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호

大洋해군의 비밀병기 6·6 함대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입력2005-03-23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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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부 이지스 구축함과 기동함대 건설
    • 제 2부 잠수함대 건설과 항공 세력의 확충
    • 인터뷰 | 장정길 해군참모총장
    • 한국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에 비해 구축함 수 3 대 38, 해상 초계기 수 8 대 100, 잠수함 수 9 대 17로 현저히 뒤지고 있다. 전투지수 비교에서 일본 해자대의 23%에 불과한 것이 한국 해군의 현황이다. 이러한 전력으로는 해양주권을 수호할 수 없다. 그래서 시급한 것이, 세종대왕급 항공모함과 충무공급 이지스함, 문무대왕급 대형 구축함을 주축으로 한 기동함대 창설과 3000t급 중잠수함, 1800t급의 KSS-Ⅱ 잠수함, 1200t급의 장보고급 잠수함으로 구성된 잠수함대의 건설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으로 꼽히는 조선의 이순신과 영국의 넬슨은 일본과 프랑스 함대를 맞아 완승을 눈앞에 둔 결전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순신과 넬슨 시대의 해군은 하나같이 수상함만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현대 해군 전력은 수상함과 잠수함과 항공기로 구성된다. 수상·수중·항공 세력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현대 해군인 것이다. 이러한 3개 세력 중에서 핵심은 물론 수상세력이다.

    미국 해군은 세계 해군의 교과서다. 미 해군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주요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발전해왔다. 미 해군 역사에는 세계 역사가 녹아 있다. 따라서 주요 국가들은 미국 해군을 모델 삼아 그들의 해군을 발전시키고 있다. 미국 해군 역사에는 있는데 그들에게는 없는 것을 찾아내, 그들에게 맞는 규모로 만들어 가는 것이 주요 국가의 해군 육성책인 것이다. 우리 역시 미 해군과 우리 해군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옹골찬 해군을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수상세력이란 함정을 말한다. 여기에는 항공모함·순양함·구축함·호위함·초계함·고속정이 있다.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것은 항모다. 항모는 해군력을 구성하는 3대 핵심 세력 중의 하나인 항공 세력을 싣고 다녀, 영어로는 (aircraft) carrier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약호를 CV로 적는데, CV는 디젤 엔진으로 추진되는 재래식 항모를 뜻한다.

    디젤유를 연소시키면 연소가스가 발생한다. CV는 덩치가 크므로 발생하는 연소가스도 많아 거대한 굴뚝이 필요하다. CV가 갑판 위로 거대한 굴뚝을 내놓고 있으면 그만큼 항공기들이 이·착함하는 공간이 적어진다. 또 CV는 디젤유를 저장하는 거대한 저장 탱크를 갖고 있어야 하고, 수시로 군수지원함이 다가와 디젤유를 보급해 줘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세계 최강 니미츠급 항모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미국은 원자력 에너지로 기동하는 핵추진 항모를 만들었다. 원자로는 배기가스를 전혀 발생하지 않으니 굴뚝이 필요없다. 연료도 수년에 한 번 교체하니 군수지원함의 왕래도 현저히 줄어든다. 이러한 항모는 핵을 뜻하는 nuclear를 붙여 CVN이라고 한다. 미 해군은 핵추진 항모를 아홉 척, 재래식 항모를 세 척 갖고 있다. 12척의 항모를 여섯 개 함대에 순환 배치하는데, 한반도를 작전수역으로 하는 7함대에는 현재 재래식 항모인 키티호크가 배치돼 있다.

    미 해군이 보유한 최초의 항모는 1922년 3월22일 취역한 랭글리(Langley)였다. 미 해군은 이 항모에 함번(艦番) 1번을 부여했다. 미 해군이 최초로 건조한 항모에 함번 1번을 부여한 것은, 그만큼 항모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이후 미 해군은 새로 건조한 항모에 2-3-4번을 붙여와, 현재는 제40대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딴 76번 ‘로널드 레이건’함을 건조하고 있다. 미 해군은 68번 니미츠함부터 76번 로널드 레이건함까지를 ‘니미츠급 항모’로 통칭한다. 니미츠는 무엇인가?

    니미츠(Chester Nimitz)는 태평양전쟁 당시 야마모토 이로소쿠(山本五十六)가 이끄는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와 싸워 이긴 미 해군 제독(원수)이다. 일본 시각으로 1941년 12월8일 오전 3시15분 일본은 유럽전쟁(2차 세계대전)과 별도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니, 바로 태평양전쟁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태평양을 ‘태평양’과 ‘남서태평양’ 전구(戰區: theater)로 나눠 일본군에 맞섰다. 태평양전구 총사령관에는 니미츠 해군 원수, 남서태평양전구 총사령관에는 맥아더 육군 원수가 임명되었다.

    니미츠와 맥아더는 경쟁적으로 일본군을 무찔렀는데, 중요한 승리를 더 많이 엮어낸 것은 니미츠였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자 니미츠와 맥아더는 ‘누가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돼, 일본으로부터 항복받을 것인가’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신경전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다섯 살 연장인 맥아더를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지명함으로써 끝이 났다. 9월2일 그로 인해 맥아더 원수는 미주리 함상에서 일본 외상으로부터 항복문서에 서명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니미츠 원수는 미국을 대표해 일본의 항복을 받는 데 만족했다.

    이로써 맥아더 원수는 일본에 주둔하며 새롭게 편제된 미 극동군 총사령관을 함께 맡았다. 그러다 5년 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나자 참전해, 한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극동군 총사령부는 한국군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 후신이 지금 서울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다. 미군은 한국군이 육군 위주로 발전하도록 유도했다. 만약 니미츠가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고 극동군 총사령관이 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해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발상을 하곤 한다.

    ‘니미츠 원수가 6·25전쟁에 참전하고 그 연장선에서 한미연합사가 생겨났다면, 한국은 일찌감치 바다와 해군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해군을 가졌을 것이다. 맥아더가 극동군 총사령관이 된 것은 한국 해군에게는 불행이었다.’

    미 해군이 보유한 항모는 재래식이든 핵추진이든 관계없이,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8만∼10만t). 이러한 항모에는 1개 전투비행단 규모인 70∼90대의 전투기가 탑재된다. 따라서 운영비도 엄청나서, 웬만한 나라는 거저 준다고 해도 꾸려가지 못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영국·프랑스 등 중규모 강국은 3만t급 내외의 경(輕)항모를 만들었다. 이러한 항모는 활주로가 짧아 해리어기처럼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함하는 전투기를 싣는다. 이러한 항모를 CVH(단거리 및 수직이착륙기용 항모) 혹은 CVL(경항모)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CVH는 영국 해군이 보유한 인빈셔블함이다. 한국과 영국은 인구나 국토 면적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현재는 영국의 국민총생산(GNP)이 한국보다 많지만, 2010년이면 한국은 지금 영국 정도의 국민총생산을 올릴 수 있다. 배를 설계해서 건조하는 데까지는 대개 10∼15년이 필요하다.

    때문에 상당수의 전략가들은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수직이착륙기용 항모나 경항모 건조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이 보유하게 되는 첫 번째 항모는 ‘세종대왕함’으로 명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해군은 “항모 도입계획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세종대왕함’ 같은 이름은 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지 해군에서 명명한 이름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항모는 엄청난 공격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적으로부터는 첫 번째 타격 목표가 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적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쏴서라도 항모 격침을 시도할 것이다(그러나 항모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ICBM으로 맞히기는 어렵다. ICBM은 지상에 있는 고정 목표물 타격에 주로 사용된다). ICBM이 없다면 전투기를 가미카제(神風)식으로 돌진시켜 격침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항모는 대부분의 갑판을 활주로로 쓰기 때문에, 함포다운 함포나 미사일을 장착하지 못하고 있다. 공격력에 비해 방어력이 크게 약한 것은 항모가 가진 큰 약점이다.

    따라서 항모 곁에는 가미카제식으로 덤벼드는 적의 공격을 제압하는 중무장한 군함이 있어야 한다. 작전에 들어간 항모는 초대형 태풍이 몰아쳐도 피항(避港)하지 않으므로, 호위 함정 역시 초대형 태풍을 견뎌야 한다. 초대형 태풍을 이겨내려면 함정은 최소 3000t급 이상이어야 한다. 항모를 호위하는 함정 중에 가장 큰 것이 순양함인데, 순양함은 대개 8000t급 이상이다. 순양함은 영어로 cruiser라, 영어 약호는 C로 표기한다. 순양함에는 구경 5인치(127㎜) 이상의 함포가 장착된다.

    가미카제와 이지스함

    순양함에는 ‘토마호크’처럼 지상에 있는 적의 전략시설을 공격하는 대지(對地) 공격용 크루즈 미사일, ‘하푼’ 따위의 적 함정를 공격하는 대함 미사일, 적 전투기와 미사일을 100㎞ 바깥에서 격추시키는 ‘SM-2’ 같은 중거리 대공 미사일이 장착된다. 이러한 미사일 중에 중거리 대공 미사일은 정밀 유도(guided)가 요구되는데, 이러한 유도 미사일을 탑재한 순양함은 CG로 표기한다. 순양함은 덩치가 큰 만큼 대부분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싣고 있어, CG로 표기된다. 디젤엔진이 아니라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되는 순양함은 CGN이다.

    중무장 순양함은 항모 호위뿐만 아니라, 단독이나 구축함대를 이끌고 위험 수역에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항모 호위에서 단독 작전까지 모든 전투 임무를 거침없이 수행하므로 이 함정을 순양함(巡洋艦·cruiser)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순양함에도 약점은 있다. 전투기들이 순양함에서 쏘아대는 함포와 미사일을 요리조리 피하며 가미카제(神風)식으로 새카맣게 덤벼들고 동시에 미사일까지 떼로 날아오면 피할 방책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질(質)이 아니라 양(量)으로 덤벼들면 그중 하나는 순양함을 폭파시킬지도 모른다.

    태평양전쟁 말기 실제로 미 해군은 새카맣게 덤벼드는 일본 해군의 가미카제 전투기 때문에 적잖은 함정을 잃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미 해군은 떼로 덤벼드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막는 방법 연구에 들어갔다. 새카맣게 덤비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고성능 레이더와 슈퍼 컴퓨터 그리고 함정 내의 각종 무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화력통제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 시스템은 함정에 가장 근접한 적기나 미사일을 순식간에 골라내, 적절한 무기를 발사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 다음 목표를 골라 준비된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한 개의 표적을 놓고 함포와 미사일을 중복 발사하는 낭비가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왕 제우스는 그의 딸 아테네에게 어떠한 창과 화살도 뚫을 수 없는 ‘이지스(Aegis)’라는 이름의 방패를 주었다고 한다. 1973년 미 해군은 적기 100대가 공격해 와도 헷갈리지 않고 막아낼 수 있는 화력통제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이지스(Aegis) 체제’로 명명했다. 미 해군은 이 시스템을 노던 사운드함에 장착해 처음 시험운용함으로써 철벽 대공 체제가 개발됐음을 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하늘만 막는 방패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항공 공격이 막히면 적은 가미카제 공격과 동시에 수상함·잠수함까지 동원해 하늘과 수상과 수중에서 동시다발로 항모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대공(對空)과 대함(對艦)과 대잠(對潛)작전을 동시에 실시할 수 있도록 이지스 체제를 개량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이지스 체제를 순양함인 벙커힐(CG 52)·프린스턴(CG 59)·초신(CG 65)함 등에 탑재했다. 이지스 체제 순양함이 탄생한 것이다.

    순양함 초신함과 6·25전쟁

    미 해군이 개발한 첫 번째 이지스 순양함인 초신(Chosin)함은 6·25전쟁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함경남도 장진군에는 장진(長津)강을 막아서 만든 장진호라는 인공호수가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반전된 1950년 11월24일, 맥아더 원수는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며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미 해병대 1사단이 장진호 쪽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때 이미 중국의 인민지원군 9병단이 몰래 장진호 일대에 들어와 있었다. 9병단은 미 해병대 1사단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도록 허용한 후 크게 포위해 공격했다. 당시 장진호 일대는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혹한이었다.

    뒤늦게 사지(死地)에 들어왔음을 안 미 해병대 1사단은 방향을 바꿔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사적으로 포위 추적하는 중공군과 매서운 추위, 그리고 엄혹한 굶주림 속에서 상당수 대원을 잃고 간신히 흥남으로 빠져 나왔다. 이날 이후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에서 가장 무서운 전투로 회자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서는 장진호 전투에 대한 수기(手記)가 쏟아지고,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 모임인 ‘초신 퓨(Chosin Few)’라는 단체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장진(長津)을 일본어로 읽으면 ‘초신(ちょうしん)’이 된다. 6·25전쟁 때 한국에는 변변한 지도조차 없었다. 당시의 지도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만든 것뿐이었다. 미군은 일본인이 만든 지도를 구해, 일어를 영어로 바꿔 적은 후 사용했다. 그래서 미군은 장진을 초신으로 알았던 것이다. 미군에는 혹독했던 전쟁터를 함정 이름으로 붙이는 전통이 있다. 이런 이유로 미 해군은 1989년 진수한 순양함(CG 65)을 ‘초신’으로 명명했다.

    초신을 비롯한 세 함정은 모두 신형인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급 순양함이다. 이후 신조함(新造艦)은 물론이고 기존의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까지도 이지스함으로 개조했다. 현재 미 해군은 이지스 체제의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을 20척 갖고 있다.

    순양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해군뿐이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이지스 순양함이 없다. 이지스 순양함은 오직 미 해군만 갖고 있다.

    순양함보다 작은 군함이 구축함이다. 잠수함을 다루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설명하겠지만, 항모에 가장 위험한 세력은 가미카제 전투기가 아니라 잠수함이다. 따라서 항모전단에는 전문적으로 대잠(對潛) 작전을 하는 함정이 따라붙는데, 이것이 바로 구축함이다. 잠수함을 발견해 쫓거나 공격하는 것이 주임무여서 영미 국가는 이 함정을 destroyer로 명명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를 ‘(잠수함을) 쫓는 함정’으로 이해해 구축(驅逐)함으로 번역하였다. 구축함은 3000∼8000t 사이의 함정인데, 영어 약호는 DD다. DD 중에서도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것은 DDG로 표기한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대잠전 장비는 더욱 작아져 공간에 여유가 생기자, 구축함에는 대잠전 장비 외에 대함 및 대공 장비도 실리게 되었다. 구축함은 대잠전 전문 함정에서 벗어나 ‘작은 순양함’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중규모 강국이 가진 수직이착륙기용 항모나 경항모는 이러한 구축함만으로도 충분히 호위할 수 있다. 구축함은 경항모 호위뿐만 아니라 단독 혹은 구축함대를 이끌고 위험수역에 들어가 작전을 펴는 함정으로 용도가 확장되었다.

    구축함의 용도가 확장되자 미 해군은 순양함에 탑재하던 이지스 체제를 줄여 구축함에 싣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독립 215주년인 1991년 7월4일, 이지스 체제를 탑재한 8300t급의 알레이 버크 구축함(DDG 51)을 취역시켰다. 현재 미 해군은 35척의 이지스 체제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을 갖고 있다. 20척의 이지스 체제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을 더하면 모두 55척의 이지스함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미 해군은 대부분의 구축함과 순양함을 이지스함으로 바꿔 모두 84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할 예정이다.

    이지스 구축함의 대명사가 된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는 1954년 미 해군 참모총장이 된 소신파 군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9년 미 국방장관 존슨은 “B26 폭격기가 있으면 항공모함은 필요 없다”고 주장해 해군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소장인 알레이 버크는 제독들을 규합해 “웃기는 소리 말라”고 존슨 국방장관에게 대들었다.

    미군은 상급자의 지시나 지침을 어기는 항명(抗命)사건을 매우 엄격히 처벌한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반기를 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 해군은 항모를 핵심 세력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미 해군은 알레이 버크가 주동이 된 이 사건을, 해군을 살려낸 ‘제독들의 반란(Admiral Revolt)’으로 기록하고 있다. 알레이 버크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제5순양분대 사령관(소장)으로 동해 작전에 참전했다. 이때 그와 배포가 통했던 인사가 국군 1군단장 백선엽(白善燁) 소장이었다.

    1951년 6월 국군 1군단은 강원도 동해안에서 작전하고 있었다. 이때 백소장은 포병이 여의치 않아 고민하다, 동해에 와 있는 알레이 버크 사령관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다. 시원스러운 성격의 버크 소장은 흔쾌히 받아들여, 백소장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거침없이 함포 사격을 지원했다. 그 덕분에 국군 1군단은 인민군을 걷어 올려, 동해안의 휴전선은 서해안보다 훨씬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백소장은 이러한 버크 소장을 밴플리트 8군 사령관에게 “본관의 포병 사령관입니다”라고 소개할 정도로 좋아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버크는 50명의 선임자를 제치고, 단번에 소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미 해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이때 미 해군은 무려 5만6000여 명의 병력이 부족해 고민하고 있었다. 육군과 공군은 징병제인데 해군만 지원제라 병력이 적었던 것이다. 버크는 또 한 번 용기를 발휘했다. 윌슨 국방장관과 토머스 해군장관이 해군의 징병제 도입에 반대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찾아가 해군도 징병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로 인해 며칠 전에 두 장관의 보고를 받고 ‘해군은 모병제를 채택한다’는 서류에 서명했던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결정을 뒤집었다.

    이로 인해 버크 총장은 윌슨 국방장관, 토머스 해군장관과 사이가 나빠졌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버크는 무려 6년간 총장으로 복무하고 퇴역했다. 미 해군은 이러한 버크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살아 있을 때 새로 건조한 구축함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이로써 알레이 버크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함정에 자기 이름을 명명하는 최초의 인사가 되었다. 2000년 4월에는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이 살아 있는 사람으로 항공모함(건조중)에 이름이 붙여지는 영광을 누렸다.

    버크의 소신은 대양해군 건설을 목표로 한 한국 해군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전략가들은 “한국 해군 수뇌부는 버크 제독의 뱃심을 배워야 대양해군을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고급 구축함과 충무공급 구축함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과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은 미국이 시도하는 MD(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에 참여한다. MD는 적이 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막아내는 것인데, MD로 막아내야 할 것에는 미 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 전단이 포함된다. 항모 전단을 적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것을 NTWD(해상戰區광역방어) 체제라고 한다. 이 체제에는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과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이 중추 세력이 된다. 이지스 함에 대해 길게 설명한 것은 한국 해군도 이 함정 도입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 중에서도 믿을 만한 나라에만 구축함용 이지스 체제를 판매하는데, 현재는 일본에만 제공해주고 있다. 이지스 구축함의 척당 가격은 10억 달러 정도다. 일본은 이렇게 비싼 함정을 대미흑자를 줄인다는 명분을 만들어 도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이지스 체제를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7250t급인 공고(金剛)급 구축함 네 척에 탑재했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이 광명성 1호라는 작은 위성을 장착한 대포동 1호 로켓을 북태평양으로 발사했을 때, 일본은 공고급 구축함으로 독톡히 재미를 보았다.

    당시 한국군은 미군이 정보를 알려줄 때까지 멍하니 기다렸다. 그러나 일본 해자대는 공고급 제3번함인 묘고함을 통해 대포동 1호의 항적(航跡)을 완벽히 추적했다. 일본 해자대는 마음만 먹으면 대포동 1호 요격을 시도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지스함의 효용이 입증되자 일본은 대미 흑자가 크게 줄었음에도,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이지스 구축함을 4∼5척 더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기 때문에 전략무기(공격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에 이지스 체제를 제공한 것은 이 체제가 방어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미흑자와 북한 그리고 방어용 무기라는 논리를 이용해 ‘날고’ 있는데,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한국은 뛰기는커녕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유용한 이지스함을 일본은 북한에 가까운 동해 쪽이 아니라 태평양 쪽에 띄워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자대는 ‘공고급 구축함을 동해에 띄우면 주변국들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태평양에 띄워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하루면 이 함정들은 쓰가루(津輕) 해협을 통과해 동해로 들어올 수가 있다. 일발필살(一發必殺)의 주먹이 있음에도 뒤로 감추고 “없다”고 하는 것이 일본 해자대인 것이다.

    해자대의 ‘실력 감추기’는 함정 분류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은 3000t만 넘으면 무조건 구축함으로 부르나, 일본은 공고급 이지스함을 제외한 3000t 이상의 함정을 전부 호위함으로 부른다. 명칭을 ‘디플레’시킴으로써 주변국을 긴장시키지 않고 전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은 일본 해자대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슬기’다.

    한국 해군의 전력은 일본 해자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일본 해자대는 공고급 구축함 4척를 포함해 3000t급 이상 호위함을 무려 38척이나 갖고 있으나, 한국 해군은 3200t급 구축함을 겨우 3 척 갖고 있다. 고정익 대잠초계기 수는 100 대 8이고, 잠수함 수는 17 대 9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있는 주먹도 감추려고 하는’ 일본 해자대를 한국 해군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일본의 4개 호위대군(8·8함대)

    한국 해군은 언제 이지스 구축함을 갖게 될까? 해군측의 설명에 따르면 2010년쯤에야 제1번함이 건조될 예정이다. 7000t급인 이 구축함은 KDX-3로 분류되는데, 해군은 이지스 체제를 탑재한 제1번함을 ‘충무공함’으로 명명할 예정이다.

    최근 해군은 새로 건조하는 함정에는 장보고 등 역사상의 위인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제1번 KDX-3를 이순신(李舜臣)함이 아니라 충무공함으로 명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7번 잠수함이 충무공의 부하로 활약했던 동명이인 ‘이순신(李純信)함’으로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충무공급 이지스함은 현재 미국에서 개발중인 ‘SM-2 블록 Ⅳ’나 그와 유사한 중거리 대공 미사일이 탑재되므로 DDG로 분류된다.

    KDX-3에 앞선 2003년쯤 한국은 제1번함을 삼국통일의 주역 ‘문무대왕함’으로 명명하는 4500t급 구축함인 KDX-2 를 진수한다. 이 구축함은 이지스 체제를 탑재하지 않으나 중거리 대공 미사일(SM-2 블록 Ⅲ)이 장착되므로 역시 DDG로 분류된다. KDX-2 후속함은 김유신-계백-강감찬 등으로 명명될 예정이다(척수는 미정).

    3200t급인 KDX-1은 현재 한국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구축함이다. 세 척이 진수돼 각각 광개토대왕·을지문덕·양만춘함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 구축함에는 단거리 대공 미사일(시스패로)만 탑재돼 있어 DD로 분류된다.

    한국과 일본은 원유와 식량을 싱가포르를 거쳐오는 서태평양 항로를 통해 공급받는 등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일본 해자대는 일본 근해를 방어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항로를 지키기 위해 두 종류의 함대를 운용한다. 일본 근해를 방어하는 함대를 지방함대(일본식 표현으로는 地方隊)라고 하는데, 해자대는 사세보(佐世保)와 구레(吳) 등 다섯 개 군항을 모항으로 5개 지방함대를 운용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일본은 공고급 이지스함을 제외한 3000t급 이상 함정을 호위함으로 부르고 있다. 지방함대는 이러한 호위함 1∼2척과 3000t급 이하 호위함 10여 척으로 편성돼 있다. 지방함대는 일본 연안을 지키는 ‘연안 해군’이나 큰 함정이 많아서 중장이 지휘한다. 그러나 유사한 일을 하는 한국의 해역함대는 큰 함정이 적어 소장이 지휘한다.

    또 하나의 함대는 ‘호위함대(護衛艦隊)’다. 이 함대는 네 개의 호위대군(護衛隊群)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호위대군은 공고급 구축함 한 척과 ‘하루나’와 ‘시라네’급으로 불리는 5000t급 호위함 7 척으로 편성된다. 앞서 설명했듯 공고급 구축함은 태평양 쪽에 떠 있으므로 호위함대는 주로 태평양에서 작전한다.

    3000t급 이상의 함정은 잠수함 추적용으로 쓰이는 헬기를 탑재하고 있다. 따라서 각각의 호위대군은 8척의 구축함과 8대의 헬기로 편성된다. 이러한 호위대군 네 개가 모인 것이 호위함대이므로, 호위함대는 32척의 구축함과 32대의 헬기로 편성된다. 호위함대 사령관은 중장이고 호위대군 지휘관은 소장이다. 호위대군은 ‘8·8함대’로 불리기도 하는데, 방어수역이 할당돼 있지 않다. 이 함대에게는 일본과 세계를 잇는 항로에 위협이 발생하면, 황급히 달려가 제거하는 ‘119 임무’만 부여돼 있다.

    호위함대는 발생하는 사태의 강도에 따라 다양하게 편성된다. 위협의 강도가 작으면 1개 호위대군을 보내고, 사태가 매우 위급하면 호위함대 전체를 보낼 수도 있다. 외국 함대가 일본을 공격할 경우 이를 상대로 함대 결전을 벌이는 것도 호위함대다. 지방함대는 호위함대가 막을 수 없는 잠수함이 연안으로 접근하면 찾아내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공고급 구축함이 전부 도입되지 않았던 지난 세기까지 해자대는 호위함대를 일본열도에서 1000해리(1852㎞)까지 투사하겠다며 ‘1000해리 전수(專守)방어’를 거론했다. 그러나 네 척의 공고급 구축함 도입이 완료된 지금은 2000해리(3704㎞)까지 달려가 일본의 ‘탯줄’(항로)을 지키겠다며, 2000해리 전수방어를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해군력 육성에 크게 자극 받은 것이 중국 해군이다. 중국 해군은 대양해군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4만5000t급 항모 도입과 1000해리 방어를 거론하고 있다.

    한국 해군은 편제 면에서도 일본의 해자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해군에는 일본의 다섯 개 지방함대에 해당하는 해역(海域)함대가 세 개 있다. 3개 해역함대는 동해와 평택·부산에 포진해 동서남해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해역함대에는 광개토대왕급 구축함(KDX-1) 한 척(일부는 없는 곳도 있다)과 FFK로 불리는 1800t급의 울산급 호위함 한 척을 중심으로 기타 함정이 배치돼 있다. 한국의 해역함대는 일본의 지역함대에 비해 함정 크기가 작은 만큼 그 세력도 훨씬 작은 편이다.

    한국 해군에는 일본 해자대가 가진 호위함대와 같은 조직이 없다. 따라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항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연안해군이다 보니 큰 태풍이 몰아치면 불과 74해리(약 137㎞)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울릉도 수역에서 위험한 사태가 벌어져도 달려갈 수가 없다.

    6·6함대는 한국형 기동함대

    제20대 해군총장 안병태(安炳泰) 대장은 한국 해군이 안고 있는 이 숙명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친 지휘관이다. 안총장은 ‘국민들이 바다와 해군을 모르기 때문에 해군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대양해군 건설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함상토론회’라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여러 면에서 안총장은 알레이 버크 총장에 비교할 만하다. 그는 해사 동기생으로 일찌감치 전역해 사업가로 성공한 정의승(鄭義昇)씨가 창설한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국제정치학자들에게 대양해군 분야를 연구하게 했다.

    안총장 때 보다 구체화된 것인 ‘(전략)기동함대 창설 계획’이다. 기동함대는 일본 해자대의 호위함대를 모방한 것으로, 이지스 구축함(KDX-3) 1척과 대형 일반 구축함(KDX-2) 1척으로 편성된 수개의 기동전단으로 편성된다. 기동함대에 몇 개의 전단을 둘 것인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전략가들은 해군의 함정 운용 특성상 최소한 세 개 전단이 편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해군에는 함정을 ‘3직제(直制)’로 운용하는 전통이 있다. 3직제는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24시간 공장을 돌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즉 함정 1척이 작전중이면, 1척은 모항에서 수리를 하고, 다른 1척은 수병을 훈련하는 데 쓰는 것이다. 기동함대도 3개 전단으로 구성해야 공백 없이 작전과 수리와 훈련을 거듭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동함대는 6척의 구축함과 6대의 헬기로 구성되니 6·6함대가 된다. 6·6함대는 초대형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4500t급 이상 함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대양작전이 가능하다. 한국 해군은 작전수역 1000해리를 목표로 6·6함대 완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나 6·6함대가 구성되더라도 이는 일본의 호위대군보다 작은 규모다. 호위함대에서 비교하면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해군력 격차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벌어져 있다. 한국의 6·6함대 사령관에는 소장이 취임한다.

    최근 해군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3월 해사 졸업식에서 기동함대를 건설을 언급함으로써 크게 고무돼 있다. 기동함대는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다 장차 세종대왕함으로 명명된 경항모가 도입되면 이를 호위하는 호위함대도 된다.

    국방부에서 배분하는 전력투자비 중에서 해군에 배분되는 비율은 대략 21.7%로 가장 적다. 육군에는 35.2%, 공군에는 26.8%가 투자된다(나머지는 국방부 직할부대에 배당). 때문에 전략가들은 “해군에 배분되는 전력 투자비를 1% 포인트 올려 22.7%로만 해도 기동함대 건설이 빨라진다. 해군 예산을 늘리지 않고서는 기동함대 창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양해군은 곧 해군 예산을 많이 확보해야만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해군 출신의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이 자주 나와야 하는데, 지금까지 해군 출신으로 국방장관이 된 사람은 초대 해군 총장 손원일(孫元一) 중장 한 명뿐이다. 합참의장에는 단 한 명도 임명된 적이 없다. 안총장은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과감히 합참의장 진출까지 시도했다.

    구축함보다 작은 군함이 호위함인데, 영어로는 frigate기 때문에 FF로 표기한다. 호위함 중에도 중거리 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것은 FFG라고 하나, 한국에는 이러한 호위함이 없다. 1800t급인 한국 호위함은 한국(Korea)에서 독자 생산되었기 때문에 FFK라 한다. FFK는 울산함을 시발로 9척이 건조돼 ‘울산급 호위함’으로 불리고 있다. 구축함과 잠수함에는 대개 사람 이름을 붙이나, 호위함 이하의 함정에는 광역시도나 중소도시 이름을 붙인다.

    한국 해군은 1500∼3000t급 함정을 호위함으로 분류하나, 미국과 일본은 1500∼5000t 사이를 호위함으로 부른다(일본은 공고급 이지스함만 구축함으로 부르고 나머지 구축함은 전부 호위함으로 부른다). 호위함은 해역함대에 배속돼 연안방어에 투입되기 때문에 세계적인 비교는 하지 않는다.

    함정의 수명은 보통 30년으로 잡는다. 울산급 호위함은 대부분 1980년대에 건조됐으므로 잔여 수명이 10∼20년 정도 남아 있다. 해군은 울산급 호위함이 수명을 다하면 덩치가 더 큰 차기 호위함(FFX)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호위함보다 작은 500∼1500t 사이의 함정을 초계함(corvette)이라 한다. 초계함은 호위함보다 더 얕은 바다에서 초계(patrol) 임무를 수행하므로 PCC로 불린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PCC는 1200t급이다. 한국은 비교적 많은 PCC를 보유하고 있는데(총 28척), 그 이유는 예산 부족 때문이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 한국은 울산급 호위함을 주력 함정으로 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예산 부족 때문에 ‘축소형 저가(低價)함’을 우선 건조하다는 쪽으로 전환했다. 그리하여 1982년 최초의 PCC인 ‘동해함’을 건조하고, 동해함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고쳐 1984년 포항함을 건조했다. 동해함급 초계함은 4척, 포항급 초계함은 24척이 건조되었다.

    앞서 기자는 3000t 이상 구축함 수에서 한국은 일본에 3 대 38로 크게 뒤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호위함과 초계함이 포함되도록 1000t 이상으로 낮춰 함정 수를 비교하면, 격차는 40 대 64로 줄어든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은 ‘지갑이 두꺼워서’ 3000t 이상의 함정을 주로 건조했고, 한국은 ‘지갑이 얇아서’ 1800t급 호위함과 1200t급 초계함을 주로 건조했다는 것을 뜻한다.

    초계함도 대부분 1980년대에 건조되었다. 초계함의 수명이 다하면 해군은 후속 초계함을 건조하지 않고 차기 호위함(FFX)으로 뒤를 이을 예정이다. 차기 호위함이 3000t에 육박할수록 그만큼 일본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호위함에는 대도시나 광역시도의 이름을 붙이나 초계함에는 중소도시의 이름을 붙인다.

    초계함은 비록 호위함을 대신하는 저가 보급형 함정으로 개발됐으나 북한과의 교전에서는 혁혁한 전과를 쌓아왔다. 1998년 12월18일 새벽 여수 앞바다에 상륙해 고정간첩을 태우고 도주하던 북한의 반잠수정을 76㎜ 함포로 격침한 ‘광명함’과 1999년 6월15일 연평해전에서 북한의 신흥급 경비정을 격침한 ‘영주함’은 모두 포항급 초계함이었다.

    초계함보다 작은 100∼500t 사이의 작은 함정은 고속정이라고 한다. 고속정은 연안 초계를 주임무로 하므로 PKM, 혹은 해군이 붙인 별명인 ‘참수리’로 불린다.

    한국 해군은 170t급의 PKM을 90여 척 보유하고 있다. 참수리는 북한의 간첩선을 추적할 때나 북한 함정과 대치할 때 최일선 공격을 담당하는 ‘인파이터’다. 기동성이 뛰어난 참수리는 연평해전 때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꼬리를 용감하게 들이받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왜군이 이끈 선박의 크기가 대충 지금의 참수리만 했다. 이렇게 선박이 작았기에 이순신 함대와 일본 함대는 육지가 보이는 연안을 따라 항해하고 그곳에서만 싸웠다. 육지로 움푹 파고든 만(灣)이 있으면 가로지르는 직선 항해를 하지 못하고 해안선을 따라 만 안쪽으로 들어가 구불구불 항해를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해군의 주력 함정의 크기가 임란 때와 비슷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해군의 대양화는 매우 시급한 주제다.

    《 남사군도와 대양해군 - 석유 대박 지키려면 대양해군 필요 》

    중국과 베트남·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 사이에서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사군도는 남중국해상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모래섬들이다. 남사군도는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주인이 없었다. 일본은 2차 대전을 일으키며 접수해 잠수함 기지로 사용하다, 패전 후 영유권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남사군도와 한국, 더구나 대양해군과는 전혀 연관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깊은 인연이 생길 일이 발생했다. 22대 해군총장 이수용씨가 사장으로 있는 한국석유공사가 참여한 국제컨소시엄이 호치민시 남쪽에 있는 베트남의 EEZ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한 것.

    아직 고유명사를 얻지 못해 15-1로 불리는 광구에서는 최소한 4억 배럴(1조400억원 상당)의 석유가, 11-2 광구에서는 9000억 입방피트의 천연가스(3900억원 상당)가 묻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는 10월 석유공사는 인근에 있는 16-2광구도 시추할 예정이라 석유와 천연가스의 양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남사군도 부근은 많은 석유가 매장돼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영유권을 놓고 주변국들이 다투게 된 것이다.

    남사군도의 영유권 분쟁이 심각해지면 한국이 확보한 유전들의 소유권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남사군도 일대는 동남아에서 한중일로 오는 ‘탯줄’ 같은 항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수역이 시끄러워지면 중국·일본 등은 이 수역으로 기동함대를 출동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때 우리의 국익을 지키려면 우리도 이곳까지 갈 수 있는 기동함대가 있어야 한다. 남사군도는 대양해군을 부르고 있다.

    수중 세력에 이어 살펴볼 것이 잠수함을 중심으로 한 수중 세력이다. 20세기 후반 들어, 잠수함만큼 각광 받은 전력도 없을 것이다. 함재기를 주축으로 한 항공 세력도 물론 대단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항공 세력은 미국을 비롯한 몇몇 초강대국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잠수함은 중규모 강국은 물론이고 중진국에도 보급됨으로써, 옹골찬 해군 건설을 원하는 여러 나라를 만족시키고 있다.

    잠수함이 각광받은 가장 큰 이유는 여간해서는 탐지되지 않는 은밀성 때문이다. 현대 과학은 600㎞ 떨어진 곳에 있는 비둘기를 탐지해 내는 레이더까지 개발해 냈다. 그러나 물 속은 매우 특수한 공간이어서 불과 수㎞ 떨어진 곳에 있는 1만t급 잠수함을 탐지하는 장비조차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은밀성이 뛰어나다 보니 잠수함은 강한 해군을 원하는 나라의 전략무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이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은 일본에서 제작한 군수물자를 일본 사세보항에서 부산항으로 황급히 실어 날랐다. 덕분에 일본경제는 크게 부흥하였다. 3년 동안 수송된 군수물자의 양은 무려 5800만t이었다. 이러한 군수물자 덕분에 한국은 간신히 인민군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북한은 ‘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는가’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그때 도출된 결론 중의 하나가 부산항에 5800만t의 군수물자가 양륙되도록 내버려둔 사실이 거론되었다.

    북한이 잠수함을 동원해 사세보-부산 항로를 오가는 수송선을 공격했다면, 미군의 수송 작전은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당시 북한은 단 한 척의 잠수함도 보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후 잠수함 확보에 전력해 1830t급인 로미오급 잠수함을 22척이나 보유하게 되었다. 그 외 북한에서 직접 생산하는 300t급 상어급 잠수함과 70t급 유고급 잠수정 등 90여척의 잠수함정을 갖게 되었다.

    야스쿠니 신사와 日本 잠수함

    태평양전쟁은 잠수함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진주만은 자궁처럼 생겨서, 안은 매우 넓지만 입구는 매우 좁다. 일본 연합함대의 함재기가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 5척의 소형 일본 잠수정이 진주만 입구에 침투해 있었다. 일본 함재기의 공격이 개시되자 미국 함정들이 진주만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5척의 일본 잠수정은 이러한 미국 함정을 공격했다. 그로 인해 다수의 미군 함정이 침몰하며 진주만 입구를 막아버려, 미국 함대는 더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 잠수정도 격침되었다. 일본의 고이즈미(小泉) 총리의 참배 로 시끄러웠던 야스쿠니(靖國)신사는 진주만에서 희생된 잠수정 장교들을 군신으로 모셨던 곳이다. 일본 잠수함은 로스앤젤레스까지 접근해 하와이가 아닌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유일한 기록을 남겼다.

    잠수함은 영어로 submarine이라 SS로 표기한다. SS는 디젤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려 축전기를 충전한 다음 축전기의 힘으로 스크루를 돌려 항진하는 재래식 잠수함을 말한다. 디젤엔진은 가동시 배기가스가 발생하므로 SS는 수시로 부상해 배기가스를 빼내고 신선한 공기를 흡입해야 한다. 잠수함은 공기를 갈기 위해 부상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때문에 미국은 배기가스 발생하지 않는 원자로를 장착한 잠수함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SSN이다. SSN은 대개 6000t급 이상으로 덩치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SSN에는 크루즈 미사일이 주로 탑재된다. 그러나 덩치가 큰 SSN에는 SL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으로 표기되는 핵탄두를 단 탄도미사일이 탑재되는데, 이러한 잠수함은 특별히 SSBN이라고 한다. SSBN은 대개 1만t이 넘는데, 여기에는 미국의 오하이오급과 프랑스의 트리옹팡급, 러시아의 타이푼과 델타급, 영국의 뱅가드급 잠수함 등이 있다. 10만t에 이르는 항모는 미국의 전유물이나 SSBN은 미국과 중규모 강국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SSN은 6000∼1만t급 사이의 잠수함인데, 여기에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영국의 트라팔가급, 러시아의 시에라와 빅터급, 프랑스의 루비급, 중국의 한(漢)급 등이 있다. 핵추진 잠수함은 폐선할 때까지 연료를 교체하지 않는다. 따라서 식량과 식수가 떨어지지 않고 승조원들이 견뎌낼 수 있는 한 수개월 동안 계속 잠항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미국은 SSBN이나 SSN 등 핵추진 잠수함만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6000t급 이하는 대개 SS로 표기되는 재래식 잠수함인데, 재래식 잠수함은 며칠에 한 번씩은 부상해 공기를 갈아주어야 한다. 재래식 잠수함 중에서도 3000t급 이상을 중(重)잠수함이라고 한다. 중잠수함은 토마호크 등 크루즈 미사일이 장착될 수 있어 전략무기로 분류된다. 아르헨티나·브라질·호주 등 상당수의 중진국은 중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구축함 분야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한 한국은 중잠수함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한국이 보유한 잠수함은 1200t급인 독일제 209로, 제1번함이 장보고함으로 명명돼 장보고급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은 장보고급 잠수함을 9척 보유하고 있다. 이중 6척에는 어뢰만 장착돼 있으나 가장 늦게 건조한 3척에는 함정을 공격하는 데 쓰이는 대함 미사일 ‘하푼’이 장착돼 있다. 그러나 크기가 작은 관계로 대지 미사일은 아직 장착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유우시오’ ‘하루시오’ 등 2200∼2900t급 사이의 잠수함을 17척 갖고 있다. 이 잠수함에도 대지 미사일은 장착돼 있지 않으나 탑재 무장은 장보고급보다 훨씬 더 많다. 한국과 일본의 잠수함 척수 격차는 17 대 9다. 그러나 일본의 잠수함은 한국 잠수함보다 두 배 이상 크므로 질적인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는 잠수함을 30년 정도 사용하나, 일본은 18년간 사용한 후 퇴역시킨다. 퇴역한 잠수함은 기름칠을 잘해 밀봉해두는데, 이러한 잠수함은 언제든지 다시 꺼내 쓸 수가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잠수함 척수는 공식 발표보다 두 배 더 많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점까지 고려하면 한국과 일본의 수중 전력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

    잠수함 수명을 18년으로 한 것은 일본식 ‘주먹 감추기 전략’일까? 이에 대해 일본은 “일본에서는 두 조선소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는데, 두 회사에게 매년 1척씩 일감을 주기 위해 잠수함 수명을 18년으로 정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잠수함 분야에서도 최말석이지만 천만다행으로 장보고급 잠수함의 성능만큼은 뛰어나다. 이 ‘꼬마 잠수함’은 워낙 조용해 미군과의 연합훈련에서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SSN)을 가상 격침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있다.

    주요 국가에서 초기에 도입한 잠수함은 대부분 침몰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장보고급 잠수함은 안전하게 운용되고 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50여 일 동안 단독 작전이 가능하다. 따라서 기동함대가 없는 현재로서는 장거리 투사가 가능한 유일한 전력이다. 그러나 더 큰 작전에 참여하려면 더 크고 많은 잠수함이 필요하다. 일본 해자대는 잠수함이 많아 중장이 지휘하는 잠수함대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해군은 척수가 적어 준장이 지휘하는 한개의 잠수전단만 있다(해군의 부대 편제는 함대-전단-전대 순으로 내려온다).

    제20대 안병태 총장은 기동함대뿐만 아니라 잠수함대 건설 계획도 마련하였다. 안총장은 ‘장보고급 잠수함에 이어 이를 개량해 SSU로 명명된 1800t급 잠수함을 도입한다. SSU 잠수함 도입과정에 한국은 설계 기술을 배워 3000t에 육박하는 중잠수함을 독자 개발한다. 이를 통해 잠수함대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동함대 건설은 후임 총장을 거쳐 계획대로 추진됐으나 잠수함대 건설은 모기관의 개입으로 크게 요동을 쳤다.

    1998년 7월 러시아와 외교관으로 위장한 첩보요원 맞추방 사건을 겪은 이 기관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독일제 214를 모델로 한 SSU 도입과 별도로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을 도입하라”며 개입했던 것. 2000년 8월13일 러시아의 오스카급 SSN 쿠르스크함이 바렌츠해에 침몰했다. 러시아의 잠수함은 안전을 신뢰할 수 없어 해군은 킬로급 잠수함 도입에 반대했다. 여기에 현대중공업이 잠수함 건조 사업 참여를 집요하게 주장하면서 SSU 사업이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한 이는 22대 총장 이수용(李秀勇) 대장이었다. 이총장 대에 해군은 모기관의 개입을 떨쳐내고 ‘세계 최고로 인정는 독일제 214를 모델로 한 1800t급의 KSS-Ⅱ사업을 진행한 후(이 과정에서 SSU는 KSS-Ⅱ로 바뀌었다), 여기서 잠수함 설계 기술을 익혀 SSX로 명명된 3000t급의 한국형 중잠수함을 만든다’는 계획을 확정지었다. 안총장이나 이총장은 필요할 경우 과감히 정치인들을 찾아가 해군 예산 증액을 부탁했다. 소군(小軍)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서 거침없이 해군의 목소리를 내질렀다.

    한 전략가는 “KSS-Ⅱ는 기술 축적용이므로 소규모 생산으로 그치고, 빨리 SSX로 넘어가야 한다. 기존의 장보고급은 성능개량을 통해 KSS-Ⅱ급으로 키워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세 종류의 잠수함을 25~30척 갖고, 잠수함대를 편성하여야 한다. 기동함대와 잠수함대 건설은 대양해군을 향해 가는 배의 양쪽 노와 같다”고 말했다.

    항공사령부 설치 필요

    해군력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인 항공 세력이다. 항공 세력은 공격용과 방어용으로 나뉜다. 공격용 항공 세력은 항모에 탑재한 각종 전투기다. 이러한 세력은 미국을 필두로 중규모 강대국만 보유하고 있다. 한국 해군이 2010년 이후 ‘세종대왕함’으로 명명한 경항모를 도입한다면, 여기에는 수직이착륙기인 해리어와 헬기가 20∼30대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적잖은 사람들이 항공모함에 탑재된 항공기는 항공모함 함장의 지휘를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함장은 항모만 지휘하고 항공기는 별도의 전대장이 지휘한다. 항공세력은 항모를 이·착함 기지로 이용할 뿐 항모에 소속된 부대가 아니다.

    항공 세력도 3직제로 운용된다. 즉 1개 부대는 항모에 탑재돼 작전에 들어가고, 1개 부대는 육상 기지에서 훈련을 한다. 그리고 1개 부대는 정비를 하거나 비상 대기한다. 따라서 세종대왕함에 30대의 함재기를 싣는다면 실제로는 90대의 함재기가 있어야 한다. 90대의 전투기는 1개 전투비행단을 구성하는 규모다. 항모 도입과 함께 해군은 1 개 항모 전투비행단 건설을 준비하여야 한다.

    방어용 항공세력의 대표는 해상 초계기다. 해상 초계기는 항모에게 가장 위협적인 잠수함을 찾아내 공격하는 항공기인데 여기에는 P-3C 등이 있다. 일본 해자대는 100대의 P-3C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명이 다하는 P-3C 후속기를 독자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한국 해군이 보유한 P-3C는 단 8대다. 100 대 8, 해상 초계기 분야에서도 한국은 한참 뒤처져 있는 것이다.

    P-3C 외에도 일본 해자대는 대잠 작전에 투입되는 SH-60J 등의 헬기를 120여대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항공 세력이 많다 보니 이들을 묶어 항공집단(航空集團)을 편성했다. 그러나 한국 해군은 보유한 항공기가 적어 항공전단을 겨우 구성하고 있다. 일본의 항공집단 사령관은 중장이다. 그러나 항공전단장은 준장이다. 한국이 생각하는 항공사령부는 소장이 지휘하는 규모다. 수상과 수중·항공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현저히 뒤처져 있는 것이다.

    땅은 17∼19세기에 완전히 분할이 끝났다. 그때 조선은 새로운 땅을 확보하지 못했고,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새로운 영토를 많이 확보하였다. 땅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독도나 일·중 간에 영유권 다툼이 있는 센카쿠(尖角), 러시아와 일본간에 다툼이 있는 구나시리(國後)를 비롯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러시아 소유의 4개 섬(일본은 이를 北方領土로 부른다. 한·일 간 꽁치 분쟁은 한국이 러시아를 이 섬의 영유권자로 간접 인정했기에 발생했다) 등 몇몇 섬으로 한정돼 있다.

    지금은 바다 분할 시대다. 독도나 센카쿠는 물이 나오지 않는 돌섬이라 사람은 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영유권 분쟁을 빚는 것은 이 섬을 소유해야만 반경 12 해리 바다를 영해로, 24 해리까지는 접속수역으로, 200 해리까지는 경제수역으로 영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선을 그을 수 없다. 목측(目測)할 수 있는 표지조차 없는 망망대해에서는 경계선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로 눈을 돌려도 분쟁은 대개 바다에 일어나고 있다.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과 북방한계선을 통과한 것이나 연평해전 등 바다는 휴전선을 대체해 새로운 분쟁 지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강한 해군을 요구한다.

    지상군은 영토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영토 수호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므로 지상군의 중요성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영토를 지키는 것은 ‘민족 정치학’의 세계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해상교통로를 따라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하고 무역으로 번성하는 나라가 된 지 오래다. 해상교통로가 지나는 바다는 세계 모든 나라의 해군이 들어올 수 있는 공해(公海)다. 이러한 곳에서 통하는 것은 국제정치학이다. 민족정치학을 기반으로 한 지상군을 다지면서 이제는 국제정치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옹골찬 해군을 만들어야 한다.

    자민련식 생존전략

    대양해군을 갖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과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꽤 잘 산다고 자부하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 규슈(九州) 섬의 경제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실력으로는 미·일·중·러로 구성된 주변 4강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남북이 통일되는 그날 우리 영토와 영해만큼은 분명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4강의 힘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 전략가는 “우리는 미국과는 동맹, 일본과는 공조, 중국과는 친선, 러시아와는 우호 관계를 맺고 두루두루 잘 지내야 한다. 이렇게 잘 지내기 위해서는 무시할 수 없는 해군력이 필요하다. 옹골찬 해군을 갖는 것은 이 지역의 분쟁을 줄이는 지름길이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동북아에서 가장 약한 나라인 한국은 ‘자민련식 생존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자민련은 의석이 20석밖에 되지 않는데도 사안에 따라 여당과 야당을 오가며 존재를 과시해, 20석 이상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자민련은 거대 여당과 야당에 끼여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여당과는 정당 차원에서 연립하고, 야당과는 사안에 따라 공조하는 자민련의 자세는 기막힌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처지가 자민련과 비슷하다. 한국 해군의 전투지수는 일본 해자대의 23%, 중국 해군의 16.7%에 불과하다.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한국은 두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자(balancer)’가 되어야 한다. 한국이 어디로 기우는가에 따라 대세가 결정될 때 한국의 가치는 극대화된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려면 자민련처럼 최소한 원내교섭단체는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동함대와 잠수함대를 양축으로 한 대양해군 건설은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발버둥이다.”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양해군은 필수 품목이다. 대양해군은 국가 지도자의 의지와 철학에 의해 탄생한다. 해양전략에 관한 최고의 고전은 마한 제독이 쓴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다.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와 미국의 대통령 데오도르 루스벨트는 이 책을 읽고 눈을 떠, 독일과 미국을 해양국가로 이끌었다. 1920년대 일본을 이끈 지도자들은 국가 예산의 무려 32%를 해군에 투자했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미국과 독일과 일본은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것이다.

    대양해군 건설은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의지에 달려있다. 해사 졸업식에서 기동함대 건설을 역설한 그의 말을 국민이 적극지지해 줄 때 한국의 미래는 보장될 수 잇는 것이다.

    해병대와 대양해군 - 해병대 상륙작전을 위해 헬기 상륙함 건조

    해군력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아니지만 해병대는 빠뜨릴 수 없는 전력이다. 수상과 수중·항공 세력이 적 해군을 격멸하면 해병대가 나서서 상륙작전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륙함이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상륙함은 LHA 혹은 LHD로 불리는 상륙모함이다. 미 해군은 4만t인 와스프급과 3만9400t인 타라와급 상륙모함을 갖고 있다. 와스프급 상륙모함에는 22명의 해병대 병사를 태울 수 있는 CH-46 헬기 42대와 5대의 해리어 전투기, 6대의 대잠전용 헬기가 탑재된다. 타라와급에는 CH-46 헬기 12대와 37명이 해병대를 태울 수 있는 CH-53헬기 9대, 6대의 해리어 전투기를 싣는다.

    이 보다 작은 것이 상륙수송선거함(LPD)다. 미 해군이 보유한 LPD는 2만4000t급으로 여기에는 4∼8대의 헬기가 탑재된다. 다음이 1만t을 약간 넘는 헬기탑재 상륙공격함(LPH)이다. 지난해 말 언론은 일본이 항모로 개조될 수 있는 1만t급 수송함 ‘오오스미함’ 건조를 계획한다고 보도했는데, 오오스미함이 바로 LPH다. 언론은 헬기를 탑재하는 사실에만 주목해 상륙공격함을 항모로 잘못 보도한 것이다. 한국 해군도 LPX로 닉네임을 붙인 1만t급의 헬기탑재 상륙공격함의 건조를 준비하고 있다. LPX는 해병대 병사를 헬기에 태워, 기뢰가 깔린 바다와 지뢰가 깔린 해안선을 넘어 적 심장부에 투하하는 초수평선상륙작전’의 발진 기지가 된다.

    그 다음이 LST로 불리는 대형상륙함이다. 이 상륙함은 전차와 상륙돌격장갑차 등을 싣고 다니는데 한국 해군은 비교적 덩치가 작은 고준봉급의 LST(4200t)를 보유하고 있다. 대양해군 육성과 해병대 발전은 수레의 양 바퀴처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 해군은 통일 한국을 지키는 최일선 방어군 ”

    지난 8월2일 해군은 서울 힐튼호텔에서 동북아의 해양안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대규모 학술회의인 제7회 국제해양력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이 있은 4일 후 해군 총장 장정길(張正吉·해사 20기) 대장을 만나 한국 해군의 대양화 전략을 들어보았다. 이 인터뷰는 장총장이 가진 최초의 인터뷰다.

    -앞으로 해군을 이끌 방책을 밝혀달라.

    “내 임무는 정부의 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미래의 안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대양해군을 건설한다’는 지휘 표어 아래, ‘엄정한 군 기강 확립, 완벽한 전비 태세 유지, 첨단 입체 전력 건설, 효율적인 군 관리라는 네 가지 지휘방침으로 해군을 이끌어 나갈 생각이다.”

    -총장 취임과 동시에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과 북방한계선(NLL) 통과를 겪으셨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그 사태에 대해 ‘선(先) 평화적 모색, 후(後) 군사적 강권 발동’이라는 대응방침을 세우고 인내심 있게 대응함으로써, 북한 선박이 우리의 요구에 순응케 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국기를 게양한 해군 함정은 ‘떠다니는 영토’다. 국가의 주권과 권위를 대신한다. 지상의 군사분계선에서 포탄 몇 발이 오가는 것은 전쟁으로 비화하기 어렵지만, 해상전은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군함은 그 어떤 부대보다 국제법을 엄정히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비무장 북한 선박에 대해 우리가 무력을 사용했다면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져, 국익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었을 것이다. 해군 작전은 국익을 우선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앞으로도 북한 상선이 NLL을 통과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NLL은 정전협정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설정된 실효적인 해상경계선이다. 이 선은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지켜져온 만큼, 남북간의 별도 합의가 없는 한 우리는 이 수역을 고수할 것이다. 또다시 북한 선박이 NLL을 침범하면 ‘선 평화적 모색, 후 군사적 강권 발동’의 기본 원칙과 정전시 교전규칙에 따라 단계별로 엄정히 대응할 것이다.”

    -해양력 심포지엄을 개최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기자도 잘 알다시피 21세기의 바다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자원의 보고다. 바다는 국가간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해양영토 분쟁과 해양경계선 획정 문제로 분쟁의 소지가 상존하고 이다. 해적과 밀무역, 해상오염 등 해상에서의 갈등 요소도 적지 않다. 분쟁과 갈등을 줄이려면 지역 국가간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의 갈등을 줄이는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기 위해 2년마다 해양력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대양해군의 모델로 삼는 국가는 어디인가?

    “어느 특정국을 모델로 삼기보다는 주변국의 해군력 발전 추세와 우리의 경제여건에 따라, 양보다는 질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우리의 대양해군 건설 전략이다. 나는 전략기동함대 확보에 중점을 두고 수상·수중·항공 전력 확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주변국의 해군력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가. 그리고 주변국과 비교해 우리 해군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지역 최대 해군은 미국 해군이다. 미 해군은 사시사철 대양에 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해군이다. 일본 해자대는 이지스급 구축함을 주력으로 8척의 함정에 8대의 헬기로 구성되는 4개 호위대군과 연안해역 방어를 담당하는 5개 지방대, 그리고 16척 이상의 잠수함과 100여 대의 해상초계기, 그리고 8000t급 이상의 대형 수송함을 준비하는 강력한 해군이다.

    중국 해군은 1000해리 이상을 적극 방어한다는 개념을 세우고 러시아로부터 7000t급 소브레메니급 구축함 2척을 도입하고 추가로 올해 말 2척을 도입할 예정이다. 전략잠수함(핵추진) 추가 보유와 항공모함 보유에 힘쓰는 등 대양해군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난으로 군사력이 줄어들었다고 하나 극동 지역에 핵잠수함과 1만t급 순양함을 배치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해군력이 너무 미약하다. 우리는 조선 수주량 세계 1위, 어획량 세계 8위, 무역량 세계 10위의 해양국가이므로, 그에 걸맞은 해군력을 가져야 한다.”

    -김대통령은 해사 졸업식에서 전략기동함대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정확한 대통령님 말씀은 ‘머지 않아 우리 해군은 5대양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고 세계 평화 수호에 일익을 담당할 전략기동함대를 가지게 될 것이다’였다. 기동함대는 KDX-3 이지스 구축함과 KDX-2 구축함, 잠수함과 해상 작전용 항공기 그리고 기동군수지원함으로 구성된다. 이 부대는 육군과 공군의 지원 없이도 상당기간 단독으로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10년 후 기동함대를 창설하게 될 터이니 국민들께서는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

    -항모 건조 계획이 궁금하다.

    “아직 우리 해군은 항모 건조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국의 전력 증강 추세를 고려하고 국가 안보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항모 확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승리했는데, 북한 해군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은 6·25전쟁 때 패전한 이유 중의 하나를 해군력 열세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해군력 건설에 매진해 척수에서는 우리보다 4배 이상 많은 820여 척의 군함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200t급 이상 함정은 17%에 불과하고 함령(艦齡)이 30∼40년 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90여 척의 잠수함과 270여 척의 상륙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대형 구축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무시할 수가 없다. 비록 우리는 연평해전에서 승리했지만 북한의 해군력을 경시할 수는 없다.”

    -해병대를 발전시킬 복안을 갖고 있는가?

    “우리 해병대는 6·25전쟁과 월남전을 통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얻은 매우 용감한 부대다. 해병대는 상륙작전 외에도 도서 방어작전 등 다양한 목적에 투입되는 다목적 신속대응군이다. 우리는 해병대에게 원활한 기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1만t급 대형 수송함을 설계하고 있다. 해병대와의 협조를 강화하기 위해 나는 각종 해군 모임에서 외치는 구호를, ‘해병대와 함께, 바다로! 세계로!’로 바꾸도록 하였다.”

    -대양해군 건설을 위한 재원(財源)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

    “세계 강국은 하나같이 국가지도부의 의지에 의해 강한 해군을 키웠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明治) 천왕이 해군 관함식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해군 육성을 위한 특별세를 만들고, 왕실 운영비 절감 그리고 국민 성금을 통해 해군력 건설 재원을 마련했다. 1904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big stick(큰 몽둥이) 해군을 가져야 big stick 외교를 할 수 있다’며 해군력 건설에 매진하였다. 영국은 1634년 찰스 1세 때 이미 건함세(建艦稅)를 징수한 바 있다. 올해 우리 국방비는 GDP의 2.7%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체 국방비 중에서 해군 몫은 16%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양해군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절실한 형편이다.”

    -통일 후 한국 해군의 모습은 어떠하리라고 전망하는가?

    “통일은 영토 확장과 동시에 해군이 담당하는 바다도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 한국은 바다를 연하여 주변강국에 둘러싸이게 되므로, 해양주권 확보는 절실한 과제가 될 것이다. 통일 한국에서는 해군이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는 최일선 방어군이 된다. 기동함대 창설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면 해군은 통일 한국의 국익을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명한 자는 남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는 옛말이 있다. 해양을 도외시해 쇠퇴의 길을 걷지 말고, 주변 해양강국과 장보고 대사·이순신 제독의 호국정신을 본받아 해군력 건설에 노력한다면 통일은 우리 민족이 중흥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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