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이제 이인제 찍으면 이인제 된다”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입력2004-11-15 14: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김대중 대통령 정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겠다
    • 총재직 사퇴는 ‘새 질서’ 만들기 위한 것
    • 지방선거 승리로 대선 길목 열어야
    • 이인제는 미래, 이회창은 과거를 상징한다
    • 대선과 별도의 싱크탱크 만들겠다
    • 언론개혁, 자율에 맡겨야
    • 힐러리도, 로라도 아닌 김은숙 스타일 보여줄 것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상황 변화에 따라 적과 동지, 승자와 패자가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는 정치의 동태성을 비유한 것인데 최근 복잡했던 여권의 사정을 보면 실감이 난다.

    민주당이 10·25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그 책임소재를 놓고 동교동 구파와 당내 쇄신파들이 엎치락뒤치락 다투는 양상을 보이다가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당총재직을 사퇴하는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이 와중에서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전원 사퇴했는데 유독 ‘튀는 듯한’ 행보를 한 사람이 있다.

    이인제(李仁濟) 민주당 상임고문. 그는 대통령이 사퇴한 최고위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자 “사퇴한 이상 하늘이 두쪽 나도 가지 않겠다”며 반발했고 청와대는 할 수 없이 명칭을 최고위원간담회에서 중진모임으로 바꾸는 소동을 벌였다. 민주당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에 불과한 이고문이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청와대와 민주당을 쩔쩔 매게 하며 “내년 지방선거는 새 후보의 깃발아래 치러야 한다”는 ‘역린(逆鱗)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동안 ‘이인제 대세론’에 만족하며 당 쇄신과 개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던 이고문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변화가 온 것일까. 김영삼 전대통령처럼 이인제 고문도 대권 후보를 ‘쟁취’할 비장의 계획을 마련한 것일까.

    11월13일 서울 여의도 정우빌딩 5층에서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을 만나보았다. 이곳은 이고문 진영의 본부인 셈인데 벌써부터 대권을 향한 ‘전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100평에 달하는 사무실이 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이고문은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도착하자마자 ‘1분간의 화장’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 고심을 많이 했는지, 새벽부터 빡빡한 일정에 시달렸는지 약간 마른 얼굴이 피곤해보였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에 들어가자 이 고문은 자세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은 채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때로는 순발력 있는 유머로 2시간 동안 설명해 나갔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이고문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성보다는 ‘창조적 계승론’을 강조했다. 최근 며칠동안 청와대가 이고문에게 어떤 공을 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고문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시종 신중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교육, 안보, 인사, 의료, 검찰중립 등 현정권이 실패한 것으로 지적되는 부문의 정책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차별성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총재직 사퇴는 새 질서 위한 것

    ―김대중 대통령이 왜 총재직을 내놓았다고 생각합니까?

    “대통령 발표문에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생, 경제, 남북문제 등 국정 현안에만 전념하고 당의 경영에 관해서는 손을 떼겠다, 당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질서를 만들어라 이런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주당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라는 뜻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어차피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되면 후보한테 총재직을 이양하는 게 관행 아닙니까. 그게 좀 앞당겨졌다, 이런 의미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그후에 총재직을 이양했는데, 후보가 결정되기도 전에 총재직을 내놓으신 것은 한편에서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빠른 시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함으로써 근원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일찍 총재직을 내놓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해도 ‘모범답안’을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의 총재직 조기사퇴’라는 극단적 처방에 ‘새 질서 형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고문의 사고방식이다. 이고문은 인터뷰 내내 ‘새 질서’ ‘새 면모’ ‘미래’ 등의 단어와 ‘이인제’를 등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이고문은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 어떤 전제가 필요하다고 봅니까?

    “우선 이번에 우리 당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새로운 당의 면모를 세워야죠. 즉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고, 또 광범위하게 획득할 수 있는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게 되면 승리를 향해 힘차게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보다는 더 상향식의 민주주의가 숨쉬는 문민정당의 모습, 지역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정당으로 나가겠다는 강경한 의지가 배어있는 모습,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배격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그 과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정신이 배어있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다시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제 후보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건 너무 지나친 확대해석이죠.”

    ―이인제 고문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돼야 정권 재창출의 최소한 필요조건을 갖추게 된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렇게 쓰십시오. 하하.”

    이고문 반대진영을 중심으로 “이고문이 예전과 달리 허리가 뒤로 젖히고 목이 뻣뻣해졌다”는 비난의 소리도 들려온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이고문은 ‘교만’이라는 암초는 피하고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순발력을 발휘했다.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충분조건은 제3의 후보가 나오는 다자간 구도입니까?

    “후보는 많이 나오겠죠. 그러나 의미 있는 후보가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특별한 조건이 생긴다면 3파전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상황에서 보면 2파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당락에 영향을 주는 의미있는 제3의 후보는 나오기 어려울 겁니다.”

    지방선거 승리로 대선 길목 열어야

    ―영남 후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대통령은 전국의 국민들이 다 같이 한 표씩 행사해 그 표를 모아서 가장 많은 사람이 당선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역 이야기는 아예 할 필요가 없죠. 어느 지역 출신이건 국민의 표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니까. 울릉도 사람이건 제주도 사람이건, 어느 지역 출신은 안되고 어느 지역 출신이어야만 된다는 건 아전인수식 해석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정치현안에 대한 질문에 이 고문은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현정국이 그만큼 민감한 시기라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는 듯했다. 다른 후보의 전략에 대한 평가를 물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만 답할 뿐 가타부타 설명을 하지 않으려 했다. 당내 1위 주자의 여유일까.

    ―얼마 전에 이고문은 “내년 지방선거는 현 대통령의 깃발보다는 차기 대선후보 깃발 아래에서 치러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현 대통령의 깃발 아래 하는 것과 새 후보의 깃발을 가지고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한지를 판단해야 된다, 거기까지만 이야기했어요.”

    ―그 말씀에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후보가 깃발을 들어야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어있는 것 아닙니까?

    “제 판단은 있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아니죠. 현재 당에서 정치일정을 논의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제 의견을 당에 전달할 생각입니다. 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나름의 결론은 지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청와대나 당지도부가 오해할 만한 발언을 피하려는 인상이 역력했다. 그러나 10·25 재보궐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됐듯이 민심이 떠난 현 대통령의 깃발 아래서보다는 새 후보의 깃발 아래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이 낫다는 것은 일단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고문을 한단계 더 압박하는 질문을 던졌다.

    ―지방선거 전에 대선후보를 뽑아서 그 후보의 영향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경우, 만약 패배하면 대선후보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겁니까?

    “그건 그때 봐서 판단할 문제예요. 지금 미리 가정해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나면 대선으로 가는 길은 사실상 어렵게 되죠.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를 가정해서 대선후보 선출을 뒤로 미루자는 것은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지방선거에서 대선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죠. 그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야죠.”

    ―지방선거 후에 경선을 하자는 주장에는 대통령의 레임덕도 막고, 새로 뽑힐 후보가 치명상을 입는 것도 막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둘 다 의미가 없다는 겁니까?

    “예, 저는 의미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노무현 고문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어서 지방선거를 치렀을 때 부산 경남 울산 등 세 곳 자치단체 중에서 한 곳이라도 승리를 못하면 후보를 사퇴하겠다, 경선을 다시 치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이고문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고문이 후보가 된다면 필승한다고 생각합니까?

    “반드시 승리로 가는 길을 열어야죠.”

    창조적 계승 발전론

    ―우선 경선(競選)에서 대의원들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 급선무일텐데, 최다 득표를 위해 다른 주자들과 제휴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모든 분들에게 지원과 지지와 협력을 요청할 겁니다. 그리고 계파의식이나 파벌의식이 없는 사람이니까 모든 분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할 겁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고문은 한순간 당혹스런 표정을 짓다가 이내 “도와주리라 믿는다”는 낙관주의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내 사정은 간단치 않다. 2, 3, 4위 후보가 연대해서 1위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당내 후보 가운데는 자기가 “민주당의 제일 적자다”라며 ‘적자계승론’을 주장하는 분도 있고, “김대중 정권이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모두 챙겨서 가겠다”는 ‘부채·자산계승론’을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고문에 대해서는 “DJ를 딛고 올라설 것이다, DJ와 차별성을 내세울 것이다”라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IMF위기 타개를 위해 시작한 사회 경제 구조조정과 개혁, 그것을 통한 새로운 시장경제, 지식기반경제, 생산적 복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포용정책, 이런 큰 흐름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또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적 과제들이 계속 도전해올 텐데 이러한 도전을 국민과 함께 개척해 나갈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일종의 ‘창조적 계승 발전론’이란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그것은 저의 역사관입니다.”

    ―그런데 적자계승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결국 이고문은 양자라는 이야기인데요, YS의 적자였다가 민주당에 양자로 들어온 사람이 DJ를 계승할 수 있겠냐는 얘깁니다.

    “지금은 봉건시대도 아니잖습니까. 봉건시대의 정통성은 아들, 아들 중에서도 적자, 적자 중에서도 장자에게 있잖습니까. 그런 것들은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죠.”

    이고문은 21세기에 치르는 첫 대선에서 ‘적자·양자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듯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전후세대의 등장’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YS를 선택한 것은 문민정부를 선택한 것이며, DJ를 선택한 것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고문이 만약 대선후보가 된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만약이 아니라 꼭 돼야 됩니다. 하하. 이제 3김시대가 끝나는 것입니다. 저는 3김시대를 위대한 성취의 시대였다고 평가합니다. 3김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확고한 지평을 열었고, 중진국을 넘어 산업사회의 기초를 닦게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에 제가 후보가 된다는 것은 광복 이후에 교육을 받은 세대,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인생관을 확립한 세대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또 동족간에 이데올로기 때문에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대포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의 등장을 뜻합니다. 이제는 대결과 투쟁의 시대가 끝나고 창조, 개척, 도전의 시대입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나 시스템, 관행, 체질, 문화 등 모두가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회창 총재와 대선에서 대결할 경우 이고문을 선택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와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고, 이회창 총재를 선택하는 것은 구시대와 과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상대방을 비판해도 되는 겁니까? 우리 사회는 지금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로, 관치경제를 극복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생산적 복지로,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잖습니까. 권력의 비중은 낮아지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중시되는 성숙한 민주사회, 그리고 관치보다는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존중되고, 냉전의 얼음을 녹이고 화해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건설해야 될 미래 아닙니까. 그런데 이회창 총재를 떠받치는 세력들은 권위주의, 관치경제, 그리고 냉전체제를 관리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한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불가능한 일인데 이회창 총재는 광복 이전 세대입니다. 농업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세대입니다. 가장 치열했던 6·25를 겪고 냉전을 경험했던 세대로서 미래를 창조하는 데는 엄청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회창 총재는 과거를 상징하는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이고문이 박정희 전대통령의 이미지를 활용한 측면이 있는데, 21세기의 새로운 미래를 강조하는 것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일부러 의도해서 된 게 아니죠. 박정희 대통령은 농업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업사회를 헤쳐가고 건설하는 데 탁월한 역량과 전략을 갖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서 박대통령의 이미지를 봤다면 우리 국민들이 시대적 한계에 허덕이고 있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지역적으로는 호남, 계층적으로는 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를 받아 이들의 원망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인데….

    “후보가 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죠. 저는 고향이 충청도지만 경기도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사람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에는 제 고향보다도 영남에서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이인제라는 정치적 실체가 지역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후보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지역주의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관치경제를 주도하면서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을 편 반동으로서 사회통합을 중시해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지향하겠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여러 경제주체들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을 겁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영남 출신의 주자가 호남인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치가 발전하면 지역주의는 저절로 극복되는 것이지,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통령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해서 여론조사를 하면 1,2등을 다투시는데, 식자층, 교수들을 상대로 하면 지지율이 떨어집니다. 왜 그런지 원인을 파악하고 계십니까?

    “아마 정확하게 예측을 못해서 그럴 겁니다. 지금 하면 다르게 나올 겁니다.”

    이인제 찍으면 이인제 된다

    ―이고문이 대권 고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지난 대선 때 영남 사람들은 ‘이인제 후보를 찍어서 DJ가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 이인제라는 인물이 다시 나오면 절대로 찍지 않겠다’는 정서가 있습니다. 이런 영남지역의 비토정서를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이번 대선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은 안나옵니다. 이번에는 이인제 찍으면 그냥 이인제가 됩니다.”

    영남지역의 비토 외에 이고문의 아킬레스건은 주로 50대 이상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나돌고 있는 ‘경선불복론’이다. 이고문은 이런 비난을 그다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은 눈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경선불복을 한 적이 없다는 논리를 강변했다.

    “저는 경선 과정에서도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했고 약속대로 깨끗이 승복했습니다. 한마디도 투덜댄 일이 없어요. 그런데 당시 경선이 끝난 지 얼마 뒤부터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이회창 총재의 두 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군대를 안 갔잖습니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전쟁이 나면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죽으라고 명령하는 자리 아닙니까. 그래서 국민의 지지도가 55%까지 올라갔다가 12%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상황이 석달인가 지속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언론들은 다시 저를 넣어 국민들에게 계속 지지여부를 물었어요. 제 지지도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민주정치는 한마디로 여론정치 아닙니까.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더라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돼 국민의 지지가 없어지면 사임하는 것 아닙니까. 후보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자리인데 당연히 사퇴하거나 당에서 교체해야죠. 우리 당의 후보가 그나마 승리를 전혀 기약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됐습니다. 저는 애초에 제 뜻을 다시 세우기로 결심한 겁니다. 그래서 맨 몸으로 나와 버스 한 대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정치의 명예혁명을 성공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다만 독자출마한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받더라도 달게 받아야죠. 그러나 한나라당이 저 때문에 정권을 못잡았다거나 경선불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자기변명이고 궤변이죠.”

    ―결과적으로는 이고문 때문에 이회창 총재가 떨어진 셈이죠.

    “그렇게 해석하면 안되고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겁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이인제가 안나왔다, 그러면 누가 더 표를 많이 받았을지 누가 압니까. 하늘만이 아는 거예요.”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면 ‘3김시대의 종언’이 될 거라는 이고문.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3김의 정치유산을 많이 물려받았거나 나머지 유산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큰 인물로 꼽힌다. YS밑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DJ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JP와 충청권 맹주를 다투고 있으니 말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공사석에서 여러차례 이고문을 가리켜 ‘탈당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가서 실패했다, 한나라당에 남아 있었으면 지금 이회창 총재 대신 후보가 되는 건데 DJ 품에 갔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YS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은 제가 존경합니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현재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심 YS의 지지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까?

    “지지는(YS가) 알아서 하시겠죠.”

    ―만일에 대선 후보가 돼서 영남 유세를 할 경우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요청하실 생각입니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다음 대선에서 마지막 결정권을 행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는데, 영향력이 있다고 봅니까?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JP가 만약에 이고문 반대편에 섰을 경우에 아쉽지 않을까요?

    “(JP에게)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요청을 드려야죠.”

    ―여러 번 요청했잖습니까?

    “응답이 없으니까 앞으로 더 해야죠.”

    이고문이 YS와 JP에 대해 발언한 내용을 음미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자신에 대해 비토정서가 강한 부산 경남 지역에 영향력이 있는 YS의 지지에 대해서는 여유를 부리는 반면, 충청권에서 이고문은 ‘떠오르는 해’인 데 반해 ‘지는 해’로 묘사됐던 JP에 대해서는 집착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대비는 JP는 이회창 총재와 손잡을지 몰라도 YS는 이회창 총재를 지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고문은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창조적 계승 발전론’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런데 현정권의 정책에 대해 이고문의 평가를 들어보면 ‘계승’보다는 ‘창조’쪽에 은근히 무게가 실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고문은 남북문제, 경제정책, 사회·복지정책 등에서 현정부의 실책과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민심 이반은 경제 어려움 때문

    ―현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민심은 말이 아닙니다.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에 있다고 봅니다. 특히 서민, 중산층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지역의 경제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구조조정과 개혁의 후유증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세계경제마저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경제 상황이 매우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미래가 굉장히 불확실합니다.

    거기에 더해 의약분업정책이라든지 몇몇 정책들의 부작용이 국민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사 문제에 대한 편중 시비도 민심이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정권의 개혁정책 가운데 잘못됐거나 개선할 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의료보험의 통합과 의약분업 실시로 현실화된 부작용은 우선 국민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고 두번째는 재정의 급속한 악화로 환자 본인의 부담, 피보험자 전체 보험료 부담의 가중을 가져온 점 등이죠. 새로운 제도의 장점, 즉 항생제 오·남용 방지로 인한 국민 건강의 증진이라든지 의약 현대화를 통한 의료수준의 향상이라든지 이런 것은 장기적인 혜택이고 당장 국민이 느낄 수 없죠.

    그래서 우리가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 사전에 충분히 예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면서 점진적으로 해나갔더라면 좋았지 않겠느냐, 그 점에서 정책의 오류가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를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고, 앞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강력하게 강구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정책의 대부분이 좌초한 것을 두고 방향은 옳지만 실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고문은 어떻게 봅니까?

    “크게 보면 아무리 개혁의 비전, 목표가 정당해도 수단이나 방법, 또 그것을 동원하는 전략,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과정, 이런 전략과 전술이 동원되지 않으면 그 개혁정책은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거죠.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으려 할 때 좋은 설계도와 좋은 자재가 있다고 해도 주변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잖습니까.”

    ―가령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생각은 없습니까?

    “교육정책도 모든 것이 수정 보완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자꾸 폐기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하는 강박관념을 갖는데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잘못된 정책이라도 이미 지나간 것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 아닙니까.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현실에 맞게 수정 보완 발전시켜 나가야 되겠죠.”

    언론개혁 스스로 해야

    ―언론개혁에 대해서는 민주당내의 다른 인사들과는 달리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발언을 자제해왔는데….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 해야죠.”

    ―그런 면에서 현정권이 한 언론개혁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겁니까?

    “현정권은 언론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언론기업의 투명성, 조세나 공정거래에 있어서의 공정성, 그런 것을 위한 법 집행을 한 것이죠. 언론 당사자와 야당에서는 언론탄압의 의도를 가지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전 언론사를 상대로 일시에 강도 높은 법 집행을 한 것이 과연 정당하냐 하는 점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하여튼 본질적인 것은 언론개혁인데 그것은 언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자유롭게 해나가야 되고, 정부나 정치권은 언론의 그러한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세무조사를 한 것은 언론개혁과는 별개로 보고, 세무조사가 과연 언론탄압의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말씀이죠?

    “그건 두고두고 평가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최근 ‘한겨레’ 기자가 쓴 책에는 청와대 인사가 세무조사를 언론사 타격용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책은 제가 읽어보지 않았고 기사만 봤는데요, 그 책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이고문은 함정이 될 만한 질문에는 특유의 순발력으로 잘 대응해왔다. 그러나 언론개혁과 관련해서는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사주가 구속된 적이 있는 언론사들 모두의 구미에 맞는 답안이 없기 때문일까.

    ―현정권이 가장 자랑하는 정책이 햇볕정책입니다. 그런데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침범했을 때인가요? 이고문은 그때 단호하게 대처해야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압니다. 햇볕정책이 안보에 부정적인 효과를 끼치고 있다고 봅니까?

    “우리는 반세기 넘도록 냉전체제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리 헌법은 냉전헌법 그대로고 북한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완전히 적대시 하고 무시해가지고는 통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오히려 실체를 인정하고 화해와 협력을 넓히고 그래서 평화를 정착시킴으로써 통일로 가야 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판단하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햇볕정책은 어떻게 보면 역사의 진행에 따라서 취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정책입니다.

    그러나 저는 남북관계의 냉전을 녹여나가는 과정에서도 대한민국의 존엄과 권위 그리고 튼튼한 안보, 이것은 절대로 손상 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큰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과 신뢰를 구축하고 교류협력을 넓혀나갈 때만 이것이 진정한 평화를 향한 의미를 갖게 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 상선들이 갑자기 영해를 항해하겠다고 들어왔을 때 저는 좀더 강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취해야 할 분명한 결단이 미흡했기 때문에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김대중 대통령께서 다른 각도에서 판단하셨는지 아니면 대통령이 판단하기 전에 지휘관들이 잘못 판단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의 생각은 좀더 원칙대로 단호하게 했으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존엄이나 가치 그리고 안보의 원칙을 북한에 확인시켜줄 수 있지 않았겠느냐 이겁니다. 작은 문제에서부터 분명하게 원칙을 확인시켜줘야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북 경제지원을 두고 언론과 야당에서는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퍼주기식 지원이라는 것이 우리의 국가 존엄과 안보를 포기한 행동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십니까?

    “야당에서 그런 주장을 많이 하는데요,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북 포용정책,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식량이나 비료, 의약품 등 인도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금강산 관광사업과 같은 민간 비즈니스 차원에서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물자들이 들어가고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위해서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남북관계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하는 것들인데 그걸 퍼주기라고 하면 우선 북한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주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우리 국민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협력이나 지원의 의미를 스스로 폄하하는 것이 되겠죠. 우리가 북한과 일체의 지원이나 협력을 끊기로 작정했다면 모르지만 앞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되는데 상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그 의미를 스스로 폄하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정말 한나라당이 반대한다면 지원하지 말라, 협력하지 말라, 이렇게 요구해야 되는 것이지, 퍼주기라는 것은 저쪽이나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고 아주 잘못된 것이죠.”

    ―만약 내년에 대통령에 당선돼 대한민국을 맡은 CEO가 된다면 1년 안에 해야 될 가장 시급한 일이 뭐라고 봅니까?

    “집권하면 여러 분야에 걸쳐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야 되는데 지금도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혁명은 그야말로 뒤집어엎는 겁니다. 거기에는 희생자가 있게 마련이죠. 그러나 개혁은 모두가 다같이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치의 혁신, 정부의 재창조 작업이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권에서는 IMF위기 때문에 4대 부문 개혁에 매달리느라 공공분야의 개혁은 손을 못댔습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정치 질서, 관료주의로는 더 이상 사회발전을 견인해 낼 수가 없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자유롭고 활력에 넘치는 시장을 만들어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하고 생산하게 하려고 합니다. 지식기반의 경제는 하루가 늦으면 10년이 늦어질 수 있는 거죠. 이 부분에 관해서 지금도 (김대통령이) 많은 일을 하셨지만 보다 획기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신산업결집지역’과 같은 가시적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교육과 여러가지 복지제도 등인데 이런 문제들은 서두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협력을 끌어모아 아주 길게 보고 단계적으로 잘 계획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과 별도의 싱크탱크 만들겠다

    ―정치와 행정의 개혁과 새로운 경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건데, 특히 정치와 행정부분의 개혁은 국민들의 불만이 많은 분야입니다. 선거제도나 대통령 임기도 고칠 생각입니까?

    “그런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방적으로 갈 수 없는 것이고,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정치에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고, 국민들의 의식에 맞는 헌법 개정작업을 해서 정치의 현대화, 정부의 재창조 작업을 해나갈 것입니다. 선거운동과는 별도의 싱크탱크를 만들어 국가경영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인제 고문은 ‘전략’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가령, 정치개혁에서도 ‘전략적 접근’을 제시했고 현정권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전략부재’를 거론했다. 마침내 인사와 검찰개혁문제에 이르러서도 이를 “정말 중요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부분이 두 가지입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인사와 검찰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인데요, 우선 인사제도와 관련해서 이고문은 복안이 있습니까?

    “저는 정말 인사가 가장 중요한 전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재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잘 만들어서 적재적소의 원칙하에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인재를 발굴하는 시스템, 그러니까 인재풀을 과학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 인재를 충원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죠.”

    ―이고문과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전혀 없어도 적재적소의 원칙에 따라 등용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동안 장관이나 지사를 지내면서 그런 원칙을 지켜왔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지연, 학연, 혈연 따위는 고려하지 않을 겁니다. 노동부장관과 경기도지사를 할 때 분명하게 이 원칙을 지켰고, 노동부와 경기도에서 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다 있습니다. 적재적소, 신상필벌, 이 두 가지 원칙만 적용해 왔습니다. 물론 저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나, 그것 때문에 적재적소가 아닌 데 등용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역적인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청와대 파견검사 없어야

    ―사람은 식사 전과 후의 생각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검찰을 정권의 도구로 사용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텐데요.

    “검찰 중립 문제에 대해 저는 우리 사회가 법의 지배가 통용되는 사회로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치(Rule of Law)가 아니라 법이 권력자의 편의에 의해서 마구잡이로 이용됐기 때문에 법 자체를 신뢰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국민의 대표들이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서 법규범을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법을 통해서 사회정의를 지키는 경찰·검찰로서 권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검찰과 경찰이 정치권력의 수중에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야당은 계속해서 이것을 공격함으로써 경찰·검찰이 법으로 사회정의를 지키는 권위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검찰이 권력의 수중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우선 청와대에 검사가 파견되는 일이 사라져야 합니다. 검찰을 지휘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는 비서조직도 없애야 됩니다. 그리고 법무부장관은 다른 장관보다도 특별한 지위를 가져야 합니다. 다른 장관은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만 법무부장관에게는 보다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검찰조직을 관장하는 검찰총장은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도록 해야 합니다. 검찰조직이 어떤 경우에도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진정으로 권위를 가지고 법의 지배를 구현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고문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중도우파’라고 말씀했는데, 그건 현정부는 중도좌파에 가깝다는 걸 염두에 둔 겁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중도좌파니 중도우파니 하는 패러다임이 우리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자가 하도 물어보길래 경쟁과 효율이 우(右)쪽에 있다면 평등과 정의는 좌(左)쪽이다, 그러니까 우쪽은 생산에 비중을 둔 시장이고 좌쪽은 분배에 비중을 둔 시장이겠죠. 저는 지금 우리나라는 경쟁과 효율을 통해 생산의 원천을 키우고 성장의 엔진을 가동해 밀고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위가 바로 분배와 정의입니다. 그래서 나는 중도에서 약간 우쪽에 가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겁니다.”

    “집사람은 발이 변형됐어요”

    이고문의 한 언론특보는 요즘 시민단체들이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만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해줄 것을 쪽지로 요청했다.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로부터 국가정책에 관해서도 상당히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씀한 적이 있는데, 이고문이 대통령이 되면 부인 김은숙 여사는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자기 본분을 잘 지키고 금도가 있는 사람입니다. 노동부장관을 하고 경기도지사를 할 때도 부인으로서 단 한번도 공적인 일에 관여한 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중정치를 맨주먹으로 시작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치를 오래한 것도 아니고, 거물이 후원해주는 것도 없으니까 다만 집사람이 발이 부르트고 목이 쉬도록 대중들에게 호소해 가지고 국회의원이 됐고 정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열심히 다니다 보니) 우리 집사람은 발이 변형됐어요.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절대로 본분을 잃은 적이 없어요.”

    ―활동적인 힐러리 여사 타입이 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내조형인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 여사 타입이 될 것 같습니까.

    “우리 집사람 스타일이 되겠죠.”

    곤혹스런 질문을 가볍게 넘기는 이고문의 순간적인 재치에 인터뷰를 지켜보던 여러 명의 언론특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고문은 헤어지는 순간, 악수를 나누며 “정말 힘든 인터뷰였다”며 홀가분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