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골프여왕 박세리 가슴을 열고 말하다

“저 독종 아니에요!눈물 펑펑 쏟는 여자예요”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whang@donga.com

    입력2004-11-16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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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리는 앞으로 3년 이내에 ‘나비스코 다이너쇼’ 우승컵만 거머쥐면 최연소 ‘메이저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또한 프로골퍼 최대의 영광인 ‘명예의 전당’에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전망이다. 겉보기에 남부러울 게 없는 골프계의 신데렐라. 하지만 그녀의 지독한 프로근성 뒤편에는 눈물겨운 외로움이 숨어 있다.
    일본에서 대회를 치르고 제주도에서 열리는 스킨스 시합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박세리 선수로부터 어렵게 인터뷰 시간을 따냈다. 박선수는 미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에 들어오면 더 바빠진다. 박세리 선수를 끼워파는 행사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몸살이 나 입원한 일도 있다.

    이른 아침 대전시 유성구 박선수 집의 초인종을 누르니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나는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박선수 가족이 사는 집은 그녀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무대에서 거둔 성공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 박준철씨가 작년말 경매에 나온 대전지방법원장 관사와 대전고등법원장 관사를 사들여 두 집 사이의 담을 헐고 조경을 새롭게 했다. 곱게 잔디를 깐 마당은 30야드 어프로치 샷 연습을 할 수 있을 만큼 넓다. 모양 좋게 뒤틀린 소나무와 바위, 너른 잔디….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패블비치 골프장 주변에 들어선 부호들의 저택을 연상케 한다. 소나무들은 아버지 박준철씨(51)가 일일이 좋은 나무들을 찾아다가 마당에 옮겨 심었다고 박선수가 나중에 설명해 주었다.

    박선수는 지난밤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 3시에 들어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박선수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지금까지 나온 박선수 인터뷰 기사들을 읽어보면 질문의 길이보다 답변의 길이가 훨씬 짧다. 박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아버지 박준철씨를 통해 많이 나온다.

    박준철씨에 대해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박선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는 딸의 천재적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재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길러냈다. 그는 박선수의 첫번째 코치고 박선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남자다.



    박씨에게도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그는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굳이 그런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박선수의 어머니는 남편이 인터뷰에 나와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박선수의 어머니는 “나는 솔직히 남편이 인터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안해도 될 이야기를 하니까 남들이 몰라도 될 사실을 알게 되고…”라고 말하며 아침 일찍 찾아온 기자를 조금 민망스럽게 했다.

    박씨는 아내의 불평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는 기자가 참고로 들고온 다른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실 틀린 내용은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아내에게 당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딸에게 담력을 길러주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로 끌고갔다는 사람의 집착이나 강인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내가 “정원의 나무들이 좋다”고 칭찬하자 “그렇습니까” 하고 되물으며 금세 얼굴을 폈다.

    그는 길 건너 충청남도 농업기술원 부지를 가리키며 그곳에 골프스쿨을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놓았다. 부지가 6만 평이나 되는 충남농업기술원은 2003년에 충남 예산으로 옮겨간다. 그 부지는 공개입찰에 부쳐지겠지만 도로가 새로 나 땅값이 만만찮게 오를 것이라고 박씨는 예상했다.

    “저곳에 골프스쿨을 세우고 싶어요. 서울의 몇 군데서 세리를 기념하는 골프스쿨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세리가 태어나 자라고 골프를 배운 유성에 세워야 의미가 있지요. 그런데 땅값이 비싸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요.”

    아버지 박준철씨의 야망

    그는 기자를 박선수의 우승컵 등 기념품을 모아놓은 방으로 안내했다. 박선수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탄 트로피, 지금까지 사용한 골프클럽, 훈장, 기념사진, 신문기사들이 정리돼 있었다. 골프스쿨이나 기념관을 만들자면 이런 것들을 잘 모아놓아야 할 것이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집에도 우승 트로피가 많다고 말했다.

    박선수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가정이 어려우면 골프 같은 운동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자질을 갖춘 선수가 있어도 누가 자기돈으로 보조해서 키우려고 하지 않거든요. 워낙 많이 들어가니까. 우리나라에는 골프 전문학교도 없습니다. 서울에 골프아카데미가 몇 군데 있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합니다. 선수를 발굴해 도움을 주려는 뜻은 없어요. 좋은 선수가 있어도 그냥 사라져버리는 거지요. 타고난 재주, 승부근성,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춘 선수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키울 수 없습니다. 어려서 발굴해 투자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면 말도 잘 듣습니다. 어려서부터 잘 관리해야 세리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추진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는 어렵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운이 따라준다면 제가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박선수 부녀에 관한 기사를 많이 읽었습니다. 박선수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골프선수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처음부터 세리한테 골프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세리는 어려서부터 육상을 했어요. 태어난 지 8개월도 안돼 걸어다녔고 달리고 운동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애들이 셋인데 세리가 유독 운동을 잘했어요. 제가 1988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갔습니다. 세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하와이에서 살았어요. 저는 골프를 늦게 배웠지만 악착같이 연습해 6개월 만에 싱글이 됐습니다. 미국에서 연습하다가 세리에게 그립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굉장히 잘하는 거예요. 그때 세리에게 골프를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죠. 어린 녀석이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골프가 어렵잖아요? 클럽이 성인용이라 무거운데도 공을 잘 쳐냈어요.

    그러나 한동안은 바빠서 제대로 못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죠. 세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귀국했는데 ‘그동안 미국에서 골프 좀 해봤냐?’고 물으니까 ‘아빠가 놓고간 골프채로 계속 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켜보니까 제법 잘해요. 제가 평화골프숍을 운영할 때였지요. 그래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골프선수로 키우자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어려웠겠어요.

    “당시 대전은 골프의 불모지였어요. 프로는 서울에 가야 구경할 수가 있었지요. 서울 아이들은 프로를 붙여주니까 기량이 좋더라고요. 서울 아이들과 시합을 해보고 나서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름의 독특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리한테 ‘프레셔’를 주었지요. 독창적으로 한 거죠. 지금 애들한테 그렇게 시키면 아마 클럽 집어던지고 집 나갈 거예요. 지금은 내 방식으로 할 수 없어요. 세리는 골프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밀어붙이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골프 말고는 다 끊었다”

    아버지는 딸의 다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아파트 15층을 걸어서 오르내리게 했다. 공동묘지에 텐트를 치고 밤중에 박선수에게 샌드웨지 연습을 시켰다. 한밤 공동묘지 연습은 실화다. 겨울 어느날인 가는 아버지가 연습장에서 딸에게 ‘친구 좀 만나고 올테니까 그때까지 여기서 연습하고 있거라’ 하고 나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깜박 잊어버렸다.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세리 자나?”하고 물었더니 “당신하고 함께 나가지 않았냐”고 말하더란다. 큰일 났다 싶어 골프연습장에 가보니 세리가 구석에서 불을 켜놓고 그때까지 연습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얘기다. 아버지도 지독했지만 딸이 한술 더 떴다. 아버지와 딸의 이런 강인함이 오늘 박세리를 세계정상에 우뚝 서게 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중학교 때 이야기인데 박선수가 너무 힘들다고 짜증내거나 반발하지는 않았나요?

    “자기가 좋아하고 아버지가 워낙 밀어대니까 그러지는 않았어요. 자신이 소화 못하는 건 어머니한테 얘기하고 울고 그랬겠죠. 그렇지만 세리는 이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니까 해야 된다는 집념을 갖고 있었어요. 어떤 고난이 닥쳐도 참을 수 있다는 정신을 가졌다고 할까요. 골프 외에는 모든 걸 다 끊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하고 둘이서만 다녔기 때문에 세리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이 별로 없어요. 내가 그 애 인생의 절반은 접어버린 거죠. 세리가 세계적인 선수가 됐지만 지금까지 어려운 시기가 더 많았어요. 앞으로도 더 잘해야 합니다.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됩니다. 지금부터 교육이 많이 필요해요. 세리가 운동할 때는 저하고 항상 같이 다니면서 어른들 세계에서 놀아 일찍 성숙했어요. 그래서 뭐든지 찬찬하게 잘해 나간다고 생각해요.”

    ―박선수가 지금 몇 살인가요?

    “한국 나이로 스물다섯입니다.”

    ―선수활동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도 있지 않습니까? 결혼과 선수생활을 양립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부녀 사이에 약속한 게 있어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는 결혼을 미뤄야 한다고요.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부모 마음이야 일찍 결혼시켜 가정을 꾸미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제 딸이기보다는 국민의 딸로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고, 또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이 사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리 뒷바라지 잘해 줘야죠. 국민이나 부모나 원하는 건 세리가 운동을 잘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그만두고 가정생활을 하더라도 여태까지 쌓은 것을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할일이 더 많습니다. 세리가 은퇴하더라도 세계적인 선수의 업적을 길이 보존하고 그걸 옆에서 보조해 줘야지요. 어떻게 됐든 최고 선수로서 은퇴할 때까지는 참아야 합니다. 은퇴하고 나서 세리를 뒷바라지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해요.”

    결혼은 명예의 전당 이후에

    ―외국인 사위를 맞게 되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까?

    “안돼요 그건. 앞일을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동양인이라면 모르지만 미국사람은 곤란하지요. 그렇잖아요?”

    ―박세리 선수가 성적이 부진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하지요. 그럴 때면 언론이 아버지가 코치를 하니까 그렇다는 식으로 보도하는데 억울한 생각은 안 드세요?

    “골프는 자기 혼자 하는 운동입니다. 성공의 길목에 있을 때 옆에서 ‘푸시’하고 질타하고 간섭하는 거지만 세계적인 선수의 대열에 들어서면 수준에 맞는 전문가들과 많이 대화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가지를 조금씩 다 하지만 선수가 원하는 쪽으로 해야지요. 끝까지 부모들이 간섭해서는 안됩니다. 외국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고 접촉해야 빨리 적응합니다. 아버지가 데리고 있으면 매일 한국말 하고 한국적인 것만 가르치니 그만큼 발전이 늦어지죠. 저는 세리가 원하는 시합에만 가봅니다. 어떤 때는 오라고 해도 잘 안갑니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자리에서 일어난 박선수가 나타나 응접실 바닥에 무릎을 괴고 앉았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다. 박선수는 여간해서 화장을 하지 않고 가볍게 로션만 바른다고 한다. 스물다섯의 나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인데 거기에 무엇을 덧칠한단 말인가. 화장을 하느라 빼앗기는 시간도 아까울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다가 가까이서 대하니 훨씬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박준철씨는 “세리 이야기를 듣자고 오셨을 테니 하던 이야기나 마저 끝내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는 것은 정확하고 조직적인 프로그램이 없을 때의 이야기예요.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신조 속에서 훈련을 받아야 할 때도 있어요. 승부사의 세계에서는 일단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기지 못하면 지는 거죠. 최고가 돼야만 합니다. 세리도 이젠 성인이 돼서 생각의 범위가 넓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하고 늘 같이 다녀서 굳이 말 안해도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내가 얘기하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하지요.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자리를 뜨고 박선수와 마주 앉았다.

    ―친구들하고 놀다가 새벽 3시에 들어왔다던데 어떤 친구들을 만났나요?

    “유성초등학교 다닐 때 같이 육상했던 친구들요. 너무 오래간만에 봐서 늦게까지 놀았어요.”

    ―뭐하고 놀았습니까?

    “특별한 건 없고요. 친구들 만나면 맨날 옛날 얘기죠. 조그만 카페에 들어가 맥주 마시며 옛날 운동했을 적 이야기를 했어요. 이러쿵저러쿵 싸운 얘기도 하고….

    ―작년에는 LPGA에서 한번도 우승을 못해 한국팬들이 굉장히 아쉬워했는데요. 스스로도 인간적인 고뇌가 컸을 것 같아요. 올해 들어서는 작년의 부진을 일시에 털어버리고 다섯 차례나 우승했습니다. 작년과 올해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일부러 부진한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작년에는 올해 5승보다 더 값어치 있는 걸 많이 배웠어요. 되돌아보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제어를 잘못했던 것 같아요. LPGA 선수생활 1, 2년차에는 생각도 안하고 연습하고, 언론 인터뷰하고…. 개인적인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아마 저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지쳐버렸나봐요.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작년에 그런 상태를 우연치 않게 느끼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작년 9월부터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됐어요. 그러고나서 ‘아 이렇게 해야겠구나’ ‘저렇게 해야겠구나’ ‘이런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코치도 바뀌고 새 캐디하고 호흡이 잘 맞아 좋은 성적을 내게 됐습니다.”

    ―브리티시오픈에서 처음 1,2라운드는 뒤지다가 3,4라운드에서 버디 행진을 했습니다. 박선수의 경기를 보면 3라운드나 4라운드에서 몰아치기로 역전승하는 경기가 적지 않습니다. 1,2라운드에서 잠들었던 샷이 깨어날 때의 심리상태나 몸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담력 때문이라고 했는데 동의하나요?

    “뭐라 그럴까? 아무래도 시합에 들어가면 예민해지고 힘들어요. 저는 정신적으로 긴장하는 경기를 좋아해요. 조용히 가는 것보다는 과감하면서 공격적인 게임을 좋아합니다. 첫 라운드나 둘째 라운드는 천천히 올라가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성적이 좋을 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모든 샷이 잘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박선수는 골프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우승기록을 세웠지만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명승부는 둘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박선수는 국내의 라일앤스코트오픈에 나가 쟁쟁한 프로선수들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또한 US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해저드에 들어가서 공을 쳐올리는 장면은 경제위기로 어려웠던 시절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저도 US오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US오픈은 메이저대회라 다른 시합과 달리 더 힘들고 의미있는 시합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렵게 우승했지만 그 시합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 캐디 콜린 칸(34)은 어떻습니까?

    “아주 호흡이 잘맞는 편이에요. 워낙 열심히 하고 부지런하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요. 저는 그런 면을 좋아합니다. 특별한 계약조건은 없어요.

    ―시합할 때 캐디로부터 그린 읽기, 거리계산, 클럽 선택 등 어떤 대목에서 도움을 많이 받습니까?

    “거리나 골프코스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시합을 하면서 마음이 안정돼야 합니다. 콜린 칸은 그런 면에서 도움을 많이 줘요.

    ―박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다보니까 성적이 부진하면 지금도 아버지가 코치를 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이 나오기도 해요. 그럴 때는 솔직히 좀 서운하지요?

    “아무래도 그렇죠. 아버지가 제 첫번째 코치임에도 시합 못하면 아버지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분들이 그래요. 기사를 쓸 때 기사의 대상이 된 사람을 한번 더 생각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는 그게 아닌데 그런 식으로 쓰면 진짜 힘들고 속상해요.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다보면 힘들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정말 따뜻한 한토막의 글이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조금 부진하면 ‘뭐가 문제인가’라는 식으로 안좋은 말을 많이 쓰잖아요? 정말 잘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될 때는 속상하지요. 그런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박선수의 표정이 어두워져 분위기를 바꿔본답시고 시중에 유행하는 조크를 꺼냈다. 박선수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통점 세 가지에 관한 조크다. 아직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둘 다 공주 출신이다(박선수는 실제로 유성 출신이고 여고만 공주에서 다녔다). 둘 다 공을 잘 다룬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공’을 잘 다루고 박선수는 골프공을 잘 친다. 마지막으로 둘 다 다리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와 세리의 공통점

    ―그 농담 알고 있어요?

    “예.”

    ―골프에서 다리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골프에서 제일 중요한 게 중심이에요. 중심을 잃으면 그만큼 좋은 스윙이 나오지 않아요. 하체는 중심입니다. 하체가 튼튼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골프는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지요? 프로골퍼는 보기를 해도 빨리 마음을 안정시켜야 다음 홀에서 잘할 수 있을텐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그건 자기 하기나름인 것 같아요. 얼마만큼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나가 중요하죠. 미국에서는 심리학 박사와 상담하고 교육받는 골프선수들도 있어요. 자신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아요. 스스로 어떻게 컨트롤하는가가 골퍼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골프를 했으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랄까 삶의 잔잔한 재미를 많이 놓쳤겠어요?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습니까?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골프라는 운동의 특성 때문에 친구가 정말 없어요. 어젯밤에 만난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같이 운동했던 선수들이어서 무척 보고싶었습니다. 추억이 그중 많았으니까. 제가 만약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정말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요.”

    ―선수생활 하느라고 정규 대학을 다니지 않았는데 아쉬움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죠. 제 나이 또래들처럼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어요. 대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고 고등학교와 또 다른 게 있잖아요?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 캠퍼스 생활을 못한 게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지요. 프로로 전향해 운동을 계속해야 했으니까요. 앞으로 많은 친구들을 만나서 사귀고 싶어요.”

    타이거 우즈는 서부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을 다니다 2학년 때 중퇴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기자가 스탠포드대학에서 가까운 버클리대학에 있을 때라 타이거 우즈의 대학 중퇴에 대한 의견을 미국 대학생과 교수들에게 여러 번 물어봤다. 선수생활을 하더라도 명문대학 졸업장을 왜 포기하냐는 한국적 단순사고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미국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타이거 우즈 같은 선수에게 대학 졸업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도 하버드대학을 중퇴했다. 젊은 나이에 성공의 문에 들어선 사람들은 과감하게 대학을 그만둬버린다. 학벌주의가 유행하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박선수가 나중에 은퇴한 뒤 대학에 등록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타이거 우즈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결혼은 언제쯤 할 계획입니까. LPGA 투어 선수생활이 결혼과 양립할 수 있다고 봅니까. 애니카 소렌스탐은 결혼하고 나서도 선수생활을 합니다만….

    “많아요. LPGA에는 결혼한 선수들이 많아요.”

    ―아버지는 박선수가 대성할 때까지 결혼을 늦추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던데요. 부녀 사이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는 결혼 얘기 안하기로 약속을 한 게 사실입니까? 상황이 바뀌면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저한테 결혼은 급하지 않아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혼할 날이 오겠죠. 저는 정말 빨리 시집가야겠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

    로렌스 첸은 편한 남자친구

    ―결혼 상대자로 어떤 타입의 남성을 원합니까? 미국 남성이라도 괜찮습니까?

    “저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아요. 제 직업이 특별하기 때문에 충분한 이해 없이는 부부관계가 유지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를 잘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면 좋아요.”

    ―친하게 지내는 홍콩 출신 남자친구 로렌스 첸 이야기가 가끔씩 신문에 실렸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귐입니까?

    “아직까진 그런 생각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할 시기도 아닙니다. 좋은 친구, 좋은 사이로 지내고는 있는데 앞으로 결혼을 하겠다 안하겠다 말하기보다는 좋은 친구로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 때가 되면 또 모르죠. 결혼할 사람 따로 연애하는 사람 따로 있을 수 있듯이 나중에 결혼할 시기가 되면 누가 될지 모르지만 저를 많이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박세리 선수의 성적이 잘 오르지 않을 때 홍콩 남자 친구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와요. 그런 소리 들으면 화 나지 않나요?

    “한동안 그런 기사를 많이 썼지요. 많이 화가 났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면 화가 나고 속상하고…. 아무튼 힘들었어요. 전혀 모르는 분들이 그런 걸로 자꾸 연결시키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박선수가 페어웨이를 기린처럼 성큼성큼 걷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 걸음걸이를 스스로 의식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의식하고 그렇게 걷는 건 아니에요. 저는 강하고 멋있는 선수가 되길 원했어요. 걸음걸이를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골프는 항상 리듬을 타잖아요. 걸음걸이에도 리듬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그런 느낌을 준 것 같아요.”

    아버지 박준철씨는 한 인터뷰에서 ‘걸음걸이가 당당해야 상대방의 기가 죽는다. 표정 없이 뚜벅뚜벅 씩씩하게 걸으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선수가 경기하는 장면을 보면 표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로 뚜벅뚜벅 걷는다. 첫 코치의 가르침에다 박선수 스스로 리듬을 붙여 독특한 걸음걸이가 태어난 것이다.

    ―2년 전부터는 부모님들이 박선수한테 심리적으로 부담을 줄까봐 투어에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가 옆에 있냐 없냐에 따라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습니까?

    “부모님이 계시면 더 신경 쓰이고, 안 계시면 안 쓰이고 그런 것은 없어요. 부모님이 계시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안 계시면 아무래도 허전하죠. 옆에 계신 것이 더 좋아요.”

    ―혹시 골프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많죠. 정말 연습하기 힘들고 어려울 때는 ‘정말 힘들다’ ‘정말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연습했는데 시합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힘들다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돈을 참 많이 벌었겠어요. 부모님이 모두 관리합니까?

    “미국에서는 제가 회사에 맡겨 관리합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하지요.”

    ―부모님이 투자할 때 박선수와 사전에 상의합니까?

    “부모님께서 하시는 걸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이 항상 뒤에서 저를 많이 도와주셨고 힘들 때마다 힘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거면 뭐든지 하셔야죠.”

    아버지가 좋아하면 뭐든 O.K

    박선수 때문에 ‘잘난 딸 하나가 열 아들 안부럽다’는 속담이 힘을 받고 있다. 아들에게 치어 사는 대한의 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혹시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딸만 셋이라서 섭섭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습니까?

    “저희 부모님이 아들을 바랐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들이 있었으면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저희들이 느끼기에 부모님은 그런 것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안 쓰셨어요. 딸들을 항상 좋아했거든요. 아들은 아무래도 좀 무뚝뚝하고 살뜰한 애정의 표시를 안하잖아요. 딸들은 항상 부모님 우리 부모님 하면서 챙기니까 좋다고 하셨어요.”

    ―겨울철이면 태국과 호주로 골프 치러 가는 청소년들이 수천 명에 이릅니다. 예체능은 노력이나 뒷바라지만으로는 안되고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데, 골프 지망 청소년들이나 그 부모님들에게 어떤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싶습니까?

    “재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얼마만큼 좋아하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부모님이 열성적으로 뒤에서 밀어주셔도 자녀가 싫어하면 안되는 거거든요. 부모님들께서도 그걸 아셔야 돼요.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자녀 스스로의 결심이 더 중요하죠.”

    박준철씨는 전국체전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골프선수다. 핸디캡이 지금도 넷 내지 다섯 정도. 드라이버의 거리가 박선수(250야드)보다 길다.

    ―아버지를 처음으로 이겨본 게 몇 살 때예요? 18홀을 돌아서 핸디캡 없이 처음으로 꺾은 것이….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지금도 같이 치면 이기기 힘들어요. 아주 잘 치세요.”

    ―아버지와 경기할 때는 핸디캡을 몇 개나 드립니까?

    “18홀에 4점 드립니다.”

    여기서도 아버지와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박준철씨는 세리와 경기를 하려면 9홀에서 3,4점 정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선수가 돼서 도저히 못당하겠다는 것이다. 부녀가 골프를 함께 치면 딸은 덜 주겠다거니, 아버지는 더 받아야 한다거니, 핸디캡 협상이 볼만할 것 같다.

    ―아버님도 굉장한 골퍼시네요?

    “예, 잘 치세요.”

    ―아버님의 장기는 뭐예요? 드라이브 퍼팅 숏게임….

    “골고루 좋으세요. 어려운 상황에서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위기관리 능력이 좋으세요.”

    ―아버지가 15층 계단을 오르내리게 하고 공동묘지에서 샷 연습시킬 때 반발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버지가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따라했나요?

    “제가 좋아서 했어요.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제가 원했고 좋아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어요.”

    ―길에 나가면 박세리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익명 속에 숨어 있을 수 없으니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주 불편했어요. 저도 보통 사람처럼 여기저기 다니고 싶어요. 다른 분들이 특별하게 보고 대할 때는 약간 부담스러워요. 보통 사람처럼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죠. 보는 시선이 달라서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훈련이 돼서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골프가 귀족 스포츠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지요. 돈도 많이 들고 부킹하기도 어렵고….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 한국에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직까지 그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아시아 쪽이 제일 심한 것 같아요. 그린피나 모든 게 미국에 비해 배 이상 비싸지요. 골프 치려면 돈도 많아야 되는데 차차 좋아지겠죠. 골프는 좋은 운동이에요. 많은 분들이 부담 느끼지 않고 골프를 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좋겠어요.”

    ―무슨 음식을 잘 먹습니까?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아요. 어머니가 해주시는 잡채가 제일 맛있어요.”

    ―직접 만들 줄 아는 음식은 있나요?

    “쉬운 것만 해요. 라면은 끓일 줄 알아요. 다른 요리는 잘 못해요.”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박선수와 라운딩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기사를 봤는데….

    “서로 시간이 안 맞아 아직 못해봤어요.

    ―해보고 싶으세요?

    “그건 모르겠어요.”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클린턴 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치적을 떠나서 남성적인 면만을 놓고 볼 때 매력있는 남성이라고 생각합니까?

    “잘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미국사람들 중에 (클린턴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박선수의 견해를 물어봤는데 미국 일반인들의 생각으로 답변해 버린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세계 명문 골프장들을 보면 경치가 참 아름다워요. 어떤 때는 텔레비전에서 시합을 보다가 골프장의 경치에 빠져들 때도 있는데 시합하다 보면 경치를 둘러볼 여유가 있습니까?

    “없죠. 좋은데 가도 전혀 경치에 신경을 못씁니다. 경치를 감상할 겨를이 없어요.”

    ―텔레비전에서 경기장면을 보면 무뚝뚝한 인상을 주는데 지금 인터뷰하면서 보니까 수줍음을 많이 타네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지금도 쑥스러워 하는 편이죠.”

    ―남들에게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줘서 손해본다는 생각은 안하세요?

    “(웃으며)글쎄요? 아무래도 무뚝뚝한 표정의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생기겠죠.”

    ―프로선수들은 클럽을 자주 바꾸죠? 지금은 무슨 클럽을 쓰세요?

    박선수는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 순으로 말을 해나가다가 인터뷰 기사에는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뭐뭐 쓴다고 하면 그쪽에서….”

    ―돈 한푼 안받고 골프채 회사 홍보를 해줄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죠.”

    이 글을 읽은 신동아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물어오면 박선수가 무슨 클럽을 쓰는지 알려줄 용의가 있다. 나이가 어리지만 프로선수는 역시 다르다. 박선수가 이 정도로 돈 관리에 꼼꼼하니 사업가로서도 수완을 발휘할 것 같다. 아버지는 유성 집에다 박세리 선수의 광고 등을 관리하는 ‘세리 인터내셔날’이라는 회사도 차렸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선수의 수명이 길지요. 축구는 30대 중반만 되면 정년인데…. 골퍼는 나이 들어서도 시니어 투어에서 활동할 수 있지요. 몇 살까지 선수로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 계획으로는 그렇게 오래 뛰고 싶지는 않아요. 제 목표만 달성하면 선수생활을 중단하고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그때는 선수로 활동하기보다는 후배 양성에 신경 쓰고 싶어요. 제가 한국에서도 선수생활을 했고, 지금은 미국 나가서 선수생활을 하지만 한국의 골프교육은 체계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론적인 것만 갖고 선수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죠. 후배들이 훌륭한 선수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미국 선수들이 잘하는 것은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기 때문이지요. 체력운동, 마인드 컨트롤, 골프코스 운영 등 모든 게 체계적으로 돼있어요. 제가 더 배우고 그걸 경험으로 해서 후배를 키우고 싶습니다.”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을 놓고 다투는 애니카 소렌스탐과 경쟁을 하다보면 미워질 때는 없습니까?

    “정말 선의의 경쟁이니까 미워할 수는 없죠. 그만큼 실력이 있는 거니까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고 저도 항상 기분이 좋지만은 않죠. 올해만 해도 2등을 다섯 번 했는데 세 번이나 소렌스탐 선수한테 졌어요. 우승해도 아쉬움이 남는 게 골프예요. 지고 나면 속상하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죠. 항상 좋기만 하겠어요? 그렇지만 소렌스탐은 실력있는 선수고 자기 실력으로 우승한 것이니 ‘쟤는 운이 좋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요. 진정으로 축하해 주고 나에게 뭐가 모자란가를 파악해서 연습하지요. 그래서 소렌스탐 선수나 웹 선수와 경쟁하는 게 좋아요.”

    참고로 미국 LPGA의 ‘빅3’는 캐리 웹, 애니카 소렌스탐, 그리고 박세리 선수다.

    ―애니카 소렌스탐을 꺾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뭐니뭐니 해도 우승할 때는 기분이 좋죠. 그러나 좋은 건 그때 잠깐뿐이에요. 골프장 안에서 트로피 받을 때 잠깐이고 그 뒤에는 다른 시합 스케줄에 맞추어 다시 움직여야죠. 승리에 취하는 순간은 잠시고 금방 잊어요.”

    두려움은 골프의 금물

    ―박선수가 담력이 커서 ‘도 아니면 모’ 작전을 잘 구사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아마추어들은 안전 위주로 플레이를 해야 스코어가 좋아집니다. 페어웨이가 좁고 양쪽에 OB와 해저드가 있는 위험한 코스에서 드라이브로 티샷을 하려면 떨리지 않나요?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 실수를 더 많이 하게 돼요. 그러니까 목표지점, 공이 떨어질 지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코스 공략에서 어느 지점이 더 안전하고 다음 샷에 유리한지를 파악하고 나서는 다른 것에 신경을 안 쓰죠. OB나 해저드에 신경 쓰면 실수할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됩니까. 박선수는 언제쯤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조건이 10년 이상 선수생활이에요. 그 전에는 점수제였는데 지금은 포인트로 바뀌어서 27포인트만 되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저는 절반 이상의 포인트를 땄기 때문에 앞으로 절반만 더 취득하면 돼요. 27포인트를 다 채우는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어요.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어야죠.”

    ―핀에 가장 정확하게 붙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리는 어느 정도입니까?

    “100야드 정도입니다. 70∼100야드 정도가 제일 좋아요. 롱홀에서도 투 온이 안될 경우에는 그 거리를 남겨둔 지점에 세컨드 샷을 떨어뜨립니다. 그 거리에서는 샌드 웨지를 잡아요.”

    ―시즌이 아닐 때 훈련은 어떻게 하나요?

    “골프 코스에 나가냐 안나가냐에 따라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연습을 두 시간 하고 체력훈련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가기 바쁘고 집에 들어오면 잠자기 바쁘지요. 대개 스케줄이 빡빡하지만 연습은 규칙적으로 합니다.”

    ―체력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십니까? 조깅도 합니까?

    “트레이너가 있어요. 조깅은 잘 안해요. 무겁지 않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스트레칭도 많이 합니다. 골프 코스에는 오르내리막 경사가 많아 그런 지형에 대비해 걷기도 많이 합니다.

    ―레슨프로 탐 크립과는 어떻게 계약했습니까?

    “사람에 따라 달라요. 유명한 사람은 유명하니까 많이 줘야 되죠. 저는 유명한 사람보다는 언제든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원했어요. 이 코치는 올랜도에 살고 항상 제가 전화해서 찾으면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이라서 계약했어요.”

    ―골프는 혼자 하는 경기인데다 투어생활하자면 외로울 때도 많지요?

    “골프장에 있을 때는 모르는데 골프장 밖에 있을 때는 많이 외로워요. 시합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혼자입니다. 텔레비전을 켜놓거나 게임을 하지요. 그러다가 엎드려 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견디기 어려우면 유성 집으로 국제전화를 겁니다. 작년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 매일 밤 울다시피 했어요. 남 보는 앞에서는 울지 않으니까 스태프들은 잘 모르죠.”

    외로움을 참지 못해 호텔방에 엎드려 울었다니…. 세계 최고의 승부사도 외로움을 참지 못할 때가 있다는 말인가?

    “골프장 밖에서는 외로워요”

    ―다른 운동과 비교해서 골프가 갖는 장점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골프는 도전의 연속이에요. 항상 정상에 머물 수는 없잖아요?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생각으로 골프를 치지만 순간마다 감이 달라요. 그런 점에서 골프는 예민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운동입니다. 계속 도전하는 게 매력이기도 합니다.”

    박세리 선수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집을 마련했다. 그곳은 디즈니월드로 알려진 유명한 휴양도시로 연중 내내 골프를 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미국에서 살고 싶어요?

    “그건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그래도 한국이 좋습니다.”

    ―영어는 어떻습니까?

    “조금씩 좋아지는 편이에요. 지금은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어요.”

    영어는 텔레비전 시트콤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라니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셈이다.

    ―박선수 아버지와 가정에서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보도되면 언짢지 않습니까.

    “언짢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걸 숨기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겁니다. 그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가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걸 감추고 싶지 않지만,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지 않았으면 해요.”

    ―브리티시오픈에서 15번 홀부터 난코스였지요. 아버지가 거기서 스푼을 잡지 말고 무조건 드라이브를 잡으라고 전화로 코치했다던데.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하십니까?

    “아버지의 의견은 항상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버지를 믿으니까 아버지 말씀은 다 듣고 거의 따르는 편이죠. 어떤 상황이든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건 항상 참고해요.”

    브리티시오픈 1, 2라운드를 끝내고 박선수가 유성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다짜고짜 “네 직업이 뭐냐? 네가 아마추어냐? 네가 몇 살이냐?”고 싫은소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박선수가 “아빠 최선을 다할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와 라운딩을 해봤습니까?

    “한번 했어요. 정말 대단한 선수 같아요.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강인해요. 집착이나 게임 운용, 모든 면에서 강해요. 같이 라운딩을 해보니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더군요. 그리고 재미있어요. 농담을 좋아하고…. 공을 칠 때는 말 한마디 없이 신경을 집중하지만 공을 치고 나면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프로선수들도 다른 선수가 샷을 하기 전에 ‘OB나 내라’는 식의 농담을 합니까?

    “그렇게 심한 농담은 안해요.”

    ―골프 안칠 때 골프와 관련되지 않은 취미생활은 어떤 것입니까?

    “특별한 취미가 없어요. 호텔방에서 무료할 때 전자게임을 하는 편이지요.”

    ―딸 셋 중에 둘째인데 자매들과는 어떻게 지내세요?

    “언니와 여동생이 있어요.”

    정말 재미없는 대답이다. 세 딸 중 가운데니까 언니가 있고 동생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언니는 뭐해요?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아직 결혼은 안했습니다.”

    ―어머님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아버님 말씀을 많이 들어봤지만….

    “저희 어머니는 항상 뒤에서 조용히 도움이 돼주시는 분이세요. 잘 챙겨주시고 생각해 주시고 조용히 힘을 주세요.”

    인터뷰하는 동안 어머니는 내내 응접실 바닥을 닦고 있었다. 응접실이 테니스코트 절반 정도는 되니 언제 저 넓은 바닥을 다 닦을지 걱정이 됐다.

    박선수와 소렌스탐 선수는 올해의 선수 상과 상금왕을 다투어왔다. 제주도에서 제일제당 주최의 스킨스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면 마지막 한 대회가 남는다.

    “지난주 일본에서 소렌스탐이 우승하는 바람에 내가 올해의 선수상이나 상금왕을 차지하기는 힘들어졌어요. 그렇지만 마지막 시합까지 최선을 다 해야죠. 결과가 어떨지 모르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할 생각이에요.”

    ―시즌이 끝나면 한국에 올 계획이 있습니까.

    “시합이 몇 개 취소되는 바람에 내년 시즌 오픈이 1월에서 2월로 연기됐어요. 그 사이에 한번 나올 생각이에요.”

    박준철씨는 외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귀에 리시버를 꽂은 사설 경호원 세 명이 서성거렸다. 내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골목길에서 다른 신문사 차가 인터뷰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언론이 박선수의 사생활을 너무 뺏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박선수는 11월6일 국내 체류일정을 끝내고 출국했다. 올시즌 LPGA 마지막 공식대회인 타이코 ADT 투어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박세리는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박선수가 떠나고 이틀 뒤인 8일, 박준철씨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박선수는 대기선수명단에 올려놓고 아버지의 병세를 예의 주시했다. 그러던 중 박준철씨가 6개월 이상의 입원을 요한다는 진단을 받자 12일 서둘러 귀국했다. 이로써 박선수는 2001년 LPGA 공식일정을 사실상 마감했다. 올해의 선수상과 다승왕 타이틀도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박세리는 시즌 5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박준철씨의 쾌유와 박선수의 내년 시즌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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