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호

아이비리그 한국유학생의 新아메리칸 드림

  • 하태원 < 前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taedee99@yahoo.co.kr

    입력2005-04-11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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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아테네’라고 일컬어지는 보스턴 주민의 평균연령은 20대다. 100개가 넘는 대학과 200만명에 이르는 학생들 덕분에 도시전체가 늘 활기에 넘친다. 대한민국 영사관의 집계에 따르면 ‘新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곳을 찾은 한국유학생의 수가 2000여명에 이른다.
    보스턴은 미국의 ‘교육 수도(首都)’다.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해 터프스대, 보스턴대, 보스턴칼리지, 매사추세츠주립대 등 미국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100여개 대학이 밀집해 있다.

    살인적인 물가(物價)

    교육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보스턴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다. 미국 내에서도 세계경제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 신기술의 요람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물가가 비싼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보스턴에 처음 발을 내디딘 한국 유학생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세. 다운타운 보스턴은 논외로 하더라도 하버드대나 MIT가 있는 케임브리지 지역은 침실이 하나 딸린 아파트 월세가 1000∼1300달러(약 130만∼170만원). 한국의 원룸에 해당하는 스튜디오도 최소한 800달러(100만원)를 내야 구할 수 있다.

    현재 월세시세는 1998년 이후 매년 100달러씩 오른 금액으로 남부나 중서부 도시에 비하면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집세를 내야 하는 셈이다.



    그나마도 가을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는 월셋집이 품귀현상을 보여 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유학생을 쉽게 볼 수 있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에 셋집을 얻어 들어갈 때, 대개 석 달에서 넉 달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월세가 1000달러라면 첫달분, 마지막달분, 그리고 한달분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security deposit)을 더해 모두 3000달러를 집주인에게 한꺼번에 주어야 한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방을 얻을 경우에는 한달 월세와 동일한 금액의 소개료를 지불해야 한다. 보증금은 부동산 계약이 만료될 때 돌려주는데, 살던 집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 수리비 명목으로 일부를 공제한다.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고, 온수와 난방시설 이용비가 집세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보스턴 터프스대에 있는 외교안보 전문대학원인 플레처스쿨에서 공부하기 위해 6월11일 보스턴에 도착한 김정기(金正基·32)씨는 10일간 보스턴 시내를 샅샅이 뒤진 끝에 두 개의 침실이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미국에도 이삿짐을 운반해 주는 이삿짐 센터가 있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트럭이나 밴 등을 빌린 뒤 손수 운전해 이삿짐을 운반한다. 한국 유학생들은 이삿짐을 꾸리거나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 서로 품앗이를 해준다.

    1.5t 트럭을 빌리는 경우 대여료는 20달러(2만6000원)밖에 들지 않지만, 이동거리와 보험료 그리고 주행에 따른 연료비 등을 고려하면 한 번 이사하는데 70∼80달러(약 9만∼10만원)를 지불하는 셈이다.

    김정기씨는 7월1일부터 터프스대에서 마련한 ‘외국유학생을 위한 여름학교’ 수업을 듣고 있다. 김씨와 같은 반에는 이탈리아, 터키, 알바니아, 인도네시아, 일본에서 온 대학원생 8명이 함께 수강중이다.

    이 수업에서는 일반적인 회화교육뿐 아니라 미국 대학원 수준에서 요구하는 리포트와 논문작성법, 미국강의 적응요령, 교재학습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김씨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으로서 미국생활 첫해는 영어라는 언어장벽을 극복하는 시간으로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어와의 힘겨운 싸움

    1992년 뉴욕주 코넬대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주희(金株希·35·여)씨에게 유학생활 첫해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김씨는 “강의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된 나머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회고한다.

    하버드대 화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상균(金相均·28)씨는 “박사과정 학생은 학부생을 상대로 강의해야한다”는 화학과의 규정 덕에 비교적 빠른 시일에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다.

    김씨는 “처음에 강단에 섰을 때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두려웠지만 ‘선생님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자신있게’ 강의를 이끌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머뭇거리거나 쭈뼛거리는 태도보다는 실수가 있더라도 자신있고 명확하게 말하다 보니 어느새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는 설명.

    서울대 제어계측과에서 석사를 마친 뒤 1992년에 유학생활을 시작해 이제는 텍사스 A&M 대학교 기계과 교수가 된 김원종(金元鍾·35)씨는 “교수가 되어서 한국학생을 보니 무엇인가 자신 없어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며 “그런 태도를 빨리 떨쳐버린다면 언어장벽도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듣기 훈련엔 역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자주 듣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유학생들의 한결같은 지적.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어를 귀로만 듣지 않고 입으로 따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잠잘 때도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영어방송을 틀어놓으면 영어로 꿈을 꾸는 횟수가 늘어나고 잠결에도 영어방송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귀가 뚫렸다’는 것은 이 단계를 의미한다.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적응기간이 지나면 유학생들은 미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의 취미활동이나 클럽활동에 눈을 돌리게 된다.

    서부의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을 공부한 뒤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MIT 경영대학원에서 파이낸스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채준(蔡濬·34)씨는 주말이면 학교 동료들과 축구를 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창립 당시엔 한국인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외국 친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다국적 축구클럽이 되었다.

    김주희씨는 코넬대학에서 공부할 때 카약, 요트, 등산 등의 스포츠활동을 주로 하는 ‘아우팅클럽’에서 활동하면서 미국문화에 적응을 높였다.

    미국 대학 특유의 게시판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미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미국 대학의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무빙세일’이다.

    문자 그대로 학위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미국인이나, 본국으로 귀국하는 외국인들이 이사를 앞두고 사용하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것. 덩치가 큰 승용차나 침대, 장, 책상에서부터 옷걸이, 숟가락, 접시 등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예상치 못한 이유로 급거 귀국하는 경우 급매물도 종종 나오고, 운이 좋으면 쓸 만한 물건을 공짜에 가까운 헐값에 얻을 수도 있다.

    종교를 가진 유학생들은 일요일에는 사찰·성당·교회 등 종교시설을 찾는다. 유학생들에게 종교시설은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본래의 의미 이외에 한국인들간의 교류와 친교의 장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내포한다.

    7월8일 보스턴 근교 웨이크필드에 있는 한국사찰 ‘문수사’에서는 청년부의 공양(供養)이 있었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공양’을 위해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청년부 15명은 7일 오후부터 문수사에 모여 김밥과 메밀국수, 팥빙수 등의 재료를 준비했다.

    8일 문수사에 다시 모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 처녀가 주류를 이룬 탓인지 익숙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에서 60여 명의 문수사 신도들에게 급식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유학생들은 몸은 보스턴에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한국에서 비교적 최근에 떠나온 유학생은 가장 최근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죄(?) 때문에 한국 국내사정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브리핑을 도맡아 해야 한다.

    여자 유학생들의 경우는 연예계 소식과 한국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다. 보스턴에는 한국 비디오가게가 서너 곳 있는데,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한 달 정도의 시간차이를 두고 유학생들에게 배포된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9월부터 매켄지 서울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황민하(黃珉夏·28)씨도 매주 성당에 다니면서 밴드활동도 하고 아이들을 위한 미사시간에 전자기타를 치면서 반주를 해주는 등 성당을 신앙활동 외에 취미활동 장소로 적극 활용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유학을 오는 사람의 대부분이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교수로서 강단에 서기 위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면, 1990년대에 들어와선 유학생들의 목표가 다양해졌다.

    새로운 변화의 주류는 역시 ‘프로페셔널 스쿨’에 진학해 자신의 전문지식을 쌓아 거액의 연봉을 꿈꾸는 유학생들이다. 이들 중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한국의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 보스턴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한국유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유학생활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유학생들의 미국에서의 생활과 사교의 범위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같은 비즈니스스쿨에 다니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교단에 서기 위해 박사수업을 듣는 학생은 생활의 장이 주로 학교와 집인 경우가 많고, 친교의 범위도 지도교수와 박사과정에 있는 동료 정도로 한정된다.

    하지만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NBA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에 매우 민감하다. 미국 기업이나 연구소의 일자리를 찾는 학생들은 취업박람회를 찾아 다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언론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유학생활을 하는 언론인이나 개인회사의 지원을 받아 유학생활을 하는 비즈니스맨의 경우는 공부 인맥을 형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미국의 여러 대학에 공부하러 온 한국의 교수나 정부 요인들과도 많은 교류를 통해 튼튼한 인맥을 쌓는 장으로도 활용된다.

    이공계 학생들은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실무경험을 통한 전문성 확보와 연구성과를 얻기 위해 박사후과정(post doc)으로 학교에 남는 경우가 많다.

    박사후 과정자들에게는 학교에서 연구비를 제외하고 2만∼3만달러(약 2600만∼3900만원)를 월급으로 지급하지만 대부분의 박사후 과정자들은 이 기간을 교수직이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기간으로 활용한다.

    보스턴대에서 병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9월부터 하버드대 단백질체학 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을 시작하는 박재홍(朴宰弘·31)씨는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생명공학관련 연구에 매진하면서 한국의 교단이나 미국에 있는 연구소 등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겠다는 유학생 수가 급증하는 것도 최근 10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

    미국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유학생 수가 크게 늘어나는 배경에는 한국에서 계속되는 경기불안에 따른 고용 불안정, 근로강도에 비해 적은 임금 등이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날로 가열되는 입시교육의 폐해, 영어권 교육선호 등이 겹치면서 ‘가능하다면’ 미국에서 일자리를 갖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해 8월부터 텍사스 A&M 대학교 기계과 교수로 활약하는 김원종씨는 학업성취와 일자리를 한꺼번에 찾은 경우다.

    부인도 보스턴음대 피아노반주과 박사학위를 갖고 있어 박사부부이기도 한 김교수는 “미국에서 일하기를 선호했다고 하기보다는 미국의 교단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라며 “교수선발에 있어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 공정하지 않은 관행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분자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박홍근(32)씨와 외교통상부의 인사관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해 파문을 일으켰던 이장춘(李長春) 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의 아들 이성윤(33)씨 역시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각각 하버드대 화학과와 터프스대 플레처스쿨에서 교수로 활동중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1998년 미국에 건너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듀크대에서 MBA 과정을 마친 김하늘(29)씨도 한국행을 택하기보다는 미국에서 직장을 택한 경우다.

    지난해 7월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취직해 인사관리파트에서 일하는 김씨의 연봉은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김씨의 경우 가능하면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계속해 영주권을 받을 생각이다.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유학생이 늘면서 국내학계와 기업에서는 고급인력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대학교 공과대 컴퓨터공학부는 전산과학을 전공한 교수 2∼3명을 신규 임용하기 위해 해외에서 활동중인 ‘고급 두뇌’에게 임용제안서를 보내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영입에 실패했다.

    자연대 생명공학부 역시 지난해 8월 유전자 정보 분석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유학파 모박사의 전임교수 임용에 실패했고, 자연대 화학부도 외국에서 공부한 한국인 교수들에게 의사를 타진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국제교육진흥원의 통계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지난해 국비유학생 중 5% 정도가 당초 계약과는 달리 유학기간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현지 정착하고 있으며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황민하씨는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한국에서 교수직이 갖는 명예를 생각하더라도 열악한 연구시설과 투자환경, 턱없이 낮은 급여수준과 불만족스러운 처우 등을 생각하면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대생의 경우 한국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보수나 장래성 면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것이 보스턴 지역 유학생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경기가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에 미국기업들이 외국인에게 취업의 문을 크게 열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인을 고용하면 회사는 미국 이민국에 방대한 양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해당 외국인에 대한 취업비자(H-1) 발급을 의뢰하기 위해서는 회사측에서 신문에 구인광고를 내 해당 외국인이 적격자임이 입증되었다는 것을 이민국에 증명해야만 비자가 발급된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은 채용할 외국인이 회사운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외국인에 대한 고용을 꺼린다.

    또한 취업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직장에서 해고된 뒤 1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기 때문에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영주권을 취득해야 한다.

    만물의 이치에 따르면 양지가 있으면 반드시 음지가 있는 법. 저마다 나름의 큰 포부를 갖고 유학생활을 시작하지만 유학생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성공담에 비해 실패담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속성 때문에 유학생활에 실패한 이야기가 잘 회자(膾炙)되지 않을 뿐이지 유학생활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극단적으로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경우는 물론, 논문심사 이전 단계인 박사학위 인정시험을 제한된 기간에 통과하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석사학위를 받고 유학생활을 마치면 모르겠지만 박사학위에 도전하려면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의 ‘인고의 세월’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수재(秀才)란 소리를 들으면서 공부했지만 유학생활중에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얼마든지 발견할 것이고, 4년, 5년씩 공부하는 동안 고교시절 동창이나 대학시절 친구들이 기반을 잡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괴로워한다.

    이같은 장기 레이스에서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침체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서부의 남가주대(USC)에서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임윤석(林倫奭·29)씨는 “일반적으로 끈기있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인 유학생활에는 유리하다”며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스스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논문을 못 쓰는 한국인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미국 사회에서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전문영역을 갖는 것이 필수다. 학교에서 박사과정에 남아 연구할 때나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자신만의 독특한 학문적 업적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을 가지려고 해도 남들이 침해할 수 없는 전문영역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원주민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인보다 10배, 100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텍사스 A&M대 김원종 교수는 “미국사회의 장점 중 하나가 남들이 갖지 못한 기술이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차별 없이 인정해주고 존경을 표하는 것”이라며 “성공적인 유학은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과성적은 좋지만 논문을 못 쓰는 한국인.’

    박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의 교단에 서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채준씨는 미국 학교가 한국인에게 갖고 있는 인상을 이같이 표현했다.

    10여 년의 유학생활을 한 채씨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학생들은 공부가 좋아서 유학을 오기보다는 성적이 좋고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유학을 결심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학생들은 졸업 후 월스트리트로 가고, 대학원에서 박사공부까지 하는 학생들은 정말로 공부를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 채씨는 “논문은 5년 내지 10년의 공부를 총정리해 만들어내는 결과물인데 한국학생들은 어려운 고비나 결단의 순간에 모티베이션에서 미국 학생들에게 뒤지는 모습을 보인 결과 이런 인상을 남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금 이 순간 유학을 결심하고 있다면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보스턴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유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던지는 충고다.

    2001 미국 대학순위 20

    1. 프린스턴대(Princeton University) /소재지: 뉴저지

    2. 하버드대(Harvard University) /소재지:매사추세츠

    3. 예일대(Yale University) /소재지:코네티컷

    4. 캘리포니아공대(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소재지:캘리포니아

    5. 매사추세츠공대(Massachusetts Inst. of Technology) /소재지:매사추세츠

    6.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 /소재지:캘리포니아

    6.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 /소재지:펜실베이니아

    8. 듀크대(Duke University) /소재지:노스캐롤라이나

    9. 다트머스대(Dartmouth College) /소재지:뉴햄프셔

    10. 컬럼비아대(Columbia University) /소재지:뉴욕

    10. 코넬대(Cornell University) /소재지:뉴욕

    10. 시카고대(University of Chicago) /소재지:일리노이

    13. 노스웨스턴대(Northwestern University) /소재지:일리노이

    13. 라이스대(Rice University) /소재지:텍사스

    15. 브라운대(Brown University) /소재지:로드아일랜드

    15. 존스홉킨스대(Johns Hopkins University) /소재지:메릴랜드

    15. 워싱턴대(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소재지:일리노이

    18. 에머리대(Emory University) /소재지:조지아

    19. 노틀담대(University of Notre Dame) /소재지:인디애나

    20. UC 버클리대(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소재지:캘리포니아

    20. 버지니아대(University of Virginia) /소재지:버지니아

    “명확한 목표를 갖고 끝없이 도전하라”

    ▶ 세계적 컨설팅그룹 매켄지에 취직한 황민하씨

    < “소란스럽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어야…” >

    “한국유학생은 말이 적고 수줍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유학생활에서 성공하려면 한국사람 기준으로 보면 좀 소란스럽다고 할 정도의 적극성이 중요합니다.”

    지난 6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재료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9월부터 매켄지 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황민하(黃珉夏·28)씨는 “미국 유학생활에는 발품 팔기를 좋아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유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씨는 “미국인, 특히 동부의 보스턴 사람은 수줍고 과묵한 동양인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만큼 관대하지 않다”며 “스스로 먼저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화제에도 관심을 보이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1991년에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한 황씨는 1년의 대학생활을 보낸 뒤 유학을 결심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는 황씨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말했다.

    병역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중간에 학업을 지속하는 데 지장이 있으리라고 판단해 학부를 3년 만에 마치고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

    군대에서 미국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GRE(Graduation Record Examination)와 TOEFL(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을 착실히 준비해 1996년에 MIT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

    아이비리그 학교 중 하나인 미국 코넬대에서도 장학금을 포함한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장래를 생각해 장학금 수혜가 없는 MIT를 선택했다는 황씨는 “MIT는 대학 시절의 평균학점과 교수님의 추천, 그리고 학업계획서(SOP)를 학생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는 맨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의 목표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성취한 목표가 크게 달라졌다.

    “학부생의 눈으로 바라본 교수와 대학원생의 시각에서 느낀 교수의 위치는 많이 다르더군요. 교수로 성공한다는 의미는 단순한 아카데미즘의 추구만이 아니라 매니지먼트에서의 성공을 내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자의 길이 아닌 컨설턴트의 길을 택한 황씨의 ‘변명’이다.

    6년간의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취업한 황씨는 미국생활에서 보고 느낀 점을 기업문화에 반영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황씨는 “미국문화를 맹목적으로 숭배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문화에 발전시킬 수 있고, 기업의 의사결정이나 업무추진에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를 한국의 기업에 접목시킬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학을 꿈꾸고 있거나 이미 유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선험자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는 황씨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가 왜 유학생활을 하는지, 유학생활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대해 항상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경야독하며 프로페셔널을 꿈꾸는 김주희씨

    < 나를 알려라, 그리고 끝없이 도전하라 >

    미국 코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주희(金株希·35·여)씨는 자수성가한 유학생의 전형이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1년간 전문대에서 유급조교 생활을 한 뒤 1992년부터 시작한 유학생활 내내 학교와 직장을 오가면서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사실 10년이 다 되는 세월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김씨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직면한 상황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내 묵묵히 실천에 옮긴 것이 지금까지 꾸려온 미국생활의 전부”라고 말했다.

    김씨는 보통 사람들이 2년에 마치는 석사과정을 3년간 수학했다. 2년의 석사과정을 통해 실험분야에 적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1년간 통계학과 데이터베이스 관리 등에 대한 분야를 보강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1년의 투자가 헛되지 않아 학교부설 연구실에서 미국 내 ‘저소득 시민들에 대한 급식제공’ 프로그램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연구소에서 1년여의 실무경험을 쌓은 김씨는 이어 1995년 가을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 지망했다. 지망과정에서 김씨는 하버드대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 장래의 지도교수를 미리 찾아가 입학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조금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지도교수와 입학사정위원들을 찾아가 탈락 이유와 어떻게 하면 다음에 입학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는 김씨는 “나중에 입학허가를 받은 뒤 교수들로부터 ‘적극성과 대담성을 높이 샀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입학이 좌절됐지만 김씨는 1996년 하버드대 메디컬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곳에서 김씨는 미국 내 흑인여성들의 비만에 관한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했다.

    자신을 가난한 유학생이라고 지칭하는 김씨는 학비의 절반은 장학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충당하고 있다.

    9년간의 유학생활을 통해 미국생활에 익숙해진 김씨에게도 유학생활이 낯선 시기가 있었다. 미국 유학생이라면 다 그렇지만 처음 1년은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하는 김씨는 “특히 언어장벽에 대한 부담은 처음 1년간의 생활을 어렵게 한 주 요인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바다 건너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격려하고 채찍질했습니다.

    김씨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미국사회는 기본적으로 내가 일하고 노력해 얻어낸 성과를 인정해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미국사회에서 당당히 자리잡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 하버드대 한인회장 정유선씨

    < 미국생활수칙 1조, 스스로 찾아 먹어라 >

    “미국 생활에서는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사람이 더 빨리 적응하는 것 같아요. 좀 거친 표현이지만 스스로 찾아먹을 줄 아는 것이 미국 생활수칙 1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300여 명의 한국인 학생들의 친목단체인 하버드 한인회 회장을 지낸 정유선(鄭有善·29·여)씨는 “혼자서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활용하고 그것을 빨리 소화해내는 것이 효과적인 미국생활 적응의 왕도”라고 말했다.

    인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정씨는 “미국 유학생 중 특히 하버드에 오는 학생들에게는 ‘하버드 서포트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이용하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시스템은 대학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인 논문작성법을 도와주고 책을 빠르게 읽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 강의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모니터하고 조언해주는 기구 등 외국학생들의 학교적응을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심지어 한국의 1 대 1 영어말하기 훈련과 비슷한 ‘랭귀지 파트너‘ 제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

    197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하버드 한인회는 학부생을 제외한 대학원생이 중심이 된 사교모임이다.

    1년에 네 차례의 정기모임을 통해 유학생들끼리 정보교류를 하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과는 매년 정기 체육대회를 연다.

    정씨는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입생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유학생활에서 오는 고민을 상담해주는 기능도 한인회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라고 말했다.

    유학생활을 통해 경험하는 문화적인 충격이나, 언어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겪는 고충 등이 주요한 상담거리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처음 1년은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인고에 세월을 보내야 하는 시기.

    정씨는 “한국유학생 대부분이 한동안 영어 때문에 어려운 시간을 보낸다”면서 “드물지만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을 위한 영어는 물론 학교 수업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강의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교수의 강의를 녹음해 녹음내용을 다시 들어가면서 강의내용을 따라가는 학생도 있다.

    정씨는 “후배들의 고충에 대한 상담이 항상 정답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인터넷에 전용 홈페이지(http://www.harvardkorea.org)를 만들어 잠재적인 하버드대 지망생들에 대한 상담도 수행하고 있다.

    장학금에 대한 상담기구도 적극 활용해볼 만하다는 정씨는 “하버드 대학의 경우 외부에서 기부하는 장학금이 많고 학교의 재정상황이 탄탄하므로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이 어느 정도 이상의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로스쿨이나 디자인스쿨, 메디컬스쿨, 케네디스쿨과 같은 프로페셔널 스쿨의 경우 장학금 수혜의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동유럽의 불가리아를 전공하고 있는 정씨는 오는 10월 현지조사연구를 위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교환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체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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