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별난 인터넷 동호회 ‘YS사사모’

YS마니아의 충정인가, 상도동 친위대인가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1-16 15: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유력 일간지 광고와 함께 등장한 이색모임 ‘YS사사모’. 유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 지지모임을 두고 그 성격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과연 ‘YS사사모’의 정체와 그들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난 연말 일부 일간지에 ‘1단 6㎝’짜리의 작지만 관심을 끄는 광고가 실렸다. ‘YS사사모 홈페이지 개설’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에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YS사사모라는 홈페이지(www.yssasamo.com)가 개설됐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퇴임한 대통령을 위한 홈페이지 개설은 그 유례가 없던 일. 이 사이트의 정치적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운영자는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YS의 자발적 지지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상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전직대통령의 사이버 팬클럽 ‘YS사사모’의 운영자 최성호씨(37). 그는 스스로를 ‘YS마니아’라고 말했다. 최씨의 부모도 열렬한 YS지지자인데 그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최씨도 자연스럽게 YS의 팬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온 가족이 특정 정치인 지지로 똘똘 뭉치는 모습은 ‘대중정치’라는 장르를 개척한 3김씨의 40년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3김이 정치권의 정점에서 서서히 비켜나면서 과거처럼 열렬한 3김 지지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3김의 정치를 보고 자란 세대들의 머릿속에서 그들의 자취를 한꺼번에 지우기는 어려운 법. 최씨와 YS사사모는 이런 3김 시대를 살아온 젊은 네티즌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그러나 단순히 동호인들이 우의를 다지는 모임 정도는 아니다. 관계자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YS사사모가 공식 출범한 때는 지난해 9월9일. 이날 도메인 등록을 마쳐 명실상부한 인터넷 독립모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오프라인상에 형체가 없는 인터넷 사이트라고는 하지만 운영자인 최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애를 썼다. 이렇게 ‘독기’를 품고 YS사사모라는 사이트를 만들기까지 YS의 열성 팬으로서 최씨는 몇 가지 기막힌 현실을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YS의 독설을 가십성으로 다루는 기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신문을 열심히 봐도 김영삼 전대통령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김 전대통령에 관한 사이트와 글들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런데 ‘YS’를 입력창에 넣으니까 두 개의 검색결과가 떠오르더군요. 하나는 ‘반(反)통일의 괴수 김영삼’이라는 제목의 글이었고 또 하나는 ‘김영삼 김현철 부자를 체포하라’라는 내용의 성명서였습니다. 대단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때 국가원수를 지냈던 분인데 아무리 과오가 있다고 해도 이런 글들이 YS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인터넷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서 바로잡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YS의 팬으로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 일을 하기로 한 이상 상도동에 미리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상도동에서는 이 사이트가 생기고 활동을 한 한참 뒤에야 존재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최씨는 연세대 법학과(87학번)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92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가 1996년 5월 사법시험 도전을 위해 그만두었다. 그러나 몇 차례 사법시험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최근 2년간은 관상용 새를 분양하는 사업을 했으나 그리 재미를 보지 못했다.

    최씨가 김 전대통령에 다시 관심을 갖고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 무렵은 최씨 개인적으로도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뒤였다.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사이트를 만들기로 한 이상 초라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한항공 근무시절 만나 결혼한 부인 명의로 은행에서 초기 운영자금으로 500만원을 빌렸다. 이 돈으로 서버를 빌렸고 홈페이지 디자인도 의뢰했다. 또 일간지에 작은 크기지만 사이트를 알리는 광고도 냈다.

    “전직 국가원수를 앞세운 사이트를 만든 만큼 회원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원수가 적으면 이 자체가 YS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없는 형편에 신문광고까지 하게 된 겁니다.”

    이런 최씨의 노력 결과 지난 연말 현재 YS사사모의 회원은 1316명. 사이트 개설 당시 314명이던 것에 비하면 발전이지만 최씨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안으로 회원수를 1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게 최씨의 포부다.

    “지난해 11월13일 저를 포함해 열성회원 9명이 김 전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저희들 쪽에서 면담을 요청했고 이를 상도동 쪽에서 받아들여서 김 전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된 겁니다. 김 전대통령과 3시간에 걸쳐 여러가지 얘기를 나눴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약속을 했습니다. 2001년 연말까지 회원 수를 1000명까지 늘리고 2002년 말까지는 1만 명까지 늘리겠다고요. 지난 연말까지 회원이 1300명이 넘었으니까 김 전대통령과 약속한 첫 단계는 지킨 셈이죠. 이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벌일 생각입니다.”

    그러나 YS사사모가 제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마치 불온조직을 바라보는 듯 사갈시하는 반응이었다.

    “광고가 나가고 사이트가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이상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려고 사조직을 꾸린다는 얘기도 있었고, 상업적 목적에서 사이트를 열었다는 소리도 나왔습니다. 상도동에서도 처음에는 저희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얘기도 없이 난데없이 신문광고를 하고 나타났으니까 경계를 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와 우리 회원들의 뜻은 정말 순수하다는 겁니다. 평소 YS를 좋아하던 사람들, 그러나 YS퇴임 이후 그의 명예가 먹칠을 당하는데도 침묵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정치 조직으로 오해받을까봐 회원들에게 회비 등 일체의 금품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사이트를 만들면서 최씨가 만난 또다른 어려움은 구(舊)민주계 의원들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사이트를 열면서 최씨는 주로 한나라당 소속인 구 민주계 의원들과 부산·경남지역 의원 등 이곳 출신 정치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YS의 명예회복을 위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팬클럽 사이트를 만드니 축전이라도 한 통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수십명의 현역의원 가운데 축전을 보내온 정치인은 불과 8명. 한나라당의 김덕룡(金德龍) 박관용(朴寬用) 정재문(鄭在文) 서청원(徐淸源) 박종웅(朴鍾雄) 정병국(鄭柄國) 의원과 김광일(金光一) 전청와대 비서실장, 오경의(吳景義) 민주산악회 회장 등이 YS사사모 사이트 오픈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최씨는 “누가 뭐래도 김 전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국회의원이 됐다는 소리를 듣는 몇몇 의원들의 경우 수십 차례 전화를 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 축전 보내기를 끝내 거절했다”고 씁쓸해 했다.

    현재 YS사사모 사이트는 회원들의 글과 운영자 최씨가 올리는 YS의 근황 및 어록 등으로 꾸며져 있다. 김 전대통령이 대외 행사에 나서는 날이면 최성호씨도 따라붙는다. 김 전대통령의 육성을 녹음하고 사진도 찍어 이를 곧바로 사이트에 올려 김 전대통령의 근황을 회원들에게 알린다.

    김 전대통령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들이 회원이다보니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의 대부분이 김 전대통령에 대한 지지나 김 전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정파나 인물에 대한 비난들이다. 그러나 열에 하나 정도는 YS와 현철씨 부자를 비난하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또 내용 없이 욕설로만 가득한 글도 올라오는데 이런 글은 발견 즉시 삭제하고 있다.

    YS사사모의 활동목적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명예회복이다. 이를 위해 YS의 대표적 실정(失政)으로 알려진 IMF 위기가 YS 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현정부 인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과, YS의 차남 현철씨 구속의 진상을 밝히는 것 등을 세부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숨어서 YS를 비난하는 구 민주계 정치인들의 배신행위를 폭로하는 것 역시 YS사사모의 중요한 활동목표라고 한다.

    관상조류 분양업을 그만둔 터라 최씨는 사실상 실업자다. 부인은 당초 최씨의 YS사사모 활동에 반대했다. 그러나 11월13일 YS사사모 회원들이 상도동을 방문할 때 부인도 동행해 김 전대통령과 장시간 대화를 나눈 뒤로는 심정적으로는 그의 뜻에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최성호씨와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힘으로 시작된 이 사이트에 상도동은 물론 김현철씨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후문이다. 과연 이 사이트가 YS와 문민정부 재평가의 기폭제가 될지, 아니면 3김 정치가 남긴 또다른 유물로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