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대한통운 법정관리인 곽영욱 사장

“勞使不二 스킨십 경영으로 위기 돌파한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1-16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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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관리를 받는 기업이 회생할 가능성은 10%라고 한다. 한번 무릎이 꺽이면 좀처럼 일어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 그러나 법정관리 기업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무색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회사가 있다. 주황색 화물트럭으로 유명한 대한통운이 그 주인공. 대한통울을 이끄는 평사원 출신 CEO 곽영욱 사장을 만나 회생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통운 사옥. 입구에 들어서면 엘리베이터 양옆으로 액자 두 개가 걸려 있다. 대한통운 노동조합이 내건 이들 액자에는 몇 글자 표어가 적혀 있다.

    ‘노사는 하나. 영업총력, 이익창출, 성과배분’ ‘새로운 노사문화정착, 회사이익은 바로 우리 몫’

    회사의 이익을 사원들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노사불이(勞使不二)의 기업문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데, 이런 노사불이의 문화는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정말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사원이 힘을 모으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년 된 낡은 사옥이지만 건물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깨끗하고 환한 실내 분위기가 그 대표적 사례. 동아그룹 계열사였던 대한통운은 IMF사태 때 모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함께 부도위기에 몰렸다. 무리하게 모그룹의 빚 보증을 서면서 함께 위기에 빠진 것이다. 대한통운은 지난해 12월 법정관리 개시결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특별이익을 제외하고도 올 연말 40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법정관리 첫해인 지난해에도 188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200억원 상당의 사옥을 구입하기도 했다. 법원에 제출한 계획대로 부채를 갚고도 자금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떻게 이런 우량기업이 법정관리에까지 내몰렸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한통운은 ‘잘 나가는’ 회사다.

    대한통운 법정관리인 곽영욱(郭泳旭·61) 사장은 “사장과 임직원이 격의없이 어울리며 고락을 함께 한 결과 형성된 유대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곽사장은 1964년 대한통운에 입사해 한순간도 대한통운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대한통운의 산 역사로 1999년 5월에 대표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지난해 법원은 대한통운의 법정관리 개시결정을 하면서 법정관리인으로 외부인사가 아닌 곽사장을 선임했다. 내부인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한 결정 자체가 이례적인데, 그만큼 법원이 곽사장의 위기관리능력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라는 게 회사 주변의 해석이다.

    곽사장이 직원들의 신뢰를 받게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1999년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합병을 막아내면서부터. 당시 동아건설 고병우 회장은 두 회사를 합쳐 동시회생을 노렸으나, 곽사장은 직원들의 반대를 앞세워 이를 막아냈다. 결과적으로 동아건설은 망했으나 대한통운은 회생의 길을 걸으면서 곽사장의 선택이 옳았음이 확인됐는데, 이 사건 이후 사원들의 곽사장에 대한 신뢰는 한층 높아졌다.



    외국계 기업 M&A에 관심 보여

    ―부도가 난 지 1년이 막 지났습니다. 지난해 11월 법정관리인에 선임된 이후 한 해를 회고해볼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올해 본사 사옥을 마련한 것입니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38년이 됐습니다만 처음으로 마련한 자기집이라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법정관리기업들이 사옥까지 내다팔면서 회생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우리는 다른 기업과 반대로 임직원들의 단합된 힘과 노력으로 좋은 경영실적을 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기쁨이 있기까지 뜨거운 애사심으로 피와 땀을 흘려주신 임직원 여러분과 어려운 결정을 쾌히 승낙해준 서울지법 파산부의 강선명 부장판사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한통운의 조기회생방안은 결국 M&A라고 보는데요. 현재 진행상황과 M&A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법정관리를 조기에 종료하기 위해서는 M&A가 급선무입니다. 따라서 경영실적에 관계없이 M&A를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지난 10월12일 공시를 통해 발표했습니다만 투명한 M&A 추진을 위해 법원의 승인을 얻어 외국계 M&A 컨설팅 전문업체인 ‘줄리어스 캐피탈 & PwC’를 주간사 회사로 선정했으며, 지금은 계약단계에 있습니다.

    M&A 가능성에 대하여 주간사로 선정된 줄리어스 캐피탈 & PwC는 대한통운의 경영진 및 종업원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단합해 급속히 경영여건을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국내 어떤 물류기업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M&A에 대하여 자신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M&A를 통해 신규자금이 유입된다면 대한통운은 국내 어느 물류기업도 추격해올 수 없는 도약기를 맞이하며 급성장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2월 노동조합은 ‘무쟁의’와 ‘급여 동결’을 선언하며 회사의 회생에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런 애사심이 가능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먼저 ‘노사불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입니다. 물류업은 장치산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종업원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일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직원 각자가 화물차를 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누구고 임원이 누구입니까? 노조원이 승진해서 임원도 되고 사장도 되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에 자금조달을 위해 임원들이 개인 재산을 담보로 보증을 섰는데, 노조위원장이 찾아와 자신도 종업원을 대표해서 보증을 서겠다고 해 함께 보증을 섰습니다. 어느 노조위원장이 회사 자금차입에 보증을 서겠습니까? 경영진과 종업원간에 신뢰가 없다면 구조조정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신뢰의 문제입니다. 경영진과 종업원간에 신뢰만 있다면 노사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인용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회사의 모든 힘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으며, 임직원이 적극 호응해 주었습니다. 부도가 났을 때는 모두가 고객을 찾아다니며 회사의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부도로 인한 고객이탈을 예방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조직력과 노력들이 지금의 실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한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스킨십 기업문화

    곽사장은 대한통운만의 독특한 노사간 ‘스킨십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나 자신이 17년간 점소를 돌아다닌 사람입니다. 직원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와 가깝다고 승진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투명하게 인사를 처리했습니다. 공정한 인사평가를 위해 연공서열보다는 능력위주의 인사정책을 기틀로 중간 간부급으로 인사평가요원을 구성하고, 모든 인사는 인사평가요원의 검증을 거쳐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경영진과 종업원의 신뢰형성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톱미팅(Top-Meeting)을 도입해 종업원의 의견이 저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의상달의 통로를 마련하고, 집에도 전용 팩시밀리를 설치해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사내 전자게시판의 ‘경영정보데스크’ 코너에 임원 및 팀장회의 등 주요 회의내용을 게시하여 모든 종업원이 회사의 방침이나 방향 등을 공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전자게시판을 통해 결과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직원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애사심을 발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분야와 IT사업으로도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그 현황과 전망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환경사업은 폐수처리공법으로 향후 사업확장을 위해 현대엔지니어링과 공동개발했으며, 지난 11월1일 환경부로부터 신기술로 지정받았고 환경부 차관으로부터 감사장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는 골프장이나 사찰 등의 폐수처리 공사를 주로 해왔으나 앞으로 아파트단지, 하수종말처리장 등 대규모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또한 이 공법에 필수적인 분리막은 생산업체인 일본의 미쓰비시레이온과 국내 독점 공급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IT사업분야는 KE정보기술(주)이라는 별도법인을 통해 인터넷쇼핑몰(www.ko-rexmall.co.kr)을 운영하고 20여 년간의 물류 정보화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물류전문시스템통합, 시스템유지관리 등을 하고 있습니다. KE정보기술은 지난 5월8일 분사 이후 11월까지 7개월간 약 1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03년에는 약 500억원, 2006년에는 약 1100억원의 매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곽사장께서는 1964년 대한통운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 회사를 지켜오신 것으로 압니다. 30년 이상 한 직장에 계셨는데 대한통운은 어떤 매력이 있는 회사인가요?

    “‘한 회사의 고목이 되라’는 부친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대한통운을 다닌 것이 올해로 38년째입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 국영기업체였던 대한통운은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71년 기업의 역사가 말해주듯 대한통운은 우리나라 물류 역사의 정통성을 이어오며, 경제의 한 축으로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해 왔습니다. 이것은 대한통운의 매력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기억을 잊지 않고 있으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대한통운은 일류기업으로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회사입니다. 최근 물류산업의 부각과 함께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최대의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조직의 응집력과 종업원들의 마인드 또한 어느 기업보다 월등합니다. 이런 점들이 대한통운의 또 다른 매력이며, 그렇기 때문에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능률협회 조사, 한국표준협회 서비스 품질지수 조사 등 각종 조사에서 고객만족도 1위 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처럼 각종 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은 대한통운만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직원들의 고객지향적 마인드가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 회사의 여러가지 운영방식이나 시스템일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첫째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한 직영체제의 조직운영입니다. 핵심역량에 집중하면서 부수적 역량의 아웃소싱이 기업들 사이에 보편적 경영방식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와 같은 서비스업종의 경우 위탁운영할 때와 직영할 때 고객접점의 서비스 질에서 차이가 매우 큽니다. 특히 업종 특성상 협력업체 대부분이 영세하기 때문에 고객이 요구하는 서비스 수준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는 디지털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구축된 택배정보시스템(SPATS)의 운영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언제든지 고객과 쌍방향 대화가 가능하여 실시간 화물 정보제공은 물론 예약, 집화, 배송 및 고객서비스 관리에 대한 정보와 편의를 완벽하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71년의 물류 노하우입니다. 오랜 물류의 역사에서 체득한 경험과 지혜를 택배에 접목한 까닭에 빠른 시간에 택배시스템을 확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른 업체들이 흉내내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요.

    이밖에도 업계 최초로 무형의 택배서비스를 정량적으로 관리하는 툴인 서비스품질지수(SQI)를 도입했습니다. 택배영업사원들에게는 ‘친절과 웃음, 그리고 고객에 대한 작은 관심’이 최고의 서비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결과 자연스럽게 서비스 품질이 올라가고 경쟁력이 높아진 거죠.”

    대한통운은 법정관리중인 회사임에도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아 화제가 된 기업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보수적 기업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대한통운은 능력에 따른 파격적 인사도 곧잘 이뤄지는 회사다. 실례로 얼마전에는 임원급인 지점장에 부장급을 앉히는가 하면, 두 계급 승격 발령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인사관리에 대해 곽사장은 “인사가 만사”라는 말로 소신을 밝혔다.

    “법정관리와 관계없이 기업이 어려울 때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울 때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력감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위적인 감축으로 부작용을 초래하기보다는 사업철수 또는 퇴직으로 인한 결원의 최소 충원 등 자연적인 감축 위주로 시행하고, 이것이 기업환경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지켜왔고, 그러다보니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일 뿐입니다.

    1950년 말 미국의 학자들은 경영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사람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취임 초기에 고위 임원들을 배치하던 인천지사장에 부장급을 발령한 적이 있습니다. 직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배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문화를 생각한다면 타지역 출신 지점장보다는 해당지역 출신 지점장을 배치하는 게 대외활동이나 영업활동에 더 큰 생산성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인사 이후 각 지점의 경영실적을 보면 성공적인 인사정책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법정관리든 아니든 기업의 경영실적이 나아지고 더 좋아진다면 그것이 올바른 경영 아니겠습니까?”

    ―대한통운의 미래상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10년 뒤 대한통운은 어떤 회사가 돼 있을까요?

    “법정관리를 벗어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모범적 경영구조를 갖춘 기업이 될 겁니다. 또 한차원 발전한 전문 물류기업으로 성장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초일류 기업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싶고, 모두가 한번쯤은 근무하고 싶은 그런 우량 회사가 미래 우리 회사가 아닌가 합니다.”

    곽사장은 지금은 관계를 끊었지만 모기업이었던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결성해 참여한 리비아 대수로 건설 건만 잘 마무리된다면 5년 이내에 법정관리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사장부터 사원까지 애사심으로 뭉친 대한통운의 법정관리 졸업은 법정관리제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사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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