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노무현당 노무현 후보면 영남 석권한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1-15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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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실한 지지 대의원 1500명
    • 김근태와 연대시기·방법, 개혁그룹에 맡겼다
    • 한화갑 선택 이해 안돼. 다시 평민당 하자는 건가?
    • 민주당으로는 집권 못해, 정계재편 해야
    • 본선경쟁력이 선택의 기준, 적극 홍보하면 승산 있다
    • 내가 후보 되면 한나라당 개혁파 흔들 수 있다
    11월10일 오후, 전북 덕유산 자락 무주리조트 내 티롤호텔 지하2층 대연회장. 농구장 만한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무대 중앙에는 대형 걸게그림이 걸려있고 ‘희망의 미래가 시작됩니다’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대연회장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연회장 옆 대기실의 대형 멀티비전 앞에 모여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2000명 이상은 됨직했다.

    ‘노무현과 함께 하는 사람들 무주단합대회’.

    행사의 명칭에서도 드러나듯 이날 무주리조트에 모인 사람들은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민주당 대의원들과 노고문의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 회원들이었다. 노고문 측 자체집계 결과 민주당 대의원만 2500명 이상이 무주리조트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모 회원과 개혁연대 관계자 등을 포함하면 대략 3000명. 한마디로 덕유산 자락이 이날 오후 노무현 지지자들로 넘쳐 났다.

    오후 5시를 조금 넘어서자 입구 쪽이 소란해졌다. 누군가 “지역화합 노무현”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이어 연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의 주인공인 노무현 고문이 행사장 입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노사모 회장인 배우 명계남씨의 소개로 노무현 고문이 단상에 섰다. 청중들의 “노무현” 연호가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노고문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제가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되도록 확실한 노무현 지지자만 모시고 오라고 부탁드렸는데 제 지지자가 아닌 분들도 많이 오신 것 같아요.”



    청중들 사이에 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아닙니다, 노무현, 노무현…”.

    “저를 지지하는 분들만 오셨다면 자리가 이렇게 비좁지 않을 텐데…. 만일에 여러분들 모두가 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들이라면 전당대회가 필요 없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1시간 10분 가량 계속된 노고문의 연설은 청중들의 열띤 박수와 환호로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날 노고문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집권을 위해 민주당의 체질개선도 요구했다. “더 이상 동교동이 좌지우지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더 이상 호남당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민감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과연 우리가 국민통합 정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직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국민통합을 성공시켜내야 합니다. 더 이상 동교동이 좌지우지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의 눈치나 살피고 사사건건 보고하고 지시받아야 하며 자기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타율적 정당의 한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더 이상 호남당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정권교체를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국민통합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영남포위론은 불가능해”

    노고문은 호남·충청연합으로 정권재창출을 도모하는 동교동계와 이인제 고문 진영을 겨냥한 듯 “영남포위론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남에 유권자의 28%가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숫자 놀음을 해봐도 영남에서 30% 이상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민주당의 집권은 불가능합니다. 영남에서 제3의 후보가 나와 영남의 표를 분산시켜 주면 영남을 포위하는 구도가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요행을 바라면서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 다시 영남에서 ‘제2의 이인제’는 없습니다.”

    이날 노고문은 향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쟁점이 될만한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하나의 약속을 하겠습니다. 지자체 선거 이전에 민주당의 후보가 되어서 부산·경남·울산의 선거를 지휘하고 이 모두를 승리시키지는 못해도 단 하나라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당의 후보를 반납하겠습니다. 제 목표는 이 세 곳에서 모두 이기는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선거로 나가겠습니다. 적어도 하나만 이기면 선거는 끝난 겁니다.”

    이 대목에서 청중들의 환호성은 극에 달했다.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연호가 터져나왔다.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구호에 노고문은 잠시 연설을 중단하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이겼을 때만큼 좋습니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연설 말미에 노고문은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민주당이 대통령을 당선시키더라도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나라당이 다수당으로서 그 정부를 얼마나 흔들겠습니까? 여기에 맞서기 위해서 민주당은 민주개혁 통합세력들이 뭉쳐서 정계개편을 제안하고 정치판을 새롭게 짜야 합니다. 그 개편의 과정에서 대통령선거를 저절로 승리할 수 있고, 여대의 국회로 새로운 정권이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민주당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한나라당에 있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명분만 생기면 민주세력, 개혁세력, 통합세력이 하나로 되는 새로운 정당을 꿈꾸는 분들도 있다”며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계재편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노고문은 자신이 집권할 경우 국무총리에게 대폭 권한을 이양해 우리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살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총재 일인지배 체제에서 벗어나 총재가 독점하는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겠다고도 말했다. 무주대회는 참석자들의 반응도 뜨거웠고, 주인공인 노무현 고문도 대단히 만족스러워한 행사였다.

    11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노고문의 대선캠프인 지방자치연구원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무주연설에서 워낙 많은 쟁점을 쏟아낸 터라 그 배경을 탐색해보는 것이 인터뷰의 1차 목표였다. 아울러 그와 이인제 고문을 중심으로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는 민주당내 경선 전망에 대한 의견도 들어보았다.

    지지 대의원은 1500명

    ―무주단합대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이 행사는 저의 확실한 지지자를 운동원으로 만드는 연수과정으로 생각하고 기획했습니다. 1000명 내지 1500명 정도를 목표했는데 모집해보니까 회비를 3만원씩 받았는데도 숫자가 자꾸 많아지더라고요. 결국 2500명 이상이 돼버렸는데 나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이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을 데려오고, 지금은 대의원이 아닌데 앞으로 대의원 될 사람이라고 또 데려오고, 이렇게 해서 늘어났습니다. 그냥 뒀더라면 얼마나 더 왔을지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참석자를 줄이느라 애먹었습니다. 그날 오신 분 가운데 적극적인 지지 대의원은 1500명 정도였습니다. 정성껏 연설을 했는데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설 도중에 ‘대통령 노무현’구호가 나오니까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아직도 대통령 연호가 나오면 쑥스러워지네요.”

    ―노고문이 대선후보가 된 뒤 치른 지방선거에서 부산 경남 울산 등 PK지역 세 곳 자치단체장선거 가운데 한곳에서라도 이기지 못하면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다시 경선을 치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자신감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매 시기 전력투구해왔습니다. 내게는 아껴둬야 할 기득권이 없습니다. 대의원들에게 영남에서 이회창 표를 빼앗겠다고 약속하고 후보가 됐다면 그 정도의 결과를 보여줘야지요. 그런 약속이 없더라도 재신임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온갖 핑계를 대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만 봐왔기에 오히려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당연한 겁니다. 1996년 독일의 슈레더 총리가 작센지방의 지자제 선거를 치르면서 ‘일정수준 승리하지 못하면 대통령후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니까 라퐁텐 당수도 ‘좋다 그렇게 하면 밀어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화답해서 정권을 잡은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멋있게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부산 울산 경남 중에 하나도 못 건졌다, 그러면서도 대통령후보를 하겠다고 우기면 미안한 일 아니겠어요?”

    ―문제는 지방선거 이전에 당내 경선이 치러졌을 경우고 아직까지는 경선 일정이 불투명한데요.

    “지방선거 전에 대선 후보 선출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당은 대표선수를 내세워서 선거를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도 당 대표선수를 중심으로 선거를 하는 겁니다. 서구의 총선을 예로 들어 어느 정당이 이긴다고 할 경우 수상은 누구인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신문이 선거결과를 보도할 때 슈레더 승리, 토니 블레어 승리라고 합니다. 이 경우 토니 블레어는 일개 국회의원일 뿐이지만 영국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수상 예정자인 토니 블레어의 승리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도 지방자치선거지만 대표선수를 내세워서 선거를 해야 합니다. 지자제 선거 전에 우리 당의 다음 정치 책임자, 우리당이 내놓은 국정책임자의 얼굴을 걸고 선거를 치러야지 그것도 없이 선거를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지자체선거 전에 후보경선을 하게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가 또 맞붙는 지방선거가 돼서는 안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이인제 고문은 지자체 선거전에 대선 후보를 정해야 할 뿐 아니라 관례상 후보가 당 총재까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권력의 집중이 문제입니다. 특히 대통령의 국회지배가 큰 문제입니다. 거기에 공천권까지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력집중 상태, 이것이 한국정치의 큰 병폐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걸 고치자면 대통령이 되면 당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고 대통령도 당권과 공천권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이인제씨도 얼마 전에 당정분리, 후보 당권 분리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든 간에 당대표는 대표 선거로, 후보는 후보 선거로 뽑게 돼 있습니다. 두 번 출마해서 다 되든 어떻든, 대통령제 국가에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 후보는 후보로서 선출하는 거지 당대표를 뽑아 그 사람에게 후보를 맡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주겠다”

    노고문의 ‘일인지배체제’ 타파에 대한 신념은 확고해 보였다. 무주 연설에서도 권력의 일인집중현상이 한국정치의 대표적 병폐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고문은 거의 신앙에 가까운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권력의 집중이 모든 정치판 해악의 원인일까? 이런 부작용은 대통령제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피한 현실 아닐까? 노고문은 권력독점을 반드시 타파해야 하며 심지어 자신이 집권하면 우리 헌법상의 내각제적 요소를 활용해서라도 권력분산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자체가 태생적으로 레임덕 문제를 안고 있고 이 때문에 레임덕을 걱정한 단임 대통령이 초기에 당을 장악하려 하고, 욕심부려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생긴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까 권력의 독점보다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요.

    “민주당이 다음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면 우리 대통령이 힘이 빠졌을까요? 제도의 문제보다 현실의 문제입니다. 레임덕이란 당내에서 차기 지도자에게 힘이 쏠리는 것을 말합니다. 단임제에서도 나타나지만 중임제를 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레임덕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오히려 한국에서 레임덕이 커 보이는 것은 대통령이 제도 이상의 권위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공천권이라는 게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 모릅니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력만 행사하는 합리적인 권력운용과정이 되면 레임덕은 훨씬 적어지지요.”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오히려 그런 공약을 내세워서 스스로 함정을 만들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만약 대통령이 되시면 2004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대통령은 임기 시작한지 일년 뒤에 딱 한번 공천권을 행사하면 끝이거든요.

    “공천권 필요 없습니다. 당을 왜 (대통령이)장악합니까? 당은 당대로 일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헌법상 권한을 가지고 일하는 겁니다. 더 큰 것은 국민의 지지와 존경입니다. 여론이 받쳐주면 누구도 거기에 저항을 못합니다.”

    ―공천권이 없는 대통령에게 국회의원들이 충성하겠습니까?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합니까? 기본 질문이 잘못돼 있네요.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말았다는 머쓱한 느낌이 들 정도로 노고문의 답변은 단호했다. 상대방의 이런 속내는 아랑곳 않고 노고문은 정치권 전체를 향해 직격탄을 쐈다.

    “우리 정치의 문제점이 거기에 있는 겁니다. 민주당이 아무것도 안하고 대통령 눈치만 보는 정당이다, 이런 비판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비판이 왜 나왔습니까? 공천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는 데서 생긴 현상이기 때문에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겠다, 그래서 당이 자율적으로 책임지고 움직여 나가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새로운 정치입니다.”

    ―노고문은 대통령이 되면 총리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 바람직해 보이지만, 공천권도 당원들에게 준 마당에 총리에게 상당한 권한을 이양할 경우 대통령의 힘이 너무 빠지는 것 아닙니까?

    “힘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국가의 합리적 운영 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권력이 집중돼 있습니다.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대통령은 각종 보고와 업무에 파묻혀 지냅니다. 이 때문에 중요한 국가적 전략과제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일상적 운영, 즉 작년에도 했고 올해도 하고 내년에도 하는 변함없는 국가의 일상적 관리운영, 항상 일어나는 사고 등은 총리가 감당해 나가도록 하면 권력의 집중도 막을 수 있고 대통령의 업무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뭘 할거냐, 소위 국가적 전략을 기획해서 10년 뒤의 한국의 모습, 10년 뒤의 동북아시아 세계와 한국의 관계, 이런 것들을 내다보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또 행정개혁, 재정개혁 등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묵은 전략적 개혁과제들을 집중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부담인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등 대통령이 이런 국가적 과제들에 전념하면 정부는 굉장히 능률적으로 운영될 거라 생각합니다.”

    노고문은 이어서 “한국의 정당구조가 내각제적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며 “내각제적 요소를 대폭 도입해 내각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감으로써 이후 헌법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에게 큰 혼란 없는 실험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분산을 뛰어넘어 내각제적 장점을 실험해보자는 것은 결국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염두에 둔 주장이 아닐까? 그러나 노고문은 곧장 내각책임제로 가는 데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권력이 1인중심에서 분산되는 추세라면 아예 권력구조를 내각책임제로 바꿔보자는 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위험하거든요. 그 때문에 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해 국민들의 내각제적 요구를 충족해 나가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준비해 나가자는 겁니다. 이 점은 말하기에 참 조심스럽습니다. 잘못하면 국정을 실험하자는 거냐 하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내각제적 요소와 욕구를 어느 정도 소화·해소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해가면서 제도를 발전시켜나가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겠느냐, 내각제적 요소를 살려나가는 데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만약 총리의 권한을 강화해 업무를 상당부분 위임한다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전념할 수도 있겠네요.

    “아직 구체적 내용까지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보통 총리에게 권한위임을 말할 때 대통령은 국방·외교·남북관계만 담당하고 내치는 총리에게 맡기는, 이런 방식을 많이 얘기하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렇게 내정과 외치를 기능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대통령은 외치든 내치든 관계없이 전략적 기획과제, 즉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전략적 과제를 맡고, 일상적인 국가업무는 총리가 맡아나가는 그런 시스템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경우 국방·외교는 일상과제이고 남북관계는 전략적 과제로 봐야 합니다. 남북관계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몫이라는 게 아니고 전략적 국가과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현상유지가 아닌 한국의 운명을 새롭게 바꾸어 나가는 거대 프로젝트는 대통령의 몫으로 하자는 겁니다.”

    “지금 민주당으로는 정권 못 잡아”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까지 고민할 정도라면 노고문의 머리 속에는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누구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구상도 있지 않을까. 그 누군가는 곧 경선과정에 노고문과 연대하고 힘을 모을 또다른 당내 경선 주자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고문의 주장을 듣다보니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노고문이 단순히 권력을 분산하고 1인지배체제를 극복하자고 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의식해서 이들에게 힘을 모으자, 그러면 당은 누구에게 맡기고 총리는 누구에게 맡기겠다는,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의미에서 권력분산을 얘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하하…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민주당의 틀로는 정권을 잡을 수도 없고 정권을 운영할 수도 없기 때문에 민주당에 있는 사람만 갖고 당신은 차기 총리하고 당신은 차기 당 대표를 맡고 나는 대통령을 하고 이렇게 판을 짤 수가 없습니다.”

    ―민주당으로는 다음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으로 정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민주당만으로는 어렵다는 겁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경험해 봤지만 현재 민주당은 국회에서 소수당입니다. 아주 유능하다고 기대했던 김대중 대통령, 실제로 제가 보기에는 아주 유능한 대통령입니다만, 그 유능한 대통령도 지금의 정치상황을 이끌어 가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국회 구도 때문이거든요. 이 구도에서 민주당에서 또 후보가 나온다고 할 때 국민들이 과연 지지해 줄 것이냐 이겁니다. 그런 (소수당의) 대통령으로 인한 국정의 혼란을 감수해 줄 것이냐 이겁니다. 내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면 국민들 앞에 정계를 재편하겠다는 제안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90년 3당 통합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민주 대 반민주’ ‘수구 대 개혁’ 식의 정치노선에 의한 정당구도가 없어지고 지역으로 갈라서 버렸잖습니까. 그것이 오늘날 정치실종의 원인입니다. 김영삼 정부의 실패와 김대중 정부 혼란의 원인이거든요. 이 지역구도를 해체하고 정책구도로 정치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그것을 국민에게 제안하고 성사시켜 나가야 합니다. 내가 후보가 되면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노무현 고문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서 민주당의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후보가 됨으로써 정계재편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보수와 개혁으로 이념을 따라 확연히 당을 나누는 정치판의 새 판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민주당 후보가 됐을 때 이미 민주당은 호남당이 아니죠. 뭔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회창과 노무현, 여기에서 유추되는 당의 성격을 한번 상상해보자는 겁니다. 수구 대 개혁정당 아니냐 이겁니다. 냉전 대 평화·화해, 이렇게 구도가 만들어지고, 국회의원들도 누구와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지역구 당선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계재편의 동력이 생기는 거죠. 거기에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판, 즉 정책에 따른 정당의 편성에 국민여론의 지지가 따를 것이고 정치인들이 결단할 것이고, 전국의 민심이 바뀌고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재편되면 정계 재편성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안방정치, 밀실정치, 막후정치가 아닌 역사적 정당성에 의한 정계재편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 경우 새롭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민주당 입당보다는 민주당 해체와 신당 건설을 요청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럴 경우에도 민주당 세력이 주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정당에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는 시점이면 다음 정권에서의 역할분담 얘기가 나오지 않겠느냐 하는 겁니다.”

    본선경쟁력이 선택의 기준

    ―무주연설에서 한나라당의 개혁세력이 노고문이 민주당의 후보가 되는 정계재편을 향해 움직일 것이라 하셨는데, 희망사항입니까? 어디까지가 실제사항입니까?

    “하하하. 희망사항으로 해두십시다.”

    ―단순한 희망사항 이상의 진척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아직은 제가 일을 진척시킬 처지가 아니지요. 후보가 되면 본격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위치에 가게 되는 것이지요.”

    노무현 고문은 민주당의 대선주자가 되기만 하면 정치권 전체를 흔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아직 노고문은 당내 대의원 지지율 2위의 후보일 뿐이다. 그것도 1위인 이인제 고문의 지지도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참 뒤쳐진 2위다.

    산술적으로는 적지 않은 대의원 지지를 얻고 있는 한화갑 고문과 김근태 고문 등의 지원을 얻으면, 노고문은 당장이라도 이인제 고문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한화갑 김근태 두 고문 역시 아직은 경선 도전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 ‘일요신문’에서 실시한 대의원 여론조사를 보면, 이인제 고문이 32%이고 노고문도 꾸준히 지지도가 올라 13%까지 나왔습니다. 이 상태로 경선을 치를 경우 승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군요. 4자연대니 개혁연대니 하는 대안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최근에 ‘IJ(이인제)대 반IJ 연대’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상황을 너무 표피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반IJ 연대’는 없습니다. 약체여서 서로 손을 잡아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연대 얘기가 나온 점도 사실이지만, 그것 말고 많은 사람들이 연대를 바라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리를 얘기한 것이고 실제 있어서는 그것이 승부의 결정적 관건은 아닙니다. (후보 연대가) 안되더라도 경선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민주당 경선의 결정적 변수는 본선 경쟁력입니다. 본선 경쟁력을 증명하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게 돼 있습니다. 이인제씨가 왜 대세를 장악하고 있느냐 하면 사람들을 많이 포섭해서가 아니고 그분이 지난 4·13총선 패배 이후에 1년 이상 민주당의 유일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교동이 지지한다 해서 더욱 세를 굳히고 있는 것이죠. 김중권 고문이 대표에 취임할 때 영남후보론을 주장하면서 본선 경쟁력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본선경쟁력 분석자료를 만들어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경선국면이 아니다 보니 공개적으로 선전할 수가 없습니다. 본격적 경선 국면에 들어가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게 될 때 그때는 본선 경쟁력이 없는 후보는 급속히 무너지고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 급부상할 겁니다. 봉투나 인간관계에 의한 조직도 허무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선전포고다. “본선 경쟁력이 없는 후보는 급속히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은 곧 노고문 본인을 중심으로 후보간 연대가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의 다른 말이었다. 한사람씩 노고문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경쟁자들과의 연대움직임을 점검해보았다.

    ―11월12일 김근태 고문과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누셨는데 합의사항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고문은 노고문의 ‘본선경쟁력론’에 동의하지 않던가요.

    “아니, 아무도 우리당에서 본선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나는 김근태 노무현이 뭐라 하든 지자체 전에 경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 지금부터 논의를 재개하면 한두달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우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개혁세력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연대논의가 개혁세력의 발목을 묶어두는 효과를 내고 있거든요. 김근태 편들기도, 노무현 편들기도 곤란한 의원들은 손놓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서로가 인식의 출발점이 다르니 잘 합의가 되지 않아요. 저쪽(김고문)은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니 여기서 서로 합의가 안되고 있습니다.”

    “한고문 이해 안돼. 평민당 하자는 건가?”

    현재 노고문은 6명으로 구성된 개혁파 의원모임에 두 사람의 거취를 맡겼다고 한다. “두 사람 중 누구를 후보로 뽑든 이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연대를 하는 방식과 시기마저도 개혁파 의원들에게 일임했다고 한다. 노고문은 “경선현장에서 하라 하면 현장에서 하고, 뒤에 하라면 뒤에 하고, 하지 말라면 안하겠다”며 이 문제는 전적으로 제3자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한화갑 고문의 행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고문은 10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권노갑 고문 중심의 동교동 구파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셨는데,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권고문에게 화해하자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이해가 안가네요.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아니고 이해가 안갑니다. 평민당으로 돌아가자는 건지. 야당으로 돌아가자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뜻밖에도 시니컬한 반응이 돌아왔다. 말투도 시큰둥했지만 표정도 거칠어졌다.

    ―권노갑 한화갑씨 중심으로 동교동이 재 단결한다는 전망도 나오는데요.

    “재단결 한데요 또? 황당한 것이 동교동 구파는 호남 충청연대로 대통령선거를 치르자는 쪽이고 동교동 신파는…, 물론 말로는 영남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옛날 평민당 하자는 것밖에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황당하죠.”

    ―공식적으로 한고문과 힘을 합치자는 제안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보니까 (한고문의)기세가 제안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대의원 지지현황으로는 노고문이 경선에서 이기려면 한고문과의 연대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딜레마 없어요.”

    ―한고문이 10%대의 대의원 지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막상 장이 벌어지면 상황이 급변하게돼 있으니까 조금도 걱정 없습니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내 책임을 다하고, 아까 말했듯이 개혁그룹에서 본선 가지 마라 하면 안가고… 아무튼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서먹서먹해진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대화의 주제를 외부로 돌려보았다. 노고문이 민주당 경선을 거쳐 본선에서 이회창총재와 맞붙었을 경우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선이 될 것으로 관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 사람의 출신배경이나 정치적 성향이 확연히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와 노무현 고문의 대결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제시대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특권세력에 의해 많은 보통사람의 권리가 억압받고 짓밟혀오지 않았습니까? 지난 87년 이후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특권의 잔재는 아직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회창 총재는 출생배경과 성장과정을 보더라도 특권 엘리트들의 정서에 익숙하고, 보통사람들의 권익 신장이나 몸부림, 민중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거북스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탈냉전의 시대입니다. 잠시 테러사건 때문에 세계가 분쟁의 시대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세계사의 흐름은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방향을 잡지 않았습니까? 탈냉전의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남북관계에 관해 이회창 총재는 대단히 냉전적 사고를 갖고 있다 이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총재와 나의 대결은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의 대결입니다. 한국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첫째 과제는 지역갈등입니다. 노무현은 지역통합을 위해 10년째 몸 바쳐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총재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영남에 가서 지역감정을 부추긴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분열세력과 통합세력의 대결이라고 봅니다. 정치와 기업, 모든 영역에서 세계는 젊은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권위적 지도력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70대 문턱을 넘어가는 노년세대와 50대 중반의 젊고 활력 있는 세대의 대결이라고 봅니다.”

    ―무주 연설에서 언론개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언론이 현정부의 위기를 ‘침소봉대’해 정권을 흔들고 있다며, 집권하면 가장 먼저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언론종사자들 사이에 세무조사는 과하다, 편파적이라는 불만도 있지만 언론개혁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언론개혁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세무조사는 언론개혁의 전부가 아니라 권언유착을 청산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세무조사로 언론개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언론개혁에 관해 정권이 할 일은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을 뿐이지 실제 권력을 갖고 언론에 개입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권력의 언론 개입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언론개혁이란 국민과 더불어 여론으로 하는 것이고, 여론이 조성되고 나면 입법을 통해 제도적 개혁을 할 수 있습니다. 입법을 통한 제도적 개혁의 핵심은 언론사주의 인사편집권을 기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언론사주의 언론자유로 오해되고 있는 IPI식 언론자유를 언론인의 언론자유로, 쉽게 말해 기자의 언론자유로 되돌려주는 것이 언론개혁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나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이 원칙을 주장하면서 언론개혁이 우리사회의 중대한 개혁과제임을 국민들에게 설득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를 납득하고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때면 언론개혁이 제도화되는 것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흔히 수구언론으로 분류되고 있는 언론사도 바로 이 개혁, 즉 언론사주의 자유가 언론인의 자유로 제도가 바뀌었을 때 정상적인 언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문제 해결 자신있어”

    ―그런데 과연 노고문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1980년대 이래 내가 실제로 득을 본 일은 없지만 내가 추구했던 대로 역사의 변화가 이뤄지는 과정을 경험해 왔어요. 1980년대에 나는 독재타도를 주장하고 운동에 참여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을 뿐 성취를 보지 못했지만 나는 고생 덜하고 87년 6월항쟁이 승리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후 지역구도 해체와 통합을 소망으로 삼았는데 어떻든 내가 대통령 후보 경선까지 와 있잖아요. 기적 아닙니까? 언론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제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정권은 그 지지기반이던 노동자들과 사이가 안좋아졌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할 때 제가 노사정위원회만은 대통령께서 직접 챙기십시오, 노사문제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만 풀어갈 수 있는 것이지 관료적 시각으로는 풀 수 없다고 건의서를 올렸습니다.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정치적 사고가 부족한, 융통성이 없는 관료들에게 이 어려운 일을 지시해놓았으니 문제죠.

    한국에는 그런 부분의 인적자원이 빈곤합니다. 모든 갈등을 주먹으로 해결하는 시대를 수십년 살아왔기 때문에 조정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이 아주 부족합니다. 노동자들도 1980년대 노동운동의 영향으로 비타협적이었죠.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지요. 그래서 이 부분에 관한 한 때로는 단호한 공권력을 아주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능숙하게 구사해가면서 풀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들과의 문제가 어려워진 것이죠.”

    ―만약 대통령이 되시면 노동자 문제에 관한 한 자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예 자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라든지 실제 현장경험을 제가 제일 많이 갖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도 권한도 없이 현장에 뛰어들어 문제를 풀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 부산시장 선거 때나 부산에서 국회의원 출마할 때보다 요즘이 훨씬 자신감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김대중당 노무현’이었잖아요. 그런데 경선에서 이기면 ‘노무현당 노무현’이잖아요. 하하. 과거에는 부산시민들이 나를 보기에 지분이 1%도 안되는 김대중당의 노무현이었지만, 대통령 후보가 되면 지분이 절반은 넘지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지분이 절반이 넘으면 노무현당이 될 겁니다. 권력을 분산한다고 했으니 지분이 많이 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최대주주 아니겠습니까? 최대주주로서 영남으로 가는데 왜 영남 표를 못받겠습니까?”

    이쯤에서 노고문은 다음 일정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1시간 반 가까이를 마주보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인간적인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 “혹시 힘들어서 후회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저도 사람입니다”하며 우회적으로 답하고 웃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잠시 뒤 노고문의 참모들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인터뷰가 끝나기만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한꺼번에 우루루 방으로 들어와 다음 일정을 알리는 등 노고문에게 이것저것 앞다투어 보고를 했다. 노고문이 속으로 후회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힘은 들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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