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연평해전의 주역 필승해군의 선봉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입력2004-11-16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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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해전, 큰 의미.’ 2함대는 연평해전에서 순식간에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 2함대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통일한국에서도 서해함대의 본부모함으로 쓰일 ○○지역으로 옮겨간 2함대를 방문했다.
    경기도와 충청남도를 가르는 아산만에는 높다란 서해대교가 걸려 있다. 밤이 되면 이 다리는 차량의 전조등과 후미등이 내뿜는 불빛으로 인해 거대한 ‘불뱀’이 된다. 한국 해군 최강의 2함대 사령부는 밤마다 불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1999년 11월13일 2함대는, 인천광역시 ○○동에 있던 본부기지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시원스럽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처음으로 2함대를 찾아갔다. 2함대 기지는 허허벌판에 위치해 있었다. 땅은 한없이 넓은데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군부대라면 젊은이들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땅땅-” 사격 소리도 들려야 할텐데 고즈넉하기만 했다. 잔디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평지 곳곳에는 흙이 보였다. 신학기를 맞아 개교하기 위해 한겨울에 막 공사를 끝낸 신설 대학의 어설픈 캠퍼스와 같다고나 할까.



    해군은 배 안에 있다


    공보장교의 안내를 받아 차를 타고 부두 쪽으로 나가보았다. 정박한 1200t급 국산 초계함인 성남함 근처로 다가가자 비로소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들은 땅이 아니라 배 안이나 배 근처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필승!” 성남함에 올라타자 수병들이 힘차게 외치며 거수경례를 올려붙인다. 근처에 있는 함정에서는 “땅땅” 쇠망치 소리가 울려오고, 마스크를 쓰고 용접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 해군은 땅이 아니라 배 안에 몰려 있구나.’



    성남함에는 130여 명의 장교와 수병이 탑승한다. 육군으로 치면 1개 중대 병력에 불과하지만 지휘관은 대대장급이다. 병력은 중대 규모밖에 되지 않은데 왜 중령이 지휘하는 것일까. 이유는 배 때문이다. 해전(海戰)은 어떤 배를 갖고 있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배가 커야, 크고 정교한 포와 미사일과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할 수 있다. 큰 배를 가진 해군은 십중팔구는 이기게 마련이다. 군함을 건조하는 데는 t당 1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1200t급 초계함이면 1200억원, 3500t급 구축함을 건조하는 데는 350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자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해군은 중년의 영관급 장교를 함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배 위에서 그리고 바다로 나가서 훈련하고 작전한다면서, 왜 2함대는 넓디넓은 평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2함대가 품고 있는 평지는 해군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임박하면, 정부는 막대한 전쟁물자를 도입한다. 전쟁물자는 무기만이 아니다. 전쟁은 거대한 소비행위므로 곡물과 석유와 각종 산업체에 투입될 원·부자재의 수입이 급증해, 상업항은 미어터지게 된다. 이러한 때를 대비한 국가 예비항이 해군 군항(軍港)이다. 잔디가 제대로 활착(活着)하지 못해 어설퍼 보일지라도 2함대가 품고 있는 평지는 유사시 한국이라는 태아를 살려줄 탯줄인 것이다.

    해군은 ‘백두산함’으로 명명한 단 한 척의 전투함을 가진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았다. 전쟁 초기 북한 해군은 특수요원을 태운 함정을 부산 쪽으로 침투시켰는데, 백두산함이 이 배를 발견해 격침시켰다. 이후 해군은 이렇다 할 해전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6·25전쟁에서의 해전은 월등한 전력을 가진 미 해군 7함대가 독점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한국은 미 7함대에게 해상방어를 의존했다. 한국이 함대를 만든 것은 1986년이다. 이렇게 함대의 역사가 일천하다보니 해군에서는 전사(戰史)가 풍부하고 전통이 살아 있는 명부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해를 방어하는 해군 2함대만은 아주 생생한 전사를 갖고 있다.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북한 함정과 맞붙어 이긴 ‘연평해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영국의 해군사에 밝은 사람은 “연평해전이 해전 축에 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세계 최대의 해전인 미드웨이해전에서부터 포클랜드해전에 이르는 현대 해전은, 웅대한 스케일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반전으로 해전사를 읽는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이러한 해전에 비한다면 연평해전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평해전은 이순신(李舜臣) 제독이 숨을 거두면서 이룩한 노량해전 승리 이후, 한국이 자력으로 승리한 최초의 해전이다. 상대가 동족인 북한이었다는 아픔이 있지만, 지난 500여 년간 우리는 자력으로 해전을 펼쳐 승리한 역사가 없다. 우리가 바다를 등한히하는 사이 일본은 한국 서해 앞바다의 풍도(豊島) 해전에서 청나라 함대를 격파했다(1894년 7월25일). 이어 쓰시마 근해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마저 수장시킴으로써(쓰시마해전, 1905년 5월27일)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을 거치지 않으면 대학생이 될 수 없는 법. 작은 해전에서부터 큰 해전까지 차곡차곡 전사를 쌓아야 역전의 함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연평해전은 1999년 6월7일부터 북한 해군 함정이 꽃게잡이 어선을 이끌고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옴으로써 촉발되었다. 북한 서해함대의 사령부는 평남 남포 부근에 있다. 그리고 황해도 사곶 기지에 핵심 전대를 배치해놓고 있다. 사실상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을 침범하는 북한 함정은 대개 사곶전대에서 발진한 함정들이다. 사곶전대는 2함대 예하의 ○전단이 상대한다. ○전단은 고속정·초계함·호위함·구축함 등 수상전투함으로 편성된, 2함대 최강의 전투 세력이다. 최전방은 몸놀림이 잽싼 고속정이 맡는데 해군은 이러한 고속정에 ‘참수리’라는 애칭을 붙였다. 참수리 뒤로는 초계함-호위함-구축함 순으로 다음 방어선을 형성한다. 고속정은 대개 3척이 편대를 이뤄 기동한다.

    1999년 6월7일 ○전단은 2개 편대 6척의 고속정을 동원해 경비정을 막아섰다. 참수리 편대는 고속으로 북한 경비정 근처로 돌진했다 획 빠져나오는 ‘위협기동’을 함으로써 경비정들이 뱃머리를 돌리게 했다. 6월9일 8척의 북한 경비정이 어선 15척을 이끌고 북방한계선을 넘어왔다. 이날 ○전단 고속정은 위협기동을 하다 북한 경비정과 가볍게 부딪쳤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다음날 북한 경비정은 또 월선해 왔다. 이 무렵부터 언론은 ‘도대체 해군은 무엇을 하는가’라며 해군을 거세게 질타했다. 질타가 극에 달한 6월11일, 고속정은 북한 경비정을 북방한계선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경비정의 후미를 고속으로 들이받는 밀어내기 충돌공격에 들어갔다. 북한 경비정도 충돌공격으로 반격했다. 그러나 속도 면에서는 고속정이 훨씬 빠르기 때문에 뒤를 들이받히는 것은 대개 북한 경비정이었다. 이날 북한은 중형 경비정 2 척이 상당히 파손되고, 2척은 경미한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퇴각했다. 반면 고속정은 2척이 ‘찰과상’ 정도의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6월15일 오전 7시25분 북한은 작심한 듯 7척의 경비정을 북방한계선 남쪽으로 내려보냈다. ○전단은 2개 편대 6척의 고속정을 보내 이들을 막아섰다. 북방한계선은 황해도에서 가깝기 때문에 유사시에 북한은 해안포로 경비정을 원호할 수 있다. 그러나 북방한계선 남쪽에는 넓은 바다만 있기 때문에 고속정은 해안포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전단은 초계함 두척을 원호 세력으로 고속정 뒤에 따라붙였다. 9시7분쯤 위협기동을 하던 양측은 순식간에 뒤엉키며 상호 충돌 공격에 들어갔다.



    수초가 지나지 않아 338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 후미를 아주 강하게 들이받았다. 고속정의 무게는 100t 정도인데, 이러한 배가 30노트(시속 55.6㎞)로 달려와 들이받으면 반대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338 고속정은 너무 세게 달려들어, 뱃머리가 북한 경비정의 선체 위로 올라가버렸다. 338 고속정의 승조원들은 얹힌 선체를 빼내기 위해 스크루를 최대한 역회전시켰으나 뱃머리는 내려오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근처에서 기동하던 325 고속정이 338 고속정을 돕기 위해 밑에 깔려 있는 북한 경비정의 옆구리를 향해 강력히 돌진했다.

    “꽝-”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북한 경비정이 밀려나가며 338 고속정의 뱃머리가 바다로 내려왔다. 목적 달성에 성공한 325 고속정은 곧 스크루를 역추진시켜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바로 그때 경비정 갑판에서 나뒹굴던 북한군 병사가 일어나 탄창을 꺼내 보란 듯이 흔들었다. 경비정의 지휘관인 듯한 그는 소총에 탄창을 끼운 다음 325 고속정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그를 따라 다른 북한 수병들도 일어나 사격에 가담했다.

    고속정을 지휘하는 정장(艇長)과 부장(副長)은 함교에 위치한다. 고속정의 함교는 지붕과 벽이 없는 ‘오픈 브리지(open bridge)’다. 북한군의 사격은 함교로 집중되었다. 정장 안지영 대위가 목과 턱에 총상을 입고 쓰러지고, 부장 홍경식 중위도 오른손 넷째손가락에 총상을 입었다. 고속정의 정장과 부장들은 북한 경비정이 선제사격을 할 경우에만 자위권 차원에서 사격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손가락에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부장 홍중위는 즉각 대응사격을 명령했다. 홍중위는 “전쟁은 이렇게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심경을 말했다.

    북한군은 콩 볶듯이 선제사격을 해대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과연 수병들은 부장의 명령에 응할 것인가. ‘와당탕 퉁탕’ 갑판과 선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더니, 수병들이 소총을 들고 은폐물 뒤로 몸을 숨기며 사격을 시작했다. 이때 ‘람보’ 같은 사나이가 등장했다. 325 고속정의 M-60 사수인 조준행 하사가 부사수의 도움 없이 M-60 기관총을 걸고 나와 100여 발의 실탄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기관총이 등장하자 기가 죽은 듯 북한군의 소총 사격이 뜸해졌다. 100여 발을 다 쏜 조하사가 새로 장전해 사격할 즈음 325 고속정이 뒤로 빠져나오게 돼, 양측 모두 사격을 중단했다.

    싸움은 양측 세력이 엇비슷할 때 오래 간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면 싸움은 빨리 끝나게 마련이다. 조하사의 M-60 사격이 그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용기는 지혜나 어짊만큼이나 중요한 미덕이라고 하는 걸까. 공로로 조하사는 연평해전이 끝난 후 인헌무공훈장을 받고 1계급 특진했다. 조중사가 위기 순간에 주어진 임무를 다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조중사는 빙긋이 웃으면서 “그냥 임무대로 하는 거지요 뭐. 겁은 별로 나지 않았어요. 제가 쏠 때 북한 경비정에서도 많은 사람이 몸을 숨기거나 뒤로 넘어지더군요”라고 대답했다. ‘용기는 무슨 용기, 임무대로 했을 뿐이다…’ 그는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을 주었다.

    그날 전투에서 325 고속정에서는 모두 16명이 총탄을 맞았다. 조하사도 M-60을 쏠 때 왼손에 가벼운 총상을 입었다. 그러나 승조원 전원이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장 안대위는 목과 턱 외에도 오른쪽 가슴 부근에 실탄을 맞았으나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2함대는 안대위의 목숨을 구해준 ‘수호천사’ 방탄조끼와 북한군 실탄을 튕겨낸 파이버를 함대 견학실에 전시해놓고 있다.

    연평해전의 대미는 영주함이 장식했다. 고속정과 경비정들이 긴장한 가운데 뒤로 물러나 대치할 때쯤인 9시28분 고속정 편대 후미에 있다가 교전 사실을 안 초계함인 영주함이 40㎜와 76㎜ 함포를 발사했다. 함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북한의 어뢰정 한 척이 격침되고 경비정 한 척이 반침몰됐다. 과연 북한은 해안포나 실크웜 미사일을 쏘거나 추가로 함정을 보내 대항할 것인가?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북한 경비정은 상부의 연락을 받았는지 반침몰선을 수습해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북한 해군의 북방한계선 침범이 마무리되었다. 영주함의 공격이 북한의 전의를 꺾어버리는 2차 요인이 되었다.

    평시 2함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①북방한계선 절대 사수 ②선제사격 금지 ③확전(擴戰) 방지의 세 가지다. 연평해전은 북방한계선을 지켰고, 선제사격을 하지 않았으며 초전에 기세를 제압함으로써 확전되는 상황을 막았다. 싸움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연평해전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작은 해전을 이김으로써 큰 전쟁을 막아낸 것이 연평해전 승리에 대한 진정한 해석일 것이다.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것은 북한 해군만이 아니다. 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 조직인 작전부도 공작원을 태운 공작선을 몰고 북방한계선을 넘어온다. 공작선은 경비정보다 훨씬 작은데다, 어선으로 위장하고 레이더 파가 미치지 않는 섬 그늘을 이용해 은밀히 침투하므로 탐색하기 어렵다. 서해는 간만의 차가 심해서, 밀물 때는 드넓어 보이는 바다도 썰물 때면 좁은 수로로 변하고 만다. 이러한 수로에서는 고속정조차도 기동할 수가 없다. ○전단 예하의 수상전투함으로는 침투하는 공작선을 추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2함대는 ○전단과 별도로 ○○방어사령부를 운영한다. ○○방어사령부는 간만의 차가 커 공작선의 침투가 잦은 연안 방어를 주임무로 한다. 북한 해군은 다수의 공기부양정을 갖고 있다. 공기부양정은 공기를 밑(수면쪽)으로 불어넣어, 배를 물위로 살짝 띄운 다음, 거대한 프로펠러를 돌려 수면을 스치듯이 날아가며 항진하는 배다. 해병대처럼 상륙작전을 하는 북한군 부대는 해상저격여단이다. 해상저격여단은 공기부양정을 이용해 상륙전을 펼친다. 북한 해안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바다가 얕고 간만의 차가 커서 고속정조차도 자유로이 기동할 수 없는 연안을 따라, 해상저격여단 요원을 태운 공기부양정이 침투해온다면 수도권은 단숨에 혼란에 빠질 것이다.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해상저격여단의 기습 상륙을 막는 임무도 ○○방어사령부에게 주어져 있다. ○전단이 원해(遠海)에서 정규전을 대비하는 부대라면 ○○방어사령부는 근해(近海)에서 비정규전을 대비하는 부대인 것이다. 바로 이 ○○방어사령부가 있어 2함대는 한국 해군 최강이자 최대의 함대가 되고 있다.

    서해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북한 해군과 공작선뿐만이 아니다. 중국과 거래하는 밀수 선박과 밀입국자 선박도 서해의 해양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한·중 간에 밀수규모가 커지고 밀입국자가 늘어나면, 밀수 밀입국 항로를 이용한 북한 공작조직의 침투 가능성도 높아진다. 때문에 2함대는 전대를 해경과 함께 측방해역에 투입해 범죄행위를 단속한다. ○전단과 ○○방어사령부 그리고 후방전대가 방어하는 바다의 면적은 남한 면적의 80%에 달한다.



    장보고의 꿈을 이룰 制海의 땅


    막중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고 해서 2함대를 딱딱한 군대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오해다. 아직은 감수성이 예민한 수병들을 어떻게 다독여 군인으로 만들 것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를 키울 나이의 영관 장교들이 함장을 맡는 것이다(고속정만은 배가 작은 관계로 대위가 정장을 한다). 신세대 수병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해군은, 초계함급 이상의 함정에 노래방 기기를 설치했다. DVD 기기를 설치해 영화도 보여준다.

    항구로 돌아온 배가 수리와 정비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수병들은 오랜만에 밟아보는 땅 위에서 심신의 긴장을 풀 어야 한다. 2함대는 탁 터진 평지에 있어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세월의 두께가 쌓이고 녹지가 늘어나면 훨씬 아늑해질 것이다. 2함대 본부는 오래된 대학의 캠퍼스처럼 푸르게 꾸며져야 한다. 이곳은 통일한국에서도 서해함대의 본부기지가 될 곳이기 때문이다. 2함대에 전통과 세월의 두께가 쌓여갈 때 1000년 전 해상왕 장보고가 꿈꾼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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