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전 주권 신공항 건설, 당장 중지하라!

  • 김상진 < 벽성대 · 법학 >

    입력2005-05-24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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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전북 김제에 전주권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정부 계획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 대학교수의 기고다. 필자는 전북도와 건교부가 추진중인 전주 신공항 건설사업이 지역주민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사업 타당성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졌으며, 감사원으로부터 건설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도 정치논리에 밀려 강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공항 후보지인 김제시측과 시민단체는 공항 건설을 반대하며 전북도·건교부와 맞서고 있어 새만금사업과 비슷한 양상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신동아’는 이 글에 대해 전북도·건교부측이 반론을 제기할 경우 다음호에 게재할 계획이다.<편집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과정에 야기한 국토의 불균형 개발은 국가 발전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제1∼3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와중에 정치적·즉흥적으로 이뤄진 수많은 개발사업이 인구와 산업을 경(京)-부(釜) 축으로 집중시키면서 교통혼잡, 도시 과밀화, 환경오염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 게 그 대표적 사례다. 2000년부터 시행된 제4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선계획 후개발’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제는 박물관으로 사라졌어야 할 그 같은 정치적·즉흥적 개발이 다시 시도되고 있다. 전주 신공항 건설계획이 그것이다. 이 사업은 지역주민에게 고통을 주고 생존권을 위협하며 4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어 하루빨리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 지난 4년간 경직된 공권력과 맞서 싸워온 필자는 무모하리만큼 앞뒤 안 가리고 이 사업을 밀어붙여온 공권력의 횡포를 저항권 행사라는 결연한 각오로 여론에 고발하고자 한다.

    현재 한쪽에서는 연일 전주 신공항 건설의 당위성만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공항 건설의 절차와 방법에 하자가 있다며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후 추진하라고 맞서고 있다. 경실련, 녹색연합, 환경연합, 참여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학실련, 생명회의, YMCA 등은 전주 신공항 건설계획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성명서를 내고, 민주당 한나라당 국회 청와대 국무총리실 건설교통부 등에 탄원서를 냈다.

    하지만 전라북도 당국은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이나 대화 노력은 뒤로 한 채 사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또 사업 당사자인 건교부는 이 사업이 전북도가 주장하는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라 하여 타당성 조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공항 중장기 발전계획을 변경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

    전북도, 건교부의 무리수



    문제의 발단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도가 교통개발연구원에 의뢰, 수행한 전주권 신공항 타당성 용역조사(96년 12월∼97년 7월)가 그것이다. 전북도는 아무런 의견수렴 없이 조사를 실시한 후 1년 가까이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권교체 직후인 1998년 5월 전주 신공항 건설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해 건교부는 공항 중장기 발전계획을 하루아침에 변경한 뒤 그해 9월 전주 신공항 후보지에 대한 지정고시를 했다.

    이에 따라 전주 신공항 건설 후보지인 김제시민들은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듯 생존권을 위협받게 됐고 김제시는 시 운영과 발전계획에 치명타를 맞게 됐다. 공항 후보지와 직선으로 430m 거리에 있는 김제 유일의 대학인 벽성대학은 공항이 들어설 경우 소음으로 인해 정상적인 수업과 연구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존폐의 기로에 내몰렸다(대학의 교육환경은 특별법인 항공법이 규정할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반법인 교육관계법에 따라 판단할 사안이다).

    건교부는 공항 지정고시에 대한 김제시측의 의견을 듣고자 공문을 발송했고, 이에 따라 김제시는 자체 의견을 냈으나 의견 개진 경유지인 전북도는 98년 10월 김제시의 의견을 묵살하고 이를 건교부에 통지하지 않았다. 이어 당시 국민회의 주도로 99년 기본설계비 예산(8억 원)이 국회에서 승인됐다.

    한편 99년 3월 감사원은 전주 신공항 건설이 ‘부적합’하다고 판정하고 이를 건교부에 전달했으나, 5월 전주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전주공항을 조속히 착공하겠다고 언급함으로써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건교부는 사업 타당성 재조사에 나섰지만 이미 감사원으로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았던 교통개발연구원에 다시 조사 용역을 줘 물의를 빚었다(99년 6월∼99년 11월).

    건교부는 99년 10월 전북도와 김제시에 입지를 재조정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전북도는 김제시와 전혀 협의 없이 건교부의 입지 재조정 의견을 묵살하고 강행 방침을 밝혔다. 그해 12월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회의의 주도로 실시설계비 예산 25억 원이 배정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급기야 김제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2000년 10월 기자회견을 통해 “전주 신공항 건설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통개발연구원과 대우엔지니어링의 재조사 결과에 객관성과 타당성이 결여돼 있다”며 “양측이 동수(同數)로 추천한 전문가들로 민관합동조사단을 만들어 타당성 조사를 다시 실시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전북도와 건교부가 이 제안을 거부해 김제시장과 시의회, 이 지역의 장성원 의원(민주당), 경실련, 녹색연합, YMCA, 함께하는 시민연대 등은 전주 신공항 건설 반대 성명서를 잇따라 발표하기에 이른다(2000년 11∼12월).

    하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2000년 12월26일 전주 신공항 예산 50억 원이 추가로 배정됐으며, 지난 2월 건교부는 형식적인 후보지 검토를 마친 후 3월 김제시에 공항건설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또한 건교부는 사전협의 없이 3월27일 전주 신공항 토론회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려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자 건교부는 전주신공항건설반대투쟁위원회(이하 반투위)와 전주공항의 타당성을 놓고 6월7일 서울 건설회관에서 전문가 토론회를 열기로 합의했다(4월27일).

    이에 따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으나 건교부는 느닷없이 5월10일부터 7월10일까지 전주 신공항 실시설계에 필요한 현지 측량을 하겠다고 공고하고 측량작업을 강행했다. 그런가 하면 2002년 전주 신공항 예산으로 173억 원을 편성해 기획예산처로 올렸고, 6월4일에는 일방적으로 공청회 공고를 일간지에 내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워낙 완강하니 일단 토론회라는 ‘미끼’를 던져 반투위 활동을 달래면서 뒤로는 이런 짓을 한 것이다.

    그래서 반투위는 토론회에 참가할 전문가를 추천하지 않기로 하고 토론회 불참을 선언했다. 6월5일에는 공청회 공고 원천무효 성명서를 발표했고, 김제시민 1000여 명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허위투성이 전주 신공항사업 강행 시민고발대회’를 개최했다.

    문제투성이 타당성 조사

    다음은 전북도가 교통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전주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연구의 결론 부분이다.

    “전북권 공항 건설을 위해 다양한 항목의 분석을 통해서 최적의 후보지를 선정하고자 했다. 신공항을 건설하기에 앞서 기존 시설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기존 시설이 가진 한계로 인해 민항기를 취항시키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기존 공항을 활용하는 방안과 더불어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후보지는 9곳(기존 공항 포함)을 대상으로 예비조사를 실시하여 모두 4곳의 후보지를 최종 정밀 분석지로 선택하였다. 김제 덕동 학동 그리고 춘포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밀조사 결과, 모든 평가부문에서 양호한 판정을 받은 김제 후보지가 제1후보지로 선택되었다. 무엇보다 4곳의 최종후보지 모두 전주, 익산, 김제로부터 30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주로 토지 매입 및 기존 시설 등의 이설 비용이 후보지 평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중략).

    결론적으로, 전주권 공항을 개발하는 전략은 첫째, 기존의 전주비행장을 신공항 개발 전까지 소형 항공기와 경비행기가 운항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방안과 둘째로, 처음부터 새로운 공항을 개발해 항공서비스를 제고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투자하는 재원이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기존 전북권 공항인 군산공항과의 역할분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따라서, 전주권 공항을 개발하기 위해 어느 방안을 채택하더라도 투자재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타당성 조사는 전주 신공항 건설에 대해 유보적이고 애매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전북도 당국은 대통령 공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건교부에 전주 신공항 건설을 요청했으며, 건교부는 신중한 검토 없이 전문가들의 우려를 묵살한 채 공항 중장기 발전계획을 변경해 전주 신공항 건설을 지정고시했던 것이다. 결국 이 용역조사는 감사원으로부터 공항 건설 부적격 판정을 받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감사원은 전주 신공항 건설이 94년 4월19일 고시된 전국 공항개발 중장기 계획의 결론(‘서해안고속도로, 호남고속철도 건설 등과 같은 육상교통체계의 변화 및 군장산업단지 건설 등 항공 수요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과 군산공항 개항에 따른 중복투자를 고려해 2010년까지는 군산공항을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공항으로 활용하고 2010년 이후에 공항 건설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방침의 변경 사유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령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해안고속도로가 2001년까지 완공될 경우 상당기간 서울∼군산 노선의 항공기 이용 승객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이런 수요예측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조사 보고서는 군산공항이 단지 전라북도의 서쪽에 치우쳐 있어 공항 접근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전주 신공항권과 군산공항권을 구분했지만, 충청지역 주민들까지 제주도를 여행할 때 군산공항이나 광주공항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공항세력권의 범위는 매우 넓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단지 공항세력권의 구분에 기초해 항공수요를 예측하면서 이를 전주공항권에 한정해 산정했을 뿐 현실적인 자료와 부합하는지는 검증하지 않아 수요예측의 신빙성이 낮다는 것.

    아울러 이용할 교통수단이 해운에 한정된 것으로 가정하는 등 편익산정 방법도 비합리적이었고, 공항운영비를 산정하면서 감가상각비로 처리된 시설유지비를 운영비에서 제외했을 뿐 아니라 최소 운영 인건비도 제대로 산정하지 않는 등 운영비 산출기준에 일관성이 없었다. 운영비 규모도 기능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군 공항을 참고해 결정함으로써 과소 추정했다.

    이 밖에 활주로 등 주요 시설의 수명 연장을 위한 시설투자를 감안해야 하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더욱이 이 보고서는 초기 투자수익률법을 잘못 적용해 2004년을 최적의 개항시기라고 결론을 내렸으나, 실제로는 보고서의 내용대로 초기 투자수익률법을 적용하더라도 최적 개항시기는 2007년이 되며, 이 보고서가 경제성을 전혀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공항을 개발한다고 해도 최적 개항시기는 2013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기본설계 때 경제적 타당성 분석결과를 반영하겠다며 공항개발계획을 변경고시한 것은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주권 신공항 개발사업은 현재 진행중인 공항개발 장기계획에서 군산공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공항 건설에 따른 경제성 분석과 공공성,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하지만 감사원이 이렇게 지적한 지 두 달 후인 99년 5월 전주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전주 신공항을 조기 착공해야 한다고 말해 충격을 던졌다. 필자가 유종근 전북지사를 면담했을 때 “사려 깊은 대통령이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받은 것을 알면서도 조기에 착공하라고 했겠느냐”고 묻자 유지사는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필자는 대통령이 감사원의 지적 사실을 모르고 그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사업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그런 말 실수를 한 것은 보좌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전주시민 다수가 전주 신공항 건설을 막연히 기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북도민의 중지를 모으고 전문가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제대로 거친 후에 사업을 추진하는 게 정도다. 전북도는 그런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입지를 선정해 이해당사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게 됐다.

    그렇게 되자 전북도는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김제시측을 지역 이기주의, 님비의 주범으로 몰아갔다. 갖가지 여론조사를 통해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잘못된 행정절차를 덮으려 했다. 이는 공항 건설을 강행하기 위한 여론조작행위에 가까웠다. 일례로 전북도는 전주 신공항 건설에 대해 군산시민이나 김제시민 다수가 찬성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산 경실련이 군산시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는 반대의견이 월등히 우세했다.

    군산공항, 송천비행장으로 충분

    전주권의 교통망은 향후 2∼3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전주에 공항을 지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전주 신공항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전주-군 산 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올해 안에,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내년에 완공된다. 또한 전주공항 건설 여부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군산-함양 고속도로는 2004년에, 전주-광양 고속도로는 2005년에 개통된다 2004년에는 호남선 전철이 개통될 예정이다.

    전주-군산간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전주, 익산, 군산, 김제 등지의 주민이 30∼40분 이내에 군산공항에 도달하게 된다. 전주권 주민들이 이처럼 지척에 공항을 두고 있는데 왜 굳이 새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말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신공항 건설론자들은 전주가 항공의 오지라는 억지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2004년에 호남선이 전철화되면 신공항의 효용성은 더 떨어진다. 전주권 주민들이 1시간 30분∼2시간이면 수도권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신공항을 이용할 경우 공항까지 가는 시간, 대기시간, 탑승시간, 운항시간, 하승시간, 목적지 도심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합치면 최소 3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운임은 항공이 전철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그런데도 굳이 항공기를 이용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리옹을 잇는 고속전철이 개통된 후 항공수요가 80%나 감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호남고속전철 타당성 기본용역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우리는 이미 청주공항의 실패를 통해 어중간한 입지의 공항이 무용지물임을 체험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익산, 군산, 김제의 기차역과 터미널, 그리고 군산공항에서 현지 주민들의 의견을 조사해보고 그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주민들이 “공항은 무슨 공항이냐?”는 뜨악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맨, 여행객, 회사원 등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전주의 역과 터미널에서 만난 주민들의 답은 “전주권 공항은 필요하지만 지금의 후보지보다는 전주 인근에 있어야 한다”는 게 주류를 이뤘다. 경제성이나 전주시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현재 공항을 둘러싼 전북의 여론은 양분돼 있으나, 김제·익산·군산을 거점으로 하는 전북 서북부는 군산공항을 활용하면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또한 전주 송천동 비행장을 활용해 커뮤터 비행기를 활용하면 소규모 공항으로도 전주권의 항공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게 항공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편 신공항 건설 예정지는 김제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공덕면 공덕산업단지에 인접해 있다. 따라서 공항이 들어설 경우 각종 규제로 인해 산업단지 조성이 어려워져 도시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제도도 절차도 무시

    전북도의 그간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전북도 당국은 대(對)국회 예산활동을 하면서 자료집에 “국책 SOC사업의 입지선정은 지역간 이해관계로 주민의견 수렴이 곤란하지만 철도 항만 댐 고속도로 공항 등의 사업은 기본설계시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설명회 또는 공청회를 열어 주민의견을 수렴함”이라는 내용을 넣었다. 하지만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진행할 때까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설명회 또는 공청회에를 열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했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

    전주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조사 최종 보고서는 교통개발연구원장 명의로 전북 도지사에게 97년 7월14일자로 제출됐다. 그런데 전북도의 홍보자료엔 ‘97. 12 ∼98. 7: 타당성 조사 시행’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도 허위사실이다. 이는 아마 1년 전에 보고서를 제출받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용역조사를 실시한 정확한 기간은 96년 12월부터 97년 7월까지였다.

    더욱이 97년 7월에 용역보고서가 제출되어 김제지역이 공항 후보지로 지정됐다면 도지사는 건교부에 공항 건설을 건의하기 전에 김제시장이나 시의회, 김제지역 국회의원과 이 문제를 협의했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과 국회의원, 시의회 의장은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지방자치법에 ‘지방자치단체간 행정협의’라는 장치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말인가?

    건교부와 김제시의 공문이 전북도에서 차단된 것도 파렴치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행위는 도지사의 지시나 결단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건교부는 전북도의 신공항 건설요청을 받고 해당지역인 김제시장의 견해를 듣고자 했다. 이에 김제시는 “지정고시된 지역은 김제 발전 축의 하나이고 김제 유일의 대학과 너무 인접해 공항 후보지로서 부적당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북도를 경유해 건교부에 제출토록 했다. 그런데 전북도가 이 공문의 제출을 임의로 차단한 것이다.

    또한 수없이 많은 민원이 발생하자 건교부는 전북도와 김제시 및 의회를 통해 입지를 재조정하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전북도와 김제시로 발송했다. 그러나 김제에는 이 공문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본 결과 전북도가 건교부 공문을 김제에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일이 불거진 후에야 유종근 전북도지사는 김제시장에게 그런 사실을 전화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필자는 전주 신공항 건설의 부당성을 청와대에 호소하기 위해 모 인사의 주선으로 지난해 7월 중순 청와대 비서실에서 한광옥 비서실장을 만났다. 그에게 “대학 430m 옆에 공항이 들어서면 대학은 격납고와 다를 바 없다”고 했더니 “그럴 것이다”고 수긍하면서 “어떻게 된 사정인지 건교부와 전북도에 알아보겠다”고 했으나 지금껏 소식이 없다.

    한 달 후에는 전주 신공항 건설관련 예산편성의 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을 면담했다. 하지만 전장관으로부터 “주무부서인 건교부에서 올린 예산안을 놓고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으니 정부가 국회에 예산을 제출하면 국회의원을 설득해 삭감하든지 하라”는 답변을 듣고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획예산처는 국가 예산의 효율적 편성과 집행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 아닌가. 민원성 예산안 등 문제점이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기획예산처의 자체 판단으로 예산을 묶는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간 지역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전주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진 것도 세 차례나 된다. 국회 건교위와 예결위에서 전주 신공항 사업의 문제점은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면서 일부 의원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지만 정부는 입증하지도 못하는 타당성 조사 결과만 되뇌었다.

    이렇듯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 것은 정치논리 때문이다. 전북도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보검’을 끊임없이 휘둘러댔고, 전북 지역의 몇몇 여당 의원들도 사업의 타당성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산을 따내는 데만 급급했다. 이들은 사업의 정당성이나 타당성을 입증하라고 주장한 적이 한번도 없다. 칼자루는 이런 여당 의원들이 쥐고 있으니 야당 의원들이 총공세를 펴본들 예산안이 통과되는 데는 어려울 게 없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건교부가 감사원으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은 교통개발연구원에 타당성 조사를 재의뢰한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통개발연구원은 하청용역을 대우엔지니어링에 줬는데, 교통개발연구원이 처음 실시한 타당성 조사에서도 대우엔지니어링이 하청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실시한 기본설계도 대우엔지니어링에 낙찰됐고, 지금의 말 많고 탈 많은 실시설계도 대우엔지니어링이 맡고 있다.

    법에는 재척사유라는 것이 있다. 가령 징계 대상자와 연고가 있거나 징계 사유와 관련된 이는 징계심의에 관여하지 못하는 게 그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사회상규이기도 하다. 건교부는 다른 연구기관이나 연구자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왜 하필이면 감사원으로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은 연구기관에 같은 연구를 다시 맡겼을까. 참으로 소가 웃을 일 아닌가.

    민관합동조사단 만들어야

    이 때문에 그간 전주 신공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과 시장, 시의회, 지역 국회의원들은 1년 전부터 지역주민이 수긍할 수 있는 민관합동조사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민관합동조사단이 내린 결론은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도 민관합동조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민관합동조사를 실시해 사업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확보한 연후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얼마 전 건교부 항공국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전주 신공항 토론회를 열기로 해놓고 측량사업을 공고하고 사업예산을 편성하는 이중적인 정부가 어디 있느냐”고 따져물었더니 “국민에겐 집회를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정부는 공권력을 갖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게 과연 민주국가 관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동아일보 인터넷뉴스 ‘내고장 소식’(98년 4월 27일)에 따르면 전주시가 전북의 발전을 도모하고 신공항 건설에 따른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전주 인근에 있는 송천비행장에 민항기가 취항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교부에 건의한 것이다.

    전주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2002년 월드컵 전주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송천동 군부대 비행장에 100인승 규모의 여객기가 취항하도록 해야 하며, 전주지역의 항공수요를 충당하고 지역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도 민항기가 조기 취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전주 신공항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외환위기를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이렇듯 활용할 공항이 있는데도 대단위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예산낭비와 직결된다.

    만약 그래도 전주 신공항을 건설해야겠다면 경제적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물론, 군산공항의 효율적 활용, 지역 관광자원을 활용한 관광객 유치 계획, 육상교통체계 변화의 적극 수용, 전북지역 내 균형발전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생산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육상교통, 항만, 공항 등의 SOC를 구축하겠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밀실행정에다 잘못된 용역 타당성 조사를 가지고 지역의 갈등을 님비현상으로 몰아가며 현 후보지에 공항 건설을 강행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전주 신공항과 관련해서는 해결책이 얼마든지 있다. 타당성 조사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서 공항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지역에 건설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타당성 조사는 그 객관성과 합리성, 정당성을 해당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신공항 강행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루속히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나서야 한다. 민관합동조사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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