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노사개혁 없이 공기업 개혁없다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5-05-24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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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영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파업사태와 의료대란을 치렀다. 이 때문에 그가 언제까지 공단에 머물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공단 운영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 1주년을 맞았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1998년 10월1일 ‘의료보험 체계의 효율적 관리’라는 명분을 내걸고 ‘공교(公敎)의보공단’과 ‘지역의보조합’을 1차 통합해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을 설립했다. 2년 뒤인 2000년 7월1일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의보조합’을 2차 통합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출범시켰다.

    그로부터 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냈다. 2000년 6월16일 통합공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한 박태영(朴泰榮)씨는 시작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일부 조합원들이 박 이사장을 불법 감금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 이때부터 노사는 지루한 감정싸움을 벌이다 11월이 돼서야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사간 불신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지금도 서울 마포의 공단 건물 앞에서는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전국의 지부 사무실에서는 직장 출신과 지역 출신의 ‘소리 없는’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6월13일엔 서울·경기지역 사회보험 노조원들이 공단 앞에서 ‘지역과 직장의 업무일원화’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84일에 걸쳐 파업을 벌이는 동안 공단 밖에서는 의약분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정부는 의료수가 인상이라는 편법을 동원했고, 이것은 뒷날 공단의 재정적자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박태영 이사장이 공개한 2001년 공단의 재정적자 예상액은 약 3∼4조원. 정부는 서둘러 ‘건강보험재정안정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국민들과 시민단체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인터뷰는 6월7일 박 이사장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파업 수습이 가장 힘들어



    ―취임 1주년을 맞는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죠.

    “그 동안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어요. 부임할 때는 의료대란이 몇 개월째 계속됐고, 공단의 노사갈등도 심각했습니다. 공단 직원 중 7천여 명이 석달이나 파업을 하다 보니까 조직 질서는 엉망이고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1년 동안 조직의 기초가 잘 다져졌다고 봐요.”

    ―1년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이질적인 기관이 통합됐기 때문에 뭐 하나 단일 문화로 내세울 게 없었어요. 그런데 1년 동안 노력한 결과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게 됐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접해봐도 그런 게 보여요. 그 점을 정말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면….

    “작년 노사분규 때였습니다. 우리 직원이 1만2000여 명쯤 되는데 사회보험 노조원이 7000여 명이에요. 저의 부임전부터 부분파업을 하고 있었고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도 내가 부임하자마자 전면 파업을 시작했어요. 그것도 아주 극심한 물리력을 동원하면서…. 언어폭력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당했어요. 불법 파업이 3개월을 끌었잖아요. 그걸 수습할 때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잘 풀릴 걸로 봐요.”

    의료보험 통합의 장점은 소득의 재분배 효과 및 의료서비스의 개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러한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재정의 불균형에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수입원이 되는 보험료는 인상을 소폭으로 억제한 채로, 의료수가를 네 차례나 인상했다. 게다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 범위까지 확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단의 재정난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참고로 EU(유럽연합)는 의보요율이 15%인 반면, 한국은 3.4%에 불과하다.

    ―의보통합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단 통합은 잘 한 일이죠. 하지만 빨리 조직을 정착시키고 효율적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통합 후의 조직분규나 재정문제를 보면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다고 봐요. 의료대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수가인상 등이 결과적으로 금년 봄에 재정악화로 나타났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표현했는데, 의료수가 인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겁니까.

    “재정의 균형과 보조를 맞춰 수가를 올렸어야 했다는 그런 생각이죠. 보험료도 같이 올라가면서 지출이 늘어야 하는데, 이게 안됐어요.”

    보험재정의 거품 걷어내야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정부가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보험료 인상은 민감한 문제잖아요. 국민들 중에는 급여수준에 비해서 보험료 부담이 높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아요. 국민들도 이제는 정치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실질적인 의료서비스 개선을 생각해야 돼요. 국민들이 합리적인 보험료 부담을 할 때가 곧 오리라고 봅니다. 공단, 정부, 시민단체, 국민이 이 문제를 토론하면서 합리적 수준의 재정부담을 찾아야겠죠.”

    박 이사장은 말을 아꼈다. 그는 “내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겠지만, 공단 이사장인데…”라며 쓴소리를 자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공단의 재정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의보통합의 장점을 살린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모순이다. 박 이사장은 거듭된 질문에 정부가 추진해온 의료정책의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의료대란이 작년 10월경에 끝났잖아요. 그때까지 한달 평균 공단의 보험급여 지출이 6800억 정도였는데 의료대란이 끝나고 11월에 1조500억으로 50% 가량 늘어났습니다. 12월에는 더 늘어서 1조1000억이 됐어요. 그게 바로 의료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수가인상 등을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란 말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공단에서는 재정 문제를 고민했고, 그 대책을 백방으로 계속 강구해 왔지요.”

    공단의 보험급여 지출이 급증한 것에 대해 최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의료비 부당청구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의약단체들은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진료내역 이상신고 자료 1차분 813건(373곳) 가운데 불과 3.5%인 13곳만 지정해 복지부에 허위·부당청구 실사를 요청했다. 이것을 두고 의약계의 자정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료비 부당청구 실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맡고 있다.

    ―심평원 직원 한 사람이 하루에 처리하는 서류가 8000건에서 많게는 1만4000건에 달하고 삭감률도 겨우 0.73%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다고 보나요.

    “공단에서는 재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3월부터 진료내역통보를 시작했습니다. 3월에는 6개도시 96만세대 450만건에 대해 통보했습니다. 그 성과가 좋아서 4월부터는 전체 수진자 913만 세대, 3400만 건에 대해 진료내역을 통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일부 의료인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도를 넘었다고 봐요. 환자를 거짓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부정행위가 너무 심각합니다. 이건 국민의 재산을 훔치는 절도란입니다. 어떻게든 불법 청구를 막고 보험재정에서 거품을 완전히 걷어내야죠. 그렇게 해야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보험재정의 규모가 투명해지고 정확해져요. 의료인들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자정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TV토론을 보니까 일부 의사들은 공단에서 진료비 내역을 통보해주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에선 90% 이상이 ‘잘하는 것’으로 답했습니다. 극히 일부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전체 의료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면, 자체적으로 정화해야 합니다. 진료비 내역 통보는 현실적으로 재정이 급박하니까 경종을 울리고 또 예방적 효과를 위한 것입니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통보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노사문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의료보험이 통합되기 전에는 지역, 공교(公敎), 직장 등 3개의 노조가 있었다. 이 가운데 지역은 사회보험노조이고, 공교와 직장은 통합할 예정이어서 현재는 사회보험노조와 직장노조가 양립해 있는 상태. 따라서 현재는 사회보험노조와 직장의보노조가 양립한 상태다. 상급단체로 보면 사회보험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고, 직장의보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이런 까닭에 공단은 성격이 다른 두개의 노조를 상대로 중복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조원들 역시 사안별로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단은 오랫동안 노사갈등을 겪었습니다. 1998년부터 모두 11회에 걸쳐 150일간 파업이 진행됐더군요. 그 정도면 후유증도 상당할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직원들도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공단의 존립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국민들의 신뢰가 쌓여야 직원들의 후생복리나 권익신장도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거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가 노사갈등입니다. 이사장님은 노사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했습니다. 근로자 계층의 희생 위에서 압축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데 일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민주화하는 과정에 경제성장에 기여한 사람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진 거죠. 정확한 통계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의 임금상승률은 물가상승률을 훨씬 초과했어요.

    그런데 세계경제는 급변해서 소위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했잖아요. 특히 미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기업 구조조정을 다 끝내고 세계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전술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노동자의 ‘합리적인’ 정리나 기업의 구조조정없이 1990년대에 와서 IMF를 맞았습니다. 그러니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기업과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동자들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박 이사장은 노사갈등의 원인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노동운동의 방향성으로 돌렸다. 아마도 자신이 공단 이사장으로서 겪은 일들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나는 노사분규를 겪은 사람으로서 노동운동의 최고 무기는 도덕성 확보라고 봅니다. 도덕성을 어디서 확보하느냐? 법과 사회적인 기준을 지킴으로써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물리력을 동원하고 불법을 저지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건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따라서 이젠 노동운동도 한국의 경쟁력 확보에 맞춰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단에서 직접 부딪혀 보니까 노사개혁없이는 공기업 개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사가 힘을 합쳐 경쟁력 있는 직장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노조는 기업의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 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다 노조원의 신분보장이나 권익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가 한국 노동운동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이곳이 특별한 측면도 있다고 봐요. 처음 여기에 와서 계급투쟁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했어요. 시대는 급변하는데 이 노조엔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니다. 겉으로는 공단 직원의 후생복리나 권익신장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투쟁을 위한 투쟁, 노조 지도부를 위한 투쟁이 참 많았다고 봐요.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십수년 동안 공단경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일부 직원들도 거기에 편승해서 무사안일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풍토가 조성됐던 거죠.”

    ―공단에서 최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신노사문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공공기업의 경영진이 무슨 자본가예요? 똑 같은 월급쟁이지. 나는 근로자하고 똑같다고 봐요. 경영자는 투명경영, 현대적 경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높여야죠. 거기에 노와 사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노동자들도 이제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참해야 합니다. 직원들 중에 필요 없는 사람이 있는데도 조정하지 못한다면 안되지요. 우리 공단의 경우 내가 전국 각 지사의 운전기사를 없애버렸어요. 노조가 그걸 전부 데리고 가라고 하면 무리한 얘기지. 직접 차 몰고 다니면 해결되잖아요.”

    ―한국은 노동자가 실직했을 경우 보호해줄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선진국에 비해 취약합니다. 따라서 선진국의 모델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기업의 자생여건, 국가의 자생여건, 크게 봐서 한국의 세계 경쟁력, 한국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돼 있습니다. 그것을 초과해서 근로자의 권리를 요구한다면 국가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한국 경제의 수준에 맞는 각 경제 주체별 보호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근로자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기업하는 사람들 처지에서 보면 극심한 노사문제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안들어오잖아요. 예를 들면 중국에는 GDP의 20%가 넘는 420억달러의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마 10%도 안될 거예요. 기업이 안 들어오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고용창출이 될 수 없잖아요.”

    ―한국 노동자들이 경제능력 이상의 요구를 하고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꼭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경제 주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근로자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한번쯤 노사문제를 정리해야 돼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기형적인 조직이다. 직원의 평균연령이 38세(남자는 40세)이며 오랫동안 신규채용을 못해 세대간 연결이 끊긴 상태다. 직급별 인력분포도 극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5급 직원의 경우 전체 직원의 5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 이런 까닭에 현행 구조를 유지할 경우 향후 15년 동안은 매년 200명 미만이 퇴직하는 반면, 그 뒤부터는 해마다 700∼1000명씩 빠져나가 인력난에 시달릴 수도 있다.

    공공개혁의 핵심은 노사개혁

    ―지난해 7000여명이 84일간 파업을 했음에도 업무가 정상으로 돌아가 인력이 적정규모에 대해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7000여명이 파업할 때 다른 직원들은 정말 고생했습니다. 야근은 물론 휴일까지 근무했습니다. 대체인력도 1100여 명을 투입했고요. 그럼에도 의료보험 서비스는 형편없었습니다. 공단은 지난해 통합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1900여 명을 줄였습니다. 우리 직원의 10%가 넘는 인원이고 인건비로는 660억이나 됩니다. 공단으로서는 엄청나게 인력을 감축한 거죠. 지금처럼 업무량이 계속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단의 인력규모는 적당하다고 봅니다. 일이 늘어나더라도 서비스의 질은 계속 높여야 하거든요.

    ―올해는 감축 계획이 없습니까.

    “2001년에도 1070여 명을 감축하기로 돼있어요. 그런데 5월말까지 벌써 900여명이 퇴사했어요. 나머지는 경영진단을 받아본 뒤 구체적인 방안을 세울 생각입니다.”

    ―인원 감축 과정에서 여성과 부부사원들에게 우선 해직을 강요해 문제가 됐습니다. 그건 어떻게 보십니까.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초기에 다른 기관들의 인력감축 방안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금융기관에서는 부부사원인 경우 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퇴직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인력조정 이외에 공단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을 추진했습니까.

    “저는 공공부문 개혁의 샘플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목표를 설정하고 개혁 프로그램을 줄곧 실천해왔죠. 경영의 효율성 제고, 대민 서비스체제 확립, 신노사 문화 정착, 생산성 증대 등 58개 항목의 경영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는데 상당 부분 완결된 것도 있고 진행중인 것도 있고 앞으로 추진할 것도 있어요. 직원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정착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젠 정말 의료보험 서비스의 질과 양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고 자부합니다.

    예를 들면 본부장제를 도입해서 각 지역본부에 6명을 3년 계약제로 채용하고 4급 이하 직원들의 인사권도 넘겼습니다. 또한 지역본부에 감사평가부를 신설해 실질적으로 일상감사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전 지사의 직원들을 관리 평가하고 인사에 반영하는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경영혁신 차원에서 작년과 금년에 1900여 명을 감축했는데 그 중 36%가 책임자였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 오랜만에 450여 명의 승진 인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워낙 정체된 조직인데다 극심한 노사분규까지 겪다 보니까 승진 인사 자체가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이밖에 공로연수제를 도입하고 특별승진 연한을 하향 조정한 것도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바로 감사원의 특별감사에서 공단이 정근수당 31억원과 시간외수당 135억원을 부당하게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단의 재정위기가 부각된 시점에 거액의 돈이 지출됐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 결과를 보니까 1월에 전 직원에게 100%의 정근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파업이 있었고, 이사장께서는 파업기간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1월에 지급한 정근수당이 하반기에 근로한 사람에게 주는 일종의 ‘상여금’이라고 볼 때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깁니다.

    “정근수당은 공무원 보수규정 제7조와 공단보수규정 제8조 규정에 나와있는 ‘12월1일 이전부터 봉급이 지급되는 자에 대해서는 정상 지급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지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파업기간에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정근수당을 삭감하겠다’는 공문을 노조에 보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규정에 따라 주게 돼 있는 걸 어떻게 삭감합니까? 노조도 공문에 대해서 콧방귀를 뀌고 일절 대응하지 않았어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는데, 정근수당 지급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고 법적으로 당연히 지급해야 할 정려(停勵)수당에 해당합니다. 정당한 지급이거든요.”

    ―재정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단이 1월부터 3월까지 시간외수당을 무려 135억원이나 지급했어요. 이것을 두고 공단이 지금 “자기 식구들 챙길 만큼 한가로우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간외수당은 1년 동안 얼마를 주게끔 공단 예산으로 총액이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왜 3월까지 많이 지급했느냐? 파업이 끝난 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통합전산망 개발,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체납보험료 징수, 수진자 조회, 진료비 부담내역 통지업무 강화 등 미진한 업무를 조속히 처리하기 위해 수당 지급을 앞당겼던 겁니다. 공단 직원들의 시간외 노동이 많았기 때문에 수당이 늘어난 거지, 일도 안했는데 돈을 준 건 아닙니다. 참고로 통합전산망 개발이 끝난 4월 이후엔 시간외수당 지급이 전면 중단됐어요.”

    박 이사장은 부임 직후부터 “국민들에게 최상의 건강보험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업무파악을 하기도 전에 파업이 벌어져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도입은 12월 이후로 미루어졌다. 박이사장은 이 점을 상당히 아쉬워하며 “지금부터라도 서비스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공단의 서비스 문제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게 직원들의 불친절입니다. 국민들의 민원 만족도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십니까.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봅니다. 전화 민원에 불친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그걸 보완하기 위해 ARS제도를 각 지사마다 도입하고, 콜센터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서비스가 좋아지려면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해요. 서비스의 생명은 신속과 정확이거든요. 그래서 작년부터 전직원을 상대로 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역점을 두고 있는 서비스는 무엇입니까.

    “전국을 연결하는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금년 내에 갖출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격심사에서부터 보험료 부과, 급여 등을 어디에서나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최대의 역점사업이죠.”

    “나는 검증받은 경영자”

    ―공단의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단의 노력에도 국민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년에 통합하면서 조직간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직장 쪽은 통합하지 말자는 거고, 지역 쪽은 통합하자고 그러고. 상식적으로 보면 업무량에 비례해서 합리적으로 인원을 배치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공단은 현재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할 수가 없어요. 자칫하면 직원간 갈등을 부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곳에는 인원이 턱없이 모자라고, 또 어떤 곳에는 여유가 있고…. 앞으로 노조와 얘기하면서 하나씩 풀어야 할 숙제겠죠.”

    정부는 최근 진료비 심사 강화, 급여제도 합리화, 약제비 절감, 본임부담금 조정 등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 재정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의보재정 적자폭이 예상 밖으로 커지자 정부가 서둘러 마련한 종합대책이다.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와 의·약계, 국민 4자가 한발씩 양보하는 자세로 재정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의약계는 벌써부터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국민들도 부담이 늘었다는 점에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종합대책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십니까.

    “최선의 대책은 아니지만, 일단 이해집단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만들었잖아요.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겠죠. 각 집단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힘으로 극복하고 제도의 장점을 살려야죠. 그게 모두를 위하는 길이예요.”

    ―시민단체 쪽에서는 재정적자를 국민 부담으로 떠넘기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성공하려면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의료인들은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죠. 마찬가지로 정부도 경비절감을 통해 적자폭을 줄여야 해요.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하는 한편 국민들도 부족한 부분은 부담해야죠. 김 장관도 올해는 보험료를 더 올리지 않고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시행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보완책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뿌리를 내려야죠.”

    ―종합대책 중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관리비용을 줄이는 부분도 있던데요.

    “인원조정을 통해 벌써 연간 6백억원 넘게 줄였습니다. 물품 구입도 입찰제로 바꿔서 많게는 40%까지 낮췄어요. 앞으로도 더 줄일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겠죠.”

    취임 1주년을 맞는 박 이사장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다. 부임 초기만 해도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이냐가 관심이었지만, 이젠 조직운영에 대한 구상이 확실하게 잡힌 듯했다. 무엇보다 노사관계의 안정에서 큰 힘을 얻은 모양이다. 그는 “노사개혁 없이 공기업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앞으로도 노사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은행원으로 시작해 대기업 부사장까지 오른 실물경제 전문가.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치며 국정운영에 참여한 정치인. 그는 지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공기업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지난 1996년 그가 15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경쟁에서 탈락했을 때만 해도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화려하게 재기했다. 인터뷰 시작부터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정치적’ 질문을 던져보았다.

    ―‘낙하산 인사’라는 야당의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검증받았다고 자부합니다. 기업 경영도 했고, 국가 경영에도 참여했잖아요. 내 스스로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에 야당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정치권으로 돌아가실 계획이십니까.

    “글쎄요. 시간을 갖고 신중히 생각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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