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월드컵 수능시험,‘족집게 강사’히딩크에 달렸다

  • 김화성 <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 mars@donga.com

    입력2004-11-17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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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40~50위권의 실력으로 16강에 든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결국 조직력과 홈그라운드의 이점, 그리고 행운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16강은 물론 8강까지 가능하다는 역술가들의 예언이 맞아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축구이론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궁극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도달한다.

    “1. Look Before Think Before(공을 상대보다 먼저 보고 차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2. Meet the Ball(가장 짧은 직선거리로 달려가서 상대선수보다 빨리 공을 처리하라.)

    3. Pass and Go (공을 잡지 말고 흐르는 대로 동료에게 패스한 뒤 빈 공간에 뛰어들어 패스 받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일본 축구의 아버지’ 데트마어 크라머)

    “너는 오른발밖에 쓸 줄 모르는 구나. 오른발로 차기 위해 볼을 띄우다 보면 시간과 리듬을 놓친다. 그러면 상대편 선수에게 태클을 걸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된다. 너 역시 균형을 잃게 되고 골키퍼에게 볼을 차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된다. 네가 정말로 번듯한 선수가 되려면 양발을 똑같이 쓸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튀어나오게 말이다….



    네가 왜 패스했는지 뻔하다.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겠지. 축구장에선 그런 식으로 패스해서는 안된다.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미리 생각하고, 아니면 생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적절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일류선수가 되는 지름길이다.”(‘축구황제’ 펠레 자서전 ‘나의 인생과 아름다운 게임’에서)

    축구는 참으로 어렵다. 경기장 구석에 앉아 매순간 시시각각 이뤄지는 공격과 수비진의 ‘기하학적 조합’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황홀하다. 그러나 어떠한 것이 최선의 조합이었는가를 생각하면 곧바로 머리에 쥐가 난다. 한없이 복잡한 수학문제들이 숨쉴 틈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하면 11명의 선수가 지닌 전략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떠한 기하학적 구도가 가장 쉽게 골을 넣는 구도일까. 때로는 단 한 명의 뛰어난 플레이어가 나머지 10명의 존재를 우습게 만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이름도 보잘 것 없는 아마추어 무명팀이 세계적 스타들로 이뤄진 유명 프로팀을 이기기도 한다. 이래서 축구는 ‘팀스포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무도 혼자서는 이길 수 없지만 11명 중 1명이 뛰어나면 그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축구다.

    ‘축구황제’ 펠레는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스타들이 아니라 바로 팀이다. 야구에서는 투수 혼자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축구에서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펠레는 유명한 선수지만, 펠레가 골을 넣는 이유는 다른 선수들이 적절한 타임에 그에게 볼을 패스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선수 개인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네덜란드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탁월한 개인기다. 나머지는 연습을 통해 얼마든지 연마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기만 좋으면 팀플레이는 약간의 연습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흡사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브라질팀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축구는 전쟁과 비슷하다. 전투에서도 영웅을 필요로 하지만 팀워크가 깨지면 한순간에 와르르 전선이 무너진다.

    물론 불타는 투지와 용감한 자세가 중요하지만 전략적 사고가 없으면 그것은 무모한 만용일 따름이다. 반면 모든 병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을 때 한 명의 용감한 병사는 전체 병사들의 사기를 용솟음치게 해준다. 가령 한 명의 뛰어난 명사수가 적장을 쏘아 쓰러뜨린다면 그것이 승리에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축구에서도 한 사람의 영웅은 축구의 역사를 바꾼다. 그리고 그 자신은 전세계 수십억 인류의 ‘인간문화재’가 되기도 한다. 펠레가 그 좋은 예다. 펠레는 자신이 겪은 기적 같은 4가지 경우를 곧잘 이야기한다.

    첫째는 산토스FC팀에 있었을 때의 일. 오랫동안 민족분쟁이 계속됐던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에서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는 순간부터 며칠 동안 분쟁이 딱 그쳤다.

    둘째는 콜롬비아에서 경기를 벌였을 때 심판의 오심으로 펠레가 퇴장당하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펠레 대신 심판을 퇴장시키고 펠레를 다시 운동장으로 불러들인 사건이다.

    셋째는 1962년 4월1일 유럽의 53개 신문에 일제히 ‘펠레 이적’ ‘레알과 계약’ ‘밀라노와 계약’ 등의 기사가 나왔을 때다. 알고보니 이것은 만우절 농담이었다. 신문들은 사전에 펠레와 의논이나 귀띔도 없이 기사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1970년 멕시코월드컵 결승전 때 브라질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멕시코 관중들에 둘러싸여 몸에 걸치고 있던 모든 옷을 빼앗겨 팬티만 남았던 일이다.

    축구에서는 아무리 조직력이 정교하더라도 일대일 개인기 싸움에서 뒤지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천신만고 끝에 비길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다. 전술로는 세계 최강 프랑스를 이길 수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가공할 만한 순간 스피드, 수비수 한두 명을 가볍게 제치는 개인기, 정확한 위치선정, 한 박자 빠른 패스를 자랑하는 선수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축구는 문전에 접근하면 골문에만 집중하는 공격을 펼친다. 그러다가 밀집수비에 막히고 볼을 빼앗기면 순식간에 역습 골을 먹는다.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도 “팀 전술면에서는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다. 개인기가 없는 전술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한다.

    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도 한 사람의 뛰어난 플레이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유로2000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99% 승리를 손에 쥐었다가 놓쳤다(이탈리아는 후반 45분까지 2대1로 리드하다가 인저리 타임인 후반 46분에 동점골을 허용한 뒤 연장전서 패했다). 그러나 만약 프랑스의 10번(지네딘 지단의 등번호)이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였다면 프랑스는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의 10번(델 피에로의 등번호)이 프랑스의 지단이었다면 이탈리아는 챔피언이 됐을 것이다.

    지단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이런 남자와 결혼하면 여자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부드러운 유머, 축구를 직업으로 삼은 데 대한 확실한 마음가짐, 무대가 크면 클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승부근성과 배짱. 미남이 아니건 머리가 벗겨졌건 알 바 아니라는 느낌마저 든다. 고대 로마의 장군이라면 서슴없이 그를 백인(百人)대장에 임명했을 것이다. 그것도 선봉 돌격중대 지휘관인 제1대대 제1백인대의 대장으로….

    나는(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활동하는 축구선수 중에서) AC밀란의 보반, 이미 은퇴해버린 라치오의 9번 만치니 그리고 가공할 만한 슈팅력을 지닌 바티스투타를 좋아한다.

    보반은 플레이가 얼마나 고상한지 숨이 막힐 정도다. 그가 날리는 롱슛이나 코너킥의 정확성은 우아하고 표리일체(表裏一體)하다. 만치니는 머리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배짱도 있다. 그는 로베르토 바조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의 판타지(상상력)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줬다. 또 한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맨으로 분장해서 골대 바로 뒤에서 바티스투타가 슈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타고난 스트라이커의 발에서 튀어나가는 슈팅의 위력을, 골키퍼와 거의 같은 위치에서 맛보고 싶다. 아마도 막무가내로 강력히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대전에서 영웅은 사라졌다.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로멜이나 아이젠하워 혹은 맥아더 같은 영웅이 있었다. 그리고 이 영웅들은 전쟁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보더라도 더 이상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어느 한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기보다는 조직과 전략, 팀워크, 시스템으로 전쟁을 치른다. 마치 요즘의 기업경영처럼….

    현대축구도 마찬가지다.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던 펠레, 가린샤, 푸스카스, 크루이프, 마라도나, 플라티니, 에우제비오, 디 스테파노 등에 맞설 만한 슈퍼스타는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요한 크루이프가 “요즘 선수들의 평균 기량은 옛날보다 많이 떨어진다. 특히 기본이 안된 경우가 허다하다. 아주 쉬운 패스를 놓치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모든 선수가 양발을 자유자재로 썼는데 요즘 일부 선수들은 한 발만 쓴다. 모두 스타들이라 연습하는 시간이 턱없이 짧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이라고 한탄했을까.

    전문가들은 현역선수 중에서 겨우 지단 정도를 그들에 버금가는 스타로 손에 꼽을 뿐이다. 현대축구에서 선수들은 날로 기능화하고 획일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골키퍼들은 전통적으로 구경거리가 될 만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의 야신, 잉글랜드의 뱅크스 등은 곡예사와 같은 황홀한 플레이로 사람들의 넋을 빼놓았다. 그러나 현대축구에서는 골키퍼에게 엄격하고 절도 있고 냉정한 플레이를 요구한다. 김병지가 튀는 행동을 했다가 히딩크에게 찍힌(?)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낼 때가 됐다. 한국대표팀에 과연 지단이나 피구, 아니 눈높이를 낮추어서 유럽 빅리그의 B급 프로팀에서 주전으로 뛸 만한 스타플레이어가 있는가. 안정환이나 설기현의 경우를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딱 하나다. 조직력이 아니면 한국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수비도 조직력, 공격도 조직력이다. 물론 히딩크라고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월드컵 때만 되면 나오는 ‘16강 가려면 누구 누구를 막아라’는 식의 이야기는 말이 안된다. ‘폴란드의 검은 골잡이 올리사데베를 막아라’ ‘미국의 핵 어니 스튜어트를 잡아라’ ‘포르투갈의 피구는 내게 맡겨라’는 얘기는 말장난일 뿐이다. 과연 천하의 피구를 한국의 최성용이나 이영표가 잡을 수 있을까.

    최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연수중인 성남 일화의 김학범(41) 코치 말을 들어보자.

    “한국선수 역량으로는 솔직히 피구를 일대일로 막기 힘들다. 백전백패할 것이다. 98프랑스월드컵 때 네덜란드의 오베르마스보다 훨씬 뛰어나다. 스피드가 전광석화 같고 센터링도 빠르고 정확하다. 게다가 슈팅 능력도 빼어나다. 한국이 피구를 막는 데 너무 집중하면 피구보다 못할 것이 없는 누누 고메스, 루이 코스타, 콘세이상 파울레타 등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들은 ‘때는 이때다’ 하며 헤집고 다닐 것이다. 사실 피구는 활동 범위가 넓어 일대일 전담마크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피구가 완벽한 선수는 아니다. 피구도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움직이면서 공을 받는 게 아니라 뻣뻣이 서서 공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 수비수로서는 피구가 공을 받은 다음에 움직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여유가 있다. 또한 피구는 원터치 패스보다 일단 공을 잡으면 직접 드리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이 강력한 프레싱을 펼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더구나 오른쪽 미드필더인 피구는 왼발을 거의 쓰지 않는다. 물론 활동반경이 넓어 왼쪽으로 이동해 돌파할 때도 있지만 그땐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다가 오른발로 슈팅하는 습관이 있다.”

    한마디로 오른쪽 미드필드에서는 낮고 빠르게 꺾이는, 각도가 칼날 같은(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베컴에 버금가는) 센터링을 날리고, 왼쪽에서는 중앙으로 파고들다가 직접 대포알 같은 슛을 날리는 것이다. 상대 공격수의 이동경로와 습성을 아는 것은 수비수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다(하기야 이런 정도는 중요한 정보랄 것도 없다. 이미 유럽 선수들은 거의 오른발만 쓰는 베컴이나 피구의 습성을 손바닥 보듯이 환하게 꿰뚫고 있다. 그러면서도 수비수들은 계속해서 당한다. 그렇다. 기술이 뛰어나면 알면서도 당하는 게 바로 축구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야 한다. 히딩크는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일대일로 막으려 해서는 안된다. 또한 평소의 습성과 이동경로는 월드컵과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수시로 바뀔 수 있다. 바로 이럴 때 상상력과 창조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평소와 같이 움직이지 않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정해 머릿속에 대응책을 그려야 한다.

    또한 폴란드의 빗장수비를 총지휘하고 있는 중앙수비수 토마시 하이토는 거칠고 격정적이다. 독일의 샬케04에서 뛰고 있는 그는 98∼99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많은 16장의 옐로 카드를 받은 적도 있다.

    우리는 차라리 이런 선수들의 ‘불끈’기질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언론들이 너도나도 안 잡으면 큰일난다고 지적한 ‘공포의 골잡이’ 폴란드의 올리사데베도 경기 녹화필름을 보면 엄청나게 빠르고 순발력이 뛰어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페널티지역 내에서 그럴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페널티에어리어 밖에서는 슈팅도 못하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 한마디로 골문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동료들이 절묘한 송곳패스를 찔러주면 순발력과 스피드를 이용해 골을 넣는 스타일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이동국과 닮았다.

    올리사데베의 매니저인 폴 호젯츠도 “올리사데베는 지금까지 시원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넣은 적이 거의 없다. 먼 거리에서도 골을 넣는 전천후 공격수가 아니라 골마우스 안에서 확실하게 승부를 보는 전통적인 골잡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싸울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팀의 감독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홈팀인 한국과의 싸움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폴란드 엥겔 감독은 “역사적으로 개최국은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때문에 한국과 첫 경기를 갖는 것이 상당히 껄끄럽다”고 털어놓았다. 국내 전문가들도 한국팀이 실력으로는 1무2패 정도가 맞겠지만 홈어드밴티지가 있기 때문에 1승1무1패로 16강에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폴란드 스포츠신문의 크지스토프 기자는 “한국팬들의 히스테리적 응원이 걱정이다. 한국과 첫 경기를 갖는 폴란드는 이런 면에서 아주 힘들 것이다. 한국선수들은 열광적인 팬들 앞에서 싸움닭처럼 이를 악물고 90분 동안 쉴새없이 뛸 것이다. 더구나 예전의 한국은 전술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했지만 이제는 세계적 전술통으로 인정받는 히딩크 감독이 팀을 맡고 있다. 물론 한국팀은 한골을 먹고 나면 금세 기세가 꺾이는 단점도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홈의 이점은 있는 것일까. 아마 홈이점이라면 관중들의 열화같은 응원이 제일 큰 힘일 것이다. 물론 홈팀은 현지 적응하는 데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도 유리하다. 그러나 이것도 어릴 때부터 사철잔디에서 공을 차왔던 유럽선수들과 이제 겨우 사철 잔디를 깐 새 경기장에서 몇 번 경기를 해본 우리 선수들을 비교해보면 이로울 게 별로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6월 더위가 한국을 도울 것이다.

    히딩크는 어떻게 생각할까. 히딩크는 “홈그라운드는 이점이 있지만, 불리할 수도 있다. 유럽의 영리한 팀과 싸울 때 관중들의 열화 같은 응원은 선수들의 통제력과 냉정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축구해설가 강신우씨도 “응원의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선수들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홈팬들의 열광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선취 득점하면 자칫 흥분해서 그르칠 수 있고, 먼저 실점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반대로 경험을 충분히 쌓으면 응원 열기를 업고 상승세를 타게 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폴란드나 미국 포르투갈 선수들을 주눅들게 하려고 한 응원이 오히려 우리 선수들의 발을 무겁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컨페더레이션컵 때 0-5로 패한 프랑스전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98프랑스월드컵 때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것이나 유럽원정 도중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5로 패한 것, 그리고 시드니올림픽에서 스페인에 0-3으로 진 경기의 공통점은 뭘까. 한마디로 선수들이 주눅이 들어 자기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경기들은 모두 홈이 아닌 곳에서 벌어진 경기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럼 홈에서 벌어진 컨페더레이션컵 프랑스전에서 한국선수들의 몸은 왜 그리 무거웠을까. 아마 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월드컵에서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우리 관중들의 응원은 유럽 선수들이 보기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팬들의 응원으로 생각하고 더 신나게 경기를 할 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축구가 너무 좋아 1년 동안 휴직하고 영국으로 축구유학을 다녀온 최승돈 KBS 아나운서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것은 그가 최근 쓴 책 ‘월드컵도 하는데 축구장 하나 살까’에 나오는 말이다.

    “영국에서 축구장에 갈 때는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사전에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 홈팀 응원단과 원정팀 응원단은 철저히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입장권도 홈팀 관중과 원정팀 관중에게 각각 따로 판다…. 영국 축구장에서 홈팀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관련해서 영국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intimidating’이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무섭게 하다’란 뜻을 갖고 있는 동사 ‘intimidate’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상대를 마구 윽박질러 주눅들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축구장은 영국축구장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축구장 분위기만 놓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양반이다. 영국사람들은 모두 ‘신사’가 아니다. 영국 혹은 유럽에서는 정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원정에 나선 선수가 홈팬들의 야유를 견뎌낼 재간이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축구장에서 어느 한쪽으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게 착하디 착한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인 것 같다. 당파성을 찾기보다 땀흘린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0-5로 프랑스에 패한 대표팀에게도 썩은 계란 대신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는 2002월드컵에서 16강진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것은 바로 홈 어드밴티지 때문이다. 하지만 지극히도 공격적인 팬들의 극성스런 응원에 익숙한 외국팀들이 한국인의 순진한 응원에 주눅이 들 것 같지는 않다. 축구는 결국 정체성(Identity)이다.”

    유럽의 축구장 분위기에 익숙한 히딩크 감독도 아무래도 이게 이상한가보다. 히딩크는 어느 인터뷰에서 “나도 한국축구에 열정을 가져야 하겠지만 한국관중들의 열정도 절실하다. 세계의 많은 축구장을 다녀봤지만 한국처럼 ‘조용한 관중의 나라’는 처음 봤다. 한국관중들은 아직 왜 홈경기와 어웨이경기에 차이가 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홈 어드밴티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럽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유럽선수들은 어웨이경기를 하러 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한국도 월드컵 때 홈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니 만큼 관중들의 열렬한 성원과 응원이 하나의 플러스 요소가 돼줘야 한다.”

    오죽하면 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 같은 이는 “우리 팬은 너무 점잖은 것 같다. 컨페드컵 때 한국이 프랑스에 지는 데도 박수를 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화가 나는지…. 2001년 12월9일 서귀포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의 평가전에서도 비가 오자 서귀포시에서 비옷을 나눠줬는데 10여 분 만에 관중석이 온통 미국 유니폼과 같은 흰색으로 바뀌었다. 졸지에 미국의 홈구장이 돼버린 것이다. 그때는 정말 황당했다”고 토로했다.

    물론 폴란드의 응원단장격인 폴란드 팬클럽회장 보보프스키(62)씨가 이런 한국의 응원문화를 모를 리가 없다. 그동안 월드컵 경기를 75차례나 직접 관전했다는 그는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를 봤는데 당시 한국팬들은 너무 조용해 도대체 자기 나라팀을 응원하러 왔는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일본팬들이 자기 나라가 지고 있는 데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우리 폴란드팬들은 종종 상대팬들과 충돌할 만큼 열정적이다. 우리는 한국에 2000명 정도가 갈 예정인데 한국팬들의 조용한 응원을 압도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더구나 우리가 상대할 스페인, 폴란드 그리고 주전 대부분이 유럽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국선수들은 심지어 ‘공포 분위기’라고까지 말해도 좋을 어웨이경기에 너무나 익숙하다. 이런 면에서 그들에게 우리의 응원은 자장가로 들릴지도 모른다.

    피구의 별명은 ‘아이스 맨’이다. 얼음과 같이 냉정하다는 뜻이다. 피구는 경기장에서는 절대 화를 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수비수가 거친 태클을 걸거나 심지어 보이지 않는 데서 발길질을 해도 그는 수비수를 쳐다보지 않고 주심에게만 “왜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내밀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피구가 스페인리그에서 공격수로서 한 시즌에 10개의 옐로카드를 받은 것은 보통 선수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옐로카드는 대부분 공격하는 도중에 상대 선수에게 공을 빼앗긴 뒤 강력한 태클을 시도하다가 받은 것이다. 그만큼 그는 공격수로서뿐만 아니라 수비수로서도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히딩크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있을 때인 1999년 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전에서도 당시 바르셀로나팀 선수로 뛰던 피구는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피구는 전반 초반 자신을 마크하던 바르셀로나의 호베르토 카를로스(브라질)가 깊은 태클을 해오자 죽는 시늉의 ‘할리우드액션’으로 주심의 시선을 끌어 카를로스에게 레드카드를 안겨주었다. 결국 수적으로 우세한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를 3-0으로 이겼고, 히딩크는 이 경기를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국이 홈팬들의 응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 한국은 D조 예선전을 부산 대구 인천에서 치르는데, 세 경기장은 모두 종합경기장이다. 한국이 신축한 10개의 경기장 중 3개가 종합경기장인데, 공교롭게도 한국은 그곳에서만 경기를 하게 돼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종합경기장은 그라운드와 스탠드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관중들의 응원이 선수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팀은 흔히 체력과 정신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경기중 다리에 쥐가 나 쓰러지는 경우는 대부분 한국선수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의 기술수준은 유럽선수의 85%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체력과 정신력은 50% 이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히딩크가 말하는 정신력은 단순한 열성과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통제력과 감정 조절능력을 포함한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이 과잉의욕 때문에 경기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고 지적한다. 열심히 하다가도 실점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도 바로 자기통제력, 즉 경기의 균형감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축구도 마라톤과 비슷하다. 마라톤의 승부는 보통 25∼35㎞지점에서 결정된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거꾸로 상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축구도 그렇다. 후반 20분부터가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이기고 있으면 그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하여 상대의 목을 더 조여야 하고 지고 있으면 승부수를 던져야 될 시간이다. 여기엔 강한 체력과 정신력(통제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팀은 이 시간대가 되면 발걸음이 상대보다 더 무거워지고 헉헉거린다. 자연히 상대팀의 거센 공격이 시작된다. 지난해 0대5로 진 체코와의 평가전이나 서귀포에서 가진 미국과의 경기에서 한국팀은 바로 이 시간부터 정신없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때 3년간 한국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지냈던 크라머(77)도 한국팀의 체력과 정신력에 대해서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094년 미국월드컵 때 엄청나게 더운 댈러스에서 한국은 독일에게 전반에 3점을 내주고 후반에 맹렬한 반격으로 2점을 올렸다. 이것이 한국인의 강인함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대단히 강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수십㎞를 달리는 등 한국팀의 훈련방법은 마치 군대처럼 엄격하다. 이것은 규율을 중시하는 교육의 영향 때문이다. 아마 일본인 중에는 이런 훈련을 견뎌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병사를 길러내는 것이라면 몰라도 엄격함만으로는 훌륭한 선수를 육성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축구는 즐기는 법을 알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일본팀은 기술면에서 훨씬 발전했으며 전술의 이해도 또한 깊다. 그러나 일본팀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일본 혼’이다. 내가 말하는 ‘일본 혼’이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라는 것이다. 일본대표팀은 기술과 전술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은 것은 마음의 문제다.”

    그러나 이제 한국축구의 체력과 정신력도 예전같지 않다.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맡고 있는 박성화 감독은 “최근 한국축구는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느라 체력과 정신력을 소홀히 했다. 흔히 브라질 유럽 등 선진축구가 기술만 앞세우는 것 같지만 훈련량은 오히려 우리보다 많다. 한국의 정신력 또한 결코 이들보다 앞서 있지 않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지구력 훈련에 상당한 비중을 둬 왔는데 앞으로는 파워와 스피드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에서 11명의 세계적 스타를 모은 팀과 평범한 선수 11명으로 구성된 팀이 맞붙었을 때 반드시 스타팀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평범한 선수들의 팀이 더 많이 이길지도 모른다. 반대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있었을 때의 시카고 불스팀이 최강인 것은 분명했지만, 당시의 스타팅멤버 5명이 NBA에서 각 포지션별 최고였던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팀 운동의 특성이다. 더구나 축구는 농구멤버 5명의 2배가 넘는 11명이 겨룬다. 11명이 이루는 조합의 수는 농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스타가 승패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은 틀림없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포르투갈 폴란드 미국은 모두 한국보다 훨씬 경험도 많고 기술도 좋은 스타들로 이뤄진 팀이다. 피구 고메스(포르투갈), 두덱 올리사데베(폴란드), 스튜어트(미국) 등은 이미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선수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로마의 승리로 끝난 포에니전쟁에서도 좋은 예를 찾을 수 있다. 로마군 3만명과 천재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기원전 213년 로마군의 시칠리아섬에 있는 시라쿠사성 함락작전. 로마군은 4개 군단 3만 명이 투입돼 주민이 수천에 불과한 시라쿠사성의 함락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그 성안에는 바로 목욕탕에서 “유레카(알았다)”를 외치며 발가벗은 채 밖으로 뛰어나온 그리스의 천재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있었다. 아르키메데스는 일명 ‘아르키메데스의 나사’라고도 일컬어지는 ‘나선형 양수기’와 ‘겹도르레’를 고안해낸 발명가이기도 하다.

    로마군 총사령관 마르켈루스는 시라쿠사의 육지쪽을 2만 명의 병력으로 완전히 포위했다. 바다쪽도 100척의 5단층 갤리선으로 봉쇄했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총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시라쿠사는 병력이 아닌 기계를 투입하여 방어하기 시작했다. 육지에서 공격하는 로마 병사들은 성벽 위로 목을 내밀고 돌멩이를 쏘아대는 신병기에 고전을 치렀다. 이 신병기는 사정거리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데다 이동도 자유자재였다. 로마 병사들이 위치를 바꾸어도 정확히 겨냥해 돌멩이를 쏘아댔다.

    시라쿠사 병사들은 성벽 위로 눈만 내놓고 로마군의 움직임을 살필 뿐이었다. 로마군은 화살로 시라쿠사의 병사들을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지 못했다. 로마군은 시라쿠사 성벽에 달라붙기는 커녕 접근할 수도 없었다. 바다쪽도 마찬가지였다. 로마 선단이 벼랑에 접근하자마자 성벽 위로 얼굴을 드러낸 기계는 성벽을 넘어 벼랑 위까지 뻗어와 로마군의 공격용 사다리를 쳐서 바다로 내던졌다. 이 기계는 바다쪽 여기저기에서 로마군의 공격용 사다리와 그것을 타고 벼랑 위로 내려서려던 로마병들을 모조리 바닷속으로 밀어넣었다. 또한 사정거리와 이동이 자유자재인 투석기가 쏘아대는 돌멩이에 맞아 부서지는 로마군의 배도 적지 않았다. 간혹 간신히 아르키메데스의 신무기를 피해 성벽에 달라붙는 데 성공한 로마군도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거울에 반사된 햇빛을 받고 눈이 부셔서 성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로마군 총사령관 마르켈루스는 이 광경을 보고 “아르키메데스는 마치 물잔을 내던지듯 우리 배를 깨뜨리고 있군. 허 참, 일흔 먹은 늙은이 하나한테 이렇게 무참히 휘둘리다니 이게 무슨 꼴인가”라고 한탄했다. 이때 아르키메데스의 나이는 75세 안팎으로 추정된다. 결국 기원전 213년의 시라쿠사 공략은 아르키메데스 한 사람 때문에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이상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라쿠사의 공방전에서 발췌).

    그러나 시라쿠사는 2년 뒤인 기원전 211년에 함락된다. 그것은 로마군이 아르키메데스라는 천재 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시라쿠사라는 성 전체를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라쿠사 시민들은 축제일이 되면 술을 많이 마시고 경계가 흐트러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밤중에 기습을 해서 간단하게 성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 함락의 혼란 속에서도 수학문제를 푸는 데 열중해 있다가 그를 알아보지 못한 로마 병사에게 살해됐다.

    한국팀에는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스타가 없다. 반면 상대팀은 스타들이 즐비하다. 포르투갈은 프랑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더불어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팀이니 그렇다 치자. 첫번째로 맞붙을 폴란드는 어떤가. 누구보다 유럽팀들을 환히 꿰뚫고 있는 히딩크조차 ‘가장 까다롭고 영악한(Tricky) 팀’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크루이프도 “폴란드는 우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2002한일월드컵의 최대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라고 어디 만만한가. 미국은 우리보다 월드컵에 더 많이(6회 출전에 4승1무12패, 한국은 5회 출전) 나간 강팀이다. 축구인구도 1800만 명(한국 52만 명)이나 되며 프로선수만 7000여 명(한국 400여 명)이다.

    미국은 처녀출전한 1930년 우루과이월드컵에서 벨기에와 파라과이를 각각 3-0으로 이긴 뒤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6으로 무너져 3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선 축구의 종가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겨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아마 객관적 실력대로라면 한국은 잘해야 1무2패 정도 할 것이다.

    유럽의 축구전문가들도 하나같이 “아마 한국이 속한 D조에서는 미국과 한국이 피터지는 3위 다툼을 벌일 것”이라며 비아냥댄다. 어딜 감히 한국 정도의 실력으로 16강을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축구전문주간지 ‘사커 매거진’도 한국을 D조에서 꼴찌로 예상했다. 포르투갈 1위, 폴란드 2위, 미국 3위, 한국 4위. 가슴이 아프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들의 평가를 인정해야 한다.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한국의 객관적 실력이기 때문이다.

    정말 한국은 아무리 봐도 수비, 공격, 미드필드진 등 어디 하나 상대팀들보다 나은 게 없다. 히딩크인들 이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고 선수들이나 한국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마나 속이 답답할까. 네덜란드의 베르캄프나 다비즈 같은 선수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속이 좀 덜 답답할텐데….

    사실 한국축구는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수준이 한참 낮다. 세계 40∼50위권도 잘 봐준 것이다. 그런 실력으로 하루 아침에 16위 안으로 들어가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시험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40등짜리가 16위 안으로 점프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조직력·홈이점·행운을 기대하며


    그래서 부랴부랴 우리가 모셔온 사람이 히딩크다. 한마디로 히딩크는 잘 나가는 서울 강남의 ‘족집게 강사’다. 어떻게 하겠는가.

    수능시험(월드컵)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실력은 없고. 암기과목이라도 열심히 외우고 수학, 영어 등은 나올 만한 문제(족집게 강사가 찍은 문제)를 추려 집중적으로 풀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히딩크가 왔다고 해서 한국축구의 수준이 갑자기 확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한국축구 발전은 10∼20년을 두고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될 일이다. 히딩크는 어디까지나 족집게 강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행히 히딩크는 실전이 풍부하다. 산전수전 다 겪어 어떻게 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실력이 떨어지고 시험문제 경향을 잘 모르는 한국으로서는 그가 내준 문제를 열심히 푸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결국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에 홈그라운드의 이점 그리고 행운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끈끈한 조직력의 전제조건은 상대팀보다 1.5배 강한 체력(두 배는 더 뛰어야 한다는 뜻)과 11명 전원이 ‘바람의 아들’ 같은 스피드뿐이다. 또한 한국 응원단은 90분간 잠시도 쉬지 않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퍼부어 상대팀 선수들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해야 한다.

    다행히 예언가들(신동아 2002년 1월호 174쪽)에 따르면 한국팀의 운은 좋다. 심지어 8강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히딩크 감독의 운세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강호들 틈에서 우리가 경험상 느끼는 ‘신의 몫(God’s Share)’은 그리 크지 않다. 오로지 인간들이 뿌린대로 거둘 뿐이다. 정말 예언가들의 말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슈우웃웃 고오올-인. 벌써부터 발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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