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손학규 의원의 된장찌개

된장냄새에 취해서 세상사를 잊다

  •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11-17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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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 모락모락나는 하얀 쌀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 된장찌개다. 하얀 밥을 한술 입에 뜬 뒤, 뜨거운 된장찌개를 떠넣으면 입 속에서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섞이면서 혀 양쪽 가장자리에서 침이 흘러나온다. 부재료를 넣지 않고 바특하게 끓인 강된장찌개일 경우, 아예 밥에 된장을 한 술씩 떠서 비비면서 먹어도 된다.
    손학규 의원의 된장찌개
    손학규 의원의 식성은 토종이다. 그는 음식 중에서도 밥을 가장 중요하게 치고 밥이 기름지게 잘되면 반찬이 없더라도 식사를 거뜬히 끝낸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지만 밥을 꼭 먹어야 식사를 마친다. 그는 설렁탕이나 시금치국 등 국물 음식에 밥 말아먹기를 좋아하는데, 밥이 고슬고슬하게 잘되면 밥맛을 즐기기 위해 밥을 말지 않는다. 어쩌다 하루 한끼 정도 국수를 먹었다면 불안하고, 다음 식사에는 꼭 밥을 찾을 정도니 그의 밥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가족 중에서도 둘째딸이 아버지를 닮아 밥을 좋아한다고 한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할 때도 그는 밥을 쉬지 않고 해먹었다. 영국은 좋은 쌀을 구하기가 어려워, 한국에서만큼 맛있는 밥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최소한 1시간 이상 쌀을 물에 불려 밥을 지었다. 그러면 촉촉하게 잘 익은 밥이 되더라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 된장찌개다. 하얀 밥을 한 술 입에 뜬 뒤, 뜨거운 된장찌개를 떠넣으면 입 속에서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섞이면서 혀 양쪽 가장자리에서 침이 흘러나온다. 부재료를 넣지않고 바특하게 끓인 강된장찌개일 경우, 아예 밥에 된장을 한 술씩 떠서 비비면서 먹어도 된다. 비벼 먹을 경우, 하얀밥에 누르스름한 된장빛깔이 물드는 것을 보는 눈의 즐거움도 최고다. 구수한 밥냄새와 된장냄새는 첫 냄새에 침이 고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손학규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이 된장찌개다. 예전에는 찌개를 ‘조치’라고 불렀는데 간장으로 간을 한 맑은조치와 고추장이나 된장을 풀어넣은 토장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전부터 서울의 양반가문에서는 텁텁하고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아, 간장이나 소금 또는 새우젓으로 간을 한 맑은찌개와 국을 즐겼다. 그러니 텁텁하고 걸쭉한 맛을 내는 된장찌개는 애초부터 서민음식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된장찌개와 된장국에 얽힌 일화가 있다. 조선시대 철종은 어릴 때 강화도 산골에서 나무 하고 꼴 베는 사람이었다. 이 강화도령이 어느날 갑자기 궁궐로 불려가 임금이 되었는데 아무리 좋은 산해진미도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았고, 오직 어릴 때 먹던 시래기된장국과 막걸리 생각만 간절하여 구해오라고 명을 내렸다. 대궐에서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막걸리는 구해왔지만 시래기된장국은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철종의 외가인 강화도의 곽씨댁에서 시래기된장국을 구하여 아침저녁 수라상에 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식성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가 없다. 손의원이 그짝이다. 정치인이라서 여기저기 식당에서 수도 없이 식사를 하지만, 그가 강박관념을 가지고 찾는 것이 밥과 된장찌개니 별수 없는 노릇이다. 가장 즐겨찾는 단골식당도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낙지실비집이다. 여기저기 고급식당에서 수도 없이 식사를 하지만 이곳이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서민음식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손의원은 삶 자체도 서민 냄새가 묻어난다. 장관까지 지낸 그의 재산은 정치 입문 전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두 딸이 사는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재산이 없는 손학규 의원이 그동안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었다. 주변에는 그를 사랑하는 교수, 학생, 주민들이 많았고, 선거를 치를 때면 이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와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정치인 손학규는 하루저녁에 저녁식사를 세 번이나 해야 할 정도로 식사약속이 많지만 가족은 항상 순위에서 밀린다. 정치인은 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일요일이 평일과 다른 점은 그래도 저녁식사 정도는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가 되면 그는 모든 세상사를 놓고 풀어진다. 그 순간, 손의원 아내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인다. 이 된장찌개를 뜰 때가 손의원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처럼 손의원의 집에서는 같이 밥을 먹는 것이 가족행사다.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손의원은 두 딸에게 항상 결혼하면 밥을 해서 가족을 먹이라고 주문한다. 음식을 잘해서 주위 사람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어떤 전문성보다 소중하다는 것이다.

    손학규 의원의 된장찌개
    찌개는 온갖 재료를 한데 담고 끓이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만, 맛있게 끓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된장찌개는 사람마다 솜씨가 다르다. 된장찌개에 넣는 재료는 보통 풋고추, 풋마늘, 달래, 파 등과 푸성귀로 풋배추, 열무, 배추나 시래기, 무, 삭힌 고추 등이 있고, 표고나 송이버섯, 두부 등도 넣는다. 하지만 재료가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제철에 가장 흔한 재료 서너 가지를 넣고 끓이면 된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를 넣고, 여름에는 흔한 푸성귀를 넣는 식이다.

    손의원은 국물맛을 좋게 하기 위해 미리 멸치로 국물을 낸 뒤 된장찌개를 끓인다. 멸치국물을 내고 나면, 이 국물에 된장을 푼다. 된장찌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된장의 품질이다. 손의원 집에서는 고 제정구 의원의 부인 신명자 여사가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에서 만든 된장을 쓰고 있는데, 이 된장맛이 일품이다. 된장을 푼 뒤 감자와 양파를 썰어넣는다. 손의원이 된장찌개를 끓일 때 빼놓지 않는 재료가 감자다. 된장찌개에 감자가 들어가면 국물맛이 걸쭉하고 부드러워진다. 또 된장찌개에 들어간 감자도 된장을 흠뻑 빨아들여 간도 맞고, 구수해진다. 그러니 분명 된장과 감자는 서로 맛을 보충하여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는 재료다. 잘 익지 않고 단단한 재료인 감자를 넣고 나면 양파, 호박, 풋고추, 두부를 썰어 넣으면 된다.

    된장찌개를 맛있게 만드는 요령은 전과정을 은근한 불에 끓이는 것이다. 요즘 식당에서도 뚝배기에 끓여서 내주지만, 화력이 센 가스불에 빨리 끓인 것과 화롯불에 오랫동안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맛을 비교할 수 없다.

    손학규 의원은 일상에서 지치면 산을 찾는다. 그는 2001년 7월24일부터 27일까지 3박4일 동안 부인 이윤영씨, 보좌진, 제자들과 함께 지리산을 다녀왔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였다. 손의원은 내심 아내가 지리산 종주길을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아내는 힘든 종주길을 별탈없이 소화해냈다.

    지리산을 다녀온 뒤 손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는 “지리산으로부터 언제나 사랑을 배운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자락 속에 온갖 들꽃과 산짐승, 쨍쨍 내리쬐는 여름햇살과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구름바다를 함께 안고, 몸을 날릴 듯한 바람, 칠흑 같은 밤하늘을 수놓은 초롱별, 아름다운 것, 거친 것, 빛나는 것, 어두운 것,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지리산의 넉넉함과 인자함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자세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지리산 종주에서도 손의원을 든든하게 한 것은 된장찌개였다. 먹어서 가장 편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니, 산행에서도 함께한 것이 당연했다. 그에게 된장찌개는 돌아가신 어머니고, 곁에서 항상 그를 지키는 아내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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