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람중심! 경북세상! | essay

“정겨운 풍경, 소박하고 견실한 삶… 21세기 경북 이미지를 위하여”

우리에게 경북은 무엇인가

  • 정윤수 문화평론가|prague@naver.com

“정겨운 풍경, 소박하고 견실한 삶… 21세기 경북 이미지를 위하여”

1/2
“고향을 가고 싶다”고 하셨다. 고향! 그것도 시공간적인 범위와 물리적인 지향점을 가리킬 때 쓰는 처소격 조사 ‘~에’가 아니라 ‘~을’이라는 조금은 더 단호한 목적격이 쓰였기 때문에, 형과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고향 경북 풍기로 이사를 했다. 며칠 전의 일이다. 

1976년 3월 16일에 우리 온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탈향(脫鄕)의 시대’였다. 정확히 3월 16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나는 열 살이었고 이제 막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맞아 책보를 둘러메고, 언제나 그랬듯 형을 따라서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서 순흥초등학교에 다니던 꼬마였다. 그랬는데 갑자기 짐을 싸게 됐고, 새벽에 트럭을 타고 서울로 왔다. 당시 행정 명칭으로는 아마 경북 영풍군 순흥면 태장3리. 영풍은 영주시와 풍기읍을 합한 이름이다. 아 그러고 보니 번지수도 생각난다.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번지 ‘625번지’.



脫鄕의 시대, 서울로…

“정겨운 풍경, 소박하고 견실한 삶… 21세기 경북 이미지를 위하여”

1970년대 산업화 바람을 타고 상경하는 사람들.[동아DB]

그곳을 새벽에 떠났다. 떠날 때 고향 사람들이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왔다. 내 여동생의 친구는 주머니에서 당시에는 귀하던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서 여동생에게 줬다. 100원! 풍기읍에서 기차를 탔고, 기차는 죽령터널을 관통했다. 기차는 언제나 시커먼 굴뚝과 명멸하는 안전 조명으로 인해 협곡 속의 기계도시처럼 보이던 단양 도담역 인근의 성신양회 공장을 스쳐 제천, 원주로 하여 청량리로 북상했다. 서울의 북부지역 변두리. 그곳으로 이사했는데 향우회 사람들이 ‘이사 기념’이라고 큰 거울을 선물했다. 그 거울에 쓰여 있었다.

“축 발전, 1976년 3월 16일.”
우리 가족의 탈향을 3월 16일로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 거울, 형과 권투 시합을 하다가 박살 낸 그 거울에 적힌 글자 때문이다.
그 후 서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생략하기로 한다. 1970년대 산업화 바람을 타고 경북의 산골마을은 물론 전북의 들판이나 전남의 해안이나 강원의 오지에서 자리 털고 일어나 서울로 올라온 수많은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윗대 어른들은 먹고살기 위해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고, 그 아랫대 아이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변두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매도 맞고, 공도 차고 하면서 대학에 가고 직장을 잡고 전세를 구하고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얻어 서울의 위성도시로 산개해 그럭저럭 연명해온 30여 년의 한 세대다.

그런 행렬을 주도하고, 그러나 그런 행렬의 느리고 슬픈 연명의 세월을 다한 사람들이 어쩌다 고향 얘기를 하는 정도는 인지상정이겠으나, 아버지께서 더 이상 서울에 있기 싫다고 한숨을 쉬기 시작한 지 이태 만에 탈(脫)서울을 결심했으니, 그 거처가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 바로 그곳이라는 점은, 씁쓸하면서도 놀라웠다.



고향이 경북이라는 것

금의환향도 아니고 ‘재(財)테크’ ‘주(住)테크’도 아닌, 오로지 여생의 몇 해를 고향에서 지내고 싶다는 소망일 뿐이라 씁쓸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형제 또한 어렵지 않게 동의해, 지난 6월 말에 경북 풍기와 순흥 사이의 작은 집으로 낙향하는 아버지의 이삿짐을 건사하는 모습이 오히려 놀라웠다. 나도 고향을 그리워한 것일까. 얼마 되지 않은 짐을 다 옮겨 정리한 후에 풍기에서 순흥으로 또 부석까지 둘러보면서, 모처럼 고향 경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조선팔도라고 하지만, 분단으로 말미암아 절반이 뚝 잘리고, 그 아래로 몇 개의 도가 있어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데, 1970년대 탈향 흐름은 비단 경북만의 일이 아니라 한수(漢水) 이남의 모든 고을마다 진행된 거시적인 행렬이었다. 이 세대가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 운집해 산다는 것은 크고 작은 찰과상을 입는 일이기도 했다.

여러 지역 출신이 저마다의 특징과 자부심이 있지만 ‘경상도 출신’이라는 말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일종의 자부심이나 강한 남성성이 느껴진다. 40대 이상의 남성이 모여서 출신 지역을 얘기할 때 경북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들의 고향 말, 즉 상당히 억센 대구 근방의 사투리나 비교적 느리면서도 점잖은 영주 봉화 일대의 사투리를 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향 말을 언제 어디서나 거침없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경북 사람들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그늘도 느껴진다.

1960년대 이후 이 나라의 권력은 경북을 중심으로 돌았다. ‘TK(대구·경북)’라는 단어는 거의 정치학 사전에 등재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힘을 느끼게 한다. 긍정의 힘으로도 작동했지만, 권력지향적인 단어이기도 했다. 선거에서 ‘TK’는 경북 지역의 강건한 힘을 응축한 단어로 통용됐지만, 한편으론 그 폐쇄성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 도회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고향이나 출신 지역은 어쩌면 가족기록부상의 몇 글자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20세기 중엽에 당시의 정치 지형과 권력관계에 의해 형성된 ‘TK’ 혹은 그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특정 지역의 표현을 이제 지울 때가 됐다. 아이들은 ‘고향’이란 말에서 더는 보름달이나 느티나무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경북은 좀 더 내실 있는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그 역시 경북 안에 내재한다.  오래전에 작고하신 할아버지는 추석 차례를 위해 밤을 깎거나 제상을 진설하는 일로 시작해 차례를 지내는 전체 과정을 늘 헛기침 두어 번으로 차분하게 진행하셨다. 마을 안팎에 급한 일이 벌어져도 당장 억센 소리로 개입하기보다는 우선 가만히 지켜보시면서 저마다의 격렬한 감정이 스스로 정돈되기를 기다리셨듯이, 할아버지는 단정하고 신중한 자세로 제례를 드렸다.


1/2
정윤수 문화평론가|prague@naver.com
목록 닫기

“정겨운 풍경, 소박하고 견실한 삶… 21세기 경북 이미지를 위하여”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