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민간 공동연구부터 하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 윤건차 < 일본 가나가와 대학 교수·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원 >

    입력2005-05-2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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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과서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에 관해 비관하거나 낙관할 필요가 없다. 두려워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오늘날의 국제질서, 그리고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 지금 풀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다. 스스로 식민지 피지배 경험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지향한 노력을 꾸준히 펼쳐 나가면서 그 과정에 일본에 대해 주문하고 비판해 갈 때, 그때 비로소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속한 일본 대학에서 파견된 재외 연구원 자격으로 수개월간 영국 런던에 체재중이다. 일본을 출발하기 전에 이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교과서 검정 문제가 한국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후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작업이 끝나고 내년도부터 사용될 예정인 교과서에서 보이는 왜곡이 단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자, 한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날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외교문제로까지 발전한 지난 1982년의 교과서 검정문제를 비롯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교과서 기술(記述)은 항상 남북한이나 중국 등 아시아인들에게 불쾌함의 불씨가 되어왔다. 이번에는 특히 일본 네오-내셔널리즘(neo-nationalism)을 대표하는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이 작성하고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용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이라는 내부에서 그것을 보고, 한국 내 움직임을 외부의 반응으로 관찰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나 런던에 체재하고 있는 지금은 일본도 한국도 외부가 되어 있으니 등거리에서 대상화해 볼 수 있다.

    런던에서 본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런던에서 보고 있노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려 하는 일본의 움직임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로 보인다. ‘근대’라는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 속에서,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타인에게 전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다거나 혹은 반대로 타인에게서 전혀 욕된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권(西歐圈)의 문화가 제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것은 비(非)서구권에 대한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에 놓여 있다. 한편 식민지 지배나 침략을 당한 측도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반발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반성이 불가결(不可缺)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즉 지배·피지배의 문제는 선악을 준별(峻別)하는 것과 같이 이항대립적(二項對立的)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당연히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자신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과시하는 내용으로서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임’의 교과서는 자국(自國)의 과오를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일본’과, ‘일본인의 긍지’를 강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게다가 이 움직임은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다. 일본 전국에 걸쳐서 조직망을 구축하고 지방의회나 교육위원회에 교과서를 채택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산케이(産經)신문 등 커다란 매스 미디어가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비판, 방해공작을 가하고 있으며, 한국 등지의 반발에 대해서도 ‘주권침해’, ‘추악한 민족주의의 발로’라며 역선전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일본 전체를 전전(戰前)으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일본을 우익적·파시즘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책동이다. 그 기본적인 사상은 ‘모임’의 교과서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국가주의·천황주의·자(自)민족중심주의·아시아 멸시관(蔑視觀)이다.

    나아가, 바깥에서 보고 있노라면, 교과서 기술의 왜곡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왜곡의 중대성을 많은 일본인들이 조금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위기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렇게까지 크게 떠들고 있는데도, 비판의 표적인 일본인들은 태연해 보인다.

    물론 냉철하게 꿰뚫어보면 일본에서는 우익적 움직임에 반발해 불만을 토로하며 반대운동을 일으키는 층도 결코 적지 않다. 역사인식 왜곡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이나 집회도 열리고 있으며, 요즘 들어 급속하게 비판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신문이나 방송국 등 매스 미디어도 일부에서는 활발히 교과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논진(論陣)을 펴고 있다. 우리가 일본 우익들과 싸울 때 연대할 수 있는 층은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일 것이다.

    多數 일본인의 침묵

    문제는 일본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절대 다수의 일본인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한국의 움직임은 맹렬한 반대 일색인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경위로 보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며 일본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기도 하다. 한국 현지에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본 한국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펼치는 등 지난날 험악했던 때의 한일관계를 상기시키는 듯한 반일의식이 만연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일본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최고책임자인 총리가 몇 개월 만에 바뀌는 정치의 불투명성, 예스(yes)와 노(no)가 확실하지 않은 대화법, 책임의 소재를 항상 애매하게 만들어 놓는 ‘무라(村落)’적 집단주의 …. 이것들은 이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일본의 특성’이다.

    그런 가운데서 현재 일본에서는 국가의식의 불안정, 국민의식의 흔들림,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과 그에 대항하려는 내셔널리즘이나 네오내셔널리즘의 움직임에 협공(挾攻)당하고 있다는 폐쇄감, 불안정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그것과도 관련되는 대미(對美)의식의 변화 등이 현저하게 눈에 띈다. 특히 오늘날 일본에서는 경제 중심의 글로벌화(化)와 정보기술(IT)혁명이 가져온 급격한 사회변화, 그리고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불황까지 가세해 사람들의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배외(排外)주의·복고(復古)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대적 특징은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 나아가서는 중국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화 사회의 진행 속에서 귀속감을 잃은 개인들이 집단이나 국가에서 자신의 활로를 발견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 그러한 경향은 전전적(戰前的) 체질인 국가주의·천황주의와 쉽사리 결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아시아에서 돌출한 경제대국인 만큼 그것은 또한 의도 여부를 불문하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므로 그만큼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일본인 전체가 그러한 현실을 확실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바로 위기의 심각함,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하겠다.

    즉 현재 자기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사고하며 판단하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비판적 상상력의 쇠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사회 전체가 한덩어리가 되어 전전회귀(戰前回歸) 사상에 빠져드는 위기에 직면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그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판단정지·사고정지라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다.

    런던에서 볼 때 재미있는 것은 ‘조국’에서 멀리 떠나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의외로 똑바로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최대 미디어인 ‘영국 뉴스 다이제스트’는 요즘 연속적으로 ‘일본인과 교과서’, ‘천황과 천황제’라는 특집기사를 다루고 있는데, 계속 일본 국내의 움직임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 기사에서는 일본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애매함이 근대천황제(近代天皇制)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명쾌하게 논하고 있다.

    물론 역사인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자신의 비위에 맞게 써내려 가려는 움직임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정치권력을 쥔 지배층은 대체로 권력 유지에 유리하게 역사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국민국가 제도 속에서 ‘의무교육’을 체제지배의 중요한 수단으로 장악한 지배층에게, 학교교육은 일정한 역사인식을 사람들 머리 속에 철저히 주입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일본의 역사인식 왜곡 문제는 형식상 민간의 교과서 제작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하는 1995년 8월의 무라야마 수상의 담화에 위배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일본 정부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검정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견지에서 행해지는 것이며, 정부는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역사인식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법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보면, 교과서 검정은 일본의 중앙행정부가 집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책임은 일본 정부가 져야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성급한 한국 정부 대응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명목 아래 교육이 보수 정권의 지배도구로 이용당해온 역사가 깔려 있다.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정론(正論)’ 아래 학교교육 속에서 지배 정당의 의도가 관철되고 동시에 ‘이에나가(家永三郞) 교과서 재판’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의 교과서 시정 요구를 배격해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출’, ‘침략’ 기술의 상징인 1982년 교과서 검정은 정부권력에 의한 교과서 개악이 외교문제가 됨으로써 일시적·부분적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시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검정의 주체인 일본 정부는 결코 가치 중립적인 판정자가 아니다. 사실, 일본 정부는 이번에 ‘민간’ 교과서 제작을 강조함으로써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의 우경화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일본의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정정할 내용을 항목별로 낱낱이 써서 일본 정부에게 외교 안건으로 요구한 일이 과연 타당한 방책이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교과서의 역사인식 왜곡을 외교 안건으로 삼아 정식 비판하는 일은 정당하다. 그러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시정 내용을 외교 안건으로 무턱대고 들이대는 일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의 존재양식, 무엇보다도 일본의 사상, 이데올로기의 존재양식 등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시정 요구가 어떤 구체적인 결실을 가져다 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잘못하면 반대로 한국 정부가 궁지에 몰리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도 부정하기 어렵다.

    137개 부분에 이르는 수정 의견을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검정에 합격한 ‘모임’의 교과서는, 가령 한국 정부가 제시한 35개 부분의 재수정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우익적 성격은 기본적으로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자칫 그러한 교과서를 추후 승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만약 그러한 대응이 꼭 필요했다면, 한국 정부는 학자들의 조사 결과를 공표한다든지 정부의 유감 성명 발표라는 형태에 그쳐야 했다.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로 더 효과적인 것은, 오히려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정책이라든가 민간이나 연구기관의 교과서 연구 등 일본연구를 조속히 장려·지원해주고 일본의 부당성을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며, 국제기관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주장을 꾸준히 홍보하는 일이 아닐까? 물론 한국의 학술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교과서 기술의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을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조선 멸시관, 아시아 멸시관

    교과서 기술에 관한 개별적이자 구체적인 시정 요구는 어디까지나 일본인 스스로 자국 정부나 교과서 회사, 집필자들에게 요구할 일이다.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이 할 일은 그러한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 우익들이 억지 주장하고 있는 ‘내정간섭’이라는 불필요한 시비를 피해 가는 방책이기도 하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 문제는 중요한 사안(事案)이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더 큰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즉 이 문제의 본질은 일본이 국가로서 아직까지 한번도 조선 침략, 식민지지배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이나 현재 진행(일시 중단)되고 있는 북일(北日)수교 정상화 교섭, 그리고 국회에서 되풀이된 답변으로 밝혀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일본은 이전에 조선반도를 식민지로서 지배했지만, 그것은 대한제국 정부와 협의를 거친 ‘합법적’인 것이었으며, 침략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 혹은 천황이 과거의 사죄를 언급하고 선린우호를 찬미한 적은 있어도 그것은 과거 침략·지배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었다. 외부에 대한 임시변통의 겉치레적 립서비스(lip-service)에 불과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표명하는 것은 고작해야 “이전의 식민지 지배에는 ‘도의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표현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근대 일본의 역사에서 동아시아, 특히 조선은 억압, 침략, 지배 대상에 불과했다. 사실,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라든지 ‘만선(滿鮮)’, ‘오족협화(五族協和)’, ‘내선일체(內鮮一體)’, ‘대동아 공영권’ 등의 슬로건들은 제국 일본이 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침략의 강도에 상응해서 잇따라 만들어간 정치적 자기표출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러한 역사 과정에서 일본 지식인들은 서구(西歐)에 쫓기면서도 동시에 아시아에서도 반격(反擊)당함으로써 늘 그들 특유의 복잡한 ‘피해자’ 의식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서구와 아시아의 추구를 두려워하는 ‘피해자’적 심정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은폐해주는 것은 애매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이며 또 그것과 일체화된 조선(朝鮮) 멸시관(蔑視觀), 아시아 멸시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성장의 길을 걸어온 일본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정신적으로 전전(戰前)과 똑같은 범주에 놓여 있다. 전후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일단 일미안보체제(日美安保體制), 천황제 민주주의, 아시아 침략의 은폐·망각·미화라는 세 가지 특질을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의 기축(基軸)을 이룬 일본국 헌법의 구조가 천황제의 존속, 전쟁책임의 무화(無化), 아시아의 망각과 일체가 된 ‘평화’이념 등을 기본 요소로 삼고 있다. 그것은 미소 냉전의 틀에서 미국의 군사전략에 일방적으로 가담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인’, ‘일본국민’의 의식, 혹은 정신의 존재양식은 한편으로는 내셔널 아이덴티티(국민적 주체성)를 마이너스 이미지로 파악하고 또 과거를 미래로 이어주는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 말하자면, ‘일본인’이라든지 ‘일본국민’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않는, 또는 책임을 인수하지 않는 ‘자각이 없는 내셔널리즘’의 만연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1990년대 10년 내내 전 일본군 ‘위안부’들의 필사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도 그녀들에게 정당한 사죄와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그 동안 ‘모임’ 등 전‘위안부’들의 호소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우익 풍조가 일본사회 곳곳에 확산되었다.

    식민지 지배의 반성, 전쟁책임, 전후책임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청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라는 시대 전체와 그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새로이 직시하고 미래를 어떻게 개척하느냐 하는 문제다. 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스스로 역사의 근간에 관련된 문제는 거의 아무것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의 청산이나 내셔널리즘의 문제가 어느 정도 진지하게 논의되었는지 의아스럽다.

    더구나 전후 일본인의 의식, 정신태도가 막강한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던 만큼 일본경제의 실속(失速)은 순식간에 나라 안을 향한 내셔널리즘을 증폭시키게 된다. 정계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전전회귀의 발상이 토로되고, ‘기미가요·히노마루’(일본국가·일장기)나 교육칙어의 정신의 강조되고,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공식참배가 강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내부를 향한 내셔널리즘을 두고 말하자면, 그것은 예외없이 천황주의로 경도(傾倒)하게 되고 그것과 겹쳐버리기 일쑤인데, 그 결과 아시아인들의 목소리는 차단되고 역사적으로 천황 신화와 깊이 관련된 아시아 멸시관이 증폭된다. ‘모임’은 그 선두에 서 있는 것이다.

    식민지 지배는 지배한 자와 지배당한 자라는 양자(兩者)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상처를 입는 것이 식민지 지배의 실태다. 지금 논단 등에서 화제거리인 탈(脫)식민지주의(post-colonialism)는 그러한 식민지 지배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제를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가해자 측에서는 반성이 되고, 피해자 측에서는 저항이 된다.

    이 탈식민지주의의 과제를 잘못 인식하고 소홀히 할 때 가해자 측에서는 역사의 미화, 전쟁책임·전후책임의 망각, 자기도취가 진행하고, 피해자 측에서는 패배주의·열등의식의 만연, 감정적인 민족주의의 고취라는 사태가 나타난다. 양자 모두 자기중심주의·상호불신에 빠져들게 되어 역사가 진보하기는커녕 증오·편견·멸시의 악순환·확대재생산만 초래한다.

    한국은 물론 피지배자 측에 속하지만,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하고 세계로 진출한 현재 상황을 생각할 때 이전의 식민지 지배, 그리고 현재 신(新)식민지적 상황에 대해 저항하면서 동시에 반성하는 위치에 서 있다. 교과서 문제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의 역사인식 왜곡에 대해 저항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하다. 단순히 일본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상처 입은 자끼리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제 불매운동은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 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개선되리라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과서 문제의 밑바탕에는 더 큰 문제, 다시 말해 지난날의 조선침략이나 식민지 지배 사실을 부정하고 과거 청산을 계속 거부하며, 또 사람들의 의식이 무자각적인 형태로 있으며, 전근대적인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국가권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본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시정 내용을 들이대보았자,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정부에게 과거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인정하게 하고 과거를 청산하도록 계속 주장하는 것이 정치·외교 정책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시민운동 등 민간운동에 대해 지적하면, 교과서 문제를 핑계 삼아 전개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본제품을 선호하고 일본제품의 홍수에 잠기다시피 한 생활 실태로 보건대, 불매운동은 단순한 감정의 발로에 불과하며, 외부에서 보면 편협한 민족주의 그 자체다. 정말로 일본제품의 범람(氾濫)이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정부의 경제·무역 정책 문제로서 담담(淡淡)하게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민족’을 앞세운 불매운동은 사고를 편협하게 만들 따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근현대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한국의 가장 큰 과제는 식민지 피지배 역사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일,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고 민족통일의 길을 하루 빨리 닦는 일이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친미냐 반미냐, 나아가서는 반공이냐 용공이냐 하는 것은 용어의 문제로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 지배의 청산과 남북통일을 향해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다. 이렇게 보면 식민지 지배 문제와 남북통일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존재한다.

    한국의 대일관(對日觀)이나 대일 정책은 마땅히 대미관(對美觀) 또는 대미 정책, 그리고 대북관(對北觀) 또는 대북 정책과 서로 연관시켜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일본이 과거의 청산을 소홀히 하는 문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주의의 문제, 북조선의 폐쇄적·가부장제적 체제의 문제 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오늘날의 일본은 정치·경제·외교·문화·교육·사상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사회 전체가 비관적인 분위기에 물들어 가는 가운데, 병든 정서로 오도된 ‘힘’이 진리·정의·이념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이른바 ‘구세주’로서 등장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내각도 부드러운 국가주의·천황주의를 속에 담은 채 ‘개혁’의 기치 아래 사회 전체를 더욱 우경화하고 있다. 일본은 잠시 이렇듯 비탈길을 굴러내려가듯 전락해 갈지도 모른다. ‘모임’의 의도는 이러한 일본사회의 어려움·모순을 천황중심·자민족중심의 국민통합으로 극복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역사적 사실을 개찬(改竄)·왜곡하면서 이웃 나라들과 사이좋게 지낼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일본경제는 현재도 그러하지만, 장차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성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고령화·소자화(少子化; 출산율의 하락)하는 현실에서 이질적(異質的)인 것을 거부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 정신태도는 바로 자기 목을 조르는 자살행위로 직결된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일본은 구(舊)식민지 출신자들인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정당한 처우마저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현시점에서 점치기는 어렵지만, 장차 일본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이슬람교도들에게 노동력을 상당부분 의지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맞아들일 사상적·이데올로기적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으며, 그것이 일본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중요한 요인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여기 런던에서 관찰하건대, 영국 사회는 이미 백인사회가 아니라 다민족 사회임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비(非)백인이 눈에 많이 띄며 텔레비전 등에서도 비(非)백인들이 뉴스 캐스터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것은 대영제국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과거 수십 년 동안 사상적·정책적으로 개방돼 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각지에서는 아직도 인종차별에 기인한 사회분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으니, 여러 민족이 공생·공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

    일본은 역사교과서문제를 통해 아시아가 보내는 눈길을 올바로 받아들여, 과거와 현재를 시야에 넣은 새로운 일본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자기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격변하는 국제질서에 어떻게 참여하고 아시아에서 공생할 수 있는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구축해내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아시아 침략, 식민지지배의 과거를 가진 일본의 책무이자 또 경제대국으로서 국제사회를 지탱해주는 일본의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이번 교과서문제는 식민지 지배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남북통일로 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본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한국의 새로운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는 일환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분단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일본에게서 아직 단 한 번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정식으로 받아내지 못한 현재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평화통일과 일본의 사죄

    한일간에는 한일기본조약의 개정, 재일조선인의 처우개선, 전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각종 전후 보상의 실현 등 열거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내 문제로 한정하더라도 재벌경제나 언론기관의 문제,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문제 등 식민지 피지배 경험과 남북분단의 후유증이 도처에 누적해 있다. 그러한 문제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몰두·전념하고 정진·노력을 꾸준히 쌓아간다면 일본과 우호관계를 증진할 수 있고 교과서 기술 문제 등에도 풍요로운 지혜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본을 지나치게 욕하고 공격할 필요는 없다. 욕하고 공격해도 현시점에서 일본은 그리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다. 그것은 여태까지 목청껏 외쳐왔던 한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다시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와도 연관된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정부 레벨의, 혹은 정부가 직접 관여하는 형태의 역사 교과서 공동연구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일 양국의 민간 단체가 역사나 교과서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또 시민 레벨의 교류를 축적해감으로써 쌍방이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함께 배우며 터득해 가는 과정이다.

    또한 교과서 문제가 곧장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으며, 상황판단을 흐리게 할 뿐이다. 우리는 일본에 관해 비관하거나 낙관할 필요가 없다. 두려워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오늘날의 국제질서, 그리고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다. 스스로 식민지 피지배 경험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노력을 꾸준히 펼쳐 나가면서 그 과정에 일본에게 주문하고 비판할 때, 그때 비로소 한국인의 목소리는 일본인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게 되는 충고가 될 터이다.

    동아시아 각국이 책임감 있는 국가가 되고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동아시아를 창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지금 동아시아인 각 개인에게 요구된다. 우리 한국인의 경우, 평화적으로 남북 통일을 실현하고 지난날의 침략·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를 일본으로부터 이끌어냈을 때 비로소 책임 있는 독립국가를 이루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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