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북한 퍼주기? 알고 보면 남는 장사요”

강봉균 KDI원장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입력2005-01-11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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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봉균(58)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재경부장관을 맡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다. 그는 최근 21세기 경영인클럽 강연회에서 “올 4분기(10∼12월) 경제회복도 물 건너갔다, 동아시아 경제가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어렵다”고 발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기자가 기사를 키우기 위해 ‘동아시아’ 대신 ‘한국’을 집어넣는 바람에 파문이 커졌다. 야당과 언론은 ‘거 봐라, 강원장도 그렇게 말하지 않느냐’며 정부를 질타하는 재료로 썼고 몇몇 경제 각료들은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은 “전세계 경제가 도미노 현상을 보이는데 유독 한국만 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가 온다니 말이 되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화낼 일만은 아니다.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강원장이 정부를 일부러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한국경제는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대우자동차와 하이닉스라는 뇌관이 해체되지 않고 남아 있고, 세계경제의 3대 축인 미국·유럽·일본 경제가 싱크로나이즈드 싱킹(동시 침몰)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정치 안정이 필수적이나 공조붕괴로 정부 여당은 소수파로 전락했고, 대통령의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정책 집행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경제



    여기에 미국을 공격한 인류 최악의 테러는 세계 금융시장과 미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미국 시장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한국에는 태풍이 일어난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의 기능마비로 심리적 공황에 빠진 세계 금융시장은 언제쯤 안정을 되찾을 것인가.

    정부 경제팀의 구석구석을 섭렵하고 30여 년 만에 모처럼 현업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그에게 김대중 정부의 3년 반을 평가하고 앞날을 조망하는 의견을 들어보았다.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하니까 ‘자기가 경제수석이나 재경부장관 할 때는 잘 된다고 하다가 다른 사람이 맡으니까 그러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한국도 동아시아에 포함되니 걱정스럽군요.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일본·유럽연합의 경기가 동시에 침체되고 있어 글로벌 리세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국 불황의 충격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크게 받습니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2분기(4∼6월)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졌어요. 외국 경제전문가와 기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 성장에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2분기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7%로 예상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지만 3분기(7∼9월)에는 더 나빠질 것 같습니다. 4분기(10∼12월)에 어떻게 될지는 10월에 판가름나는 미국 경기 회복 가능성에 달렸지요.

    분명히 말하건대 한국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때처럼 나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경제성장률이 -6%, 실업률이 9%, 실업자 수가 180만명이었습니다. 그때보다 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죠.

    다만 대외환경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수출감소에 따른 경기 침체 국면을 우리 힘만으로 역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구조조정을 신속히 진행하면서 내수경기 진작책을 적극적으로 병행하면 어려운 여건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위기 대처방안을 놓고 국론이 분열돼 어려운 국면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국민의 에너지가 약화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전윤철 기획예산처장관과는 경제기획원에서 같이 일하셨죠?

    “내가 기획원 차관 때 기획관리실장이었어요.”

    ―아랫사람이었군요. 경제가 극히 어렵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강원장 이름 뒤에 존칭도 안 붙이고 화를 냈더군요.

    “실제로 화를 낸 게 아니라는데 신문에서 그렇게 쓴 것 같던데….”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발언이 파문을 빚으면 신문 핑계를 대는 습관이 있다. 물론 기사를 짧게 압축하다 보면 화자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아카데미즘의 특징은 부연이고 저널리즘의 특징은 생략이니 어쩌면 태생적 한계라고 할까.

    ―연초에는 정부 부처나 관변 경제연구소에서 하반기부터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갈수록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바닥이 언제라고 보시는지요. 세계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은 없는 건가요.

    “한국경제가 하반기 또는 4분기부터 좋아질 거라고 예측한 것은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미국경제가 4분기부터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기 때문이지요. 미국경제 회복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한국경제가 금년 3분기에 바닥을 쳤다고 생각합니다. 4분기부터 회복속도는 미국의 경기 회복 속도와 우리 대응정책의 강도에 달려 있습니다. 4분기부터 미국경제가 회복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당황하지 않으려면 경기 대응정책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미국경제는 2분기 성장률이 0.2%밖에 안 돼요. 실업률은 4.9%로 높아졌습니다. 모건 스탠리는 3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0.6%로 예측했어요.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4분기 경기 회복을 기대하지만 불확실합니다. 4분기부터 회복되더라도 회복 속도가 미미할 것 같습니다. 미국 경제가 10년 호황 끝에 불황 국면이 시작된 지 겨우 1년 됐는데 1년 만에 불황이 다시 끝나고 정상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낙관론에 의존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가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내년 중반쯤 회복하리라고 보면 안전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10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은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였습니다. 실업률도 5% 수준으로 최악입니다. 일본경기가 언제쯤 회복될 것 같습니까.

    “일본의 딜레마는 경기를 부추길 거시정책 수단이 거의 고갈되었다는 점입니다. 금리가 제로 수준에 갔기 때문에 더 낮출 수 없어요. 일본은 국가 부채가 GDP의 135%로 커져 어떤 선진국보다 부채가 많은 나라가 됐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이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버티면서 10년 전 GDP의 50%였던 국가 부채가 135%로 늘어났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금융 부실을 치유하는 구조개혁뿐이라고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선 구조개혁, 후 경기회복 정책’을 선언해 일본 지식층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이들의 지지가 바로 정치적인 입지 강화로 연결될지는 의문입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2∼3년 안에 부실채권을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경기는 더 나빠지고 실업자는 늘어나고 기업 도산이 증가하는 고통을 이겨낼 만한 정치적 리더십을 지녀야 합니다. 일본 경기는 2∼3년 안에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전제하고 우리의 대응책을 세워야 합니다.”

    ―일본의 10년 장기불황으로부터 얻을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정치적인 리더십이 붕괴되면 국민이 아무리 절약하고 열심히 일해도 국가 경제가 어려워집니다. 일본 국민은 세계 어떤 나라 국민보다 절약하고 저축을 많이 합니다. 일도 열심히 합니다. 생산기술은 세계 제일입니다. 그러나 과거 산업화 시대의 구조를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에 맞게 바꾸지 못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구조조정을 이끌어갈 만한 정치적 안정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해마다 수상이 바뀔 정도로 정치가 불안정했으니까요.

    구조조정은 정부가 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틀을 만들어주고 실제로 부실 금융기관을 건실화하고 부실 기업을 살려내는 것은 경영진이거든요. 그중에서도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에 70∼80%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부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이익 나는 곳으로 만들어 주가가 두세 배 오르면 그에 비례해 CEO한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일본에는 없어요.

    이렇게 일본은 아직 관료주의 속성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료들이 전후 일본경제를 일으키는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죠. 글로벌 경제, 정보화 경제 시스템에서는 과거식으로 관료주의나 정부 간섭은 시장 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데 장애요인이 됩니다. 내년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 시스템이 안정돼야 합니다. 기업가 정신을 살려내는 시스템을 가져야 합니다. 관료주의 요소를 빨리 걷어내는 쪽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처럼 오래 고생할지도 모릅니다.”

    ―유럽 경제는 어떻습니까.

    “독일이 경제 규모나 영향력으로 보아 제일 중요한데 요즘 좋지 않아요. 유럽은 통합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고 단일 화폐가 금년부터 나오기 때문에 길게 봐서는 과거보다 더욱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경제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침체되는 미국 경기에 영향을 받고 있고 시스템 문제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 리세션에 동참한 상황입니다.”

    ―미국에 대한 테러가 국내외 경제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두렵습니다. 월스트리트가 초토화돼 뉴욕 증시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정도니까요. 투자자들의 심리도 얼어붙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회복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물리적 외상을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시각도 있고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의 기능이 마비상태에 빠져 일시적인 심리적 공황을 유발했으나 사건만 놓고 보면 돌발성이어서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심리적 불안은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해소될 것이라고 예상돼요. 다만 일시적으로 미주지역의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겠지요. 금값이 폭등하고 원유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나 곧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인 긴장사태는 주가·환율·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사태 추이를 주시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외환시장 거래도 정상적이어서 당장 큰 영향은 없습니다.”

    ―강원장께서는 경기급락을 막기 위해 금리인하, 재정확대 등 적극적인 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저금리 정책은 약발이 잘 안 듣는 것 같아요. 경기 확장정책을 쓸 때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적어도 5년 정도 지속해야 하는 중장기 대책입니다. 그 기간에 경기가 과열되거나 위축되는 사이클은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어요. 구조조정을 하면 경기 과열이나 경기 위축이 저절로 치유된다고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조조정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되 경기대책을 병행해야 합니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 대책 두 가지를 절대로 같이 해서는 안 된다면 나도 구조조정을 고르겠습니다.

    한계선상에 있는 기업들은 구조상 큰 문제가 없어도 경기가 나빠지면 부실기업으로 변해요. 국가 전체로 보면 구조조정의 부담이 자꾸 커진다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구조조정이 필요한 큰 기업들은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를 병행해야 합니다.

    금리인하는 두 가지 효과가 있어요. 첫째는 자금 흐름을 개선해주는 효과입니다. 지금 시중자금이 단기 부동화하고 있습니다. 기업들 처지에서는 중장기 회사채라도 발행해야 그 돈으로 투자할 수 있죠. 7,8월에 한국은행이 0.25% 포인트씩 콜금리를 낮추니까 중장기 회사채 금리가 낮아졌어요. 기업들로 봐서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서 시설자금을 확보하기가 그만큼 쉬워진 거죠.

    둘째는 예금 금리를 낮추고 대출금리까지 똑같이 낮추면 기업들이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금융비용을 줄이면 수익성이 그만큼 좋아지겠죠. 그 이익을 어디에 투자할지는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또 예금 금리에 비해 대출금리를 덜 낮추더라도 금융기관의 수지개선 효과는 있습니다.

    이미 저금리 상황에 들어가 있고 수출이 늘지 않으면 기업들은 금리가 낮다고 하더라도 투자를 늘릴 수 없지요. 그렇지만 자금 흐름의 개선이랄지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경영수지 개선효과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서도 선거용 선심이라느니 재정 건전성을 떨어뜨린다느니 하는 반론이 거셉니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하고 우선순위가 높은 정책 수단이 재정지출 확대입니다. 5조원 규모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GDP 경제성장률이 0.9% 올라가는 효과가 있어요.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 1998, 99년 두 해에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국가 부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3년째인 작년부터 통합 재정수지는 흑자로 전환됐어요. 금년도도 상반기에 경제가 나쁜데 통합재정수지는 흑자예요. 얼마 전 1차 추경 5조원을 국회에서 의결했는데 1차 추경을 감안해도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1%를 넘지 않습니다. 재정이 경기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려고만 하면 야당에서는 정부가 내년 선거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을 짜려 한다고 비판을 해요. 경제기반을 튼튼히 하는 공공투자 사업에 재정지출을 늘리면 선심성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기가 나쁠 때 조금 돈을 더 들여 건설중인 항만이나 공항의 공기(工期)를 단축시키면 경제 기반을 튼튼히 하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도 있습니다. 인천공항도 앞으로 활주로를 더 늘려야 합니다. 이럴 때야말로 그런 사업을 앞당겨야 합니다. 그게 무슨 정치적 선심 사업입니까.”

    최근 한나라당 의원이 국무조정실에서 국책연구소 연구원들한테 연구 결과를 언론에 보고하거나 기고할 경우 관계 부처와 상의해 허가를 받으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고 폭로를 했다. 국무조정실에서는 국책연구소 소장들이 모여 정부 방침이 확정되지 않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방침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을 막자는 이야기였다고 해명했다.

    ―KDI에서도 가끔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논문이 나오더군요. 하여튼 국책연구소가 정부의 홍보성 연구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연구소들이 부처에 소속돼 있어 부처에서 먹여 살리고 부처 장관이 연구원장을 임명해 완전히 시녀 노릇을 했어요. 지금은 부처에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고 모든 연구기관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속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모든 예산을 지원받는 게 아니어서 정부 비위만 맞출 필요가 없어진 거죠.

    정부에서 발주하는 연구과제별로 계약을 맺습니다. 연구비가 큰 과제는 경쟁입찰도 해요. 돈을 대주는 기관과 돈을 받아 연구하는 기관 간에 지켜야 할 책임의 범위는 존재합니다. 정부가 이미 확정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원론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디어와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더 생산적입니다. 물론 정부가 잘못 하는 일은 국민 입장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강원장은 지난 3월 취임사를 통해 “정부의 정책 방안이 경제 논리에서 일탈할 경우 비판해야 하지만 비판 기능에만 치중하면 국가 발전의 중심세력이 못 되고 주변세력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취임사 문맥만 놓고 해석하면 비판 기능 활성화가 달갑지 않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 정부에서 경제수석비서관과 재경부장관을 지낸 분이 이렇게 말하면 연구원들의 분위기가 위축되지 않을까요.

    “논리에 맞는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비판을 하더라도 반드시 대안을 내놓으라고 주문합니다. KDI에서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초점은 연구과제의 과감한 대외 개방입니다. 책상에서 머리에만 의존해 아이디어를 짜내기에는 경제 시스템이 너무 복잡합니다. 지식 정보화 시대인 만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비로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요. 폐쇄적인 연구를 해서는 안 됩니다. KDI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개혁했어요. KDI가 지금까지 연구한 것,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아무라도 KDI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하이닉스 반도체가 한국경제의 태풍의 눈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이닉스 반도체를 계속 살리기 위한 투자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습니다. 세계 반도체 경기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하이닉스 반도체에 1000억원 이상 빌려준 은행만 해도 10개가 넘어요. 정부가 아무리 고민을 해도 채권금융기관만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살리든지 죽이든지 채권금융기관이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반도체 가격이 128메가 D램 기준으로 작년 말 개당 7달러에서 지금 1달러70센트로 떨어졌어요. 어떤 제조업도 1년 사이에 제품가격이 5분의 1로 하락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통합을 한 이유는 구조조정을 하라는 거였지 두 기업을 산술적으로 하나의 기업이라는 우산 속에 온전 시키라는 통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통합 후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를 줄이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재무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하이닉스 반도체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적어도 제품 생산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기 때문이지요. 6월에 살로먼스미스바니 주관으로 12억5000만달러어치 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하지 않았습니까. 반도체 가격만 올라가면 살아날 기업이라고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반도체 가격이 언제부터 회복될지는 확언하기 어렵지만 반도체 가격 변동 주기는 그렇게 길지 않아요. 그걸 기다릴 동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채권 금융기관은 물론 하이닉스도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대만에 6억5000만달러에 매각하기로 합의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기사검색 프로그램에서 ‘빅딜’이라는 주제어를 치니 반발하는 LG에 대해 강봉균 경제수석이 ‘약속에서 이탈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압박을 가했다는 기사가 많았다. 결과론이지만 LG반도체와 현대전자를 합치는 바람에 덩치가 커져 매각이 더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빅딜 전체가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빅딜의 대표작으로 인식되는 하이닉스 반도체는 실패한 것 아닙니까. 빅딜 실패를 인정할 수 있습니까.

    “빅딜을 왜 했습니까.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재벌기업의 과잉중복투자, 과다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 추진됐습니다. 선진국처럼 소위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중복과잉 투자 기업들은 서로 합해져 중복 자산을 처분하는 회생방안을 시장에서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 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M&A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재벌들 스스로 빅딜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로서는 기업들의 합의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왕 하려면 빨리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지요. 빅딜 자체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빅딜은 단순히 중복투자 사업의 통합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구조조정의 출발점으로 삼으라는 뜻이었습니다. 통합 기업들이 불필요한 자산을 처분하고, 인력을 감축하고, 부채를 줄이는 일련의 구조조정을 반드시 진행했어야 합니다. LG나 현대가 분리된 채로 운영됐다 하더라도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고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이닉스에 못지않게 중요한 현안이 대우자동차의 매각이다. 시설이 낙후한 부평공장을 끼워 파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포드가 70억달러에 사겠다던 기업이 이제 그 가격의 10분의 1도 받기 어렵게 됐다.

    ―헐값에 처분할 바에야 외국업체에 넘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현대자동차가 인수하는 방안도 있지 않습니까.

    “대우자동차 처리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근로자들의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1992년 독일에서 종업원 10만명이 넘는 거대 동독 기업을 단돈 1마르크에 매각한 사건이 있었어요. 독일 의회에서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지요. 기업을 거저 넘긴 이유는 10만명에 달하는 종업원들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을 해외에 매각할 때 헐값매각을 시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특정 기업을 봐주기 위해 더 좋은 값에 사겠다는 기업을 제쳐놓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수가격보다도, 추가 투자를 하고 새로운 기술을 가져오고 수출시장을 개척함으로써 근로자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내 시장의 경쟁체제를 고려하더라도 현대자동차가 흡수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강원장이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할 때 재계 3위이던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됐다. 그의 저서에 보면 대우라는 한국경제의 뇌관이 터지지 않기를 노심초사한 나머지 김우중 회장과 여러 차례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돼 있다.

    ―대우그룹을 살릴 방법은 없었습니까?

    “김우중 신화는 부실기업 인수의 역사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김회장은 많은 부실기업을 인수해 사업영역을 키웠습니다.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모두 그렇습니다. 창업한 기업들이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여러 번 고비를 넘겼습니다. 대우조선은 1980년대 후반 위기상황에 처해 정부가 구제금융 조치를 해주었습니다. 김회장은 산업화 시대에 정부 도움으로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 후에도 정부가 도와주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지요. 김회장이 만기가 돌아온 빚을 갚을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지요.

    나는 정부 지원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전반적인 재벌구조 개혁을 추진하던 상황이었습니다. 5대 재벌 중 구조조정 속도가 가장 느린 게 대우그룹이라는 것이 국제적 평가였습니다. 만약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대우를 정부가 도와준다면 다른 재벌들한테 구조조정을 재촉할 명분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설사 정부가 도와주려 한들 일이 제대로 진행되겠느냐는 회의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게 아니라 채권금융기관에게 대우를 도와주라고 지시해야 하는데, 대우에 돈을 빌려준 채권금융기관이 50개가 넘더라고요. 그 많은 기관들에 정부가 지시를 한들 따라주겠습니까.”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은행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 정부 출자지분이 급격히 증가해 정부가 대부분 은행들의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최근 정부가 은행 민영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은행주식 소유 한도를 10%로 확대하면서도 산업자본은 4% 이내로 규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 조건을 달면 외국 기업한테 헐값으로 팔지 않고는 민영화가 불가능하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이 경쟁력을 갖추고 자율과 책임 경영을 하려면 정부가 주인이 돼서는 안 됩니다. 재벌들이 얼마 이상 은행주식을 사면 안 된다고 제한하면 개인투자자나 중소기업인, 외국인 투자자가 사는 길밖에 없지요. 외국인 투자자는 소유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물론 ‘큰 기업은 은행 주식을 4% 혹은 5%만 가져라’ 이렇게 규제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산업자본이 금융을 소유하게 되면 절대 자기 기업에 돈줄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합니다. 은행 주식을 많이 가진 산업자본이 자기 기업을 위해 금융자본을 활용할 때는 언제라도 소유주식을 뺏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소유지분에 제한을 둘 것이 아니라 감독시스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습니다.”

    통일부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북한에 3년 5개월 동안 3억달러를 지원했다. 임기는 아직도 1년 넘게 남았는데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지원한 액수 2억8400만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여기에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 3억8000만달러 등을 합하면 문민정부 지원 액수의 2.9배에 이른다.

    ―정부의 대북 지원에 대해서는 시각이 크게 엇갈립니다. 야당이 제기하는 퍼주기 논란에 대해 보수층에서 공감하는 분위기인데….

    “경제·정치적 측면, 세대간 인식 차이, 통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얽혀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만 좁혀서 보면 북한 지원의 대가는 바로 북한이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나옵니다. 재경부장관을 할 때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통으로 물어보는 게 두 가지예요. 한국의 노사안정과 남북관계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전쟁위험은 투자 판단의 중요한 변수입니다. 국제금융사회가 한국의 신용등급이나 투자 리스크를 계산할 때 한반도에 전쟁 위험성이 제기된다면 투자 리스크와 이자액수 모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북 협력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어떤 경제적 대가를 지금 당장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보다, 전쟁 위험을 줄임으로써 국제금융사회로부터 얻는 이익을 반드시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각국마다 나름의 지역협력체제를 갖고 있는데 일본과 동북아시아는 제대로 된 경제협력 시스템이 없습니다.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경제협력 공동체를 만들려면 북한과의 경제적 장벽을 없애야 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히면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가 되겠다는 우리의 이상은 그만큼 제약을 받습니다. 대북 경제협력 사업은 공동의 번영이라든지 앞으로 통일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길게 보아 외국인 투자 유치, 동북아 경제협력체 구축에서 오는 효과가 더 큽니다.”

    김만제(金滿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시행한 일련의 사회복지정책이 사회주의적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진념 재정경제부장관은 과거 모시던 상사인 김만제 의장을 찾아가 사회주의라는 말은 빼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김의장은 이후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조찬간담회에서도 “이 정부가 외국에서 용도폐기된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고 공격했다. 좌파 정책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좌파 정책이니 사회주의 정책이니 하는 비난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유럽식 과잉 복지를 비판하는 의미다. 색깔론을 덧칠해 보수층의 정서를 자극하자는 계산도 들어 있을 것이다.

    ―이 정부는 사회주의 정책을 쓰고 있는 겁니까. 복지정책의 개념이 본래 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사회주의에서 빌려온 것 아닌가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경제정책 차이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우리나라 정당들은 정책적인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복지를 조금 더 중시하는 정당도 있고, 그보다는 자유기업주의를 선호하는 정당도 있으면 좋겠는데 불행히도 그런 차이가 없어요. 외환위기 후 구조개혁을 하는 과정에 엄청나게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습니다. 실업자 발생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구조개혁을 밀고 나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국민의 정부는 이른바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충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김만제 의장이 사회주의 정책이니 포퓰리즘이니 하고 비판한다면 잘못입니다. 외환 위기 덕분에 언젠가는 갖추어야 할 사회보장제도를 비교적 빠른 시일에 갖춘 것은 오히려 큰 발전입니다. 예를 들면 고용보험제도는 외환위기 당시에 소규모 기업이나 서비스산업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할 때 실업자를 돌보기 위해 고용보험을 전 산업으로 확대했습니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고 시장경제로 가기 위해 복지제도를 강화한 것입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무조건 도태돼야 합니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의식주·의료를 보장하고 자녀를 고등학교 교육까지 시킬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정부는 출범 초기에 4대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했습니다. 4대 개혁을 통해 경제의 펀더멘털이 강화돼 진정으로 외환위기가 극복됐다고 보는지요.

    “외환위기 후 추진된 개혁의 성과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평가가 있습니다. 국가 신용등급과 기업 및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등급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도 그 성공이 입증됩니다.”

    ―재벌이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해서 재벌개혁이 중점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요즘 재벌들은 ‘개혁당했던’ 부분을 다시 되돌려 놓고 싶어합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신규 투자를 늘리려면 부채비율을 완화하고 출자총액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재벌에 대한 정부 규제도 점차 글로벌 스탠더드에 접근시켜 가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잘하고 있는데 우리가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재벌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지배구조의 민주성 확보입니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기업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고, 소액주주 권한을 법률적으로 강화했지만 실제로 작동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 스스로 노력해 빨리 선진국 수준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선진국들이 하지 않는 총액 출자 규제도 없어질 것입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기업 규모가 큰 것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자국 기업은 물론이고 유럽이나 일본 기업과도 M&A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 시대, 정보화 시대에 기업규모를 키우면 많은 시너지 효과를 얻습니다. 한국도 기업이 더 이상 커지지 못하도록 규제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공정하게 경쟁하느냐, 얼마나 경영이 투명하며 민주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보면 기업규제 제도는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강원장은 문민정부 시절 노동부차관을 지냈다. 최근 노동계의 최대 현안은 주 5일 근무제다. 정부는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많은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고, 여가시간이 많아져서 소비가 늘어나며 문화 관광산업이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기업들은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비용이 15∼20%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년 7월 시행을 목표로 강력하게 주 5일근무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부작용이 없을까요.

    “토요일에 놀게 되면 산술적으로 법정 근로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4시간이 감소하기 때문에 9%만큼 일을 덜하게 됩니다. 만약 생산성 증가나 새로운 여가산업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을 적게 한 9%만큼 경제 성장이 감소한다는 단순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산업의 80%를 점하는 서비스 부문은 토요일에 4시간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산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조업 부문은 토요일 휴무제를 하더라도 공장 가동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습니다. 토요일 공장문을 닫기보다는 일은 하되 토요일 근무하는 4시간에 대해 임금을 150% 지급해야 합니다. 단순계산으로도 4∼5% 임금상승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경제에 가장 큰 파급 효과는 여가산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광산업도 매우 중요한 부가가치 산업이어서 일자리를 늘리는 파급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1인당 소득이 1000달러도 채 안 되는데 토요일에 놉니다. 우리만 토요일에도 일해야 한다고 고집할 시기는 지났습니다. 노조도 중소기업의 임금 부담을 고려해 법정 공휴일을 일부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주5일 근무제를 채택할 때 업종의 특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강원장은 우루과이 라운드 쌀 협상 때는 실무협상단 대표로 활동했다. 젊은층의 식생활 변화로 인해 쌀 소비가 줄면서 올해 말 쌀 재고량이 약 1000만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고 관리비용만도 1000억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쌀도 남아도는데 2004년부터는 쌀 수입량을 더 늘려야 한다.

    ―일각에서는 3년 이상 된 저질미를 북한에 지원해주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여론 때문에 정부에서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아요.

    “1인당 연간 쌀 소비가 지난 10년 동안에 120㎏에서 94㎏으로 줄었습니다. 작년에 700만섬이던 쌀 재고가 금년에 1000만섬에 육박합니다. 쌀은 3년이 지나면 품질이 현격하게 떨어져 아무도 먹으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소자들한테 먹이는 궁여지책을 쓰고 있습니다.

    재고 관리비용도 크지만 쌀 수급이 균형을 잃으면 쌀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 농민 소득이 위협받게 됩니다. 북한의 식량사정을 보면 쌀을 기준으로 해서 연간 400만섬이 부족합니다. 남는 쌀을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없고 국내 소비도 늘리기 어렵다면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쌀 생산을 줄이든지, 생산을 크게 줄이지 않으려면 남은 쌀을 유용하게 처분할 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3년 이상 창고에 놔두고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먹지 못하는 쌀을 양산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진념 재경부장관을 수장으로 한 현 경제팀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경제팀은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외환 위기 직후만 해도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그만큼 유리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위기의식이 많이 감소한데다 야당이 제1당이 된 상황이어서 그만큼 일하기가 어려워진 거죠. 경제팀이 아무리 잘해도 세계적인 불황 때문에 생기는 경기 둔화요소를 역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눈치 보지 말고 조금 더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고 더욱 적극적으로 경기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공·사석에서 하고 있습니다.”

    강원장은 YS정권에서는 노동부차관·경제기획원차관·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냈고, DJ 정권에 들어서는 경제수석·재정경제부장관을 지냈다. 호남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다 DJ 정권을 만나 관료생활의 꽃을 피운 셈이다.

    ―관료생활만 해오다 작년 총선에 ‘징발’돼 분당에서 쓴잔을 마셨는데요. 분당 일산이 수도권의 대표적 신도시지만 투표 성향이 많이 다른가 봐요. 일산은 두 명 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어요. 분당은 두 석 모두 한나라당이 차지했고…. 일산에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기 때문인지…. 차기 정권에서 못다 이룬 꿈을 펴볼 생각은 없습니까.

    “YS정부 때 정보통신부장관을 하면서 이걸로 직업관료 생활은 다 끝났다고 판단했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경제수석과 재경부장관을 합해서 외환위기 초 2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요. 다행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외환위기 초기 2년 동안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났고 과거 산업화시대에 누적된 문제들을 치유하는 구조개혁의 틀이 잡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걸로 제 사명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강원장은 최근 ‘구조조정과 정보화시대의 한국경제 발전전략’이라는 책을 탈고했다. 1969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경제관료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 2001년 재경부장관으로 물러나기까지 32년간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경제발전 전략을 제시한 책이라고 한다.

    기자의 경우 경제인을 인터뷰할 때는 사전에 질문요지를 보내준다. 임기응변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정확한 통계수치도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강원장은 경제학박사 보좌역을 두고 있음에도 스스로 꼼꼼하게 작성한 답안을 들여다보면서 답변했다. 성실한 자세였다.

    명망 높은 학자와 이야기할 때는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척할 필요가 있다고 루쉰(魯迅)이 말했다. 너무 모르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너무 잘 알면 미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강원장은 어려운 경제를 쉽게 풀어 말하는 재간을 지녀 이해가 되지 않는 척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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