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덴마크 월드컵대표팀 유치한 스포츠 마케팅의 모범

  • 양영훈 < 여행작가 > travelmaker@hanmir.com

    입력2004-11-08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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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천리길, 머나먼 남해 땅에서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선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남다른 근면성을 체득할 수 있다.

    제법 매서운 삭풍이 쉼없이 불어대는 2월의 어느날 이곳을 찾았을 때도 발길 닿는 곳마다 묵묵히 일손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굴 양식에 쓸 굴 껍질을 엮느라 분주하고, 층층난 계단식 논밭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농부 내외가 채소를 수확하거나 잡초를 뽑느라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른 성싶다. 심지어 미수(米壽)를 목전에 뒀다는 노인조차 괭이로 논을 갈아엎는 일에 열심이었다.

    요즘엔 어딜 가나 흔한 묵정밭도 남해군에서는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물이 넉넉지 못해 벼농사를 지을 수 없는 다랑이에는 채소를 심고, 그마저도 여의치 못할 만큼 척박한 산달밭은 보기 좋게 쟁기질이라도 해둔다. 남해 사람들은 계절과 날씨,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근면성이 몸에 밴 듯하다. 그들을 보노라면 “그간의 내 삶이 너무 느슨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남해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남해 똥배 기질’이라는 말이 있다. 1950∼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해군 사람들이 작은 쪽배를 타고 여수까지 건너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분뇨를 수거해 왔던 데서 생겨난 말이다. 이렇게 거둬온 인분은 한데 모아서 삭혀두었다가 보리농사를 시작할 즈음 거름으로 썼다고 한다. 화학비료의 등장과 함께 이 ‘똥배’도 자취를 감췄지만, 이곳 사람들의 남다른 근면성과 생활력은 여전하다.





    민·관이 동참하는 환경관리


    남해군의 인구는 5만8117명(2001년 기준). 그중 2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반면 농업과 어업 같은 1차산업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즉 천리(天理)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이 유달리 많은 고장이다. 대체로 1차 산업의 비중이 높은 고장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작다. 한마디로 보수성향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런 남해 사람들이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이후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30대 무소속 후보의 군수 연임, 지역언론의 활성화, 선진국 수준의 환경관리, 국내 유일의 스포츠파크 조성, 매장(埋葬) 일색의 장묘문화 개선,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 수준의 비약적인 향상 등 남해군의 놀라운 변화는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하고도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것은 환경관리와 스포츠 마케팅 분야다.

    먼저 환경관리 분야를 살펴보자. 1997년 환경부로부터 환경관리 시범 지자체로 지정된 남해군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는 환경생태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민·관이 적극 동참하는 환경운동을 벌여 왔다. 또한 ‘푸른 남해 21’이라는 환경선언을 제정해 지역특성에 맞는 환경보전 목표를 설정했다.

    그 일환으로 환경보전위원회 명예환경감시원제 환경주부대학 등을 운영하며, 쓰레기 배출량을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해 녹색가정 만들기 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그밖에도 하천생태계의 복원과 샛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수초골재식의 환경친화형 간이 오수처리시설을 마을 단위로 보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시적인 성과물은 남해 에코파크(Eco-Park)다. 남해읍 남변리에 조성된 에코파크는 환경, 농업, 관광의 세 가지 테마가 적절하게 구현된 환경테마공원이다. 이곳에는 하수종말처리장,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농어촌 폐기물 종합처리장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테마파크의 한쪽에는 환경친화형으로 설계된 수초골재식 간이오수처리장도 갖춰져 있다. 자연생태계의 자정작용을 원용한 수초골재식 오수처리장은 여러 하수처리 방식 가운데서도 질소와 인을 처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냄새가 적게 나고 시설비도 저렴한 하수처리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곳에는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될 수 있도록 분수, 나무다리, 벤치 등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부터 가동된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도 주목할 만하다. 각 가정에서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는 이곳으로 운반돼 지렁이에게 먹일 사료로 가공된다. 이 사료를 먹은 지렁이는 분변토를 배출하고, 양질의 천연비료인 분변토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짓는 지역 농민들에게 보급된다. 오염물질을 전혀 발생하지 않으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서 좋고, 양질의 천연비료를 생산해서 좋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인 셈이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의 외관과 내부 또한 쓰레기 처리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고 청결하다. 음식물 쓰레기가 분해되면서 내뿜는 특유의 악취도 거의 나지 않는다. 더욱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과 하수종말처리장이 서로 인접해 있는데도 시각과 후각에 거슬리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아직은 초기단계라 명실상부한 에코파크로 자리잡으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처럼 남해군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환경보전에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의지를 보여 왔다. 1999년에는 환경부로부터 제1회 환경경영대상(지방자치단체 부문)을 받았다.

    남해 스포츠파크는 ‘관광과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조성된 대규모 사계절 스포츠캠프. 남해군 서면 서상리의 해안매립지에 들어선 스포츠파크는 9만750평의 부지에 총 710억원(공공 210억원, 민자 5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야구장 4개, 실내연습장 1동, 선수숙소 8동을 갖춘 대한야구캠프와 독일산 천연잔디가 깔린 3개의 축구장이 들어서 있다. 대한야구캠프는 민자유치사업이고 축구장은 남해군에서 직접 운영한다.

    그밖에도 건평 104평 규모의 메디컬 센터와 190평 규모의 향토역사박물관이 준공됐고, 헬스클럽, 식당, 찻집, 매점, 오락실, 스포츠용품점 등의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지상 9층, 지하 1층, 객실 97개 규모의 특급호텔도 곧 문을 열 예정이다. 그리고 폐교된 몇 군데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고 교사(校舍)를 단체숙소로 개조해 스포츠파크의 보조구장과 청소년 수련시설로 재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업비를 들여서 대규모로 조성된 스포츠파크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남해군이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섬일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는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현실을 감안하면 스포츠파크가 가져다줄 경제적 효과에 대해 누구나 의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해군 관계자의 설명을 찬찬히 들어보면 그런 의문은 가시게 된다. 엄청난 경제유발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해마다 개최되는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를 예로 들어보자. 2000년 8월에 열린 1회 대회 때에는 170개팀 6000여 명의 선수단, 기타 참가자 4000명 등 모두 1만여 명이 남해군을 찾았다고 한다. 이들이 11일 동안 계속된 대회기간에 뿌리고 간 돈이 20억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2회 대회 때에는 참가 인원이 1만2000여 명으로 늘어나 남해군이 거둔 수익은 약 3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전지훈련을 갖는 스포츠팀과 선수들의 수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수원삼성, 부산아이콘스 등의 프로축구단을 포함해 총 67개팀 2만9535명이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갔다. 이에 따라 지난해의 스포츠 마케팅 수익은 약 14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남해군 전체의 농민들이 한해 쌀 농사를 지어서 얻은 수익(138억원)보다도 많은 액수다.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얻는 무형의 이익도 간과할 수가 없다.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의 대부분은 틈틈이 남해군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기게 마련인데, 그들이 돌아간 뒤에 남해군의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인정에 대해 널리 입소문을 내면서 관광홍보와 대외적 이미지 제고라는 두 가지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월드컵이 열리는 올해엔 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로는 유일하게 월드컵본선 진출국(덴마크)의 전지훈련을 유치함으로써 남해 스포츠파크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앞서 언급했듯 남해군은 1차산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1차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의 지원 아래 100억원 규모의 양식장 유치, 서면 서호지구의 친환경농업지구 완공, 육질 좋은 화전(花田) 한우의 번식우 단지 조성, 마늘 종구(種球) 시장 개설 등은 농어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남해군에서 지난 한해동안 추진한 시책의 성과물들이다.

    또한 남해군의 관광산업은 그 비중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점에 착안한 남해군에서는 앵강만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남면 월포리의 바닷가에 군에서 직영하는 월포 가족휴양촌을 개장했다. 이 휴양촌의 통나무집에서는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한 앵강만과 갖은 형용의 기암괴석들이 우뚝한 금산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피서철 성수기에도 바가지요금이 없다는 점 또한 이 휴양촌의 매력이다.

    남해군은 그 속내를 알면 알수록 더 애착이 가는 고장이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까지 가는 천리길의 다리품마저 기꺼울 따름이다. 더욱이 올해 말 경에 창선-사천 간 연륙교가 개통되면 자연과 사람이 두루 아름다운 남해땅은 심리적, 물리적인 거리도 한층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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