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호

“증시 생중계로 개미투자자 사로잡는다”

류화선 한경와우TV 사장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입력2005-04-08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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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 투자의 생명은 정보다. 은행 빚 얻어 애면글면 매달리는 개미투자자건, 하루 수천억원을 주무르는 기관투자가건,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너나없이 얼마나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느냐다. 이뿐인가.

    손에 걸려든 ‘사실’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 시장 흐름을 잡아내는 분석력도 필요하다. 여기 더해 무엇이 ‘될 성 부른 나무’인지 콕 짚어낼 수 있는 판단력과 투자철학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으리라.

    그러나 생업이 따로 있고 전문 투자 교육도 받지 못한 대다수 투자자들에게 변화무쌍한 우리 증시는 맹수가 출몰하는 아프리카 정글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힘세고 똑똑하고 친절한 가이드가 있다면 다퉈 길 안내를 부탁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경제신문 편집국장 출신 전문경영인

    한경와우TV는 바로 그 길라잡이 노릇을 자임하고 나선 증권전문 케이블 채널이다.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따끈따끈한 주식 정보와 재테크 정보를 시청자의 안방, 사무실, PC와 객장으로 발빠르게 실어 나른다. 덕분일까, 지난해 10월1일 첫 방송을 한 신생 채널인데도 놀라운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청률 전문조사기관인 AC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4~6월2·4분기 한경와우TV의 평일 증시 개장시간(오전9시부터 오후3시까지) 시청점유율은 평균 7.3%로, 전체 44개 케이블TV 채널 중 3~6위를 유지했다. 이는 영화, 드라마 등 취미·오락 채널을 제외한 정보 채널 중 사실상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모든 도약에는 ‘발판’이 있는 법. 한경와우TV의 급부상 뒤에는 경제전문 대기자 출신인 류화선 사장(53)이 있다.

    류사장은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지낸 정통언론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2001년에는 경기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로 일했다. 현재 한경와우TV 대표이사 사장과 한국경제신문 편집·기획담당 이사를 겸하고 있다. 그러나 활동의 중심은 아무래도 한경와우TV다. 신생 미디어 CEO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차분히 마무리할 시점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를 겪게 된 거죠. 신문에서 방송으로, 또 편집 임원에서 최고경영자(CEO)로 말입니다. 여전한 게 있다면 경제 뉴스를 다룬다는 점이랄까요. 수세적이기보다는 새 분야, 새 직책으로 인한 긴장과 재미를 만끽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소년 같은 미소가 방송사 CEO에 대한 거리감을 단숨에 없애준다. 민완기자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소탈한 웃음이다.

    한경와우TV가 출범한 건 1999년 8월. 증권정보 전문 웹 캐스팅(인터넷 방송) 업체로서 같은해 10월엔 벤처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00년 1월 사이트를 오픈해 하루 8시간씩 증권정보를 생방송했다. 같은해 5월 케이블TV 프로그램 제공 사업자로 선정됐고, 12월에는 한국경제신문사가 최대주주가 됐다. 자본금도 51억원에서 89억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류사장이 취임한 것은 올 3월12일. 이제 겨우 4개월 남짓 흘렀을 뿐이지만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올 4월1일, 유료채널에서 무료채널로 전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비 대신 광고료가 가장 큰 수입원이 된 거죠. 또 하나는 지난 6월, 증권경제분야 위성채널 사용 사업자로 단독 선정된 겁니다. 이로써 한경와우TV는 미래형 멀티미디어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하루 25시간 일한다”

    무료채널 전환은 사실 큰 모험이었다.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회사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오랜 경기침체로 광고 시장 역시 답보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후발 매체, 그것도 공중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 채널로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류사장의 방침은 단호했다. 시청률이 아무리 높다 해도 최고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1등 방송’이 될 수 없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저는 신문사 기자로, 데스크로, 편집국장으로, 임원으로 일하는 동안 ‘1등 하는 맛’을 느껴본 사람입니다. ‘1등 정신’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득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1등 정신’입니다.”

    류사장이 직접 쓴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구성원 각자 전투에 임하는 병사의 심정으로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취임한 날부터 류사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주저없이 밀고 나갔다. 매주 월요일 오전 6시30분에 열리는 간부회의가 중심이었다. 류사장은 회의 때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전투 대열’로 설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날 회의 결과는 전자우편을 통해 전직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정리는 류사장이 직접 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내용 누락이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e-메일은 전사원이 당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목표를 공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직원들에게 보내는 e-메일에는 되도록 생생하고 적확한 표현을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회사 사정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건 돈을 버는 일이라는 걸 쉼없이 강조했죠. ‘돌격’이니 ‘작전명령’이니 ‘점령일시’니 하는 용어도 간혹 사용했습니다. 제 간절한 바람과 결의를 직원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류사장은 임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얼마 전 있었던 사원 체육대회에서 우수사원상을 받은 한 팀장은 “사장님으로부터 29통의 전화를 받은 날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루 25시간을 일하는 기분이었다. 꿈속에서도 회사 일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요즘 한경와우TV 직원들의 퇴근 시간은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다.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20~30대 젊은이가 사원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불만을 터뜨리는 이는 많지 않다. 사장 이하 임원들이 솔선수범하고 있는데다 ‘성과에 따른 명확한 보상’을 분명하게 약속 받았기 때문이다.

    류사장이 제시하는 목표는 대개 숫자의 모양을 띠고 있다. ‘531고지점령작전’이 대표적이다. “점령일시 2001년 6월. 한 달 기준으로 하루 평균 시청률 Top 5 안에, 주중 시청률 Top 3 안에 들면서 장중 시청률 Top 1을 굳혀야 한다”는 ‘작전명령’이다.

    “목표 관리는 숫자로 하자는 것이 제 방침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마케팅, 광고는 물론 관리도 숫자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잡음 없이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한경와우TV는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531고지’ 점령이 눈앞인데다 6월 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액 10억원을 돌파한 것이다. 이는 한경와우TV가 오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증시 부진 속, “월 3억원도 힘들 것”이라는 업계의 예측을 뒤엎은 것이어서 더욱 보람 있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첫 흑자가 한경와우TV의 선순환 고리 역할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청률 상승이 매출 증가로, 다시 투자 확대와 시청률 재상승으로 이어질 때 회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겠죠. 한 번 이기면 또 이기게 되는 법입니다. 이기는 맛을 알 때 승리의 선순환 고리가 이어진다는 것이 저의 믿음이지요.”

    류사장은 흑자 달성에 성공하자 취임 당시 직원들에게 약속한 대로 연봉 10% 인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똑같은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월급이 오르지 않는 직원도 있다는 소리다.

    “이익이 늘 때마다 연봉도 올라갈 겁니다. 영업부서나 영업직원에 대한 인센티브도 확실하게 지급할 예정입니다. 방송본부의 경우 목표 시청률을 달성하면 역시 인센티브를 받게 되겠죠. 그러나 부진한 부서에는 인센티브는커녕 연봉 조정 때 페널티를 적용할 계획입니다. 간부의 경우엔 (평직원에 비해) 높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반면 페널티도 더 가혹하게 부과할 것임을 이미 공표했습니다.”

    “인기 없는 사장이 되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하자 류사장은 대뜸 “그래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원칙대로 행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소홀히 한다면 당장은 ‘좋은 사람’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죽일 놈’이 될 겁니다. 경영에 실패한 사장은 형법에도 없는 죄를 범하는 거예요. 중요한 건 경영에 성공하는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기는 없더라도 ‘존경’이라는 더 큰 보상을 받게 되겠지요. 사기업의 최고경영자라면 당연히 자신과 주주, 직원 모두에게 진정 득이 되는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류사장이 지위를 이용해 전횡을 일삼는 독불장군은 아니다. e-메일 주고받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직원들과의 거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기자들을 몰아치던 신문사 데스크가 저녁 술자리에선 “선배 노릇 똑바로 하라”며 질책하는 후배들에게 애정어린 술 한잔 건네는 모양새다. 류사장에게는 아직도 신문사 편집국 수장의 면모가 적잖이 남아 있었다.

    한경와우TV의 맨파워는 상당하다. 차형훈 공동사장을 비롯 10여 명의 KBS 출신 방송인력이 제작부서를 탄탄히 떠받치고 있다. 20여 명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도 자랑거리. 기자 중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 여럿 된다.

    “우습게 베낄 거면 아예 관두라”

    한경와우TV의 시청률 상승은 생방송 중심, 스타 발굴, 기발한 프로그램 아이디어에 힘입은 바 크다.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시황을 실시간 중계해 프로그램에 생기와 박진감을 불어넣는다. 앉아서 진행하는 장면이 많은 만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에도 신경을 쓴다. ‘추천! 급등주 10선’ 진행자인 ‘홀짝박사’ 김문석씨, ‘하태민의 대박예감’을 진행하는 하태민씨 등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일급 투자전문가 유치도 중요하다.

    아울러 프로그램 첫머리에 마라톤 장면을 끼워넣고, 스튜디오로 한의사를 불러내는 등 톡톡 튀는 제작방식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한경와우TV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대포 광고’, 홈쇼핑 광고가 없다는 것이다. ‘1등 채널’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다.

    류사장은 한경와우TV의 운영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전제는 시청자, 즉 주식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시중에 떠도는 루머까지 샅샅이 파악, 진위를 확인해 가장 믿을 만한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는 거지요. 둘째는 재미있고 유익한 주말 프로그램 제작에 힘을 기울인다는 거예요. 미국 제일의 증권정보 채널인 CNBC의 경우, 주말에는 골프 프로그램만 방영합니다. 금요일 오후 3시면 주식시장이 문을 닫지 않습니까. 주말에는 평일과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접근해야죠. 부동산 등 일반적 재테크 상식을 담은 프로와 골프, 낚시, 바둑 같은 레포츠 프로그램이 주효하리라 봅니다.”

    셋째 원칙은 철저한 벤치마킹이다. CNBC, 블룸버그, CNN 등 세계 정상의 정보 채널이 보유한 노하우를 분석해 한국화하겠다는 것. 류사장은 “외국 것 베꼈다는 손가락질이 두려워 어설프게 따라하다간 이도저도 안 된다”며 “예술성이나 독창성보다 정보전달력이 중요한 채널이니만큼 완벽한 벤치마킹으로 보는 즐거움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정보채널의 경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다. 애널리스트나 프로그램 진행자가 금전적 유혹에 넘어가 ‘작전’의 도구로 활용된다면 채널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윤리 문제는 시스템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눈에는 눈, 돈에는 돈으로 맞서야지요. 작전에 놀아나기보다 회사와 시청자에 충성하는 게 더 큰 이득이라는 것을 직원들이 몸으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향력에 걸맞은 적절한 보상과 명예를 제공해야죠. 사실 투자전문가에게 고객의 신뢰보다 더 큰 자산은 없습니다.”

    적자 내는 CEO는 죄인이다

    한경와우TV는 최근 CNBC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프로그램 교환에서 전략적 제휴, 투자유치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협의중이다. 채널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모바일 정보제공업체, 증권사 등이 다양한 제안을 해오고 있다. 한경와우TV 콘텐츠가 가진 신뢰성과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음이다.

    “우리의 목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파워 디지털 멀티미디어 컴퍼니’입니다. 강력한 콘텐츠 파워를 무기 삼아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국제적 종합정보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위성방송은 한경와우TV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겁니다.”

    계획대로 풀려간다면 투자자들이 TV, 휴대폰, PDA 등 거미줄처럼 깔린 한경와우TV의 콘텐츠망을 통해 투자정보, 주식 거래, 재테크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류사장은 “먼 미래를 무대 삼아 꿈 같은 비전을 펼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한 푼의 매출이라도 더 올려 ‘이익을 내는 회사’로 자리를 굳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내년 하반기 코스닥 진입이라는 눈앞의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당장 돈을 못 벌고 경쟁력도 형편 없다면 거창한 비전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지금은 내일의 목표를 오늘의 현실로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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