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정치·행정학자는 ‘국부유출’ 경제전문가는 ‘국부창출’

Votekorea.net 지식인 661명 설문조사

  • 육성철 sixman@donga.com

    입력2005-04-12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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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기업의 해외매각은 ‘국부유출’일까, 아니면 ‘국부창출’일까. 우량은행과 국가 기간산업이 헐값에 팔리고 해외자본이 한몫 챙겨 언제든 튈 생각만 한다면, ‘국부유출’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자본에 팔린 부실기업이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고용을 확대한다면, 그것은 ‘국부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97년 IMF 환란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국내 기업의 해외 매각을 서둘렀다. 1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제일은행은 단돈 5000억 원에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로 넘어갔다. 또한 4조3000억 원을 투자한 삼성자동차는 6200억 원에 프랑스의 르노에 팔렸다. 이 밖에도 정부는 대우자동차, 한보철강, 대한생명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해당 기업의 부실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노사갈등마저 겹쳐 최악의 상태에서 막바지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우량은행인 국민―주택 합병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무려 66%다. 제일, 외환, 한미, 하나은행 등의 최대 주주도 외국인이다. 이 밖에 한빛, 서울은행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도 민영화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볼 때 외국인들이 한국 금융시장을 직접 지배하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인 셈이다. 또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의 블루칩 보유량이 계속 늘고 있으며, 외환시장에서는 변칙 거래를 통해 국내 외환보유고의 약 10%에 달하는 92억 달러가 해외로 빠져 나갔다.

    물론 국내기업의 해외 매각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헐값에라도 팔지 않으면, 장차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비슷한 논리를 앞세워 공기업의 민영화와 해외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최근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국부유출론’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국부유출(43%) VS 국부창출(49%)

    보트코리아넷(www.votekorea.net)은 5월10일부터 14일까지 각계 지식인을 대상으로 국부유출 논쟁에 관한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정치외교·행정학 교수(정외·행정), 경제·경영 교수(경제·경영), 산업·경제분야 기자(언론인), 기업·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민간기업), 금융·산업분야 공무원(공무원), 통상·산업 관련 공기업 임직원(공기업) 등 여섯 개의 직종별 전문가에게 이메일 설문지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가운데 661명이 답변에 응했다.



    이번 조사는 특히 경제분야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부유출 문제의 경우 일반인에게 물으면 막연하게 외국자본을 비판하는 식의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지식인들의 시각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1. IMF 이후 국내기업의 해외매각에 대해 ‘국부의 유출’이라는 주장과 ‘새로운 국부의 창출’이라는 주장이 맞서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부창출이다’(49%)는 의견이 ‘국부유출이다’(43%)보다 조금 더 많았다. 이밖에 ‘모르겠다’ 7%, 기타 1%였다. 직종별로는 공무원(64%)과 경제·경영(54%)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국부창출’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

    정외·행정을 전공한 교수들은 56%가 ‘국부유출’이라고 답한 반면, ‘국부창출’은 33%에 불과했다. 한편 경제·경영학 교수들은 결과가 반대로 나왔다. ‘국부창출’이 54%, ‘국부유출’은 41%였다. 이것은 경제·경영학 교수들이 경제논리를 중심으로 해외매각 문제에 접근하는 반면, 정치·행정학 교수들은 정치적 시각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무원과 공기업의 의견 역시 엇갈린다. 공무원은 ‘국부창출’이 50%, ‘국부유출’이 19%였다. 하지만 공기업은 ‘국부유출’ 52%, ‘국부창출’ 35%로 나타났다. 이것은 해외매각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해 당사자의 의식 차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국내기업의 해외매각 자체만 놓고 국부유출 또는 국부창출로 단정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매각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 상태에서 평가의 기준은 매각조건, 해외자본의 성격, 국내산업에 대한 기여도 등일 것이다.

    2. 최근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국부유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정적인 시각이 다소 우세했다. ‘매우 심각하다’가 24%, ‘조금 심각하다’는 28%였다. 결국 전체의 52%가 국부유출에 우려를 표한 셈이다. 한편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가 21%, ‘국부유출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는 25%, 기타 1%로 나왔다.

    직종별로는 정외·행정(33%)과 공기업(33%) 분야에서 ‘매우 심각하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공무원(44%)들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1, 2번 문항을 비교 분석해 보면 국부유출 논쟁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일단 국내기업의 해외매각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부정적인 의견보다 많았다. 하지만 국부유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과반수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것은 현재의 해외매각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은 “정부가 아무런 전략도 없이 협상에 임해서 결과적으로 국부유출을 가져왔다. 그 부담이 누구한테 돌아가겠는가? 결국 힘없는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언론인 출신인 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을 사고 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을 국부유출로 단정짓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3. 국부유출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다’가 27%, ‘우리나라 협상 당사자들의 협상력이 약하기 때문이다’는 25%, ‘김대중 정부의 저자세 외교 때문이다’라는 의견은 5%였다. 결국 전체의 57%가 현 정부의 경제·외교 정책에서 국부유출의 원인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한국경제의 구조상 불가피하다’가 31%, ‘국부유출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는 10%였다.

    직종별로는 정외·행정(37%), 공기업(31%) 분야 지식인들이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고, 언론인(33%), 민간기업(35%), 공무원(44%) 분야에서는 ‘한국경제의 구조상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4. 어떤 부분의 국부유출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은행 등 금융기관과 기업의 매각’(57%)이라고 답한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밖에 ‘외환의 해외도피’가 13%, ‘헤지펀드의 주식거래’가 8%, ‘빌딩 등 부동산 매각’은 3%였다. 한편 ‘국부유출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는 12%, 기타 7%로 조사됐다. 모든 직종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과 기업의 매각’이 가장 많았는데 특히 정외·행정 분야(70%)의 비율이 높았다.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도 금융기관의 매각을 가장 심각한 국부유출로 꼽았다. 김의원은 “제일은행처럼 헐값에 매각한다면, 막대한 공적 자금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매각에 앞서 정밀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대우자동차 처리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내의 다른 업체와 합병 또는 매각해야 한다’가 32%, ‘비록 제 값을 못 받더라도 즉시 해외업체에 매각해야 한다’가 17%였다. 결국 ‘국내든 해외든 매각을 통해 정상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49%로 과반수 가까이 되는 셈이다. 이 밖에 ‘일찌감치 해외 업체에 매각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가 39%, ‘자구책을 찾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9%, ‘잘 모르겠다’ 2%, 기타 2%였다.

    직종별로 보면 공기업 분야가 ‘국내의 다른 업체와 합병 또는 매각해야 한다’(43%)는 의견이 많았고, 정치·행정은 백중세, 나머지 분야에선 ‘일찌감치 해외 업체에 매각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가 우세했다.

    불과 3년 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25억달러(3조여 원)에 대우자동차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최근엔 1조원 미만까지 거론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공짜로라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우자동차는 현재 채권단이 매월 2000억 원을 투입해 힘겹게 버텨 나가고 있다. 순수한 경제논리로 풀어도 쉽지 않을 매각협상이 노조시위 폭력 진압사태를 계기로 더욱 복잡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외국 기업에 파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안이다. 매각이 늦어질수록 대우차는 고철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6. 공기업이 민영화됐을 때 해외자본의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체 응답자의 74%가 ‘경영권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투자하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기업의 경우 해외자본의 참여를 아예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7%여서 결국 전체의 81%가 공기업 민영화와 해외자본 참여에 우려를 표한 셈이다. 이 밖에 ‘경영권이 넘어가더라도 해외자본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가 16%, 기타 2%로 나왔다.

    직종별로는 모든 분야에서 지식인들이 ‘경영권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투자하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답한 지식인이 많았다. 이것은 공기업이 외국인의 손에 맡겨질 경우, 공익성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정부의 해외매각 방침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공기업 경영권 보호해야

    정부가 내세운 공기업 민영화 논리의 핵심은 서비스의 개선과 요금 인하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이런 기대를 무색케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전력수급이 불안해지고 요금이 폭등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지역난방공사의 경기도 안양 및 부천지사를 분리해 LG파워에 매각했는데, 불과 몇 개월만에 난방요금이 평균 25% 인상돼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7.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족공동체 차원에서 장기적인 투자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61%를 차지했다. 반면 ‘일종의 국부유출로 보고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32%에 불과했다. 결국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사업을 ‘국부유출’로 보는 시각보다는, 경제논리 이상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지식인들이 다수인 셈이다. 이 밖에 ‘잘 모르겠다’가 5%, 기타 의견은 2%였다.

    직종에 관계없이 ‘민족공동체 차원에서 장기적인 투자로 봐야 한다’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특히 공기업 분야(71%)에서 높게 나왔다.

    8. 최근 IMF보고서는 ‘한국이 부실기업을 헐값에 매각해서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는 해결했지만, 국내 부(富)를 외국인에게 넘기는 결과를 빚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한다’가 61%, ‘동의하지 않는다’가 34%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 경제전문가들 중에는 한국이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환율과 수출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정부가 부실기업의 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데 비해, 협상이 타결된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의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은 ‘IMF보고서’가 갖는 권위도 나름대로 영향을 끼친 듯하다.

    직종별로는 공무원(64%) 분야에서만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이것은 경제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IMF보고서’의 분석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9. 해외자본의 국내진출이 주는 단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내 경제의 잠식과 대외종속성의 심화’라고 답한 사람이 67%나 됐다. 한편 ‘국내기업 관련 정보의 해외 유출’이라는 의견이 17%, ‘근로조건 악화 등 사회문제 야기’가 4%로 나왔다. 이 밖에 ‘잘 모르겠다’ 7%, 기타 4%로 조사됐다. 전 분야에서 ‘국내 경제의 잠식과 대외종속성의 심화’라는 의견이 많았으며, 특히 공기업(77%) 분야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공기업이 상대적으로 해외자본에 비판적인 것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라는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29개 공기업의 민영화를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 해외자본의 공기업 진출이 예상되는데, 외국기업은 우선적으로 구조조정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10. 해외자본의 국내진출이 주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근대적 경영시스템을 바꾸는 등 선진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다’는 의견이 77%였다. 이것은 한국 지식인들이 국내 기업의 경영방식을 불신하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이 밖에 ‘국내 근로자의 고용효과가 있다’가 13%, ‘수출 등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5%, ‘잘 모르겠다’ 2%, 기타 2%였다. 모든 직종이 ‘선진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다’를 1순위로 꼽았다.

    외국기업이 한국시장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정부의 정책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그 다음이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영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리적 절차를 중시하는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은 한국경제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경제에서 ‘국부’의 개념은 GNP(Gross National Product·국민총생산)에서 점차 GDP(Gross Domestic Product·국가총생산)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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