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산소마스크 대신 행복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마지막 안식처’ 호스피스 병동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11-09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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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집을 방문해서 말기환자를 돌보는 심재희(38)씨는 2000년 11월 아들 김성원(당시 10세)군을 잃었다.

    백혈병이 의심된다며 의사가 골수검사를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설마 백혈병은 아니야… 오진이겠지’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김군은 결국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아이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손발을 심하게 떠는 증상이 나타났고 구토가 더욱 심해졌으며 탈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조언에도 심씨는 치료에만 매달렸다.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사이비 의약품을 아들에게 먹이기도 했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나서기도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병을 고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주치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해야 성원이가 가장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김군은 고통에 지쳐 잠자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손과 발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이가 잠시 의식을 찾아 “엄마 나 언제쯤 학교에 갈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심씨는 아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눈물이 나올 만큼 김군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정을 떼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죽음을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불렀을까…”

    엄마의 그런 무관심한 태도에 열살배기 아들은 외부의 자극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게 됐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이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뱉는 순간, 심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입맞춤해주지도, 꼭 껴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다. 눈물이 쏟아졌지만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내 잘 가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아들의 죽음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안녕이라는 말이라도 해주었어야 하는데…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

    아들을 이렇게 보낸 심씨는 심한 죄의식에 시달렸다. 무서움에 떨며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는 성원이의 모습이 꿈에 나타나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우울증에 걸린 심씨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평범한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사는 것 자체가 악몽과 같아 다 털어버리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괴로워하는 심씨에게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가 호스피스 봉사자교육을 받을 것을 권했다. 교육을 통해 말기환자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이 아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아들을 돌본다는 생각으로 말기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돕느라 여념이 없는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우울증도 깨끗이 씻어냈다.

    “인간의 죽음이 삶보다 더 고귀하고 존엄한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무지한 엄마 때문에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불행하게 보낸 성원이를 생각하면 미안할 뿐입니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들이 죽기 전에 호스피스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호스피스의 설립목적은 김군과 같은 상황에 처한 말기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남은 여생,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정신적으로 돕고, 환자의 가족들이 간병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도록 도와준다. 또 사별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느끼는 상실감을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편지나 전화 모임 등을 통해 도와주고 격려하는 의료서비스다.

    병원 중환자실에선 임종 직전까지 수혈을 받으며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며 최후까지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과 호스피스를 통해 차분히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정리하는 사람들 중 누가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일까.

    봉사자로 어렵게 꾸려가는 호스피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짐을… 벗으며…”

    복도 끝에 위치한 병실에서 입원한 한 말기암 환자가 나즈막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 배어있었지만 기도를 하는 표정은 매우 평화로웠다.

    말기환자들은 누구나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욕구, 생의 가치나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욕구가 생겨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말기환자들 중엔 때늦게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많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종교를 믿는 경우보다는 삶과 죽음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신앙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설명이다.

    기도를 하던 이 환자도 말기암 진단을 받고나서 영세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몸은 고통에 떨며 신음하고 있었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너무도 태연했다.

    이 병원에서는 6명으로 구성된 7개조가 번갈아가며 환자를 간호한다. 병원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말기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객혈을 하는 환자를 돕고 영적인 상담을 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말기환자의 앞 이마에 정성스럽게 냉찜질을 해주고, 세면장에서 비눗물로 환자의 항문주위를 조심스럽게 헹구어 내는 일도 모두 봉사자들의 몫이다.

    말기암 환자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것. 암환자의 통증은 신체내부에서 자라난 종양이 신경을 누르거나 뼈로 전이됐을 때 나타나는데, 수발하는 사람이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환자들의 고통이 매우 크다고 한다.

    한 봉사자는 “봉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말기환자들이 고통에 시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며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내 살이 찢기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성가복지병원(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호스피스 병동의 풍경이다.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하는 성가복지병원은 행려병자, 무의탁자, 극빈자를 돌보는 무료 병원이다. 이 병원에는 의탁할 곳 없는 극빈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을 설치, 말기환자들이 안락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성가복지병원 같은 형태를 병동형 호스피스라고 한다. 병동형 호스피스는 국내에 몇 군데 없다. 병동형은 병원 내에 확보된 병동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유형으로 의료시스템이나 의료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아 공익목적이 아니라면 설치하기가 어렵다. 체계적인 완화치료를 위해서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

    한편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병원의 대부분은 산재(散在)형이다. 내과병동이나 암병동에 일반환자들과 함께 호스피스 환자들을 입원시켜 별도로 구성된 호스피스팀의 치료를 받게 하는 시스템이다. 말기환자가 일반환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단점 때문에 호스피스 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간호가 어렵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의 유형은 가정호스피스. 가정호스피스는 호스피스 요원이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돌보는 형태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다. 집이라는 편안한 환경에서 간호를 받을 수 있고 언제든 다시 입원이 가능해 환자들이 가장 선호한다.

    이처럼 크게 3종류로 나뉘는 호스피스의 대부분은 의사나 간호사 등 전문인력의 참여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봉사자들의 희생정신에 의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선생님 일주일 남았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저도 그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합니다.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2001년 10월5일 오전 10시 서울 S병원 호스피스 병실. 호스피스 봉사자 민명희(필로메나) 수녀의 말이 떨어지자 다발성 골수종 환자 이정현(45·가명)씨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생(生)을 곱씹으며 화해와 용서의 눈물을 터뜨렸다. 민수녀와 다른 두 명의 봉사자가 눈물을 쏟는 이씨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위로하자 그의 얼굴에는 이내 평화스러운 미소가 가득해졌다.

    2000년 11월 두통과 변비가 계속되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사지에 힘이 없어 병원을 찾은 그는 의사로부터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발성 골수종은 암의 한 종류로 골수종 세포가 증가하면서 뼈를 파괴하고 약화시켜 통증과 골절을 일으키는 병이다. 이씨 역시 심한 통증으로 걷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골수종 세포는 골수가 면역체계에 필요한 백혈구와 형질세포를 생산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다른 질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적혈구도 몸이 원하는 만큼 만들어지지 않아 그는 투병기간 내내 빈혈을 호소했으며 항상 피곤을 느꼈다. 신장에도 문제가 생겨 각종 찌꺼기가 걸러지지 않았고 몸속에 노폐물이 계속 쌓여갔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통증은 다소 완화됐지만 병세는 이미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지난해 5월12일 그는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했다.

    이씨의 동거인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양어머니 한 사람뿐이다. 형제가 4명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고 그를 버린 친부모와는 의절상태였다. 간병인을 구할 형편도 안됐다. 이씨와 같이 통증과 후유증에 신음하는 말기환자들의 경우는 간병인이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 간병인을 구해 환자를 돌보게 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한 환자들 중 이씨처럼 간병인을 구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여생을 고통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헌신적이 노력 덕택에 평화스러운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봉사자 정순희씨 등은 지난 5개월 동안 그의 집을 방문해 병을 보살폈고 양어머니의 환경미화원 일을 돕기도 했다. 친부모에 대한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그는 간병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쉽게 안정을 찾지 못했다.

    발 끝에서부터 찾아오는 죽음

    퇴원 2주 후 이씨는 봉사자들에게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봉사자들이 그의 다리를 정성껏 마사지하면서 따뜻한 말을 전하자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이씨의 가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불행한 가족사에서부터 자신이 살아온 얘기까지 그의 입에서 토해나오는 회한과 애증은 이씨뿐만 아니라 봉사자들의 눈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에 대한 분노는 그에게 통증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원망이 모두 부모에게 향해 있었다.

    누구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호스피스 환자들은 점차 몸이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지난날의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고 싶어하며 자신에게 타인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에 따르면 의미 있는 타인이 자신을 용서해준다는 것을 느끼거나 확인하면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고 한다.

    이씨는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으며 부모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용서와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봉사자들은 정형외과 주치의가 처방한 진통제를 그의 집으로 배달했고, 고단백수액(아미노푸신)과 섬유음료 콩국 등을 만들어 그의 병을 돌봤다. 정성스런 치료 덕분이었을까. 빈혈과 다리 혈행장애는 퇴원 전보다 상태가 더 악화됐지만 그의 마음은 나날이 따뜻해져 갔다. 지난 여름 봉사자들이 작은 선물을 내놓자 이씨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봉사자들이 본 그의 첫번째 웃음이었다.

    응급실을 방문해 빈혈과 영양부족 상태를 체크하기를 여러 번, 10월4일 그는 살아서는 병원을 나갈 수 없는 마지막 입원을 했다. 임종이 가까워오면 말기환자는 누구나 자신 옆에 누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영적·정신적·육체적 안정을 주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병원에 도착해 자신을 돌보던 봉사자들을 만나자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민수녀는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떨쳐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개는 가족들이 이런 역할을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의 경우는 돌볼 사람이 마땅찮은 경우가 대다수다.

    5개월 만에 병원에 다시 입원한 이씨는 퇴원할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삶에 대한 증오는 사랑으로 바뀌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링거바늘조차 제대로 꽂을 수 없을 정도로 뼈만 앙상히 남은 몸으로 가눌 수 없는 통증을 견뎌내면서도 그의 표정은 안온했다. 몸은 치료받지 못했지만 영혼이 치유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버린 친부모와 형제들을 용서한다”며 “바르게 살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끝내 친부모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내가 용서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말 한마디 내뱉기도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봉사자에게 손을 건네 인사를 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흘리는 용서와 화해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이씨는 ‘예정된 시간’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잠들었다. 죽음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은 혀가 마르기 시작한다. 간병인들은 1시간에 한 번 정도 그의 입에 물을 축여주거나 거즈에 물을 적셔 입에 물렸다. 죽음은 발끝에서부터 찾아온다. 사지 끝에서 끈끈한 차가움이 밀려왔고 가래 끓는 소리가 밖으로 들렸다. 봉사자들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손길로 환자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함께 기도를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의 얼굴은 고통이 모두 사라졌음을 말했다.

    “말기환자들을 돌보면서 제가 오히려 위로받습니다. 환자들이 흘리는 참회와 용서의 눈물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합니다. 이선생님처럼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분을 보면서 느끼는 보람은 매우 큽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시는 분들이 가장 아름다워요. 평화와 행복이 충만한 모습으로 가시는 분들을 보면 저의 마음도 저절로 따뜻해집니다.”

    이씨를 돌보던 봉사자 문귀님(65)씨의 말이다.

    이씨처럼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으면서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인생사를 접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서울의 한 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생을 마감한 김순희(42·가명)씨도 그러한 경우.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김씨는 세 차례 결혼했다. 세번째 남자와 동거를 하던 지난해 자궁경부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성가소비녀회 김복녀(앙리) 수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의 정신상태는 ‘최악’이었다. 김씨는 남들로부터 주목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격이었고, 불행한 가족사 탓인지 가족과 사회, 병원에 대한 푸념과 불만이 대단했다.

    말기암 환자라면 으레 겪는 신체적 고통에도 힘들어 했지만 그를 더욱 억누른 것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는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열한 살, 열여섯 살의 두 자녀를 이혼 후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병세는 역시 자원봉사자들의 사랑스러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 자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빠른 속도로 악화돼 갔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는 군의관 문도호씨는 “말기환자와 봉사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환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봉사자에게 털어놓게 된다”고 말한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죽는 게 무섭습니다. 저는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딸들을 보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

    김씨는 자신의 처지를 봉사자들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과거에 사랑을 나누었던 이들을 그리워하며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잘못으로 사랑이 깨어진 경우엔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어렵습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는 국립의료원 간호사 한은미(34)씨의 말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생의 남은 기간 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김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은 김씨의 두 자녀를 수소문했고, 그에게는 곧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봉사자들이 어렵게 찾아낸 그의 큰딸은 처음엔 어머니를 만날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핏줄의 힘’은 달랐다. 봉사자들의 끈질긴 설득에 김씨의 큰딸은 결국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쫓아 병원을 찾았다.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큰딸을 죽음을 앞두고 다시 만난 그는 미안하다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모녀가 상봉하던 날 병실은 ‘눈물 바다’로 변했다.

    딸을 만난 후 김씨의 통증은 빠르게 호전됐다. 초기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대한 원망, 사회에 대한 불만, 가족에 대한 회한도 수그러들었다. 그에게 죽음은 더 이상 거부와 분노의 대상이 아닌 평화와 안락의 대상이었다. 김씨는 두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스럽게 숨을 거뒀다.

    김씨 자녀들의 삶도 바뀌었다.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불량청소년’ 생활을 하던 큰딸도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의 주선으로 한국외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며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그의 담임선생님을 찾아 부모를 대신해 복학에 관한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봉사시설의 도움을 받으면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막내도 호스피스 봉사자를 부모처럼 따른다. 병원에서 살면 안되냐고 김수녀에게 말했을 정도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종종 목격하는 이러한 감동적인 장면들은 호스피스가 현대의학으로 치유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화스러운 죽음으로 인도하는 호스피스와 말기환자에 대한 전통적 접근방법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전통적 치료에선 환자가 사망하면 의료진과 가족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호스피스는 환자의 사망 이후에도 남은 가족에 대한 완화치료가 김씨 가족의 경우처럼 계속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지 않는 말기환자들은 중환자실에 격리돼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채 특수관리를 받거나 가정에서 적절치 못한 돌봄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호스피스는 환자가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며, 가족들에 대한 사별관리도 동시에 진행돼 환자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삶을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말기환자들에게 가장 괴로운 것이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받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사별가족 중에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별 후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엄청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별관리가 선진국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는 곳은 국내에 거의 없습니다.”

    고대병원 호스피스팀 김찬옥 수간호사의 말이다.

    즉 임종환자에 대한 전통적 접근방법은 병에 대한 치료를 통해 신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목적이지만 호스피스는 삶을 단축시키거나 연장시키려 하지 않고 환자와 가족이 가능한 한 남은 삶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김간호사는 “호스피스에서는 모두가 환자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을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순간으로 여기도록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전통적 치료에서는 말기환자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정맥주사와 위장관을 이용해 임상검사와 진단을 계속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따라서 마약류의 진통제 사용도 가능한 한 억제한다. 반면 호스피스에서는 통증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를 충분히 사용하면서 환자의 고통을 조절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부정, 분노, 수용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이를 곧 죽음과 연결시킨다. 이때 예기치 않은 충격적인 사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난 믿을 수 없어’라는 태도를 보인다.

    환자는 진단이 잘못됐다는 생각으로 더 나은 진단을 기대하고 여러 병원을 찾게 되며 증상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호스피스는 이러한 생각을 하는 ‘부정’의 단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객관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완화치료를 시작한다.

    위암 말기환자인 김모(48)씨는 가정간호 호스피스를 받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70kg이 넘던 몸무게가 45kg으로 줄어들었다. 병을 앓기 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 같은 사람인지 의심들 정도로 그의 몸은 쇠약해져 있었다.

    “처음에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제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병원을 몇 군데 더 돌아다녀봤지만 똑 같은 얘기를 하더군요.”

    김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링거주사를 빼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간병인과 자신을 돌보던 아내에게 폭언을 하기 일쑤였고 발작증세가 심해지면 집안의 물건을 내던지기도 했다.

    평생을 착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왜 이런 불행이 찾아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생긴 ‘분노’였다. 이러한 분노의 감정은 말기환자들 대부분이 겪는 것. 보통은 자신의 가족이나 병원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화를 내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을, 일찍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경우도 있지요. 환자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 환자가 존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면 안정될 수 있습니다.”

    이대 가정호스피스 최화숙 교수는 “말기환자들이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면 이를 막으려고 하기보다는 이해하고 더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가 ‘불행한 죽음의 길’에서 ‘행복한 죽음의 길’로 옮겨탄 것도 가톨릭단체를 통해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래 이제는 내 차례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노골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사후의 육신, 남은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끔 미치도록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죽음이 고독한 어둠일까 아니면 또 다른 세계가 있을까’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꽤 오랫동안 못 본다는 사실은 가슴이 아픕니다.”

    죽음에 대한 상반된 태도

    김씨는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남은 생이 얼마만큼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서 “정리할 시간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삶을 보람있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는 “최근 들어 남편의 표정이 아주 밝아져 혹시 치료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지만, 그는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호스피스 환자들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갖는다. ‘혹시 새로운 약이 개발되어서, 혹시 기적이 일어나거나 완치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다.

    김찬옥 수간호사는 “그러한 희망을 부추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당신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겠다, 정기적으로 찾아 뵙겠다는 말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내게’라는 탄식은 죽음의 처지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불평일 뿐이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죽음이라는 ‘운명’은 어찌하지 못하겠지만 어떤 이는 죽음의 그림자를 친구처럼 들쳐업고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은 종교·사회·문화적 배경, 상실과 죽음에 대한 사전경험 등의 개인적 특성과 환자의 인간관계의 특성, 통증의 강도나 지속정도, 정신과 육체의 약화정도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편차가 크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1700여 명의 임종을 돌본 사랑의 교회 호스피스 박남규 목사는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면서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종교를 가질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내세관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최화숙 교수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내세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호스피스 치료를 통해 쉽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내세를 믿지 않는 종교의 신자이거나 기독교 신자라도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이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절규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꽤 있고요.”

    나이에 따라서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 영아기에서부터 5세의 아이들은 죽음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아기의 아이들에게 죽음은 깊은 잠에 빠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개념이다. 장년층(45~65)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고,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개인차는 있지만 중년층보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인다(표 참조).



    병원에서 말기환자들은 찬밥 신세다. 말기환자들에 대한 의사들의 무관심은 환자들을 소외시키고 통증에 괴로워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는 한 간호사는 “호스피스 환자의 진단서를 받기 위해 의사를 찾을 때마다 말기환자들에 대한 의사들의 무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외과병동에서 수술한 후 일주일이 지난 환자는 의사들로부터 버림받습니다. 우선 돈이 안돼요. 수술이 끝난 환자가 빨리 퇴원해야 병상 회전율이 높아지잖아요. 의사들은 완화치료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어요. 환자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지요. 회진을 돌면서도 치유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꼼꼼히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말기환자들은 철저히 외면하죠. 말기환자 다루는 법을 전혀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호스피스 완화치료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호스피스제도는 한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암으로 숨지는 사람은 5만 명이 넘지만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기관은 전국에 겨우 60여 곳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호스피스가 주류의학계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니 운영이 체계적일 수 없고, 아마추어 수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별도의 호스피스과를 두고 있는 병동에서도 가정의학전문의가 책임을 맡고 있는 경우를 보기가 힘들다.

    까다로운 마약관리 규정도 적절한 통증완화치료를 가로막아 호스피스제도의 정착을 더디게 하고 있다. 말기환자에게 투여하는 마약은 금단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데도 일반환자와 똑같이 이뤄지고 있으며 마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도 깎이기 일쑤다.

    종합병원 외과병동에선 환자의 병세가 죽음 직전에 이르렀는데도 가족들이 의사에게 “최선을 다해달라. 꼭 고쳐달라”고 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호흡기를 달고 있어도 머지않아 합병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하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자식의 도리다. 노령의 부모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일 중 하나다.

    흔히들 한 인간의 탄생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과 축복을 보낸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고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인생을 정리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말기환자들에게는 인간답게 살다 죽을 권리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죽은 뒤에는 유족들이 경제능력을 뛰어넘는 풍성한 장례를 치르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돈을 들이지 않는다. 죽음에 이르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철저히 당사자가 고스란히 지고가야 한다.

    호스피스 전문가들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치료를 받겠다는, 혹은 호스피스를 통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것을 말기환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스피스 기관이 모자라는 까닭은 의사들의 무관심과 시장논리 때문이다. 호스피스 기관은 수술이나 치료를 하는 곳이 아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들이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상담 등을 통해 도와주는 게 전부다. 제대로 운영하려면 돈이 들지만 병원으로서 돈이 되는 건 진통제밖에 없다.

    김찬옥 수간호사는 “호스피스만을 위한 별도의 건강보험 수가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장 건강보험 재정에는 부담이 되겠지만 죽음을 앞두고 의학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치료에 가산을 탕진하는 사회적 비용에 견준다면 오히려 돈이 적게 든다는 것. 여기에 환자의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줄여주는 효과까지 기대한다면 굳이 셈이 필요없다.

    안락사의 대안

    대한의사협회는 2001년 11월15일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진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의사윤리지침을 채택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고 훼손하는 내용은 즉각 삭제돼야 한다”면서 “의사협회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한다”고 의협을 비난했다.

    호스피스는 이러한 논쟁의 대안도 될 수 있다.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통해 예상 생존기간보다 길게 삶을 유지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고, 고통을 완화하고 영적인 치료를 통해 죽음에 인도함으로써 안락사의 대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호스피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박남규 목사의 주장이다.

    “호스피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될 안락사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통증완화와 영적 치유를 통해 병원에서 예정된 기간보다 오래 삶을 유지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환자가 원하고 치유가능성이 없다면 호스피스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게 고귀한 죽음으로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받는 것도 환자가 결정해야 할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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