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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金九쿠데타 기도설, 염동진 배후설은 근거없다”

<백범 암살관련 美발굴문서 완전분석>

  • 도진순 < 창원대교수·사학 >

“핵심은 金九쿠데타 기도설, 염동진 배후설은 근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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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동진은 백범에 대해 적대적이라기보다는 상호의존적이었다. 염동진이 안두희에게 김구 암살을 지시했다는 언급은 문서 어디에도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방선주 박사와 정병준 박사가 귀중한 문서인 ‘김구: 암살 배경 정보(1949. 6. 29)’(이하 )와 ‘남한 내 우익 활동(1948. 11. 11)’(이하 )을 발굴함으로써, 지난 9월 초 각 신문들은 백범 암살에 대해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크게 보도하였다. 하나는 안두희가 CIC 요원(agent)이었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백범 암살에 미국의 개입을 추정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백의사 총사령 염동진이 안두희에게 백범 암살을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관련혐의에 대해서는 필자도 이미 한두 번 분석·주장한 바 있다(‘백범 암살의 배후는 미국 CIC인가’-‘월간 말’ 1992년 5월호. ‘백범 김구 시해 사건과 관련된 안두희 증언에 대한 분석’-‘성곡논총’ 27집 4권). 반면 백의사 관련사실은 아무도 주장한 바 없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발굴된 문서에서 언급되지도 않는 명백한 오보라고 판단된다.

우선 에서 주목할 내용을 간추리면 ① 안두희가 백의사 내 혁명단이라는 특공대 제1소조의 구성원이며, 아울러 CIC 정보원(informer) 내지 요원(agent)이었다는 것 ② 청부 암살 전문 조직인 백의사의 총사령 염동진이 암살을 지시하면 단원들은 피의 맹세를 하고 수행한다는 것 ③ 염동진이 김구를 추종하는 우익 장교들의 내부 동향을 CIC 요원에게 제공하였다는 것 ④ 이러한 염동진에 의하면 1948년 말 당시 김구를 추종하는 일단의 우익 장교들이 반이승만정부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② 부분에서 “백의사의 총사령 염동진이 안두희에게 백범 암살을 지시했다”는 구절은 문서 어디에도 없다. 은 주정보원 염동진을 설명하면서 백의사가 청부 암살을 즐기는 테러단체이고, 암살을 명령받으면 피의 맹세를 한다는 단원의 규율을 참고로 기술한 것뿐이다. 이 가운데 안두희와 관련되는 부분의 원문은 “He(안두희: 역자) has also taken the blood oath to assassinate, were he ordered to do so by Mr. Lyum Tong Chin”이다.

언론의 오보

이것은 안두희가 실제 염동진으로부터 암살지령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만약 암살지령을 받았다면(were he ordered to do so by Mr. Lyum Tong Chin)” 그도 다른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피의 맹세를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가정적 조건문에서도 염동진이 ‘김구’ 암살을 지령했다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단순한 구절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서가 안두희를 비롯해 백범을 암살한 인물이나 조직을 파헤치는 것이 기본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서를 통독해 본 사람은 쉽게 알 수 있듯이, 문서 전반의 흐름에서 염동진-백의사와 김구의 관련은 적대적이라기보다 상호의존적이다. 먼저 모두에 “김구의 밀고로 염동진이 중국공산당에 잡혀 고문을 당했다”는 구절은 염동진이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며, 또 사실과 다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염동진은 김구의 밀고로 중국공산당에 잡혀 고문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 관동군에 체포되어 밀정이 되었다.

다음 염동진이나 백의사는 광복 이후 백범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염동진이 김구씨에 대해서는 때때로 격렬한 비난을 가하면서도 동시에 군사적 견지에서 김구의 장점과 가능성을 격찬한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염동진은 때때로 김구에 대해 비판적이기는 했으나, “염동진의 김구에 대한 비판은 중국에서 그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이승만 정부 인사들에 대한 증오에 미치지는 않는다”는 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당시 염동진은 적어도 이승만 정부측보다는 김구측을 더 선호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당시 염동진은 스스로 김구를 수반으로 하는 군사정부를 원하고 있는 일종의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민간인(염동진)은 스스로 김구의 개인적 친구라고 말한다” “염동진의 추종자(백의사) 대부분은 김구씨의 추종자” “염씨는 김구씨와 비밀 연락과 접촉관계를 갖고 있으며, 염씨는 한국군 내부의 우익 반대파(Rightist dissidents)의 통신을 김구씨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자 노릇을 해왔다” “그 민간인(염동진)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승만이 수반인 정부보다는 더 강력하고 군사적인 유형의 정부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 민간인은 김구가 한국의 지도자가 되면 일본과 미국이 훈련시킨 200만의 한국군을 갖게 될 것이며, 필요한 경우 이 한국군은 그를 따라 38선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부된 편지()는 북한의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에서 소요와 폭동이 있은 직후 우익 군사파벌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의 형성 단계에 김구씨와 염동진씨가 같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등에 이르면 당시 염동진은 백범과 상호의존적 관계로 보는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관계의 연원은 별도의 검토를 요하지만, 적어도 1946년 찬탁·반탁과 좌우대립의 정국에서 백의사가 임시정부의 정치공작대와 연계하여 대북 테러공작을 전개한 사실은 꽤 유명하다(도진순, 1997,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 76~80쪽). 1946년 3월1일 평양역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대회에서 백의사 요원들은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투척하였다. 당시 소련 장교 노비첸코의 헌신적인 경호로 김일성은 무사하였으나, 노비첸코는 오른팔을 절단하는 중상을 입었다.

이후 1983년 북한과 소련은 노비첸코를 기리는 영화 ‘영원한 전우’를 공동 제작하였고, 1984년 김일성은 소련을 방문하면서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하여 노비첸코를 만났다. 올해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러시아를 방문할 때 노보시비르스크역에서 노비첸코의 유가족을 만날 것인지가 이슈가 된 것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 때문이었다.

이상의 언급을 정리하면 위의 두 문서에 보고된 범위 내에서 염동진은 백범에 적대적이기보다는 상호의존적이었다. 또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염동진이 안두희에게 김구 암살을 지시했다는 언급은 문서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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