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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이 전한 일본 가면극 원산지는 페르시아

한국 초연 앞둔 진기악

  • 김지욱 < 진기악 한국 공연 추진위원회 간사 >

백제인이 전한 일본 가면극 원산지는 페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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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근현대사에서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정치적 이념의 차이나 침략전쟁 등으로 인해 서로 소원한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됐지만 고대나 중세에 한·중·일 삼국의 관계는 문화교류 차원에서 서로 긴밀한 사이를 유지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 교류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 교류의 역사는 한국이 중국이나 서역에서 받은 문물들을 일본에 전해준 것이었다. 한일 문화교류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한자를 일본에 전하고 논어 등 10여 권의 책을 전한 왕인(王仁) 박사, 595년 일본에 건너가 불교를 가르친 혜자(慧慈), 법륭사(法隆寺)의 벽화를 그린 담징(曇徵)과 법정(法定)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아들들을 가르친 아직기(阿直岐), 성덕태자(聖德太子)를 정치·경제적으로 보필했던 신라인 진하승(秦河勝), 일본 최고의 절인 사천왕사(四天王寺)를 건설한 백제 사람 등이 있다. 이밖에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교류가 있었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인 미마지는 “백제 사람 미마지가 서기 612년에 기악(伎樂)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한다.

‘일본서기’ 권 제22에 따르면 “백제 사람 미마지는 중국 오(吳)나라에서 기악무(伎樂舞)를 배우고 돌아온 뒤 612년(무왕13년) 일본의 사쿠라이(櫻井)에 가서 일본 상류층의 어린 소년들에게 기악무를 가르쳤다. 사쿠라이는 지금 아스카(飛鳥)의 광암사(廣巖寺) 부근이다. 이곳에서 미마지는 성덕태자의 비호를 받아 사찰에서 공연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짧은 기록이지만 기악이라는 춤을 중국에서 배워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왕인 박사나 다른 사람들이 일본에 전한 것들은 책이라든가 불상, 아니면 건축물 같은 유형적인 것들이어서 그 형태들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기악은 춤이라는 무형의 존재이므로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연구되었던 기악은 불교를 선교하기 위한 선교극이면서 교훈극으로 알려져왔다. 부처를 공양하기 위한 종교적 가무로서의 기악이라는 용어는 불교 경전에도 자주 나오며 고대 중국 문헌과 ‘고려사(高麗史)’에도 일반적인 명칭으로 ‘기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백제에서도 사찰을 중심으로 연희(演戱)되었고,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일본에 전해진 뒤에도 역시 사찰을 중심으로 공연되면서 신도들의 신앙심을 북돋우는 불교극으로 내려오다가 전승이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 나타난 기록 외에 기악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지만 일본의 고마노 치카사네(迫近眞)가 1223년에 지은 ‘교훈초(敎訓抄)’라는 책에 기악의 공연 내용을 대략 기록하고 있다. 기악에 나오는 가면의 종류와 이름, 그 배역들이 어떤 내용의 연희를 하는지가 나와 있다. 하지만 그림으로 설명된 것이 아니고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연희의 내용을 알 수는 없다. 또, ‘교훈초’의 기록은 미마지가 기악을 일본에 전한 612년보다 600여 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기악의 가면은 7∼8세기의 것 230여 점이 일본에 그대로 남아 국보로 보존되고 있어 미마지가 일본에 전래했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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