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용의주도하지도 교활하지도 못한 우직한 군인

FX사업 ‘양심선언’ 조주형 대령 변호인 접견기

  • 장유식 <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입력2004-09-03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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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그에게는 변호인의 입을 통해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져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그의 소망은 이뤄져야 한다.
    조주형 대령의 익명 인터뷰가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은 지난 3월3일 KBS와 MBC 밤 9시뉴스를 통해서였다(원래 MBC ‘시사매거진 2580’에 보도할 것을 전제로 인터뷰한 것이었다). 이날 아침 한겨레신문은 공군시험평가단이 작성한 344페이지 분량의 기종평가 보고서를 특종보도했다.

    국방부에 비상이 걸렸다. 몇 차례 연기와 축소를 거듭해오던 FX사업이 외압의혹에 휩싸인 것이었다. 부산스러운 수사과정에서 방송사 인터뷰에 응한 공군장교가 문건 유출 용의자로 지목됐다. 수사망은 점점 좁혀졌다. 공군 내에서 FX사업의 진행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조주형 대령을 비롯해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 조대령의 신원은 곧 파악되고 말았다.

    “나도 잘못한 게 있다”

    3월4일 밤 10시15분경, 헌병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조대령은 집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헌병대로 연행됐다. 다음날 새벽 5시경까지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지 못한 채 사무실로 출근조치됐다. 오전 9시15분경, 서울에서 내려온 기무사 요원들은 그를 서울로 압송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건 유출 및 인터뷰 동기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된다.

    참여연대가 공군장교의 연행소식을 듣고 몇몇 간부 중심으로 대책을 숙의한 것은 3월5일 점심 무렵. 우리는 공익제보(내부고발)라는 직감이 들었다. 군대라는 조직사회에서, 그것도 장성 진급을 앞둔 고위장교가 ‘양심의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었다.



    먼저 당사자를 접견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대령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뭔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먼저 가족과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다.

    다음날인 3월6일 오전. 조대령의 부인 문옥면씨와 연락이 됐다. 오후 1시경, 문씨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뜬눈으로 밤을 새워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침착한 모습이었다. 뜻밖에도 문씨는 남편과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조대령에게 접견의사를 밝혔다. 처음에 조대령은 거부했다. “나도 잘못한 것이 있고 군 내부 문제이니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외압·조작의혹을 폭로한 장교를 그냥 풀어준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전화를 끊은 후 부인을 설득했다. “조대령은 구금상태이니 자유롭게 의사를 밝혔다고 보기 어렵다”는 우리의 주장은 남편이 무사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부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문옥면씨, 안병희 변호사, 필자 등)는 OO동에 있는 기무사령부로 향했지만 실제 조사를 받는 곳은 기무사 분실이었으므로 시간약속을 다시 하고 기무사 분실이 있는 XX동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경, 드디어 조대령을 대면했다. 첫인상은 강인한 군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크지 않지만 단단한 체구였다. 눈매는 날카로웠지만 한편으로 부드러웠고 밤샘조사 때문에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는 변호인단을 크게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부인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꽤 안도하는 눈치였다. 수사관들을 내보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곧 그가 변호인단을 반가워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몇 시간 전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던 부끄러운 고백 때문이었다. 금품수수(그는 처음부터 뇌물이라고 자책했다)! 이는 방송사 인터뷰 동기에 대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의 끈질긴 추궁에 못이겨 털어놓은, 그야말로 ‘고해성사’였다.

    변호인으로서 이렇게 판단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금품(1100만원)은 현금으로 6차례에 걸쳐 받은 것으로 수표와 달리 추적이 불가능한 것임에도 조대령이 스스로 그 사실을 밝혔다는 점. 둘째, 수조원이 소요되는 FX사업에서 직무와 관련해 받은 돈으로는 액수가 지나치게 작다는 점, 셋째, 조대령은 인터뷰에 응한 후 신분이 밝혀질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준비 없이 조사를 받았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접 대면을 통한 느낌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었다. 국책사업을 뒤흔들어놓을 만한 엄청난 양심선언을 그처럼 어수룩하게 할 정도로 조대령은 용의주도하지 못했고, 교활하지도 못했다. 그는 우직하고 순진한 군인이었다.

    첫 대면에서 조대령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게 됐지만, 우리(참여연대)는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공세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금품수수가 뇌물죄로 성립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므로 변호인으로서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그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해 적극 지원하려던 계획도 유보했다. 그것은 그가 공익제보자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 아니라 공익제보자로 지원하는 과정에 금품수수가 문제가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조대령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일은 계속하되 제보사실의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그 사이 조대령은 3월8일 아침, 대전에서 일시 석방됐다. 다음날 구속영장이 청구될 예정이었지만 무영장 체포시한인 ‘48시간’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우리는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기로 했다. 우선 조대령 부인에게 연락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외압의혹에 대한 육성녹음을 해둘 것을 당부했다(3월13일 육성녹음 1차공개분).

    조대령은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가놓고 약 1시간 남짓 외압부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녹음을 했다고 한다. 그후 우리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이덕우 변호사와 함께였다. 이변호사는 조대령 가족과의 친분으로 이미 그전에 대전에서 가족들을 만나본 상태였다.

    조대령의 자택은 대전 계룡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밤 9시경, 조대령과 그의 부인이 우리를 맞아주었고, 노모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지만 반갑게 일행을 집안으로 들였다. ‘아들의 인생이 갑자기 바뀌게 된 것을 알고 계실까.’ 조대령은 금품수수문제 때문에 자포자기하고 있던 첫 대면과는 달리 안정된 모습이었다. 금품수수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였다. 책임질 것은 지더라도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마저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디지털녹음기의 REC 단추를 누른 후(3월27일 육성녹음 2차공개분), 우리는 조대령의 진술을 듣기 시작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약 4시간 동안 주로 그가 이야기하고 우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차분하고 자상하게 설명해나갔다. 그후에도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기억력은 대단했다. 몇 년에 걸쳐 벌어진 일들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먼저 FX사업에 대한 외압의혹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FX사업 초기부터 미국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실제로 시험평가단이 보잉사의 생산공장이 있는 미주리주를 방문했을 때 상원의원 크리스토퍼 본드가 국방획득목표 등을 운운하면서 F15K의 구매를 강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본드는 ‘아시아타임스’와의 회견에서 “한국이 비록 경제적, 정치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은 미국의 주니어파트너다”고 말한 바 있다. F-15를 생산하는 보잉사는 9·11테러 이후 민항 분야에서 경영난이 악화되고 미 공군의 차기합동전투기 수주경쟁에서도 록히드마틴사에 밀려남으로써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며 F-15는 미 공군이 더 이상 주문하지 않는 구식비행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방부 관련자들에 대한 증언에 이르러 조대령은 다소 격앙됐다. 공군 실무자들이 수년에 걸쳐 공들인 평가결과는 안중에도 없고 사업을 특정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며 분노했다. 자신이 직접 받은 압력, 후배인 김아무개 대령(군운용적합성 분야를 담당했으며 현재 구금중)이 고민 끝에 털어놓은 외압조작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그때만 해도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약간의 의구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후 FX사업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그의 증언이 사실일 거라는 심증이 굳어졌다. 특히 가격과 기술이전, 절충교역 등 중요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인 F15K가 3% 오차범위에서 프랑스의 라팔과 더불어 1, 2위를 차지했다는 지난 3월27일의 국방부 ‘1단계 평가결과발표’는 그날 밤 조대령의 증언을 통해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올해 49세인 조대령은 공사 23기다. 조대령에게 1100만원을 주었다는 라팔측 에이전트 이아무개씨는 그의 공사선배로 절친한 친구의 형이라고 한다. 조대령은 공사 4학년 때인 1975년 이씨를 처음 만나 30년 가까이 친형처럼 여겨왔다. 이번 금품수수 배경엔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있다. 조대령은 1982년 유학을 다녀온 이후 군에서는 비정통코스라고 할 수 있는 ‘사업분야’에 전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 문옥면씨의 말에 따르면 조대령은 ‘사업’에 재미를 느끼고 자부심을 가져왔으며, 그 탓에 ‘보직관리(진급에 필요한 필수보직인 지휘관을 거치는 것)’가 안돼 동기들보다 진급이 늦어졌다고 한다.

    조대령은 FX사업의 ‘산 증인’이라고 할 만하다. FX사업의 기획단계부터 관여했으며 1999년 6월부터는 전투발전단 시험평가실장을 역임하면서 FX사업 평가단 구성과 시험평가계획을 수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후 FX사업추진 실무팀장을 거치면서 통합제안요구서 작성과 입찰업체의 제안서 평가작업을 담당했다.

    2000년 8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는 FX사업평가단 및 지원단 부단장으로서 해외시험평가팀장을 겸하면서 시험평가결과 분석 및 협상지원업무를 계속해왔다. 특히 2000년 말엔 현지평가팀장을 맡아 국내 조종사 12명을 인솔해 4개 경쟁기종 생산국가를 방문, 생생한 성능데이터를 입수했다.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직접 전투기를 몰아보고 모의공중전을 펼쳐본 뒤 우열평가점수를 매긴 것이다. 그 책임자인 조대령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전투기분야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한 세계최고의 전문가 위치에 올랐다.

    조대령은 12년 전 차세대전투기(KFP) 사업을 교훈으로 삼아 이번만큼은 ‘한국이 자주적 전투기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종’을 선정하고자 했다. FX사업이 제2의 ‘율곡비리’가 되지 않도록 공군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국방부도 이같은 공군의 의도에 크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대령의 판단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당초 성능이나 기술이전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공언했다가 F15K가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2001년 말에는 가격(수명주기비용) 항목에 대한 가중치를 35%로 늘리고 기술이전 항목은 10%대(11.99%)로 줄였다.

    이와 같은 비일관성은 프랑스 다소사가 ‘1단계 평가결과’에 반발해 4월4일 법원에 ‘2단계 평가금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빌미가 된다. 변호인단은 조대령과의 면담을 통해 그가 ‘기술이전’을 통한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국방부가 특정 기종에 유리한 쪽으로 사업을 진행한다고 판단되자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대령의 부인 문옥면씨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문규현 두 형제신부의 친동생이다. 문씨는 두 오빠가 통일운동과정에서 수없이 구속되고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보인 침착한 태도가 이해가 됐다. 그녀는 3월13일 기자회견에서 “남편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조종사였으며 군인의 최대목표인 진급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던 사람이었다”면서 “더 이상 남편을 파렴치범으로 몰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남편의 30년 군생활이 불명예스럽게 마감되지 않도록 FX사업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은 1980년에 결혼했다. 문씨는 조대령이 자신과 결혼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까다로운 신원조회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사랑으로 한 가정을 이루었다. 문씨에 따르면 조대령은 두 처남 탓에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아왔다. 문씨는 “오빠들 때문에 진급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빠들도 우리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 매우 조심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둘째 처남인 문규현 신부는 오랫동안 군축운동을 하면서도 군사문제에 대해 매제에게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문신부는 이번 외압폭로사건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하기 전에 나에게 한마디라도 언질을 줬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복잡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대령이 공군 선배인 이아무개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에 대해 부인 문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공군에서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남편의 선배가 집으로 찾아와 이야기하다가 자신과 남편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현금 봉투를 던져두고 갔는데, 선배가 후배를 특별히 생각해주는 것으로 여겨 돌려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조대령은 3월9일 새벽까지 격정적인 진술을 계속했다. 아침에 구속이 예정돼 있었기에 그는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남은 사람들은 영장실질심사 준비를 한 후 새벽 5시경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조대령은 이미 사무실로 출근한 후였다. 영장실질심사는 오전 9시45분에 시작됐다. 군판사는 인정심문과 피의자신문절차에 대한 취지를 설명한 후에 범죄사실 및 구속사유 요지를 고지했다. 군판사는 이어 피의사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고 군검찰관은 금품수수혐의를 중심으로 사실확인을 해나갔다.

    변호인으로는 이덕우 변호사와 필자가 참석했다. 경험이 풍부한 이변호사가 주심이 돼 변호인 반대신문을 진행했다. 요지는 조대령이 라팔쪽에 제공한 정보는 군사기밀이 아니고, 라팔 뿐만 아니라 다른 경쟁업체에도 동일하게 제공한 정보이며, 금품수수 사실은 인정하나 직무 대가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 조대령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조대령은 “군인복무규율 위반과 금품수수는 후회하고 있지만 나의 신념은 FX사업에 대한 애정과 공군에 대한 애정이다. 우리도 자주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공정한 평가가 나의 소신이며 앞으로 FX사업 심사가 올바로 진행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진술했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나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와서 실질심사가 기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다 군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조대령이 풀려나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대령이 구속된 이후 변호인단은 여러가지 법률적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조대령은 구속 이후 곧바로 서울로 압송됐으므로 돌아가면서 접견할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요일을 포함해 매일 접견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4∼5명의 변호사를 섭외했다.

    변호인단은 군사법원법과 군형법시행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주심 한상혁 변호사).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통해 변호인단은 가족들의 면회를 주2회로 제한하는 군행형법시행령 43조2항과 경찰에서의 구속기간이 10일로 제한된 일반인과 달리 군인의 경우 추가로 10일간 구속기간 연장을 허용하는 군사법원법 242조1항은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10조) 및 평등권(11조1항),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27조3항)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구속연장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하는 한편 조대령 구속의 타당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이중 헌법소원을 제외한 가처분신청과 구속적부심은 곧바로 기각됐다.

    조대령 구속을 계기로 FX사업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대중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사이버 참여연대를 비롯한 인터넷공간에서는 사이버 서명운동과 사이버 청문회 등이 열렸고, 국방부 앞 항의집회와 규탄대회 등 대중행동도 잇따랐다.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하는 등 법적 대응도 계속됐다. 이처럼 국민들의 반대와 의혹의 눈길 속에 국방부는 3월27일 ‘FX사업 1차평가결과’를 발표했는데, 조대령의 증언대로였다. F15K와 라팔이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므로 한미군사동맹관계를 고려하는 2단계 평가로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국방부는 평가결과를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다. 수명주기비용(획득비+운영유지비, 35.33%) 부문에서는 러시아의 수호이35가, 기술이전·계약조건(11.99%)에서는 프랑스의 라팔이, 군운용적합성(18.13%)에서는 미국의 F15K가 앞섰다는 것이 공식발표였다. 아울러 임무수행능력(34.55%)에 대해서는 “사안의 예민함을 감안해 우열의 발표를 생략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가격과 군운용적합성 부문이었다. 우리는 구속된 조대령을 여러 차례 접견하는 과정에 이 문제에 대해 계속 확인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가격에 대해 국방부는 라팔이 F15K보다 싸지만 환율적용방식에 따라 F15K가 더 저렴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비공식적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분명한 것은 보잉사의 입찰가격이 주요 경쟁사에 비해 4억달러 이상 비싸며, 전자식레이더(AESA) 교체비용 및 격납고 신축비용으로 5억달러 이상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F15K를 도입할 경우 약 1조80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조대령은 특히 평가과정에 F15K의 운용유지비가 라팔에 비해 훨씬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음을 수차례 지적했다. 비행기값 외에 운용유지비 부문에서도 F15K가 절대열세라는 것이다.

    조대령은 ‘군운용적합성’ 부문과 관련해 조작의혹을 제기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김아무개 대령에게 압력을 가해 F15K에 군운용적합성 부문에서 2%이상 높은 점수를 주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를 부인하고 있으며 김대령은 구속돼 있어 조대령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1차평가결과 발표 전인 3월25일, 조선일보는 “공군이 평가하는 FX사업 평가 가중치 18.13%인 ‘군운용적합성’에서 F15K는 라팔에 비해 3%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의 취재원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보도는 조대령이 제기한 조작의혹과 완전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어 3월26일자 국민일보는 ‘단계적 전력화 충족여부’(완성품 납품시기에 관한 것으로 라팔에 비해 F15K가 훨씬 유리하다)가 이번 평가과정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두 신문의 보도를 종합하면 ‘단계적 전력화 충족여부’가 중요 요소로 평가돼 군운용적합성 부문에서 F15K가 라팔에 3% 앞서게 됐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이 점에 대해 조대령은 접견을 통해 군운용적합성 부문에서 F15K가 3% 앞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공군이 성장잠재력을 중요한 평가요소로 선정했기 때문인데 성장잠재력에는 F15K에 없는 센서융합기능, 통합전자전기능 등이 포함되므로 F15K가 유리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단계적 전력화’라는 기준은 최소한 조대령이 외압조작을 폭로한 3월3일 이전에는 없던 기준이라는 것이다. 라팔쪽에서도 모든 협상이 끝나고 가계약을 앞둔 시점에 국방부가 “전력화시기를 앞당길 수 있냐”고 물어와 “이미 협상과정에서 합의해놓고 갑자기 요구하면 어떻게 하냐고 답변했다”고 항의하고 있다.

    조대령 주장을 검증하는 과정에 새로 제기된 의문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나”(조대령에 따르면 조영길 전합참의장이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하는 점이다. 얼마전 한 군사평론가는 FX사업에 대해 평가하면서 “처음부터 미국제 무기를 살 수밖에 없었는데, 공개입찰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결국 외교적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지적했다.

    김동신 국방장관도 4월2일 국회국방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과거 율곡사업 추진시 수의계약 추진에 대한 문제와 투명성 및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개선책으로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택하게 됐으나 탈락 국가와의 외교문제 등 단점도 노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개경쟁입찰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이 문제인 것이다.

    비슷한 의문은 한광옥 민주당대표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3월18일 김동신 국방장관의 방문을 받은 한광옥 민주당대표는 “FX사업은 햇볕정책과 안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일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는 것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부시행정부의 환심을 얻기 위해 미국의 F15K로 기종을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은 4월4일 YTN과의 대담에서 “한국의 무기는 미국과 20년 정도의 간격으로 도입돼야 한다. 우리 전투기 제조기술은 아직 중학교 수준이라 라팔이 아무리 기술이전을 해줘도 우리가 습득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2015년에는 국산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한다. 그 전투기는 지금의 F-4 팬텀기 수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F15K가 곧 단종되며 부품공급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우리는 이미 미국에서 1968년 이후 단종된 기종을 지금까지 사용한 기술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F15K가 단종된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미국제 비행기로 선정될 수밖에 없음을 시인한 셈이다.

    한편, 프랑스 다소사의 경우 이번 ‘2단계 평가금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한미간의 특수한 군사·외교적 관계를 모를 리 없으면서 입찰에 뛰어든 데는 한국시장보다는 다른 시장을 목적으로 그들 기술력의 우위를 검증 받고 이를 적극 홍보한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성능과 가격경쟁력 및 기술이전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지니지만 한미간의 정치적 이해에 의한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차라리 솔직하다. 그는 3월18일 김동신 장관의 방문을 받고는 “FX 기종 선정은 단순히 비행기 성능만 따져서는 안되고 무기체계 단일화와 유사시 한미 혈맹의 효율성을 감안, 미국전투기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단언했다.

    조대령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고 볼 만한 사례로 이미 알려진 조기경보기 도입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조대령의 증언이다.

    “1995년에 조기경보기를 도입하기로 돼 있었는데, 당시 미국의 압력으로 E2기로 이미 확정됐다는 것이 군 안팎의 시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E2기를 선정할 수는 없어 나를 포함, 6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을 현지로 보내 성능을 평가하게 했다. 하지만 6명이 현지 출장 후 회의한 결과 ‘작전요구성능(ROC)’에 부적합하므로 만장일치로 E2기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자 공군 고위층에서 화를 내며 조건을 수정해 보고서를 재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1주일 후에도 같은 내용으로 보고하고 3회에 걸쳐 똑같은 보고를 하자 결국 결정을 보류했다. 그 이후 조기경보기 도입은 현재까지 보류되고 있다.”

    조대령의 강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때 조대령 밑에서 근무하다 7년 전 전역한 김성전씨(공사 29기)는 조대령의 성품에 대해서 이렇게 전했다. “그는 적이 많다. 타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윗사람들의 부당한 명령에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런 점이 후배들에게는 믿음을 준다.”

    지금 조대령은 FX사업이 제대로 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자신이 밝힌 외압 및 조작의 실체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1차적으로 그는 국회 국방위에서 증언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지금 그에게는 변호인의 입을 통해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그의 소망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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