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정치 불안·中國 고성장에 멍든 경제모범생

  • 왕창웨이(王長偉) < 타이완(臺灣) 중앙일보 서울특파원 >

    입력2004-11-16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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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1일 세계무역기구의 일원이 된 타이완. 하지만 경제는 침체일로에 있고 국민들은 실업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되는 정치 불안과 중국의 초고속 성장은 타이완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있는데. 2002년, 타이완 경제는 회생할 수 있을 것인가.
    타이완은 국민당 집권 시기 동안 아시아 4소룡 중 1위를 차지하며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민진당(民進黨) 천수이볜(陳水扁)정부로의 정권 교체 후 대만 경제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정권 교체시기, 7.94%였던 경제성장률은 -2.35%까지 하락했다. 마이너스 성장은 타이완으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실업률은 상승일로에 있고 치안은 불안하며 양안(兩岸)관계마저 악화됐다. 자연재해와 인적재화까지 겹쳐 타이완 국민들은 지금 총체적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대만 경제, 왜 무너지고 있는가


    경기악화의 주 요인으로 거론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국제경제의 불황이다. 9·11 테러사건 후 미국의 소비심리 하락으로 경기가 상당히 위축됐다. 유엔의 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복구는 빨라야 올 9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IT산업의 경우는 1년 내지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타이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모건 스탠리 또한 최근의 한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가 회복된다 해도 타이완은 아시아 10개 경제체 중 가장 수익이 적고 복구가 늦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가 타이완 경제의 미래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두번째 요인은 중국의 세력 확장이다. 중국은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 방대한 소비시장을 무기 삼아 전세계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만에 돌아오는 몫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셋째, 천수이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다. 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불황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미국 시장의 위축과 중국의 자기(磁氣)효과가 타이완 경제 불황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권교체 이전 15년간에도 최소 10억달러의 자금이 중국대륙으로 흘러들었으나 타이완의 실업률은 3%를 넘지 않았다. 수출실적도 40억 달러에서 1500억달러로 증가했다. 이는 거대 자금이 중국으로 흘러든다 해도 고성장 저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타이완은 과거 두차례의 석유위기와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었다. 19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예로 든다면, 홍콩의 경제성장률이 -5.3%, 한국은 -5.8%, 싱가포르는 0.4%로 떨어진 시점에서도 타이완은 4.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성장률 예측보고서에 따르면 타이완은 지난 2년간 아시아 4소룡 중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보다 7.5%나 낮은 수치다. 결국 타이완 경제 침몰의 근본 원인은 천수이볜 정부의 무능력인 것이다.

    세계 경기침체와 미국 테러사건으로 인해 지난해 타이완의 무역수지는 큰 영향을 받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수출액은 1126억3000만달러로 2000년에 비해 17.3% 감소했다. 수입도 987억5000만달러로 23.8% 감소했다. 수입감소폭이 수출감소폭보다 크고 누계로 138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2000년 동기 대비 109.8% 증가한 것이다. 타이완 경제부 국제무역국은 지난해 타이완 대외무역은 연초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고 그 감소폭도 점차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무역수지는 갈수록 심하게 악화됐는데 주원인 중 하나는 대만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세계적 불경기였다. 미국·일본·유럽 등 3대 경제체의 경기가 급격히 하강했고 타이완 국내 경기 역시 자금 및 공장의 중국 이전 등으로 생산이 감소하는 등 어려움이 컸다. 수입액 역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타이완의 국내소비·투자가 약화되고 공장들이 사라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타이완은 중국과의 무역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1~11월 타이완의 대(對) 중국 무역액은 245억7100만달러로 2000년 동기 대비 8.9% 감소했다. 대 중국 수출은 지난해 4월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그나마 이 수치는 타이완과 다른 10대 주요 교역국가 간 무역수지 악화 정도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이는 타이완 경제에서 대중국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이완 경제부 연구발전위원회는 올해 경제를 전망하며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을 주 거래대상으로 하는 말레이시아를 제외하고는 경제의 대미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올해 경기회복 여부는 미국경제와 깊이 연관돼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중국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더불어 중국에 대한 외국의 직접투자는 더욱 증가할 것이며 수출액도 늘어날 것이다. 중국의 고속성장은 아시아 4소룡 및 동아시아국가들의 경제발전과 상충한다. 이로 인해 향후 동아시아 각국은 산업면에서 상호보완보다는 더욱 치열한 경쟁에 휘말릴 것이다.

    미국 테러사태 후에도 중국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타이완 경제 회복에 매우 유용하다. 중국과 타이완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것은 타이완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양안간의 원료, 완제품, 자금 및 인력 교류가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기회를 놓칠 경우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오히려 타이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타이완은 중국 투자의 관문이다. 타이완에는 외국어 구사력과 인문적 소양을 갖춘 우수인력이 있고, 중국 투자 경험이 많으며, 기술력도 뛰어나다. 만약 양안이 삼통(三通 : 通航·通商·通郵)에 합의한다면, 예를 들어 상하이로 운송할 화물이 있을 경우 중국 쿤밍(昆明)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타이완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가깝다.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할 경우 타이완 기업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필요가 없으며, 외국인투자가들도 무조건 중국으로 몰려갈 필요 없이 타이완에 투자본부를 두고 충분한 경험을 쌓은 후 대륙으로 진입할 수 있다. 현 정권 들어 양안간 경제전쟁의 전반전은 중국의 승리였다. 후반전에서는 경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우세를 적극 장악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2002년 타이완의 수출전망은 어떤가. 타이완 경제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는 보수적이다. 이들이 예상한 타이완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7%. 그 외 외국기관들 역시 1~2%의 성장률을 예측하고 있다. 타이완 국내 기관들은 대체로 2~3% 성장하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01년보다는 나아지리라는 것이다. 경제부 관계자는 “국제경기는 올 상반기 바닥에 달한 후 점차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며 “양안의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재고가 처리됐고 새해 들어 주문이 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타이완 국내 정치까지 안정세를 찾는다면 소비심리도 회복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지난해 타이완의 정치 상황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원자력 제4발전소 사태에서 작업시간입법안 사태에 이르기까지, 타이완의 정치적 불안정은 경제의 지속적 침체를 초래했다. 적지 않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했고 실업률도 치솟았다. 재계는 생존을 위해 결사적으로 정부에 여러 제안을 했으나 정부는 듣기만 하고 실제적 행동은 하지 않았다. 결국 천수이볜이 직접 나서 경제발전자문위원회를 소집하고 나서야 비로소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재계는 “말해야 할 것은 이미 다 했고 제안도 다 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총선에서 집권 민진당이 비로소 국회 다수당이 됨으로써 천수이볜 정부가 올해에는 경제 문제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재계의 희망 섞인 전망이다.

    타이완전국상업총회는 천수이볜 정부의 국정운영능력이 제고되고, 그로 인해 국내투자 여건이 개선되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상업총회가 우선적으로 제시한 요구는 세 가지다. 첫째, 정부가 나서 공무원 정리해고자를 위한 재교육기지를 설립하고 연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 기구 정예화로 인한 공무원들의 대규모 실직은 타이완 경제의 현안 중 하나다. 전체 공무원의 5분의 1이 직장을 잃을 것으로 보이며 그 수는 1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둘째,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해 소득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셋째, 관광업과 레저산업을 발전시켜 중국인들의 타이완 관광을 유도해야 한다. 이는 갈수록 심화되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이완 중앙일보 고문인 다이성퉁(戴勝通) 중소기업협회 이사장은 “타이완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가운데 모두 중국 투자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점에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수출이 IT산업에만 집중된 점, 주식시장 과열도 우려되지만 산업 발전이 국가 발전의 중심임을 정부가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와 기업은 모두 실제적이어야 하고 주식시장은 경제에 대한 긍정적 심리를 유지하는 정도면 된다. 주가 급등이 오히려 경제에 부담이 되는 전철은 더 이상 밟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02년 경기는 호전된다 해도 2003년이나 2004년에는 다시 침체로 돌아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타이완의 IT산업 기지는 모두 중국으로 이전해 그곳에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 기업들이 타이완이 아닌 중국 주식시장에 상장되고 그로 인해 외국 자금마저 타이완에서 철수하면 타이완 경제는 붕괴하고 만다.”

    중국과의 경제교류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타이완 정부가 중국정부와는 적극적인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일부 타이완 기업인들은 오히려 대륙에 대한 투자를 강화했다. 이는 정부 정책이 경제 원칙은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런 정부 밑에서라면 차라리 빨리 떠나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정치적 고려가 우선한 정부정책은 경제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

    국민당 정권 시절에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구호 아래 중국과 타이완이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을 각각 밝히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천수이볜 집권 후 ‘하나의 중국’ 정책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거나, 양안은 각각 중국을 대표한다는 식으로 입장이 변화하면서 양안관계의 불확정성은 더욱 심화됐다.

    다이 이사장은 올해 경기에 대해서는 낙관하면서도 타이완 기업은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주장했다. 정부와 재계의 긴밀한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2001년 타이완은 기록적 실업률을 나타냈다. 실업과 관련한 행정원의 통계 자료는 들여다보기도 끔찍할 정도다. 실업 보조금 수령도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실업보조금을 신청한 인구는 1만4599명이었고 신청금액은 11억타이완달러(100타이완 달러는 약 4000원)였다. 1~11월에 지급된 실업보조금 총액은 68억타이완달러에 이른다. 노동보호국은 올해도 80억타이완달러의 실업보조금이 필요한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보조금 신청 실업자 중 70%는 기업의 이익 손실이나 긴축, 파산 등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40세로 25~44세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사실 노동위원회의 보조금은 실업자 재취업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보조금 수령자 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8%에 불과하며 73%는 여전히 일자리를 찾고 있다.

    실업 보조금은 실업자 가정의 생존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조금이 주요 자금원이라는 사람이 80%에 이르렀다. 그 외 노동위원회가 내놓은 안들, 예를 들어 훈련고용보조금, 긴급고용계획, 고용주격려보조금, 취업희망공사 설치 등은 모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타이완의 고실업률 상황은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다소 하강했다고는 하지만 올해도 여전히 5%를 유지하리라는 게 관련 기관들의 전망이다. 11월의 실업률 감소는 경제 호전의 증거라기보다는 최근 여러 개의 백화점이 문을 연 데다, 총선을 위해 임시채용된 사람들이 많았던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업률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음력 설 이후. 많은 공장들이 휴업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5월 높아진 실업률은 고교,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6~7월 또 한차례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타이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취업 시장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양지콴(楊基寬) 104인력은행 총경리는 “타이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기업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화의 가속과 노동시장 유연성 증가는 해고의 위험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투자 여건이 계속 악화되고 생산기지의 외부 이전이 늘어나면 취업 기회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개방·발전으로 양안간 인력 이동이 줄어들고 임금의 양극화 현상도 심화할 것이다. 우수한 인재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나 일반 직장인의 임금은 평균 5% 떨어지고 임시고용자 비율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기업은 타이완인 대신 해외 고급 인력을 영입할 것이다. 특별한 재능이나 경력을 갖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은 저임금과 해고의 불안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저경제성장률, 고실업률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엔화 가치 폭락의 영향을 받은 타이베이(臺北) 외환시장은 지난해 연말 보름 동안 급락을 거듭했다. 12월13일부터 11일간 내리 하락세를 유지한 것. 12월27일에는 달러 당 35.127타이완달러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최근 15년간 가장 낮은 폐장 가격이다. 엔화가 안정세에 들어서면서 타이완 외환시장도 다소 진정돼 34.999타이완달러로 2001년을 마감했다. 지난 1년간 타이완 달러의 가치는 1달러 당 2.007타이완달러 하락했고 하락률은 6.08%에 이른다. 음력설을 전후로 자금 수요 증가로 타이완달러 가치는 약간 상승할 것이나. 그 상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외환시장은 연초 미국 금리 인하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강세로 출발했다. 지난해 2월20일에는 달러 당 32.37타이완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어진 엔화의 평가절하는 아시아 화폐의 약세를 초래했고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7월11일에는 달러 당 35.05 타이완달러로 거래되기도 하였다.

    미국 테러사건 후 국제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다시 외자가 흘러들어왔다. 이어진 타이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환율은 달러 당 34.455타이완달러까지 상승했다. 그러다 12월13일 엔화 평가절하의 영향으로 다시 급락한 것이다.

    환율 하락은 타이완 금융권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 화폐를 놓고 볼 때 타이완달러의 가치하락 폭은 일본·싱가포르·인도에 이어 네번째다. 펑준난(彭準南) 중앙은행 총재는 “엔화 평가절하라는 요인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중앙은행은 시장의 정상 운행에 치중할 것이며 인위적인 환율 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음력설 직전 타이완달러에 대한 수출업자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외환 매도가 증가한다면 (엔화가 폭락하지만 않는다면) 타이완달러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경제계에서는 타이완달러의 가치 하락에 주목하고 있다. 환율은 그 나라의 경제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1·4분기 중 경제성장률이 대폭 상승할 가능성이 없는 데다 엔화의 평가절하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어 환율은 계속 달러 당 35타이완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2·4분기에는 경제 회복세가 점쳐지고 있어 약간의 기대도 없지 않다.

    지난해는 타이완 금융사에 가장 참담했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윤은 축소되고 대출도 어려웠다. 은행간의 과도한 경쟁이 주원인이었다. 올해는 은행간의 합병·연합 등으로 금융의 국제경쟁력이 제고되고 체질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은행업계 한 인사는 “타이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금융시장에 국제경쟁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외자에 의한 인수합병이 가속될 것이며 이는 금융산업구조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투자 경로 다원화와 동업종간 합병 및 타업종과의 연합 등을 통해 경쟁력을 제고하지 못하는 은행은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과거 대출금에 대한 이자가 은행 이윤의 최대 원천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업무의 수수료 비중이 높아져야 하며, 전통적 은행업무 외에 보험, 증권업무까지를 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또 한 개의 카운터에서 동시에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부는 지난해 12월31일 하루동안 7개 금융주식회사에 허가증을 발급했다. 쟈오퉁(交通)·타이신(臺新)·신광(新光)·위산(玉山)·르성(日盛)·푸화(復華) 은행 등이다. 지난해 11월28일에도 화난(華南) 등 6개사에 허가증을 내준 바 있다. 여기에 앞으로 신청서를 낼 예정인 2개사까지 합치면 총 15개사의 새 금융주식회사가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타이완 금융시장은 재조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다. 한 회사가 한 차례의 합병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 차례 합병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대형사는 더욱 커지기 위해 경쟁력이 부족한 은행들을 대상으로 M&A에 적극 나설 것이다. 이미 각 은행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부실 채무를 제거하고 구조조정에 나섰다. 띠이(第一)·화난·창화(彰化) 은행 등 3개 상업은행의 경우 지난해 100억타이완달러의 부실채무를 청산했고 직원 200여 명을 정리해고 했다.

    은행 체질개선과 경영혁신은 절박한 문제다. 혁신하지 않고서는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인해 밀려들어오게 될 외국은행의 풍부한 실전경험과 뛰어난 서비스, 고도의 투자기법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로화 등장도 큰 변수다. 유로화의 등장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반응은 일단은 긍정적이다. 유럽 12개국의 일체화가 빨라질 것이며 경제정책면에서도 효율적 협력 메커니즘이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환율 안정에도 일정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유로화 출범은 또한 유럽 경제규모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 달러화에 맞설 새 강자의 등장이다.

    그러나 유로화 출범이 상징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세계화 추세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타이완은 정치적 고립으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다행히 12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이 되는 데 성공했다. 타이완은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해 세계 각국과 경제적 연합을 강화하고, 특히 양안간 경제무역관계를 심화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는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추진중인 지역경제연합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천총통은 신년사에서 “금년은 국가와 인민이 함께 발전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경제 발전에 많은 힘을 쏟고 정치적 문제는 적게 언급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언론은 이를, 경제우선 정책을 실시하고 논쟁의 소지가 있는 정치적 의제는 되도록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린신이(林信義) 경제부장은 “새해에는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2·4분기에는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완은 작은 섬나라로 내수시장이 작아 수출에 극도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경제체다. 최근 몇 년간의 수치를 보면 국내총생산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는다. 특히 대미의존도가 심한데, 지난해 미국 경제가 악화되자 타이완 경제 또한 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린부장의 설명이다.

    린부장은 “타이완 경제가 본격적으로 악화된 것은 2000년 4분기부터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경기는 18개월 단위로 순환한다. 따라서 이제 엄동설한은 지났고 2·4분기부터는 반등의 기세를 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2~3년을 체질개선 기간으로 잡고 강도 높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주장대로 어려운 시절은 정말 지나간 것인가. 경제계는 이러한 견해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새해 경제정세에 대해 낙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신중하고 보수적인 경영정책 마련에 진력하는 등 몸을 사리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업계를 예로 들어 보자. 지난해 자동차시장은 새 번호판을 단 차가 34만7413대로 2000년에 비해 18% 가량 축소됐다. 지난해 초 업계가 예측한 20% 축소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업계는 올 시장 상황에 대해 전혀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 않고 있다. 중화(中華)자동차, 포드류허(六和), 위룽(裕隆)자동차 등은 아직 국내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실업률이 높고 구조조정도 계속될 예정이어서 뚜렷한 호재가 없다는 입장이다. 타이완 중·남부에 위치한 공장의 상당수가 해외로 이전한 것도 수요량 감소를 점치게 하는 요인이다.

    중화자동차는 올해 자동차 수요량을 34만1000대 규모로 보고 있다. 위룽·포드류허 등도 34만대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오토바이의 경우 지난해 새로 번호표를 신청한 것은 63만5023대로 재작년에 비해 17% 감소했다. 최근 20년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오토바이업계 역시 올해 시장상황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

    쇼핑센터, 백화점 등 유통업의 경우 지난해 불황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새 업체들이 생겨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지난해의 경우 거금을 들인 판촉행사 결과 나쁘지 않은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는 이익을 희생한 결과였고 따라서 업계 분위기도 좋지 않다.

    이들은 올해 경기가 회복되리라 보지 않으며 오히려 지난해 수준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 매장 개설은 계속할 것이지만 경영은 매우 보수적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오픈 예정인 매장은 다룬파(大潤發)가 2개, 까르푸·아이마이지안(愛買吉安)·터이거우(特易購)등이 각 1개다. 매장 하나를 개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억 타이완달러가 넘는다. 자연히 신중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식품업계도 근로자들의 연말보너스 요구를 거부하는 등 좋은 상황이 아니다.

    부동산업 또한 지난해, 자연재해와 인재 속에서 불안한 한해를 보냈다. 그럼에도 재작년에 비해 주택 거래량은 6%, 이윤은 5% 증가하는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미분양주택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올해 부동산시장이 얼마나 성장할 지는 미지수다. 부동산업자들은 토지부가가치세를 절반만 징수하는 새 조세정책의 집행을 가속화하고, 양안간 삼통(三通)을 추진해 대륙인의 타이완관광을 활성화한다면 10년 간 침체된 부동산 경기가 호전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어려움은 많지만 새해를 맞이한 만큼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타이완 경제에 불어닥친 가장 큰 변화는 1월1일자로 세계무역기구 회원이 된 것이다.

    이는 타이완 경제와 국민들의 소비에 매우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미주(米酒:대만에서는 주로 양념으로 쓰이나 세계무역기구 규정상 술로 분류돼 가격이 급등함)의 가격 변동은 대다수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이런 식이라면 음식습관을 조정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기업은 정부에게 지나친 원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민진당의 시각은 경제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에게 이 모든 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책을 내오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 자력 구제에 나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총선에서의 승리로 민진당이 국회 내 제1당이 됨에 따라 여야 간 정쟁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 속에는 여야 간의 뿌리깊은 불신과 총선으로 인한 후유증이 남아 있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의심은 더해진 측면이 있다.

    특히 민진당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 예를 들어 천수이볜이 타이완인의 여권에 대만‘臺灣’이라는 두 글자를 넣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시한 것 등은 ‘천수이볜 정부가 타이완 독립을 꿈꾸고 있다’는 일반의 우려에 기름을 부운 격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의 뜻이 어떻든 타이완 국민들은 경제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세계무역기구의 회원이 되고, 민진당이 국회 제1당이 된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난 1년간 정부는 불황의 원인을 세계적 경기 침체와 미국 테러사태, 야당의 비협조적 태도에서 찾아 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 경기는 올 3분기를 기점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이며, 야당도 올해는 경제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경제가 회복되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천수이볜 정부의 능력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수이볜 정부는 총선 과정과 신년사 등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경제 회생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타이완 국민들은 더 이상 야당과의 논쟁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정부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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