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경선폭풍 한국정치 대변혁의 전주곡

  • 조기숙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박사 > choks@ewha.ac.kr

    입력2004-09-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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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치는 변혁중” 오늘날 한국정치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속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했고, 민주당 경선에서 새로운 후보가 대세론을 잠재우고 유력한 대선주자로 등장한 점이다.
    언어학자들은 사람들의 언어습득 능력은 S자 곡선을 그리며 발전한다고 말한다. 즉 언어실력이 학습량에 따라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답보상태에 있다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동안 변화가 없던 회화실력이 어느날 갑자기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유창해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은 학습 초기엔 변화가 미미해 감지하지 못하다가 공부할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응용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변화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을 ‘플레토(高原)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데, 인내가 없는 사람은 이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부를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플레토를 거치고 나면 자신도 놀랄 만큼 실력이 향상되므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언어학자는 충고한다.

    정치변동도 S자 곡선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해가 1987년이다.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함으로써 독재시대를 종식하고 본격적인 민주주의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제·사회적 환경에도 우리의 정치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정치는 늘 불신과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후보에 대한 지지가 폭발했을 뿐만 아니라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정치변동에 어리둥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평소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정치변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를 촉발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한국사회에 변화를 위한 조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어느날 외국인과 대화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갑자기 향상된 자신의 외국어실력을 발견하는 것처럼, 실제로 정치변동은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방에 가스가 차 있다고 해서 폭발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여기에 불을 붙여야 폭발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정치변동은 국민과 정치인의 합작품이다. 과거 왕조국가 시대에도 민심을 거스르는 왕이 성군이 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의 여론이 정치변동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유권자가 정치변동을 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항상 정치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불을 댕기는 정치인이 출현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경쟁하는 여러 정치인 중에서 불을 붙이는데 성공하는 정치인은 국민의 가장 가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이때 국민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무엇이냐 하는 논란은 선거의 쟁점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볼 때 정치변동이 학습곡선과 같이 S자를 그리는 것은 확실하다. 유권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정치인이 불을 댕기려해도 불이 붙지 않는다. 반면 유권자들이 정치변동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도 정치인이 엉뚱한 곳을 긁으면 불발탄에 그치고 만다. 이른바 ‘임계집단(critical mass)’이 형성되기 전에는 변화의 욕구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지만, 일단 임계집단이 만들어지고 정치인이 이를 촉발시키면 ‘전염효과(contageous effect)’가 생겨 유권자의 변화욕구가 급속도로 확산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정치변동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정치변동은 S자를 그리며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인은 유권자 내부의 변화를 읽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유권자들이 지역주의 투표를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정치인이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상황에서 지역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결과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제도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소선거구제에서는 민주당의 실정에 실망한 사람들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던진 표는 이회창 총재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당시 변수는 DJ에 대한 평가였다. 다소 감정적인 면도 있었겠지만, DJ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낀 영남의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몰표를 던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지역주의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처럼 대안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인은 지속적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해왔고, 이에 식상한 유권자는 기권을 택함으로써 우리 정치는 장기간 플레토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민주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채택했고 이변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자.

    정치변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욕구가 있어야 하며, 이 욕구에 불을 댕기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등장해야 한다. 유권자의 욕구는 최근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다만 정치인들이 이를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이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유권자는 이부영씨를 비롯하여 당시 민주당으로 출마한 재야인사 12명을 당선시켜 제도권으로 진입시켜 주었다. 정주영씨가 이끄는 신생정당(국민당)이 창당하자마자 선전한 것에서도 새로운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신한국당)이 승리를 이끌어 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보고 수도권 유권자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개혁의 상징이던 이회창씨와 박찬종씨를 앞세운 YS의 전략이 지지를 받은 탓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총선연대가 주도한 낙천 낙선운동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57.2%라는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언론은 낙선운동이 정치불신을 부추겼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낙선대상 후보가 출마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평균 2.5%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변화에 대한 유권자의 욕구는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주요 정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한 것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작금의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도된 타협안이라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제도가 도입되는 바람에 정당이 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다. 총재직과 하향식 공천제도를 폐지한 것은 큰 소득이지만, 과거의 정당원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공천권을 주었기 때문에 더 큰 폐해와 시행착오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정당이 내적으로 근본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정당활동에 참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정당의 내적 성숙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욕구가 이미 존재했다고 가정하면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총선에서 지역정당이 탄생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당재편성 이론을 사용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정당은 그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재편(realignment)’된다. 쟁점이 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정당은 안정된 지지를 확보하며, 정당체제는 안정된 ‘연합(alignment)’을 지속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나타났는데도 기존의 정당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유권자는 기존 정당으로부터 이탈하고 기권이 늘어나며 정당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이를 ‘정당해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을 사용하여 우리의 정당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는 3대 총선부터 안보와 체제안정을 지향하는 여당과 견제를 지향하는 야당으로 이뤄진 정당체제를 형성했다. 그후 쟁점은 성장과 분배 혹은 독재와 민주로 내용이 약간 변화했지만, 여야의 균열구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민주와 반민주의 정당연합 균열구도가 가장 강하게 반영된 선거는 1984년 12대 총선이다.

    12대 총선에선 예상을 뒤업고 양김씨가 주도한 신생정당(신민당)이 국민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선거의 결과는 1987년 민주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1987년 개헌으로 어느 정도 민주화를 성취했다는 만족감은 민주 대 반민주의 균열을 급속도로 약화시킴으로써 1988년 총선에서 지역정당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지역정당이 탄생하게 된 것은 ‘지역’이 새로운 문제로 등장함으로써 정당간의 새로운 균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의는 전근대적 투표행태이므로 민주화 이후 우리의 정치가 후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인사 및 분배정책에서 지역적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역이 정치적 쟁점으로 등장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언어나 인종적 분파가 없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하여 이념이 제약을 받는 가운데 이념을 중심으로 정당의 재편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연히 대선후보들이 지역적 정당을 창당하다보니 지역에 의한 정당재편성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지역이 모든 유권자에게 매력적인 쟁점이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대학생과 넥타이부대는 현재 30~40대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정당 구조에 불만을 품고 기권으로 저항을 표시해왔다. 그 결과 1987년 이후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총선에서는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기권과 정치불신의 증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부동층의 증가는 정당해체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는 역으로 새로운 쟁점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음을 뜻한다.

    요즘 정치가 급변하는 이유는 이처럼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새로운 대안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당에서 이러한 정치변동이 촉발되었을까? 민주당에서 정당개혁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다. 또한 김대통령이 총재직 사퇴라는 승부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민주당이 지난해 10·25재보선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이러한 참패가 총재직의 사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는 총재가 초강수를 두지 않을 수 없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던 정풍운동이 있었다. 2000년 총선에서 ‘바꿔’ 바람을 타고 국회에 진입한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은 침묵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왜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했을까? 김대중 정부의 실정으로 이회창 총재는 대세론을 타고 있었고, 만일 이회창 총재가 정권교체에 성공한다면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이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이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는 민주당 의원들은 당의 지지를 높이기 위한 정풍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은 정풍운동에 나서야 다음 번 선거에서 당선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에서 비교적 여론을 정확히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한 결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고 소위 노풍이 불면서 한나라당도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정풍운동에 나선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대부분 수도권의 경쟁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도 있다.

    정당 내부의 개혁도 기업가 정신을 가진 정치인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이 유일하게 이회창 총재에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공천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의 독자적인 지지세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권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모험을 걸어볼 만한 동기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의 탈당은 한나라당의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이에 한나라당도 미래연대를 중심으로 초재선 의원들이 당의 개혁을 외치고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민주당이 먼저 정당개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패자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며, 위치가 역전되자 한나라당도 개혁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질문은 그러면 왜 이러한 변화의 욕구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표출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노후보는 사실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이인제 후보의 국민적 지지가 높았기 때문에 국민참여경선제가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선 초반 노후보가 선전하게 된 것은 손해를 보면서 원칙을 지켰으며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왔다는 주장이 유권자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노풍에서 읽을 수 있는 유권자의 의지는 지역주의와 보스정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노후보의 진보성이 오히려 대안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정치는 보수주의 일변도였다. 하지만 IMF체제 이후 벌어진 빈부격차는 복지와 노동에서 진보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면 왜 과거에 위력을 발휘했던 색깔론조차 먹혀들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1997년 대선에서조차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던 색깔론과 북풍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6·15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그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전후세대가 아닌가.

    또한 유권자의 과반수는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진보적인 정책을 선호한다. 이는 우리의 평등주의적 문화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며,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IMF이후 구조조정에 따라 오히려 심화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노후보가 진보성향을 띤다는 것이 오히려 지지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정당재편성이 이루어지는 선거에서는 뚜렷한 대안이 각광을 받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2000년 총선에서 이념과 진보정책이 논의되지 못한 이유는 보수당인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권이 빈부격차를 벌려놓았다’면서 공격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노후보가 경상도 사람이므로 노풍은 신지역주의의 등장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노후보의 경우 다른 후보보다 영남에서 표를 얻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역주의 투표는 엄밀히 말해 정당투표다. 정당이 지역에 따라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경상도 사람들은 노후보에 대한 지지를 망설이고 있다. 오랫동안 지지를 보낸 한나라당으로부터 하루 아침에 이탈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주의 투표는 정당투표이므로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노후보가 경상도에서 얻고 있는 지지는 지역정당에서 이탈한 유권자로부터 기인한다. DJ가 이끄는 민주화세력에 대한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세력과 젊은층, 그리고 고학력 유권자가 바로 그들이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동영 후보도 영남에서 적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노후보와 지지기반이 같기 때문에 그것이 경선과정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노후보의 지역성을 노풍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끝으로 왜 음모론이나 색깔론, 노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 등이 노후보의 지지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노후보에 대한 지지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거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정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역적 성향에 따른 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노후보에 대한 지지는 이런 논란 가운데 오히려 상승하고 있을까. 영어에 “Deeds are louder than words.”라는 속담이 있다. 행동은 말보다 더 크다, 결국 진실하다는 얘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노후보가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온 것을 눈으로 지켜본 유권자는 이를 흠집내는 ‘카더라’ 통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가 부정부패했다는 증거가 진실에 기초해서 밝혀진다면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지금과 같이 소문에 기초한 보도는 노후보에 대한 지지를 하락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상승시킬 것이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대안매체들이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선 오히려 이런 보도를 내보내는 언론이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유권자의 변화를 읽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언론이나 전문가도 정치인 못지 않은 실수를 범했다. 이렇게 소위 여론 선도층들이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이유는 전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체계적인 이론이나 자료가 없기 때문에 숲보다는 나무를 보기가 쉽고 그 중에서도 주로 썩은 나무를 본다. 선거현장의 취재는 주로 흑색선전, 지역주의 등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그 동안 언론에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던 학자들은 선거 전문가가 아니라 언론의 각광을 받는 정치학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학문적인 전문성에 기초해서 현실정치를 분석했던 것이 아니라 언론이 한 이야기를 확인해주는 논평과 인터뷰를 주로 해왔다. 또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론이나 체계적인 분석을 뒤로한 채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매몰됐다. 결국 정치인이 여론을 잘못 읽게 된 것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여론선도층의 책임이다.

    향후 전개방향을 예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정당재편성이 시작되면 정당은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다. 정당재편성은 유권자들이 정당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고 정당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불만을 터뜨리는 순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당재편성을 통해 선택받은 정당이 선거에서 제시한 대안을 정책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면, 개편된 정당구조는 한동안 안정된 연합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에는 안정된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당구도를 찾게 된다.

    정당재편성이 이루어질 때에는 많은 유권자가 현상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정당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을 닮아가는 것이 이성적인 전략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me too’ 전법이다. 즉, 노풍이 변화에 대한 바람 때문에 나타났다면 한나라당도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노풍을 상쇄해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이회창 후보도 종전의 개혁적 보수의 입장에서 벗어나 보수색채를 뚜렷이 했으며 원조보수 논쟁까지 벌였다. 이것은 인간이 반사적본능을 갖고 있어 상대가 뚜렷할수록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노풍에 위협을 느낀 보수 집단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반대의 대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그 원인이다.

    이회창 후보의 보수화 경향은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의원과 정몽준 의원에게 신당을 창당할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온건한 보수와 포스트모던한 정책으로 기존의 지지자, 영남유권자, 젊은 유권자를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

    양당제 국가에서는 정당재편성을 위해 양당이 양극화돼도 신당이 중간에 등장하는 예가 거의 없다. 신당이 만들어져도 총선에서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지역주의의 균열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보다 신당의 경쟁력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또한 신당은 민주당과 연합하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선거구제 개혁을 시도할 수 있으며, 어느 정당이 정권을 획득하더라도 중간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신당창당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유권자의 이념 및 정책적 선호가 양당구조로 만족될 수 없을 만큼 다차원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단상황은 기존 선거에서 이념이 선택의 도구가 되는 것을 억압해왔다. 이번 선거에서 이념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진보적 후보의 등장에 기인한다. 그러나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는 산업사회의 균열인 진보와 보수 외에도 탈산업사회의 균열이 등장했다. 안보와 경제를 강조하는 물질주의에 반하여 서구에서 각광받는 환경이나 개인의 권리 등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 또한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뚜렷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자연스럽게 정당재편성을 요구한다. 환경이나 개인의 권리 등은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가치들이기 때문에 기존 보수세력을 유인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신당이 탄생한다면 바로 이런 유권자를 포섭해야 할 것이다 신당은 설사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한나라당의 뿌리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공화당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민정당 등 전통적인 여당이다. 현상유지적 성향의 유권자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을 박 전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이 전통보수와 신보수로 나눔으로써 보수정당의 경쟁을 초래하는 것은 흥미있는 대목이다. 박 전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우선적으로 원하는 유권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다면, 박의원은 시장경제에 호감을 표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신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정몽준 의원과 박의원이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합리적인 방법에 합의해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만일 둘 중 한 사람만, 혹은 두 사람이 별도로 신당을 창당한다면,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해야할 사람은 이회창 후보로 보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나라당 경선이 지지도를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후보는 더 이상 대세론의 주인공이 아니다. 부자처럼 몸을 사릴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모험에 나서 지지도를 끌어올렸어야 했다. 다른 후보들에게 경선준비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주고, 불공정경선 시비가 나오지 않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공정한 경선을 치르더라도 한나라당 내에서 대세론이 뒤집어지기는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의식을 느낀 이후보는 다시 개혁적 입장으로 선회하거나 자민련과의 합당을 통해 보수와 지역을 결합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충청권이다. 영남과 호남에 끼여 항상 찬밥신세였다는 소외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보가 전자의 방법을 택하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보수파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후자를 택하면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지역주의 세력 대 진보와 반지역주의 세력의 대결 양상으로 치러질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을 택할 경우 대선전 정계개편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선에서 실패할 경우 신당에 밀려 소수정당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 이래저래 이번 선거는 이회창 후보에게 쉽지 않은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의외로 이번 게임이 이후보에게 쉬운 선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지원씨와 이기호씨를 중용한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로 노후보가 민주당으로 끌어온 ‘비판적 DJ 지지자’들이 다시 등을 돌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세 아들에 대한 의혹과 권력형 비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할 경우, 노풍도 정권교체의 요구를 뛰어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후보가 이 문제에 대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중립적인 유권자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주요 정당이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한 것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작금의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도된 타협안이라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에 제도가 도입되는 바람에 정당이 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장치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다. 총재직과 하향식 공천제도를 폐지한 것은 큰 소득이지만, 과거의 정당원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공천권을 주었기 때문에 더 큰 폐해와 시행착오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정당이 내적으로 근본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정당활동에 참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정당의 내적 성숙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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