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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1000만장’ 신화에 도전하는 ‘노 모어 러브’

9월의 가수 조성모

  • 임진모 < 음악평론가 > www.izm.co.kr

‘통산 1000만장’ 신화에 도전하는 ‘노 모어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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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미디어, 즉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스토리를 내세운 ‘투 헤븐’ 뮤직비디오에는 이병헌 김하늘 정웅인 허준호 등 배우들만 나왔다. 이 비디오에서 자동차가 불타는 마지막 장면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장안에 화제를 몰고 왔다.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뜨고 있는데 가수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잘못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조성모측은 가수에 대한 일반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위하여 가요순위 1위에 오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노출을 삼갔다. 이른바 숨바꼭질을 통한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숨바꼭질 놀이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상대의 얼굴이다. 그런데 얼굴을 숨기고 있으니 사람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과거 ‘불씨’와 ‘유리벽’의 신형원이 그랬듯 얼굴이 못생겨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느니, 신상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느니 하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곧 조성모는 얼굴을 드러냈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그는 결코 못생겨서 출연을 기피한 게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서글서글하고 도리어 매력적인 인상이었으며 예상보다 키도 컸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천진한 모습, 말 군데군데 나타나는 약간의 애교는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기획사의 전략인 줄 알면서도 팬들은 걷잡을 수 없이 조성모의 매력에 빠져 들어갔다.

조성모가 뜨자 곧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의 그룹 ‘스카이’, 그리고 ‘하루’의 김범수, ‘오빠’의 왁스, 그리고 ‘벌써 1년’의 ‘브라운 아이스’가 잇따라 ‘얼굴 없는 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모두 성공했다. 모두 다 조성모에 빚을 진 셈이다.



요즘 가수들의 과다노출 풍조에 시청자가 약간은 질려 있는 상황이라서 앞으로도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이 통할 소지가 높은 것으로 음악관계자들은 내다본다.

발라드는 전통적인 음악으로 승부를 거는 장르이기 때문에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발라드 가수들은 새로운 장치가 아니라 재래식 노래부르기가 생명이다. 신승훈이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지 않고도 서태지나 김건모와 팽팽하게 맞섰던 사실이 웅변해준다.

그러나 조성모는 발라드를 부르면서도 새로웠고, 드물게 트렌드를 낳은 인물이다. 조성모 이후 많은 발라드 가수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조성모가 공식화된 발라드가 아닌 ‘가시나무’로 리메이크 열풍을 주도하며, 발라드 물결을 확산시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심지어 이 곡의 오리지널 그룹인 듀엣 시인과 촌장이 14년 만에 재회하여 신보를 냈을 정도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조성모가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낸 것은 얼굴 없는 가수 전략으로 시장을 관통하게 해준 바로 뮤직비디오였다. 이전에도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었으나 조성모에 와서는 CD제작 이상으로 비중이 높아졌다. 백마부대 마크를 단 국군이 월맹군에 게 몰살당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대해 월남참전전우회가 문제를 삼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사건은 뮤직비디오의 힘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실례일 것이다.

뮤직비디오냐 비디오뮤직이냐

과거의 뮤직비디오는 대부분 노래를 살리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뮤직비디오란 음악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매체다. 중심은 엄연히 음악이다. 그러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는 반대였다. 노래보다 영상에 더 액센트가 있었다.

무엇보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투 헤븐’의 이병헌 김하늘 정웅인에 이어 ‘슬픈 영혼식’에는 신현준 최지우 정준호가 나왔다. 이런 톱스타들이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슬픈 영혼식’은 2억원을 들여 홍콩에서 촬영했다. 한 편의 영화나 다름없었다.

‘가시나무’ 역시 이영애 김석훈 황인영 구본승 등 유명배우가 연기를 맡았으며 ‘아시나요’에는 모델 출신의 신민아가 출연해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스타동원 전략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어 배용준과 이나영을 ‘잘 가요 내 사랑’ 뮤직비디오의 주연으로 출연시켰다.

제작비는 외부에 알려지기로 자그마치 7억원. 음반에 보통 1억원의 제작비가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음반 7장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물량공세다. 모든 뮤직비디오는 조성모 전문감독으로 이미지를 굳힌 김세훈 프로듀서가 지휘했다. 조성모 덕분에 그는 현재 뮤직비디오업계 최고의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쟁쟁한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은 곧 뮤직비디오가 영상연기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상이 스토리 구조를 취한 하나의 드라마나 영화형식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대부분 그의 뮤직비디오 내용은 노래의 가사와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았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에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연기자가 나온다면, 보는 사람은 당연히 눈길을 둘 수밖에 없다. 조성모 비디오가 히트를 친 이유는 이 같은 영상세대를 겨냥한 스타배우 전략 때문이었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뮤직비디오란 엄연히 음악이 영상을 받쳐주는 것인데 도리어 영상이 음악을 짓누른다는 것이었다.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비디오뮤직’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팬들은 “조성모와 함께 비로소 흥미롭게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며 그러한 원칙론에 개의치 않았다.

이런 볼거리 위주의 뮤직비디오가 잇따라 만들어지면서 뮤직비디오를 방송하는 국내 유선방송 M.net과 KMTV의 시청률도 하루가 다르게 상승했다. 단순히 음악을 치장하는 건조한 영상 수준이 아니라 조성모를 스타트로 드라마 형식을 갖춘(dramatized) 재미있는 뮤직비디오가 쏟아진 데 따른 결과였다.

지금도 음반제작자들은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노래하는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느냐 아니면 드라마 형식으로 가느냐는 갈림길에 선다. 그만큼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조성모가 주도한 트렌드다. 하지만 유명배우를 쓰고 해외촬영까지 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 주머니가 얇은 제작자들은 괴롭기 짝이 없다.

조성모는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슬쩍 또 하나의 재능을 선보였다. ‘슬픈 영혼식’을 본 사람들은 우선 조성모가 얼굴을 드러낸 것에 놀랐고, 게다가 신현준 최지우 정준호에 못지않은 연기솜씨를 보인 것에 혀를 내둘렀다. 가수들은 대개 연기가 본업이 아닌지라 배우들 사이에 끼면 자기도 모르게 위축된다.

그러나 당시 데뷔한 지 1년이 겨우 넘은 조성모는 능란하게 배역을 소화했다. “노래가 괜찮네”에 이어 “얼굴도 괜찮네” 하며 놀란 팬들은 거기에 또 하나의 반응을 추가했다. “연기도 잘하네!”

팬들은 조성모의 노래가 가슴을 찌르고 얼굴도 마음에 들고 연기도 잘하는 것에 흡족해했지만 그것으로 조성모의 매력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조성모는 하나씩 자신의 진면목을 풀어나갔다. 이번에는 춤으로 일반의 예상을 깼다. 발라드 가수는 보통 춤과 무관하다. 발라드 시장을 개척한 이문세 이래 최성수 변진섭 김민우 그리고 신승훈에 이르기까지 발라드는 댄스와 벽을 쌓았다.

하지만 조성모는 발라드 가수가 빠른 댄스음악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의 데뷔앨범에서 ‘투 헤븐’ ‘불멸의 사랑’ 등 발라드가 연속 히트하고 나서 그 뒤를 이은 곡은 댄스 풍 ‘후회’였다. 이 곡이 세번째로 호응을 얻으면서 앨범의 수명이 길어졌고 마침내 신인으로 마의 100만장 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이 곡을 가지고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대개 발라드 가수가 빠른 댄스 풍 곡을 부를 때는 가볍게 상체를 흔드는 것이 전형인 데 반해 그의 춤은 나름의 독특한 동선(動線)을 지니고 있었다. 흔들다가 살짝 한쪽 손을 드는 순간의 제스처는 청중의 넋을 빼앗았다.

이 무렵 조성모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축제에 가장 초청하고 싶은 가수’로 뽑힐 만큼 인기가 치솟았다. 조성모가 대학축제에 출연해 춤을 추면 여성 팬들은 괴성을 질러댔다. 흥분한 그들의 입에서는 “춤도 잘 춰!” 하는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왔다.

가슴 저미는 발라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기 춤 등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를 오늘의 슈퍼스타로 비상시킨 원동력이다. 사람들은 한 우물만 파는 장인정신을 섬기기도 하지만, 연예인에 관한 한 갈수록 전천후 엔터테이너를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건모 이후 이런 경향이 더 노골화되었다. 하지만 조성모는 김건모가 댄스음악으로 다채로움을 보인 데 반해 발라드 가수로서 ‘듣는 음악’에 머물지 않고 영상세대에 부합한 ‘보고 즐기는 가수’의 위치를 굳혔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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