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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시장의 갈등, 표류하는 DJ

지식인 21명의 진단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국가와 시장의 갈등, 표류하는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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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이 촉발한 ‘사회주의 논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의장은 7월31일 인터넷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권의 정책에 대해 본격적인 이념공세를 폈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이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시장기능을 가미한 것”이라고 말한 뒤 전교조 등을 사회주의적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김의장은 최근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을 “정육점 주인이 하는 심장수술”이라고까지 비하했다.

한 가지 관심을 끄는 대목은 김의장의 발언 이후 지식인 사회에서 김대중 정권의 이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는 점이다. 물론 지식인들 가운데 드러내놓고 김대중 정권을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당수 지식인들이 비판의 근거로 삼는 이념은 ‘사회주의’보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에 가깝다.

사회주의 vs 사민주의

고전적 의미의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며 계획적인 생산과 분배를 주장한다. 이에 비해 사민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공산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에서 사회민주당이 등장한 이후 수정마르크스주의를 뜻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서유럽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경제 정책을 통틀어 사민주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인터뷰에 응한 지식인의 상당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김대중 정권의 정책을 사회주의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김의장의 발언을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으로 평가했다. 서교수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김만제씨 눈으로는 유럽의 ‘제3의 길’도 극좌로 보이는 모양이다. 한국의 냉전적 이념지형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김의장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구별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김교수는 “김대중 정권의 일부 정책들이 사민주의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회주의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따지면 서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이, 예컨대 독일 프랑스 영국 스웨덴도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고려한 일종의 정치공세로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김석준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김의장의 발언에 일정 부분 공감을 나타냈다. 김교수는 “김의장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했다. 김대통령은 영국에 체류할 때부터 ‘제3의 길’을 주장한 기든스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그때 이미 정책의 기본방향을 그쪽으로 정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주의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나름대로 근거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주의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김의장이 DJ정책의 사민주의적(또는 복지주의적) 지향을 사회주의라고 비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이념인데, 김대중 정부가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에 모순과 혼란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유교수는 DJ정부에 참여한 많은 지식인들이 이념적 틀로 제시한 ‘제3의 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영국 노동당이 신자유주의로 변신하기 위해 사용한 ‘레토릭’일 뿐이다. 영국의 ‘제3의 길’도 두 가지를 혼합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토니 블레어가 국민을 설득하려고 사용한 수사에 불과하다. 유럽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지식인들은 이런 해석에 모두 공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이것을 헷갈리고 있다.”

유승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과 안석교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김의장의 사회주의 발언과 관련, “적절한 용어를 선택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DJ정책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김의장이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바람에 문제가 복잡해졌는데, 개념이 딱 맞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DJ정책에는 사회주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국가주의, 박정희식 경제논리, 관치경제 등이 뒤섞여 있는데, 그것을 사회주의로 묶어서 얘기하기는 힘들다.”(유승민)

“김만제씨는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와 특정한 정책이 시장경제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자는 주5일근무제, 후자는 사립학교법이 해당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비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사회주의로 잘못 쓴 것이다. 또한 후자는, 상위가치인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사회주의적 정책도 도입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안석교)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의장의 논리적 비약을 지적했다. 손교수는 “말이 안 된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제1야당 정책위의장이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김대중 정권의 국가개입이 좌익이고 사회주의적이라면 김만제씨가 일했던 박정희 정권은 공산주의란 말인가? 아무리 색깔론이라지만 정말 유치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성훈 전농림부장관은 김의장의 발언을 진부한 ‘색깔론’으로,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논리’라고 꼬집었다.

“김만제씨 스스로 경제학자임을 부정하는 행태다. 덜 성숙한 학자가 정치를 했을 때 성격파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며칠 전 ‘시민의 신문’이 동물원에 간 김만제씨를 풍자한 것을 보았다.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것을 보고 김만제씨가 ‘여기도 빨갱이가 있구나’ 하고 외치는 그림이었다. 이번 상황에 딱 어울리는 것 같다.”(김성훈)

“야당이 독한 말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차원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정부 정책을 흠집 내서 차기 집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정치논리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에서 김만제씨가 했던 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정책은 크게 봐서 다를 게 없다. 결국 김만제씨의 주장은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는 천박한 논리다.”(이필상)

인터뷰에 응한 지식인 가운데 김의장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 사람은 민병균 전경련 자유기업원장 1명뿐이었다. 민원장은 “구구절절 맞는 얘기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이나 재벌 빅딜 등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정책은 소유권과 운영권을 부정하고 자유시장경제의 권위를 공격하는 논리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펼치는 법개정 운동에는 다분히 좌익적 요소가 있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수년간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본태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통일외교분과 부위원장(현 한나라당 경기 김포시 지구당위원장)도 심정적으로는 김의장의 발언에 동의했다. 구부위원장은 “한 정치인의 우려 정도로 평가하고 싶다. 김대중 정부는 사회 저변층의 목소리를 확대하고 노동자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왔다. 이 과정에 새로운 사회계약의 틀이 짜이고 있는데, 여기에 자칫 친북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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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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