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이인제냐 대역전이냐

민주당 大權경선 스타트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1-10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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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의원 장악한 이인제, 대세장악 나선다
    • 한화갑의 묘책 “적 없는 사람이 최후에 웃는다”
    • 노무현 정동영의 장담 “제주 반란 두고 보라”
    • 지역경선·국민참여선거인단, “民心과 黨心 일치 노린 전술”
    • 선호투표제는 이변 막는 안전장치
    • 대권은 ‘메이저리그’, 당권은 ‘마이너리그’?
    ‘게이트 정국’이 끝간 데 없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비리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속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나라가 온통 비리 천국이라도 된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흐른다. 연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향해 정치권은 달려가고 있다. 여야가 모두 바쁘다. 그 중에서도 대권주자가 난립한 새천년민주당의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민주당은 1월7일 당무회의에서 ‘당발전과 쇄신 관련 당헌·당규개정을 위한 특별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특별결의에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조항이 담겨있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 정당의 1인 지배가 쉽지 않도록 했다. 공직출마 후보들은 당원과 국민의 투표로 선출하도록 했다. 이른바 상향식 공천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대선 후보 선출방식의 변화다. ‘국민참여경선’과 ‘선호투표제’로 대표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둘 다 낯설기 이를 데 없는 제도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 제도 도입을 주장해온 정치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정치학자들은 “쇄신안을 제대로만 실시한다면 한국 정치사에 중대한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천둥벌거숭이 정치권을 향해 쏟아진 모처럼의 축복이다. 벌써부터 재미있는 게임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부푼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게임에 나서야 하는 당사자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게임의 법칙’이 달라진 이상 전략·전술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눈치들이다.

    달라진 후보선출 방식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할까? 누가 제도변화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민주당의 경선 과정은 정치권 판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대권후보 경선과 분리해 치를 예정인 민주당 당권경쟁은 또 어떤 양상이 될까? 새 제도로 당선된 민주당 후보의 본선 경쟁력은 어떨까? 이회창(李會昌) 총재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을까? 당장 한나라당에는 별 일이 없을까? ‘이회창 대세론’으로 집약되는 현재의 구도에 변화가 생길까? 그렇다면 이에 맞서는 한나라당의 대응전략은 무엇일까?





    고원정 소설의 오류


    민주당에서 시작된 변화는 정치권 전체에 수십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물음에 당장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해답은커녕 달라진 경선 방식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허둥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의도 민주당사에서는 국민참여경선제와 선호투표제가 뭐냐고 묻고 답하는 당직자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끔은 구체적 실행방식을 두고 당직자들 간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제도의 입안을 맡은 당 연구소인 국가전략연구소측에 자문을 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민주당 사람들이 이 지경이니 외부인이 달라진 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1992년 대선 직전 ‘최후의 계엄령’이라는 실명정치소설을 써 화제를 모았던 고원정씨. 고씨는 최근 한 주간지에 ‘천년의 길’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권관련 실명소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씨의 소설에는 민주당의 달라진 경선제도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소설은 2002년 4월19일, 권역별 경선의 마지막 행사인 서울지역 경선을 하루 앞두고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고문이 기자회견을 갖고 대권후보 사퇴선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음은 소설의 일부분이다.

    김고문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킨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부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술렁거리는 기자들. 하지만 일단 입을 연 김고문은 더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즉 내일 있을 수도권 예비선거에 불참한다는 뜻입니다.”

    “패배를 시인하신다는 말입니까?”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김고문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을 앞세우며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제가 최하위에 처져 있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일 있을 마지막 예비선거에서 역전을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있습니다. 최소한 꼴찌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이유가 뭡니까?”

    김고문은 두어 번 입술을 씹고 나서야 대답했다.

    “내일 수도권 예비선거가 어떤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될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기자들의 동요는 더 커졌다. 말 그대로 폭탄선언인 셈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내일 예비선거는 한화갑 고문과 이인제 고문의 야합에 의해 진행될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소위 역할분담의 원칙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즉 당권은 한고문이, 대권후보는 이고문이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예비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런 밀약이 있었습니다.…두 사람은 수도권 예비선거 직전까지 맞대결을 하고, 그 결과 앞선 사람이 대권후보를, 뒤진 사람이 당 대표를 각각 차지하기로 합의를 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들의 합의는 내일 현실로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그 야합을 저지하기 위해 후보를 사퇴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내일 예비선거에서 노무현 고문을 지지할 것입니다. 이것은…우리 민주당이 보다 더 개혁적이고 참신한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차원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소설은 단지 소설일 뿐이다. 하지만 고원정씨의 새 소설은 민주당의 대권후보 경선방식이 확정되기 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라면 작가가 새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는 소설 첫 대목부터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허점을 설명할 길이 없다.

    소설 속 김고문의 주장처럼 이인제 고문과 한화갑 고문이 대권후보와 당대표를 놓고 ‘야합’을 하기란 바뀐 제도 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1·7 당무회의 특별결의에서 대선후보가 당대표를 겸임하지 못하도록 못박았다.

    물론 대통령 후보도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고위원 경선에서 최다득표를 얻더라도 대표최고위원을 맡을 수는 없다. 만약 대선후보가 최고득표를 할 경우 차점자가 대표최고위원을 맡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김근태 고문의 주장처럼 “수도권 예비선거 직전까지 맞대결을 하고, 그 결과 앞선 사람이 대권후보를, 뒤진 사람이 당대표를 각각 차지하기로 합의”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가설인 셈이다. 대권주자가 되는 사람은 당대표를 맡을 수 없으므로 소설 속 선두인 이고문이 한고문에게 당권을 양보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허구다.

    대권후보 선거인단과 당대표를 뽑는 선거인단이 다르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대권후보 선거인단은 1만3981명의 전당대회 대의원과 2만1011명의 당원선거인단, 그리고 3만5000명의 일반 국민 대상 공모선거인단으로 구성된다. 반면 당대표를 뽑는 선거인단은 1만3981명의 전당대회 대의원들이다. 전당대회 대의원은 1만3981명인데 반해 대권후보를 뽑는 선거인단은 전국적으로 7만명에 이른다.

    소설처럼 두 사람이 서로를 밀어주기로 합의하더라도 실제 어떻게 복잡한 투표과정의 허점을 짚어가며 7만명에 이르는 경선 투표인단을 움직여 상대방에 표를 몰아줄 지 의문이다.

    소설의 시간적 공간이 2002년 4월19일인 것도 문제다. 이때쯤 민주당은 16곳 권역별 경선 일정 가운데 지방의 경선을 모두 마친 채, 서울의 최종 경선 만을 남겨둔 상태다.

    전국 7만명의 투표인단 가운데 서울지역의 투표인단은 1만5000명. 그러니까 4월19일이면 전체 투표인단의 80% 가까운 5만5000명 지방 투표인단이 투표를 마쳤고 개표도 모두 끝난 뒤다. 투표가 끝날 때마다 표를 집계하므로 4월19일이면 15개 권역 선거 결과, 후보들의 서열도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소설은 최종 경선을 앞둔 4월19일까지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가능한 ‘공상’이다.

    소설은 선호투표제(Alternative Voting)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 선호투표제란 결선투표를 없애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다. 6주간에 걸쳐 16개 권역을 돌며 경선을 벌이고도 과반수 득표자가 없다면 난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시 선거를 치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단번에 과반수 득표자를 내자는 것이 선호투표제의 기본 정신이다.

    구체적으로 선호투표제란 유권자가 출마한 모든 후보에 대해 지지하는 선호도 순위에 따라 기입하는 방식이다(상자기사 참조). 개표는 1순위 지지표부터 하는데 1순위 지지표만으로 과반수가 나오면 후보가 확정된다. 1순위 지지표를 개표했음에도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에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2순위 이하의 지지표를 순차적으로 더해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개표를 한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은 권역별 경선이 끝날 때마다 1순위표 집계는 물론, 2순위표 집계도 공개할 방침이다. 1순위표로만 순위다툼을 벌이다가 서울지역 경선까지 마치고도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2순위표를 개봉하는 방안도 거론됐었다.

    그러나 한달 이상 결과를 감추고 있을 경우 부정선거 시비가 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매번 지역 경선이 끝나면 2순위표도 공개하기로 했다.

    따라서 국민들은 마치 경마 즐기듯 민주당 경선을 관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은 권역별 경선이 끝날 때마다 1순위표 순위는 물론, 2순위표 집계까지 더해 어느 후보가 과반수를 넘어서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서울 입성 전, 즉 지방 경선이 마감되고 5만5000표의 개표가 끝난 상황이면 1,2위 후보간 우열은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서울 경선은 사실상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추대하는 세리머니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소설은 김근태 고문이 같은 개혁파로 분류되는 노무현 고문의 손을 들어주며 후보를 사퇴하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소설 같은’ 얘기다.

    선호투표제에 의하면 대권 후보는 후보를 사퇴하는 순간 그때까지 모은 1순위표를 모두 잃게 된다. 그러니까 소설에서처럼 김근태 고문이 최종 서울 경선을 앞두고 사퇴할 경우 그 동안 지방 경선에서 얻은 김고문의 1위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된다. 그럴 경우 노고문의 표가 될지 모를 표, 즉 김고문을 1순위로 찍고 노무현 고문을 2순위로 찍은 표도 함께 사표가 된다.

    이 때문에 정말 김고문이 노고문을 지지하고 힘이 되고 싶다면 후보사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끝까지 경선에 남아서 비록 자신이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노고문에게 2순위 표를 더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지’인 셈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새로운 대선후보 경선방식에 대해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은 아전인수(我田引水). 민주당의 주자들은 새 제도가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인제(李仁濟) 고문 진영은 자신감에 넘쳐 있다. 1월7일 당무회의에서 특별결의가 통과된 직후 이고문의 활짝 웃는 얼굴이 일간지 정치면에 실렸다. 너무 기뻐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고문의 파안대소(破顔大笑), 그리고 다른 주자들의 떨떠름한 표정이 어우러진 신문사진들. 이 사진 얘기를 꺼내자 이고문의 한 측근인사는 “표정관리를 좀 하실 것이지…”라면서도 싫지 않은 반응이었다. 국민참여 경선이든 선호투표든 어떤 새로운 제도가 ‘덤벼도’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이인제 캠프의 박종선 특보는 “국민참여경선제는 이고문이 1997년 신한국당 경선주자로 나설 때 이미 주장한 적이 있고,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도 국민참여방식으로 선거인단의 수를 늘리자는 주장을 꾸준히 해왔던 탓에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새 제도는 “이고문의 평소 소신과도 일치하는 선거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이고문 진영에서는 “2순위 집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1순위 투표 집계만으로 과반수 이상을 확보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고문 진영이 그 근거로 내미는 것은 지난 연말 조선일보와 갤럽이 실시한 민주당 대의원 대상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다.

    민주당 대의원 103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만일 내일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가 열리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지지하는 순서대로 두 사람을 말해달라’라는 질문에 ‘첫번째로 지지하는 후보’로 이인제 고문(43.4%)이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는 노무현 11.5%, 한화갑 11.3%, 김중권 7.9%, 정동영 3.1%, 김근태 고문 2.7%, 유종근 전북지사 0.7%의 순이었다. 모름과 무응답 등 부동층은 19.4%였다. ‘두번째로 지지하는 후보’는 노무현 15.1%, 한화갑 12.2%, 이인제 11.3%, 김중권 8.8%, 김근태 5.3%, 정동영 4.5%, 유종근 1.6%의 순이었으며, 모름·무응답은 41.2%였다.이 조사결과를 선호투표 방식에 따라 집계해 보아도 이고문의 대선 후보 당선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나타난다. 민주당식 선호투표제는 개표 방법에 따라 1순위 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하위 후보를 1위로 기표했던 투표자의 2위 기표수를 해당 후보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차례로 집계한다. 이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 이고문은 유종근 지사부터 김근태·정동영·김중권·한화갑 고문까지 탈락시키면서 계산했을 때 50.8%로 과반수를 넘겼다. 이때 2위인 노무현 고문은 16.6%였다.

    박종선 특보는 “국민참여경선이 실시될 때 대선후보 투표인단에 참여를 희망하는 국민의 경우 평소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7만명으로 확대될 대선후보 선거인단의 성향도 민주당 대의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고문 진영을 들뜨게 하는 점은 또 있다. 과거 실시된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와 비교해 이인제 고문에 대한 지지도는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 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가 2000년 11월과 2001년 11월에 실시한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이인제 고문의 지지도는 각각 21.8%와 35%였다. 그런데 이번에 43.4%를 기록함으로써 모름·무응답으로 처리된 부동층 20%를 제외하면 사실상 과반수 이상의 대의원지지를 확보했다는 것이 이고문 측의 설명이다.

    민주당의 경선을 관전하는 여론조사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고문 진영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때와 비교할 때 대의원 여론조사만으로 보면 이인제 고문의 승리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홍소장은 “김영삼 전대통령도 임기 말에 야당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대선에 들어가면 현직 대통령은 유권자의 관심 밖에 머물게 되는데 이번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중 대통령은 유권자의 선택기준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럴 경우 이고문이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참여경선이 치러질 경우 이고문은 고스란히 그 이익을 챙길 것이라는 관측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이고문의 경선 승리를 예상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여권의 한 조사전문가는 “국민참여경선이든 선호투표제든 제도 도입의 목적은 민심(民心)과 당심(黨心)을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인사는 “호주에서 선호투표제가 실시되고 있는데 과반수 이상 1순위표를 얻은 후보가 없을 경우 하위권 후보의 2순위 표를 상위권 후보에게 더해보면, 대체로 1순위표에서 드러난 후보간 우열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호투표제는 결국 불필요한 2차 투표를 없애고 민심을 2중 3중으로 반영하려는 보완장치이므로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는 이고문에게 절대로 유리한 제도”라고 못박았다.

    이 인사는 7만명 규모의 투표인단 구성과 관련 “호주머니 속 계보원이면 ‘장난’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 많은 수의 선거인단을 조직하고 동원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대중적 지지도가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자 몸조심’이라고 했던가. 이고문 진영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찰하는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선과정에서 고개를 내밀지 모를 당내 지역주의가 그것이다. 16개 권역을 돌며 경선을 치르다보면 특정지역 출신을 또 다른 지역에서 배척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고문측은 일부 후보들이 지역정서에 불을 지르며 이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7만명에 이르는 투표인단 전체를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며 이고문이 무난하게 전국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낙관하는 분위기다.

    한편 이 대목에서 관심을 모으는 것은 달라진 제도를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시각. 전국을 순회하는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이인제 고문의 민주당 대선후보 추대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이고문 진영의 전망에 묘하게도 한나라당 인사들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인사는 “전당대회 시기를 두고 이인제 고문과 한화갑 고문 사이에 힘 겨루기가 치열했는데 결국 4·20전당대회가 확정된 것은 이고문의 정치적 승리를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 있을 전국순회 경선은 이고문을 대선후보로 추대하기 위한 요식행위가 될 것이다. 이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는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이인제 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주자들로서는 앞뒤가 꽉꽉 막혀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주요 후보진영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고문 캠프는 1월16일부터 시작된 방송사들의 후보초청토론회 준비로 분주하다. 서울 여의도의 노고문 캠프는 국민을 관객으로 한 최초의 일합(一合)에서 이인제 고문에 승리를 거두겠다는 결의로 넘쳐나고 있다.

    노고문 진영의 한 관계자는 “당무회의 특별결의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쪽은 정동영(鄭東泳) 고문과 우리 진영”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 경선제가 실시된 만큼 대중적 인기가 높고 바람을 일으킬 만한 저력을 갖춘 후보가 이득을 누릴 것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후보들마다 일반국민 선거인단 확보를 위해 뛸 것이다. 7룡(龍)이니 하지만 경선에 나설 후보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150만명 정도가 국민선거인단에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쪽에서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중심으로 국민투표단에 참여할 계획인데 대략 1만명 노사모 회원이 나설 경우 10만명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3만5000명의 일반국민 선거인단 가운데 적어도 7000명 정도는 우리 편으로 해야 경선에서 승부를 겨뤄볼 수 있는데 그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전당대회 시기 논쟁에서 노고문은 이인제 고문과 한편에 서 조기개최 지지 입장을 밝혀왔다. 이 때문에 한화갑(韓和甲) 김근태(金槿泰) 정동영 고문 중심의 개혁연대 쪽으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노고문은 경선 과정에서 개혁연대 인사들의 도움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앞서의 인사는 “얼마 전까지도 김근태 고문이 우리 손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김고문이 끝까지 뛰어주길 바랄 뿐이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그만두면 김고문 지지표는 사표가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안된다. 한화갑, 정동영 고문이 얻은 1순위표의 경우에도 2순위가 노고문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 후보들도 최후까지 뛰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권역별 경선 일정은 인구가 적은 시·도부터 시작해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에서 끝나도록 짜여졌다. 뒤로 갈수록 덩치 큰 시도를 배치한 것은 막판 반전 가능성이라는 선거의 묘미를 살려 국민적 관심을 모으려는 의도다. 흥행 대박을 노린 전술이라는 것이다.

    또 지역 경선을 거치면서 탈락자들은 걸러내고, 서울의 마지막 대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민주당 대선후보가 추대되는 모양을 갖추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그러니까 지역 경선을 거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도 키워간다는 계산이다.

    그렇다고 첫 출발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3월10일 제주도에서 시작되는 첫 지역 경선의 결과에 따라 경선 전체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에서 후보진영은 물론 민주당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바로 그 제주도에서 노고문 관계자들은 첫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와 울산시 등 초반 지역에서는 우리가 우세할 것이다. 제주도는 정치적으로 특정 세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다. 평소 여론조사에서도 노고문이 이곳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제주에 이어 두번째 지역인 울산은 우리의 지지자인 노동자들이 많은 곳이다. 두 곳에서 초반 기선제압을 할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실제 일부 여론에서는 노무현 고문과 정동영 고문 등 개혁성향 후보들이 대중지지도에서 이인제 고문을 앞지르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의 이병완 부소장은 “‘한국의 뉴햄프셔’ 제주도에서의 첫번째 경선이 대단히 재미있을 것”이라며 제주에서의 첫 경선을 눈여겨볼 것을 권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대결에서는 우리당 후보들이 이회창 총재에 비해 열세이지만 제주도에서는 의외로 우리 당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동영 후보는 제주도에서 이회창 후보와의 1대1 가상대결에서 앞서거나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이 만약 제주 1차 경선에서 선두권에 나선다면 이후 경선은 대단히 재미있게 풀려갈 것이다.”

    경선 초반, 노고문은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인제 고문보다 몇 발자국은 뒤처져 2위를 달리고 있다. 대의원 대상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지지율 열세에 대해 노무현 캠프는 “만회할 자신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의 부연설명.

    “얼마전까지 당내 경선은 달리기시합으로 치면 100m 경주였다. 이 경주에서 우리는 이인제 고문보다 적어도 30m는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국민참여경선이 되고 7만명으로 투표인단이 늘면서 이제 1000m 달리기 경주가 됐다. 100m 달리기와는 달리 1000m 달리기에서 초반 30m를 뒤진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경선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지지율이 약한 후보들, 즉 기초체력이 약한 후보들은 장기레이스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지역경선 대여섯 곳을 마치면 사퇴하는 후보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과는 판이한 양상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도 최종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노무현 진영에서는 국민참여 경선으로 전국적으로 선거인단이 구성되더라도 국민 선거인단의 원적지(原籍地)를 따져보면 60% 이상은 호남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화갑 고문 캠프는 아직도 4·20전당대회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경선의 원형인 ‘전당원 직선제’나 미국식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에 미치지 못한 절충형 제도”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이후 1월7일 당무회의 특별결의가 있기까지 한화갑 고문이 개혁연대의 대표주자로 이인제 고문과 맞서 정책대결을 펼치면서 사실상 경선 초기 분위기를 ‘한-이 양자대결’구도로 몰아간 것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한화갑 캠프의 이용범 특보는 “국민참여경선제의 의미는 인정한다. 그러나 선거인단이 7만명으로 늘어난다 해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숫자가 늘어나도 선거인단은 조직의 영향력 아래 있을 것이다.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3만5000명의 일반공모 선거인단 후보자들도 각 후보진영에서 조직적으로 동원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원내·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전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고문 진영에서는 “경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들 가운데 한고문과 이인제 고문만이 당내 지지기반을 갖고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고문이 원내·외를 합쳐 50∼70명 정도의 지구당 위원장을 확보하고 있고 한고문은 이에는 못미치지만 30∼50명 정도의 지구당 위원장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세력을 갖춘 후보는 없다는 것이다.

    선호투표제에 대해서도 한고문 진영은 “우리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대능력이 있는 후보가 유리한 제도인데, 한고문은 전국적으로 2등 이상의 표를 얻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한고문측은 대구·경북에서는 김중권 고문이 확실히 두드러진 지지를 얻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제외하고는 어느 지역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확보한 후보는 없다고 주장한다. 선호투표제에서는 지역별로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후보보다 특별히 적(敵)이 없는 후보가 유리한데 한고문이 그런 후보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한고문은 첫 격전지인 제주도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이곳 출신 고진부(高珍富) 의원(서귀포시·남제주군)이 한고문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것이 그 이유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대선경선과 당대표 경선인 최고위원 경선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분류하고 있다. 아무래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대선경선이 메이저리그가 될 것이고, 후보등록 시기도 대선후보 경선보다 한달 늦고 단 한차례 전당대회 경선에서 선출하는 최고위원 경선은 주목을 못 끄는 마이너리그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판이 둘로 나뉘다보니 “메이저리그에서 꼴찌 하느니 마이너리그에서 대장을 하겠다”는 후보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마이너리그 대장이 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메이저리그에 얼굴을 내밀려는 후보도 나올 수 있다. 대선후보로 나서면 1월16일부터 YTN을 시작으로 2주 가까이 진행되는 방송3사의 TV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 대중적 인지도를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다.

    이인제 노무현 한화갑 고문 외에 메이저리그에 ‘바람몰이’를 할 인물로 정동영 고문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인제 대 반(反)이인제 연대세력간의 대결에서 한걸음 비켜섰던 노고문 대신, 적극적으로 개혁연대의 입장에 섰던 정고문을 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 주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고문은 1월 16일 제주도에서 대선후보 출마선언을 했다.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바람몰이를 시작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정고문은 한라산에도 올랐다. 정고문 캠프는 이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는 등 젊고 역동성있는 IT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전파하고 있다.

    김근태 고문도 “본격적인 경선 기간 동안 지지도를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김고문은 “각종 언론사 토론회를 통해 김고문을 알게 되면 국민들 사이에 김근태 선택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고문 진영은 개혁세력과 젊은 네티즌들이 적극 국민경선제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할 계획이다.

    김중권(金重權) 고문측도 “경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김고문은 공·사석에서 “현재까지의 여론조사는 지명도를 나타내는 것일 뿐 누가 본선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느냐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하면 판세는 뒤바뀔 것”이라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아울러 누구보다도 풍부한 국정 운영 경험을 갖고 있으며,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남표를 가져올 수 있는 민주당내 유일 인물임을 적극 알려나갈 계획이다.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도 “국민은 제왕이 아닌 CEO(최고경영자)형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며 CEO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전국을 돌 계획이다. 특히 TV토론을 국민과 당원에게 유지사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최대한 이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유지사는 “후보 선언 한 달밖에 안됐으나 지지도가 1%에서 4%대로 오르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1월7일 당무회의 특별결의 이후 민주당은 당사 한편에 대선후보 선관위를 꾸리는 등 속속 경선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현재까지 민주당 경선구도는 이인제라는 절대강자에 맞서 나머지 후보들이 횡렬로 늘어선 태세. 이고문이 기세싸움에서 일단 우위를 점했다는 게 대체적 판세분석이다. 그러나 섣부른 결과예측은 금물. 전망은 다양하지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경선제도를 사실상 디자인한 국가전략연구소의 이병완 부소장은 새제도와 민주당의 실험을 이렇게 전망했다.

    “전혀 새로운 게임방식이다. 아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이인제 고문에게 유리하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특대위 논의과정에서 후보는 머릿속에 없었다. 각각의 제도에 대해서만 포커스를 맞춰 토론하고 논의를 좁혀들어 가는 식으로 다듬어 나갔다. 제도 자체만을 보면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점칠 수 없도록 했다. 분명한 것은 돈 쓰는 경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동원하는 데 돈을 쓰겠나. 지금까지 여권 후보들이 해왔던 대의원 확보전략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나름대로 한참 준비를 해온 후보들로서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치실험은 이미 막이 올랐고, 대선주자들의 운명을 가를 주사위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고 있다. 주사위가 결정할 선택의 수는 현재로는 두가지다. ‘이인제냐’, ‘대역전이냐’.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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