지 한 곳은 지난 2년 사이 40만 명이 넘게 다녀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민국 1위 캐나다



    70~80년대 ‘아메리칸드림’에 이어 최근 불어닥친 ‘캐나다드림’의 열기를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표가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이주과의 통계자료다. 이 자료는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62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별·형태별로 해외이주자 현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캐나다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963년 1월14일. 이에 앞서 62년 2명이 처음 캐나다로 이주한 것으로 돼 있다. 이후 66년까지 줄곧 두 자리 수를 유지하던 캐나다 이민자 수는 67년에 이르러 507명으로 대폭 증가했고,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을 기록했다.

    67년 캐나다 이민자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그 이전인 63년 서독 광산지역 광부로 파견된 사람들이 그곳에서 3~4년 근무하다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캐나다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일부도 이때 캐나다로 옮겨 갔으며 이들이 캐나다 이민 1세대를 형성했다. 30여 년에 이르는 캐나다 한인 이민역사를 통해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교민 수는 대략 1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30여 년에 이르는 캐나다 한인 이민역사상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최근의 이민 열기를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 ‘국별 해외이주 현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를 비롯한 전체 이민자 수가 1만2949명에 달한 96년, 이민국 1위를 차지한 미국으로 떠난 사람은 모두 7277명(56.2%). 다음으로 3073명(23.73%)이 캐나다를 선택했다. 전년도(95년) 이민국 2위를 차지했던 뉴질랜드를 제치고 캐나다가 2위 자리에 오른 것.

    이어 뉴질랜드 2045명(15.8%), 호주 519명(4.0%) 순이다. 97년에는 총 1만2484명이 이민을 떠났고, 미국 8205명(65.7%), 캐나다 3918명(31.4%), 호주 216명(1.7%), 뉴질랜드 117명(0.94%)이었다.

    한편 본격적으로 IMF 위기가 닥친 98년은 전년도보다 이민자 수가 더 많이 늘었다. 전체 1만3974명의 이민자 중 미국을 택한 사람은 8734명(62.5%)이었고, 그 뒤를 이어 캐나다 4774명(34.2%), 호주 322명(2.3%), 뉴질랜드 96명(0.7%) 순으로 나타났다.

    줄곧 ‘이민국 1위’ 자리를 고수하던 미국을 제치고 캐나다가 1위로 뛰어오른 것은 99년이다. 99년 통계를 보면 전체 1만2655명의 이민자 중 미국이 5360명으로 42.4%를 차지한 반면, 캐나다는 53.6% (6783명)를 기록했다.

    이어 호주 302명(2.4%), 뉴질랜드 174명(1.4%)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전체 이민자 1만5307명 중 미국 이민자가 5244명(34. 4%)으로 99년에 이어 또다시 2.2% 줄어든 반면, 캐나다는 9295명(60.6%)으로 99년에 비해 무려 37.0%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민자 수를 놓고 비교할 때 미국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뒤를 이어 호주 392명(2.5%), 뉴질랜드 348명(2.3%)으로 집계됐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아메리칸 드림’이 꾸준히 이어졌고, 1980년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드림’이 붐을 이루었다면, 1990년대 말부터는 ‘캐나다 드림’ 열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특히 그간 한국인들이 이민국 1순위로 꼽던 미국은 90년 중반 이민법이 까다롭게 바뀌면서 한때 1만 명대를 오르내리던 이민이 주춤해졌고,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1000명을 넘어섰던 호주 이민도 지금은 감소 추세에 있다.

    뉴질랜드는 90년대 중반 2000~3000명을 오르내리던 이민자 수가 97년 117명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다만 지난해 348명이 이주하면서 99년에 비해 100%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

    IMF 위기가 한창이던 98년 전체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이후 한때 주춤하다 지난해부터 다시 이민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외국으로 떠날 결심을 굳히거나 한창 서류수속중인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더 나은 삶’ ‘자녀 교육’이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각종 통계와 자료가 적지 않다.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시장정보(AMI)’가 1990년대 말 아시아 11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직업에 대한 불안감’을 조사한 결과, 말레이시아, 태국에 이어 한국이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3명 중 1명꼴로 직업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한 것.

    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전세계 122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환경지속지수’에서 한국은 95위를 기록했다. 이외에 최근 쏟아져 나온 국내 기관의 각종 보고서는 경제위기, 민간소비위축,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 증시불안, 실업률 증가 등 끊임없이 ‘위험경고’를 발하고 있다.

    한편, 보건 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과로사’로 추정되는 뇌혈관이나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자 비율이 97년 8.1%에서 98년 10.8%, 99년 14.6%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오늘날 어지러운 우리 정치 현실은 더 많은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실정이다. 3월 초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난 김재열씨(남·37)는 “나라는 경제위기 등으로 침몰 직전인데, 눈만 뜨면 치고 박는 정치권 꼴을 더 이상 보기 싫다. 이대로 있다가는 스트레스 받아서 내 명대로 못 살 것 같아 떠난다”고 했다.

    김씨와 비슷한 시기 기업투자이민을 떠난 또 다른 김모씨(남·44)는 “친구들한테 이민 간다고 했더니, 나라꼴이 ×판인데 뭐 하러 이 나라에서 꼬박꼬박 세금 내면서 열 받느냐며 잘됐다고 하더라. 솔직히 나도 지난 8년 동안 인천에서 자동차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가 사업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나라인가”라고 반문한다.

    곧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이 될 두 아들을 둔 김씨는 “걸핏하면 장관 바뀌고 걸핏하면 교육제도 바뀌고…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홀가분하다”고 털어놓는다.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해 1년 전 사업체를 정리했다는 김씨는 캐나다에 가서도 자동차정비공장을 열겠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IMF 위기가 터진 97년 이후 불어닥친 감원바람으로 중년남성 직장인이 무더기 퇴출되는 것을 지켜본 지금의 30~40대 직장인들은 ‘우리도 선배들처럼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됐고, 제2차 구조조정 바람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짐을 꾸리는 실정이다.

    환경 관련 기술자로 부산에서 13년째 사업을 해오던 한모씨(남·44)는 캐나다 토론토로 출국하기 위해 이미 사업을 정리하고 짐까지 부친 상태다. 그는 “뒷돈 거래 없어도 되고, 내가 번 만큼 정직하게 세금 내면서 깨끗하게 사업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또 나이키를 신든 싸구려 운동화를 신든 남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5년 전부터 꾸준히 이민을 고민해왔다는 한씨는 “나라 분위기가 몇 년째 가라앉아 있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또 올해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결심을 굳혔다”고 털어놓는다. 독립이민을 떠나는 한씨는 현지 취직을 위해 요즘 영어 공부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아내는 만약을 대비해 일식요리 기술을 배우는 중이다.

    오는 4월 캐나다로 떠날 예정인 김모씨(남·46)는 “정보통신회사에 오래 몸담아 왔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서 취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에서 할만한 사업을 구상중이라는 그는 “4년 사이 2000명 가까운 직원이 타의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 더 늦기 전에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어렵게 이민을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고교 1학년인 큰애가 아들인데 내성적이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다. 아이들한테 놀림받을까봐 솔직히 걱정된다. 반면에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라 좀더 큰 세계로 나가서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다.”

    부모가 받을 충격이 걱정돼 아직까지 이민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는 김씨. 아이들이 다 자란 10년 후쯤 김씨 부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한편, 이민 설명회에서 만난 은행원 서모씨(남·40)는 “제2의 경제위기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지 않으냐.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갈수록 사생결단을 부추기는 직장문화에 이제 신물이 난다.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1999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의 연간 사교육비가 6조 7700억원에 이른다. 더구나 갈수록 심화되는 교실붕괴 현상, 혹시 내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당하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린이 교통사고와 화재참사는 언제 내 아이를 희생자로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부모 마음을 잠시도 편할 날이 없게 만든다.

    ‘한국이 싫다’며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의 불만은 이민과 관련한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자신을 40대 초반에 직장경력 14년차의 부장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이다. 피아노 영어 태권도 등 적지 않은 학원비가 지출되고 있는데, 앞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외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은 뻔한 일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비능률 부조리 불합리 등을 감안할 때 아이들에게 더 나은 조건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라에서 살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이 싫다”

    자신을 37세의 ‘가장’이라고 밝힌 남성은 “이렇게 기회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세금을 강탈당하는 조국이 싫어 떠나고자 한다”는 비장한 심경을 밝혔다. 또 다른 주부는 “이 땅에 태어나서 잘못한 것도 없고,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데도 이 땅의 주인이 아닌 것 같은 심정으로 캐나다 이민을 준비중”이라고 허탈감을 토로했다.

    4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캐나다 이민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직장에서 느끼는 한계 때문이다. 남들처럼 든든한 (연)줄도 없고, 믿을 거라고는 실력밖에 없어 오로지 전문지식으로 버텨왔는데 이젠 체력도 달리고 컴퓨터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기술혁신이 되어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 삶을 찾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사회 일각에서는 최근의 이민 열풍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연령·학벌·노동능력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가족연고초청이 많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이 땅의 경제를 이끌어나가야 할 중추세력인 30~40대의 능력 있는 전문직 남성이 이민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가 만든 ‘형태별 해외이주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제결혼을 제외한 이민형태가 연고(가족 또는 친지)초청에서 취업이민으로 점차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6년 40%를 기록한 연고초청은 이후 꾸준히 증가해 98년 48%에 육박했으나, 이듬해인 99년에는 26.4%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신 취업이주는 98년 27.2%에서 99년 41.6%로 대폭 증가했다.

    98년 15.6%를 차지했던 사업이주는 99년 20.4%로 증가했으나, 지난해 다시 15.7%로 감소했다. 지난해 연고초청은 21.9%로 더욱 감소한 반면, 취업이주는 54.7%로 99년에 이어 또다시 급증해 최근 30~40대 고학력 전문직 남성의 취업이민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취업이민(캐나다의 경우 독립 또는 기술이민)의 증가율은 최근의 캐나다 이민 증가율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미국 취업이민의 문이 좁아지자 이들 중 많은 수가 캐나다를 선택하고 있는 것.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이주과 방민수 사무관은 “미국에 가려고 이민수속을 밟던 사람들이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캐나다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국은 이민수속 기간이 캐나다에 비해 길고, 쿼터 문제 등으로 까다롭기 때문에 캐나다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260여 가구의 캐나다 이민을 주선한 이민수속 대행업체의 한 직원은 “독립(취업)이민과 순수투자이민 비율이 70 대 30 정도로 독립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한다. 신세계이주공사 박필서 사장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취업이민을 위해 이 나라를 떠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 사장은 “취업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는 그 동안 축적한 재산이 많지 않아 투자이민이 어려운 고학력 샐러리맨들이, 취업이 가능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떠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캐나다인가. ‘이민=미국’이라는 등식을 깨고 캐나다가 가장 선호하는 이민국으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우선 캐나다의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을 들 수 있다. 캐나다는 전체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45배에 달하는 반면, 인구는 남한의 절반인 3000여 만 명에 불과한데다 자연경관이 좋고 공기가 깨끗하다.

    뿐만 아니라 ‘인종의 모자이크 지역’이라 불릴 만큼 주류인 영국계와 프랑스계 캐나다인 외에 독일과 이탈리아, 중국계 등이 섞여 살기 때문에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와 달리 인종차별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여러 인종과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곳이 바로 캐나다다.

    한편, 주한캐나다교육원에 따르면 90년 이후 매년 170여 개국을 대상으로 생활환경을 비교하는 UN연차보고서에서 캐나다가 92, 94, 95, 96년 네 차례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1위에 뽑혔다고 한다. 이어 스위스조사연구기관(The Cor- porate Resources Group)이 정치·사회적 환경, 문화·건강·교육시설, 여가생활과 주택·자연환경 등 42개 조건을 비교·평가한 조사에서 캐나다 도시 중 4개가 세계 12위권 내에 올랐다.

    이외에 대학을 제외한 초·중·고 교육시스템이 미국보다 낫고, 무엇보다 전세계에서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돼 있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점이 캐나다의 매력이다.

    다양한 이민지원 프로그램

    박필서 사장은 “캐나다는 만 18세 미만까지 의무교육이어서 국립학교의 경우 교육비가 전액 무료다. 뿐만 아니라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자녀 양육비를 월 16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주권만 받으면 고등학교까지 전혀 돈 안들이고 교육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하기 때문에 영어 교육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조건 때문에 캐나다로 아이를 유학 보내려던 부모가 이민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이외에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를 위해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가지 지원프로그램을 시행중이다. 6~12개월간 무료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월 10만 원 정도만 지불하면 3개월 과정의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재교육기관도 매우 다양하다. 이민자를 위한 여러 가지 혜택 외에 캐나다 이민법이 미국과 비교해 훨씬 덜 까다로운 점도 캐나다 이민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우선 미국은 취업이민에 여러 단계의 순위를 정해놓고, 전체 취업이민자 수를 쿼터제로 묶어 놓았다. 예를 들면 전체 취업이민자 몇 명, 그중 1순위는 몇 명 하는 식으로 이민자 수를 할당하는데 순위가 낮을수록 할당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취업이민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캐나다는 학력·경력·직업·나이 등 기본자격 요건을 정해놓고 이를 점수로 환산해 일정 점수가 넘으면 누구나 이민이 가능하다. 따라서 캐나다는 미국에 비해 취업이민이 훨씬 쉽고, 인터뷰 면제율도 60~90%에 달할 만큼 이민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가족연고초청을 통해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연고초청에 걸리는 기간이 무려 7~12년이나 된다. 이 역시 쿼터제에 걸려 이민 대기자가 밀려 있다. 이런 사정도 최근 사람들이 캐나다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투자이민(사업 또는 기업이민) 역시 미국의 경우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엄두를 내기 어렵다. 미국에 투자이민을 가려면 6억 원 이상을 사업에 투자해야 하지만, 캐나다는 3억~4억 원 되는 자산증명서만 있으면 실제 사업에 얼마를 투자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적게는 6억 원 이상, 많게는 12억 원 이상을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미국에 비해 투자이민에 드는 비용이 훨씬 적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투자이민자에게 2년 만기 한시적 조건으로 영주권을 발급한 뒤, 2년 후 사업 전반에 대한 심사와 이민법 이행여부 심사를 거쳐 ‘조건해지’를 시켜준다. 최악의 경우 영주권 조건해지가 안되면 추방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미국에 비해 적은 돈으로 마음놓고 사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캐나다인 셈이다.

    이주공사업계에 따르면 “호주나 뉴질랜드 이민이 주춤한 이유는 가서 살기는 좋지만 시장이 좁기 때문에 사업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취업 역시 자리가 많지 않다. 반면 미국은 시장성이 네 나라 중 가장 좋지만 투자이민의 비용부담이 커 꺼리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예로 든 이유 외에 캐나다 이민이 늘어난 원인이 또 있다. 국토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캐나다는 오래 전부터 세계 각국의 고급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다.

    그 일환으로 캐나다는 93년 주한캐나다대사관 내에 교육원(Canadian Education Center)을 설립했다. 목적은 한국 학생과 일반인, 교육기관, 유학연수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캐나다 전반 및 캐나다 교육에 관해 풍부한 정보와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에는 국내에 이민사무소를 개설했다. 그 동안 필리핀 마닐라 주재 캐나다대사관에서 아시아지역 이민업무를 총괄해온 탓에 국내 캐나다 이민 희망자는 오랫 동안 영주권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민사무소 개설 이후 캐나다 이민 수속이 빨라졌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캐나다 이민 행렬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조만간 캐나다 이민법이 까다롭게 개정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민수속 대행사마다 이민법이 바뀌기 전에 수속에 착수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캐나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국내 이주관련 전문변호사로 활동중인 랜드 론데일(Rand E. Lonsdale)에 따르면, 이르면 올 상반기에 이민법이 대폭 강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독립이민은 어학능력과 학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 동안 직장에 몸담아온 경력에 따라 일정점수를 부여하던 제도는 폐지될 예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유리했는데 이러한 혜택은 사라지고 대신 컴퓨터전문가, 엔지니어 등 캐나다가 원하는 직종에서 경력과 실력을 쌓은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또 기업투자이민 조건에도 그 동안 없던 몇 가지 사항이 추가될 예정이다. 고용인 2~5인 이상, 연간 순이익 8000만 원 이상, 사업체 총 자산 2억 1000만 원 가량 등 국내 사업실적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캐나다로 기업투자이민을 떠난 사람은 현지에서 세탁소나 카페 등 소규모로 자영업을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큰 규모의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최근 캐나다 이민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노린 불법 이민브로커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주공사협회 이종오 이사는 “외교통상부에 이민수속 대행업체로 등록되지 않았거나 외무부 신고증이 없는 업체나 개인이 이민수속을 대행하는 행위는 전부 불법이다. 그런데 최근 이민 알선을 앞세워 불법업체나 브로커들이 돈을 받아 챙긴 뒤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 잠적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특히 인터넷에서 개인적으로 이민을 알선하는 경우까지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고 한다.

    불법 이민브로커 극성

    한편, 외교통상부 이민 담당 관계자는 “외교통상부에 등록된 업체를 통해 이민수속을 밟다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외교부에서 해결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당사자가 업체를 상대로 직접 소송에 나서야 한다. 직원 한 명이 담당하기 때문에 외교부가 나서서 개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종오 이사는 “가족 전체가 외국으로 터전을 옮기는 이민에서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당사자가 입는 정신적·재정적 타격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당장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업을 접은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해 영주권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세계화 시대에 이민은 정부가 나서서 활성화해야 할 국제교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 문제를 전적으로 업체에만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적극 나서서 이민자를 도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세계이주공사 박필서 사장은 “지금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민수속 대행업체를 신중히 고르는 것이 성공적인 이민의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이민법은 몹시 까다롭다. 거기다 기준이나 규제사항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빠른 정보가 필요한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수속 대행 경험이 많은 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반면 자격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이민을 보내줄 수 있다고 유혹하거나 과장광고를 일삼는 곳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민수속 대행을 맡기기 전에 업체를 직접 방문해 회사 규모를 파악하는 것도 제대로 된 업체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이민 희망자가 급증하는 한편에선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이민병’에 걸린 사람이 적지 않은 것. 4년 째 각종 이민 설명회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매일밤 인터넷 이민 관련 홈페이지를 드나든다는 정모씨(남·42)는 “한번 이민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이민 설명회 때문에 벌써 6개월 전에 가게도 접었는데 좀처럼 갈 수 있는 길이 안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라며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이민 설명회에 가보면 나처럼 이민병에 걸린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한번 걸리면 약이 없다”고 덧붙인다.

    이민병 걸린 사람 많아

    수천 건의 글이 올라온 각종 이민 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은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언론이 너무 이민을 부추긴다. 가만히 있던 사람들도 부화뇌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정부 관계자의 볼멘소리가 무색할 만큼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사정은 절박해 보인다.

    “43살밖에 안 됐는데 직장에서 자리 차지하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입니다. 잘리기 전에 떠나고 싶습니다. 어느 나라로, 어떤 이민을 가면 좋을까요? 정보 밝으신 분 충고 좀 부탁합니다.”

    “벽돌을 쌓는 조적공입니다. 나이는 45세지만 더 늦기 전에 미지의 세계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릅니다. 캐나다 현지에서 혹시 노가다 하시는 분 없어요?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국내에서 봉제공장을 오래 했고, 이민 가서 봉제공장을 해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여기에 대해 정보 있으신 분 꼭 좀 연락 주세요.”

    “대기업에서 퇴직한 46세 가장입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꼭 이민을 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등.

    이민업계측은 당분간 ‘캐나다 드림’을 향한 물결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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